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0-09

(4) 손민석 - 위안부 문제에 관한 나의 입장은 아직 변하지 않았다. 국가에 대한 지나친 신뢰라 말하는 이들도 있으나 국가가...



(4) 손민석 - 위안부 문제에 관한 나의 입장은 아직 변하지 않았다. 국가에 대한 지나친 신뢰라 말하는 이들도 있으나 국가가...




손민석
28 September at 10:06 ·



위안부 문제에 관한 나의 입장은 아직 변하지 않았다. 국가에 대한 지나친 신뢰라 말하는 이들도 있으나 국가가 '공적인' 성격을 포기하는 순간 그 공간을 메우는 건 현실적으로 '사적인' 폭력밖에 없다. 그 사적인 폭력이 지배하는 공간으로부터 국가와 인민의 일부는 이득을 얻고 다시 폭력이 유지된다. 도덕성과 폭력 모두 하청되는 구조를 보아야 위안부 문제를 오늘날의 성매매 문제와 함께 사고하며 "인민과 국가의 책임"을 제대로 물을 수 있다.


손민석
13 December 2015 ·



아래의 글은 11/21일에 있었던 제국의 위안부 관련 세미나에서 발제한 것입니다. 비공개 세미나에서 발표한 글이라 이렇게 페이스북에 올려도 될지 모르겠으나, 아끼는 지인들조차 위안부 문제에 있어 너무나도 손쉽게 결론을 내리는 것이 우려되어 제 입장을 견지해보고자 합니다.

우선 이 글은 발제 오퍼를 세미나 2주 전에 받는 바람에 실제로 어떤 유의미한 수준의 실증 조사를 할 시간이 부족했기에, 제 한국사 지식과 근대사 지식 평소에 여성문제에 대해 갖고 있던 문제의식 등으로 “일상화된 하청폭력”이라는 새로운 개념틀을 제시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그럴리는 없겠지만 이 글이 어렵게 느껴지신다면 이는 기존의 위안부 담론 등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글이 길다고 느껴지시면 2-2-3부터 읽으셔도 됩니다. 그리고 주석은 가독성을 위해 뺐습니다. 또한 이 글은 초고로 어떠한 편집도 거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글을 다듬어 논문으로 제출하려고 하는데 많은 질정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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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소녀상에 대한 단상

민석

1, 서론

역사는 인식 이전에 “감각”된다. 전문적으로 연구를 하는 학자이든 그렇지 못한 일반인이든 우리는 역사를 감각적으로 파악한다. 개인에게 있어 역사란 각각의 역사적 시대 그 자체가 고유하게 형성하고 있는 독자적인 시공간에 대한 감각의 축적된 결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개인에게 있어서 “현실” 또한 그러한 축적된 결들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역사와 현실은 그렇게 구분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보다 전문적으로 역사를 연구하는 역사가가 이러한 개인 일반들과 차이를 보일 수 있다면, 그것은 역사가가 지니고 있는 문제의식에 있을 것이다. 역사가는 자신의 나름대로의 역사적 시공간을 형성하고 있으며, 동시에 그러한 시공간 속에서 과거를 인식하기 때문에 그 나름대로의 역사적 시공간을 형성하는 문제의식이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문제의식은 현실을 어떻게 파악하느냐에 따라 달리 형성되고는 한다. E.H 카의 유명한 명제, “역사란 현실과 과거의 대화”는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현실에 대한 조금 더 과학적인 문제인식을 위해 우리는 현실의 문제를 염두에 두면서 과거의 역사적 시공간들을 나름의 결대로 나열하고 파악한다. 과학적인 인식이란 현실을 기준으로 과거를 파악하고 비교하면서, 그것이 전체 속에서 어떠한 맥락에 위치해있는지 파악할 때 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위안부 문제를 접근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우선 그것이 지난 한국근현대사 100년의 역사적 맥락 속의 어느 곳에 위치하고 있는지를 “감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의 눈에는 개항 이전의 기생제도에서부터 개항 이후의 일본인들의 개항장에서의 성매매 문제와 식민지기의 공창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방 이후의 한국군 위안부와 미군 위안부, 박정희기의 미군 위안부 문제, 60~70년대 외화벌이라는 명분으로 국가에 의해 장려된 일본인들의 섹스관광 그리고 무엇보다도 현재의, 동남아 원정성매매와 2010년 한 해 동안 4,699만 건의 성매매가 이루어지고 여성 종사자 수는 14만 2,248명으로 추산되며 동년의 영화산업이 1조에 지나지 않을 때 한 해 '화대'로 거둬들인 돈이 6조 6,258억 원인 한국의 성매매 산업이 가장 먼저 들어온다. 과장해서 말하자면 지난 100년 동안의 역사에 수많은 변화가 존재했지만 여성의 인권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는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이런 필자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차지하는 시공간이란 민족주의적 역사관 혹은 현재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활동하시는 분들의 인식에 입각해 파악하는 시공간과 상이하지 않은가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 필자가 인식하는 현대 한국에서의 여성문제란 노동시장에서의 차별과 성매매 산업이라는 두 축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실상 이 둘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재생산되는 차별적 기제로 인식된다. 그러나 지면의 한계와 시간의 제한으로 이 두 주제 모두를 다룰 수는 없기에 성매매를 중심으로 보고자 한다. 위안부 문제는 이와 같은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한 역사적 시공간 속에 위치해 있다.

