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3-12

[오늘의 동아시아]② ‘동아시아’ 담론의 역사 - 경향신문



[오늘의 동아시아]② ‘동아시아’ 담론의 역사 - 경향신문

입력 : 2006.07.28 14:59:53인쇄글자 작게글자 크게


왼쪽부터 막스 베버, 두웨이밍, 스피박, 에드워드 사이드.


-‘발전론’ 에 무게 … 권력·자본의 확대-

최근 많은 사람들이 ‘동아시아’ 혹은 ‘동북아’라는 이름으로 우리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 자신의 문제를 ‘동아시아’라는 이름으로 제기하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그 이름은 언제나 같은 의미였던 것일까?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 했던 어느 여성론자의 말처럼, ‘동아시아’라는 이름 또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주조되어 왔다. ‘동양’에 대한 인식은 ‘서양’에 대한 관념의 발명과 함께 비로소 의미를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동아시아’에 대한 담론은 외양상 역사적으로 크게 세 단계로 전개되어 왔다. 먼저, 그것은 16세기에서 19세기에 이르는 근대 서구세계의 형성과정을 통해 제기되었다. 본래 아시아 문명의 전통에서 ‘아시아’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다. ‘아시아’라는 명칭은 고대 그리스인이 동쪽을 가리킬 때 사용한 아시리아어 ‘아수’(asu:)에서 유래된 포괄적인 지칭이었다. 하지만 서구세계가 ‘근대’라는 하나의 일반적인 체계를 만들게 되면서 ‘동양’ 혹은 ‘아시아’는 서구 근대와 대조되는 개념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서양’ 혹은 ‘서구세계’라는 자아의 발견이 ‘동양’이라는 타자를 발명했던 것이다.


두 번째로 19세기 말엽 ‘동아시아’ 담론은 본격화된 근대세계의 확대와 더불어 ‘아시아적 가치’로 제기되었다. ‘동양’이라는 관념을 만든 ‘서양’의 권력은 ‘동양’ 혹은 ‘아시아’를 단순히 지리적인 경계나 실체가 아니라 우월/열등의 대조로, 혹은 문명/야만의 대조로 파악하는 일종의 문화적 배제의 관점으로 확대해 갔던 것이다. 유교적 윤리를 바탕으로 하는 ‘아시아적 가치’로는 프로테스탄트 윤리를 근거로 이루었던 근대 자본주의 발전을 이룰 수 없다는 베버(Max Weber)의 테제가 바로 이러한 생각을 명료하게 나타내준다. 이제 서양/동양, 서구/아시아의 구분은 발전과 지체를 가르는 문화적인 지표가 되었다. 또 ‘동아시아’라는 명칭은 본질적으로 근대적 관계, 특히 자본주의적 교류관계를 강요하고 정당화하는 권력으로 기능하게 되었다. 그러한 의미에서 ‘동양’ 혹은 ‘아시아’라는 명칭은 근대적 산물이자, 특정한 자본주의적 관계를 발전의 척도로 삼아 그러한 교류관계로의 편입을 강요하는 제국주의와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주목할 것은 이 시기 서구적 동아시아관에 대한 반발이 제기되었던 점이다. 19세기 말엽 일본에 의해 제기된 ‘동양’ ‘동아’ ‘대동아’ 논의가 바로 그것이다. 일본은 서구의 ‘아시아적 가치’ 관념에 맞서 아시아의 연대와 공영을 통한 아시아적 발전을 강하게 제기했다. 언뜻 보면 이러한 양상은 마치 서구의 동아시아관과 대조적인 것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물론 동아시아를 대하는 ‘시각’에서만 본다면, 당시 서구와 일본은 각각 부정과 긍정으로 상반되어 보인다. 하지만 동아시아를 대하는 ‘본질적 관계’에서 본다면, 이들은 모두 제국주의라는 권력적 관계를 지향했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같다. 일본의 아시아연대론은 또 다른 의미의 발전론이자 제국주의였을 뿐이다.

