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문점 체제의 기원 - 한국전쟁과 자유주의 평화기획
김학재 (지은이) | 후마니타스 | 2015-03-23
708쪽 | 223*152mm (A5신) | 991g | ISBN : 9788964372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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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들어가는 글
제1부 판문점 체제와 20세기 자유주의 평화 기획
1장 아시아의 ‘패러독스’와 판문점 체제
1. 판문점 체제란 무엇인가?
2. 평화 연구로서의 판문점 체제 연구
3. 자유주의 평화론과 평화의 이념형들
제1부 판문점 체제와 20세기 자유주의 평화 기획
1장 아시아의 ‘패러독스’와 판문점 체제
1. 판문점 체제란 무엇인가?
2. 평화 연구로서의 판문점 체제 연구
3. 자유주의 평화론과 평화의 이념형들
2장 칸트의 자유주의 기획과 초국적 법치로서의 평화
1. 20세기 자유주의 평화 기획의 기원
2. ‘자유주의적 순간’과 유엔의 창설
3. 초국적 법치 기획으로서의 유엔
3장 홉스의 차별적 위계질서와 안보로서의 평화
1. 냉전이란 무엇인가?
2. 홉스적 평화 기획의 제도화 과정
3. 냉전 초기 유엔 체제의 전쟁 관리
4. 홉스의 차별적 안보 질서
제2부 판문점 체제와 한국전쟁기 자유주의 평화 기획의 전개
4장 한국전쟁 초기 결정과 칸트적 법치 기획
1. 한국전쟁의 발발과 이중적 예외 상태
2. 유엔 개입의 성격과 절차를 둘러싼 논쟁: 전 지구적 주권 대(對) 민족 주권
3. 유엔 권력 구조의 변화: 인천 상륙 작전 이후 유엔의 결정과 활동
4. 한국전쟁은 ‘정의로운 전쟁’이었나?: 전쟁의 위법화를 둘러싼 이상주의, 실증주의, 현실주의의 충돌
5. 이중적 예외 상태와 초국적 법치 기획의 한계
5장 중국의 한국전쟁 개입과 홉스적 차별 기획의 전개
1. 중국의 개입과 미국의 비자유주의 불인정 정책
2. 권력 균형의 대두와 유엔에서의 논쟁
3. 자유주의 평화의 두 가지 모델: 한국의 군사적 평화와 일본의 경제적 평화
4. 판문점 체제와 동아시아 냉전 질서의 기원
6장 한국전쟁 반공 포로와 칸트의 숭고한 개인
1. 자원 송환 정책의 등장
2. 거제도 포로수용소와 포로 심사
3. 유엔 총회에서 자원 송환 원칙의 관철
4. ‘자유로운 개인’에서 ‘배신자’ 프로그램으로
7장 판문점 체제의 탄생과 냉전 동아시아의 세 가지 평화 모델: 판문점, 제네바, 반둥의 평화 기획
1. 판문점 체제: 자유주의 평화와 반공의 최전선
2. 제네바 체제: 절반의 평화와 강대국의 권력 균형
3. 반둥 체제: 대안적 평화와 탈식민 민족주의
4. 판문점 체제의 탄생과 ‘아시아의 패러독스’
결론: 아시아 패러독스와 사회적 연대로서의 평화
1. 20세기의 자유주의 평화 기획
2. 한국전쟁기 자유주의 기획의 두 유형: 칸트와 홉스
3. 연구의 함의
4. 사회적 ‘연대로서의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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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을 둘러싼 가장 뜨거운 논쟁은 그것이 내전이냐 국가 간 전쟁이냐, 즉 누구에게 책임이 있느냐를 둘러싼 것이다. 한국전쟁의 성격에 대한 논쟁이 격렬했던 것은 이 논쟁이 전쟁의 참혹한 결과와 고통, 상흔을 전쟁 발발의 기원에 있다고 여기고 전쟁의 가공할 결과를 모두 전쟁을 시작한 ‘적들의 책임’으로 귀속시키고 ‘단죄’하고 ‘처벌’하려는 형법적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영구 투쟁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 ‘전쟁의 기원’이라는 문제의식에서 ‘평화의 기원’이라는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을 제안한다. 즉 한국전쟁 자체가 처음부터 (내전이나 국제전 같은) 특정한 ‘형태’의 전쟁임과 동시에 특정한 평화 기획들과 맞물려 그 자장 속에서 전개되고 종식되었다는 것이다.
