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4-01

[제914호]민혁당과 주체사상, 위험한 질문에 답하다 : 표지이야기일반 : 표지이야기 : 뉴스 : 한겨레21



[제914호]민혁당과 주체사상, 위험한 질문에 답하다 : 표지이야기일반 : 표지이야기 : 뉴스 : 한겨레21



민혁당과 주체사상, 위험한 질문에 답하다
종북 논란, 극우언론의 소설과 당사자의 침묵 사이에서 합리적 의심의 길을 찾아… 종북 논란과 민혁당의 실체, 차마 묻지 못했던 질문을 용기내 10인의 전문가에게 묻고 판결문을 뒤지다
제914호
등록 : 2012-06-07 15:56 수정 : 2012-06-08 14:49

뇌를 열어보겠다는 생각은 300년 전에도 있었다. 17세기 일본 막부 정권은 체제 안정을 위해 희생양이 필요했다. 당시 ‘기리시탄’으로 불린 기독교인들이 먹잇감이 됐다. 문제는 누가 기독교인인지 찾아내는 것이었다. 교인 명부와 같은 증거가 없는 한 같은 피부색의 국민 가운데서 기독교인을 가릴 방법이 없었다. 권력자들이 방법을 고안했다. 그중 하나가 ‘후미에’(踏み繪)다. 그림을 조각한 판을 밟는다는 뜻이다. 막부는 마리아상이나 십자가를 새긴 동판 등을 만들었다. 기독교인으로 의심되는 사람들을 불러모았다. “성모 그림을 밟고 짓이기라”고 명령했다. 제대로 짓밟지 못하면 기독교인으로 간주돼 처형됐다. 그러므로 전원책 변호사의 지적 수준은 300년 전 일본 막부 관료와 닮았다. 그는 최근 방송 토론회에서 ‘한국판 후미에’를 제안했다. 이미 세상을 뜬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욕하지 못하면 종북주의자라는 것이다. 질문은 사라지고 사상 검증만 남는다.

다시, 질문은 사라지고 검증 반대만 남는다. 통합진보당 ‘당권파’도 그것을 거든다. 발단은 당내 경선 부정과 패권주의 문제였다. 새누리당과 보수언론이 이념 논쟁으로 쟁점을 비틀었다. ‘종북몰이’는 과거 집권당의 대북정책조차 종북으로 비난하는 극우적 잣대와 ‘한국판 후미에’를 고안하는 방법의 폭력성을 모두 가졌다. 이런 상황의 폭력성을 이유로 통합진보당 민족해방(NL) 계열 당권파 의원들은 북한과 관련된 모든 질문을 비판한다. 이상규 의원은 지난 5월22일 방송 토론에서 북핵, 북한 인권, 3대 세습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에 “사상 검증, 양심의 자유를 옥죄어가고 있는 것”이라며 답변을 거부했다. 그는 며칠 뒤 라디오 방송에서 답했지만, 설명은 추상적이었고 논점을 비켜갔다. 다른 NL 계열 당권파 의원들도 이 문제에 의견을 밝히지 않는다.

사상 검증과 검증 반대의 두 데시벨 높은 목소리 사이에서, 퇴행적 이념 논쟁은 건설적 정책 논쟁으로 발전할 길을 찾지 못한다. 사상 검증은 문제지만 국민 세금으로 국고보조금을 받는 공당의 직업적 정치인에게 정책에 대해서는 질문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유권자는 보수언론의 소설 쓰기와 진보언론의 침묵 사이에서 서성인다.

