* 일본으로 노무동원된 조선인 탄부들의 근로, 수입 그리고 일본인과의 비교: 1944년 5월 나가사카시 에므카에 탄광(일본질소계열)의 운탄부
2. 연령과 취로日數.
요지: 평균연령은 일본인이 훨씬 높고, 월간 평균 근로일수는 조선인이 일본인보다 적었다.
요지: 평균연령은 일본인이 훨씬 높고, 월간 평균 근로일수는 조선인이 일본인보다 적었다.
(운탄부 총수 98명. 조: 54명, 일: 44명
- 첫번째 그래프는 연령, 두번째는 월간 취로일수
- 그래프를 클릭하면 설명을 보실 수 있읍니다.
- 연령과 월간 취로일수를 오름차순으로 배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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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로일수 관련, 방정식: 취로일수=연령+기본급+근속기간(숙련도)+(가족수)+민족더미 추정. 기본급 또는 근속기간을 제외하고도 추정해볼 것...)
일본 큐슈 에므카에 탄광(일본질소비료 계열, 지금 행정구역으로는 나가사카현 나가사카시 에므카에쵸, 나가사키시에서 직선거리로 66km, 하시마=군합도와는 77km),운탄부 중 대략 55%를 차지하는 조선인 54명 중 金仁O씨의 1944년 5월, 근로와 수입입니다. 김인O씨의 경우 5월에 일을 많이 하지 않아 수당이 남들과 달리 거의 없었고 그래서 임금총액이 낮았습니다.
김인O씨는 조선인 중에서 下上(9개 그룹 중 밑에서 3번째) 수준의 월 수입입니다. 그래도 월급 85엔 50전 중에서 주거비, 식비, 저축, 세금, 각종 적립금 등 모든 공제금를 제외해도 35엔 70전이 김임O씨에게 전달되었습니다. 제가 지난 논문에서 임금의 최소 40%가 조선인 노무자의 손에 전달되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후 얻은 이 자료, 김인O씨의 경우 41.8%입니다.
당시 창씨개명은 해도 되고 안해도 그만이었습니다. 제가 가진 자료 중 그저 첫번째 조선인을 골라 그것을 찎었습니다.(제 페친님들께 제 질문에 빨리 도와달라고 조르는(?) 의미에서 올립니다) 물론 이 사료의 가치야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친구님들,
엑셀 그래프에 축 단위 넣는 방법 분실,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페북에서 엑셀그래프를 가져다 붙이는 것은 알겠는데, 그 바로밑에 설명 넣으려면 어떻게 해요? 그래프를 별도 파일로 만들어야 하나요?
또 하나, 구글 지도를 카피해서 파일로 만드는 방법은 없나요?
...See more페북에서 엑셀그래프를 가져다 붙이는 것은 알겠는데, 그 바로밑에 설명 넣으려면 어떻게 해요? 그래프를 별도 파일로 만들어야 하나요?
또 하나, 구글 지도를 카피해서 파일로 만드는 방법은 없나요?
* 일본으로 노무동원된 조선인 탄부들의 근로, 수입 그리고 일본인과의 비교: 1944년 나가사카시 에므카에 탄광(일본질소계열)
1. 근속기간(月)와 1일 기본급(円)
지금 행정구역으로는 나가사카현 나가사카시 에므카에쵸, 나가사키시에서 직선거리로 66km(하시마=군합도와는 77km). 일본질소의 에므카에탄광, 큰 탕광은 아닙니다. 자료는 회사 내부 문서들입니다.확신할 수 있는 자료입니다. 아래 그래프는 運炭夫의 근속月數와 一日 기본급을 보여줍니다. 종축 단위는 각각 근속월수, 엔입니다.
첫번째 그래프, 근속월수에서 조선인들은 전시 동원이니 일시에 다수가 들어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일본인들은 당시 "현지징용"이라 하여, 기존 근무처에 묶어 이동하지 못하게 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시장원리에 따라 자연스럽게 그곳에 들어와 그때 갓 시작한 일본인도 있고, 차츰 사람들이 경력을 쌓아가게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그래프입니다 .따라서 근속월수 변동 폭이 조선인들보다 크고, 평균 근속월수는 일본인이 훨씬 많습니다. 평균 근속기간(월)은 조선인 15.4, 일본인 46.8개월입니다. 이로부터 생각하면 일본인 월급이 조선인보다 평균적으로 높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만, 지금까지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마지막 3명은 전시 노무동원 이전에 일본으로 건너온 "기주조선인"으로 보입니다.