세 번째로 ‘동아시아’에 대한 논의는 1970년대 말엽부터 다시 활발히 제기되었다. 일본을 필두로 한 대만, 홍콩, 싱가포르, 남한 등 신흥공업국의 경제적 성장에서 비롯된 ‘동아시아 발전론’이 그것이다. 동아시아 발전론은 주로 뚜웨이밍과 리콴유 등 유교적 문화와 가치에 주목하는 ‘아시아적 가치론’ ‘신유교론’ ‘유교민주주의론’으로 전개되거나, 경제적 발전형태에 주목하는 ‘동아시아 발전모델론’과 ‘유교자본주의론’으로 나아갔다. 이러한 현상은 마치 이전까지 지속됐던 서구의 ‘아시아적 가치론’에 대한 커다란 수정으로 보였다. 자본주의적 발전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지목되었던 유교문화가 오히려 1970년대 이후 동아시아 경제발전의 배경으로 칭송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90년대 말엽 동아시아에 금융위기가 도래하자, 동아시아적 발전의 근거로 칭송되던 유교적 덕목은 오히려 90년대 말의 위기를 불러온 연고주의와 정실자본주의로 지목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동아시아’를 대하는 서구이론의 일관성 없는 태도로 비판받았지만, 사실상 70년대 말의 ‘동아시아 발전론’과 90년대 말의 ‘동아시아 위기론’은 서구의 동양관에서 그리 모순된 것은 아니다. 서구의 ‘동아시아’ 관념의 본질적 특성은 근대 자본주의 관계의 확대와 강권적 권력의 확대에 놓여있었기 때문이다. 20세기에 재론된 ‘동아시아’ 담론의 본질은 모두 근대화 발전론에 그 맥락이 놓여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볼 때, 16세기에서 20세기 말에 이르는 동아시아 담론들이 내포한 의미와 귀결은 근대적 권력의 확장과 자본의 확대라는 점에서 어느 정도 일관되었다. 또한 그러한 의미에서 아시아적 가치를 긍정하고 부정했던 서양/동양, 서구/아시아의 개념은 배타적인 근대관계라는 동전의 양면에 다름아니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아시아적 덕목을 부정할 것인가 강조할 것인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아시아’를 어떠한 내용으로 제기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물론 최근에 와서 서구적 동양 관념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도 일정하게 제기되고 있다. 예컨대 사이드(Edward Said)는 ‘오리엔탈리즘’을 문화제국주의로 비판하고 서구 중심의 근대적 세계관과 학문체제를 극복하고자 하였다. 또한 최근 동양적인 것의 문제를 탈식민주의의 문제로 제기하는 바바(Homo K Bhabha)와 스피박(Gayatri Chakravorty Spivak)도 서양/동양의 이분법을 넘어 근대적 질서와 관념 자체의 재구성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또한 현실에서도 많은 다양한 형태의 대안적 연대 움직임이 제기되고 있다.


만일 이 글의 주장과 같이 ‘동양’과 ‘아시아’에 대한 왜곡된 의미가 애초에 근대 서구세계의 탄생과 더불어 만들어진 것이라면, ‘동양’ 혹은 ‘동아시아’에 대한 우리의 문제제기는 강권적 지배양식을 위해 ‘동양’이라는 타자를 만들고 배제했던 ‘서양’의 발전 관념과 발전방식 자체를 넘어서는 방향으로 제기되어야 한다. 또한 ‘동아시아’라는 담론의 효과가 근대적 발전이란 언명 아래 불평등한 자본주의적 교류관계에 편입하도록 강요하는 것이었다면, 향후 동아시아가 구성해야 할 ‘아시아적인 것’ 혹은 ‘동양적인 것’의 내용은 상호호혜적인 지구적 교류관계를 만들기 위한 방향에서 제기되어야 할 것이다.



〈박주원|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 학술연구교수〉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0607281459531#csidxd6f2b0ffebe2c2c96b37300f95578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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