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Hometown in Heart (Ma-eum-ui go-hyang)
76분
1949-02-09 개봉
감독윤용규
각본곽일병
제작사동서영화사
출연변기종, 유민, 오헌용, 최은희, 김선영, 남승민, 석금성, 최운봉 전체보기
장르드라마 | 문예
해방 후 영화인들은 재빠르게 변신했다. 중일전쟁 발발 이후 <군용열차>(1938)를 시작으로 조선 영화계는 친일 국책영화의 시대로 선회하였고, <아리랑>(1926) 이후 짧은 기간 애써왔던 민족문화로서의 ‘조선영화’ 활동은 수명을 다한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어느 날 해방이 되었다. 해방 후부터 전쟁 전까지를 일컫는 해방기에 영화인들은 해방을 기뻐하는 항일영화, 나라의 재건을 독려하는 계몽영화, 독립지사들을 기리는 전기영화를 재빨리 만들었다. 그리고 1948년 남한 단독정부 수립 이후에는 사상적 갈등을 그리는 반공영화가 추가되었다. 이러한 와중에, ‘조선(한국)영화는 어떠해야 하며,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두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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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도성(유민)은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 버려져 먼 친척인 주지 스님(변기종) 손에 자라난 어린 스님이다. 그는 항상 한 번도 뵙지 못한 어머니를 그리워한다. 어느 날 도성은 자기 또래의 자식을 잃고 공양을 드리기 위해 찾아온 미망인(최은희)을 보고 어머니와 같은 정을 느낀다. 미망인 역시 도성을 자식처럼 귀여워하며 수양아들로 삼을 생각을 하고 주지 스님에게 청을 드리나, 도성의 업이 많아 세상에 내보낼 수 없다는 거절의 답을 듣는다. 어느 날 어린 도성을 버리고 다른 남자와 도망갔던 도성의 어머니(김선영)가 찾아와 주지 스님에게 도성을 내어달라고 한다. 그러나 주지 스님은 이 청을 거절하고, 도성이 미망인의 수양아들로 들어가는 것을 허락한다. 어머니는 자신을 밝히지 않은 채 도성을 만난 후 슬퍼하며 떠난다.
그러나 도성이 미망인과 함께 서울로 떠나려는 즈음, 어머니에게 드릴 비둘기 깃털 부채를 만들고자 비둘기를 잡았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주지 스님은 크게 분노하여 도성을 세상으로 내보내지 않기로 한다. 얼마 후 도성은 어머니가 절에 찾아왔고 자신이 그녀를 몰라봤다는 것을 알고 어머니를 찾아 절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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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55건
영상 1건
출연
스태프
기획 이강수
촬영 한형모
조명 고해진
편집 양주남
음악 박혜일
녹음 양주남
효과 이상민
자세히 보기
상세정보
개봉극장 수도
관람인원(명) 100,000명
노트 ■ 문화재청 제345호 문화재 등재 필름 (2007.9.17)
■ 극작가 함세덕의 희곡 <동승>을 각색한 작품으로 '해방 후 조선영화 최고봉의 신기록을 지은 수작'이라는 당시평을 받았다. 신파성을 배제하면서 모정에 대한 소년의 그리움을 담담하게 표현한 작품.
■ 제1회 서울시 문화상 영화부문상
■ 1950년에 프랑스와 문화교루 차원에서 각국의 최초 필름교환
■ 신파성을 배제하고 산사의 고요한 생활을 담담하게 포착해내 촬영과 연출력을 인정받은 작품으로 해방 후의 촬영기술과 연출력을 확인할 수 있는 영화”
■ 극작가 함세덕의 희곡 『동승』을 각색한 작품으로, 당시 “해방 후 조선영화 최고봉의 신기록을 지은 수작”이라는 평을 받았다. 신파성을 배제하면서 모정에 대한 소년의 그리움을 담담하게 표현했다. 산사라는 조용한 공간을 배경으로 주지 스님, 젊은 스님, 동승 삼 세대의 일상이 펼쳐진다. 롱쇼트로 거리를 취하면서 산사의 아름다운 풍광을 잡는 한형모 감독의 촬영기술이 당시에 큰 호평을 받았으며, 각각의 캐릭터도 능숙한 연출력 하에 설득력 있게 표현되었다. 특히 동승의 모정에 대한 간절한 감정과 친어머니가 다녀간 과거의 사건을 섞어 꿈이라는 영상으로 표현한 장면은 신파로 흘러가지 않으면서 이야기와 감정을 압축적인 영상문법으로 표현하는 방식을 깊게 고민했음을 보여준다. 꿈에서 깬 도성이 어머니를 찾아 길을 내려가는 마지막 장면은 애절하면서도 꿈처럼 아름답다.
