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1-17

“광화문광장을 통일광장으로 만들고 싶어요” - 유코리아뉴스

“광화문광장을 통일광장으로 만들고 싶어요” - 유코리아뉴스

“광화문광장을 통일광장으로 만들고 싶어요”<릴레이 통일코리아>(9) 이미선 '통일비 내리는 날' 운영위원장
3포·5포·7포 세대, 흙수저, 헬조선. 어느 때부턴가 이 땅의 청년들의 상징어로 자리잡은 단어들이다. 그 뿌리를 파고 또 파면 ‘분단’이라는 줄기에 가닿는다. 남북을 쪼갠 분단은 사회를 쪼개고, 역사를 쪼개고, 이들의 일자리, 희망마저 쪼개고 있는 것이다.
반대로 통일은 남북을 잇고 사회를 잇고 역사를 잇고 마침내 젊은이들의 일자리, 희망마저 만들어낸다. 사실상의 통일을 20~30년 후로 가정한다면 지금의 20~30대 청년들이 통일된 조국의 주역들이 되는 셈이다.
하지만 대다수 청년들은 통일에 무관심하거나 최근 북핵 문제 때문에 오히려 ‘평화로운 분단’을 선호하는 경향이 짙어졌다. 통일의 최대 수혜자이자 주역이 될 당사자들이 통일을 외면한다면 20~30년 후에 차려질 통일무대에선 정작 주역들은 조연이 되거나 무대 밖으로 밀려나는 비극적인 장면이 펼쳐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꼭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몇 년 전부터 청소년·청년들이 통일을 공부하고 움직이는 자발적인 모임들이 곳곳에서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다. ‘통일비 내리는 날’(통일비)도 그런 모임 하나다. 몇 년 전부터 통일에 관심있던 청년들이 올해 초 통일비라는 단체를 만들어 한 달에 한번 통일을 말하고 듣고, 배우고 토론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 통일을 공부만 하는 게 아니라 행동하기 위해 오는 토요일(21일)엔 광화문광장에서 캠페인도 벌인다.
캠페인을 기획하고 준비하고 있는 이미선(36) 통일비 운영위원장을 만나 이번 캠페인의 취지와 통일비, 그리고 통일에 대한 생각들을 들어봤다. 이 위원장은 경기도 안산의 누리이음아동발달센터 원장으로 일하고 있는 아동상담치료 전문가이기도 하다. 이 위원장과의 인터뷰는 13일 저녁 서울 노량진의 카페 홈스테드에서 있었다. 다음은 이 위원장과의 일문일답.
통일비 운영위원장 이미선 씨가 통일비 캠페인을 얘기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유코리아뉴스
-21일 ‘통일비 문화운동확산 캠페인’을 준비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보통 거리행진 할 때는 뭘 반대한다든지 구호를 외치거나 하는데 통일비는 어떤가?
보통 캠페인이나 행진이라는 건 어떤 주제를 알리는 거잖나. 그 주제를 알려서 다수의 공감대를 끌어내기 위한 것이다. 이번 통일비 캠페인은 ‘준비된 통일, 우리 힘으로!’가 주제다. 일단 통일에 대한 우리의 생각들을 가지고 광장에서 일반 시민들과 소통하고, 나아가 통일에 무관심한 사람들을 일깨우기 위한 것이다.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진행하는데 2시부터 4시까지는 그야말로 캠페인이다. 광화문 3번 출구 앞에서 주로 피켓을 가지고 홍보하려고 한다. 피켓 문구는 ‘준비된 통일 우리 힘으로’, 이산가족과 관련한 ‘사람이니까 우린 만나야 합니다’, '이럴수록 대화가 필요해' 등 5가지다. 이런 식으로 우리가 가진 메시지들을 전하려고 한다. 정치적인 내용은 아니지만 우리가 꼭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피켓으로 전하려는 것이다. 이벤트도 있다. 통일을 찬성하거나 반대, 또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무관심을 선택하게 해서 그 이유를 써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또한 피켓홍보와 이벤트 부스 앞쪽에서는 통일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배지와 스티커, 전단지도 배포할 예정이다. 4시부터 1시간 동안 광화문에서 종로3가까지 거리행진도 예정돼 있다.
-구호는 안 외치나?
