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3-06

알라딘: 장준하 - 민족주의자의 길

장준하 - 민족주의자의 길

박경수 (지은이) | 돌베개 | 2003-08-05







반양장본 | 416쪽 | 223*152mm (A5신) | 582g | ISBN : 978897199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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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하는 우리 현대사를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일제 시대에는 20대의 젊은 나이로 광복군에 참여해 항일 독립운동을 하였고, 자유당 때에는 「사상계」를 창간하여 민주주의와 통일에 대한 여망을 일깨웠다. 군사독재 시절에는 붓을 꺽고 거리에 나가 반독재 민주화 투쟁의 선봉에 섰다.

지금까지 나온 단편적인 서술과 달리 이 책은 장준하에 관한 온전한 평전을 담고 있다. 생전에 남겼던 글과 교유했던 지인들의 저술, 그리고 생생한 증언들을 토대로 장준하의 일생을 비교적 충실하고 구체적으로 서술했다. 지은이의 목소리에는 '민주주의의 등불'에 바치는 헌사와 아쉬움이 못내 배어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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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어린 시절

깊은 산골 청계동
할아버지와 맏손자
배일(排日)의 고장

제2부 브나로드 운동과 신성중학교

일제와의 첫 마주침
족고골의 메아리
신성중학교로의 전학
선천의 우국 노인
교장 선생을 석방하라

제3부 도사 선생 그리고 일본 유학

신안소학교의 단발 소동
과수원을 뒤엎고 새 교사를 짓다
동양대학과 일본신학교
결혼, 그리고 학도병

제4부 학도병, 대륙의 탈출

평양 42부대
서주(徐州)로 가다
쓰카다 부대의 탈주
끝없는 광야의 폭염
김준엽과의 만남
중국군 한치륭 부대

제5부 장정 6천 리

사령관의 참변
광복군 훈련반의 『등불』
가장 바쁜 취사반장
파촉령을 넘다

제6부 임시정부와 8.15광복

백범 주석의 눈물
파쟁 속의 망명정부
경위대를 해체하라
비밀리에 진행된 OSS 훈련
외세 광복의 한

제7부 경교장의 장목사

해방 공간의 와중에서
해방, 정국의 혼란 1
해방, 정국의 혼란 2
가족과의 재회

제8부 『사상계』, 그 구원의 등불

『사상계』의 전신 『사상』
『사상계』의 탄생
매진되는 창간호
부산 정치 파동
등짐꾼 발행인
반독재 민권운동의 정론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제9부 수난과 형극의 수상자

브레인의 산실 '국제연구소'
국토건설본부에 쏟은 정열 쿠데타 '정보부'의 소환
'부패 언론인'에게 돌아온 막사이사이상
군홧발 밑의 외로운 수난

제10부 재야 대통령과 권부 대통령

각 대학 초청 강연의 논전
6.3정국의 교과서
재야 대통령의 사자후(獅子吼)
옥중 출마의 승리

제11부 스러지지 않는 빛 사천추(死千秋)

3선 개헌 반대의 원외 투쟁
1971년의 대통령 후보론
'7.4공동 성명'의 속임수
'10월 유신'과의 사투
『사상계』의 후신 『씨홟의 소리』
약사봉 계곡의 원통한 혼 새로운 빛을 위해 잠시 숨다

장준하 연보




그리고 하는 일이 「사상」의 다음 호 분으로 청탁해 놓은 원고들을 받으러 다니는 일이었다. 우선 집필자를 찾아다니며 「사상」이 폐간된 사실을 알리고 원고를 청탁했다.
"그 대신 제가 그것을 속간할 것입니다. 어떻게 하든 그렇게 속간해낸 책을 팔아서 고료는 드릴 테니 한 번만 저를 믿고 외상 원고를 써주셔야겠습니다." 그러자 대부분의 필자들은 원고를 써주었다.
- 237p 중에서