두번째 그래프, 조선인들의 1일 기본급은 별 차이가 없습니다. 일본인들의 변동폭은 훨씬 큽니다. 일일 기본급 평균은 조선인이 1엔 72전, 일본인이 1엔 70전, 조선인이 조금 높지만 큰 차이는 아닙니다.
기본급임금방정식: 기본급=연령(자승?)+근속월수+민족더미변수+당근!잔차
을 추정하겠습니다(한국에서 이미 했는데 STATA프로그램이 지금 제게 없어서 매우 불편... ). 이 방정식에 문제 있으면 지적해주시기 바랍니다(김두얼교수등). 지금으로서 확실한 것은 다른 조건이 일정할 때, 조선인 기본급이 더 높고 그 t 값은 통계적으로 유의한 수준 내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
덧: 자료 사본을 소장하고 있는 다나카 교수가 이 자료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10여년 전, 다나카 선생 한 논문의 각주에서였습니다. 이후 선생님으로부터 이 {임금대장} 사본을 얻는 데 10여 년이 걸렸습니다. 제가 진작 첫번째 임금 논문을 썼다면 훨씬 전에 받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탄부 1인당 1개월을 1페이지로 기록한 {임금대장}은 이것이 1945년 이후, 77년만에 처음이죠(이 자료와 그를 이용한 연구가 일본 사업체나 문서보관소, 도서관 등이 자료에 대해 중립적인 자세, 역사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공개할 수 있게 되는 데 도움이 된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이 에무카에 탄광 자료를 이용하여 지금까지 여러 계산을 하고 회귀분석도 해보았습니다.
지난 번에 발표한 논문에서는 상이한 시간과 공간에 연속`관련없이 점존하던 자료를 한데 그러 모아 1939-45년, 일본으로 노무동원된 조선인들에 대해, 최소한 임금에 관한 한, '제도적 차별은 없었다' 는 사실과 '매월 넉넉한 금액을 손에 쥐었다'는 주장을 하였습니다. 이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이제 비로소 마이크로, 개별 탄광의 자료로부터 검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에므카에 탄광도 제가 이미 이야기한 일반적인 양태를 벗어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제 지난 주장을 뒷받침해주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만... 여하튼 다나카 선생께 깊이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후 나오는 결과를 종종 알려드리겠습니다. 페친님들의 적극적, 비판적인 코멘트를 부탁드립니다, 계량경제학이나 통계학, 노동경제 수량적 연구하시는 분의 코멘트나 그분들 소개해 주시면 큰 도움이 되겠습니다. 물론 생각의 차이를 불문하고 감사히 받겠습니다만, 근거 없는 비방이나 비난을 위한 비난엔 답하지 않겠습니다.
70%의 할머니들이 수용했는데, "국민정서"가 그와 다르다는 얘기를 외교부장관이 하면, 우선 그 할머니들은 어떻게 되며, 또 제3자는 이런 상황을 이해할 수 있을까? 한국 언론은 이 70%의 할머니를 왜 외면할까?
"국민정서"와 위안부운동단체들이 무서워서 그렇다. 운동단체들의 언행을 보면 문제해결을 진심으로 원하는가 의문이다. 오히려 이 문제를 꼭 쥐고 내놓지 않겠다는 듯, 설령 할머님들이 모두 돌아가신 후라도 이 문제를 놓지 않고 계속 문제 삼겠다는 듯, 그렇게 보인다. 저들이 할머니들을 이용하여 앵버리를 한다는 소리를 듣게 되는 이유다. 저 단체들이 소리지르면 언론이 받아쓰고 국민의 반일감정은 고양되고, 그에 의지하여 단체들은 또 소리지른다. 악순환, 뿐만 아니라, 나선형 구조가 되어 한일관계를 더욱 악화시킨다. 그로부터 언론이 빠져 나온다? 어렵기는 할 게다.