캠페인을 시작할 때, 거리행진을 시작할 때, 마칠 때를 제외하고는 중간에 따로 구호를 외치는 시간은 갖지 않기로 했다. 우리가 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강하게 전달하려면 구호가 필요할 수도 있지만, 이번 캠페인과 거리행진에서는 시민 불편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했고, 대신 피켓과 배지, 스티커, 전단지를 통해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담았다.
-돈도 많이 들어갔겠는데, 어떻게 충당했나?
일단 통일비 회비로 충당했다. 그리고 부족한 부분은 회원들 중에 오래 전부터 통일준비를 하려면 재정적으로도 헌신하자고 해서 그 중 몇 사람이 수입의 20분의 1을 적립해 왔다. 일종의 통일기금인 셈이다. 통일을 준비하려면 공부만 아니라 실제 시간과 열정, 재정도 같이 사용하자 해서 기금을 계속 마련해 온 것이다. 
-이번 캠페인에 몇 명 정도 참석하나?
25명 정도 될 것 같다. 대부분 통일비 회원들이다.
-이런 거리행진은 어떻게 기획하게 되었나?
통일비 활동이 2가지가 있다. 말하고 듣고 배우는 활동과, 행동하고 변화시키는 게 그것이다. 한 달에 한번 우산모임과 자발적인 소모임이 있는데, 그걸 통해 배우고 지식을 습득한다면, 캠페인은 좀 더 움직이고 행동하고 참여하는 차원에서 계획한 것이다. 지난 8월 우산모임에 숙명여대 쪽에서 아리랑노점 컵밥집을 하는 김디모데 목사님이 ‘지금, 작은 통일 살아가기’란 주제로 강의를 해주셨고, 또 이상범 목사님이 독일에 다녀온 이야기를 가지고 조별 토론시간에 나눴다. 동독 니콜라이교회 월요기도회 등에 대해 토론했다. ‘우리나라에서 이것이 가능할까?’ 이런 주제로 생각을 나눴는데, 우리 조에서는 ‘가능하다’는 얘기가 나왔다. ‘한번 해보자’ 이렇게 된 거다. 작은 실천이라도 해보자, 침묵시위라도 해보자, 정말 통일하고 싶고, 금강산 가고 싶고, 이산가족 만나게 하고 싶고 이런 메시지들을 전해보자, 움직여보자, 이렇게 해서 캠페인을 계획하게 된 것이다. 광화문을 통일광장으로 만들어보고 싶다. 그런데 광화문광장은 이미 예약이 꽉 차 있어서 못빌리고 3번 출구 앞에서 하게 됐다.
-거리행진 준비하면서 있었던 에피소드가 있다면?
신기하게도 준비하는 청년들이 유행어처럼 했던 말이 있다. ‘다행이다’다. 안양, 녹천, 별내, 인천 등 다들 집이 멀다. 노량진을 모임장소로 한 것도 그런 이유다. 그러다보니 준비모임을 자주 가질 수가 없다. 다들 직장을 다니다보니 만나더라도 저녁 8시나 되어야 되는데, 때론 온라인 회의로 대체할 때도 있었다. 그러다보니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카톡 그룹콜을 써봤는데 아주 유용했다. 이번 주에는 거의 매일 그룹콜로 통화했다. 확인할 것, 어디까지 진행됐는지 등등 체크하기 위해서다. 다들 ‘그룹콜이 있어서 다행이다’는 말을 했다. 오늘 회의도 4명이 모이는데, 원래 운영위원은 7명이다. ‘그래도 4명이 있어서 다행이다’고 서로 얘기했다. 이번 거리행진 사전 답사를 위해 3명이 참석했는데 ‘그래도 3명이라도 있어서 다행이다’고 했다. 어떨 때는 모임 준비를 두 명이 할 때가 있다. 그때도 ‘혼자 하지 않아 다행이다’ 그런 얘기를 나눈다. 혼자 한다면 얼마나 힘들겠나. 둘이 있어서 다행이고 감사하는 마음이 있었다. 이 ‘다행이다’가 통일비 내에서 거의 유행어가 됐다.

“통일은 이미 예보된 비소식이라고 할 수 있다.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언제 어떻게 되어지느냐가 문제다. 그 부분을 우리가 미리 준비해야 한다는 의미로, 미리 우산을 준비해서 반갑고 기쁜 통일을 맞이하자는 의미로 ‘준비하는 통일’을 담았다.”