2, 나의 입장

2-1 일본의 국가책임

먼저 전제해야할 점은 위안부 문제는 분명히 국가권력이 개입해 개인의 인권을 침해한 사건을 성격으로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군 군위안부에 관한 탁월한 연구업적을 지니고 있는 요시미 요시아키吉見義明의 <일본군 군대위안부>(이규태 역, 소화출판사, 2006)의 주장을 간략하게 요약하는 것으로 이를 대신하고자 한다. 그에 따르면 첫째, 일본국은 매매춘을 위하여 부녀자의 매매를 금지한 1911년 국제조약을 위반하였다. 설사 본인의 동의가 있더라도 21세 미만의 미성년의 경우 매매춘을 위해 해외로 나가는 것은 불법이다. 그러나 이 조항은 자주 위반되었으며 식민지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였다. 둘째, 일본국은 노예제를 금지하는 국제법을 위반하였다. 일본군 군위안부는 이동의 자유 등이 제한된 성노예였다. 셋째, 일본국은 1907년에 체결된 강제노동 금지협약을 위반하였다. 위안부의 자유의지는 곧잘 무시되었다. 넷째, 헤이그 조약의 관습국제법을 위반하였다. 이 조항에는 개인의 존엄을 훼손할 수 있는 강간 등의 행위를 금하고 있다. 이러한 위반은 아니겠으나 일본국은 법조항이 식민지에 적용되지 않는다며 조선인 등과 점령지 여성들을 다수 징집하였는데 명백한 민족차별로 마땅히 비판받아야 한다.

2-2 폭력의 하청

2-2-1 기존의 인식

위와 같이 인식한다면 위안부 문제는 역시나 일본국의 사과를 받는 것으로 일단락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것으로 충분한 것일까? 필자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인식에서 본다면 위안부 문제는 한국사와 완전히 유리된 사건으로 남게 되거나 혹은 그 모든 원죄를 일본제국에게 돌리게 된다. 가령 이만열은 “그러나 개항 이후 일본인들이 몰려들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이러한 공창제도는 일제가 그들의 식민정책의 일환으로 강제로 한국에 이식한 악습이었다.”고 주장한다. 이런 인식에서는 설령 경제적 곤란 등을 이유로 여성들이 위안부가 되더라도 모두 일본제국의 잘못으로밖에 환원되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위안부 문제를 현재의 관점에서 보는 이유가 여성문제의 해결에 있지 않게 된다. 2014년 7월 21일에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위안부 문제해법 모색을 위한 대토론회”와 2015년 10월 30일에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서 발표한 “한일정부에게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올바른 해결을 요구하는 한국시민사회 요구서 발표 기자회견”를 살펴보자.