도성을 따뜻하게 감싸 안는 젊은 미망인으로 나온 최은희의 데뷔초기 모습을 볼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 제작후일담
- 이 영화는 한불 영화교류에 따라 프랑스에 필름이 출고되었고, 국내에는 필름이 남아있지 않은 상황이었다. 1993년 4월 영화의 제작자인 이강수씨가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있던 16mm 필름을 기증받아 영화를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2005년 일본국립필름센터(NFC)에서 35mm 오리지널 네거티브 필름이 발견되어, NFC의 협조로 35mm 마스터 프린트를 제작하여 입고하였다.
- 극작가 함세덕씨의 희곡 「동승(童僧)」을 이강수가 곽일병이란 가명으로 각색한 것을 다시 연출자가 윤색을 가하여 영화화하였다.
- 1950년에 프랑스와 문화교류 차원에서 <마음의 고향>을 최초로 필름교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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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과 불자, 혹은 어머니와 아들 윤용규 감독의 <마음의 고향>
그리운 맘 님에게로 어서 달려가 보세
http://ch.yes24.com/Article/View/26699
한국영화가 이 작품을 필두로 몇 번씩 원점으로 돌아가지 않고 꾸준히 기세를 이어왔다면, 우리가 흔히 <살인의 추억>, <올드보이>, <지구를 지켜라!>, <장화, 홍련>이 한 해에 나왔던 ‘2003년의 르네상스’ 류의 순간들을.. 혹은 박광수, 이명세, 장선우 등의 코리안 뉴 웨이브의 태동을 좀 더 일찍 볼 수 있지 않았을까?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말이다.
글 | 홍준호
분명 독약 같은 말인데, 가끔 묘하게 수긍하게 되는 말들이 있다. 내겐 그 중 하나가 바로 '우리나라 문화재지만, 차라리 외국에서 관리하는 게 나아 보인다' 다. 자신이 살고 있는 국가가 얼마나 모자라는지를 드러내는 말인데, 끝내 묵묵히 수긍하게 되는 나를 보게 된다. 문화재의 예시로 영화를 얘기해 보자면, 90년대 작품들의 원본 네거티브도 유실되는 판이었으니 말이다. 당연히 50년대 이전의 작품들은 2000년대 이전에는 아예 영상의 형태로 본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할 지경이었다. 문화재는 곧 ‘보존’인데, 우리에겐 그 개념이 없었다. 지금에 와서야 생긴 셈이다.
이런 점에서 윤용규 감독의 1949년작인 <마음의 고향>은 한국영화치고 상당히 운이 좋았다. 개봉한지 1년만인 1950년 4월에 프랑스의 영화사인 프란시 날프 사의 제안으로 '필름 교환'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전 해에 개봉했던 <마음의 고향>은 6월 1일부터 5일까지 스카라 극장의 전신이라 일컬어지는 서울 수도 극장에서 깜짝 재개봉을 하고, 프랑스로 날아간다. 한국에서는 프란시 날프 사가 준 <꿈 속의 노래> 라는 작품이 남았다. 필름 복사? 그런 거 없다. 7~80년대 까지도 한국은 복사본이 아니라 원본 필름을 외국 영화제 쪽에 제출하곤 했다.