‘진보언론이 패권주의 논쟁을 넘어 통합진보당의 대북정책을 묻는 순간 새누리당의 프레임에 낚이는 것’이라는 예측 가능한 비판을 감수하며 <한겨레21>이 이번 기획에 나선 이유가 있다. 300년 전 일본 막부 수준으로 돌아간 한국 사회에서, 질문은 사라지고 단정만 남는다. 질문에 답하지 않으면 종북이라는 색깔론과 모든 질문은 종북몰이라는 역색깔론 모두, 질문의 소멸을 거든다. 합리적 독자들이 통합진보당 의원들에게 가질 법한 의문을 정리했다. 알파와 오메가를 담으려 했다. 동시에 유권자의 정당한 질문에 마녀사냥의 오물이 묻으면 안 된다는 점도 고민했다. 예측 가능한 비판과 쟁점을 검토하고 학계의 조언을 종합해 질문 문항과 질문 대상을 고통스럽게 선별했다. <한겨레21>의 의도는 하나다. 화가 고야의 작품 제목처럼, 이성이 잠든 사이 괴물이 태어난다. 마녀사냥은 합리적 질문이 금지될 때 기승을 부렸다. 합리적 질문이 복권돼야 했다._편집자




대다수 정치학자·북한학자들은 공인으로서 국회의원이 견해를 밝혀야 한다고 지적한다. 왼쪽부터 차병직 법무법인 한결한울 변호사,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상임이사,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송기춘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왼쪽부터 김세균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김창수 한반도평화포럼 정책연구팀장, 김근식 경남대 정치학과 교수.


■북한 관련 질문- 사상의 자유 침해인가 유권자의 알 권리인가?



북핵, 북한 인권, 3대 세습 등에 대한 질문 자체가 사상 검증이나 색깔론에 해당한다는 게 NL 계열 당권파 의원들의 시각이다. 그러나 진보 진영 안에서도 다른 견해가 나온다. 헌법기관이자 직업적 정치인인 국회의원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사상을 폭력적으로 묻는 방식이 아니라 정책적 질문이라면 유권자가 질문할 권리를 갖는다는 주장이 적지 않다. <한겨레21>은 북한 전문가, 정치학자 등 다수에게 전화해 이 중 10명과 통화했다. 공통 질문은 이렇다. ‘북핵, 북한 인권, 3대 세습 등 정책과 관련한 질문을 통합진보당 의원에게 하는 것이 사상의 자유 침해에 해당하는가, 아니면 유권자는 직업 정치인인 국회의원에게 질문할 권리가 있는가.’ 북핵 문제처럼, 실체가 있는 사건이 벌어지고 그 사건에 대한 대처가 외교안보의 중요한 주제가 될 경우 정책적 질문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수십 년간 사상의 자유를 옹호해온 학자, 전문가 다수가 질문할 권리 쪽에 손을 들었다. 그러나 온도차가 있었다. 법무법인 한결한울의 차병직(53) 변호사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과 참여연대 등에서 인권운동에 헌신해왔다. “종북이란 말은 말 그대로 북한을 따른다는 건데, 그게 옛 대남 적화통일을 따른다는 건지, 북한 당국을 독립된 정부로 인정한다는 건지…(정해진 게 없다). 층위가 다양한데 그걸 미리 정리하지 않고 북은 악이고 종북주의도 악이라고 하는 것은 비민주적이다. 최근 전원책 변호사가 종북주의자가 아니면 김정일 국방위원장 욕을 해보라고 했는데 그런 코미디가 어딨나. 마치 성상이나 십자가를 놓고 밟으라고 하는 것과 같다. 옛날의 사상전향 제도보다 더 극단화한 치졸한 짓이다. 전원책씨 같은 사람이 보수논객 대접을 받는 것은 무지하지만 솔직하기 때문인데, 지금 우리 사회가 전원책식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나아가 사상의 자유를 다른 차원에서 변호했다. “종북주의자를 전형적으로 북의 대남 적화노선을 추종하는 위험한 세력이라고 가정한다면, 그리고 이석기 의원 등이 실제로 그런 사람이라면 우리가 이미 정체를 알고 있는 거 아닌가. 그렇다면 그들이 국회에 들어오는 게 뭐가 무서운가. 모르고 들어오면 무섭지만 오히려 잘된 거지. 일본에는 공산당도 있다. 오히려 우리 체제의 민주성을 증명하는 것이다. 정체를 안다면 오히려 좋은 기회가 아니냐고 반문도 할 수 있다. 그 사람들이 들어와서 어떤 식으로 하는지, 구체적으로 어떤 위험을 초래하는지 실험의 기회가 될 수 있다.”