우선 기자회견문부터 보자면 김동희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사무처장은 일본의 “역사왜곡”과 “군국주의 부활”을 저지하는 것을 최대의 문제로 삼고 있다. 그에 따르면 현재의 일본은 “자위대 무장과 한반도 진출을 노리”고 있는 군국주의 국가이며, 이에 대해 정부가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정상회담에 호응하는 것은 “군국주의에 발을 맞추며 확연히 그 정체성을 드러내”는 일이며 “그 친일의 대물림”으로 “단연코 용납할 수 없”다. 여기서 돋보이는 점은 일본이 군국주의를 꾀고 있는 국가이며 한국의 박근혜 정부가 “친일파” 박정희의 후예로 일본 정부의 이와 같은 행보에 발을 맞추고 있다고 파악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국정교과서는 이러한 맥락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분들을 일본군을 따라다닌 이들을 묘사한 뉴라이트 교학사 교과서의 연장선이기에 반대의 대상이 된다. 또한 정부가 소녀상과 기림비 철거를 요구하는 등 위안부 문제의 최종해결을 주장하는 아베 정권의 무리한 외교적 요구에 무능력하게 대응했다는 점 또한 현정부에 대한 반대이유가 된다. 이런 이유로 평화나비는 11.14 민중총궐기에도 참여하였다. 마지막으로 위안부 문제의 해결에 있어서 정대협의 입장은 “배상, 진상규명, 교육과 부정발언에 대한 반박이라는 재발방지를 위한 후속조치가 수반될 때에야만 비로소 진정한 사죄”가 될 수 있으며, “국민기금이나 정부의 책임”이라는 법적인 형태의 책임만이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단체의 이름으로 발표된 것이기에 현재로서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참여하는 이들의 인식을 가장 잘 보여주는 문서라 판단된다.

다음으로 대토론회 자료집을 살펴보면, 발제자인 홍성필 교수의 “일본군 성적 노예제의 문제”와 여러 토론문들이 돋보인다. 필자가 법에는 무지하기에 홍성필의 위안부 청구권 관련한 주장에서는 많은 부분을 배웠으며 공감하는 바도 많았으나, 문제해결을 위한 대안에서는 위의 정대협 인식과 비슷한 부분이 많지 않은가 싶었다. 가령 일본의 피해자 인식과 담론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국제적인 차원에서 일본을 “가해자”로 재구성해야 한다는 주장의 실효성에 의문이 든다. 또한 그렇게 바뀐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한국사에 있어서의 위안부 문제와 어떠한 연관성을 지닐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 게다가 마지막에서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우리의 통일적인 문제인식”과 “의견통일”을 주장하는데 약간은 위험하지 않은가 싶다. 김창록 교수 또한 홍성필과 마찬가지로 일본국의 반성을 요구하며 오직 “법적 책임”만이 진정한 “해결책”이라고 파악하고 있다. 게다가 국가적 차원의 위령사업까지 요구하는 데 과한 요구가 아닐까 싶다. 일본 우익들의 역풍이 우려되는 지점이다. 이외의 다른 토론문들도 비슷한 입장을 취하고 있기에 생략해도 무관하다고 사료된다.