지난 13일 서울 노량진 카페 홈스테드에서 통일비 운영위원들이 캠페인 준비모임 중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유코리아뉴스
-행진을 준비하는 ‘통일비’라는 데가 어떤 단체인지 궁금하다.
풀네임은 ‘통일비 내리는 날’이다. 대한민국의 평범한 청년들이 통일비 내리는 날을 기다리고 준비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단체다. 여기서 말하는 청년은 나이와 상관없이 활력과 열정이 넘치는 사람을 말한다. 처음 통일에 대한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통일비라는 이름을 정할 때 그 안에 두 가지 의미를 담았다. 기다리는 통일비와 준비하는 통일비다. ‘기다리는 통일비’는 농부가 오랜 가뭄 속에 단비를 애타게 기다리듯 우리에겐 분단이 곧 가뭄이고 통일이 단비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가 농부의 마음으로 오랜 분단으로 갈라져 있고, 최근 전쟁에 대한 위기의식이 팽배한데 이런 메마른 한반도에 통일의 단비가 내려서 평화로운 한반도가 만들어지길 바라는 그런 의미다. ‘준비하는 통일비’는 갑자기 비가 내리게 되면 굉장히 당황스럽지 않나. 우산도 준비하지 못한 채 비를 맞게 되면 안되지 않나. 통일은 이미 예보된 비소식이라고 할 수 있다.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언제 어떻게 되어지느냐가 문제다. 그 부분을 우리가 미리 준비해야 한다는 의미로, 미리 우산을 준비해서 반갑고 기쁜 통일을 맞이하자는 의미로 ‘준비하는 통일’을 담았다. 한 달에 한 번씩 갖는 모임의 이름을 ‘우산모임’이라고 한 것도 그런 의미에서다. 우산모임 시작할 때마다 ‘청년, 우산을 펴자!' 이렇게 외치고 한다.
-어떤 청년들이 우산모임에 참여하나?
매번 30여 명 정도 참석하는데 그 중엔 통일에 관심있는 친구들도 있지만 통일에 무관심한 친구들도 있다. 이런 친구들은 주로 지인의 소개로 참여한다. 한두 번 왔다가 안오는 사람도 있지만 통일에 약간 관심이 있었다가 소그룹 활동도 참여하면서 점점 통일을 자기 일로 삼는 친구들도 있다. 통일비는 통일된 미래한반도의 시민으로 올바른 시민의식과 통일문화를 형성해 나가자는 그런 목적을 갖고 있다. 사실 ‘통일비 내리는 날’이 단체 이름 같지는 않지 않나. 가만 보니까 통일 관련된 단체들이 너무 많았다. 통일을 위해 하나되기는 참 어렵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는 단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통일이 중요하기에 연대나 연합의 플랫폼으로서 기능하고 싶다. 국내는 물론 세계 각국의 동포들과도 공감대를 확산하는 그런 단체로 커갔으면 좋겠다. 아직은 미약하지만.
-통일비는 언제 만들어졌나?
작년 말에 회의를 하기 시작해서 올 1월에 만들어졌다. 우산모임도 올해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언제 쯤 통일비가 내릴 것 같나?
글쎄, 5년 이내? 늦어도 10년 이내는 내리지 않을까.(웃음)
-이번 거리행진을 통해 기대하는 바가 있다면?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을 것 같다. 말로만 하는 통일이 아니라 실제로 통일을 준비하기 위해 움직이는 첫 시작이다. 캠페인에 참여하는 25명이 실제 통일을 살아가면서 각자 다양한 일을 하고 있는데, 이번 거리 캠페인을 통해 통일비를 준비하는 다양한 색과 다양한 모양들의 우산들이 준비되는 시작이 될 거라는 기대가 있다. 21일 일정을 보니까 맞은편 광화문광장에서 박근혜 관련 집회가 있어서 굉장히 시끄러울 것 같다. 어떤 면에서는 광장에서 캠페인을 안 여는 게 잘 된 것 같다. 통일이 단지 특정 전문가들이나 정치하는 분들, 정부에만 맡겨질 일이 아니라 우리 힘으로 우리가 준비하고 우리가 해야 한다는 걸 알리고, 통일이 현재 한반도에 닥친 위기의 해결점이라는 것을 알릴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라 기대한다.
-언제부터 통일에 관심을 갖게 되었나?
