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1-06

나는 왜 이신(李信)에 대해서 말하려고 하는가? (5)



나는 왜 오늘도 여전히 이신(李信)에 대해서 말하려고 하는가? (5) - 에큐메니안



나는 왜 오늘도 여전히 이신(李信)에 대해서 말하려고 하는가? (5)한국 교회 에큐메니즘의 전개와 李信 신학
이은선(한국信연구소, 세종대 명예교수) | 승인 2018.11.24 20:49
댓글0
icon트위터
icon페이스북


마무리하는 말: 21세기 오늘 우리 시대를 위한 믿음의 ‘지속’(成)에 대하여

언제 쓰인 것인지 정확한 연도는 알 수 없지만 이신의 시에 “불이 어디 있습니까?”라는 시가 있다.(1)

<불이 어디 있습니까>

당장에는 없는 것
눈을 씻고 봐도 없고
손을 흔들어도 없는 것

없어도
있는 것
있으면서 없는 것

돌과 돌이 부딪혀서
나는 것
쇠와 쇠가 부딪혀서
있는 것

어둠의 장막이 내리고
산촌에 길을 막을 때
비치는 불빛

여기서도 분명히 드러나듯이 영靈을 상징하는 ‘불’이 바로 그 불과 가장 거리가 멀다고 여겨지는 ‘돌’과 ‘쇠’를 통해서 얻어질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모든 희망이 사라지고 절망에 몸을 떨며 앞길이 보이지 않을 때 그 때 비치는 불빛. 오늘 한국 교회의 현실과 남북이 하나 되고자 하는 평화 프로세스에서 앞길이 보이지 않을 때 다시 생각나는 시다.



2016년 한국에 번역 소개된 조르조 아감벤의 『불과 글』은 이신이 많이 영감을 받은 서구 현대의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이 어떻게 언어와 ‘글쓰기’라는 인간 말의 예술에 모든 것을 걸고서 그것을 통해서, 또는 그것을 넘어서, 정신의 전적 자유와 새로운 이상의 초현실을 이루어내기 위해 고투했는지를 소개한다. 그것에 따르면 조르조 망가넬리(1922-1990)라는 이탈리아의 네오아방가르드 소설가는 “‘글’은 신입니다. 우주죠. ... 그러니까 (그의) 책은 처음부터 ‘글’은 우주라는, 즉 의미들의 총합 외에는 아무 것도 의미하지 않는 신의 언어와 담론이라는 생각을 열쇠로 읽을 수 있습니다”라는 해설서를 낳았고, 이러한 글쓰기에 대한 시각의 원형이 되었던 프랑스 시인 말라르메(S. Mallarme)는 “세상은 오로지 책으로 피어나기 위해 존재할 뿐”이라고 믿으면서 하나의 절대적인 책을 평생 계획했다고 한다.

그 일을 위해서 말라르메가 제거하고자 했던 요소는 무엇보다도 ‘저자’(author)였다고 한다.(2) 또한 네르보와 랭보 등의 초현실주의에 영향을 받았고, 『자기연단 Il lavoro su di se』이라는 제목의 서간집 주인공이 된 작가 르네 도말(Rene Daumal, 1908-1944)에게는 “글을 쓴다는 것은 고행을 실천하는 행위의 일부”이고, “작품의 창조는 그 글을 쓰는 주체의 변모에 비해 부차적인 차원”으로 밀려났다고 밝힌다. 도말은 “그래서 제 일은 점점 ‘저를 위한’ 작업이라기보다는 제 자신에 대한 작업으로 변하고 있습니다”라는 말을 했다.

이상에서 보여진 대로 많은 슐리얼리스트 전위 예술가들의 궁극적 지향은 결국 매우 전위적이고 급진적으로 자신들 스스로의 삶은 ‘제로’(zero)로 전환시키고, ‘익명’(anonym)으로 숨는 영적 겸비에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었다. 나에게는 슐리얼리스트 화가이면서 신학자와 목회자로 살았던 이신의 삶과 추구도 점점 더 그렇게 되어져 간 것으로 보인다. 그는 자신의 길을 가면서 그 이상을 이루지 못해서 괴로워했고, 화를 냈고, 절망하고 실망해서 주변 사람들과 불목하면서도 다시 화해하고 기뻐했다.

