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4-14
감신대 이정배 교수, 거리의 신학자로 나선다 - 당당뉴스
감신대 이정배 교수, 거리의 신학자로 나선다 - 당당뉴스
감신대 이정배 교수, 거리의 신학자로 나선다이정배 교수 은퇴 및 출판 기념식 안내
최태관 | cht40163@hanmail.net
입력 : 2016년 02월 12일 (금) 17:57:47
최종편집 : 2016년 02월 16일 (화) 23:57:58 [조회수 : 5408]
2016년 2월 16일 오후 5시 충연재 (充然齋) 이정배 교수의 은퇴 및 출판 기념회가 감리교신학대학교에서 열린다. 1986년부터 감리교신학대학교의 교수로 30년간을 봉직한 이정배 교수의 은퇴를 찬하하고, 그의 학문적 새 길을 여는 자리이다. 감신대 총학생회, 총여학생회, 종교철학전공 학생회, 기독교교육전공 학생회, 기독교통합학문연구소 주최로 열리는 이번 은퇴 및 출판기념회에서는 학문적 동료와 제자들이 모여 30년간의 학문적 길을 되돌아보고, 그의 한국적 생명신학의 새로운 길에 함께 선다. 그 길에서 이정배 교수의 설교집 “차라리, 한 마리 길 잃은 양이 되라”, 엣세이집 “그래, 결국 한사람이다.”가 선보인다. 스승을 사랑하는 제자들과 학문적 길을 함께 걸어온 동료들이 “충연재 이정배의 한국적 생명신학을 논하다”라는 논문집을 그에게 헌정한다. 감리교신학대학교 중강당에서 열리는 이번 출판기념회에서는 김경재 교수(한신대명예교수)가 축사하고 한인철 박사(연세대교목)가 서평을 맞는다. 동료교수 대표로 송순재교수와 동문대표로 진광수 목사가 축사한다. 또한 조은샘 앙상블의 특별연주와 제자들이 준비한 특송 순서가 있다.
이정배 교수는 감리교신학대학교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스위스 바젤대학교에서 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1986년 모교 종교철학과 교수로 부임한 이래 후학을 양성하고 한국적 생명신학을 태생시켰다. 그는 기독자교수협의회 회장, 한국조직신학회회장, 문화신학회 회장을 역임했고, 한국종교인평화회의 종교간대화위원장을 역임했다. 생명평화마당 공동대표와 나눔문화 이사장직을 맡고 있다.
감신대 이정배 교수
거리의 신학자로 나선다....
1986년 모교 감리교신학대학교에 교수가 된 후로, 30년 동안 강단을 지켜왔던 이정배교수가 강단을 떠난다. 이는 지난 2015년 학내사태를 겪으면서 그가 결단하고 실천해온 학자의 양심이 담긴 몸부림이다. 그는 2015년 10월 27일 송순재교수와 함께 감신대 정상화의 길이 보이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의가 사라진 이곳에서 학생들을 가르치지 않고 학교를 떠나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학교를 떠나는 것이 곧 끝이 아니라고 말했다. 아마도 그가 최근에 거리의 신학자라는 이름을 얻게 된 이유와 무관하지 않다. 몇 년 전부터 제 2 종교개혁이 한국 땅에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던, 그는 ‘생명의 영성화’라는 생명신학적 의식을 가지고 실제적인 삶의 문제와 만나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세월호 참사의 현장에서 유가족들과 함께 그 고난의 순간들을 함께 해왔고, 밀양송전탑을 방문하여 예언자와 같이 세상의 부정을 고발하기 위해 설교해왔다. 이와 같이 그는 실천적인 신학자이기에 학교를 떠나는 그의 뒷모습이 서운하지 않다. 왜냐하면 신학의 길은 끝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그 길은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던 엠마오 도상과 같은 새로운 생명에 대한 기쁨과 은혜가 도래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항상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현안문제를 외면하지 않았던 그는 2014년 세월호 참사이후 희생자 가족들과 함께 해왔고, 그들을 위로하는 일에 헌신을 다해왔다.
