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4-05

제주의소리:“90여 평생 나를 움직이는 원동력, 제주4.3 학살에 대한 복수”

제주의소리:“90여 평생 나를 움직이는 원동력, 제주4.3 학살에 대한 복수”

“90여 평생 나를 움직이는 원동력, 제주4.3 학살에 대한 복수”
2017년 10월 04일(수) 10:10

한형진 기자 cooldead@naver.com



▲ 대하소설 《화산도》 저자 김석범이 한국을 찾았다. 그는 한결같은 목소리로 제주 4.3의 정명 찾기가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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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대하소설 《화산도》 저자 김석범 “내년 4.3 70주년, 정명 못할 바에는 백비 치워라”


여기 한 남자가 있다.


1925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났지만 부모가 살던 제주도를 자신의 고향으로 여긴다. 피 끓는 청춘 시절엔 현해탄을 오가면서 해방에 대한 기대, 새로운 조국을 만들겠다는 꿈도 품었다. 그러나 오사카 밀항선에 몸을 실었던 1946년을 끝으로, 다시는 고향에 정착할 수 없었다. 꿈과 기대는 그저 상상으로만 남았다. 모국을 방문하는 건 그로부터 42년 뒤 일이다. 고향 제주에서 벌어진 4.3이란 참혹한 역사. 그러나 구사일생 탈출한 이들을 통해서만 접할 뿐, 먼 발 치에서 지켜보는 것이 전부였다. 스스로 밝히듯 “떳떳하지 못함”, “함께 하지 못했다는 부담감” 같은 복합한 감정에 사로잡힌다. 무엇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자살까지 생각한 그는 펜을 들었다. 1965년부터 집필을 시작해 1997년 종지부를 찍은 대하소설 《화산도》는 이렇게 탄생했다. 재일동포 작가 김석범(92)은 이렇게 살아왔다.


김석범이 한국에 왔다.


통일이란 주제에 천착해온 소설가 이호철을 기리는 ‘제1회 이호철통일로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면서다. 앞서 박근혜 정부는 2015년 10월 김석범의 입국 요청을 거부했다. ‘이승만 정부가 친일파·민족반역자 세력을 등에 업고 탄생했으며, 제주도를 빨갱이 섬으로 몰아붙였다’는 제1회 제주4.3평화상 수상소감을 문제 삼은 것이다. 묵은 적폐를 몰아내자는 촛불혁명과 그에 힘입은 새로운 정부는 입국 제한이란 족쇄를 풀었다. 다시는 모국을 찾지 못하리라 상심한 작가 역시 노쇠한 몸을 이끌고 힘을 내서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9월 16일부터 19일까지 짧은 일정이었지만, 가로막던 장애물이 없어진 덕분인지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3박 4일 내내 놀라운 열정과 총명함을 발산했다.


“4.3의 역사 자리 매김은 동시에 8.15 이후 한국 해방 공간의 역사 바로 세우기, 역사 재검토, 재심과 불가분의 과업으로 생각한다.”


“해방공간 안에서 학살을 동반한 폭력행사로 세워진 이승만 정부의 정통성을 꾸며내는데 온갖 술책이 동원되었으며, 그 중 대학살을 당하고 이승만 정부 수립의 희생양으로 바쳐진 것이 제주도이다.”


“이승만 정권의 정통성과 4.3 대학살은 불가분의 관계이며, 이것을 똑똑히 밝혀야 한다.”


9월17일 경기도 파주 DMZ(비무장지대) 유스호스텔에서 열린 이호철통일로문학상 시상식에서 그는 변치 않는 역사 인식으로 당당히 수상 소감을 밝혔다. 다음 날 서울 은평구청 숲속극장에서 열린 김석범 문학 심포지엄에서는 “내 문학은 정치적이며 반권력적·반체제적인 문학인 동시에, 정치성을 극복·승화하는 예술”이라고 설명했다.


시상식 이후 새벽까지 기쁨의 술잔을 기울이고, 4시간에 걸친 심포지엄도 처음부터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쉬는 시간 마다 친필 사인을 받으려는 사람들의 요청을 반기면서, 심포지엄 발표 내용을 조금 더 자세히 듣기 위해 단상 위에까지 올라가 귀를 기울였다. 92세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았다.