한국전쟁 연구 또한 미국의 냉전 연구, 즉 소련의 책임을 묻고 비난하는 전통주의와, 미국의 책임을 강조하는 비판적 수정주의, 그리고 탈냉전 이후 소련과 동구권 문서고의 실증적 역사 자료를 바탕으로 다시 기존의 정치적 주장들을 반박하고 수정하는 탈수정주의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왔다. 특히 연구들이 오랫동안 전쟁 발발의 기원 문제에 천착했던 것에는 전쟁의 책임을 둘러싼 냉전의 정치가 강하게 반영되어 있었으며, 그 결과 한국전쟁은 국제전인가 내전인가라는 이분법적 선택의 구도로 논쟁이 주도되었다.
그 결과 특정한 평화 체제로서 판문점 체제의 제도적 ‘형태’와 ‘평화의 성격’에 대해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예컨대, 이런 질문. 한국전쟁은 왜 군사적 실무 차원의 정전 협상으로 종식되고 평화협정이 체결되지 않았는가? 이 책은 그것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진행된 전 지구적 자유주의 국제법 질서의 구축과 관련이 있다고 주장한다.
즉, 한국전쟁을 종식시킬 평화 체제의 성격과 형태에 대한 논쟁에는 제2차 세계대전의 무조건 항복과 뉘른베르크 재판, 도쿄 재판, 그리고 유엔 헌장과 제네바 협정, 냉전과 중국의 개입 같은 무거운 국제법적 쟁점과 논란들이 연계되어 있었다. 이 책은 냉전 이전부터 형성되어 온 자유주의적 평화 기획의 장기적인 역사적 형성과 변화에 주목하며 20세기 자유주의 평화 기획을 분석하고 있다.
박명림 (연세대 지역학 협동과정 교수, 정치학)
: 『판문점 체제의 기원』은 하나의 지적 경이로 다가온다. 시야의 넓이, 이론의 수준, 문제의식의 깊이는 새롭고 놀랍다. 현실은 인간의 사유와 철학, 이론과 대안의 수준을 넘어서 창조될 수 없다. 사유의 깊이와 문명의 수준은 비례한다. 오늘의 고통스런 한국적 삶은 한국 사회와 한국 문제에 대한 불철저한 사유와 낮은 학문의 산물이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특히 냉전과 독재와 이념의 틀에 갇혀 있던 평화의 건설과 구축 문제에서 그러하다.
‘평화의 기원’이라는 발본적인 발상의 전환을 통해 이 책이 도달한 최고 수준의 성취는 전쟁으로 고통 받아 온 우리가 오래 기다려 온 평화 대안과 평화 경로의 시원과 출발을 가장 보편적이고도 구체적으로 사유할 수 있는 지평을 열어 준다. 한국전쟁을 세계와 평화의 관점에서 포착해 낸 한 연구자의 장인적 탁월성을 통해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닫히고 막혀 왔던 지식과 사유의 전환 문턱을 비로소 열어 제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제 한국전쟁 연구는 사례연구에서 보편 주제로, 한국학에서 세계학으로, 전쟁학에서 평화학으로 상승하고 도약하게 되었다.
