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미(저자) | 한티재 | 2017-06-19
정가 14,000원
반양장본 | 276쪽 | 188*125mm | 296g | ISBN : 978899709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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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서학자인 박경미 교수가 ‘시대의 끝’에 대한 성찰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제국의 침략과 거기 결탁한 가신통치자들의 수탈, 그로 인해 하느님의 통치가 끊어지는 데 대한 예언자들의 분노와 심판의 선언. 이러한 것들이 성서의 세계를 가득 채우고 있다. 이처럼 삶을 파괴하는 것들에 맞서 환상가들은 옛 세계의 종말과 새로운 세계의 시작을 선언했다. 신구약 중간시대와 초기 기독교시대에 융성했던 묵시문학의 근저에 깔린 생각은 이러한 의미에서 ‘시대의 끝’에 대한 의식이었다.”
이 책 『시대의 끝에서』는 성서와 역사, 그리고 현재의 깊은 대화이며, 시대의 운명을 염려해 온 실천적인 학자의 이야기이다. 이 책에서 독자들이 다시 만나는 구약과 신약의 시대, 인물과 사건들은 박경미 교수의 탁월한 이야기를 통해 바로 지금 이 시대 우리의 모습,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과제들로 되살아난다. 그 과제들은 비단 당면한 정치적·경제적 위기만이 아니다. 우리가 애써 외면하고 있지만 사실은 근본적으로 우리 삶의 토대를 위협하고 있는 문명의 위기, 인류 생존의 위기로 나아간다. 위기에 대한 직시와 성찰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저자가 성서와 역사의 대화로 독자들을 초대하여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결국 이 용기와 희망에 관한 것이다.
“세계의 파멸을 선포했던 환상가들을 사로잡았던 것은 종말에 대한 어두운 환상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정말로 생각했던 것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었다. 악마적인 제국의 붕괴와 함께 도래할 새로운 세계에 대한 희망이었다. 구약성서와 유대교 문헌에서 종말론적 사고의 핵심은 하느님 없는 세상에 하느님이 오시는 것이었다. 그리고 신약성서 복음서들에서 예수는 임마누엘, 곧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하심’, 하느님의 현존으로 파악되었다. 또한 예수 자신은 삶과 가르침을 통해 하느님 오심의 현실을 보여주었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저자의 목소리는 뜻밖에도 ‘논문’을 발표하는 학자의 음성이 아니라, 마치 유장한 서사시를 읊는 시인의 목소리처럼 들린다. 주제의 장중함과 어우러지는 문학적인 문체가 이 책의 매력을 드높인다.
들어가며 | 나와 성서
하느님의 나라, 동무들의 나라
농부/장인 그리스도
헤롯의 나라, 민중의 꿈
요한의 성령 이야기, 하느님의 사랑 이야기
로마제국과 바울의 평등사상
전승, 살아 있는 삶의 역사
네로의 세상, 지식인의 초상
시대의 끝에서
어릴 적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에 어린아이다운 의문을 품었던 기억이 새롭다. 한글을 깨치기 전 어른들이 방바닥에 신문을 펼쳐 놓고 읽는 것을 옆에서 보면서 나도 ‘읽는 것’을 해 보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를 느낀 이래, 성서는 내 문자생활의 가장 이른 시기에 자리잡은 책이다. 주일학교에서는 성서 구절을 암송했고, 집에서 가정예배를 드릴 때에는 복음서를 소리내어 읽었다. 구약성서의 예언서나 욥기, 시편의 소박하면서도 시적 은유가 풍부한 언어들은 문득문득 그 표현들이 혀끝에서 맴돌곤 했다. 자라면서 문학의 세계에 눈뜨고 그쪽에 빠진 시절도 있지만, 결국 성서를 공부하는 것을 업으로 삼게 되었으니, 싫으나 좋으나 평생 성서를 끼고 살아온 셈이다. 생각해 보면 개념적이고 분석적인 언어보다는 언제나 구체적이고 경험적인 언어에 마음이 끌렸고, 수학이나 철학보다는 역사와 문학에 끌렸던 것도 성서의 언어와 닮은 쪽에 은연중 끌렸던 탓이 아니었나 싶다.
