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3-31

왜 'NL=주사파'라는 인식이 생겼을까 - 오마이뉴스 모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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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NL=주사파'라는 인식이 생겼을까
NL이 살리고 죽인 것, 박찬수의 < NL현대사 >
임미리(eims)등록 2017.12.11 11:41수정 2017.12.15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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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씨 크게보기원고료주기인기기사 더보기김영환, 조혁, 홍진표, 하영옥, 한기홍, 심진구, … 배OO, 박영진, 송경동, 이진경, 백태웅, 황장엽, … 최환, 박종철, 이산하, 윤민석, … 문익환, 조성우, 김남주, 임수경, … 신지수, 하태경, 허현준, 최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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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찬수의 는 ‘북한’이란 금기를 뛰어넘은 강철서신의 등장에서 반독재 투쟁, 문익환 목사의 통일운동, 전대협과 한총련, 안기부와 프락치, 통일진보당 해산, 뉴라이트 논란까지를 다루고 있다. ⓒ 인물과사상사김영환에서 시작해 최순실로 끝나는, 신간 <NL현대사-강철서신에서 뉴라이트까지>에 등장하는 인명을 파일에 정리해 보았다. 이 자체로 한국현대사를 재구성할 수 있는 이름들이기 때문이다. 모두 247명이고 대체로 지금도 활발하게 활동 중인 사람들이다. 이와 함께 수없이 많은 인용 부호는 저자가 얼마나 많은 인물을 직접 만나 인터뷰 했는지를 알려주는 대목이다.

현직 기자인 저자의 강점이 여실히 드러나는 이 책은 2012년 소위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사태' 때 한겨레신문 편집국장을 맡았던 박찬수가 썼다. 어떤 기사를 내보내도 진보진영 내 어느 한쪽으로부터 흠씬 두들겨 맞을 수밖에 없었을 시절이다. 그만큼 당시 NL은 한국사회에서 '뜨거운 감자'였다. 그런 점에서 책에 나온 247명 중 익명이 27명에 불과하다는 것은 의외다. 논란을 감수하겠다거나 내용에 자신 있다는 얘기다.

책은 무수한 인명과 단체, 사건을 질료로 삼아 NL의 태동과 분화 그리고 쇠퇴를 그리고 있는데 주목할 것은 주사파와 NL을 구분한 것, 거꾸로 왜 'NL=주사파'라는 인식이 일반 국민에게 각인됐는가를 설명하는 부분이다.

책은 "'주사파'나 '전향 주사파'가 NL의 큰 줄기는 아니다. 주체사상을 따랐다기보다는 민족 문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해 NL 노선을 지향했던 수많은 '보통 사람'이 있다."고 하면서 주사파가 NL의 전부인 것처럼 여겨지게 된 것은 1994년 박홍 서강대 총장의 "주사파의 대학 침투" 발언 이후부터라고 한다.

소수에 불과한 주사파가 NL운동권 전체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것은 민족주의, 대중노선, 품성론 때문이고, 반면 NL 내부를 복잡하고 중층적으로 만든 것은 수령론과 후계자론 때문이라고 한다. 저자는 1970년대 재일동포 작가 이희성의 소설 <금단의 땅>에서 통혁당 당원 나도경과 남한의 독자적 사회주의자 박채로가 벌이는 논쟁을 소개하는데 북한의 권력세습과 관련한 좌파의 분열이 최근의 일만은 아님을 말해준다.



전대협이 <시사저널> 여론조사에서 여당과 야당에 이어 '한국을 움직이는 단체' 3위에 올랐던 1990년 무렵을 소개할 때는 무협지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다. 임종석이 전대협 의장이 되자 대학총장협의회에서 한양대 총장의 발언권이 세지고 한양대 대학입시 합격선이 올라갔다. 또 집회 때마다 '가짜 임종석' 50명을 모집해 임종석의 탈출을 돕게 하면서 '임길동'이란 말이 나오게 됐다. NL의 전성기이자 한국 학생운동의 전성기는 실제로도 한 편의 무협지였는지 모른다.

'잘나가던' 학생운동이 침체의 길로 접어들게 된 근본적 이유는 서클 해체에서 찾고 있다. 서클 해체는 김영환이 주도했다. 하영옥과 이진경은 "서클이 사라짐으로써 학생운동의 재생산구조가 무너졌"고, "서클 해산은 전공만 남겨놓고 교양학부를 없앤 것과 마찬가지"라고 설명한다. 서클은 유연하고 자유로웠으나 이를 대신한 전대협이나 한총련은 일사불란함과 목표만을 중시하고 그걸 유지하기 위해 권위를 강조하면서 결국 대중의 외면을 받았다는 것이다.

1990년대 중반 통일운동의 분열과 NL의 쇠퇴를 그리는 부분에서는 어떤 정파에서 활동했건 간에 아픔을 느낄 것 같다. 1994년 1월 17일 범민련 해외본부에서 "새통체를 추진하는 사람 중에 김영삼 정부 프락치가 있다"는 팩스가 오고 그 다음 날 문익환 목사가 사망한 일, 1996년 8월 연세대에서 5,848명이 연행되고 462명이 구속된 일, 당시 연세대 총학생회장이었던 박병언이 '영웅적인 항쟁'을 이야기 해달라는 후배들의 요청을 거절하고 20년 뒤 숨진 김종희 이경의 묘소를 참배한 일 등. 이즈음 한총련 내부에서 유행했다는 구호 '신념의 강자'는 요즘 SNS상에서 사용되는 '정신 승리'라는 말을 떠올리게 해 씁쓸하다.

NL과 학생운동이 쇠퇴한 뒤 주사파는 양극단의 모습으로 대중에게 나타났다. 하나는 1990년대 후반 결성돼 2012년 통합진보당 사태로 세간에 알려진 민혁당이고 다른 하나는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때 박근혜의 '구보수'와 경쟁한 이명박 측의 '신보수', 즉 뉴라이트다.

앞엣것이 시대를 역행한 지하전위당이라면 뒤엣것은 '시대정신'을 앞세웠으나 마찬가지로 시대를 역행하며 "폭력적 국가주의에 충실하게 복무"한 집단이다. 2017년 5월 <시대정신>의 폐간이 조선일보 1면에 실렸다. 저자는 이에 대해 최순실 국정농단사건을 계기로 파산한 구보수의 대안으로 다시 신보수(뉴라이트)에 눈을 돌리는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책을 마무리한다.

한국의 학생운동은 전 세계에서 유래가 없을 정도로 오랜 기간 한 나라의 저항운동을 주도해왔다. 더욱이 그중에서도 NL은 1980년대 중반부터 30년에 가까운 시절 동안 학생운동을 이끌었다. 이처럼 NL은 한국 현대사를 이해하는 데 빠져서는 안 될 사조이자 운동이다. 어쩌면 지난 30년 간 행해진 지배와 그에 대한 저항의 역사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책이 NL '현대사'라는 이름을 단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간 NL에 대한 책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편향돼 있다. 반공주의나 국가주의 시각에서 북한의 하수인쯤으로 치부해버리는가 하면 '전향 주사'가 쓴 반성문이나 자기애가 넘치는 회고록이 많았다. 또 NL의 실체를 엿볼 수 있는 것도 더러 있지만 단편적인 모습을 그리는 데 그쳤다. 그래서 박찬수가 쓴 <NL현대사>는 언젠가 나오기를 기다렸는데 드디어 나오게 된 그런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객관적이고 사실적인 조명을 통해 '뜨거운 감자' NL에 대한 사회적 성찰을 본격화시킬 수 있는 그런 책 말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애큐매니안>에 중복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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