최장집 (정치학자, 고려대 명예교수)
: 『판문점 체제의 기원』은 한국전쟁 연구에 있어 패러다임적 전환을 가져오는 학문적 대사건으로 평가될 수 있다. 오늘날 지난 시대의 냉전적 적대 관계가 악화되고 있는 한반도에서 평화를 제도화하고 이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노력만큼 중요한 일은 없다.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평화의 가치를 실현하는 데 지속적으로 실패해 왔던 이유는 정치적?외교적 실패가 아니라 한국전쟁을 원천으로 하는 남북한 간 적대 관계를 평화의 시각에서 이해할 수 있는 이론의 부재에 기인하는 바 크다. 민주화와 탈냉전이라는 환경에 힘입어 나타났던 한국 현대사와 한국전쟁 연구가 민주화 이후 한국 학계에서 사실상 사라졌다는 것은 커다란 아이러니이다. 그 이후 오랫동안 우리는 ‘냉전의 인식론’이라고 부르는 깊은 지적 자폐증의 심연 속으로 빠져들었다. 김학재 박사는 ‘전쟁의 기원’에 초점을 두면서 한국전쟁 연구에 집중했던 1세대 연구자들의 역할이 사실상 끝난 이후 ‘평화의 기원’이라는 새로운 문제의식과 더불어 2세대 연구를 여는 개척자로서 우리 앞에 나타났다. 평자가 놀랍게 느끼는 것은, 자료의 새로운 발굴과 그에 대한 해석보다 한국 사회의 척박한 지적 풍토에서 어떻게 문제를 새롭게 볼 수 있는 이론을 구성할 수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김동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대한민국은 왜' 저자)
: 참신한 분석과 새로운 시야를 열어 주는 책을 마주하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이론과 현실 분석, 국제정치학과 사회학을 함께 아울러 한반도의 전쟁과 분단 현실을 설명하는 이 책은 기존의 모든 분석을 빛바랜 것으로 만들어 버리고, 우리에게 새로운 인식의 지평을 열어 준다. 저자는 1950년 6.25 직후 유엔의 개입에서 1953년 7월 휴전 협정까지의 한반도와 판문점이라는 특정 지역에서의 전쟁, 갈등, 협상 과정을 주로 분석하면서 기존의 냉전 인식론, 미국 주도의 자유주의 평화론과 수많은 국제정치학 분석의 한계를 들추어냄과 동시에 한반도와 동아시아에서의 진정한 평화를 위해 사회적 연대와 평등, 정의의 수립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권헌익 (케임브리지대학 사회인류학과 석좌교수, 2007년 클리퍼드 기어츠 상 수상)
: 국제관계의 사회이론을 논하는 사람들은 많다. 그러나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평화를 고민하면서 에밀 뒤르켐을 생각하는 학자를 과연 본 적이 있는가? 이 책은 세계 냉전의 역사와 한반도의 분단 체제를 진정한 의미에서 이론화하려는 훌륭한 시도이다.
세바스찬 콘라드 (베를린자유대학교 교수)
: 필자의 연구는 한국전쟁과 전쟁의 평화적 종식이 결국 자유주의적 국제주의의 실패로 귀결되는 과정에 대한 예리한 통찰이다. 이 책은 한국전쟁을 동아시아라는 지역적 맥락에 확고히 위치지우면서도, 판문점 평화 체제의 계보를 1815년 비엔나 협약 이래 전개된 국제법적 논쟁들과의 깊은 연관을 통해 흥미롭게 보여주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 책은 오늘날까지 우리에게 그 영향을 미치고 있는 한국전쟁에 대한 매우 새롭고 고무적인 글로벌한 관점을 제공해 준다.
이 책을 추천한 다른 분들 :
중앙일보
- 중앙일보 2015년 3월 28일자 '책 속으로'
동아일보
- 동아일보 2015년 3월 28일자 '책의 향기'
한겨레 신문
- 한겨레 신문 2015년 3월 2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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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김학재
최근작 :
소개 :
-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HK교수.
- 서울대학교 사회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베를린자유대학교 프리드리히 마이네케 연구소에서 지구사 연구 프로젝트 연구원으로 일했다.