오래전 문학비평가 머레이 크리거는 비평가가 마주한 세 가지 본문의 세계를 구분했다. 그 세 가지 세계란 ‘본문 배후의 세계’, ‘본문 안의 세계’, ‘본문 앞의 세계’이다. (중략) 실제로 성서 해석을 할 때에는 이 세 가지 세계에 모두 관여하게 된다. 이 세 가지 세계들 사이의 상호작용은 모든 반성적인 독서행위에서 필연적으로 일어난다. 본문이 독자에게 제기하는 해석학적인 물음들은 이 세계들 사이의 충돌로부터 생긴다. 해석자는 이 세계들, 즉 본문 배후의 세계, 본문 안의 세계, 본문 앞의 세계 사이에 다리를 놓아 그것들이 수렴하는 지평을 발견해야 한다. 물론 이 세 가지 세계들 사이에는 긴장과 갈등도 존재하므로 종종 잘 맞지 않을 수도 있지만, 해석은 이들 사이의 수렴과 일치를 지향해야 한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처음부터 어떤 체계를 가지고 쓴 글들이 아니라 그때그때의 필요와 절박함에서 쓴 글들이다. 성서 본문을 탄생시킨 삶의 세계와 내가 속한 이 시대의 삶의 세계가 그때그때 조응하는 방식들을 따라갔다. 그 글들을 나중에 성서 순서대로, 그러니까 구약과 성서 전반에 대한 글에서부터 복음서, 바울, 요한묵시록 순으로 실었다. 모아 놓고 보니 그 글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흐름은 ‘끝’에 대한 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성서에서 종말론적이라고 부르는 어떤 의식의 흐름이 글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 말하자면 ‘끝’에 대한 성서의 생각과 나의 경험이 만났다고 할 수 있겠다.
현대 세계는 본질적으로 인간만이 우주의 중심이라고 전제하고 다른 어떤 중심을 상정하지 않지만, 역설적으로 그 안에서 우리는 중심으로부터 밀려났다고 느낀다. 기계적으로 돌아가는 세계 속에서 우리는 자신이 중요하지 않은 존재임을 일깨워주는 사실들과 반복해서 마주한다. 반면 종교적 인식을 가진 사람들은 우주의 중심은 인간이 아니라, 인간까지도 포괄하는 보다 근원적이고 보편적인 그 무엇이라고 본다. 이들은 자신의 존재를 그러한 중심적 존재와의 관계 속에서 보고, 자기 존재의 의미와 중요성도 그 관계 속에서 보기 때문에 자신이 왜소하다고 느끼지도 않고, 열등감이나 우월감에 빠지지도 않는다.
그리고 그 중심적 존재와의 관계를 형성하는 데는 흔히 자연과의 경험이 큰 영향을 끼친다. 내 경우 어린 시절 식구들과 함께 평상에 앉아 여름 하늘을 우러러보았을 때 그 많던 별들, 언젠가 풀밭에 앉아 풀대를 엮어 조리를 만들 때 땀에 젖은 얼굴을 부드럽게 간지럽히던 바람, 봄나물을 캘 때 맡았던 향긋한 봄내음과 흐르는 냇물, 어느 하나 고맙고 감격스럽지 않은 것이 없다. 이런 경험들은 내가 나 자신보다 훨씬 더 큰 무언가에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갖게 했고, 그 무언가는 일차적으로는 자연이 갖고 있는 아름다움과 힘이었다. 그리고 성서는 이 모든 것들 뒤에 하느님이 계시다고 가르쳐주었다. 내 인생의 배후에 하느님이 계신다. 나는 이런 경험 속에서 실제의 나보다 더 깊이 있고 더 크게 만들어주는 매우 중요한 무엇인가가 내 속에 있다고 느꼈고, 그것은 결국 영혼이라는 말 외에 다른 말로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오늘날 자연의 파괴는 결국 근원적 존재와의 단절로 이어지고, 인간 영혼의 파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나의 존재의 끝, 이 끝에서 나는 모든 존재의 근원, 중심과 만난다. 개체의 경계를 넘어서서 보다 큰 전체와 하나가 되는 경험, 그리고 그러한 경험이 가능하게 되는 근거로서의 존재 자체, 무엇보다도 모든 생명은 관계성 속에서 존재한다는 인식에서 비롯되는 자연과 인간, 온 우주의 일치 경험. 아마도 이런 것들이 종교적 사유의 본질적 내용일 것이고, 분리된 개체적 생명의 차원이나 물질의 수준에서 생명현상과 인간현상을 파악하려는 현대의 정신이 본질적으로 결여하고 있는 부분일 것이다. 성서는 하느님이 우리 존재의 일차적 근원이자 창조의 근원이며, 전면에 드러나지 않으면서 자연과 인간 삶의 드라마를 연출하는 분이라고 알려준다. 아마도 이 하느님은 다른 이름으로도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근원이라는 의미에서 ‘끝’만이 아니라, 다른 ‘끝’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야 한다. 그것은 앞서 말한 ‘끝’, 즉 근원과의 연결이 끊어지고 파괴될 위협 속에서 경험되는 ‘끝’이다. 이 두 번째 의미의 ‘끝’이 성서 세계의 특징과 더 맞닿아 있다고 할 수 있다. 제국의 침략과 거기 결탁한 가신통치자들의 수탈, 그로 인해 하느님의 통치가 끊어지는 데 대한 예언자들의 분노와 심판의 선언. 이러한 것들이 성서의 세계를 가득 채우고 있다. 