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2-28

1601 “을미참사 수준이네” : 표지이야기일반 : 표지이야기 : 뉴스 : 한겨레21



[제1094호]“을미참사 수준이네” : 표지이야기일반 : 표지이야기 : 뉴스 : 한겨레21



“을미참사 수준이네”
12·28 합의 막전막후 현장에서 본 합의문의 본질…한·미·일 유사 동맹 체제 완성하려는 오랜 시도, 남북·한중 관계 난기류 휩싸일 것
제1094호
등록 : 2016-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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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때 더글러스 맥아더 유엔군 사령관이 취할 수 있었던 조처에 대해 여러 가설이 있다.”

어느 외교부 고위 관계자는 그렇게 말을 꺼냈다. 2015년 12월28일 한-일 외교장관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관련 합의(12·28 합의)의 의미를 한국전쟁 당시 맥아더의 선택에 비유한 것이다.

“그 가설 가운데 하나는… 만약 맥아더가 압록강·두만강까지 간다는 목표를 추진하지 않고 신의주~원산선 또는 평양~원산선에서 북진을 멈췄다면 한반도 정세와 궁극적 남북통일에 더 이로운 결과를 초래할 수 있지 않았겠느냐는 것이다.”

메시지는 분명하다. ‘100%를 얻으려 하기보다 불만족스럽더라도 70% 선에서 멈추는 게 결과적으로 더 낫다.’

나치 때나 쓰였던 ‘최종 해결’이라는 선언




2015년 12월28일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회담을 마친 뒤 윤병세 외교부 장관(오른쪽)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상이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겨레 김봉규 선임기자


박근혜 정부는 12·28 합의 발표에 앞서 대언론 선전전에 나섰다. 12월28일 정오께 외교부 고위 관계자들이 세 군데로 나뉘어 정치부장단 등 언론사 간부들을 만나 발표 시점까지 엠바고(보도 유예)를 전제로 합의의 뼈대를 몇 시간 앞서 설명했다. 외교부 고위 관계자의 한국전쟁 비유는 이때 나온 말이다.

그때 사전 설명한 12·28 합의의 요지는 이랬다. △일본 정부의 책임 통감 표명 △아베 신조 일본국 내각총리대신의 마음으로부터의 사죄와 반성 표명 △일본 정부 예산 10억엔을 한국 정부가 설립할 위안부 피해자 지원 및 상처 치유를 위한 재단에 출연하고 한-일 정부가 협력해 관련 사업을 시행하는 등이 그것이다. 외교부 고위 관계자는 이를 두고 “지금 상황에서 최선의 안이라고 판단한다”고 평가했다.


다시 한국전쟁 비유로 돌아가면, 압록강·두만강까지는 가지 못했지만 신의주~원산선 또는 평양~원산선까지는 따냈다는 자평이다. 자리를 함께한 언론사 간부들도 ‘나름 성과를 거둔 거 아닌가?’라는 반응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외교부 당국자는 “일본 정부의 책임 인정, 사죄, 그에 따른 후속 조처라는 위안부 피해자 문제의 3대 요소에서 큰 진전을 이뤘다”고 자찬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12월28일 오후 3시30분께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별관(외교부 청사) 3층 국제회의장에서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상의 공동 기자회견 장면을 지켜본 외교부 담당 기자들은 충격에 사로잡혔다. 한 보수 일간지 기자는 “이건 거의 을미참사 수준이네…”라고 읊조리기도 했다. 120년 전 일본 자객들이 조선의 정궁인 경복궁에 침입해 명성황후를 시해하고 그 주검을 불태운 ‘을미사변’을 떠올리게 한다는 지적이다.

한국 기자들을 충격에 빠뜨린 핵심은 한-일 외교장관의 “최종적·불가역적 해결” 선언이었다.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대해 상호 비난·비판을 자제한다”는 합의였다. 주한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소녀상)을 철거·이전하라는 일본 쪽의 줄기찬 요구와 관련해 한국 외교장관이 “관련 단체와의 협의 등을 통해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한다”는 외교적 수사로 사실상 철거·이전 협조를 약속한 대목 등도 마찬가지다.

이들 모두 역사 문제를 다루는 외교 합의 문서에선 좀체로 볼 수 없는 내용이다. 기자들 사이에서 “이건 완전히 무장해제하겠다는 거잖아. 도대체 어떻게 이런 합의와 약속을 할 수 있는 거냐”는 한탄과 비판이 쏟아진 이유이기도 하다.

양국 사이 신뢰 0%의 공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직접 사죄하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2015년 11월2일 청와대에서 아베 총리와 첫 정상회담을 하기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역사 문제에 ‘최종적·불가역적 해결’이란 있을 수 없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홀로코스트를 두고 피해자인 유대인들과 가해국인 독일이 지난 70년간 단 한 번이라도 ‘최종적·불가역적 해결’이란 문구를 입에 올린 적이 있는지 떠올려보면 될 일이다.