차 변호사는 ‘국회의원이라면 3대 세습 등 대북정책에 대해 답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색깔론을 경계하면서도 찬성을 표했다. “조용환 변호사가 헌법재판소 재판관 청문회에서 천안함 사건이 북의 소행임을 확신하느냐고 요구받은 것과 유사할 수 있다. 나도 천안함과 국가보안법, 북한 문제에 대해 공식석상에서 질문받으면 솔직히 대답하기 싫다. 종북주의자가 아닌데도 그런 질문 자체가 불쾌하고 싫다. 신경 써서 대답해도 조용환 변호사는 저렇게(낙마) 돼버리지 않았나. 우리 사회가 비이성적이어서 그렇다. 동시에 다른 면에서 보면 국회에 새로 입성한 사람이므로 대답할 의무도 있다. 문제는 상황이 이러니 대답하기 곤란한데다 답변이 왜곡될 수 있다는 점이다.”


“조용환 변호사가 헌법재판소 재판관 청문회에서 천안함 사건이 북의 소행임을 확신하느냐고 요구받은 것과 유사할 수 있다. 나도 천안함과 국가보안법, 북한 문제에 대해 공식석상에서 질문받으면 그 자체가 불쾌하고 대답하기 싫다.”-차병직 변호사


물을 수 있다. 답하지 않을 권리도 있다

오래도록 인권운동에 헌신해온 박래군(51) 인권재단 ‘사람’ 상임이사도 색깔론에 대한 분노와 통합진보당에 대한 안타까움을 동시에 표했다. “사상의 자유는 침묵의 자유까지 포함한다. 우리나라는 위험한 사회다. 3대 세습에 대해 ‘그럴 수 있다’고 말하는 순간 완전히 이상한 사람이 된다. (통합진보당 당권파 의원들은) 평화통일 파트너로 인정하니까 북을 자극하지 말자는 건데, 사상의 자유 측면에서 그런 부분(침묵)은 인정할 수 있다. 설사 어떤 말을 하더라도 그 발언을 색깔론으로 공격하면 안 된다. 그런데 이런 게(사상의 자유) 보장이 안 되는 상황에서 뭔가를 얘기하면 정치적 생명을 보장받을 수 없게 되는 거다. 이런 상황이 통합진보당의 대북정책과 관련한 질문까지 연결되는 측면이 있다. 그럼에도 국회의원은 공인이고 입법 정책에 관한 의무가 있으니 자기 견해를 갖고 있어야 한다. 욕먹더라도 자기 견해를 말할 책임이 있다. 당권파 의원들처럼 말하는 건 위험하다. ‘때 되면 말하겠다’고 하는 건 회피하거나 종북이라는 인상을 주기 딱 알맞다. 무책임하고 어리석다. 얘기를 명확히 해줘야 한다. 문제를 분리시켜 봐야 한다. 부정경선은 부정경선이고 종북 논란은 사상이 아니라 정책 문제로 가져가야 한다. 북핵, 3대 세습, 인권에 대해 대답하지 않는 건 무책임하고 얻어맞기 딱 좋다. …그들(당권파)이 싸워줬으면 좋겠다. 가령 나는 북한 지령을 받고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통일하려면 북과 친하게 지내야 한다, 분단 체제를 끝내려면 관계를 개선해야 한다고 당당하게 얘기하든가.”

정치학자인 박상훈(47) 후마니타스 대표는 대의민주주의에서 국회의원의 책무를 강조했다. “당연히 물을 권리가 있고 답할 의무가 있다. 국회의원이기 때문이다. 그건 민주적 원칙에 꼭 필요한 일이다. 대표를 뽑는다는 건 주권자인 시민이 자신의 일을 대표성이 있는 정치인에게 위임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그 사람(정치인)이 어떤 생각을 가졌고 정치인이 되면 어떻게 행동할지 투명하게 유권자에게 알려야 한다. 이게 미국 정치학자 로버트 달이 절차적 민주주의의 7가지 요건 중 하나로 꼽은 것이다. 그래야만 위임의 결과를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안 되면 유권자가 아니라 정치인이 정치의 주권자가 돼버린다.” 그는 정책을 넘어 북한 사회에 대한 관점도 통합진보당 의원에게 질문할 수 있다고 답했다.