2-2-2 비판

상당히 정치화된 운동이라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며, 우선 그 현실 인식에 동의하기가 어렵다. 일본이 군국주의 부활을 기도하고 있으며, 심지어 “한반도 진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주장은 현재 국제사회 혹은 세계자본주의 발전단계에 대한 인식이 그릇됐음을 보여주는 지표가 아닌가 싶다. 지난 19세기 세계자본주의와 달리 지난 세기의 세계자본주의는 무수히 많은 문명적 진보를 이룩했다. 민주주의, 인권, 평화 등의 가치가 적어도 원칙적으로는 “보편성”을 획득했으며, 선진국에서는 대중민주주의의 발전, 여성인권의 향상, 복지국가의 수립, 1인당 소득수준의 현저한 향상과 소득격차의 축소, 대중교육의 보급과 그로 인한 교육수준의 대폭적인 향상이 가능해졌고, 중후진국에 있어서는 식민지에서 해방해 주권국가로서 기능할 수 있었으며, 대중교육이 가능해졌고, 일부 국가의 경우에는 지속적인 경제개발까지 가능해졌다. 이러한 문명사적 성과 외에도 경제적으로 냉전의 해체 이후 글로벌화가 이뤄져 다국적 기업의 성장, EU의 시장통합과 통화통합, 국제시장과 국내시장의 융합, 금융의 세계화, 3차산업혁명이라 불리는 정보화혁명, 세계의 소위 “글로벌화 혹은 일체화”가 많이 진전되었다. 그러한 글로벌 경쟁의 격화 속에서 각국의 갈등은 첨예해질 수밖에 없고 그는 특히 동아시아에서 두드러진다. 동아시아는 그 경제적 통합과 달리 정치적 통합은 거의 진행되지 않았으며, 최근에 와서야 비로소 FTA 등의 확대로 연대가 진행되기 시작했다. 요컨대 현대 세계자본주의의 전개는 주권국가를 전제로 하고 있으며, 설령 경제적으로 종속되더라도 과거 19세기와 같이 정치적으로 반드시 종속되지 않거니와 종속되더라도 자국 자본주의의 발달로 그를 극복할 수 있는 조건들이 존재한다. 이런 상황에서 이웃국가들과의 교류 및 협력은 필수적인 일이 되며 특히 EU를 중심으로 한 선진자본주의제국이 보여줬듯이 지역 경제권의 형성과 그를 뒷받침하는 정치적 조건의 창출이 현대 동아시아의 과제라 할 수 있다. 이런 입장에서 보자면 일본이 군국주의를 추진하며 한국 우익들이 “친일의 대물림”까지 하며 이에 동조하고 있다는 현실 인식에 동의하기란 어렵다.

또한 위와 같은 인식에서 보자면 현대 한국사회의 여성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위안부 문제가 유의미한 의미를 지니기란 어렵다고 생각한다. 문제해결의 방안은 “일본 군국주의의 부활”과 “국정교과서”의 저지인데, 그것이 현대 여성문제와 어떠한 연관이 있는지 필자로서는 이해하기가 어렵다. 설령 일본국이 정대협에서 말하는 법적인 책임을 지더라도 말이다. 다시 말해 여성의 노동시장에서의 차별과 성매매 산업의 문제해결에 있어 정대협 측의 기자회견문은 유의미한 대안을 제시할 여지조차 갖고 있지 못하다는 판단이 솔직한 심정이다. 상기할 점은 회견문에서 위안부 피해자 분들을 “일본군국주의의 피해자”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인데, 이 또한 위안부 문제가 현대 한국사회에 있어 의미있는 사건이 되는 것을 가로막는다고 생각한다. 역으로 생각하자면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에, 즉 일반 사람들에게 “불편하지 않기” 때문에 이 운동이 더 넓게 지속될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과연 그것으로 충분한지 의문이 많이 든다. 앞서 말했듯이 이렇게 사건을 인식한다면 위안부 문제는 일본의 사과 이후에는 더 이상 한국사회에서 유의미한 사건으로 기억되기 힘들 것이다. 소녀상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2-2-3 일상화된 하청폭력