저자 : 박경수
저자파일
최고의 작품 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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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 : 1971년 한국문학상
최근작 : <장준하>,<오늘은 속여도 내일은 못 속인다>,<반야의 현자 고오다> … 총 5종 (모두보기)
소개 :
소설가. 1930년 충남 서천 한산에서 태어났다. 1955년 '사상계' 창간 2주년 기념 현상소설모집에 작품 <그들이>가 입상, 문단에 등단했다. 이후 사상계사 기자, 국토건설본부 간사(본부장 장면, 기획부장 장준하), 한국문인협회 상임이사, '월간 문학' 주간을 지냈다. 전통사회로서의 농촌 세태를 충실히 재현해내면서 뜨거운 인간애를 형상화하는 한국 농민문학의 대표적 작가로, 장편 <凍土>,<흔들리는 산하>, <아내의 바다>, 창작집 <화려한 歸省>, <조선인>, <碑> 등 작품집 다수가 있다. 제8회 한국문학상, 제2회 흙의 문학...



37년이 지난 지금, 이제야 역사가 답을 주나봅니다. 그럼, 그네누나 안녕~~~
웃는감자 ㅣ 2012-08-17 l 공감(1) ㅣ 댓글(0)



처절하게 숨진 이 땅의 진정한 민족주의자 재야 대통령 장준하선생의 삶의 궤적
gidon ㅣ 2011-03-10 l 공감(0) ㅣ 댓글(0)








총 : 5편




박정희의 진정한 파이터 동탄남자 ㅣ 2008-09-07 ㅣ 공감(1) ㅣ 댓글 (0)


내가 장준하 선생님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4년전 가을 설악산 종주를 하게된 이후부터였다.
그때 함께 산행을 하신 분중에 50대 후반의 이목구비가 또렷한 미남 선생님과 독특한 화장이 기억에 남는 멋진 사모님 때문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바로 그분들이 고장준하 선생님의 장남 장호권 선생님 부부였던 것이다.
설악산으로 가는 휴게소에서 그분을 보는 순간, 나는 불과 오래지 않은 과거의 조선일보 기사가 떠올랐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조선일보에서 사상계 복간하신다는 선생님 소식 읽었습니다. 잘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 큰 키에 부드러운 얼굴로 내 등을 두드려 주시던 손길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때 받은 명함 주소로 연하장을 보내드렸으며, 장호권 선생님은 친히 전화를 주셔서 새해 덕담을 멋지고 중후한 목소리로 들려주셨었다.

장호권 선생님의 밝은 표정과 워낙 수려한 외모탓에 나는 그분이 별 고민 없이 아버지 후광으로 부유하게 살아오신 분인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나니... 박정희 정권때 어려운 가정 형편상 대학에 가지 못하고 아버지의 운전기사를 하며 가까이에서 모셨다는 것을 알았다.
1975년8월17일 장준하 선생의 약사봉 의문사 이후,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과 그 진실을 찾겠다며 동분서주 하시다 테러를 당해 입원했던 이야기도 읽었다.
또한 10.26.사건 직전에 김재규씨가 조용히 불러 아버지의 죽음은 반드시 진실히 밝혀지리라 예언했던 것과 미국으로 떠나라고 권유했던 이야기도 읽었다.
온가족이 상봉동 허름한 집에서 사글세로 살았던 시절과 당시의 의문사를 생각하면서, 위대한 인물의 아들로 겪었을 아버지 그늘 속에서의 고통을 생각하게 되었다.

이번 독서를 통해 장준하 선생님의 사상계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고,
오랜 해외 생활을 접고 귀국해서 아버지의 분신과 같은 사상계를 복간하고자 노력중인 장호권 선생님의 소식들을 직간접으로 체험하였다.
진정한 민족주의가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유익한 독서였다.

이 책은 읽어볼만한 가치가 충분한 책이다.
오픈 마인드로 그 시대를 대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박정희 추종자나 박정희 매도자 모두가 오픈 마인드로 역사를 바라보는 그날을 희망다.

박정희 예찬론자인 우리 아버지도 이 책을 읽고 장준하 선생님을 다시 보신 듯 하다.




