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5-12

1905 50대 고학력 여성의 마음을 흔든 구인 공고 - 오마이뉴스



50대 고학력 여성의 마음을 흔든 구인 공고 - 오마이뉴스

50대 고학력 여성의 마음을 흔든 구인 공고[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몇 달 전, 미화원으로 취직이 되었을 때 나는 '합격'의 기쁨을 혼자서 조용히 삭여야 했다.

나이 오십이 넘은 여자가 구할 수 있는 일자리는 많지 않았다. 그동안 연극인이자 작가로 살아오면서 생계를 위해 여러 가지 일들을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구직을 위한 스펙으로 내세울 만한 경력이 없었다. 오로지 열린 마음으로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만 충만했다.
하지만 구인구직사이트에 등록을 하고 나니 내 이력서를 보고 적극적으로 전화해 온 곳은 유일하게 기획 부동산 영업과 보험 영업 쪽이었다. 몇 번을 거절하고 나서 생각한 끝에 이력서를 고쳐 썼다.

순수한 노동 인력으로 보일 수 있도록 학력은 고등학교까지만 써넣었고 녹즙 배달이나 창고정리 등 노동의 경험을 강조하여 자기소개서를 작성하였다. 주어진 일을 정직하고 성실하게 해내면 그 대가로 정해진 급여를 받게 되는 일을 하고 싶었다.

면접관의 질문 "화장실 청소도 할 수 있어요?"


▲ 미화원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았을 때, 반드시 붙어야겠다는 강한 의지가 생겼다.
ⓒ 최명숙

관련사진보기

내가 사는 지역의 아트센터에서 미화원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았을 때, 반드시 붙어야겠다는 강한 의지가 생겼다. 일의 성격과 근무시간 그리고 급여조건이 그 어떤 일자리보다도 훌륭했다. 면접을 보러 갈 때 외모로 인해 편견이 생기지 않도록 나의 마른 체형을 보완해줄 풍성한 옷을 입었고 최대한 씩씩하게 보이도록 화장과 머리 모양에도 신경을 썼다.

그런데도 나를 본 면접관들은 여러 가지를 우려했다. 건물 청소를 해 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해 본 적은 없지만 정말 잘 할 자신이 있으며 생긴 것과 달리 힘과 강단이 있고 무엇보다 일머리가 있어서 주변 사람들이 이사나 정리 등 힘든 일이 있을 때 나를 특별히 부를 정도라고 설득했다.

젊은 사람들은 대부분 오래 못 가 그만두더라는 말에 나는 '청소'에 대한 나의 가치관을 피력했다. 청소란 환경을 위생적이고 깨끗하게 관리하여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귀한 일이라고 생각하기에 보람을 느끼며 즐겁게 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 미화원으로 취직되었다고 당당하게 밝힐 수 없는 현실은 나로 하여금 내 생각과 믿음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 최명숙

관련사진보기

마지막으로 화장실 청소를 할 수 있겠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 순간 나는 내 업무 범위에 화장실은 없기를 바랐던 마음 깊은 곳 어딘가를 얼핏 보았던 것도 같다. 하지만 청소를 하겠다고 나선 사람이 화장실을 두려워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임을 나의 이성은 알고 있었다. 단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물론입니다!"라는 씩씩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전화로 합격 통지를 받았을 때 나는 진심으로 기뻤다. 무엇보다도 내가 원했던 바대로 '주어진 일을 정직하고 성실하게 해내면 그 대가로 정해진 급여를 받게 되는 일'을 할 수 있게 된 데에 감사했다. 가까운 거리의 직장 위치, 아침 7시에 출근해서 오후 4시에 퇴근하면 저녁시간을 자유롭게 쓴다는 점, 4대 보험 지원과 급여조건까지 모두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나는 그 기쁨을 가족들과 나눌 수가 없었다. 특히 팔십 세가 넘은 어머니는 소위 일류대학에 대학원까지 나온 딸이 이제 와서 건물 청소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생판 거짓말을 할 수 없어서 '아트센터에서 공연에 관계된 물품 정리와 무대 정리를 하게 되었다'고 말씀드렸더니, 어머니는 "너는 그 무대에서 공연을 해야 할 사람인데 그런 뒤치다꺼리를 하게 되었구나"라며 한숨을 쉬었다.

