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만은 왜 북으로 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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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에 어머니가 꿈에 그리던 아버지를 27년 만에 만났을 때, 어머니의 이복동생이고 외조부의 막내아들인 리형우 외삼촌도 평양에 살고 있어 감격적인 남매상봉도 이루어졌었다. 그리고 2년 후 일선님은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묘소 참배를 위해 두 번째 북한 방문을 하였고, 1995년 광복 50주년 기념행사에 캐나다 교민 방문단 일원으로 참가한 바 있었다.
외삼촌은 12년 만에 다시 만나는 누이와 이번에 첫 대면한 조카인 나를 반갑게 맞이하며 애국열사릉에도 안내하고 평양 시내 이곳저곳을 구경시켜주었다. 그리고 2001년에 그가 집필해서 출간된 이종만의 전기 <태양의 품에 안기어> 라는 제목의 소책자를 우리에게 건네주었다.
그 책에는 이종만의 월북 동기에서부터 세상을 떠나기까지의 북한에서의 활동이 비교적 소상히 기술되어 있었다. 이종만이 북한의 애국열사로서 인민의 존경을 받고 있고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이름이 나있는 데에는 이 책의 내용들이 여러 매체를 통해 널리 알려졌기 때문일 것으로 생각되었다.
일선님과 나는 숙소에 돌아와 단숨에 그 책을 읽으며 깊은 감회에 젖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깊은 회의도 품게 되었다. 외삼촌은 얼마나 이 책에 진실을 담아서 쓴 것일까? 이종만의 실제적인 삶은 얼마나 이 책에 담겨져 있는 것일까?
나는 이제 이 책의 내용을 여기에 그대로 옮겨 이종만의 북한에서의 삶을 조명하고 그 의미와 진실을 찾아보려고 한다. 김일성 주석을 우상화 하여 찬양하고 개인들의 모든 공적도 그의 위대성에 기인한다는 식의 서술이 남한의 독자들에게는 결코 받아드릴 수 없는 것이겠으나 북한의 주민들에게는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다는 것이 남과 북의 근본적인 이질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이질성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는 것은 남과 북의 평화적 관계, 그리고 나아가 영세중립평화통일로 나아가는 길에 필연적으로 해결해야만 하는 중요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이종만의 북에서의 삶은 김일성과의 관계를 떠나서는 논할 수 없는 것이기에, “김일성은 과연 어떤 인물인가?”에 대한 내 나름의 견해를 밝혀야만 하는 당위성을 피할 수 없다.
김일성에 관한 다양한 시각과 평가가 있지만 나는 그를 정치가로서가 아니고 한 인간으로서 그 사람됨을 논하고자 한다. 그가 행한 모든 행위는 그의 사람됨에서 기인하는 삶의 목적과 욕망과 사고의 결과일 것이다. 이종만이 1949년 김일성이 내미는 손을 잡은 것은 당시 김일성의 사람됨에 호감을 가졌기 때문인 것도 큰 요인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종만은 그가 대동정신을 지닌 인물로 보았던 것일까? 그가 사심에서 벗어나 대자아의 활연한 심경에 이른 인물로 보았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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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견을 구합니다.”
“이종만은 왜 북으로 갔는가?”를 풀어나가는데 있어서 기본적으로 대동사상가로서의 이종만과그리고 온전한 공산주의 통일국가를 꿈꾸는 김일성을 대비해서 논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무릇 사상과 주의는 ‘다 같이 잘 사는 세상’을 이상으로 삼고 있을 터이나, 이를 주창하고 이를 앞세워 세상일을 도모함에 있어서 실제로 얼마나 그 사상과 주의에 부합한가 하는 것은 ‘사람됨’에 달렸다고 봅니다.
대동사상가로서의 이종만의 사람됨은 서장에서 대동교학회 취지서를 해설하면서 정립됩니다. 여기서 정립된 이종만의 정체성은 그의 일생을 관통하는 근간이 될 것입니다. 남에서나 북에서나 이 정체성을 토대로 그의 행적을 이해하는 작업이 진행될 것입니다.
사람됨을 논하는 것은 곧 도덕과 영성을 논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종만이 꿈꾼 대동사회는 곧 도덕사회이고 영성적 사회입니다. 이는 곧 도덕적 인간, 영성적 인간, 생명모성의 인간을 논하게 합니다. 이종만의 영세중립평화통일은 도덕국가로서의 통일이고 반아님이 말씀하신 영성평화통일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도덕과 영성의 관점으로 한국현대사의 단면들을 비추면서 그 안에서의 이종만의 인간적, 사회적 가치를 논평하고 이를 통해서 도덕국가로서의 통일한국의 비전을 제시하는 것을 본질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태양의 품에 안기어>에 묘사된 김일성은 민족의 영웅이고 위대한 능력과 지혜와 도덕이 빛나는 완벽한 인격체입니다. 대부분의 북한 주민이 이를 신봉하고 있다고 본다면 그를 비판하는 일은 북에서는 용납되지 않는 일입니다.
그러나 독재 권력자로서 수많은 사람들을 숙청하고 민족상잔의 전쟁까지 일으킨 그를 아무 비판 없이 그대로 북한 주민들처럼 받아들일 수는 없다는 것은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입장에서 당연히 봉착하게 되는 중대한 숙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남을 떠난 북을 선택한 대동사상가 이종만은 남에 대해서 여러 면에서 비판적이었을 것이고 북에 대해서, 김일성에 대해서 당연히 기대가 컸을 것입니다. 북한 체제상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겠지만, <태양의 품에 안기어>에는 이종만이 김일성의 품안에서 행복과 보람과 영광을 얻은 것으로 시종일관 묘사되고 있습니다. 김일성의 총애를 받고 애국열사로 인정을 받은 것에 대해서 이종만은 개인으로서는 고마움이 있었겠으나, 도덕국가를 꿈꾸었던 대동사상가로서는 김일성에 대한 불만이 깊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이 책은 남과 북의 사회적 모순과 갈등과 한계를 극복하고 서로간의 이질성을 초월해서 함께 공감하고 동의하는 대동평화의 미래, 영성평화통일, 선진 도덕국가의 미래로 나아가는 길에 하나의 이정표 역할을 하는 데에 출간의 의미를 두어야 할 것입니다.
해원상생(解冤相生)과 대동평화의 새 세상을 열어가는 길에 이종만의 대동정신의 빛을 어떻게 비출 것인가? 우리 모두 대자아의 활연한 심경에 이르기만 하면 되는 것일까? 이종만은 이것만이 유일한 길이라고 대동교학회 취지서에 밝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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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일성에 대한 평가와 서술을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의견을 구합니다.
2. 리형우의 <태양의 품에 안기어> 내용을 원문 그대로 평전에 소개하고 보충설명과 논평을 덧붙이는 것에 대해 의견을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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