죽음의 침상에서 마지막 쓴 글인 “이단이란 무엇인가”를 보면 “교리적 언표와 실제 생활”에서의 인격적 구현 여부가 한 종교 사상의 이단 여부를 가리는 시금석이라고 제시한다. “눌린 자의 해방자”와 “화해의 주체자”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오늘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남북한의 분단이라는 풀기 어려운 상태”와 “한국 교회의 분열상”(이) 극심한 가운데서 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당파’, ‘파派’, ‘편당’을 조성하는 일에 몰두할 때 그가 곧 “이단”이라고 그는 밝힌다. “삼국시대 이래로 이 민족의 분열상은 심화”되었고, “어쩌면 하나님께서 이 민족의 역사를 통해서 분열이라는 것이 얼마나 비참한 것인가 하는 것을 세계에 구경거리로 보여 주시는지 모르겠다”고 일갈한다.(3)

오늘 남북의 화해와 평화, 통일을 위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위해서 한국 교회가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그는 당시 죽어가면서도 생각했다. 이신은 그러한 가운데 “인간관계에 화해 없으면 하나님과의 화해는 무의미”하다고 선포한다. 그는 마지막에는 우리의 화해는 “하나님의 선수적先手的 행위” 때문에 가능해졌고, 그래서 “신뢰할 만한 것”이라고 고백한다.(4)

그런 의미에서 그가 그토록 강조한 ‘믿음’과 ‘상상력’은 다시 하늘의 선수적 은총임을 밝히는 것인데, 그렇게 그는 참으로 ‘믿는 자’(信)였고 “초현실을 의식하는 사람”이었다.(5)그래서 그는 자기 시대에서 좌절당한 사람이었고, 자기 교회에서 유배당한 사람이었으며, 또한 가족과 고향에서 외면당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 그 믿음과 의식으로 그는 죽는 순간까지 “돌의 소리”가 되어서 다음과 같이 외쳤다.

“좌우간하늘을마시고동시에땅에발을딛고선사람치고는누구나통할수있다고생각하고이런기상천외의소리를함으로모두가손에손을잡고웃으며초현실의평화와자유를갖자는것이다.이것은말하자면‘이리가어린양과함께거하며표범이어린염소와함께누우며송아지와어린사자와짐숭이함께이ㅆ어어린아이에게끌리며암소와곰이함께먹으며그것들에게끌리며그것들의새끼가함께엎으리며사자가소처럼풀을먹을것이며젖먹는아이가독사의구멍에서장난하며젖뗀어린아이가독사의굴에손을넣을것이라’는소리는사실말이지요즘현명하다는사람들에게느얼토당토않은소리로들릴것이다....그러나오늘은내일을부르고내일은오늘을부르기때문에이것은미래의귀에만낯익은소리일뿐만아니라현재의귀에도어떤사람들에게는들릴수있는소리일것이라고생각하고좌우간발설해보는것이다.”(6)(한국쉬르리얼리슴연구소 1979/4/20)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라는 원형을 생각하고서 그 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낯설고 얼토당토하지 않게 들리던 소리를 발설하며 외롭게 저항하고 상상하셨던 아버지 이신은 가고 37년이 흘렀다. 그 딸로서 나는 이후 한국 여성신학자가 되어서 ‘한국적 여성신학’을 구성하기 위해서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다. 올해 재직하던 대학을 몇 년 일찍 나와서 ‘한국信연구소’라는 이름과 함께 보다 집중해서 여러 방향과 차원에서의 ‘한국적 통합학문’을 수행하고자 ‘사유하는 집사람’(denkende Hausfrau)의 삶을 택했다.