민중의 횃불.."사상계" 달팽이 ㅣ 2005-08-04 ㅣ 공감(2) ㅣ 댓글 (0)


유신독재시대를 살다가 그들의 혼을 조국의 민주화의 제단에 바친 이들이 어디 한둘이랴. 우리가 평화롭게 숨쉬는 오늘이 먼저 간 넋들의 피와 땀으로 일구어진 보석이라는 것을 어찌 잊으랴. 하지만 역사 앞에서 피를 뿌리며 사라진 그들의 역사는 저기 저 너머로 뿌옇게 흐려져만 가고, 여기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은 역사적인 인식은 메말라 자신의 한 치 앞만을 보고 사니 가끔 우리들은 그들을 떠올려야 하리라. 이 평범한 일상에 장엄하고 치열했던 그들의 삶을 빌려와야 하리라.

함석헌 선생님과 김지하 시인, 김대중 대통령과 지학순 주교, 김수환 추기경, 장일순 선생님의 삶들을 보고 삶의 교훈을 삼게 되면서 늘 기회가 닿게 되면 한 번 펼쳐보리라 마음 먹었던 삶이 바로 '장준하'선생이었다. 일제하에서부터 조국의 독립을 위해 많은 뜻을 세우고 일군 학도병을 탈출하여 조국의 광복군으로 활동하면서 젊어서부터 조국과 민족을 향한 뜨거운 사랑을 가슴에 품었으나 분파주의 정치에 싫증을 느끼고 민중들 속에서 재야에서 자신의 뜻을 실현해갔던 고독했지만 정의로웠던 한마리의 호랑이...

해방을 전후해서 김구 선생님을 보필하다가 자신의 소임을 마치고 민중의 입이 되어 독재정권에 대항해서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싸웠던 그는 정치권력에 대한 욕망도 부에 대한 욕망도 없었다. 다만 그가 가진 자존심이라곤 정의와 역사와 민중을 위해 자신에게 주어진 소임을 대가없이 하겠다는 역사의식과 민족사랑이었음이다. 한국의 민주화과정에서 피를 흘린 숱한 사람들이 많았고, 그 중에는 자신의 야망을 채우기 위한 색깔을 걷어버리고 순수하게 살다간 유명 무명의 삶들이 있어 역사를 이끌었다면 그 중심에 장준하 선생이 우뚝 서 있었던 것이다.

일제하에 일본 학도병으로 자원한 데에는 자신의 가족을 방어하고자 하는 마음이 앞섰고, 또한 춘원의 연설을 듣고 자신의 삶을 내던지는 로맨스도 없지 않았으나 이후에 펼쳐지는 역사에서 그의 민족주의에 대한 생각은 보다 깊어지고 체계화된다. 외세의 개입이나 간섭없이 우리 민족간의 자주적이고 평화적인 통일에 가장 중심을 두었던 그가 정작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반독재투쟁으로 일생을 보내야만 했던 시간들이 조금은 아쉬움이 남았을런지도 모른다. 고향 땅에 대한 그리움과 훌륭한 목사가 되겠다는 꿈을 접고 한 시대의 굴곡 속으로 몸을 던져야만 했던 그에게는 이미 자신의 영달과 심지어 자아에 대한 상마저도 접어야만 했으리라.

삶은 어디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가? 그의 파란했던 반독재투쟁, 유신이 무너져내릴 무렵 어이없는 의문사로 삶을 마감했던 그에게 많은 사람들은 아쉬움을 보인다. 하지만 그는 역사속에 민주화를 위한 사명으로 부름받은 한 인간이었으며 자신의 소명과 함께 역사의 무대속으로 사라진 인물로서 우리들에게 기억되게 되었다. 그의 죽음으로부터 멀지않은 시기에 박정희의 암살과 유신독재체제의 막도 내리게 되니까 말이다. 이렇게 장준하 선생처럼 역사속에서도 자신의 삶과 의미를 다했던 그가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어떤 교훈을 찾게 될까? 인간의 삶은 역사적인 삶과 개인적인 삶이 있다. 물론 정확하게 나눌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때로는 역사적인 무대에서 흔적도 없이 지나가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이렇게 역사의 무대 가장 선봉에서 살다간 사람들도 있다. 문제는 무대의 앞과 뒤가 아니라 그것이 자신의 내면적인 삶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되는가에 있다.