비생산적, 우물안 개구리가 울 듯 하는, 외국의 무관심, 기껐해야 한국(정부)에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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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yeang Oh
위안부 문제에 대한 오늘 아사히 신문 사설입니다. 간만에 신문구독을 시작해서는 몇날 며칠 신문 이야기만 하는 것 같아 뭐하지만, 이 사설은 혼자 보기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 번역해서 공유합니다.
위안부 문제는 정말 민감해서 언급을 하는 것 조차 항상 조심스럽지만, 이 사설이, 문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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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혜경 박사님의 페친님들, 이글에 대하여 꼭 알려주시기를 부탁합니다. 저는 친구신청했지만 안되었습니다.
한 페친을 통해 11년간 일본의 조선인 노무동원을 조사, 연구한 정혜경 박사(공개적이니 존칭은 생략)가 기자의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하였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정박사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였는데, 나는 내 중요한 관심사에 대해, 또 내가 아는 문제에 한해서 이야기하고 반론, 질문하겠다. 다음이 해당 내용이다.
"기자: 조선인 징용자들은 임금 착취에도 시달렸다?"
"정박사: 일제는 국가총동원법을 통해 인적·물적·자금의 삼중(三重) 착취 구조를 만들었다. 강제 동원 과정에서 조선인 징용자들은 기차 삯과 뱃삯, 밥값까지 빚을 짊어졌다. 작업장에 도착한 뒤에도 일본 기업들은 숙박비와 식비는 물론, 신발과 곡괭이, 이불에도 사용료를 매겼다. 이 빚은 1년 이상 일을 해야만 갚을 수 있었다. 쥐꼬리만 한 임금은 우편 저금이나 연금이라는 명목으로 또다시 착취당했다. 미수금은 조선인들의 탈출을 막는 수단이기도 했다. 사실상 인신매매와 다를 바 없었다."
"정박사: 일제는 국가총동원법을 통해 인적·물적·자금의 삼중(三重) 착취 구조를 만들었다. 강제 동원 과정에서 조선인 징용자들은 기차 삯과 뱃삯, 밥값까지 빚을 짊어졌다. 작업장에 도착한 뒤에도 일본 기업들은 숙박비와 식비는 물론, 신발과 곡괭이, 이불에도 사용료를 매겼다. 이 빚은 1년 이상 일을 해야만 갚을 수 있었다. 쥐꼬리만 한 임금은 우편 저금이나 연금이라는 명목으로 또다시 착취당했다. 미수금은 조선인들의 탈출을 막는 수단이기도 했다. 사실상 인신매매와 다를 바 없었다."
정박사에게 질문.
1. 일본 사업장까지 가는 기차 삯, 뱃삯, 식비, 하물며 기차안에서 조선인들에게 나눠준 과자까지도, 또 도착 이후의 숙박비(기숙사는 무료, 단 가족이 있어 사택에 사는 경우는 일본인과 같은 임대비용을 납입해야), 곡괭이... 이는 모두 일본 회사가 부담하였다. 따라서 "1년 이상 일을 해야만 갚을" 수 있는 빚, 애당초 그런 것은
전혀 없었다. 그리고 동원되는 과정에서 그런 빛을 지게 되었던 사례는 찾아 볼 수 없었다. 혹시 "증언"을 근거로 하고 있다면, 그것을 알려주셔도 좋다. 내가 '위원회'의 출간물을 읽은 기억과 내 채록에는 그런 내용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전혀 없었다. 그리고 동원되는 과정에서 그런 빛을 지게 되었던 사례는 찾아 볼 수 없었다. 혹시 "증언"을 근거로 하고 있다면, 그것을 알려주셔도 좋다. 내가 '위원회'의 출간물을 읽은 기억과 내 채록에는 그런 내용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2. "쥐꼬리만한 임금"도 증언 외에 다른 근거가 있는가? 이는 사실과 다르다. 내가 직접 자료를 보고 논문에서 이용한 것들, 예를 들어 박경식이나 하야시 에이다이 등 "강제연행`강제노동"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펴낸, 그들 자신들이 편찬, 공간한 많은 분량의 자료로부터 해당 내용을 찾아 계산해보았다. 역시 대단히 많은 금액이 조선인 노무자의 손에 쥐어졌다(박경식 등, 그들은 자신들이 편찬한 자료 속에 어떤 내용이 있는지 자세히 말하지 않았다(연구자로 게을렀거나, 알면서도 거짓을 말하였거나, 그중 하나일 것이다).
