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9-07

Daehwan Ju shared a post.


8 May ·



친손자와 외손자, 두 어린이의 할아버지가 되어 나보다 (아홉살이나 젊지만) 먼저 어르신이 되신 김대호 선생께서 용기가 있었다고 칭찬(?)해주시니 민망하다. 어리석고 어리석었던 지난 30년이여!


김대호
8 May


1980년대 규모가 꽤 컸던 운동조직 중 최악은 사노맹이다. 주대환이 중추적인 역할을 하던 인노련-한국노동당과 김영환이 중추적인 역할을 하던 민혁당은 중핵들의 성찰반성을 통해 그런대로 조직적, 체계적으로 노선을 전환하고, 조직을 해체, 정비, 전환하였다. 중핵들이 "우리가 왜 이런 노선을 견지해야 하는가?"를 치열하게 물었기 때문이다. 노선에서 Back to Basic에 충실했다는 얘기다.


그러나 백태웅, 박노해가 중핵이었던 사노맹은 핵심들이 1992년 4월에 거의 다 검거되면서 머리를 잃은 몸통이 되고 말았다. 이후(출감 이후에라도) 이들이 사노맹 노선을 공개적으로 성찰반성, 전환했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없다. 그냥 조직이 와해된 것이다. 중핵들이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 그 아래(중앙위원급)가 성찰반성, 전환을 할 수도 있지만, 그것도 아니었던 것으로 안다.

2010년 전후하여 만난, (사노맹)사회과학원 원장 황주석씨는 사노맹 출신들이 다른 조직운동 출신들에 비해 대체로 어렵게 산다고 했다. 사회에 제대로 정착하지도 못하고, 전반적으로 곤궁하게 산다면서 아파했다.

(내가 알기론 80년대 운동조직 중에서 튼실한 '재정' 내지 '보급투쟁'을 매우 강조하던 조직이다. 그래서 박노해 중병을 고친다고, 치료비 명목으로 돈을 꽤 걷었다. 은수미가 그 때 돈 모으는 역할을 좀 한 것으로 안다. 내 친구는 당시 한달치 월급(50만원쯤 됐나?)을 은수미에게 다 줬다고 했다)

스스로의 성찰반성을 통해 조직적으로 노선을 전환하지 못하고, 공안탄압에 의해 꺽이면, 오기와 한과 분노가 남는 법이다. 1930년대 비밀리에 만동묘 참배를 하여, 세간을 놀라게 한 조선 선비들과 비슷한 심리 상태다. 그러니 새로운 삶을 힘차게 전개하지 못한다.

성찰반성없이 그냥 탄압에 꺾이고, 생활고와 세월에 풍화된 영혼은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북아프리카 등 지중해 연안에 남아 있는 그리스 로마 유적지처럼 된다.

솔직히 나는 은수미와 조국으로부터, 또 1990년을 전후하여 주체사상을 신봉했던 전대협 출신들로부터 그리스 로마 유적지를 본다.

한때 거대한 신전처럼 여겨지던 사상체계는 부서지고, 무너지고, 날아가고, 풍화되었다. 사상이념의 골조 내지 정체성을 형성하던 지붕과 벽은 온데간데없다. 기둥 몇 개가 이곳저곳 허물어진 기초 위에 휑덩그렁 서 있다. 주춧돌도 세월에 풍화된 채 어지러이 뒹굴면서 옛 로마의 영화를 증언한다.

남아서 뒹구는 것은 막연한 반자본, 반재벌대기업, 반미, 반일, 친중, 친북 정서다. 반공안(군대, 경찰, 국정원 등) 정서도 있다. 노동권과 노조 강화를 금과옥조로 여긴다.

NL은 그래도 품성론(먼저 좋은 사람이 되자)도 있고, 대중노선도 있고, 애국적 사회진출운동인가 뭔가가 있어서 사회에 깊이 스며들었다. 게다가 중핵 중의 중핵들은 사상적 전환 이후, 계간지 '시대정신'을 거의 20년 가까이 냈다.

주대환은 영국노동당, 스웨덴 사민당 노선(시장에 관한한 신자유주의다)을 수용하고, '대한민국을 긍정하는 좌파'로 자리매김 하는 등 사회민주주의 운동을 전개했다.

그런데 사노맹은?? 백태웅, 박노해도, 그 아래 중앙위원들도 정말 무책임했다. 그래도 중앙위원 정도 한 사람은 능력자고, 또 은수미가 보여주듯이, 어쨌든 독재정권에게서 가혹한 탄압(6년 징역)을 받았기에, 자신의 경력을 정치적 자산으로 전환시키기도 하였다. 하지만 대부분은 혼란, 분노, 한을 안고 사회에 안착을 하지 못하였다.

오늘 잘아는 교수의 동생(열혈한 사노맹 조직원, 서울공대 89학번)의 피폐한 인생 얘기를 들으니, 다시금 주대환과 김영환이 참으로 책임감과 용기가 있었고, 그래서 따르던 많은 사람을 구제(?)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백태웅, 박노해, 은수미 등은 참으로 무책임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눈길을 걸을 땐, 어지러히 걷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절벽 쪽으로 걷지 않는 것이다. 또 절벽이라는 것을 알았으면, 이정표를 세워 많은 사람들이 이를 피해가도록 하는 것이다.

**나는 1980년대 국가보안법에 걸릴 지하조직운동은 하지 않았지만, (내 지인들이 많이 들어오는 한 인터넷 까페에서) 9.11테러를 주도한 빈라덴을 21세기 성인라고 하는 것을 보고, "한386의 사상혁명"을 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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