대학에 들어가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딸에게도 괜한 부담을 줄까 봐 밝히고 싶지 않았고, 예술 한답시고 근근이 살아온 나를 늘 애처롭게 보는 언니에게도 선뜻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미화원으로 취직되었다고 당당하게 밝힐 수 없는 현실은 나로 하여금 내 생각과 믿음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지금 나는 혹시 발전하지 못하고 후퇴한 나의 삶을 합리화하는 것은 아닌가, 더 높은 목표를 향해 도전하기를 멈춘 채, 내 고유의 능력이 발휘되지도 않는 일에 안주해버린 것은 아닌가, 성찰해보았다.

생계 활동과 예술 활동을 구분하기로 했다


▲ 냉정하게 평가해보건대 지난 2년 동안 마을교사로 "연극" 혹은 "뮤지컬"이라는 제목의 수업을 진행하면서 학생들에게 "예술"을 가르칠 기회는 없었다.
ⓒ Pixabay

관련사진보기

스스로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나는 무엇을 위해 미화원이 되었지?' 대답은 간단했다. '돈을 벌기 위해서.' 그렇다. 나는 하고 싶은 연극을 하고, 쓰고 싶은 글을 쓰기 위해 언제나 따로 돈을 벌어야 했다. 다양한 일을 가리지 않고 했지만 주로 연극과 관련하여 대학생에서부터 초등학생까지 두루두루 가르쳤다. 사실은 올해도 혁신교육지구의 마을교사로 초, 중학생 대상의 연극 수업을 할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하지 않기로 했다.

첫째, 나의 생계를 감당할 만큼 충분한 수업시수가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시간당 임금은 미화원의 세 배 정도 되지만 일 년 수입의 총액으로 따지면, 재작년 기준으로는 미화원의 1/5이고, 작년 기준으로는 1/10에도 못 미친다. 과거에 지방대학에서 시간강사를 할 때도 한 달 수입은 많아야 80만 원이었다.

두 번째, 더 중요한 이유는 내가 학교에서 연극을 가르친다는 명목으로 막연히 예술 활동을 하고 있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냉정하게 평가해보건대 지난 2년 동안 마을교사로 '연극' 혹은 '뮤지컬'이라는 제목의 수업을 진행하면서 학생들에게 '예술'을 가르칠 기회는 없었다.

예술은 크게 두 개의 줄기에서 시작된다. 하나는 실용적 목적 없는 순수한 유희적 본능이고, 또 하나는 삶과 이 세상에 대한 새로운 각도의 성찰이다. 순수한 유희를 위해서는 무한한 여유와 자유가 필요하고 새로운 각도의 성찰을 위해서는 하나의 문제에 대해 제한 없는 깊이와 넓이의 사유를 허용하는 장이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 학교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연극 혹은 뮤지컬 수업은 그럴 듯하게 보일만한 공연을 아이들로 하여금 습득하게 만들어 무대 위에서 발표하도록 만드는 천박한 목적을 달성하기에 바쁘다.

그 목적을 향해 달려가는 걸음을 잠시 멈출 여유는 없으며, 자신의 생각을 들여다보고 다른 이의 생각을 들어볼 기회도 없다. 학교에서는 연극이나 뮤지컬 수업을 통해 자신감, 발표력, 표현력을 기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능력들은 예술의 본질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게다가 그런 능력을 키우고자 하는 목적이 예술을 위해서가 아니라 신자유주의 세상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던가?

그래서 나는 이제 생계를 위한 활동에 어설프게 예술이라는 명목을 붙이지 않기로 했다. 생계 활동과 예술 활동을 구분하기로 했다. 하지만 돈 벌기 위한 일에서도 보람과 의미를 찾고 싶었다. 면접관 앞에서 자신 있게 말했듯이 청소에 대한 나의 가치관, 즉 '환경을 위생적이고 깨끗하게 관리하여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귀한 일'을 하고 싶었다. 내가 맡은 자리에서 그 정도의 양심은 지키고 그 정도의 보람은 찾을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

- 2회 청결의 이중성으로 이어집니다.
---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태그:#미화원, #예술가의 생계, #청소원
추천485 댓글12 스크랩 페이스북 트위터 공유121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80,000응원글보기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오마이뉴스 후원하기



글최명숙 (clairechoi) 내방
구독하기
이메일


진실의 빛을 비추도록 마음을 다하겠습니다.
편집최은경 (nuri78) 내방
구독하기
이메일


오마이뉴스 에디터.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다다와 함께 읽은 그림책'을 연재하며,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펴냈습니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 남친과 백일 만에 헤어진 여고생, 원인은 데이트 폭력