앞서 말했듯이 분명히 일본제국에 의해 자행된 불법이나 폭력은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이 점까지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국가권력에 의해 행해지는 권력은 “의식적인 폭력”이다. 행위의 주체가 명확하게 인지되며 피억압자들에게도 그것이 또렷이 인식될 수 있다. 위의 정대협 등의 단체들은 바로 이 “의식적인 폭력”에만 집중한다. 그러나 필자가 주목하고 싶은 점은 오히려 “무의식적인 폭력”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지워진 폭력”이라 할 수 있다. 이 “무의식적인 폭력”을 인식하기 위해서 필자의 경험 하나를 고백하고자 한다. 현대 한국에서의 성매매 문제에 관심이 많은 필자는 어느 성매매 종사자 분과 대화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분은 인터넷 등을 통한 소위 “조건만남”에 매우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셨다. 그에 따르면 그런 조건만남에는 돈을 받을 보장도 없거니와 변태적 성욕을 지녔거나 여성에게 악감정을 품는 이들이 많아 신체적인 위협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 생면부지의 남성과 단 둘이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 상당한 위협과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 성매매 종사자, 아니 여성의 처지라는 말에 매우 깊이 공감했다. 그런데 그녀가 대안으로 내세운 것은 조직폭력배 등이 상주하고 있는 업소였다. 업소가 그나마 안전하고 안정적으로 수입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는데, 필자에게는 이것이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필자의 눈에 이것은 “비합법적인 폭력의 하청”으로 인식되었다. 성매매, 건축 등의 하층노동력의 조달 및 밀수 등을 담당하며 비합법적 수단을 구사하며 이윤을 추구하는 폭력적인 이들이야말로 실상 한국 사회를 뒷받침해온 이들이 아닌가. 오히려 그들이 만들어놓은, 저 여성이 이미 몸으로 그리고 경험으로 알고 있는 그 안정화된 제도야말로 우리가 꺼려하지만 실상 우리가 감당해야 할 폭력이 하청된 것이 아닌가. 위안부의 처지도 실상 다르지 않다. 전쟁터로 나가기 전에 혹은 다녀온 뒤에 여성의 육체로부터 "위로"받는 일본군인과 부하사원들의 사기 진작 혹은 조직의 단결을 유도하겠다며 단체로 룸살롱으로 2차를 가거나 오피스텔로 가는 회사원 사이의 거리는 얼마나 멀까? 그리 멀지 않을 것이다. 이런 “무의식적인 폭력”은 국가의 “의식적인 폭력”과 달리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 지워지기 쉽다. 필자는 이것을 “일상화된 하청폭력”이라 명명하고 싶다.

이러한 “일상화된 하청폭력”이 성립하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필자는 “행정권력의 부재 혹은 방조”를 꼽고 싶다. 우선 위안부의 사례로 이 말을 구체화시켜보고자 한다. 요시미 요시아키吉見義明의 <일본군 군대위안부>(이규태 역, 소화출판사, 2006)를 다시 인용하자면, 일본군 군위안부에 식민지 출신의 여성이 일본인 여성에 비해 더 많았던 까닭에는 일본국의 ‘국제법상의 도망 구실’이 있다. 요시아키에 따르면 1938년 2월 23일의 외무성 경보국장의 통첩 <중국도항 부녀의 취급에 관한 건>에는 “추업(=매춘)을 목적으로 하는 부녀의 도항은 현재 국내에서 창기 그 외 사실상 ‘추업’을 하는 만 21세 이상, 또한 화류병 그 외 전염성 질환이 없는 자로, 북중국, 중부중국 방면을 향하는 자에 한해 당분간 이것을 묵인하는 것으로 하고 ... 외부차관 통첩에 의해 신분증명성서를 발급할 것”이라고 적혀 있다. 다시 말해 경보국장은 위안부 업무를 위한 여성의 도항이 법적으로 문제가 될 지라도 “묵인”하라는 지시를 내리고 있다. 또한 “이들 부녀의 모집, 주선 등의 단속을 적절하게 하지 못하면 제국의 위신이 손상되고 황군의 명예를 훼손시키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총후국민(=후방국민) 특히 출정 병사 유가족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침과 동시에 부녀 매매에 관한 국제조약의 취지에도 어긋남이 없도록 하는 것이 어려워 ... 이것의 취급에 관해서는 다음 각 호에 준거하도록 제삼 통첩하는 바이다.”라고 되어 있다. 이것은 일본인이 아니라면 또는 일본 밖에서라면 국제법이나 국민들의 사기를 고려할 필요가 없다고 일본국이 인식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조선인이나 대만인에 대한 민족차별이 여기에 전제되어 있는 것이다. 국제법이 식민지에 적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악용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행정권력의 부재 및 방조 속에서 포주, 사채업자 등에 의해 납치, 협박 등의 폭력이 자행된다.