▲ 9월 18일 서울 은평구 숲속극장에서 열린 김석범 문학심포지엄에서 '화산도' 책 사인을 해주는 김석범. ⓒ제주의소리


▲ 심포지엄 주제 발표자의 발표를 조금 더 자세히 듣기 위해 단상 위로 올라가 귀를 기울이는 모습. ⓒ제주의소리


기자가 김석범과 대면할 수 있는 시간은 심포지엄까지 끝난 오후 6시부터 30분 남짓. 제주4.3 제70주년 범국민위원회가 마련한 간담회였다. 내년 4.3 70주년을 준비하는 범국민위원회에는 제주지역 67개 단체, 전국단위 89개 단체, 국회의원 126명 등 사회 각계 인사가 참여하고 있다. 이날 현장에는 김수열 범국민위원회 운영위원장, 주진오 상임 공동대표, 허상수 국제사업 특별위원장 등이 참여했다. 여건 상 30분 밖에 주어지지 않은 짧은 시간이었고, 작가 역시 연이은 일정을 소화하느라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그렇게 어렵사리 말문을 뗐지만 4.3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쏟아낼수록, 두 눈에는 점차 활기가 돌았다. 날카로움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김석범이 이 자리에서 받은 질문은 범국민위원회가 던진 ‘4.3 70주년을 맞아 하고 싶은 말’, 기자의 ‘당신을 움직이는 원동력’ 그리고 ‘사람들에게 어떻게 기억되고 싶나’까지 세 가지다. 촉박한 시간에도 불구하고 그는 ‘김석범’이라는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살아왔는지, 4.3이란 역사를 어떻게 기억하는지 잘 들려줬다. 나아가 여전히 제 이름을 찾지 못한 4.3의 방향을 제시하고, 70주년을 준비하는 이들에게도 분명한 메시지를 전했다.


답변 전문을 아래에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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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년이면 4.3 70주년이다. 70년을 앞두고 한 말씀 해 달라.


: 한국에 살지 못하고 일본에 사는 입장에서 말하자면, 본국에서 진행하는 4.3 운동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하나의 부탁이다. 우리는 나름대로 일본에서 4.3을 위해 움직이면서, 예전에는 생각지 못할 정도로 일본에서 4.3에 대한 인식이 확대됐다. 내년 70주년을 맞아서도 여러가지를 생각하고 있다. 제주에서는 ‘4.3의 해결’이라고 하는데, 난 해결이라고 쓰지 않겠다. 4.3의 해방이다. 내년 70주년을 앞두고 가지는 희망이자 요청인데, 한국에서 못한다면 우리 나름대로 하겠다. 무엇이냐면 4.3의 완전 해방이다.


4.3의 해결이라면 보상 같은 물질적인 면을 강조한다. 진심으로 희생자와 유가족을 위로하려면 역사를 바로 세우는 것, 즉 4.3투쟁이 옳았고 4.3이 정의의 투쟁이고 항거라는 것을 밝혀야 한다. 이호철통일로문학상 수상소감에서도 썼지만 4.3은 ‘내외 침공자에 대한 정의의 방어 항쟁’이다. 내(內)는 이승만, 외(外)는 미국이다. 물론 미국은 표면에 나타나진 않는다. 이승만 정권을 세우는데 우리(제주)가 희생양 될 필요가 무엇이 있냐. 그걸 바로 세우라는 것이다. 4.3은 정의 투쟁, 인민 투쟁, 혁명이라는 것을 역사에 남기기 위해서 싸워야 한다. 그걸 70주년에 남기기 위해서 구체적인 방법으로 4.3평화공원 백비를 정명해서 세워야 한다. 지금도 하지 못해 10년, 20년 그대로 두겠다면 그럴 바에는 치워라. 언제까지 이대로 두겠느냐. 죽은 사람과 같다.


