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 강호석 기자 재판 출석 "혐의 인정 안 한다"법률대리인, 국가보안법 7조 찬양·고무 조항 위헌법률심판 청구
조혜정 기자
승인 2018.01.26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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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민족국제팀 강호석 기자가 26일 울산지방법원에 출석해 재판을 받았다.
법정에서 강 기자는 “똑같은 행위가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때는 정부의 지원을 받았고, 이명박근혜 시절엔 범죄행위가 되는 현실, 바로 이것이 국가보안법이 존재해선 안되는 이유이며, 대한민국 검찰이 권력의 꼭두각시라는 사실을 자백한 것입니다"며 국가보안법상 찬양·고무 혐의를 모두 인정하지 않았다.
또한 평양시민 김련희씨와 ‘북 해외식당 여종업원 기획탈북’ 사건, 성주 사드 배치 취재 등 언론활동까지 문제삼은 것은 ‘노골적인 언론탄압’이라고 항변했다.
강 기자의 법률대리인인 장경욱 변호사는 재판부에 이번 사건에 적용된 국가보안법 7조 찬양·고무 조항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을 청구했다. 이 조항의 위헌법률심판 청구는 현재 수원지방법원 김도요 판사가 재청한 사건이다.
강기자의 다음 재판기일은 잡히지 않았다.
다음은 강 기자가 이날 법정에서 밝힌 모두진술 전문이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곧 다가올 2월이면 500여명의 북한 주민과 재일 조총련이 평창을 방문해 20여일을 머물게 됩니다. 그런데 이들은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 구성원입니다.
우리 국민들은 올림픽에 출전한 북측 선수는 물론 대표단, 응원단, 예술단에게 환호와 박수, 지지와 감사를 표할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 저에게 적용된 국가보안법의 찬양 고무 금지 조항대로라면 이들은 모두 기소돼야 하는 처지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들이 한 일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할 목적이 있는지 없는지를 가려야 하는 번거로운 절차를 겪어야 할 것입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할 목적이 추호도 없습니다. 오히려 국가의 존립과 안전을 위한 평화운동을 해왔으며, 국정원을 앞세워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어지럽힌 이명박 박근혜의 국정농단에 맞서 촛불로 민주주의를 지켜왔습니다.
저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6.15공동선언과 10.4남북선언을 이행하는데 앞장서 정부의 평화통일 정책이 결실을 맺도록 노력했습니다. 이런 활동으로 당시 통일부장관이 고문으로 있던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가 금강산에서 북측위원회와 함께 개최한 평화통일 공동행사에 초대받기도 했습니다.
이보다 앞선 1998년 검찰은 저를 반국가단체라는 소위 ‘영남위원회’ 산하 ‘혁신위원회’라는 이적단체를 결성했다는 이유로 기소한 적 있습니다. 그런데 검찰은 ‘영남위원회’의 반국가단체 혐의가 무죄로 판결나자 공소사실을 변경하여 그 ‘혁신위원회’가 한총련 산하 조직이라며 다시 옭아맸습니다.
이후 검찰은 제가 20년 넘게 줄곧 국가의 안전을 위태롭게 했다며 또 기소했습니다. 그러나 검찰이 지난기간 휴대폰 감청과 이메일 등 통신기록을 조회하고, 저의 활동을 빠짐없이 지켜보고 작성한 공소사실은 오히려 제가 국가안보에 위험성이 없다는 것을 자백하고 있습니다.
검찰은 제가 국가안보에 20년간 지속적으로 위협을 가했다지만, 촛불항쟁으로 발전한 우리사회의 민주주의는 저의 그간 행위가 국가안보와 민주주의 기본질서를 위협하지 않았음을 반증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검찰이 제시한 저의 범죄사실은 오히려 저의 결백을 입증하는 증거자료입니다.
결국 공소장엔 범죄사실은 없고, 제가 국가안보를 위협할 목적이 있다는 검찰의 일방적 주장만 남았습니다. 형사소송법은 증거재판주의를 원칙으로 합니다. 증거없는 검찰의 억지 주장만으로 결코 범죄가 성립될 수 없다는 것을 검찰도 잘알고 있을 것입니다.