그는 그 고난의 흔적을 학계동료들과 또한 시민들과 함께 나누고 위로하고자 “세월호 이후 신학: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책의 집필과 세월호의 아픔을 함께 하는 이 땅의 신학자들의 겨울편지인 “곁에 머물다(기독교서회)”의 출간을 주도했다.
그는 교회성장만을 추구하면서 교회의 본질과 사회적 책임을 망각하고 있는 한국교회에 대한 대안으로서 작은교회운동에 생명평화마당 공동대표로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2015년 이화여고에서 열린 작은 교회박람회에서 이정배 교수는 2017년 종교개혁 500주년을 앞둔 정황에서 작은교회운동은 세속에 묻혀버린 교회, 기독교의 급속한 몰락에 대한 염려이자 극복하려는 몸짓이고, 우리는 지역에서 뿌리뽑혀져 섬처럼 고립된 대형교회들의 실상을 지적하면서 예수살기의 비전을 품고 대안을 꿈꾸는 작은 교회들이 새로운 공동체를 온전히 세워나갈 수 있도록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신학이 결코 현실과 괴리된 학문이 아니라, 생명경시에 대한 부정한 현실을 고발하고 생명가치를 재발견하려는 과제를 가지고 있음을 그는 몸소 보여주고 있다. 또한 때로는 외면되고 방치되고 있는 거리와 현장이 더 이상 하나님이 부재한 공간이 아니라, 개인의 고통이 하나님의 절규로 재현되는 신학의 본래적 장소임을 그 스스로가 보여주고 있다.
그가 이렇게 거리의 신학자로 나선 그의 삶의 근간에는 생명신학적인 울림이 있다. 그의 학문적 스승인 고변선환 박사와 교회의 스승인 고장기천 감독의 가르침을 사사한 그는 이미 젊은 시절 감신대에서 프릿츠 부리의 판토크라토 기독론 연구에서 생명에 대한 신학적 문제를 발견했다. 그의 다양한 생명의 가치에 대한 목마름은 한국적 종교문화전통에서 발견한 ‘태극’과 서구의 자유주의 신학의 공통문제로서 ‘생명’의 문제를 상호텍스트적 관계에서 동서가 더불어 가야하는 생명신학의 길(道)로 향하는 단초를 세웠다. 그 결실이 그의 박사학위 논문인: “한국토착화 신학의 관점에서 본 13세기 신유학과 19세기 신개신교간의 공동구조와 문제점들”이다.
특히 그는 판넨베르크의 문제사적 관점에서 20세기 신학에서 전형적인 교의학적 신학에 대한 비판적 접근과 트뢸치의 역사적 방법을 근간으로 그는 전통적 신학이 간과해온 생명문제를 적극적으로 한국사회의 주요한 신학적 담론으로 만들었다. 특별히 맥락신학의 관점에서 그는 한국의 토착화 신학의 전통에서 생명신학의 문제를 이식했다.
