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6-03

실사구시의 좀 더 깊은 뜻 (1) - 오마이뉴스



실사구시의 좀 더 깊은 뜻 (1) - 오마이뉴스

실사구시의 좀 더 깊은 뜻 (1)<평미레> 구시(求是)는 '사실을 그대로 밝히고 개념을 정확히 정의하기'
02.05.28 10:30l최종 업데이트 02.05.28 15:32l
조정희(jc7202)


'실사구시'의 기존 해석

'실사구시'라는 말은 지금까지 크게 두 가지의 용법으로 쓰였습니다. 하나는 실학(實學) 전체를 특징짓는 표어로서의 실사구시이고, 다른 하나는 여러 단계로 구분되는 실학의 제 학파 중에서 경서, 고전, 금석문에 대한 고증에 힘썼던 완당 김정희(金正喜)로 대표되는 학파의 연구 방법론을 가리키는 용어가 그것입니다.

어느 경우에나 실사구시는 '사실을 바탕으로 진리를 탐구한다'는 뜻으로 이해되곤 했습니다. 이런 풀이는 별 무리가 없는 무난한 해석으로 널리 받아들여졌습니다. 더 나아가 그런 해석은 이미 우리 의식 속에 '당연한 것'으로 자리잡은 것도 사실이지요.

그 당연시된 실사구시의 뜻풀이를 처음부터 재검토해 보려는 것이 이 글의 목적입니다. 과연 실사구시는 '사실을 바탕으로 진리를 탐구한다'는 뜻이었을까요?

물론 국어사전들은 그렇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다음은 실사구시에 대한 세 가지 국어사전의 뜻풀이를 정리한 것입니다.

"사실에 토대를 두어 진리를 탐구하는 일. 문헌학적인 고증의 정확을 존중하는 과학적·객관주의적 학문 태도를 이르는 말임." (두산동아 국어사전)

"사실에 근거하여 이치를 탐구하는 일, 또는 그런 학문 태도." (연세대 한국어 사전)

"실제로 있는 일에서 진리를 구함. 곧, 공리나 공론을 떠나서 정확한 고증에 따라 과학적으로 밝히려던 청나라 고증학의 학문 태도로서, 조선 때 실학파의 학문에 큰 영향을 주었다." (우리말 큰사전)

실사구시의 '실사(實事)'는 앞에 든 모든 국어사전에서 '사실에 토대를 두어,' '사실에 근거하여,' 혹은 '실제로 있는 일에서'라고 풀려 있습니다. 모든 국어사전이 실사(實事)와 사실(事實)을 같은 말로 풀어놓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에 토대를 두어'라든가 '-에 근거하여,' 혹은 '-에서'라는 표현은 해석자들의 상상력의 산물이지요.

그럴 가능성도 없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같은 뜻의 한자어라도 나라에 따라 구성 한자의 어순이 바뀐 것이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우리는 혼인을 약속하는 것을 약혼(約婚)이라고 하지만 중국어에서는 혼약(婚約)으로 씁니다. 또 '구체적인 증거'라는 뜻의 물증(物證)도 중국에서는 증물(證物)이라고 씁니다. 또 중국어에서는 어언(語言)이라고 쓰지만 우리는 언어(言語)라고 씁니다. 실사(實事)와 사실(事實)을 같은 뜻으로 보는 것은 아마도 그 같은 맥락에 따른 것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실사구시의 '실사'는 사실(事實)과 같은 뜻이 아니라는 결정적인 증거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 말이 처음 나오는 문헌을 보면 명확해 집니다.

'수학호고 실사구시(修學好古 實事求是)'

'실사구시'라는 말이 처음 등장하는 것은 한서(漢書) 하간헌왕전(河間獻王傳)입니다. 거기 보면 학문을 즐겼던 한 왕에 관한 기록이 있습니다. 유덕(劉德)은 한(漢)나라의 경제(景帝)의 아들이었는데 하간(河間:지금의 하북성 하간현)의 왕으로 봉해졌습니다.

그는 고서(古書)를 수집하여 정리하기를 좋아했다고 합니다. 진시황의 분서 이후 찾아보기 어려운 고서적을 비싼 값을 치르고 사들였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 사이에 유덕이 학문을 좋아한다는 소문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자기 선조에게서 물려받은 진(秦)나라 이전의 옛책들을 그에게 바치는가 하면 어떤 학자들은 직접 하간왕의 도서 정리 및 연구작업에 참가하기도 했습니다.

한무제(漢武帝)가 즉위한 후에도 유덕은 고대 학문을 깊이 있게 연구해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았다고 하는데, 바로 이 대목에 하간왕 유덕을 칭송하는 표현으로 "수학호고실사구시(修學好古實事求是)"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원문에는 그 구절이 띄어쓰기 없이 이어져 있지만 후대에는 흔히 '수학호고 실사구시'로 띄어읽는 경향이 있었고 청나라의 시기에 나타난 고증학파는 그중 후반부만을 떼어내어 공론(空論)만 일삼는 양명학(陽明學)을 비판하는 표어로 삼았습니다.

