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3-03
'미투'에 뜨끔한 한국 사회..진보·보수 양측서 트집 | Daum 뉴스
'미투'에 뜨끔한 한국 사회..진보·보수 양측서 트집 | Daum 뉴스
'미투'에 뜨끔한 한국 사회..진보·보수 양측서 트집허진무 기자 입력 2018.03.03. 10:43 수정 2018.03.03. 10:48 댓글 3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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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한국 사회에 ‘미투(#MeToo·나도 고발한다)’ 운동이 번지면서 ‘불순한 의도’나 ‘특정 세력의 공작’을 의심하며 반발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최근 각계각층의 성범죄 피해자들이 ‘미투’ 운동에 나서면서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 이윤택 연희단거리패 대표, 고은 시인, 조민기·조재현·오달수 배우, 하용부 인간문화재, 박재동 시사만화가, 조근현 영화감독, 배병우 사진가, 한만삼 신부 등이 가해자로 지목됐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지난달 2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미투 운동이 우리당 국회의원을 음해하기 위해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라며 “좌파 문화 권력의 추악함만 폭로되는 부메랑이 될 줄 저들이 알았겠냐”라고 적었다. 그러면서 홍 대표는 “내가 하지도 않았던 45년 전 하숙집에서 일어났던 사건을 쓴 자서전을 두고 아직도 나를 성범죄자로 거짓 매도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홍 대표는 대학 시절 친구의 성범죄 모의에 ‘돼지발정제’를 구해줬다는 일화를 자서전에 적은 것이 드러나 비판을 받은 바 있다.
대전가톨릭대 총장 김유정 신부는 아프리카 수단에서 여성 신도를 감금하고 성추행한 한만삼 신부를 옹호하는 글을 지난달 2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김 신부는 “보도의 저의가 상당히 의심스럽다. 한 신부님은 7년 동안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했지만 용서받지 못했던 것 같다. 한 신부님이 열심히 사회 정의와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헌신하고자 했던 까닭이 7년 전 자신의 죄에 대한 보속의 의미는 아니었을까”라고 적었다. 논란이 일자 다음날 김 신부는 글을 삭제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 페이스북 화면 갈무리
진보 성향으로 알려진 인사들도 미투 운동에 제동을 걸었다. 방송인 김어준씨는 지난달 24일 자신이 진행하는 팟캐스트 ‘다스뵈이다’에서 최근 벌어지는 ‘미투’ 운동이 진보적 성향 인사들에 대한 ‘공작’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공작의 사고방식으로 보면 피해자들을 좀 준비시켜서 진보매체를 통해서 등장시켜야 되겠다. 문재인 정부의 진보적 지지자들을 분열시킬 기회다. 누군가들이 나타날 것이고 그 타겟은 결국 문재인 정부, 청와대, 진보적 지지층”이라고 말했다.
김씨의 발언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금태섭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피해자들의 인권 문제에 무슨 여야나 진보·보수가 관련이 있나. 진보적 인사는 성폭력 범죄를 저질렀어도 방어하거나 드러나지 않게 감춰줘야 한다는 말인가. 깊이 실망스럽다”고 비판했다. 논란이 커지자 김씨는 “미투를 공작에 이용하는 자들이 있다고 말한 것이지 미투가 곧 공작이라고 한 적 없다”라고 해명했지만 정치적 공작 가능성을 언급한 것 자체가 피해자에게 2차 가해라는 비판을 받았다.
안중찬 출판기획자 페이스북 화면 갈무리
더불어민주당의 당명 제안자로 알려져 있는 출판기획자 안중찬씨도 지난달 2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진과 함께 “제가 꽃다운 나이에 최태민 목사에게 그런 일을 당했음에도 40년 넘는 세월 동안 그저 뭣도 모르고 참아왔다. 그때 제대로 고발하지 못한 바람에 그 딸에게도 발목이 잡혀 나라까지 말아먹었다. 저도 미투 운동에 동참하고 싶다”라는 글을 올렸다. 글 밑에는 ‘503호에게 미투를 허하라’라는 해시태그도 달았다. 피해자의 고통을 ‘박근혜 패러디’로 이용했다는 비판이 이어지자 안씨는 글을 삭제하고 2일 “제가 미투 운동을 조롱하고 여성을 비하하는 주요한 인물로 비친 점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변명하지 않겠다”라며 사과문을 올렸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2일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사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오랜 적폐가 성차별인데 진보·보수 상관없이 공기처럼 자연스러운 성차별 구조가 형성돼왔다. 진보 운동 안에서도 성차별 문제는 늘 특수하고 사소한 문제로 취급되고 유예됐다”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큰 변화가 시작될 것이라고 본다. 미투 운동은 여성이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선언이다. 오히려 남성도 성평등 인식을 성장시켜 더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여성학자 정희진씨는 “여성의 몸에 대한 남성의 폭력은 가부장제의 역사처럼 오래됐다. 여성이 겪는 일상적 폭력이 미투 운동을 통해 사회 문제로 드러난 것이다. 절도죄에 배후가 있다고 말하지 않는 것처럼 성범죄도 마찬가지다. 여성이 자신의 피해 경험을 말하는 거대한 사회운동을 ‘공작’이라고 보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정씨는 “‘피해자는 순수해야 한다’라는 고정관념은 여성이 성범죄 피해를 숨기고 자기검열도록 강요하는 남성 중심 사회의 문화권력”이라며 “미투 운동은 아주 상식적인 범죄 고발”이라고 강조했다.
<허진무 기자 imagi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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