그리고 작품이 프랑스로 간 지 몇 주 뒤, 한국은 일제강점기 벗어나고 뭐가 또 급했는지 한 번 더 지옥행 급행열차에 탑승하게 된다. 종착역은 6.25 였다. 나운규 감독의 1926년작인 <아리랑>의 필름이 당시까지만 해도 한국에 있었는데 이 전쟁으로 사라졌다는 소문도 들리고, 무엇보다도 윤용규 감독이 전쟁 기간 중에 월북을 한다. (이 작품에 관한 김종원 영화평론가의 글에서는 윤용규 감독은 딱히 정치, 사상적인 작품을 만들지 않았는데 어째서 월북했는지 알 수가 없다고 기록돼 있다.) 한 나라가 둘로 갈린 시점에서 감독의 월북, 군인 출신 대통령의 공안정치가 90년대 초까지 계속됐다는 걸 감안하면, <마음의 고향>이 프랑스로 넘어간 것은 확실히 행운이었다. 보존될 수 있었으니까. 비록 그로 인해 한국의 관객들이 이 작품을 볼 기회가 꽤 오랜 시간 동안 없긴 했지만 말이다. 작품은 30년대에 발표된 함세덕 작가의 아주 유명한 희곡, <동승>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그 결과, 한국 최초로 불교를 이야기하는, 더불어 아들을 잃은 한 미망인(최은희)과 어머니에게 버림받은 동자승(유민)이 대화를 나누며 모자의 정을 느낀다는 ‘참 드문 이야기’를 다룬 작품으로 극장가에 당도했다.
이 작품은 여배우 최은희의 가장 젊은 시절을 볼 수 있다. 최은희의 자서전에 쓰여진 대로 그녀가 1930년생이었다면 이 작품에 그녀의 나이는 19세였을 것이다. 하지만 몇몇 자료들을 찾아보면 그녀는 1926년, 혹은 1927년생으로 되어 있다. 아마 이 쪽이 더 맞을 것이다. 그렇게 따지면 우리는 20대 초반의 최은희의 모습을 보게 되는 셈이다.
기록 상으로 보면 그 열악한 일제강점기 시절에도 영화계에는 꽤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이 제작됐음을 알 수 있다. 딱 하나 제작 금지된 장르가 있었다면, 그건 당연히 독립에 대한 이야기였다. 사전검열이 존재했던 시대에 나운규, 혹은 이규환 감독이 그 주제로, 혹은 그 함의가 포함된 작품을 만들어서 얼마나 많은 감시와 검열의 수난에 휩싸였었던가. 이런 이유로 일제가 패전한 후에 영화계에는 독립과 관련된 작품들이 쏟아져 나오다시피 했다. 해방 이후라는 시기를 생각할 때, 독립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지 않아서 일면 <마음의 고향>이란 작품이 가볍게 다뤄질 수도 있겠다. 허나 내겐 그 시대에도 이렇게 고요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해방 후의 혼란스러운 현실이 되려 이런 작품이 나와주기를 유도했는지도 모르겠지만, 이런 이야기를 만들 ‘감성’이 당대의 감독들에게 남아 있었던 셈이다.
물론 <마음의 고향>은 함세덕 작가의 <동승>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다시 한 번 체감시키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 말은 작품이 원작에 비해 ‘영화적인 이야기’ 로서 딱히 새로운 부분이 없다는 얘기다. 물론 작품 나름대로 각색을 한 측면들도 있다. 도성이 미망인을 위해 살생을 할 때 어떤 짐승을 잡느냐의 차이, 혹은 원작에는 없었던 어머니 캐릭터가 이 작품에서 직접 얼굴을 비추는 정도다. 하지만 그로 인해 작품이 원작과 구분될 정도로 새로워 지지는 않으며, <동승>을 접한 분이라면 <마음의 고향>이 어떻게 진행될지 뻔히 알게 된다.
뻔한 종교영화로 보지 않게 하는 유려한 영상작법
이 작품의 매력은 다른 데 있다. <마음의 고향>이 개봉하기 전 해, 한국에는 윤대룡 감독의 <검사와 여선생>이라는 ‘무성영화’가 개봉했었다. 이미 훨씬 전부터 한국 역시 열악하지만 ‘동시녹음’으로 만들어진 작품들이 여럿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 되려 영화형식의 후퇴가 이뤄진 것이다. 해당 감독의 미학적 선택이었다고 보기는 힘들며, 해방 직후인지라 영화기자재가 좋지 않았던 이유가 결정적이었다. 사실 연도의 기준으로만 보자면 <마음의 고향> 같은 작품들이 아무렇지 않게 만들어져야 옳았다. 그러나 당대의 역사가 예술의 발전을 저해하고 다시 제자리에서 시작하게 만들었다. <마음의 고향>은 빈곤한 시대의 틈바구니 속에서 핀트가 어긋난 렌즈와 일제가 쓰고 버린 낡은 촬영기들을 가진 채, 놀라운 시청각적 성취를 거두고 있다.