3. "미수금은 조선인들의 탈출을 막는 수단"이라고 말했는데, 알다시피 대부분의 도주자들은 큰 금액을 남겨둔 채 도망할 만큼 어리석지 않았고, 도착후 짧게는 2-3일 길게는 한두달 내에 도망하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미수금(개념이 분명치 않지만, 저축, 연금저축 등을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힌다)은 도주를 막을 수 있는 금액, 수단이 결코 되지 못했다. 그것은 상상의 소치라고 생각한다. 저축 등이 조선인의 도주를 막을 만한 것이었다는 증거가 있는가? 대부분의 도주자들이 사업장 도착 이후에 "신속하게" 도주했으므로 그 "미수금"은 미미했다고 추론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에 반하는 자료가 있다면 공개해 주기 바란다.
4. 상기 정박사의 결론, "인신매매와 다를 바 없었다" 관련, 나는 정박사의 이러한 판단의 근거는 "증언"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그들 증언이라는 것이 당시에그들을 고용하였던 많은 회사, 그 기업단체, 그를 관할하는 일본 정부의 문서 등(이들 문서들은 그 내용이 서로 모순되지 않고 일관성을 갖고 있기에 충분히 신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과 크게 배치디는 내용들이다. 연구자로서 이른 바 "사료 비판"을 한다면, 일관성 있는 문서자료가 훨씬 더 신뢰할 수 있는, 신빙성 있는 자료라고 생각한다. 정박사의 생각은 어떠한가?
5. "사실상 인신매매와 다를 바 없었다"는 결론은 우리 선조들이 '노예, 또는 그와 다를 바 없었다'고 주장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과연 20세기 전반, 우리의 선조들이 그와 같은 존재였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수 백년동안 발전해온 소농(peasant)ㅇ,로서 자신의 독자적인 경리를 가진 경제생활의 주체였다. 그들이 1939-45년간 "노예"로 사역당하면서도 동아일보`조선일보 등, 그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을 만큼, '반인간적 학대'에도 불구하고 전혀 저항할 수 없었던(쟁의는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쟁의" 자체가 정치`사회적으로 예속된 존재가 아니었음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저항"이란 "매매"의 대상으로 전락한 사람들이 봉기하는, 그런 의미의 저항을 말한다) 무기력하고 비굴한 존재였을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는 주관적인 질문이니 답하지 않아도 좋다.
이상에 대해 정혜경 박사님의 답변을 기대합니다.
한일 과거사 내세우면서 정치집단들이 이득을 보는 것은 사실. 그것으로 자신을 중심으로 국민을 "통합"하려고. 그런 작태를 국민들은 아는 걸까, 모르는 걸까. 그것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반일이면 가족도 통합할테니까.
그런데 그래서 얻는 것이 뭘까? 반일로 가족 통합한다면, 그야 뭐... 그런데 국민을 그걸로 묶어서, 정치집단이 아니라, 국가적으로 한 데 묶으면 얻는 것이 뭘까? 한국이 일본을 과거사 문제로 질타하면, 다른 나라들이 한국 손을 들어주고 일본을 왕따시킬까? 말이 안된다. 다 아는 사실 아닌가? 한일 과거사 문제는 세계적으로는 미국과 중국 외에 관심있는 나라, 국민이 없다. 이 두 나라는 반대 방향이지만, 한일간 역사문제를 둘러싼 불화에 이해가 달려있다. 하지만 다른 나라, 국민들은 영 관심없다.
'역사전쟁'해서 양국이 얻는 게 없다. 두 나라 중 한국이 이 쓸 데 없는 전쟁에 꾸역꾸역 앞서 나가는 것, 그것도 역사를 왜곡하면서 일본 성질머리 돋구고, 엄숙한 표정으로 살살 약올리듯 일본 건드리는 것. 참 비굴하다. 도대체 왜 이럴까?