이처럼 삶을 파괴하는 것들에 맞서 환상가들은 옛 세계의 종말과 새로운 세계의 시작을 선언했다. 신구약 중간시대와 초기 기독교시대에 융성했던 묵시문학의 근저에 깔린 생각은 이러한 의미에서 ‘시대의 끝’에 대한 의식이었다. 세계의 파멸을 선포했던 환상가들을 사로잡았던 것은 종말에 대한 어두운 환상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정말로 생각했던 것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었다. 악마적인 제국의 붕괴와 함께 도래할 새로운 세계에 대한 희망이었다. 구약성서와 유대교 문헌에서 종말론적 사고의 핵심은 하느님 없는 세상에 하느님이 오시는 것이었다. 그리고 신약성서 복음서들에서 예수는 임마누엘, 곧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하심”, 하느님의 현존으로 파악되었다. 또한 예수 자신은 삶과 가르침을 통해 하느님 오심의 현실을 보여주었다. 그렇게 해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었다. 결국 이 두 번째 ‘끝’에 대한 이야기는 ‘희망’에 관한 것이다.
_ 「들어가며 : 나와 성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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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와 역사, 현재의 대화
시대의 끝, 새로운 시작에 대한 희망
2016년 10월 19일, 이화여대 본관 앞에서는 이 학교 교수들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학생과 교수들이 요구해 왔던 대로 최경희 전 총장이 마침내 사퇴를 선언함에 따라, 80일 넘게 농성을 이어 온 학생들의 노고를 격려하면서, 학생들의 안위 보장과 비리 규명 등 후속 과제 해결을 촉구하고 다짐하는 자리였다. ‘이대 개교 이래 최초의 교수 시위’라고 언론에서 보도했지만, 여러모로 이날 기자회견은 뜻깊은 장면이었다.
이 기자회견에서 박경미 기독교학과 교수는 “박근혜 정권의 가장 추악한 부분과 추잡하게 결탁한 최경희 총장이 사퇴 의사를 밝혔지만 여전히 비리 의혹들이 남아 있다”고 규탄했다. 박 교수는 “교수들이 눈을 똑바로 뜨고 박근혜 정권과 최경희 총장,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해왔는지 볼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리고 박 교수의 발언 내용처럼, 그 후로 우리는 그들이 무엇을 어떻게 해왔는지를 밝히고, 정의와 민주주의를 바로세우기 위한 역사의 물결에 합류하게 되었다. 천만 명이 넘게 참여한 ‘촛불 시민혁명’과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 국정농단 헌정유린 세력에 대한 심판으로 이어진 거대한 물결, 그리고 대통령 선거와 정권교체를 거치며 그 물결은 한 시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자는 열망으로 우리 사회를 출렁이게 하고 있다.
그 격랑 앞에서, 신약성서학자인 박경미 교수는 오랫동안 자신이 연구해 온 성서를 역사의 물결에 비추어 다시 읽고, ‘시대의 끝’에 대한 진지한 성찰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이 책 『시대의 끝에서』는 성서와 역사, 그리고 현재의 깊은 대화이며, 시대의 운명을 염려해 온 실천적인 학자의 이야기이다.
이 책에서 독자들이 다시 만나는 구약과 신약의 시대, 인물과 사건들은 박경미 교수의 탁월한 이야기를 통해 바로 지금 이 시대 우리의 모습,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과제들로 되살아난다. 그 과제들은 비단 당면한 정치적·경제적 위기만이 아니다. 우리가 애써 외면하고 있지만 사실은 근본적으로 우리 삶의 토대를 위협하고 있는 문명의 위기, 인류 생존의 위기에 대한 성찰과 극복으로 나아간다. 위기에 대한 직시와 성찰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저자가 성서와 역사의 대화로 독자들을 초대하여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결국 이 용기와 희망에 관한 것이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저자의 목소리는 뜻밖에도 ‘논문’을 발표하는 학자의 음성이 아니라, 마치 유장한 서사시를 읊는 시인의 목소리처럼 들린다. 주제의 장중함과 어우러지는 문학적인 문체가 이 책의 매력을 드높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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