2년 전 남편 이정배 교수가 학교를 조금 일찍 나온데 이어서 행한 것이라 사람들은 당황스러워하기도 하고 의아해하지만 쉽게 내린 결정은 아니었다. 그동안 우리 부부는 함께 신학자로서 ‘생명평화마당’의 ‘작은교회 운동’에 몸담아왔고, 2017년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해서 ‘한국적 작은교회론’을 구성하는 일에 함께 또 따로 역할 해왔다. 나는 그러한 모든 일들이 이신이 그렇게 힘주어서 강조했던 ‘한국적 그리스도의 교회’를 세우고자 한 일과 그렇게 다르지 않고, 오늘 21세기 한국 교회와 한반도가 놓여있는 상황에서 참으로 기초가 되고 근본이 되는 일로 ‘신앙적 주체성’을 찾는 일을 그렇게 강조했던 그의 정신과 서로 연결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오늘 나는 그의 육신의 자식으로서 그의 신학을 전수하는 사람 중 하나가 되었다. 함께 이신의 신학과 예술을 전하고 알리는데 역할 해 온 동생 이경은 엄마의 소원대로 ‘한국 그리스도의 교회’ 목회자가 되었고, 청주 지역에서 이주민노동자 인권을 위해서 일 하다가 최근에는 녹색당에 합류해서 몇 년 후 세계 녹색당 대회를 한국에 유치하려고 애쓰고 있다고 한다. 이신에게 가까이 머물렀던 소수의 정신적 제자들이 어디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우리 가족들과는 연락이 잘 닿지 않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그는 보지 못했지만 그의 또 다른 자손 중 한 명인 극단 ‘크리에이티브 바퀴’(Creative VaQi)의 이경성 연출가는 ‘변방연극제’라는 연극 축제의 연출을 책임 맡고서 할아버지의 ‘상상’과 ‘믿음’의 정신에 기대어서 자신의 변방 연극제 이상을 발표했다. 요사이 서울 두산아트센터에서 공연되고 있는 연극 ‘러브스토리’는 작년의 ‘워킹 홀리데이’에 이어서 남북의 하나됨과 평화의 이야기를 주제로 개성공단에서 일했던 북한 측 노동자들의 삶과 꿈, 그들의 일상과 고통에 상상으로 다가가고자 연극인데, 이러한 것들은 이신의 사고가 다시 이어지고 전해지고 있는 것이라고 보고 싶다. 모두 이신의 말이 육신이 되고(die Woerter werde Dinge), 그의 육신이 다시 뜻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die Dinge werde Woerter)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20세기 여성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그녀의 최초의 저술 『라헬 파른하겐-어느 유대인 여성의 삶』에서 변방인, 페리아(pariah)들은 특히 ‘보편화’와 ‘일반화’에 대한 강한 요구(“보편화하려는 강한 경향”)를 가지고 있고, “본능적으로 모든 사람들의 인간의 위엄을 발견한다”라고 적고 있다.(7) 즉 다른 주류인들은 보지 못하는 뛰어난 내적 감수성과 열정적인 이해심으로 모든 존재 안에서의 존엄과 평등을 알아보고 그것에 대한 강한 요구를 가지고 그들을 하나로 연결하려는 경향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반면 세상에서의 소외와 차별과 갈등의 문제가 단순히 그들 개인적인 특수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은 바로 정치의 문제이고, 공동체적 문제라는 것은 잘 파악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나는 아버지가 그 예민한 감수성과 슐리얼리스트의 상상을 가지고도, 그리고 모든 존재 속의 인격의 위대함과 창조성에 대한 놀라운 통찰에도 불구하고 바로 이런 면에서는 한계가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래서 나 자신은 더욱 열심히 사람들과 연결해서 함께 공동으로 우리 시대의 꿈과 일을 이루고자 애를 쓴다.

내년 3.1운동 백주년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는 <3.1운동백주년종교개혁연대>를 천주교, 불교, 천도교, 유교의 그룹들과 함께 구성해서 다시 한 번 3.1독립운동 정신을 기리면서 특히 여성종교인들이 앞서서 우리의 제2의 독립선언서를 발표하기 위해서 모여 공부하며 힘을 모으고 있다. 나는 아버지 이신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역할로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좁은 의미에서 학적으로 연결된 제자 한 사람도 제대로 키울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대신에 몸의 자식들을 통해서 그 자식들을 사상의 제자가 되게도 했고, 그의 신학과 예술과 세계에 대한 꿈이 오늘은 많은 사람들의 보편이 되도록 하는 일을 가능케 했다고 여긴다.

