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용
박성용 4 October ·
붕어싸만코.
그녀는 붕어싸만코를 좋아했어. 붕어싸만코의 포장지가 살짝 보일라치면 체신머리없이 입가가 슬그머니 올라가곤 했지.아.. 붕어싸만코 못지 않게
커피광이기도 해서 스뎅국사발에 커피와 설탕을 적절히 섞어 후루룩 달달한 탕약처럼 드시곤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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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시절 일본 나고야에 살때 얘기하시는데, 훈도시를 입은 남자들이 아무렇지 않게 이웃집에 들락거렸고 그게 완벽히 잘 가려지지 않아서 민망했다는 얘기도 하셨지, 그래도 평생 잊지 못할 사람들로 얘기하는게 마음씨 좋았던 일본 이웃들이셨어. 곧 한국에 전쟁이 난다는데 왜 굳이 한국에 들어가려고 하느냐고 매일저녁 돌아가면서 마을 사람들이 집에와서 말리셨다네. 이후 스무살 많은 김여사의 남편(탄광노동자셨어, 돈벌러 가셨지, 일본에서 김여사를 만나 프로포즈했고)이 하도 한국에 돌아가자고 애원해서 마지못해 귀국했는데 열다섯살에 도망치듯 돈벌러 일본에 가셔서 20년여만에 오신건데 와보니 웬걸 할아버지는 이미 본처가 있었고 사실상 사노비 신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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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튼..우리 김여사는 그렇게 또 한국전쟁을 맞았고, 큰아들을 장롱뒤에 숨기고 인민군에게 아들 없다고 몇번이나 둘러댔고, 제임스딘 처럼 잘생겼던 작은 아들은 한번 열이 오르더니 결국 소아마비로 한쪽 다리가 불편했어.... 시간이 흐르고 흘러 1970년대 초반엔 삐쩍 마르고 입이 짧은 손자인 나에게 밥을 먹이기 위해 쌀밥을 김여사가 정성스럽게 씹어서 나에게 먹이기도 하셨지. 내가 열살쯤인가 김여사가 이유없이 각혈을 해서 새벽이면 내 오줌을 그릇에 받아서 마셨어. 아이들 오줌으로 하는 일종의 요로요법이었는데, 지금도 달빛 교교한 마루에서 김여사가 손자의 오줌을 그릇에 받던 모습이 생각나.. --
붕어싸만코를 좋아하셨던 김여사.
손자 오줌을 마시던 김여사.
그리고 밥알을 씹어 손자 입에 넣어주던 김여사.
14년전, 콩깍지 찌끼를 골라내다가 졸립다며
낮잠 주무셨는데
그대로 돌아가셨지.
아흔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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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사 누워계신거 오랜만에 보니 장난치고 싶어지더라.
할매, 붕어싸만코 오면서 내가 묵어부렀어~메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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