검찰은 제가 국가변란의 목적이 있다고 주장하지만, 그에 관한 어떤 객관적 사실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직 검찰의 추정일뿐입니다. 그런 일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평화통일을 위한 활동이 국가변란을 꾀했다거나, 대한민국의 안전을 위태롭게 했다는 검찰의 주장은 민주주의의 반석위에 굳건히 서있는 우리나라 대한민국을 모독하는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국제사면위원회와 유엔 인권이사회는 1999년부터 국가보안법의 점진적 폐지를 권고해 왔으며, 국내에서도 이에 대한 폐지 여론이 끊이지 않습니다. 2004년에는 한국 국가인권위원회가 폐지를 권고했고, 같은 해 9월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폐지를 주장해, 폐지법안이 국회 법사위까지 통과했습니다. 2008년에는 유엔 인권이사회 미국 대표가, 2015년 10월에는 유엔 자유권위원회가 제7조 찬양 고무죄 조항의 폐지를 권고하며 국가보안법의 문제점을 지적했습니다.
국가보안법은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자유를 침해하는 위헌적인 법률이고, 세계인권선언에 반하는 반인권적인 법률로 영화 <1987>에서 본것처럼 지난 수십 년간 정치적 반대자를 탄압하는 수단으로 악용되어 왔습니다.
특히 국가보안법 제7조는 국가안보와는 무관하며, 단지 양심과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뿐입니다. 국가보안법 제7조, 소위 "찬양·고무" 조항은 양심의 자유를 보장한 헌법 제19조, 언론·출판의 자유를 보장한 헌법 제21조,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보장한 헌법 제22조 등과 충돌합니다.
표현의 자유를 국제인권규약의 "핵심적인 권리(a core right)"로 규정한 유엔 인권이사회는 국가안보를 유지하기 위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경우는 "국가 전체에 직접적인 정치적 군사적 위협을 가져오는 가장 심각한 경우"로 국한하고 있습니다. 국가안보가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정당한 근거로 인정을 받는 것은 "실제 (국가안보)가 위협받을 때"이고, 행위자가 "무엇이 금지된 것인지 알고, 무엇이 제한을 받는지 알 수 있어야 한다"고 선언했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행위를 한적없고, 그럴 이유도 없습니다. 검찰도 ‘국가안보’를 위협했다는 어떤 증거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또한 제게 무엇이 금지 되고, 제한되는지 지금도 알려주지 않고 있습니다.
저는 검찰에 되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가 어떤 범법행위를 했는지? 제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검찰이 어떻게 아는지? 하루에 열두번도 더 변하는 제 생각을 저도 잘 파악하지 못하는데 검찰은 어떤 초능력이 있어 그처럼 확신하는지?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현재 민플러스라는 인터넷 언론사에서 3년째 기자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그 전에는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통합진보당, 그리고 민주노동당에서 당직자로 17년여 직장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4대보험과 소득세등 각종세금을 단한번도 미루지 않고 꼬박꼬박 월급에서 납부했습니다. 군대도 육군병장 만기제대 했습니다. 이처럼 대한민국 국민이 해야할 의무를 저는 충실이 이행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대한민국 헌법이 보장하는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습니다.
제 몸은 가둘 수 있고, 저의 집은 압수 수색할 수 있지만, 제 머리 속을 수색할 순 없고, 제 생각을 통제하거나 가둘 수는 없습니다.
검찰에 요청드립니다.
범죄사실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공소장을 거두고, 공소를 취하해 주십시오. 그것이 자유민주주의 기본질서를 지키는 진정한 길이며, 민주국가의 검찰이 해야 할 일입니다. 또한 어렵게 열리고 있는 남북대화가 평화 통일로 발전하는데 걸림돌이 되지 않는 길이기도 합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이 자리에 중학교3학년, 초등학교6학년에 올라가는 저의 두 딸이 방청하고 있습니다. 저는 두 딸아이에게 민주시민이 돼야한다. 나라와 민족을 사랑해야 한다고 가르쳐 왔습니다.
그런데 국가가 자신의 아버지를 ‘국가안보를 위협했다는 존재하지도 않는 이유로 처벌한다면, 과연 아이들은 그 나라를 사랑할 수 있을까요.
저는 저의 두 딸이 애국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제발 그 바램이 꺾이지 않기를 바랍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98년 제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재판 받을 때 감동적인 변론을 해준 변호인이 있었습니다. 그 변호인이 바로 문재인 대통령입니다.
대학시절 저의 형법 교수님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됐을 때, 저는 무죄 탄원서를 법원에 제출했습니다. 그 교수님이 바로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입니다.
문재인 변호사님이 대통령이고, 조국 교수님이 청와대 민정수석인 이 때, 민플러스 기자인 저는 또다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이렇게 법정에 섰습니다.
영화 1987을 보며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국가보안법을 앞세운 국가폭력에 당한 그들의 아픔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1987년 그때도 30년이 지난 오늘도 국가보안법은 이렇게, 살아 있습니다.
이 재판이 과연 계속 돼야 하는지, 다시한번 심사숙고 해 주실 것을 재판부에 간절히 호소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조혜정 기자 jhllk2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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