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1-26

1711 崔吉城 - 『朝鮮出身の帳場人が見た慰安婦...



(2) 崔吉城 - 韓国だけではなく国際的にも慰安婦問題で日本の国民感情を悪く刺激している。その最中に私は最新著『朝鮮出身の帳場人が見た慰安婦...




韓国だけではなく国際的にも慰安婦問題で日本の国民感情を悪く刺激している。その最中に私は最新著『朝鮮出身の帳場人が見た慰安婦の真実』を出し、恐縮している。それなりにメッセージを送っている。「友好」「親善」などの宣伝文句だけで「友好」になるわけではない。深く考えるために書いたものである。
 戦争と性、それを国家的にナショナリズムに利用していることである。本の結論をここで出すのは控えたい。読者は私の本意に出会ってほしい。慰安婦問題に関しては地方の新聞に声をかけても無反応、以前数回インタビューされても記事とされないこともあった。
 最近講義で慰安婦関係の原田環氏作成の年表を見せながら慰安婦問題に直撃してみた。1982.9.2朝日新聞が吉田清治の講演を掲載、1983.7.31 吉田清治『私の戦争犯罪』出版、1990.11.16 韓国挺身隊問題対策協議会(代表・尹貞玉)設立、1991.12.6 「元慰安婦」3人が日本政府に謝罪と補償を提訴、1992宮沢喜一首相が廬泰愚大統領に8回謝罪、河野洋平官房長官が「河野談話」発表、1995 7.19「アジア女性基金」を設立、1997.1.1アジア女性基金に韓国の政府と世論、反発、1998.4.21韓国政府「元慰安婦」に支援金支給方針、2002.5.1アジア女性基金、韓国国内での活動終了、2005.3.1廬武鉉大統領、3・1節演説で、「慰安婦問題」、2007.3.16安倍晋三、「軍や官による強制連行はなかった」、3.31 アジア女性基金解散、2011.12.14 挺対協が日本大使館前に慰安婦像設置、2014.3.1朴槿恵大統領、謝罪と補償を要求、 8.5-6 朝日新聞が「挺身隊」と「慰安婦」の混同を認め、2015.12.28 日韓外相、日本軍の慰安婦問題を最終かつ不可逆的日韓合意。
 この年表を見た学生たちは1992宮沢喜一首相が廬泰愚大統領にした8回の謝罪に異常反応をした。多くの韓国人は少女像(慰安婦像)を見ながら女性の貞操を奪った日本が悪いと思い、激しく非難するのと同様、「日本は謝罪していない」というのは韓国や中国からの留学生たちであった。つまり日韓関係の悪さから慰安婦を見ている。しかしそれは金龍徳氏が「婦女守節考」で書いたように朝鮮王朝時代の女性の貞操を強調する政策として建てられた烈女門を想像させるものに過ぎない。当時の政治秩序と社会安定のためのものであった(朴珠『朝鮮時代の旌表政策』)。
 それが反日以前の原初的な韓国社会の特質といえる。「悪の日本人」が「善なる韓国の女性」の貞操を奪ったという。拙著を納得するだろうか、不安である。*軍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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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위안부 문제로 일본의 국민 감정을 악화 자극하고있다. 그 동안 나는 최신의 「조선 출신의 帳場들이 본 위안부의 진실 '을 내고 황송하고있다. 나름대로 메시지를 보내고있다. '우호' '친선'등의 선전 문구 만 '우호'이되는 것은 아니다. 상고 위해 쓴 것이다.

전쟁과 성, 그것을 국가적으로 민족주의에 이용하고있는 것이다. 책의 결론을 여기서내는 것은 삼가 싶다. 독자는 나의 본의 아니게으로 만나고 싶어요. 위안부 문제에 관해서는

최근 강의에서 위안부 관계의 하라다 다마키 씨 작성의 연표를 보이면서 위안부 문제에 직격 해 보았다.

1982.9.2 아사히 신문이 요시다 세이지의 강연을 게재,
1983.7.31 요시다 세이지 "나의 전쟁 범죄」출판,
1990.11.16 한국 정신대 문제 대책 협의회 (대표 윤정옥) 설립,
1991.12.6"위안부 "3 명이 일본 정부에 사죄와 보상을 제소
1992 미야자와 기 ​​이치 총리가 려 태우 대통령이 8 회 사과, 고노 요헤이 관방 장관이"고노 담화 "발표
1995 7.19 '아시아 여성 기금'을 설립,
1997.1.1 아시아 여성 기금에 한국 정부와 여론 반발,
1998.4.21 한국 정부 "위안부"에 지원금 지급 정책,
2002.5.1 아시아 여성 기금 국내에서의 활동 종료,
2005.3.1 廬武 노무현 대통령, 3 · 1 절 연설에서 "위안부 문제」,
2007.3.16 아베 신조"군과 관에 의한 강제 연행은 없었다 "
3.31 아시아 여성 기금 해산,
2011.12.14 정대협이 일본 대사관 앞에 위안부 위안부 동상 설치,
2014.3.1 박근혜 대통령 사죄와 보상을 요구,
8.5-6 아사히 신문이 '정신대'와 '위안부' 혼동을 인정하고
2015.12.28 일 외교 장관 일본군의 위안부 문제를 최종 돌이킬 한일 합의. 

이 연표를보고 학생들은 1992 미야자와 기이치 총리가 노태우 대통령이 한 8 번 사과에 이상 반응을했다. 많은 한국인은 소녀상 (위안부 동상)을 보면서 여성의 순결을 빼앗은 일본이 나쁜 생각 격렬하게 비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본은 사죄하라」라고하는 것은 한국이나 중국에서 유학생들이었다. 즉 일한 관계 행동에서 위안부를보고있다. 그러나 김 龍徳 씨가 "부녀 守節考"에 쓴 것처럼 조선 시대의 여성의 순결을 강조하는 정책으로 지어진 열녀문을 상상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당시의 정치 질서와 사회 안정을위한 것이었다 (朴珠 "조선 시대 旌表 정책"). 

그것이 반일 이전의 원초적인 한국 사회의 특징이라 할 수있다. "악마의 일본인 '이'선한 한국 여성 '의 정조를 빼앗은한다. 졸저를 설득 할 수 있을까 불안하다. * 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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