조국(47)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사상의 자유 문제를 천착해왔고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위하여>(책세상)라는 책도 펴냈다. “첫째, ‘너의 사상이 주체사상이냐’고 묻고 답변에 따라 법적 불이익을 주는 것은 무조건 금지해야 한다. 둘째, 그러나 공인에게 ‘당신은 비정규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을 자유가 유권자에게 있다. 북한 인권에 대해 물을 자유도 있다. 여기에 대해 이상규 의원은 방송 토론에서 묵비를 행사했다. 그건 이상규 의원의 선택이다. 답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그러나 동시에 정치인으로서 불이익은 감수해야 한다. 유권자는 질문할 권리가 있다. 그 자체(3대 세습 등에 대한 질문)가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건 아니다. 유권자의 알 권리와 (국회의원의) 묵비권을 동시에 거론해야 한다. (진보는)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에게 매일 묻지 않나. 마찬가지로 3대 세습에 대해서도 물을 수 있다. 북한 사회에 대한 질문도 가능하다. 마치 미국 사회를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처럼.”



‘한겨레21’의 질문에도 침묵하는 이석기·이상규

송기춘(51)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비슷한 시각이었다. “국회의원에게 (정책에 대해) 답변을 요구하는 건 사상의 자유 침해에 해당하지 않는다. 답변을 하고 안 하고는 둘 다 정치적 행동인데, 그에 따른 지지든 비난이든 당사자가 감수하고 선택하는 거다. 즉, 어떤 사안에 대해 (정치인은) 답을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다. 사상의 자유가 있으니까. 그러나 일반 국민과 달리 정치인은 의견 표명을 요구받고 여론의 압력을 받는 것이 예정된 자리이므로 (의견 표명을 요구받는다고 해서) 사상의 자유를 침해받는 건 아니다. 대통령에게 입장을 질문할 때도 양심의 자유 얘기는 안 나오잖나.” 김세균(65) 서울대 교수(정치학)도 “질문을 하는 것은 가능한데, 국회의원이 답하지 않는 것조차 의견 표명에 해당한다. 답하지 않았다고 해서 종북이라고 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김윤철(43)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국민이 알고 싶어 하면 밝혀야 한다. 다만 ‘대북관이 뭐냐’는 질문은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김종철(46) 연세대 로스쿨 교수는 “정책적 질문이라면 국회의원이 답변하는 게 맞다. 다른 사정으로 답변을 유보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양심의 자유라는 이유는 적절치 않다”고 밝혔다.

김창수(48) 한반도평화포럼 정책연구팀장은 참여정부 당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정책조정실 국장으로 근무했다. “방송 토론회 때는 이상규 의원이 감정적으로 본인이 사상 검증을 당한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그럼에도 정책에 대해 국회의원 당선인이 의견을 밝히는 게 필요하다. 정책에 대해 명확히 밝히지 않아 본질과 어긋나게 종북 논란으로 확대돼버렸고 대통령까지 이를 빌미로 종북 논쟁으로 확산시켜버렸다.” 그는 북한 사회에 대한 관점도 물을 수 있다고 봤다. 김근식(47) 경남대 교수(정치학)는 “통합진보당 사태가 애초 촉발된 계기와 달리 색깔론으로 가는 건 문제”라면서도 “제도정당 소속으로 국회에 진입한 현직 국회의원으로서 북한에 대한 입장을 묻는 것에 대해 견해를 밝히는 게 옳다. 북한 사회에 대한 질문도 가능하다”고 밝혔다.