역사에서 사람의 문제를 두고 ‘최종 해결’이라는 문구를 쓴 자들이 없지는 않다. 나치가 홀로코스트를 유대인 문제에 대한 “최종 해결”(final solution)이라고 한 적이 있다.

이런 근본적 문제를 논외로 하더라도 “최종적·불가역적 해결”이라는 표현은, 12·28 합의를 계기로 미래지향적인 새로운 관계를 열어가겠다는 양국 정부의 다짐과 달리, 미래 관계에 대한 양국 사이의 신뢰가 ‘0%’임을 국제사회에 공표한 것에 다름 아니다.

박근혜 정부도 이런 문제점을 완전히 몰랐던 거 같지는 않다. 12월28일 외교부 고위 관계자들이 정치부장단 등에 사전 설명할 때 한국이 얻었다고 여기는 것만 강조하고, 일본 쪽에 내준 것은 얼버무리거나 아예 말하지 않는 ‘꼼수’를 쓴 데서도 이를 느낄 수 있다.

한국 기자들을 충격에 빠뜨린 핵심은 한-일 외교장관의 “최종적·불가역적 해결” 선언이었다.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대해 상호 비난·비판을 자제한다”는 합의였다.

다시 한국전쟁의 비유로 돌아가면, 12·28 합의는 외교부 고위 관계자의 자평처럼 ‘신의주~원산선’이거나 ‘평양~원산선’까지 간 것일까? 내가 보기엔 박근혜 정부가 알아서 낙동강 전선까지 후퇴한 것이나 다름없다.

‘맥아더’ 비유보다는 같은 자리에서 외교부 고위 관계자가 거론한 또 다른 비유가 12·28 합의의 본질을 더 정확하게 드러낸다. “사고를 치지 않으면 역사는 이뤄지지 않는다. 이번 합의는 ‘콜럼버스의 달걀’에 비유할 수 있다.”

콜럼버스가 자신을 비판하는 이들한테 날달걀을 세워보라고 주문한 뒤 이들이 달걀을 세우지 못하자 달걀 끝을 탁자에 쳐서 깨뜨려 세운 일화를 일컫는다. 아무도 풀지 못하던 고르비우스의 매듭을 단칼에 끊어버린 ‘알렉산더의 칼’과 함께 흔히 파천황적 발상의 전환을 뜻하는 비유로 통한다.

외교부 고위 관계자는 틀림없이 이런 뜻으로 12·28 합의를 콜럼버스의 달걀에 비유했을 것이다. 역대 어느 한국 정부도 이루지 못한 ‘위안부 피해자 문제의 해법’을 박근혜 정부가 찾아냈다는 자찬이다.

그런데 생명의 씨앗을 품은 달걀의 속은 내다버린 채 껍데기뿐인 달걀을 탁자에 세운 게 파천황적 발상의 전환인가?

12·28 합의 직후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기시다 외상이 대독한 “마음으로부터의 사죄와 반성”을 자기 입으로 한 적이 없다. 일본 언론 보도를 보면, “다음 세대의 아이들에게 사죄를 계속하는 숙명을 지게 해서는 안 된다”거나 “더는 사죄하지 않는다. 이후 (한국과 관계에서) 이(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절 말하지 않는다. 이렇게까지 한 이상 약속을 어기면 한국은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끝난다” 따위의 오만과 협박을 일삼을 뿐이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뀐 형국이다.

이토록 이해할 수 없는 합의를 박근혜 정부는 왜 했을까? “어려운 협상 고비마다 대승적 차원에서 용단”(12월28일 외교부 당국자)을 내렸다는 박 대통령은 “마흔여섯 분만 생존해 계시는 시간적 시급성”과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합의했다고 밝힌 바 있다(12월28일 대국민 메시지).

노골적으로 드러낸 미국 개입 정황

그러나 나라 안팎의 지적은 다른 지점을 가리킨다. 바로 ‘한·미·일 유사 3각 동맹’의 강화다. 12·28 합의 발표 직후 미국 정부의 환호와 중국 정부의 떨떠름한 침묵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수전 라이스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12·28 합의 직후 발표한 환영 성명에서 “미국은 한·일이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합의에 도달한 것을 축하한다. 우리는 (한-미-일) 3각 안보협력의 진전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12·28 합의 과정에 미국 정부가 깊이 개입했음을 밝힌 미 국무부 고위 관계자의 발언은 더 노골적이다. “미국 정부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정치적 권유와 충고를 해줬으며 협상 타결이 미국은 물론이고 양국에 어떤 도움이 될 수 있는지도 설명했다. 미국은 협상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오해를 미리 막거나 문제가 있으면 해결하려고 은밀하게 노력했다.”