- 주요 저서로 『판문점 체제의 기원』 『전장과 사람들』(공저) 『전쟁 속의 또 다른 전쟁』(공저),
- 주요 논문으로 「한국전쟁기 대통령 긴급명령과 예외상태의 법제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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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 1편
새로운 관점의 한국전쟁 연구, 평화를 위한 비전 낮에뜬별 ㅣ 2016-04-09 ㅣ 공감(5) ㅣ 댓글 (0)
냉전이란 특정한 형태의 자유주의 기획으로서의 성격을 갖고 있었다는 점이다. ... 즉, 냉전이란 특정한 전쟁인 동시에 특정한 평화를 추구했던 기획이다. (122~123쪽)
솔직히 얘기하자면, 나는 이 책에 대한 관심은 있었으나 핵심 키워드 중의 하나인 ‘평화기획’이라는 말은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리고 전반부에 각종 개념과 그 개념을 둘러싼 연구(이론)사를 서술한 부분을 읽을 때만 하더라도, 이게 대체 한국전쟁에 대한 책이 맞나 싶었다. 신문 기사나 출판사의 리뷰를 참고하여 ‘새로운’ 책을 겨울방학 커리큘럼에 포함시켰던 것을 조금 후회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이 책은 성공한 책이다. 더군다나 이 책이 박사논문을 수정, 보완한 것임을 감안하면 매우 성공적인 박사논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전쟁 책임론에서 벗어나 완전히 새로운 틀에서 한국전쟁을 바라보았다는 것, 거기에다 꽤 탄탄한 이론의 정지 작업을 함께 진행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긍정적인 평가를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자유주의 평화기획을 '칸트적 기획'과 '홉스적 기획'이라는 큰 틀 속에서 시기별로 구분을 시도한 점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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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의 핵심 주장은, 판문점 체제는 단지 냉전 대립과 군사적 전투의 산물이 아니라, 자유주의 기획이 반영된 국제법과 정치적 기획이 충돌한 산물이라는 것이다. (34쪽)
무엇보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라면, 기존에 진행된 사실 관계에 관련된 연구들의 통설을 뒤집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는 점일 것이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아마도 전쟁의 '역사성'을 항상 염두에 뒀기 때문이 아닐까?
전 세곙에 걸쳐 적은 주권국가의 합법적인 적이 아니라 인류의 적으로 선포되어 절멸의 대상으로 설정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부터 본격화된 총력전은 이데올로기적으로 정당화된 '이념 전쟁'으로서, 단순히 적을 제압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 국가와 국민을 괴멸시키고, 적을 섬멸하는 것을 정당화햇다. 그런 점에서 세계적 규모에서 제2차 세계대전보다 더 도덕적인 전쟁은 없었다. 마치 중세 유럽의 종교전쟁이 전 세계로 확대된 것처럼, 전쟁 자체를 금지시킨다는 전 지구적 기획이 수립된 이후 전쟁은 오히려 전 지구적 규모의 선과 악의 대립이 되었고, 19세기의 실증주의적 전쟁 개념은 완전히 사라졌다. 동맹국들은 기본적으로, 공격을 먼저 시작한 추축국은 정상적인 교전 국가가 아니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결국 이들은 무조건 항복을 요구했고 승자의 평화를 추구했다. (94쪽)
그래서 이 책은 생각보다 매우 빠르고 쉽게 읽을 수 있다. ‘빠르고 쉽게, 그리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박사논문’. 그 자체만으로 성공한 것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계속 떠오르는 의문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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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실제 위법 논란과 법학적 차원에서의 논란을 구분할 필요가 있지 않은가? 책의 중간마다 ‘위법성’ 등에 대해 서구의 법학자들이 당대에 논했던 내용을 정리해놓았다. 물론 이것은 국제법학적인 차원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이며, 실제로 논란이 되었던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학문적 차원에서의 논쟁을 당시의 정치적 논쟁으로 치환시키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한 구분이 모호해서 독자를 혼란스럽게 하는 면이 있다. 더군다나 해당 부분의 논쟁이 실제 UN이나 미국의 결정에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 없기에 더욱 헷갈린다.