그는 아마 자신의 삶을 후회없이 살았으리라고 생각할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의 삶이 역사적으로 드러난 자리라서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돌이켜봄에 후회없이 자아에 대한 욕망없이 떳떳하게 살았으니까. 함석헌 선생님이 모시던 다석 선생님이나 무위당 선생님같이 역사무대의 전면에 나서지 않으면서도 숱한 사람들 뒤에 묻혀 있으면서도 자신의 역할을 다하시고 살다간 사람들도 또한 얼마나 많을 것인가? 그러하기에 삶의 의미는 자신이 자신에게 내리는 평가에서 얼마나 의미있는 삶을 살았는가가 중요한 것이다. 이러한 관점이 때로는 역사평가에서 민중적인 사관이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는 점들을 보게 해 줄 때가 있는 것이다.

다시 삶이란 무엇인가? 그의 고단한 육체가 약사봉 계곡의 한 곳에 누웠을 때 그의 영혼은 그것을 바라보고 어떤 생각을 했을 것인가? 자신의 삶에 대한 꼭지를 떼는 듯한 가벼운 마음, 내 역할은 이제 끝이 났다고 생각하는 수용의 마음이 그의 가슴 한켠에 자리잡았지 않았을까? 내 삶은 고단했지만 그래도 열심히 보낸 거야. 비록 삶의 의미를 다 깨우치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의 인생은 큰 의미를 가지고 우리의 현대사 곳곳에 그 흔적을 드리우고 있다.

나는 장준하 선생의 삶처럼 무대에 나서는 역할이 주어진 것은 아니다. 나의 삶을 보다 의미있고 가치있게 보내는 것은 무엇인가? 나에게 주어진 삶의 길은 무엇인가? 내면의 소리를 따라 살아온 몇 몇의 세월에 나는 진리를 향해 길을 간다. 그 진리....역사 속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모든 인류의 삶의 궤적 속에서 사람들은 각각 저마다의 삶의 의미와 진리를 찾아서 간다. 그것이 드러난 삶이 어찌되었건 간에...

장준하... fan ㅣ 2004-08-27 ㅣ 공감(1) ㅣ 댓글 (0)


이 사람의 글을 읽는 동안 내내 부러웠던 것은
그의 수려한 외모도 아니고
그의 리더쉽도 아니고
그의 애국심도 아니었다.
그의 웅변력, 그의 지성이 부러운 것도 아니었다.
분명 그러한 모든 것이 뛰어난 사람이지만
내가 부러웠던 것은, 존경스러웠던 것은
무엇에도 굴하지 않는 용기, 그것이었다.

세상 그 무엇도 두려워 하지 않을 수 있는 마음,
그것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등 뒤의 총칼을 무서워 하지 않고 일본군 안에서 탈출을 하고
독재 정권 아래서도 하고픈 말 당당히 할 수 있는 용기,
전기 고문 위혐 앞에서 오히려 당당히 큰소리 칠 수 있는 용기,
그것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글을 읽는 동안 얻은 내 결론은 삶에 대한 긍정, 그리고 믿음이었다.
그는 그가 믿는 기독교 안에서 정의를 믿었고
죽음 조차 가볍게 여겼다.
분명 그는 우리가 모두 하나의 영혼을 가지고 있고
우리의 삶이 어느 시인의 말처럼 한낫 소풍 같아
죽음도 두려워 하지 않을 수 있었으리라.
세상 모든 사람들이 독재와 일제시대에 자기 합리화를 하며
현실에 수긍할 때 그가 당당히 거부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안에 하늘에 대한 믿음, 정의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아깝게 독재 정권 하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한 장준하,,,,
우리가 잃어버린 민족의 지도자였다..

<그 사람을 가졌는가>의 주인공이 나는 누구일지 확신하겠다.
함석헌이란 흰수염 노인에게 아무리 세상이 자기를 속여도
세상을 꿋꿋히 살게 했던 그 한 사람이
바로 이 장준하라는 사람이었겠구나,,,,
충분히 짐작할 수 있겠다.
함석헌 그는 그의 죽음에 얼마나 슬퍼했을까.

그 어떤 강압적인 위협도 두려움 없이 우뚝선 영혼을 어쩌지 못하리라
그들이 힘으로 협박하여도 그 몸은 죽을지언저
그 영혼은 우리에게 영원히 남아있을 터이니..



