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6-28

[사람속으로] 최상천씨 “박정희는 천황주의자” - 경향신문

[사람속으로] 최상천씨 “박정희는 천황주의자” - 경향신문

마땅히 해야 할 일, 그것도 역사적 책무가 주어진 중대한 일을 이런저런 이유와 핑계로 외면하거나 게을리 할 경우 반드시 크나큰 비용을 지불하게 마련이다. 가뜩이나 더운 올여름을 더욱 뜨겁게 달구고 있는 친일 진상규명특별법 논란이나 국가 정체성 공방은 바로 그러한 교훈을 새삼 일깨우고 있다.

친일과 국가 정체성 문제 두 가지 모두에 거대한 음영을 드리우고 있는 이가 바로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 3 년 전 ‘알몸 박정희’란 도발적 제목의 저서를 통해 박정희의 친일행적부터 독재행위까지 신랄하게 비판한 이래 최근의 박정희 논쟁에서 다시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최상천 전 대구가톨릭대 교수(53)를 만났다. 당초 인터뷰는 대구에 있는 최상천의 사무실에서 하기로 예정돼 있었으나 마침 그가 방송사의 ‘박정희 시사토론 회’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에 온 김에 경향신문 접견실에서 진행됐다.

친일행위 조사대상에서 박정희를 빼 자는 정치권 일각의 논의에 대해 최 상천은 대뜸 “박정희는 친일파가 아 니다”고 일갈했다. 박정희가 친일파 가 아니라니. 그의 설명은 이러했다. 친일파란 일제시대에 자신의 사적 이 익을 위해 일본제국주의에 봉사하고 부역한 한국인을 뜻하는데 박정희의 경우 생물학적으로는 한국인일지 몰라도 모든 생각과 의식이 철저히 일본화된, 그것도 천황주의자·군국주의자가 된 만큼 ‘소프트웨어’는 ‘일 본인 중에서도 가장 극렬한 일본인’이라는 것이다. 그는 “일본제국주의 첨병이 바로 이른바 황군(皇軍)이며, 자발적으로 충성혈서를 쓰고 그 군대의 장교가 됐다면 천황주의로 완벽하게 무장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 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러한 만큼 박정희는 단순한 친일파로 이해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며 따라서 조 사대상 제외 운운은 말도 되지 않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 3년전 ‘알몸 박정희’ 책펴내 주목받아 -

사람속으로 최상천씨 “박정희는 천황주의자”

입력 : 1970.01.01 08:59:59 79

유신체제도 박정희의 ‘철저한 천황주의’에서 이해돼야 한다고 최상천은 말했다. 그는 “유신체제는 박정희가 자신의 영구집권을 위해 구축한 억압적 통치구조인 동시에 천황주의를 한국에서 실현한 것”이라고 설명했 다. 그는 “박정희의 유신체제는 일본의 천황처럼 한 개인이 국가 위에 올라타서 모든 사람을 자기의 의도대 로 움직이는 시스템”이라면서 “스탈린 체제와 김일성 체제도 국가 구성원 모두를 자신의 신민(臣民)으로 부 렸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는 동일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유신체제의 폐해는 당대의 정치·사회적 억압을 훨씬 뛰어넘어 위로는 대통령과 재벌, 맨 아래로는 말단 행정조직인 파출소·소방서·동사무소와 지역토호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 구석구석에 형성된 정경유착과, 무엇보다 폭력이 내면화됨으로써 ‘조폭주의’ ‘두목숭 배주의’가 자리잡는 등 거대한 구조악으로 남아 있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박정희의 가장 큰 치적이라는 경제발전에 대해서도 그는 날선 비판을 아끼지 않았다. 굳이 경제개발의 측 면만을 얘기하자면 차리리 일제의 공로가 더 크다는 것이다. 그는 “박정희 시대 건설된 고속도로가 1,200㎞ 에 불과한데 이미 일제는 5,000㎞의 철로를 놓아 조선을 ‘근대화’하고 조선인의 삶을 ‘향상’시켰다”면서 “그 런 논리라면 우리는 박정희보다 일본 제국주의자들을 몇 곱절 존경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그렇게 무자비 했던 스탈린도 소련을 미국에 버금가는 세계 최고 수준의 공업국으로 이끌어 올렸다는 것이다. 요컨대 인 간의 이성과 윤리성, 사회적 합리성을 배제한 채 ‘경제개발했으니 훌륭한 것 아니냐’는 인식은 조직폭력배 들이 용돈 몇 푼 쥐어주는 두목에게 머리 조아리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설명이다. ‘알몸 박정희’는 3년 전 정부가 박정희기념관을 건립한다는 소식에 격분한 그가 하루 10시간씩 집필해 3개 월 만에 펴낸 책이다. 그는 “경제개발에 공이 많아서 기념관을 짓는다는 얘기를 듣고 ‘박정희보다 훨씬 경제 개발 많이 한 일본 천황폐하 기념관을 지으라’고 소리쳤다”면서 “그런 식이라면 일제시대 ‘산업화를 방해한’ 백범 김구는 미친 사람일 것”이라고 말했다. 내친 김에 그는 역대 군사독재정권과 영남 정치세력이 주도한 ‘김대중 죽이기’를 비판하는 ‘알몸 대한민국 빈손 김대중’이란 책도 잇따라 펴냈다. 최상천은 “보통 어느 인물에 대한 책을 쓰거나 깊이 연구를 하다 보면 ‘애증’을 가질 만한데 박정희는 어느 구석에서도 인간미를 본 적이 없다”며 “포악하다는 말밖에 생각나는 게 없으며 한마디로 야수에 가깝다고 표현하고 싶다”고 말했다. 동일한 대상을 관찰하더라도 어떤 관점과 입장을 가지느냐에 따라 그 평가는 극 과 극을 달린다는 사실을 최상천과 어느 극우 논객의 경우에서도 알 수 있을 듯하다. 그 논객도 박정희 평 전을 썼는데 보통학교 시절 ‘급장 박정희’가 자신보다 나이도 많고 장가까지 간 친구들을 포함해 모든 급우 들을 때린 대목에 이르러서 두 사람의 평가는 극단적으로 대비된다. 최상천은 “피도 눈물도 예의도 없는 망 나니짓”이라고 강하게 비난한 반면 그 논객은 ‘가난과 작은 체구의 문제를 극복하고 급우들을 통솔하는 데 상당한 능력을 발휘했다’고 높이 평가했다. ‘망나니짓’과 ‘통솔력’이라…. 배우 성현아, 가슴 볼륨 키우는 관리법 공개! 스포츠토토 "10억" 이상 고수입자 특징이?? "빚"많아도 "등급"낮아도 1억까지 서민지원! 주식정보 전부 '사기'다? "충격" "힘力" 좋아진 남편! 대체 뭘먹나 봤더니..? 한국에 150억 초호화집? 집주인 알고 봤더니..