2003년 가을, 그때가 대학교 4학년 때였는데 금강산 육로관광이 막 시작됐을 때다. 그때 학교에서 관광비용 일부를 지원해주고 개인도 내고 해서 갈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당시만 해도 통일의 ‘통’자에도 관심이 없었는데 그냥 금강산엘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다들 졸업반 2학기여서 취업하느라 바쁜데 너무 가고 싶어서 결국 갔다. 본격적으로 통일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010년 지나면서 이상범 목사님과 교제하면서다. 그때부터 통일을 위해 기도하게 됐고, 하나님께서 통일을 위해, 통일을 통해 행하실 걸 기대하게 됐다.

“주변 강대국들은 서로의 이익을 위해 싸우는데 우린 내부에서 우리끼리 싸우고 있다. 그런 상황이 답답했다. 저는 원래 저항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안정을 추구하는 스타일인데 그런 상황들이 참 불편하게 와닿았다.”
-대학 때 전공은 뭐였나?
아동심리였다. 정치나 사회문제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단지 인간에 대한 관심이 있는 사람이었다. 굉장히 개인적인 일에 관심을 가진 사람인데 아동치료를 하면 할수록 개인은 결국 사회 속에서, 사회는 또 국가 속에 있기 때문에 이러한 구조들을 벗어나서는 절대로 생각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됐다. 그러다가 역사공부도 하고 철학이나 인문사회 공부도 하면서 통일이라는 게 단지 통일이나 북한만 알아서 되는 게 아니고 사회정의가 바로 서야지 진정한 통일이 된다는 걸 깨닫게 됐다. 그래야지 통일이 됐을 때 더 정의롭고 바른 사회가 되는 거지, 그게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통일이 된다면 더 혼란일 것 같다. 지금 ‘역사를 걷다’란 이름의 통일비 소모임에 참여하고 있는데 역사적인 장소에 실제로 가보고 공부도 하는 모임이다. 그렇게 공부하면서 보니까 역사가 너무 반복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와 같은 상황을 현재도 똑같이 맞이하고 있다는 생각 말이다. 가장 최근 갔던 곳이 전쟁기념관이다. ‘병자호란 그 기억과 반성’이란 주제로 특별전시를 하는 게 있었다. 병자호란, 정묘호란 그 시대를 좀 공부하고 전시해놓은 걸 봤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정말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의 광해군과 인조의 중립외교와 친명배금(親明排金) 정책이란 것이 지금 우리나라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 그때도 주변 강대국들이 있었고 지금도 그렇고, 그런 역사 공부를 하면서 우리 역사와 현실에 대한 비판의식, 저항의식 같은 게 저절로 생겼다. 우리 힘으로, 우리가 할 몫이 좀 더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일제 식민지나 분단도 제국주의, 그리고 이데올로기 싸움에 휘말려서 된 것이기 때문에 사실 대한민국 국민의 의지와 상관없이 되었다. 그런데 주변 강대국들은 서로의 이익을 위해 싸우는데 우린 내부에서 우리끼리 싸우고 있다. 그런 상황이 답답했다. 저는 원래 저항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안정을 추구하는 스타일인데 그런 상황들이 참 불편하게 와닿았다. 그때를 살아간 사람들을 생각해 봤다. 그 시대 상황 가운데, 국가적 위기 속에서 살아간 사람들을 보게 됐다. 어떻게든 자기 기득권을 유지하면서 일본과 결탁해서 우리 민족의 고난을 더 가중시키는 사람들도 있었던 반면에 독립운동가 이회영 선생 같은 분은 스스로 기득권임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을 포기하고 독립운동에 투신하셨다. 이거야 말로 진정한 용기 아닌가. 그 시대 그 분들이 계셨던 것처럼 이 시대에도 통일을 제2의 독립운동이라고 여기면서 헌신적으로 사시는 분들이 있다. 저희도 공부하고 실천하면서 작게나마 그 일을 하고싶은 마음을 갖게 된 것이다. 아직은 보잘것없지만.
통일비 소모임인 '역사를 걷다'의 강원도 고성 탐방. 금강산이 희미하게 배경에 흐르고 있다. ⓒ이미선
-몇 년째 남북관계가 경색되고 최근엔 선제타격, 핵전쟁 얘기까지 나온다. 이런 소식들을 접하면서 어떤 생각이 드나?