<한겨레21>은 이석기·이상규 의원에게 3대 세습 등 북한과 관련한 문제와 과거 민주노동당의 북한 관련 정책에 대해 묻고자 했다. 서면 인터뷰를 요청했다. 질문은 이런 내용 등을 포함했다. △북핵에 대한 견해 △2006년 북한의 핵실험 뒤 NL 계열 당권파가 “북핵은 자위권”이라고 주장한 것에 대한 견해 △한반도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방안 △핵개발 와중에 북한과의 대화 필요성 여부 △북한에 과거 민주노동당 자료를 제공한 최기영 전 민주노동당 사무부총장의 제명 부결에 대한 의견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 판결에 대한 평가와 견해 △북한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 등이다. 이석기 의원실은 전화·문자메시지 등 연락이 전혀 닿지 않았다. 이상규 의원실은 “취지에는 적극 동의하지만 지금은 답변하기 적절한 때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석기 의원은 판결을 부정하지만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설명하지 않는다. 당시 재판부는 이석기 의원의 ‘당심 법정에서 한 일부 진술’을 증거로 채택했다. 이석기 의원의 진술 가운데 일부가 수사 결과와 일치한다는 뜻이다.










■민혁당 판결과 남는 질문들

1980년대 중반 자기 땅을 사랑했던 대학생들은 저항에서 발을 돌리지 못했다. 1980년 광주 시민을 학살한 군인이 대통령이었다. 그때도 한국군은 작전통제권이 없었다. 미국은 한국 장성이 시민을 학살하려고 부대를 이동시키는 것을 허용했다. 1984년 남북한의 1인당 국민총생산(GNP)은 2천달러 초반으로 비슷했다. 30대도 안 된 젊은이들은 수배·투옥 등을 감수하며 투쟁했다. 싸움은 투박했으나 탄압은 가혹했다. 그들은 삶을 지탱할 목발을 이념에서 찾았다. 1980년대 중반 그중 일부가 북쪽의 독재자에게서 이념을 찾았다. 자생적 주체사상파가 그렇게 탄생했다. 82학번 운동권 김영환도 스스로 주체사상을 공부했다. 1991년 소련이 망한 뒤인 1992년 그는 민족민주혁명당을 만들었다. 그전에 북에 몰래 건너가 창당을 승인받았다. 김일성 주체사상을 지도이념으로 명시한 지하전위당이었다.

훗날 북의 현실에 실망해 주체사상을 버린 김영환씨 등이 1997년 당을 자진 해산했다. 핵심 간부 대부분이 함께 전향하거나 탈당했다. 하영옥씨 등 일부가 해산에 반대했다. 대부분은 평범한 생활인으로 돌아갔다. ‘빨갱이’로 탄압받던 정치인 김대중이 대통령에 뽑히는 세상이 왔다. 민혁당은 역사에서 사라지는 듯했다. 1998년 전남 바닷가에서 북쪽의 정치공작원(간첩)이 탄 반잠수정이 격침됐다. 민혁당 정보가 담긴 수첩이 발견됐다. 수사기관이 공식적으론 이미 자체 해산한 민혁당을 뒤늦게 수사하기 시작했다. 전향한 김영환씨와 민혁당 중앙위원이었지만 1998년 이미 활동을 접고 변호사로 활동 중이던 박아무개씨 등이 민혁당에 대해 수사기관에 소상히 증언했다. 김영환씨, 인터넷 서점 알라딘을 만든 조유식씨, 변호사 박아무개씨는 수사에 협조한 대가로 공소보류 처분을 받아 기소되지 않았다. 하영옥씨 등 3명이 1999년 기소돼 2000년 유죄판결을 받았다.

이석기 의원은 민혁당 경기남부위원장으로 활동한 혐의로 2003년 3월21일 서울고법에서 징역 2년6개월에 자격정지 2년6개월의 유죄판결을 받았다. 그는 2년 넘게 수배를 피해 다니다 뒤늦게 잡혔다. 그는 법정에서 시종일관 혐의를 부인했다. 민혁당 경기남부위원회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3심까지 다투려던 이 의원은 사면 가능성을 현실적으로 검토한 뒤 상고를 포기했고 참여정부 때인 2004년 사면·복권됐다.