민족주의 자의 길에서 만난 사람 jesusact29 ㅣ 2004-03-26 ㅣ 공감(0) ㅣ 댓글 (0)


함석헌, 장준하, 신채호, 김 구...

30년을 살았건만 지금에야 이분들을 만나게 되었다.

함석헌선생의 글인 "뜻으로 본 한국 역사"를 읽고는 통곡을 했고, 신채호 선생의 삶을 읽고는 답답했으면 김 구선생을 만났을 때는 민족주의 자의 길을 걷고 있었다.

장준하!!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생소하게 생각하고 알지못하는 인물이다.

한국현대사에서는 빼놓을수 없는 인물이건만 왜 이리도 늦게 만나게 되었는지...

분열된 조국, 독재앞에서 사자후를 토했던 그의 기상이 오늘날 이어지고 있지만 옳바르게 이어지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장준하 선생을 정치인들이 기억한다면, 지금 대한민국의 정치는 선진정치의 모범이 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역사의 진실속에 가려진 그의 죽음은 꼭 밝혀져야 한다.

그것이 보내는 이땅의 민족주의가 살아있다는 증거을 후세에 알리며 그를 잊지 않는 역사의 자국의 될 것이다.

"장준하의 죽음은 별이 떨어진 것이 아니라 보다 새로운 빛이 되어 우리의 앞길을 밝혀주기 이해 잠시 숨은 것일 뿐입니다." - 장준하의 영결미사 때 추기경 김수환이 한 강론-

꺼지지 않는 민족의 등불 rno21 ㅣ 2004-01-24 ㅣ 공감(3) ㅣ 댓글 (0)
장준하의 삶은 그 자체가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이다. 소년 시절 브나로드 운동에 참여하였고, 일본 유학시절 일본군에 징집되자 탈출하여 중국 대륙 6000리 길을 걸어 임시정부에 도착, 광복군 활동을 하였다. 그의 투쟁은 해방 후에도 계속되는데 어두운 지식인들의 등대가 된 [사상계]를 발간하여 이승만 정부에 대항하였고, 전국민의 민주화 염원을 군홧발로 짓이기고 등장한 박정희의 군사독재에 맞서 아홉 번 옥고를 치른다. 그 와중에 제 7대 국회의원에 옥중출마하여 당선이 되고, 필리핀에서 언론 문화부문 막사이사이상(아시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을 수상하기도 한다 (장준하와 함께 막사이사이상을 함께 수상한 사람 중에는 테레사 수녀도 있었다)

[장준하 : 민족주의자의 길]
절로 숙연해 지고, 때로는 가슴을 치며 분노하다가도, 마지막엔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는 책
두말할 나위 없이 이 땅의 젊은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

‘장준하’는 이제 내 삶에 꺼지지 않는 등불이 되었다
그 눈부신 빛 앞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도록 노력할 것이다
(아울러 어서 빨리 장준하의 사인(死因)이 규명되기를 소망한다)

덧붙임 : 박정희가 김재규의 총탄에 죽었을 때 일본의 한 신문에 ‘일본의 마지막 군인이 죽었다’는 기사가 나왔다고 한다. 그 기사의 요지는 박정희가 그렇게 오랫동안 군림하면서 정치적 파벌을 만들지도 않고, 사유재산을 따로 모아놓지도 않았다는 점에서 ‘사무라이 정신’을 실천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따지자면 (그 ‘사무라이 정신’이라는 것은 쓰레기통에 쳐박아 놓고 보더라도) 광복군이자 임시정부의 요직에 있었으면서도 해방 후에 그 어떤 정치적인 요직도 거절하고 언론운동에 투신한, 그리고 박정희 정권의 그 부패한 시대에 국회의원을 하면서도 (장준하 역시 처음에는 당에 소속되어 있었으나 파벌 싸움에 실망한 나머지 탈당하여 무소속으로 활동한다) 항상 빚에 쪼들려야 했던 장준하야 말로 진정한 위인이 아니겠는가. (또한 박정희가 사유 재산을 챙겨놓지 않았다는 말은 검증이 필요하다)

“대한민국 대통령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단 한 사람, 박정희는 자격이 없다”
장준하 선생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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