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주장할수록 멀어져…평화롭게 살기부터 얘기하자” : 사회일반 : 사회 : 뉴스 : 한겨레
“통일 주장할수록 멀어져…평화롭게 살기부터 얘기하자”
등록 :2015-11-23 20:42수정 :2015-11-23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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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 탈분단경계문화연구원장 최완규 교수
“정치학자로서 37년째 남북관계와 북한, 통일 문제를 연구해왔는데 권력정치, 국제정치의 시야만으로는 문제를 풀 수 없다는 한계를 절감했다. 새로운 이론적 자원을 동원한 새로운 고민, 즉 패러다임 전환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경계’라는 화두를 새롭게 부여잡은 이유다.” 최완규(65) 신한대 탈분단경계문화연구원 원장의 말이다. 그의 화두도 화두지만, 무엇보다 소속과 직책이 낯설다.
최 원장은 1977년 2월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연구원으로 학계에 발을 디딘 이래 경남대와 북한대학원대학에서 평생 학문 연구의 길을 걸어왔다. 북한대학원대학은 경남대 행정대학원 북한학과에서 시작해 2001년부터 ‘북한학’에 특화한 석·박사 학위과정을 운영하는 전문대학원이다. 그는 총장을 3년간 맡은 뒤 지난 8월 고별 강연을 끝으로 조기퇴직하고 경기도 의정부 소재 신한대로 자리를 옮겨 학자로서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북한연구학회 회장, 정치학회 부회장, 국제정치학회 이사 등을 지낸 정치학계와 북한학계의 대표적 원로가 낯선 여정에 나선 이유는 뭘까? 그가 주도해 만들어 원장직까지 맡은 ‘탈분단경계문화연구원’의 이름을 뜯어보면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1977년 경남대 연구원부터 37년째
‘남북관계·북한·통일’ 연구한 원로
북한대학원대학 총장으로 ‘퇴직’
신한대서 연구원 열어 ‘제2 인생’
콜로키움·국제회의 등 학문공동체
“통일이론의 패러다임 전환 절실”
최완규 교수먼저 ‘탈분단’. “우리가 지향하는 사회가 자주·민주·평화·복지 국가라는 점에는 여야의 의견이 다르지 않다. 그런데 민족문제를 풀지 못하면 모든 게 반쪼가리에 불과하다. 그간의 연구와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치지형 등 여러 사정을 고려할 때 단일민족국가로의 통일은 당분간 어렵다고 나는 생각한다. 남북관계의 역사가 여실히 보여주듯, 통일을 주장할수록 통일로 가는 길을 막는다. 통일 주장에 앞서 강고한 분단체제의 모순과 실체를 드러내, 역사 화해를 포함해 남북의 화해협력을 모색하고 평화와 공존 체제를 다져나가는 게 먼저다.
내가 국회의장 직속 남북화해협력자문위원장을 맡은 이유이기도 하다. 대통령의 ‘통일대박론’은 시민들의 분단·통일에 대한 관심을 환기한다는 점에서 일부 긍정적인 측면이 있지만, 위험한 담론이다. 무엇보다 ‘어떻게?’가 없다는 점이 문제다.”
최 원장의 말이 길게 이어진다. “성공한 비정부기구(NGO)와 국제기구가 활동을 하며 중시하는 대원칙은 하나다. ‘상대방의 언어로 대화한다’는 것이다. 상대를 타자화해서는 문제를 풀 수 없다. 이에 비춰볼 때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은 형용모순이다. 북한이 어쨌든 70년 가까이 국가체제를 유지하고 있지 않나? 무력통일이 아니라면 그들을 배제하지 않고 어떻게 자유민주적 평화통일이 가능한가? 통일이 되려면 최소한 두 가지가 전제돼야 한다. 첫째, 남과 북이 동작동 국립묘지와 대성산 혁명열사릉에 서로 참배할 수 있을 정도로 역사 화해가 진전돼야 한다. 둘째, 남과 북의 핵심 권력집단이 통일 뒤에도 함께 정치적 공동이익이 보장된다고 여길 수 있을 정도로 체제와 이념이 유사해져야 한다.”
그는 다음으로 ‘경계문화’를 소개했다. “연구 보고서들을 보면, 세계적으로 경계 지역이 250곳 정도 된다. 휴전선처럼 여전히 살벌한 곳도 여럿 있지만, 대체로 경계를 인정하고 서로 소통하며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세계의 숱한 경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그곳의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경계 문화’를 연구해야 한다. 그를 통해 남과 북의 화해와 협력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최 원장은 지금 ‘서로를 타자화하지 않는 더불어살기, 평화롭게 어울려 살기’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통일을 잊어야 통일의 길이 열린다’는 반어적 접근법이다.
‘탈분단’의 길을 열 ‘경계문화’를 모색하려는 그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우선 탈분단경계문화연구원의 첫 연구원으로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사회인류학으로 학위를 받은 남영호 박사를 선택했다. 학제간 연구의 활성화와 ‘패러다임 전환’을 위한 선택이다. 지난달엔 연구원 출범을 알리는 국제학술회의를 조직했다. 주제는 ‘분단과 경계를 넘어-초국경의 부상과 새로운 통일 방향’이다. ‘경계’의 관점에서 볼 때, 한반도의 분단은 “서로 상대방을 적대하는 장벽”이 아니라, “재구조화의 가능성을 포함하는 공존의 근거”가 될 수 있다는 문제의식이 깔려 있다.
낯선 길에 들어선 최 원장이 꿈꾸는 것은 세가지다.
첫째, 이러한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학자들을 모으고 월례 콜로키움(라틴어 ‘함께 말한다’는 뜻)을 조직해 학문 공동체의 형성에 기여하는 것이다.
둘째, 경기도·강원도 등 접경지역 지자체와 공동작업으로 ‘경계문화’ 연구를 심화하고 새로운 실천을 조직하는 일이다.
세째, 이런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국내외 학자들을 불러모아 해마다 국제학술회의를 여는 일이다. 스스로 무거운 짐을 질머진 그의 어깨가 무거워 보인다.
글·사진 이제훈 기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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