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1-29

[진맥 세상] 남북 언론과 이혼 변호사 미주 중앙일보



[진맥 세상] 남북 언론과 이혼 변호사 미주 중앙일보



[진맥 세상] 남북 언론과 이혼 변호사
이원영/OC총국장

독일통일 1등 공신 언론 민족동질성 회복에 기여 남북도 보도 자유 간절해


[LA중앙일보] 10.29.12

부부가 위기를 겪을 때 이혼 변호사를 찾아가는 순간 회복의 길은 멀어진다. 변호사라는 직업은 고객 입장만 대변해야 하기 때문에 부부를 정상으로 회복시키기 보다는 갈라서도록 재촉하는 역할을 하기 십상이다. 변호사를 통해 이혼 수속을 하다보면 상대방에 대해 악착같이 공세적 입장을 취해 두 사람은 결국 철천지 원수지간으로 치닫기도 한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없으니 화해는 점점 멀어지는 것이다.

반대로 갈등을 빚고 있는 부부가 그들을 잘 알고 있는 어느 존경받는 목사를 찾아가 조언을 듣는다고 하자. 아마 목사는 서로의 장단점을 일깨워주면서 다시 화합하라고 달랠 것이다. 목사의 눈에는 각각의 장점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두 사람이 무척 안타까울 것이다.

이런 장면이 떠오른 것은 기자로서 북한을 취재하고 온 소회가 남다르기 때문이다.

현재 남북관계는 끊임없이 갈등을 빚는 부부관계처럼 비치고 남북한 언론들은 화해와 신뢰를 구축하기 보다는 자기 주장만 강요하고 상대를 비방하는 역할에 충실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이다. 이혼 변호사들처럼 말이다.


현재 남북한 언론이 상대방에 대해 장단점을 두 눈으로 정확하게 보고 국민들에게 전달하고 있는가 하는 의미에서 볼 때 언론인으로서 자괴감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의 통제 언론이야 두말할 나위도 없지만 자유국가 한국의 언론이라 해도 북한에 대해 제대로 취재해서 보도할 수 있는 환경이 되어 있지 않다. 그렇다 보니 서로 제한된 통로로 공급되는 '관급성 뉴스'로 상대방을 들여야 볼 수밖에 없는 현실이 반세기 넘게 이어지고 있다.

이렇듯 실상 바라보기 노력이 단절되어 있기 때문에 남북한 국민들은 외눈박이 정보에 익숙해져 있다. 당연히 우리는 북한 매체를 북한은 우리 매체를 신뢰하지 않는다. 상대편 변호사를 신뢰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독일 통일 과정에서 1등 공신은 언론이다. 학자들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훨씬 전부터 이미 독일에서는 저녁마다 전파적 통일이 이루어졌다'고 말한다. 동독 주민들이 서독의 TV전파를 광범위하게 접하면서 동서독 국민간의 정서적 통일은 급속하게 이뤄졌다. 서독은 1972년부터 동베를린에 특파원을 상주시키기 시작했고 79년엔 서독의 17개 언론사에서 19명의 특파원을 파견할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동독 주민들은 선전 일변도의 동독언론보다 서독언론으로부터 얻는 동독 뉴스를 더 신뢰했다.

지난해 한국언론재단이 펴낸 '통일과 언론: 독일의 경우' 연구서에 따르면 "서독 언론은 동독의 부정적인 모습은 물론 긍정적인 측면을 가감없이 보도함으로써 비록 다른 체제에 살고 있지만 동독 대다수 주민들은 같은 욕구와 희망 정서를 갖고 있음을 서독 주민들이 알게 되었다"고 쓰고 있다. 결국 신뢰를 얻은 자유언론이 통일을 여는 주춧돌 역할을 했다는 말이다. 보고서는 이어 "남북통일은 남북 사람들이 동질감을 느끼고 서로 이해와 신뢰가 전제되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남북한 실제 모습에 대한 객관적이고 정확한 정보가 미디어를 통해 제공되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2010년 천안함 사건 이후 북한을 취재한 첫 한국 언론인으로서 어깨가 무겁다. 남북이 독일처럼 언론을 통한 신뢰회복을 꿈꾼다는 것은 현재로선 암울하지만 그래도 노력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소명의식을 느낀다. 부부 갈등의 골을 더 깊게 하는 변호사보다는 다시 화목한 가정을 회복시키려는 목사의 심정으로 북녘땅 소식을 전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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