소련을 적으로 규정하고 모든 책임의 근원으로 간주하는 냉전적 세계관은 미국이 전 세계에서 대면하고 있는 모든 문제와 위협을 하나로 통합하는 서사를 제공했다. (1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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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자유주의적 기획’이라는 정의 자체가 미국 중심의 분석이 아닌가? 책 전체를 읽다보면 냉전의 동력을 자유주의에서만 찾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기 때문에 냉전의 또 다른 축이라고 할 수 있는 소련은 완전히 사라진 것처럼 느껴진다. 소련과 중국은 미국의 전략에 수동적으로만 반응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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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UN이 개입하는 일련의 과정을 ‘칸트적 보편 기획’이라고 명명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 이 또한 정치적 정당성 마련을 위한 레토릭에 불과한 것 아닌가? 또 중국 개입 이후의 상황을 두고 필자는 그것이 “동아시아의 홉스적 질서”이며 “포괄적인 사회적 합의를 창출하는 과정으로서의 ‘정치’가 작동하지 않은 ‘합의 없는 질서’의 산물”이라고 보았다.(357쪽) 하지만 앞서의 ‘칸트적 질서’에서는 ‘정치’가 제대로 작동했는가? 어차피 그 당시에도 미국만의 자의적 해석이 많은 것을 주도하고 있던 것 아닌가?
이렇게 유엔으로 상징되는 칸트적 기획은 냉전 시기 홉스적 기획으로 전환되었고, 그 결과 전쟁과 평화의 의미나 형태, 양상이 모두 변화했다. (179쪽)
이것이 미국의 국익에서 볼 때, 유엔 결의안이라는 초국적 제도가 갖는 기능적 효용이었다. 즉, 한국전쟁의 초기 국면에서 유엔으로 대표되는 칸트적 법치 기획은 미국의 홉스적 냉전 기획의 필요에 의해 선택적으로 활용된 것이다. (2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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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레토릭으로서의 칸트적 법치 기획에 불과하다면, 그것은 홉스적 기획의 부분집합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닐까? 칸트적 법치 기획과 홉스적 기획이 이항대립의 위치에 놓일 수 있는 것일까?
한국전쟁 시기에 우리가 결국 목도한 것은, '합리적 이성을 가진 자유로운 개인'이라는 고도의 자유주의적 이상이, 정치적 신념에 대한 배신을 우대하는 차별적 보상 시스템, 그리고 정치 체제에 대한 충성을 가장 호전적으로 증명해야만 난민적 지위를 부여하는 망명 시스템으로 대체된 과정인 것이다. (4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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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결국 미국을 중심으로 보는 이런 관점이 기존의 ‘수정주의적’ 관점의 결론과 얼마나 차별성을 지니는가? 필자가 기존 연구의 한계라고 지적했던 것과는 달리, 이 책 또한 결국엔 미국의 의지와 전략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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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한국전쟁을 새로운 거시적 관점에서 바라본 흥미로운 책임에는 틀림 없다. 현재의 갈등 상황에 대한 반성과 그것을 타개하기 위한 비전을 제시한 것은 기존 연구에서 보기 힘든 면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저자의 문제의식은 진정 우리 사회가 반성해야만 할 점이다. 우리는 왜 한국전쟁을 발전적으로 소비하지 못하는가?
한국 사회는 왜 정전 60년, 분단 70년이 지나도록 한국전쟁과 분단으로부터 폭력과 파괴, 단절과 갈등에 대한 깊이 있고 호소력 있는 성찰을 길어 올리지 못했을까? 한국전쟁은 왜 평화에 대한 지혜의 보고가 되지 못하고, 갈등과 냉전의 박물관으로 남아 있을까? 한국 사회가 그동안 전쟁의 최전선에 있었던 것을 자랑스러워했으며, 평화를 성취하는 데 실패하고 국제 평화에 기여하지 못한 것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552쪽)
판문점 체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유주의 평화에서 사회적 연대로서의 평화로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561쪽)
우리에게 이 새로운 "이상이 숭고한 이유는 그것이 초월적이어서가 아니라 우리에게 넓은 관점을 제시해 주기 때문이다." (563쪽)
보통 '강박'하면 나쁜 것을 지칭하지만, 지금 나에겐 '새로운 관점'에 대한 강박이 필요한 것 같다. 그걸 위해선 역시 공부 밖에 답이 없는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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