1996년 서구문화사를 생명경시의 문화로 고발한 제레미 리프킨의 ‘생명권정치학’과의 만남은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생명에 대한 신학적 인식을 꽃피우는 계기가 된다. 1998년 이후 그는 J. 폴킹혼의 과학시대의 신론, 린드버그의 신과 자연, 폭스의 창조, 어둠 그리고 영혼에 관한 대화, 쉬뢰더의 신의 과학을 번역하면서 자연과학적 논의들을 신학적 담론과 결합하여 생명의 문제를 간학문적 대화의 근본문제로서 인식하고 발전시켜왔다. 다른 한편, 한국적 토착화 신학의 문제를 그의 학문적 연구대상을 삼았던 그는 생명의 문제를 동학과 다석 유영모와의 관계에서 생명의식과 그에 따른 학문적 연대의 문제로 발전시켰다. 이와같은 학문적 전제는 외면할 수 없는 그의 사회실천적 관심을 구체적으로 드러낸다. 그는 간학문적 소통의 원리를 강조하면서 다른 학자들의 사상적 맥락을 이해하려고 했고, 단순히 학문적으로 동화되기 보다는 그들의 사상을 자신의 고유한 생명인식과 접목하여, 생명권에 대한 신학적 인식으로 발전시켰다. 특히 한국종교-유교-와 기독교의 대화에서 촉발된 그의 생명신학은 이웃종교와 기독교 신학에 내재된 ‘생명개념’의 포괄자적 해명과 다른 학문과의 해석학적 만남에서 ‘지평융합’을 시도함으로써 생명권에 대한 인식이 더 이상 자연세계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삶의 현장에 드러나는 문제임을 밝히고 있다. 따라서 한국적 신학으로서 생명신학은 한국적 공간에 제약될 수 없는 ‘보편성’과 ‘주체성’을 함축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는 자신의 생명신학적 인식을 학문적 독백자와 같이 홀로 연구실에 갇혀 발전시킨 것이 아니라 보수와 진보의 성향을 떠나 다양한 학자층과의 교제를 통해서 실천적 연대를 지향해왔다. 그의 실천적 행동은 그가 몸담아왔던 한국조직신학회, 한국문화신학회, 기독자교수협의회에서 회장직을 감당하고 헌신해온 그의 모습에서 잘 드러난다. 현재에도 그는 생명평화마당의 공동대표직과 나눔문화 이사장을 맡아 헌신하고 있으며 생명에 대한 인식을 넓히고 있다.
이 번 은퇴기념식과 출판기념회는 그의 새로운 학문적 여로로의 출발을 선언하는 자리이다. 이번에 한편의 신앙 수필집-그래 결국 한사람이다-과 한편의 설교집-차라리 한 마리의 길 잃은 양이 되라-가 출간된다. ‘차라리 한 마리 길 잃은 양이’ 되라는 그의 설교집은 기독교회의 추종자가 아니라, 예수의 얼과 삶을 따라가려는 그의 예언자적 결단을 보여준다. 안전이 보장되어있는 안락한 침실과 같은 기성교회를 떠나 광야로 가고자 하는 그의 신학적이며 신앙적 결단이 엿보인다. 게다가 “그래 결국 한 사람이다”라는 수필집은 그가 30년 동안 교회현장에서 경험한 삶의 흔적이 나타난다. 이정배 교수는 세상과 등진 교회를 보면서, 교회개혁의 과제는 교회를 변혁하고자 하는 한사람의 저항에서 시작하고, 자신을 역사의 제물로 바칠 수 있는 사람에 실천에서 이루어질 수 있음을 말한다. 이 두 권의 책이 시사하는 바는 은퇴가 그의 삶의 마지막이 아니라, 새로운 길로의 첫걸음임이라는 사실이다. 게다가 함께 출판된 제자들과 동료의 엣세이와 논문들을 모은 책 “충연재 이정배의 한국적 생명신학을 논하다”는 30년 함께 걸어온 동료들과 제자들이 그의 삶의 흔적을 함께 되돌아보고 함께 그 새로운 길에 서고자 하는 마음의 선물이다. 이 세 권의 책이 한국사회의 잔잔한 파장이 일기를 희망해본다.
2015년은 이정배 교수가 경험한 감신대의 학내사태를 경험하면서 자신의 한없이 부족한 고백하고 되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음이 분명하다. 또한 이제 그의 새로운 삶은 분명 한국사회와 한국교회의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자신의 십자가를 지는 새로운 삶의 시작이리라...그러한 측면에서 볼 때 그의 자신의 삶에 대한 회고와 참회는 그의 새로운 생명신학적 길에 중요한 지점이 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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