지금 할 수 있고 해야하는 것은 별 것이 없다. 꼭 하나. 한국 내에서 한일 과거사에 대해 역사적 진실을 분명히 하여 반일민족주의적 정서의 토대가 되는 역사적 왜곡, 거짓을 쓸어내고 진실을 찾아내고, 그 근거를 가지고 '국민적 정서'와 싸우고, 결국 진실을 인정하게 국민을 설득하는 것. 그것 하나 뿐이다.
소위 연구자라는 사람이 자신이 십수년 고이 간직해온 대단히 귀하고 새로운 자료라면서(한국의 한 노인 분이 매우 중요한 것이라면서 연구실로 찾아와 십수년 전 자신에게 전해줘서 그동안 소중히 간직해 왔다고...), 내게 내밀며 답변을 하란다.
자료를 보니 그 바닥에선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는 뻔한 자료, 그 의미도 선행연구를 보면 당연히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자료. 그래서 이미 알져진 자료이고 하다 못해 국가전자도서관에서 출력할 수도 있다고 알려 줬더니... 그 뒤 올라온 포스팅, '국가전자도서관에 가니 이런 자료가 있더라.!그래서 공개한다. 이우연 답해라!'. 황당하고 시간 낭비다 생각해서 무시했더니 오늘 또 '이우연 왜 답 안하냐'... 당초 상대하지 말아야 할 사람을 상대해서... 앞으로 조심해야겠다. 연구자라고 우선 믿고 들어가는 것, 많이 깎아야겠다. 내가 봐온 일본 연구자들, 대단히 신중하고 성실하던데, 그것도 깎아야하나? 스토커에게 당하는 게 이런 건가 싶다.
자료를 보니 그 바닥에선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는 뻔한 자료, 그 의미도 선행연구를 보면 당연히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자료. 그래서 이미 알져진 자료이고 하다 못해 국가전자도서관에서 출력할 수도 있다고 알려 줬더니... 그 뒤 올라온 포스팅, '국가전자도서관에 가니 이런 자료가 있더라.!그래서 공개한다. 이우연 답해라!'. 황당하고 시간 낭비다 생각해서 무시했더니 오늘 또 '이우연 왜 답 안하냐'... 당초 상대하지 말아야 할 사람을 상대해서... 앞으로 조심해야겠다. 연구자라고 우선 믿고 들어가는 것, 많이 깎아야겠다. 내가 봐온 일본 연구자들, 대단히 신중하고 성실하던데, 그것도 깎아야하나? 스토커에게 당하는 게 이런 건가 싶다.
추1. 지난 1시간여, 이전 내 모든 포스팅을 쫒아다닌다... 역시 세종대의 균형감각은 뛰어나다. 이런 하류를 교수로 두고있으니. 그래도 대학이 스토커 키우는 것은 이상하다.
추2. 이젠 또 지난 질문(?) 반복한다. 두어 주 전, 만 이틀동안 설명했던 수요`공급의 이야기, 노동시장 이야기를 재방송할 수도 없고... 취하셨나?
추3. 아이고. 그 자료 또 다시 들이댄다. 지겹다. 취했다.
결: 나는 잔다.
추2. 이젠 또 지난 질문(?) 반복한다. 두어 주 전, 만 이틀동안 설명했던 수요`공급의 이야기, 노동시장 이야기를 재방송할 수도 없고... 취하셨나?
추3. 아이고. 그 자료 또 다시 들이댄다. 지겹다. 취했다.
결: 나는 잔다.
8월 3일 이 양반 오늘 또 나타났다. 역시 스토커다.
8월 4일 그 일본인 스토커 또 나타났다. 엉뚱한 곳에서. 한반도 호랑이 없어지는 이야기를 하고있는데, 거기에 들어와 식민지기 임금의 민족차별 이야기를 한다. 그것도 이미 알려진 자료를 자기가 발굴했다는 듯이, 새로 분석했다는 듯이, 마냥 헛소리를 한다. 선행연구는 그렇게 말해 줬어도, 아직 하나도 보지 않고...저런 용감함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졸졸 따라다는 한국인 대학생들이 있어서? 오늘이 4일째짼데, 얼마나 가나 두고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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