그는 한국이 낳은 토착적 사상가로서, 이미 ‘포스트휴먼’에 대한 놀라운 이상을 가지고 있었다. 기독교 에큐메니즘에 대한 생각, 인간과 자연의 하나됨에 대한 깊은 생태적 사고, 우주 안에서의 인간의 위치를 염려하고, 무의식의 깊은 차원에 대한 관심으로 진정 인간의 문화와 문명이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를 사유하고 통찰했다. 그의 안내로 나는 대학 때 떼이아르 드 샤르뎅을 공부해서 신학에 입문하게 되었고, 과학의 중요성, 현대 예술의 존재도 나름대로 인식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타나는 그와 우리 세대의 한계도 분명한데, 그것을 넘어서 다시 그 우리 다음 세대가 그의 일과 삶을 여러 가지 방식으로 잇고 있다.

그는 나름대로 하늘의 자식이 되어서 하늘의 뜻이 이어지는 일에 큰 책임감과 수고로 임했으니 그는 진정으로 효자(孝子)였다. 특히 하늘 부모님에 대한 효자(大孝)였다. 한국의 시인 이상을 이야기했고, 이중섭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으며, 당시에 최제우에 대한 논문을 썼고, 홍길동을 말하며 참으로 한국적인 사상가로서 살았던 그, 그의 정신이 오늘 우리 시대 널리 퍼져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이루고, 우리 교회를 새롭게 하고, 나아가서 인류의 평화와 안녕을 위해서 한 그루터기로 역할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의 삶과 많이 연결되는 슐리얼리스트 전위 화가 파울 클레(Paul Klee, 1879-1940)에 대한 다음과 같은 서술 한 토막을 나는 이 글의 마지막 말로 가져오고자 한다. 앞에서 살펴 본 아감벤은 파울 클레를 “자기 연단과 창조 활동이 완벽하게 일치하는 예”라고 평가했는데, 나는 이신에게서도 그와 유사한 모습을 본다.

“구속을 모른 나라
새로운 땅
기억의 숨결이 없는 곳
(...) 고삐없이!
어떤 어머니의 자궁도
나를 데려다놓은 적이 없는 곳.“(8)

“이승을 나는 전혀 파악할 수 없다.
왜냐하면 나는 지금 막
죽은 자들에게서,
태어나지 않은 자들에게서
잘 살고 있기 때문이다.
보통 것보다는 창조에 어느 정도 가까워졌으나
가까이 가기에는 아직도 멀고 충분하지 않다.”(9)

이상의 이유로 나는 아버지 이신을 오늘 많은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종교개혁 500주년을 넘기고 있는 우리 시대에 줄 것이 많은 사상가로 여기면서 여전히 그에 대해서 말하고자 한다. 지금까지의 모든 이야기는 내가 왜 모든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아버지 이신에 대해서 계속 말하려고 하는가의 이유이다.



미주
(미주 1) 이신, “불이 어디 있습니까”, 『李信 詩集 돌의소리』, 이경 엮음, 동연, 2012, 110쪽.
(미주 2) 조르조 아감벤, 『불과 글』, 윤병언 옮김, 책세상, 2016, 158-161쪽.
(미주 3) 李信 지음, 『슐리얼리즘과 영靈의 신학』, 328쪽 이하 334쪽.
(미주 4) 같은 책, 336쪽.
(미주 5) 이신, “돌의 소리”, 『李信 詩集 돌의소리』, 146쪽.
(미주 6) 같은 글, 150쪽.
(미주 7) 한나 아렌트, 『라헬 파른하겐』, 김희정 옮김, 텍스트, 2013, 34, 264쪽.
(미주 8) 조르조 아감벤, 같은 책, 214쪽.
(미주 9) 서장원, “세기의 풍경, 망명 지식인을 찾아서(독일편) 화가 파울 클레”, <교수신문> 제871호 2017.3.13, 8면.


이은선(한국信연구소, 세종대 명예교수) leeus@sejong.ac.kr

No comments:

Post a Comment

Note: Only a member of this blog may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