지꺼지게
2019-05-11 13:52:03

님같은 분들이 사회적편견을 깨고있다고 믿어요, 어디서나 당당하시길.건투를빕니다!
전체댓글
최신순
공감순


grace
약 1시간 전
네이버 블로그
메뉴

오랜시간과 자원을 투여한 교육과 귀한 현장 경험과 지식이 재화로 생산되지 못하는 현실의 문제가 답답합니다. 고학력이든 축적된 노동의 경력이든 자기가 잘할수 있는곳에서 능력이 발휘되고 생계가 유지지 못하는 사회의 막힘이 극단까지 가고 잏는것 같습니다. 물론 노동은 신성합니다. 어떤 종류의 노동이라도 밥벌이는 거룩하고 엄중한 일이기에, 생존이 달려있기에.
답글
공감0



이은식
약 1시간 전
네이버 블로그페이스북카카오 스토리
메뉴

응원합니다.
답글
공감0



NewsChain
약 4시간 전
트위터
메뉴

저도 남들 부러워할 정도의 일을 여기저기서 하면서 살았지만
지내놓고 보면 다 부질없습니다.
다 자의식일 뿐이지 남들은 별 신경도 안쓰고
중요한 것은 그 일을 하면서 본인이 느끼는 느낌과 감정 의미 이런 것들 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노동하는 사람들은 다 얼마나 아름다운지 이제야 느낍니다.
답글
공감1



크리스탈
약 8시간 전
네이버 블로그
메뉴

이게 지금현실에 일어나는 사실들이라 슬프고 받아들이기 좀 힘듬..
답글
공감2



김의진
약 8시간 전
메뉴

응원합니다. 댓글을 보니 한평생 전업주부로 살고도 일하지 않는 여성분들을 안좋게 보는 글들이 있네요. 저는 그 분들이 게으르거나 철이 덜 들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한번도 해본 적 없는 일이 두렵고 무서우신거지요. 저는 지금 베이비시터를 매칭하는 `우리동네 돌봄히어로`라는 기업에서 근무중입니다. 전업주부도 경력입니다. 아이를 키워보신 적이 있는 50대 여성분들을 환영하고 집근처 가정으로 교육이후 매칭까지 시켜드리니 한번 지원해보세요. 아이들 등하원 도우미로 하루에 3-5시간근무하고 시급은 1만원-1만5천원입니다. 일하는 게 무서우시다면 일단 쉬운 것부터 하루에 3시간씩부터 먼저 해보고, 자신감이 생기면 더욱 오래 근무하는 다른 직종에 도전하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습니다.
답글
공감2



박정배
약 10시간 전
네이버 블로그
메뉴

50대 고학력이라는 단어. 쓰여지지 않았으면 독자로 하여금 갈채를 받을만한 기사였을텐데 그렇지 뭐 우리사회.
답글
공감0



James Black
약 11시간 전
트위터
메뉴

어.. 다음회가 기다려지는 글이네요.
답글
공감2



Raphael
약 11시간 전
네이버 블로그
메뉴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생계와 구분해서 생각하는 것이 현실에서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고, 청소일을 주변에 말하기도 쉽지 않겠지요. 그러나 주변을 의식할 필요는 없습니다. 모든 노동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소중하니깐요~ 쉬운 일이 세상에 어디 있을까요? 그저 남의 떡이 더 커보인다는 옛말처럼, 겉보기에 좋아보일 뿐, 일장 일막이 다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 노동으로 나의 가족이 먹고 인간답게 살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한 것을.. 그 노동이란 것을 할 수 있는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좌절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더불어 살아 가는 이 사회에 참으로 슬픈 현실이지요... 그저 주어진 삶에 감사하고 안분지족하며 살아갈 뿐이고, 힘든 일도 있겠지만, 이 또한 지나가리니... 고진감래 사필귀정이 아니겠습니까
답글
공감2



soy****
약 13시간 전
네이버 블로그
메뉴

울남편도 60살, 완전 고학력에 현재 건물청소해요.
힘들지만, 열심히 하고 제통장에 그 귀한 월급
꼬박꼬박 넣어 주네요. 저는 그래도 사무직이라
덜 힘든데 , 남편이 안쓰럽기도 하고...
대견해요.

답글
공감4



지꺼지게
약 19시간 전
페이스북네이버 블로그
메뉴

님같은 분들이 사회적편견을 깨고있다고 믿어요, 어디서나 당당하시길.건투를빕니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

    Note: Only a member of this blog may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