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저널 - “김정은, 호탕하고 자신감 넘치는 유학파 느낌”
“김정은, 호탕하고 자신감 넘치는 유학파 느낌”
[인터뷰] 북한 234번 방문하고, 김정은과 두 차례 만난 박상권 평화자동차 명예회장
조문희 기자 ㅣ moonh@sisajournal.com | 승인 2018.03.14(수) 11:4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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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봄에 평화가 깃들 수 있을까. 대북특사단의 연이은 행보가 북한의 비핵화에 무게를 싣고 있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 등 대북 특별사절단은 3월5일 방북 이후 미국과 중국, 일본을 오가며 김정은 위원장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이 메시지를 받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곧바로 김 위원장과 5월 중에 만나자고 응했다. 회담이 성사되면 사상 처음으로 북미 정상이 만나게 된다. 어떤 메시지였기에 트럼프 대통령이 움직인 것인지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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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권 평화자동차 명예회장은 “비핵화가 아니면 북한과 한국, 미국 모두에게 의미가 없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박 회장은 우리나라에 평화차 법인을 1999년에 설립하고 평양에 공장을 지었다. 그는 10여 년간 회사를 운영하다 2013년 법인을 북한에 기증했다. 한때 평화차 근로자는 400명이 넘었다고 한다.
3월13일 오전 박상권 평화 자동차 회장이 시사저널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박 회장은 평화차를 운영하는 동안 북한에서 흑자를 냈다. 개성공단을 통틀어 국내 회사 가운데 최초다. 박 회장이 그 사이에 방북한 횟수는 234번이나 된다. 김정은 위원장과는 두 차례 만나면서 악수까지 했다. 김 위원장의 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도 가까이서 지켜봤다고 한다.
박 회장이 ‘친한 사이’였다고 밝힌 사람 중엔 고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도 있다. 김 위원장의 고모부이자 정권 실세로 통했던 인물이다. 또 김 위원장의 ‘외교 브레인’으로 꼽혔던 고 김양건 통일전선부장도 박 회장과 친분이 있었다고 한다.
스스로 인정할 뿐만 아니라 외부에서도 북한 전문가로 통하는 박 회장. 그는 앞으로의 한반도 정세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마지막으로 북한을 언제 방문했나.
“지난해 9월 중순 즈음이다. 10월부터 미국인은 금수 조치 때문에 아무도 못 들어갔다. (박 회장의 국적은 미국이다.) 북한에 억류됐다 석방된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가 죽고 나서 제재가 강력해졌다.”
북한에서도 제재를 실감하고 있나.
“중국이 움직이니까 실감할 수밖에 없더라. 일각에선 중국이 보여주기 식으로만 제재를 흉내 낸다고 생각하지만, 중국은 북한 사람이 큰 배신감을 느낄 정도로 강하게 압박했다. 일례로 중국에 들어온 북한 사람은 돌아갈 때 볼펜 하나 마음대로 못 가지고 나갔다. 볼펜에 (수입 제재 대상인) 쇠붙이가 붙어 있다는 이유에서다. 쇠는 손톱만큼이라도 들고가지 못하게 했다. 관광객도 뚝 떨어졌다. 신의주 공항에는 항상 사람이 북적하고 관광버스도 수십 대씩 있었는데, 제재 이후 다 사라지고 없더라. 경제가 많이 위축됐다고 보면 된다.”
김정은 위원장과는 어떻게 만났나.
“김정일 국방위원장 장례식에서 한 번 봤고, 2013년 7월 북한의 전승절 행사 때 단독으로 만났다. 단체 사진을 찍으려고 기다리고 있는데, 김정은이 먼저 손짓하며 다가오더니 사진을 찍자고 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손을 잡고 인사를 나눴다. 굉장히 호탕하고 자신감 넘치고 유학파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 점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통하는 점이 분명 있을 거다.”
박상권 평화자동차 명예회장(오른쪽)이 2013년 7월30일 북한의 전승절(6.25전쟁 정전협정) 60주년 행사에 참가해 김정은 위원장과 고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왼쪽)과 함께 인사를 나누고 있다. ⓒ박상권 평화자동차 회장
북한이 해빙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김 위원장이 전한 메시지가 ‘비핵화’라고 보나.