이석기 의원의 민혁당 판결에 대한 현재 태도는 사실상 판결 부정에 가깝다. 그는 “민혁당 사건 수사 때부터 재판 때까지 단 한 번도 혐의 사실을 인정한 적 없다”(<한겨레> 2012년 5월9일치 참조)거나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북한과의 아무런 연계가 없다”(5월17일 YTN 라디오)고 밝혔다. 이 의원은 재판 당시 “김영환의 진술 중 피고인(이석기)의 행위에 대한 진술은 전문진술(전해들은 말)이고 하영옥이 김영환에게 피고인의 행위에 대해 전달한 사실을 (훗날 재판에서) 인정하지 않은 이상 위 진술은 증거능력이 없다”고 주장했다. 당시 공안사건 관련자 가운데 이렇게 주장한 사람이 적지 않았다. 수사기관이 국가보안법 사건에서 고문수사·증거조작 등을 통해 사실을 부풀리는 일도 많았음을 고려하면, 충분히 제기할 수 있는 주장이다.



법정 증언자로 나온 이석기씨 부인

질문이 여전히 남는다. 이석기 의원은 판결을 부정하지만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설명하지 않는다. 서울중앙지법·서울고법의 이석기 의원 판결문을 보면, 이석기 의원은 “그들(하영옥·김영환)과 접촉하고 교류한 사실이 있다고 하여 민혁당 조직원이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모종의 ‘접촉’과 ‘교류’는 인정한 것이다. 당시 재판부는 이석기 의원의 ‘당심 법정에서 한 일부 진술’을 증거로 채택했다. 이석기 의원의 진술 가운데 일부가 수사 결과와 일치한다는 뜻이다.

그럼 이석기 의원은 김영환·하영옥씨와 어떤 이유로 언제 어디서 몇 차례나 ‘접촉’하고 ‘교류’한 것일까. 이 의원은 ‘접촉’과 ‘교류’ 과정에서 김영환씨가 주체사상파였고 북에 다녀온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일부 진술’의 내용은 뭘까. <한겨레21>은 이석기 의원의 설명을 전해들으려 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하영옥씨와 이석기 의원은 모두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표의 남편인 심재환(54) 변호사가 변호했다. <한겨레21>이 “이석기 의원이 법정에서 주체사상이나 민혁당과 관련된 내용을 진술한 것이 있느냐”고 물었으나, 심 변호사는 “(나도) 물어봤는데 당시 이석기씨는 일관되게 그런 조직(경기남부위원회)은 없었다고 답했다”고 답했다. 심 변호사는 자신도 사건의 실체적 진실은 모른다며 법원 판결에 대해 “신뢰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판결을 신뢰하기 어렵다는 주장은, 민혁당과 관련된 증언을 믿기 어렵다는 말이다. 민혁당 판결은 김영환씨 등 핵심 간부 대부분이 상세하게 증언한 탓에 다른 공안사건에 비해 조작 논란이 덜 제기된 편에 속한다. <한겨레21>은 민혁당 간부로 유죄판결을 받았던 ㄱ씨에게 전화로 견해를 물었다. 현재 정당인인 그는 통합진보당 사태에 대해 의견을 밝히진 않았지만, 당시 민혁당 활동의 실체를 모두 인정했다. 검찰에서 증언했던 전 민혁당 중앙위원 박아무개 변호사는 현재 5위 안에 드는 거대 로펌에서 근무한다. 전화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서울고법 2심 당시 주심판사였던 김태병(46) 서울서부지법 부장판사에게 이석기 의원의 법정 진술이나 태도를 물었으나 김 부장판사는 사건이 오래돼 기억나지 않는다고 답했다. 김 부장판사는 “(실체적 진실 여부는) 판결문 대로다”라고 말했다. 당시 이석기 의원의 부인이 검찰 쪽 증인으로 법정에 나와 이석기 의원의 민혁당 활동을 진술한 사실도 재판부에 결정적 증거로 채택됐다. 이석기 의원은 민혁당 재판 뒤 부인과 이혼했다. 이석기 의원 판결문에 ‘수도남부지역사업부’ 지도부로 거론되는 이상규 의원에게도 ‘민혁당 판결에 대한 평가와 견해’를 물었으나 이상규 의원실은 “적절한 시점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5월30일 보수단체 회원이 김재연 의원 뒤에서 시위하고 있다. 종북몰이는 합리적 질문을 가로막는다. 박승화 기자


