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4-17

<함석헌과 한국 기독교①>한국교회는 왜 ‘함석헌’을 배척했나 - 시사ON



<함석헌과 한국 기독교①>한국교회는 왜 ‘함석헌’을 배척했나 - 시사ON







<함석헌과 한국 기독교①>한국교회는 왜 ‘함석헌’을 배척했나
비폭력 평화주의자 함석헌의 근본정신은 ‘예수정신’
함석헌 교권교리 거부하자 보수교단 이단으로 치부
퀘이커에서 노자까지…종교다원주의·상대주의 정립
함석헌 영원한 자유인…‘생명평화공동체’ 구현이 꿈


2011년 06월 20일 10:14:12 최신형 기자 ceo707@sisaon.co.kr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최신형 기자)

‘파란 눈의 오똑한 코, 금발 머리를 한 백인의 남성….’ 우리들의 머릿속에 그려지는 예수의 모습이다. 누가 강요한 것은 아니지만, 이 같은 형상이 그동안 우리의 의식을 지배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태어난 예수는 결코 파란 눈의 오똑한 코, 금발 머리를 한 백인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전형적인 셈족의 모습인 담황갈색의 피부와 검은 머리, 검은 눈에 더 가깝다.

물론 그 누구도 실제 예수의 상(像)을 알지 못한다. 다만 이런 의문을 통해 그간 사실이라고 여겼던 내적 기억을 밖으로 끄집어 내보자는 것이다. 진리의 발견은 우리가 사실이라고 믿었던 것을 의심하는 데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함석헌(1901∼1989)에 대한 재평가 작업이 필요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비폭력 평화주의자로 알려진 함석헌 선생 앞에는 민주화운동가 독립운동가 종교사상가 언론인 등의 수식어가 따라다니지만, 함석헌의 이 모든 사상을 포괄하는 핵심정신은 ‘예수 그리스도’다.

그러나 과거에도 주류는 아니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함석헌은 기성 교단의 교리와 전통을 거부한 채 교회 밖에서 개개인의 인격의 변화를 꾀하는 자속(自贖)신앙을 주창했다.

비주류를 자처했던 그는 1950년대부터 예수의 정신이 결여된 한국교회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함석헌은 지난 1956년 장준하가 발행하던 <사상계>에 ‘한국 기독교 무엇을 하려는가’라는 기고문을 통해 정통 기독교를 권력만 쫓은 채 윤리의식이 결여된 종교라고, 또 1971년 <씨알의 소리>에서는 교회가 샤머니즘적이며 교파의 분열을 꾀한다고 맹비난했다.

2011년 보수 대형교회가 안고 있는 정교유착, 패권주의, 양적성장주의, 기복주의, 엘리트주의, 신비주의 등을 이미 60여년 전에 간파한 셈이다. 때문에 정통 교단은 함석헌을 불편하게 여겼다. 결국 함석헌은 ‘이단’의 낙인이 찍혀버린 채 대다수 교단으로부터 배척당했다.

▲ 1977년 3월 22일 3·1 민주구국 선언 후 침묵하며 행진하는 함석헌 선생(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이하 사진제공=(사)함석헌 기념사업회>



‘퀘이커’ 함석헌, 그가 꿈꾸던 것은?

“함석헌 선생이 당시 보수 교단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했던 이유는 무교회주의를 추구했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우치무라 간조의 영향은 받은 함석헌은 무교회주의를 통해 교회의 제도와 교권, 예배의 형식 등을 거부했습니다. 표피적인 껍데기를 버리고 예수의 근본정신으로 돌아가자는 것이죠. 제도를 중시하는 교권주의자들은 참된 예수의 정신을 늘 등한시하지 않습니까.(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

함석헌이 처음부터 무교회주의를 추구한 것은 아니었다. 함석헌은 1924년 동경고등사범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는 장로교 집안에서 자랐고 세례까지 받았다. 그러던 중 그는 일본의 무교회주의를 창시한 우치무라 간조를 만나면서 신앙의 전환점을 갖게 된다.

함석헌은 교회 밖에서 예수의 진리를 추구하는 무교회를 접한 뒤 1927년 7월 김교신 송두용 정상훈 양인성 류석동 등과 함께 <성서조선>이라는 동인지를 창간하는데, 함석헌이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를 쓴 것도 이 무렵이다.

하지만 일본제국은 1942년 김교신의 ‘조와(弔蛙)’라는 글이 개구리의 죽음을 통해 조선민족의 소생을 표현했다는 이유로 <성서조선>을 폐간시켰고, 함석헌 김교신 유달영 등 18명은 서대문형무소에 1년간 투옥된다.

흥미로운 대목은 함석헌이 무교회주의를 넘어 또 다른 예수의 정신을 찾기 위해 길을 떠났다는 사실이다. 그는 1953년 7월 4일 ‘대선언’이라는 시를 통해 “나는 더 이상 무교회에 머무를 수 없다. 우치무라 간조의 하나님이 아니라 내 하나님을 찾아야 하는 게 아니냐”며 신앙적 변화를 꾀한다. 이 때문에 기존의 무교회주의자도 함석헌을 멀리했고, 이후 그는 한국의 퀘이커(Quaker)를 만난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남편인 박성준 성공회대학교 교수의 종교로 널리 알려진 퀘이커는 형식을 배격하는 측면에서 무교회주의와 비슷하지만, 그 신앙의 출발점은 다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현필 (사)함석헌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은 <시사오늘>과의 인터뷰에서 양자의 차이에 대해 “무교회주의는 일본에서 시작됐기 때문에 사무라이 정신이 남아있는, 어떻게 하면 철저하게 구원의 길로 갈 수 있느냐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 반해, 퀘이커는 루터가 종교개혁을 할 당시 개신교의 한 종파로 나왔다. 퀘이커들은 각각의 사람에게 내재돼 있는 내면의 빛을 통해 하나님과의 교감을 추구한다”고 말했다.