“지금은 비핵화 아니면 모두에게 의미가 없다. 북한도 바보는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노골적으로 전쟁하겠다고 하는 사람인데, 그 앞에서 북한이 거짓말 할 수 있겠나. 문 대통령에게도 앞뒤 다른 말 하면 이젠 아무도 북한과 대화하지 않을 것이란 걸 잘 알고 있다. 비핵화는 당연히 전제로 깔 것이다. 문제는 평화협정에 그칠 건지, 북미 수교까지 갈 건지다. 북한이 원하는 건 북미 수교일 거다. 말로 끝나는 협정보다 돈이 오가는 수교가 훨씬 실질적이니까.”
북한은 이전에도 비핵화를 약속했지만 지키지 않았다. 이번에도 그럴 수 있지 않나.
“그런 문제까지 생각하면 처음부터 전쟁해야지 뭐 하러 만나나. 이미 여러 번 속았기 때문에 오히려 기회가 되는 거다. 우리가 북한 핵을 잘 사찰하면 된다. 북한도 이젠 어디에도 핵을 숨겨놓을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아직 김 위원장이 비핵화 메시지를 내놓았는지에 대해선 알려지지 않았다. 북한 내부 반응은 어떤가.
“어리둥절할 거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트럼프 대통령과 당장이라도 치고 박을 것처럼 말하다가 갑자기 대화를 하자고 나서는 건 북한 사람들이 보기에도 이상하다. 자존심 문제도 있지 않겠나. 내부에서 이런 오해를 받을 수 있는데도 김정은이 큰 결단을 내린 거다. 트럼프 못지않게 김정은도 대단히 강단 있는 사람이다.”
김정은이 큰 결단을 내린 이유는 뭐라고 보나.
김여정 부부장의 공이 컸다고 볼 수 있다. 김여정을 여러 번 가까이서 봤는데, 성격이 쾌활하다. 주변 군인이나 당 간부들하고 소통을 아주 잘하더라. 우리 언론에 비춰지는 모습을 보고 일부에선 김여정이 도도하다고 트집 잡던데, 그런 사람 전혀 아니다. 수수하고 예의바른 사람이다. 그 덕에 북한 내에서 입지도 상당하다. 김정은의 친애를 받는 사람이 직접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고 대북 특사단을 맞이했기 때문에, 최근의 대화 분위기에 더 힘이 실렸다고 보면 된다.”
김정은이 김여정을 많이 신뢰한다는 말인가.
“대단히 돈독하다. 대북 특사단이 김정은을 만났을 때 문재인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하지 않았나. 김정은은 그걸 읽더니 덮지도 않고 김여정에게 바로 넘겼다. 김여정도 받자마자 읽지 않고 뒤집어 엎어버렸다. 웬만한 신뢰 관계가 아니면 그렇게 중요한 문서를 넘겨받을 수 없을 거다.”
북미 정상회담을 어디서 개최해야 되는 지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회담 주체가 북미든 남북이든, 언제나 평양을 다이렉트로 공략해야 한다.(박 회장은 ‘다이렉트’란 단어를 힘주어 말했다) 평양은 북한에서 성지나 다름없다. 모든 것이 평양에서 시작되고 평양에서 끝난다. 판문점, 개성공단, 금강산 등 멀리 갈 것 없이 평양을 파고들어야 한다. 회담뿐만 아니다. 국내 굴지의 기업들이 평양에 진출해 자리를 잡으면 북한 사람들도 자연스레 바뀔 수 있다. 스스로 새로운 문화에 눈을 뜨는 거다. 그게 평화 통일의 초석이다.”
우리가 파고든다 해서 북한이 쉽게 내어주겠나.
“북한이 두려워하는 건 흡수통일이다. 그런 걱정을 풀어주려면 북한의 주체사상을 우선은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 된다. 남들이 볼 땐 ‘빨갱이’ 같겠지만, 기업가 입장에서 말하는 거다. 머리엔 주체사상을, 가슴엔 수령을 모시고 사는 게 북한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주체사상은 종교고 김씨 일가는 신이다. 우리가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는 것처럼 북한의 주체사상도 일종의 종교로 접근하다보면 물꼬가 트이지 않겠나. 그러면서 변화를 이끌어 내는 거다. 평화자동차는 그렇게 자리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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