이런 외교적 수사를 일상어로 풀면, ‘한국 정부는 앞으로 일본과 싸우지 말고 3각 안보협력 강화에 매진하라’는 얘기가 된다. 합의 당사자인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상도 “(12·28 합의로) 일-한 그리고 일-미-한의 안보협력도 전진할 소지가 생겼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1997년 미-일 안보협력지침(가이드라인) 개정 직전에 일본 쪽의 아시아여성기금 제안(1995년)이 있었고, 2015년 4월 미-일 가이드라인 개정 직후에 이번 12·28 합의가 이뤄진 게 우연만은 아닐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 때문에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의 ‘아시아 재균형 전략’(아시아 회귀 전략)과 중국의 ‘신형대국관계’론이 맞서고,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구상과 미국의 ‘인도-퍼시픽’ 구상이 맞서는 와중에 ‘균형외교’를 외치며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던 박근혜 정부가 미국 쪽으로 확실하게 돌아서려는 듯하다는 국내외 한반도 문제 전문가들의 분석이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박근혜 정부는 12·28 합의의 군사외교적 함의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나라의 운명과 5천만 시민의 생존·안녕에 중대 영향을 끼칠 대외 전략의 급선회에 대해 아무런 공개 설명도 하지 않는 정부라니….

그러나 오랜 격언을 상기하지 않더라도, 세상일이란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역사적 배경이 복잡한 싸움인 만큼, 긴 호흡으로 상황을 살필 필요가 있다.

한국을 미-일 동맹에 끼워넣어 3각 동맹을 완성하려는 미-일의 오랜 시도는 새삼스런 일은 아니다. 미국이 배후에 있던 1965년 한-일 협정과 한-일 외교관계 정상화(65년 체제)는 안보와 경제를 명분으로 역사와 인권을 땅에 묻었다. 그땐 한국이 가난했고, 시민사회가 막지 못했다. 일본한테 받은 돈으로 경부고속도로와 포항제철을 세웠다.

실존 사회주의권의 소멸로 한국이 중국·소련과 외교관계를 정상화해 동북아의 냉전적 적대가 다소 완화된 1990년대 중반 이완된 ‘65년 체제’를 다시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고노 담화(1993년)와 무라야마 담화(1994년), 아시아여성기금(1995년) 등을 통해 한-일의 역사인식 갈등을 ‘봉합’하고 한-미-일 3각 유사 동맹을 재가동하려는 ‘95년 체제’ 구축 시도다. 그땐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중심이 된 격한 저항 덕분에 ‘역사 봉합’ 시도가 실패로 끝났다.

12·28 합의는 ‘역사 봉합’을 디딤돌 삼아 한-미-일 유사 동맹 체제의 복원을 넘어 명실상부한 한-미-일 3각 동맹 체제로 전환하려는 시도일 수 있다. 한-미-일 3각 동맹이 성립하면, 남북관계와 한-중 관계가 난기류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그만큼 남과 북의 평화 공존과 상생, 통일된 한반도의 꿈이 멀어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소녀상, 다시 시작하는 운동의 상징

이번에도 할머니들과 정대협이 저항과 대안 모색의 전면에 나섰다. 1990년대 중반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평화의 소녀상’이 할머니들의 수호천사이자 저항과 대안 모색의 상징적 구심으로 떠올랐다는 사실이다. 세계 각지에 소녀상 세우기, 100억 시민모금으로 위안부 문제의 올바른 해결을 모색하는 시민재단 설립 운동 등이 그 출발점이다.


12·28 합의에 맞서는 저항과 대안 모색의 의미는 넓고 깊다. 전시 여성 인권을 유린한 반인도 국가범죄의 진상 규명과 단죄, 냉전적 적대를 걷어내고 화해롭고 상생하는 평화로운 동북아, 개인의 인권이 국가의 이름으로 내팽개쳐지지 않고 왜곡된 역사인식 학습을 강요받지 않는 균형 잡힌 동북아 시민사회…. 멀고 험하지만 아름다운 꿈을 현실로 바꿀 길의 안내자가 바로 ‘평화의 소녀상’이다. “(12월28일 한-일 외교장관) 회담 직전까지 조정이 계속된 ‘최후의 항목’”(12월31일 <니혼게이자이신문>)이었을 정도로 아베 신조 일본 정부가 소녀상 철거·이전에 집착한 이유이기도 하다. ‘평화의 소녀상’은 시민들의 보호를 받으며 아직 그대로 있다.



이제훈 <한겨레> 정치부 기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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