전쟁 위기를 말하기도 하지만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없다는 사람들도 있지 않나. 사실은 외국에서 보는 것보다 한국이 더 안정적인 것 같다. 심지어 외국에 사는 친구들이 ‘괜찮냐?’고 걱정해 올 정도다. 미국에서도 군사옵션 하겠다고 하고 국내에서도 전술핵 재배치해야 한다고 하고, 여러 가지 강경한 입장들이 나오고 있지만 전쟁이 일어날까 아닐까는 별로 걱정하지 않는다. 필요하다면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고 그게 아니라면 안 일어날 것이다. 난 잘 모르겠다. 어쨌건 중요한 건 이런 일이 자꾸 일어나고 터지고 하는 게 저는 오히려 통일비 소식으로 들린다. 지금이 위기 상황이지만 달리 보면 기회 상황인 거고, 결국 이 한반도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건 통일밖에 없지 않나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통일에 무관심한 사람들에게 자유와 평화가, 전쟁이 없는 평화적인 통일한반도가 얼마나 필요하고 중요한가 하는 걸 제시할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한다. 오히려 너무 평화롭고 안정적인 상황이면 통일에 대한 이야기를 해도 사람들 귀에 들리지 않을 것 같다. 이 사회엔 너무나 많은 문제들이 있기 때문이다. 하루하루 먹고 살아가기도 심각한 사람들에게 전쟁이나 북한 이슈가 자꾸 뜨면 통일이란 담론을 얘기하기가 그만큼 쉽다고 생각한다.
-북한이 자꾸 핵·미사일을 개발하다 보니까 우리 사회에 북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많아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북한을 품어야 하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지난달 탈북청년 조경일 형제가 우산모임에 와서 말씀해 주셨는데 ‘북한 하면 떠오르는 단어’에 대해 얘기해보자고 해서 나눴더니 가난, 독재, 3대 세습, 핵, 미사일, 전쟁, 나쁜 놈, 악당 등 하나같이 부정적인 얘기들만 나왔다. 어떻게 보면 충격적이기도 하고 틀렸다고 할 수는 없지만 북한에 대해 부정적으로 인식하게끔 언론에서 너무 한쪽으로 조장한 측면이 있지 않나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들을 자꾸 극단적으로, 적으로 보게끔 언론이 창(窓)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안타까움이 있다. 앞으로 통일은 되어질 건데, 선택이 아니라 필연이 될 텐데, 북한 사람들을 만나는 시기와 방식은 정확히 모르지만 분명히 만나게 될 사람들 아닌가. 그런 사람들을 자꾸 적으로 두고 있다면 굉장히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품어야 한다’는 단어는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좀 더 많이 가진 사람이 적게 가진 사람을 품는다는 의미로 사용하지 않나. 과거에도 서독이 동독을 품었는데, 사실은 ‘내가 품는다’는 식이 되면 통일의 방식도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우린 맞고 그 쪽은 틀리고 이렇게 된다는 것이다. 한 쪽이 다른 쪽을 품기보다는 오랜 분단으로 남과 북이 달라진 게 틀림이 아닌 다름으로 인식하는 작업을 계속 해가야 할 것 같다. 그렇다고 북한 체제를 옹호하는 건 아니지만 사실은 그렇다고 자본주의, 자유주의 체제만 옳다고 하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통일한반도의 새로운 법과 질서들이 더 좋은 방법으로 세워져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과 북이 서로에게 더불어 살아가는 대상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통일과 관련해 개인적인 꿈이나 계획이 있다면?
통일비에 몸담고 있고 통일비 일을 하지만 그렇다고 이 단체가 확장이 되어야 한다고 보진 않는다. 난 사람 중심이 아닌 일 중심으로 보려고 노력한다. 사람 중심으로 보게 되면 내가 주체가 되어야 하고 우리 단체가 그 일들을 해내야 하고, 그러면 나와 내 단체가 중요한 자리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을 하게 되는데, 그건 아니기 때문이다. 통일을 준비하면서 필요할 때 같이 모이기도 하고, 또 저쪽에서 필요로 할 때 같이 모이고, 이러한 일들을 유기적으로 해나가면서 다양한 모양과 색깔의 우산을 준비해야 하는 것 같다. 어쨌건 저는 통일비 운영위원으로서도 일하고 아이들 심리치료 일도 하고 있기 때문에 양쪽의 일을 잘 균형 맞추면서 해나아가야 할 것 같다. 실제 우리 센터에서는 아직 북향민 아이들을 한번도 못만났다. 지역이 안산이어서 그런지 외국인 자녀들은 오는데 북향민들은 한번도 못만났다. 기회가 되면 그런 만남을 더 가지면 좋겠다. 그런 기회가 된다면 저도 배우고 또 제 전공을 통해 좀 더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북향민들과 친구가 되고 싶어도 만남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없다. 그게 아쉽다. 통일비는 남한 사람만 아니라 북향민, 북한 사람도 같이 만들어가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하시는 일을 소개해 주신다면?
