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5-04

“지금은 보수 정치세력의 위기…이념적 쇄신 필요하다” - 교수신문



“지금은 보수 정치세력의 위기…이념적 쇄신 필요하다” - 교수신문



“지금은 보수 정치세력의 위기…이념적 쇄신 필요하다”

윤상민
승인 2018.01.02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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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진단_ 위기의 한국 保守, 거듭날 수 있을까?
응답한 교수 중 다수는 대한민국의 합리적 보수를 상징하는 인물로 한국 법제 사법 초석을 놓은 초대 대법원장 가인 김병로를 꼽았다. 사진출처=EBS 화면 캡처

2016년 촛불과 2017년 대선을 거치면서 한국사회의 보수가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는 분석이 잇따르고 있다. 사드배치와 한미동맹을 중심으로 보수의 재집결이 읽히긴 하지만, 보수가 진보의 경쟁 파트너로서 자기 갱신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여전히 회의적이다.

이에 한국의 보수를 연구해온 철학·정치학·경제학·사회학 분야 교수 12명과 함께 위기의 길, 쇠락의 길로 들어서고 있는 ‘한국의보수’를 진단했다. 이들은 한국의 보수는 무엇이며, 이들이 겪고 있는 위기 양상은 어떤 것인지, 또 보수의 새로운 자기갱신은 가능할 것인지에 대해 종횡무진의 대답을 들려줬다.

보수 진단에 함께 한 교수들은 한국 보수주의의 물질적 기반을 경제적 성장과 산업화의 성취에서 찾았다. 1960년대 이후 근대화(공업화)를 통해 형성된 종속적 자본주의 체제와 시장질서가 물질적 삶의 토대를 확보해줬다는 것이다. 이경구 한림대 교수(조선후기사)는 △부: 신분사회로의 지향성을 갖는 세습세력(재벌, 언론, 사학, 대형교회 등) △권력: 군·검경, 정보기관, 특정정당 △지역: TK, PK 일부로 물질적 기반을 세분화해 제시했다.

한국 보수의 이념적 기반에 대해서는 반공주의, 경제만능주의, 신자유주의, 친미주의라는 비판적 입장과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법치 등의 긍정적 입장이 함께 제기됐지만 비판의 목소리가 더 컸다. 시대별로 보수의 이념적 기반을 구분해 볼 것을 주문한 김귀옥 한성대 교수(사회학과)는 “전반적으로는 미국식 자유민주주의를 지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한국 보수주의는 해방 이후 친일 정신이 청산되지 않은 채, 자신의 기득권을 확보하기 위해 친미, 한미동맹 제일주의, 반공주의, 국가주의, 경제지상주의, 반노동·반민중, 반통일 등 유리한 이념을 시대별로 활용했다”고 분석했다. 선우현 청주교대 교수(윤리교육과)는 한 걸음 더 나갔다. 그는 “과연 엄밀한 의미에서 제대로 된 ‘이념적’기반이 존재했었는지 극히 의문”이라며 “반공주의, 안보주의와 결합된 근대화 논리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한국의 보수가 보여준 功過에 대해서 교수들은 경제성장과 이에 따른 공동체 해체, 양극화로 의견이 수렴되는 경향을 보였다. 이상익 부산교대(윤리교육과)는 자유민주주의의 수호와 경제발전을 공으로, 정치권력(국가권력)의 私事化를 과로 꼽았다. 민주주의 측면에서 공과를 따져본 답변도 있었다. 이기홍 강원대 교수(사회학과)는 “보수의 공은 공업화와 그것에 동반된 시장적·절차적 민주주의의 확대이고 과는 더 많은 민주주의, 즉 실질적 민주주의 확대를 저지한 것”으로 읽어냈다.

한국의 보수가 위기를 겪고 있는 이유로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失政부터 미국의 쇠퇴까지 국내외적인 다양한 요인들이 제기됐다. 강신준 동아대 교수(경제학과)는 “전후 국민국가의 성장과 제국(미국)의 쇠퇴에 따른 매판적 성격의 이념적 토대가 와해됐고 공동체 자산의 사적 편취와 경제적 양극화로 인해 보수는 국민 대중과의 적대적 관계가 됐다”고 지적했다. 강정인 서강대 교수(정치외교학과)는 “한국의 보수는 남북분단에 기대어 반공, 반북 및 종북에 기초한 안보이데올로기로 국민의 지지를 결집하려는 타성에 의존하고 있다”며 “이념적 쇄신을 도모하지도 못하고 새로운 지도자도 키워내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위기를 읽어냈다.

보수가 시대정신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었다. 엄정식 서강대 명예교수는 “‘시대정신’이란 넓게는 ‘분단 구조’에 대한 인식이고, 이 구조 속에서 자유민주주의의 한계 및 산업화나 성장 속도를 조절하는 실천적 방안에 대한 인식이기도 하다”며 “이런 인식이 진보주의와 본질적인 문제에 관해 다차원적인 통로로 마련돼 있어야 보수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보수의 위기에 대해 이견을 제시한 교수들도 있었다. 김인영 한림대 교수(정치행정학과)는 “보수주의의 위기가 아니라 보수 정치세력의 위기”라며 “체제를 지키려는 보수주의와 보수주의 세력은 어느 체제에나 있었다”고 봤다. 그는 구 소련의 초대 대통령이었던 고르바초프가 공산주의를 개혁하려 했을 때 공산주의를 수호하고 싶어 한 세력이 보수였다는 예를 함께 제시했다. 전진성 부산교대 교수(사회교육과)의 어조는 더 강했다. 그는 “한국의 보수는 보수를 사칭하는 수구기득권층이지 말 그대로의 보수가 아니다”며 “기성정치의 기울어진 경기장에 기생해온 뉴라이트 류의 보수가 아닌 진정한 보수가 새로운 세계관을 제시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국의 보수가 새롭게 태어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진중한 자기성찰 선행 △분단냉전체제와 지역주의 타파 △이념적 일관성 없이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른 이합진산의 정치 타파 △지속가능경제로의 전환 △공동체 가치 회복 등이 제시됐다. 또한 교수들은 합리적 보수의 모습을 되찾아야 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기존의 사회경제체제를 옹호하되, 공동체 가치 및 문명의 발전방향과 조화된 형태로 그 체제를 보존, 발전시키는 이들이 합리적 보수의 모습이라는 지적이다. 장은주 영산대 교수(정치철학)는 ‘촛불 이후’의 새로운 민주주의 체제 형성이라는 거시적인 관점을 주문했다. 그는 “정치공학적 시선을 거두고, ‘87년 체제’가 낳은 지금의‘결손 민주주의’를 좀 더 온전하고 건강한 체제로 대체해야 한다”며 “한국의 보수가 합리적이고 개혁적이려면 분단 체제의 망령을 떨쳐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말처럼, 한 사회의 건강성은 좌우의 균형 잡힌 대화와 견제 속에서 지켜질 수 있다. 戊戌年을 맞아 대한민국의 보수가 제대로 된 보수로 거듭나, 한국 사회가 산적한 과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시대로 전진하는 데 일조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자문해주신 분(가나다 순)

강신준 동아대(경제학), 강정인 서강대(정치학), 김귀옥 한성대(사회학), 김인영 한림대(정치학), 김희교 광운대(중국학), 선우현 청주교대(윤리교육), 엄정식 서강대 명예교수(철학), 이기홍 강원대(사회학), 이경구 한림대(한국사), 이상익 부산교대(윤리교육), 장은주 영산대(정치철학), 전진성 부산교대(서양사)


윤상민 학술문화부 기자 cinemond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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