이런 행정권력의 부재 및 방조 속에 물리적인 폭력과 그를 통해 조달되는 하층노동력, 그리고 그러한 하층노동력을 이용하는 개인 혹은 집단 및 국가권력이라는 안정화된 구조를 “일상화된 하청폭력”이라 규정하고 싶다. 국가권력에 의해 보장받아야할 영역을 국가권력의 책임과 비용을 아래로 전가함으로써, 사적 폭력에 의존하면서 확대재생산되는 영역으로 전치시키는 과정이야말로 지난 1백년의 한국사회의 근대화를 뒷받침해온 “무의식적인 폭력”이라 생각한다. 이것은 말 그대로 “무의식적인”, 의식되지 않는 폭력이기에 역사 속에서 지우기도 쉽고 그것을 드러내 문제화하기도 어렵다. 작금의 평화나비 등과 같은 위안부 운동에서 사라지는 지점이 이 부분이라 생각한다. 이 부분은 실상 우리 모두가 “가해자”이자 “협력자”로 기능하고 있는 곳이기에 문제화하기도 더 어렵고 까다롭다고 생각된다. 가령 일본국을 비판하는 담론은 많을지라도 여성을 구매하는 “일본군인”을 비판하는 담론은 극히 적다, 아니 찾아볼 수가 없다. 그러나 여성을, 내 눈앞의 여성을 구매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의식을 타파하지 않고는 여성인권에서의 개선이란 어려울 것이며, 이러한 강고한, 구조화된 남성 권력의 카르텔을 깰 수도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은 “무의식적인 폭력”은 전쟁기에 더 극단화되었을 뿐이지 한국사회에서 사라진 것이 아니다. 정치깡패부터 현재의 연예 엔터테인먼트까지 국가의 의도적인 침묵 및 개입을 전제로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영역이다. 성매매 문제란 이런 구조를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현재 이뤄지는 연구들을 본다면 이와 유사한 관점에서 나온 연구가 없기에 상당한 당혹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과문한 탓이기도 하고 그래서 구체적인 연구를 제시할 수 없기에, 필자는 현대 성매매 피해자 분들의 경험을 나열하는 것으로 위안부 피해자 분들의 경험이 현대에도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걸로 이를 갈음하고자 한다. 성루 강남의 삼성, 논현, 역삼, 대치 네 지역에서 성매매 업소로 추정되는 곳은 1,445곳인데, 이 중 1,112곳은 성매매 영업 중인 것으로 밝혀졌으며, 성매매 여부를 물어봤을 때 답을 한 곳 264곳 중 성매매를 한다고 응답한 곳은 140곳(47.5%)였다. 알다시피 성매매는 불법이다. 이들은 불법을 자행하고도 성매매 여부를 물어보는 기자에게 당당하게 성매매를 한다고 응답했으며, 특히 접객원을 둘 수 있는 1종 유흥주점의 경우에는 59곳 중 41곳(69.5%)이 성매매가 가능하다고 말했을 정도였다. 또한 단란주점(94%)이나 이용업(87.5%), 노래방(81.8%), 마사지업(73.9%) 등이 이른바 “도우미 서비스”를 하고 있는데, 이 또한 불법이다. 식품위생법에 따르면 접객원 자체를 둘 수가 없다. 이들이 이러한 불법을 자행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일까? 한 업주는 “강남을 누가 먹여 살리는지 잘 따져 보면, 어느 누구도 우리를 건드릴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성매매 집결지를 중심으로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미용업, 24시간 음식점, 제2금융권, 심지어는 점집 등의 상권이 형성되어 있으며 이들은 심지어 성매매 업소에 대한 단속이 이뤄지면 민원까지 한다. 