- 유신이 조폭·두목 숭배주의 원조 -

이처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죄과에도 불구하고 박정희가 ‘존경하는 정치지도자’의 맨 앞줄에 위치하고 박 정희 시대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이유가 궁금했다. 최상천은 “조·중·동으로 상징되는 수구집단 의 지속적인 선동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민중의 삶이 실질적으로 향상되는 실질적 민주화가 정치적 민주화 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를 테면 이런 것이다. 정치적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국민들은 마음껏 말하고 비판할 수 있는 자유를 얻었지만 정통성을 갖춘 정권 이 몇번이나 출범했으면서도 IMF 외환위기와 신용카드 대란 등을 통해 민중들의 삶은 상대적으로 궁핍해 지고 국가로부터 버림받았다는 느낌을 갖게 되면서 ‘차리리 그때가 좋았다’는 향수를 갖게 된다는 설명이 다. 따라서 박정희 체제의 잔재를 청산하고 왜곡된 박정희 신드롬을 극복하는 최선의 방법은 이 땅에 발을 딛 고 있는 보통사람들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것이라고 최상천은 거듭 강조했다. 그는 부인의 친구 중 얼마 전 에 이혼을 한 뒤 아이 하나 키우며 살고 있는 여성을 예로 들었다. 수입도 없이 생활고에 빠져 있던 그 여성 은 집을 얻는 데는 물론 미용기술을 배우는 것까지도 국가에서 지원해주자 ‘진실로 나라에 감사한다’고 몇 번이나 감격해했다는 것이다. 최상천은 “보통사람들의 입에서 이런 얘기가 많이 나올 때 ‘박정희를 찬양하 자’는 선동은 미친 짓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보통사람 삶 윤택해야 잔재 청산 - 최상천은 국민 모두를 동원의 대상으로 보고, 국가에 충성하는 존재로 파악한 박정희시대의 이데올로기인 ‘국가안보주의’에서 이제 한사람 한사람이 양심과 인격을 가진 주체적 인간으로 존중받고 그들의 삶을 국가 에서 보장하는 ‘사람 안보주의’로 하루빨리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람 안보주의’가 되면 마을에 다리 하나 놓는 것도 행정기관 책임자의 업적이나 공기(工期) 등의 요소보다 는 안전성과 편의성, 환경친화성 등을 우선시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람 안보주의’가 만개한 국가를 최상천 은 ‘사람나라’라고 불렀는데 그가 대학을 그만둔 뒤 설립한 출판사의 이름이기도 하다. 최상천은 51년 대구에서 태어나 고교까지 그곳에서 다닌 뒤 고려대 사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했다. 그는 “대 학시절 ‘학생운동의 꽁무니나 쫓아다녔던’ 죄책감이 두고두고 가슴에 남아 ‘박정희 바로알기 운동’에 뛰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83년부터 2000년까지 대구 가톨릭대 역사교육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왕 보수’로 유명한 재단(가톨릭 대구교구)과 ‘들어가는 해부터 나오는 해까지 싸웠다’고 한다. 지금은 대구시내 교수, 교사, 학부모 등 10여명과 ‘2004여름 대구교육포럼’이란 교육운동단체를 이끌면서 틈틈이 집필과 강 연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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