■보수의 종북몰이, 한국판 후미에

1960년 한국의 1인당 GNP는 100달러(현재 환율로 약 11만8천원)가 채 안 됐다. 한국전쟁이 끝난 지 10년도 지나지 않았다. 그해 시인 김수영은 ‘김일성 만세/ 한국의 언론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인정하는 데 있는데/ 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 언론의 자유라고 조지훈이란/ 시인이 우겨대니/ 나는 잠이 올 수밖에’라고 썼다. 전쟁과 분단, 이데올로기 갈등의 상처는 지독하다. 2012년의 한국 사회에서도 김수영처럼 말하면 그는 종북주의자가 된다. 누가 종북인지는 새누리당, 보수언론, 극우단체, 검경 넷 가운데 하나가 정하거나, 혹은 이 네 주체가 서로의 발언을 확대재생산하는 과정에서 정해진다.

가령 친노와 비노, 친박과 친이를 세세하게 구분해온 보수언론 정치부 기자들의 탐사취재력은 통합진보당사 앞에서 퇴행한다. NL 계열 당권파 의원들을 모두 ‘반미=종북=주체사상’ 등식에 끼워넣는다. 김재연 의원에게 ‘종북’ 딱지를 붙이는 게 대표적이다. 김재연 의원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배를 받은 적이 있다. 이석기 의원과 적용된 법은 같지만 팩트는 맥락이 전혀 다르다. 김 의원이 수배된 것은 대법원으로부터 이적단체로 규정된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대의원이었기 때문이다. 김재연 의원은 단 한 번도 주체사상이나 김일성주의를 입에 올린 적이 없다. 또 한총련 산하 조국통일위원회의 북한 편향성, 1996년 연세대 사태 등의 이유로 한총련이 이적단체로 규정됐지만, 한총련 강령 어디에도 ‘주체사상’이나 ‘김일성’ ‘김정일’의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한총련은 공개된 대중조직이었다. 조국통일범민족연합과도 다르다.

보수가 싸잡아 부르는 ‘종북’을 뜯어보면 층위가 다양하다. 1980년대 중반의 자생적 주체사상파처럼 북한 정권에 대한 친밀감을 넘어 북한을 한국 민주화운동의 기지로 여기는 ‘민주기지론’, 그 생각을 실행에 옮겨 간첩 행위를 하는 것, 미국에 대립한다는 이유로 북한 정권을 과도하게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그렇다고 북한 정권이 더 정당하다고 여기지는 않는 시각, 단순히 햇볕정책을 지지하는 태도, 미국의 패권적 외교 전략을 비판하는 태도 등 다양하다. 보수는 이런 차이에 대한 합리적 질문을 종북이라는 말로 지우고, 국가보안법이라는 칼로 베어버린다. 설령 주체사상파가 있더라도 ‘생각’과 ‘간첩 행위’ 사이에 넓고 깊은 강이 있다는 사실은 무시된다. 물론, 정파로서의 실체가 알려졌는데도 줄기차게 ‘경기동부연합은 실체가 없다’고 말하는 경기동부연합 당권파들의 무책임하고 음모적인 작풍이 이런 종북몰이를 거드는 측면이 있다.

이성이 마비된 자리에서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에게 헌법과 법률로 주어진 자료 접근권을 막겠다는 발상이 나온다. 김창수 한반도평화포럼 팀장은 이렇게 비판했다. “법적으로 국회의원에게 보장된 권한은 허용해야 한다. 보장된 의정 활동 과정에서 국회의원의 범위를 넘어서면 그때 가서 해당법에 따라 처벌하면 된다. 처음부터 자료 접근권을 봉쇄하는 것은 위헌적 발상으로 말이 안 된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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