'수학호고 실사구시'는 사실상 '수학'과 '호고'와 '실사'와 '구시'를 나란히 늘어놓은 말입니다. 그중 '수학호고'는 '배움을 닦고 옛것을 좋아하다'는 뜻으로 해석되며 이런 해석에 이견이 별로 없습니다.

이견이 없는 이 해석으로부터 두 가지를 알 수 있습니다. '수학'과 '호고'가 대구로 쓰였다는 점과, '수학'과 '호고'는 인과관계로 반드시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 '배움을 닦았으므로 옛것을 좋아했다'가 아니라는 말이지요. 그냥 유덕의 행동을 차례로 열거한 것뿐입니다.

그런데 '실사구시'에 대한 해석에서는 그런 간단한 사실이 자주 무시됩니다. 여기서도 '실사'와 '구시'가 대구를 이룬 표현이며 그 사이에는 반드시 인과관계가 있어야할 필요는 없습니다. '실사'를 함으로써 '구시'를 했다고 새겨야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지요. 그 점을 더 보기 전에 '실사'와 '구시'의 해석문제를 먼저 보십시다.

구시(求是)는 '정확한 개념과 사실 추구'

우선 '구시(求是)'의 시(是)에 대한 전통적 해석에 약간의 문제가 있습니다. 앞의 국어사전들은 '시(是)'를 '진리'나 '이치'로 해석했지만 저는 거기에 반대하는 편입니다. 그것은 '시(是)'라는 한자는 진리나 이치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렇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전통적으로 '진리'나 '이치'를 뜻하는 한자로는 도(道)라든가 리(理)라든가 혹은 법(法)이라는 말이 흔히 쓰였습니다. 한서(漢書)의 저자가 더 그럴듯한 이런 낱말들을 두고 굳이 시(是)자를 쓴 데에는 이유가 있다고 봅니다. 그것은 하간왕 유덕이 한 일을 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유덕이 한 일은 옛책을 모아서 읽고 연구한 것이었습니다. 진시황의 분서사건 이후로 많은 책이 없어져 버리는 바람에 글자나 문장의 뜻이 흔들리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한문은 원래 글자와 문맥에 따라서도 뜻이 다양해집니다. 그러나 심지어 같은 글자가 같은 문맥에 놓여 있더라도 대단히 다양한 해석을 낳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정확한 해석이 철학 그 자체만큼 어렵거나 복잡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 혼란 속에서 유덕은 옛 책을 수집해서 해석의 논란이 있는 내용들을 바로 잡아 나갔던 것 같습니다. 따라서 그의 학문 활동은 직접 진리나 이치를 탐구하는 활동이었다기 보다는 일차적으로 문헌의 뜻을 바로잡는 일이었다고 보는 것이 더 맞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게 바로 고증학입니다. 청나라의 고증학파들이 멀리 하간왕 유덕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실사구시'라는 표어를 따온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겠지요. 유덕이야말로 최초의 고증학자였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고증학의 일차적인 목표는 진리나 이치를 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나 이치를 탐구하는 데에 도움이 되도록 문헌을 정비하고 그 뜻을 바로 잡는 것이지요.

저는 그것이 바로 '구시(求是)'라고 봅니다. 글자나 문장의 뜻이 '이런 것이다'라고 밝히는 것이지요. 그게 바로 한자로는 '시(是)'입니다. 시(是)는 '그렇다'는 뜻이고 한국말로는 '-이다'라는 서술격조사에 해당합니다. 시(是)나 '-이다'는 무언가를 정의(定義)할 때에 사용되는 표현입니다.

따라서 실사구시(實事求是)의 '구시'는 '사물에 대한 정확한 개념 정의를 내리는 일'입니다. 요즘말로 하면 '진리 탐구 이전에 그것에 필요한 개념을 정립하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물론 개념을 어떻게 정립하느냐에 따라서 어떤 진리를 어떻게 탐구하느냐가 미리 결정되기도 하는 것은 사실이기는 합니다만). 그리고 그게 후대의 고증학자들이 경서와 금석문을 고증하려고 노력했던 일차적인 이유이기도 합니다.

좀 더 나가서 구시(求是)는 '사실 밝히기'라고 해석할 수가 있습니다. 생각의 유희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사실(事實), 즉 실제의 일이 무엇인지를 드러내 놓는 것이 바로 구시입니다. 사실이란 가치판단에 따른 '옳은 일'과도 다른 개념입니다. 가치판단의 이전에 가치판단의 소재가 되는 '있는 그대로의 일'이 바로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구시(求是)란 '사실을 추구한다'는 뜻으로 해석해도 무리가 없겠습니다. 어쨌든 이런 뜻의 시(是)를 '진리'나 '이치'로 해석하는 것은 좀 지나친 일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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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사구시(實事求是)-- 실질 실, 일 사, 구할 구, 옳을 시
작성자 열린한문 15-10-20 11:08 조회1,019회 댓글0건



실사구시(實事求是)



‘만약 ​​​​실질적인 일을 일삼지 않고 공허한 학술만을 좋다고 생각하고 진실은 추구하지 않고 先人의 말만을 위주로 한다면 그것은 진정 성인의 도가 아니다.’