아동 심리치료 원장이다. 타이틀은 원장인데 3명의 선생이 동업으로 같이 하고 있다. 저는 놀이치료 파트 담당이다. 대학 졸업 후 13년째 하고 있다. 해를 거듭할수록 어렵다. 아이의 인생의 일부를 같이 하는 건데, 제가 다 변화시킬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 일부를 어떻게 책임지며 함께해야 하나 하는 고민과 부담감이 있다. 반면 아이들의 변화를 볼 때 너무 뿌듯하고 재미도 있다.
통일비가 한 달에 한번씩 개최하는 '우산모임' 모습. ⓒ이미선

“장애는 불행이 아니라 불편이지만 통일은 불편이 아니라 불행이다”
-어떤 분은 남북을 허리 잘린 장애로 묘사하기도 하는데, 심리치료 전공하시면서 남북분단이나 통일을 보는 시각이 남다를 것 같은데?
처음 대학에 갔을 때 과 사무실에 ‘장애는 불행이 아니라 불편이다’는 문구가 있었다. 그게 저희한테는 기본철학과 같은 것이다. 이 사회를 불행이 아니라 불편으로 장애인들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지원하고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 게 이쪽 관련된 전문가들일 것이다. 그런데 통일은 그 반대인 것 같다. 통일은 불편이 아니라 불행이라는 것이다. 그냥 불편이라면 조금 불편한 걸 감수하고 살아갈 수 있다. 그런데 통일은 그냥 불편을 감수하고 살아갈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분단으로 인해서 이 한반도에 위기상황이 계속 가중되고 있고, 결국 우리나라 지정학 위치가 바뀌지 않는 한 위기는 계속 반복될 텐데 정작 당사자인 우린 내부적으로 서로 싸우고 있는 상황이다. 같이 힘을 합쳐서 한뜻으로 세계로 나아가야 하는데 분단으로 인해 이념논쟁, 세대갈등 하면서 허비하고 있다. 그래서 분단은 불평이 아니라 불행이라고 여긴다. 빨리 이 부분은 해결되어야 한다고 본다. 저희 세대에 해결해야 한다.
-아까 통일비가 5년, 늦어도 10년 내엔 내릴 것 같다고 했는데, 5년 후나 10년 후 개인적인 통일준비는 어떻게 하고 있나?
얼마 전 북한 내지선교 하시는 선교사님을 도와드린 적 있다. 북한엔 특수교육에 대한 시스템이 없다. 특수교사를 교육할 커리도 없다. 통일비가 내릴 때 하나님이 그 쪽으로 인도하신다면 그 쪽으로 일이 확장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지금 하고 있는 센터도 내가 하고싶어 한 게 아니기에. 원래 성향이 돕고 서포트하는 건데 자꾸 앞에 나서는 일이 많아지는 것 같다. 통일에 발 담그고 나서부터 나라는 사람도 바뀌어가는 것 같다.
-통일에 대한 식견에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다. 통일비, 그리고 거리행진을 통해 이 땅 청년들이 통일의 주인의식을 갖는 데 기여할 것이라 기대한다.

***<릴레이 통일코리아>는 통일 분야의 집단 지성을 통해 건강한 통일담론을 만들기 위한 것이다. 보수-진보, 유명-무명, 국내-국외 등 통일에 대한 다양한 목소리들을 가감없이 소개하고 토론하고 공감하자는 취지다. 일종의 통일을 향한 마라톤인 셈이다. 향후 인터뷰이들과 독자들의 만남, 북한 사람과의 인터뷰 등 다양한 장을 마련해가려고 한다.  
김성원 기자  ukorea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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