이어 “퀘이커는 전쟁에 반대하는 비폭력주의를 주장하는 등 세계평화운동을 중시하는데, 함석헌 선생이 이런 부분에 많이 끌린 거 같다. 신앙의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예수를 향해 정진하는 것, 그것이 함석헌 정신”이라고 말했다.

김경재 한신대학교 명예교수도 <시사오늘>과의 전화통화에서 함석헌 정신과 관련, “함석헌은 교권과 교리, 교회 건물의 크기, 교인 수 등을 신앙의 비본질적 요소로 규정한 채 다원주의를 통해 열린 종교의 자세를 취했다”면서 “요한복음에 나오는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를 만난 뒤 동네 사람들한테 달려가 이 같은 사실을 알렸듯이 함석헌도 삶의 현장에서 예수의 영성과 생명을 전하며 권위의 껍데기를 던져 버렸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금도 퀘이커에 대한 정통 보수교단의 시선은 곱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남오성 교회개혁실천 연대 사무국장은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기성 보수 개신교는 퀘이커 자체를 모를 것”이라며 “보수정서라는 게 일단 거부하고 보지 않느냐. 그들은 포용의 입장에서 사안을 보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 왼쪽부터 유달영, 함석헌, 다석 유영모 선생.<사진제공=(사)함석헌 기념사업회>



종교다원주의에 쏠린 두 개의 시선

“구원의 길은 오직 예수, 한분 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믿으시면 ‘아멘’하시기 바랍니다. 오늘따라 왜 목소리가 작습니까. ‘아멘’이라고 하는 자에게 복이 있을지어다.” 매주일 개신교에서 행해지는 설교의 풍경이다.

기독교는 유일신 사상이다. 때문에 요한복음 4장 12절을 강조한다. “다른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종교다원주의에 대한 보수 교단의 금기, 그것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지난 1991년 변선환 감리교신학대학 학장이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다”고 말하자, 감리교는 금란교회(김홍도 목사)에서 교단 법정최고형인 출교 처분을 내렸다. 또 변 학장은 동시에 목사직은 물론, 감리교인의 자격도 박탈당했다. 그로부터 4년 후인 1995년 8월 8일 변 학장은 이단이라는 멍에를 벗어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조용기 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목사도 2004년 5월 12일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원 최고위과정의 특강에서 “불교는 불교만의 메시지가 있고, 기독교는 기독교만의 메시지가 있다”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다. 언론은 즉각 “조용기 목사가 다원주의 종교관을 피력했다”며 그의 발언을 주목했다. 논란이 일파만파로 퍼지자 조 목사는 그 주 설교시간에 “자신은 그런 취지로 말한 게 아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밖에 없다”고 해명한 바 있다.

그만큼 종교다원주의는 보수 개신교의 뜨거운 감자다. 종교다원주의에 대한 일부 신학자들의 긍정적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미국의 복음주의 신학을 받아들인 보수 교단에서는 이단의 첫 번째 구별방법으로 종교다원주의를 꺼낸다. ‘구원의 길이 예수밖에 없는가, 아니면 다른 종교에도 있는가’ 라는 기독교 순혈주의의 문제는 여전히 평형선을 달리는 논쟁거리인 셈이다.

이 같은 논란과는 별개로 함석헌은 퀘이커에서 그치지 않고 동양의 노자, 공자, 석가 등을 끌어안으며 종교다원주의를 추구했다. 한마디로 동서양을 아우르는 종교사상가의 삶을 걸었다는 얘기다.

함석헌은 종교다원주의를 통해 타종교와 상생할 수 있는 ‘상대적 종교관’을 전했지만, 보수 교단은 여전히 종교다원주의를 배척하고 있다. 보수 교단에서 함석헌을 목회자로 인정하지 않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는 기성 교단이 종교다원주의를 배척한 이유에 대해 “보수 기독교는 종교다원주의라는 말만 들어도 자기 방어적인 본능이 발동하고 있다. 기독교만이 계시종교라고 주장한 채 나머지 종교를 무시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독선과 독단”이라며 “이슬람, 불교 등 타종교에도 문명과 선함, 양심, 예술 등이 각각 들어있지 않느냐. 종교가 진리에 이르는 길은 문화적 다양성을 추구할 때만 가능하다. 지금은 서구문화제국주의 시대가 아니다”고 일침을 놓았다.

정현필 (사)함석헌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은 “함석헌 선생은 노자 공자 석가 등의 사상을 받아들이는 등 계속 진보해 나갔다. 배타성을 가지고 구분 짓는 것을 거부한 것”이라며 “예수의 사상과 타종교 간의 진정한 대화를 통해 신앙과 삶의 혼연일체를 꿈꾸는, 교권에 대한 속박이 아닌 진리와 자유를 향한 생명평화공동체의 구현을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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