촬영 당시 예산 문제 때문에 세트 촬영을 거의 하지 못한 이 작품은 실제 산사에 들어가 로케이션 촬영을 했으며, 조명 또한 많이 쓰지 않은 채 대부분의 영상을 흑백 자연광으로 담아냈다. 조명을 비롯해서 전체적인 통제가 가능한 세트와 달리, 야외 촬영은 기본적으로 변수를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이 작품은 굳이 시기를 감안하지 않더라도 놀라울 정도의 안정감과 유려함을 보여준다. 예전 한국영화들을 보며 가장 불만족스러웠던 순간은 예전 TV 드라마를 보는 듯한 촬영, 음악, 연기. 그러니까 지나칠 정도의 평범함과 단조로움으로부터 나왔다. 그런 점에서 이미 반세기를 한참 넘어선 <마음의 고향>의 유려함은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예전 한국영화에서 가장 결여됐었고, 또 기대하기도 힘들었던 비주얼 스토리텔링을 원숙하게 선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작품은 미망인을 자신의 잃어버린 어머니에 대입시키는 도성의 애틋한 마음을, 대사보다 시각적 매개체를 통해 관객에게 표현하려 한다. 이를테면 작품 속에서 도성이 미망인의 방에서 커다란 털부채를 바라보는 순간이 있는데, 그것이 곧 부채를 부치는 미망인의 모습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그렇다. 여기서 부채로 넘어갔을 때 카메라가 뒤로 물러나며 미망인의 전체 모습을 잡는다던지, 작품 전체에서 자주 활용되는 디졸브와 아이리스 인, 심지어 도성의 꿈을 표현하기 위해 원시적이지만 광학 특수 효과까지 이용하는 모습을 보면 관객으로서도 한 가지 확신이 든다.
아. 이 작품은 최소한 ‘카메라가 있고 절이 배경이니 그저 찍는다’, 혹은 ‘소리가 들리니 담아낸다’, ‘예산이 없으니 그냥 로케이션을 한다’ 라는 일차원적인 관념에서 벗어나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구나 하는. <마음의 고향>은 어머니를 찾으려 절을 벗어나 세상에 선 도성과도 같은 입장에서 만들어 졌다. 폐허가 됐으면 됐지, 더 나아진 건 하나도 없는 땅 위에서 한국영화는 새롭게 시작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작품은 폐허 위에서 우리는 이 정도의 기초를 다져 놨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당대 사회에 인식시킨다. 물론 아랑곳하지 않고 한국사회는 몇 번씩 영화(뿐만 아니라 많은 부분들도 포함될 것이다.) 를 황무지로 도로 되돌려 놨다. 뭐 좀 하려고 할 때마다.
<마음의 고향>은 다행히, 혹은 참 아이러니하게도 고국이 아닌 외국에 간 덕에 살아남았다. 1993년에 처음 프랑스에서 16mm 필름 프린트를 기증받은 것을 시작으로, 2005년 일본에서 기적적으로 상당히 깨끗한 상태의 35mm 원본 네거티브를 발견해 다시 고국으로 돌아오게 됐다. 작품은 한국의 근대문화재로 지정됐으며, 이제 마음만 먹으면 VOD, DVD를 통해 쉽게 볼 수 있다. 이 작품의 생존은 ‘40년대의 거친 토양 위에서 이런 꽃을 피웠더라’ 는 기록으로서, 후대의 관객에게 많은 감탄을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동시에 아쉬움도 생긴다. 한국영화가 이 작품을 필두로 몇 번씩 원점으로 돌아가지 않고 꾸준히 기세를 이어왔다면, 우리가 흔히 <살인의 추억>, <올드보이>, <지구를 지켜라!>, <장화, 홍련>이 한 해에 나왔던 ‘2003년의 르네상스’ 류의 순간들을.. 혹은 박광수, 이명세, 장선우 등의 코리안 뉴 웨이브의 태동을 좀 더 일찍 볼 수 있지 않았을까?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말이다. 아마 한국에서 예술을 논한다면 이런 주장은 과거에 몇 번이고 했을 것이며, 앞으로도 몇 번을 다시 보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P.S. - 현재 이 작품의 리메이크작인 박영철 감독의 <내 마음의 고향> 이 개봉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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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고향(49년) 한국영화의 귀한 고전
마음의 고향
1949년 한국영화
감독 : 윤용규
촬영 : 한형모
출연 : 최은희(미망인), 유민(도성), 변기종(주지스님)
김선영(도성친모), 석금성(미망인 모), 오헌용, 남승민
최운봉, 차근수
제 1회 서울시 문화상 영화부문 최우수상
오래된 고전영화들을 잘 보존하고 있는 일본과는 달리 우리나라는 70년대 영화조차도 제대로 보관하지 못하는 '문화 후진국'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1940년대 한국영화의 발견은 굉장히 특별해 보입니다.
