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07-06-24
조국 서울대 법과대학 교수
세상읽기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 국가보안법 위반사건 건수는 줄었고, 위반자한테 내리는 형도 가벼워졌다. 보안법의 적용 대상도 축소되었다. 반자본주의나 반미를 표방하는 정치세력, 아래로부터의 연북(聯北) 통일운동 세력이라고 하여 바로 처벌 대상이 되지는 않는다.
예컨대, “자본주의의 질곡의 극복”과 “노동자와 민중 중심의 민주적 사회경제 체제의 건설”을 목표로 하는 민주노동당은 국회 의석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2004년 대법원은 반미노선을 견지하며 통일운동을 전개하는 ‘민족통일 애국청년회’가 ‘이적단체’가 아니라고 판시하였다. 2007년에는 ‘반자본 진보노선’을 추구하는 ‘진보와 연대를 위한 보건의료운동연합’을 결성한 의사들한테 내린 유죄판결이 파기되었다.
대법원 판례의 표현을 빌리자면, 과거에는 그 행위의 구체적 위험과 가능성과 상관없이 남한 체제를 “위협하는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표현”만 있으면 처벌되었으나, 이제는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줄 명백한 위험성”이 있어야만 ‘이적’으로 규정된다. 이런 변화는 민주화의 중대한 성과다.
그런데 이런 새로운 ‘이적’ 판단기준 아래서도 여전히 수사대상이 되는 사람들이 있다. 소수이지만 ‘주체사상’ 또는 ‘김일성주의’를 학습·선전하며 활동하는 사람들이다. 예컨대, 2006년 빨치산 활동, 조선노동당 입당 등의 경력을 가진 70대 노인 김영승씨는 자신의 블로그에 빨치산들을 ‘영웅’, ‘열사’로 찬양하고 한국전쟁 당시의 남쪽 군경을 ‘적’으로 호칭하는 한편, 김일성을 ‘수령님’으로, 김정일을 ‘장군님’으로 부르는 글을 올려 현재 재판을 받고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주체사상’ 관련 문건을 소지·출판한 사람이나 주체사상을 함께 공부한 사람들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구속되고 있다.
만약 이런 사람들이 ‘주체사상’을 신봉하며 내란, 폭동, 간첩행위 등을 예비·음모하거나 실행에 착수하였다면 형법에 따라 당연히 처벌 대상이 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정도의 단계에 이르지 않은 단순한 ‘친북’적 표현행위를 보안법 위반으로 처벌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원칙에 부합하는 것이냐다.
필자는 ‘주체사상’이 남한 사회의 진보와 개혁의 지도사상, 그리고 통일한국의 지도사상이 될 수 있다고는 믿지 않으며, 북한 정권의 공식 입장을 추수하며 이를 홍보하는 행위는 남한 사회의 다수 구성원에게 불쾌감이나 당혹감을 줄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러나 남한 민주주의나 시민의 정치의식의 수준을 고려할 때, 이러한 ‘친북’ 행위가 즉각적이고 명백한 체제위협을 초래한다고도 보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서 북한 정권의 노선과 입장은 이미 다 알려져 있는바, 주체사상 관련 문건의 출판이나 학습이 바로 체제 위협을 야기한다고는 평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요컨대, 단순한 ‘친북’적 표현행위에 대하여 국가보안법을 적용하여 처벌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그러한 행위조차 정치적 표현 자유 행사의 일환으로 보장한 후, 공개적인 토론과 비판을 통하여 그 내용의 올바름 여부를 드러낼 것을 요청한다.
이에 필자는 공안당국이 ‘주체사상파’를 처벌하는 데 인적·물적 자원을 쓰지 말고, 이들을 ‘주체사상’을 주제로 한 방송사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하도록 주선할 것을 제안한다. 이 속에서 한국 민주주의의 폭은 더욱 넓어지고 깊이도 더해질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사실 현재 정부, 국회, 기업, 시민사회는 수시로 북쪽의 ‘주체사상파’들을 만나서 논쟁하고 타협하고 있지 않은가.
조국 서울대 법과대학 교수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217977.html#csidxfc8e728b19d627ebc9505d6f2ec9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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