4.3은 빨갱이들의 폭동이 아니다. 이승만의 엉터리, 가짜 정통성에 희생된 역사 가운데 하나가 4.3이다. 조병옥(1945년 경무부 부장 역임)은 제주도민 수십만이 없어져도 대한민국은 하등의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여러분은 젊으니까 잘 생각해봐라. 기억은 살아있는 사람 때문에 있는 것이 아니다. 100년, 200년, 먼 미래 후손들이 기억을 재생할 때 비로소 역사로 남는다. 현지에서 싸우는 여러분들이 수고하지만 이건 당연히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일본에 있는 우리들의 소원이다. 70주년 기회를 놓치고 다음으로 미루자는 건 결코 있을 수 없다. 내년에 ‘정명 비석’을 세우지 못하면 백비는 없는 게 옳다. 지금은 싸울 때다. 가만히 있어서 청원하는 식으로 가면 안된다. 당연히 평화적인 싸움이다. 우리가 직접 할 수 없기에 부탁해서 미안하지만 기대이자 부탁이고 소원이다.



▲ 4.3평화공원에 누워있는 백비를 이름 새겨 세워야 한다고 강조하는 김석범. ⓒ제주의소리



▲ 신중한 표정으로 안경을 올리며 질문에 집중하는 모습. ⓒ제주의소리


모든 운동에는 적대세력도 생기고, 잘못을 할 때도 있다. 잘못을 되풀이하고 넘어서면서 진전하는 것이지, 편안하게 한 길 가듯이 하면 문제나 어려움을 풀 수 없다. 이번 70주년은 해방 70주년과 겹치지 않느냐. 보통 때가 아니다. 해방공간의 역사 청산이 이번에 안 된다면 세계사적으로도 부끄러운 일이 된다. 난 소설쟁이에 불과하지만 한국의 역사가들이 해방공간에 대한 역사 청산을 했다면, 난 소설만 썼지 이런 이야기는 안했다. 이덕구를 상 주자는 게 아니다. 이승만 정권 수립과 4.3이 이어진다는 걸 잊으면 안된다. 학살! 그저 4.3이 아니라 4.3은 투쟁이지만 학살이 동반됐다. 민주진영이 승리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초의 제노사이드가 제주도 작은 섬에서 벌어졌다. 70년이 지났어도 4.3은 제주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문제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정명 하지 못한다면 백비는 없는 것이 좋다.


- 당신을 움직이는 원동력은 무엇이냐.


: 여러 가지가 있지만 주된 것은 제주도 학살에 대한 복수다. 복수란 것은 꼭 학살자를 잡아넣어 죽이란 말이 아니다. 수만 명을 학살해놓고...이런 세상이 어디 있느냐. 70년 동안 제주 사람들이 잘 참았다고 본다. 너무 억울해서 당연해서 습관화 됐다
. 기억이 없어지면 역사가 없어진다. 70주년은 중요한 포인트다. 70주년에 못하면 80주년에 한다는 그 따위 말하는 사람은 싸울 생각이 없는 셈이다. 싸워야 한다.


- 사람들에게 어떻게 기억되고 싶나.


: 그건 상관없는 일이다. 김석범이 아닌 4.3을 기억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똑똑히 기억해라.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프랑스는 나치 부역자들을 정식 재판에 넘겨 처형했다. 한국은 반민족행위 처벌법으로 체포했는데 감옥에 1년이나 간신히 있었나. 이건 빨갱이 노릇만 아니면 아무 짓을 해도 좋다는 말이다. 그러니 제주도 놈들은 죽여도 좋다는 거 아니냐. 다 빨갱이니까. 평화를 말하기 전에 4.3에 대한 깊은 원한을 풀어야 한다. 70주년에 정명 하나 하지 못해서 무슨 운동인가.


- 내년에 꼭 건강한 모습으로 제주에 와서 함께하길 바란다.


: 백비를 세운다면야 간다. 안세우면 안 간다. (웃음)




▲ 환하게 미소 짓는 김석범.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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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o De Anteojos Rojo
2017-10-21 15:40:42
추천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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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부르주아 지식인들처럼 4.3을 단지 (`이승만 정권과 공산 빨갱이의 싸움에 의한`) 양민들의 `희생`으로 보는 것도 아주 졸렬한 시각이다. 김석범 선생님이 말씀하셨듯이 `4.3은 ‘내외 침공자에 대한 정의의 방어 항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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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은선
2017-10-08 19:17:57
추천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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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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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에쏙
2017-10-08 05:56:19
추천9
반대1

92세 어르신의 말씀대로 제주에서 자행된 제노사이드 희생자분들과 유가족들의 복수 꼭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아직 생존할지 모르는 살인자들과 가해자 후손들 무조건 참회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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