함세덕의 희곡 '동승'을 각색한 영화 '마음의 고향'은 1949년에 만들어진 한국영화의 귀한 고전으로 90년대에 개인소장가에 의해서 공개된 작품입니다. 이렇게 귀한 고전이 공공 기관이 아닌 개인에 의해서 발굴된다는 것도 부끄러운 일인데 이 영화는 작품성과
희소성을 인정받아 2007년에 문화재청에 근대문화재로 등록된 작품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귀하고 좋은 문화재라고 하더라도 공유를 안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우리나라 문화예술기관의 운영은 고전에 대해서 널리 알리고 홍보하는 목적은 커녕 꼭꼭 감추고 폐쇠적으로만 운영하니 한국 고전영화에 대한 젊은층의 관심이 바닥을 기고 있는 것이지요. 이 영화는 고가의 DVD로 출시되었는데 한국영상자료원이 출시한 것입니다. 개인 소장가에 의해서 어렵게 발굴된 영화를 왜 제대로 영상보관조차 못하는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상업적'으로 이윤을 취하려고 할까요?
(그나마 KMDB 홈피에서 '이미지 캡처 봉인'을 풀어놓은 것이 불과 얼마전입니다. 과거 이미지 캡처를 봉인했을때 저는 이 사람들이 단단히 미쳤다고 생각했습니다.
공유해도 관심을 가질까 말까한 한국 고전영화를 스스로 폐쇄하고 있으니....) 저는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돈 벌 생각말고(어차피 별로 사는 사람도 없습니다.)
한국 고전영화에 대해서 널리 알리고 공유하는데 앞장서라고 말이죠. 무료배포를 하더라도 말입니다. 그런 것이 제대로 문화를 보존못한것에 대한 일종의 반성적 행위이며 뒤늦게라도 귀한 한국 고전을 여러 사람에게 알려서 문화에 대한 공유를 할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입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구로사와 아키라'니 '오즈 야스지로'니 하는 일본의 고전영화 감독에 대한 자랑거리에 대해서 우리나라도 제대로 발굴 보존만 되었다면 꽤 괜찮은 고전영화들을 계승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1949년도 작품으로 우리나라에 몇개 되지 않은 1940년대 영화의 '보존작'이지만 완성도도 제법 뛰어납니다.
영화 전체가 아름다운 산사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주인공은 12살의 동자승이지요. 도성(유민)은 3살때 절에 맡겨져서 키워진 동자승으로 늘 어머니를 그리워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언젠가 어머니가 데리러 올 것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며.
하지만 주지승(변기종)은 어린 아이를 버린 도성의 어머니(김선영)를 죄많은 여인으로 여겨 도성을 데려갈 자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느날 죽은 아들에 대한 제를 드리러 온 젊은 미망인 (최은희)이 서울에서 와서 불공을 드리는데 도성은 그녀에게 어머니와 같은 정을 느낍니다. 미망인 역시 도성을 잃어버린 아들을 대신하여 모성애를 느낍니다. 그녀는 도성을 데리고 가게 해달라고 주지스님에게 요청하는데 때마침 도성의 친어머니가 절에 나타납니다. 주지스님은 자격이 없는
친어머니 대신 가문있는 집안의 미망인에게 도성을 맡기려 하는데.......