단속으로 인해 수입이 감소하면 이를 항의하며 경찰로, 국회로 가며 지역 자체를 움직이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경찰도 어느 순간부터 방조할 수밖에 없으며, 심지어는 업주들과 유대관계를 형성하기도 한다. 한 업주에 따르면 최근에는 직접적인 로비가 단속으로 많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여전히 경찰 쪽에는 핫라인을 복수로 깔고 있”으며 “단속이 뜨면 어떤 식으로든 연락을 받게 되어 있”다고 한다. 이렇게 행정권력이 통제하지 못하는 틈을 업주와 사채업자 등의 폭력이 차지한다. 지각 등의 각종 명목의 벌금, 맞보증 채무, 고가의 옷과 화장품 강매, 성형, 보험이나 계, 심지어는 점까지 강제로 보게 하는 등의 방법으로 월수입을 초과하는 지출을 억지로 만들어내 빚을 지게 한다. 필자가 종사자로부터 들은 바로는 성매매 소득의 50%를 기본적으로 가져가며 그 외에 각종 명목으로 최대 7할에 해당하는 돈을 갈취해낸다고 한다. 한국사를 전공하는 필자의 눈에 식민지기 소작농의 암담한 현실이 겹친다. 마담 등의 업주가 빚을 이유로 소위 말하는 2차를 강요하며, 이를 어길 시에는 사채업자 등에게 빚을 갚아야만 한다. 빚을 갚기 위해 2차를 나가더라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2차 나가는데 드는 비용까지 모두 빚으로 측정되기 때문이다. 나가면 나갈수록 빚이 더 많아진다. 심지어 연 500%라는 법에서 금지한 수준의 폭리를 취하는 이들도 있다. 지역주민의 이해관계와 업주, 사채업자 등의 이해관계, 그리고 경찰의 방조 속에서 착취당하는 여성들만 늘어난다. 한 경찰관계의 말처럼 “결단이 있으면 못할 것도 없”는 일이지만, “룸 50개 이상의 업소를 다섯 명”의 경찰이 단속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일상화된 하청폭력”의 존재야말로 우리가 진정으로 문제삼아야 하는 영역이라 생각한다. 위안부와 같은 국가권력에 의한 인권침해는 이러한 사회적 배경 하에서 성립할 수 있었다. 국가권력은 자신의 책임을 “하청”하며 무책임 속에 비합법적인 폭력으로 창출된 영역에서 나오는 이익을 향유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일본제국만이 아니라 현재의 대한민국 정부 또한 마찬가지이다. 필자의 눈에는 일본제국과 대한민국 정부 사이의 어떠한 도덕적 차이도 느낄 수 없으며, 대한민국 정부가 일본 정부에게 사죄 및 배상을 요구한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누가 누구를 비판하며 사죄를 요구할 수 있다는 말인가? 한국이라는 국가의 “국가이성”은 어디에 왔는지 되물어볼 때가 아닌가 싶다. 더 나아가 사회의 책임은 어디서 찾아야 할까.

3, 결론

현재 위안부 소녀상은 위안부를 “소녀”로 환원하는 것 외에도 위안부 문제를 실질적으로 뒷받침했던, 국가권력에 의해 조장 및 방조되었던 “일상화된 하청폭력” 영역에 대한 이해가 전무한 상태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이러한 인식은 위안부 문제를 단순히 일본제국의 문제만으로 만듦으로써 그것이 한국사에서 지니는 의미와 더불어 현재의 한국 여성문제의 해결을 어렵게 만든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의 한국 여성문제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위안부 문제를 볼 것을 간청한다. 진력을 다해 의견을 피력해보았으나 역시나 부족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많은 선생님들의 질정을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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