하지만 주지승(변기종)은 어린 아이를 버린 도성의 어머니(김선영)를 죄많은 여인으로 여겨 도성을 데려갈 자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느날 죽은 아들에 대한 제를 드리러 온 젊은 미망인 (최은희)이 서울에서 와서 불공을 드리는데 도성은 그녀에게 어머니와 같은 정을 느낍니다. 미망인 역시 도성을 잃어버린 아들을 대신하여 모성애를 느낍니다. 그녀는 도성을 데리고 가게 해달라고 주지스님에게 요청하는데 때마침 도성의 친어머니가 절에 나타납니다. 주지스님은 자격이 없는
친어머니 대신 가문있는 집안의 미망인에게 도성을 맡기려 하는데.......
어린 동자승의 애절한 사모곡을 소재로 한 영화로 마치 스페인 영화 '마르셀리노'가 연상되기도 하는 영화입니다. 엄마를 그리워하는 어린 소년의 가슴아픈 이야기지만 다른 한국영화들과는 달리 '신파적 요소'가 거의 없다는 것도 장점입니다.
20대 시절의 최은희



1시간 20분이 채 안되는 짧은 영화이고 진행도 비교적 빠른 편이며 각 등장인물의 심리묘사가 잘 묘사되고 있습니다. 오래된 영화이고 음질의 문제때문에 대사가 잘 들리지 않는 것이 단점이지만 산사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도성의 어머니에 대한 그리운 마음과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가 잔잔하게 잘 전개되고 있습니다.
영화마다 미운 캐릭터가 나오게 마련인데 이 영화속에서는 화면속으로 들어가서 때려주고 싶은 캐릭터가 바로 주지승입니다. 엄한 티는 혼자 다 내고 아직 철없는 나이인 도성에게 공덕쌓기만을 강조하고 지가 뭔데 친엄마가 와도 도성을 데려가지 못하게 하고.... 이건 요즘 기준으로 따지며 중범죄입니다. 이 주지승 캐릭터 하나 때문에 여러 사람이 민폐를 당하고 있습니다.
'자유부인' '운명의 손'등으로 유명한 한형모 감독이 촬영감독 시절에 만든 영화로 촬영을 담당하고 있고 산사의 수려한 분위기를 잘 잡아내고 있습니다.
연출을 맡은 윤용규 감독은 이 영화가 데뷔작으로 이 영화로 제 1회 서울시 문화상 영화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하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6.25 이후 월북을 하여 그 이후의 소식은 알려진 바 없습니다. 우리나라에 계속 남아서 영화를 만들었다면 또 한명의 거장으로 성장할 수도 있었을텐데...
월북한 영화인으로 유명배우 '문예봉'도 있지만 남북분단으로 인하여 아까운 문화예술인을 잃은 안타까움도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도성의 친모를 연기한 김선영 역시 월북배우입니다.
월북한 영화인으로 유명배우 '문예봉'도 있지만 남북분단으로 인하여 아까운 문화예술인을 잃은 안타까움도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도성의 친모를 연기한 김선영 역시 월북배우입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명배우 최은희의 23세 시절의 풋풋한 모습이 이채롭습니다.
우리가 주로 볼 수 있는 최은희 주연의 영화가 50-60년대 영화인 점과 비교할때 40년대 20대 초반의 모습으로 출연한 영화라는 점이 의미있습니다. 도성을 수양아들로 삼으려는 인자한 미망인을 연기하고 있는데 한복을 입은 단아한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우리가 주로 볼 수 있는 최은희 주연의 영화가 50-60년대 영화인 점과 비교할때 40년대 20대 초반의 모습으로 출연한 영화라는 점이 의미있습니다. 도성을 수양아들로 삼으려는 인자한 미망인을 연기하고 있는데 한복을 입은 단아한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우리나라 정서에 잘 맞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소재로 한 영화로 산사라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불교영화'이기도 합니다. 40년대의 오래된 영화라는 귀중함 외에도 영화의 완성도란 면에서도 매우 소중한 한국 고전영화입니다.
ps 1 : 한국 영상자료원에서는 이렇게 어렵게 발굴된 귀한 한국고전에 대한 '공유'를 통한 문화계승차원에서 아주 저가에 대량으로 DVD 출시를 했으면 합니다. 해외 최신 블록버스터 영화도 1만원이 안되는 가격에 판매하는데 고가출시가 경쟁이 되겠습니까? 한 5천원 정도로 대거 출시하면 좋겠네요.
ps2 : 동자승 역의 유민은 40년대 아역배우지만 매우 귀엽고 정이가는 외모입니다. 지금 생존해있다면 70대 노인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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