秋史 金正喜(1786∼1856)의 實事求是論이다. 근자에 이 말이 人口에 膾炙(회자)되고 있는 것 같다. 漢나라 때 나온 이 말은 중국 학자들이 학문을 하면서 金科玉條(금과옥조)로 여겼던 治學金言(치학금언)이었다.



이 말의 뜻은 매우 함축적이다. 實事의 경우 문구에 집착한 나머지 본의를 상실하는 우를 경계하면서 공허하고 思辨的(사변적)인, 한마디로 영양가 없는 말의 盛饌(성찬)보다는 현실을 직시하고 현실의 수레바퀴를 굴릴 수 있는 굴대로서의 학문을 뜻한다. 實用을 강조하면서 實踐躬行(실천궁행)을 鵠的(곡적)으로 삼았던 實學과도 상통하는 의미라고 하겠다.



求是는 求眞, 즉 진리의 추구다. 학문에 요구되는 당연한 命題(명제)이나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옛 성현의 말씀이라고 무조건 맹신하거나 비판하기보다 정확한 근거에 의해 斷案(단안)을 내리는 것을 말한다. 淸나라 때 유행했던 考證學(고증학)이 그러했다.


實事求是는 어느 시대든 중시되던 德目이었으며 앞으로도 추구해야 할 바다. 그러나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實事의 ‘事’와 求是의 ‘是’에 대한 명확한 정리다. 즉,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다. 나는 實로 여기지만 虛(허)일 수도 있으며 혹 진리를 추구하는 과정이 잘못되었다면 그것은 非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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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경제학자들의 실사구시 합창
[중앙일보] 입력 2019.01.30
기자홍승일 기자



박근혜 정권 초 나온 진보학계의 『실사구시 한국경제』
이념 대신 현실 밀착하라는 고언, 진보 정권에 더 절실


홍승일 중앙일보디자인 대표


박근혜 정권 초기인 2013년 6월 진보 성향의 중견 경제학자 10명이 펴낸 『실사구시 한국경제』가 화제였다. ‘통념을 허무는 10가지 진단과 해법’, 이 부제에서 엿보이듯 좌파의 보수 정권 비판이라기보다 좌우 진영논리를 뛰어넘는 실사구시(實事求是) 국정 해법을 모색한 때문이었다. 우리 사회의 고질적 난제들은 왜 해결 가닥은커녕 사회적 갈등만 증폭시키는지에 천착했다. 소득 불평등, 일자리 절벽, 중국·북한 변수, 부동산, 정부재정, 원자력발전, 사교육 등 하나같이 까다로운 거대 담론이었다.

서문은 6년 전이 아니라 바로 오늘의 상황 같다. “보수와 진보의 이분법 논리로 모든 사안을 진단하는 한국사회의 지적·사회적 풍토에 문제가 있다. (같은 통계를 놓고 정반대 해석을 하기 일쑤!)… 우리는 누가 보수주의자인지 진보주의자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를 자주 만난다. (장하준 케임브리지대학 교수와 같은 사례!) 아직도 1980년대 보수 대 진보의 시각으로 2013년 한국사회를 보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80년대에 무얼 했나. 전두환 독재체제의 질곡을 학문의 힘으로 풀겠다는 일념에 대부분 해외유학 대신 국내 대학에서 한국경제 공부에 몰두한 토종 학자들이었다. 홍장표 부경대 교수(현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장)는 서울대 전체수석으로 학부를 우등졸업한 수재였지만 대개 해외유학을 택하던 시절 모교에 남아 경제학 박사를 했다. ‘청년실업 해법’ 편에서 “중소기업 진흥을 통해 나쁜 일자리를 좋은 일자리로 바꾸자”고 제안했다. 지난해 일자리통계 논란 속에 통계청장에 임명된 강신욱 박사는 ‘소득 불평등’ 편을 썼다.

공동저자 중 한 사람의 회고. “80년대 당시 운동권은 PD와 NL 노선 투쟁이 극심했고 그 무게중심이 종북세력과 주사파 쪽으로 쏠리는 경향을 우려해 온건 개혁 쪽에 공감했던 이들의 모임이었지요.” 책 발간을 위해 수년 동안 거의 매달 한 번 한국경제 세미나 모임을 했다. 그 공부방이 학현학파의 본산인 서울 광화문 서울사회경제연구소(이사장 학현 변형윤). 일부 저자는 현 정권 요소요소에 포진해 있다.

이념과 선의를 앞세운 작금의 국가운영에 대해 “뜻은 크나 일은 거칠다” “일보다 말이 앞선다”는 혹평이 늘고 있다. 좌고우면이 부족한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나온)’ 정책을 땜질하느라 사회갈등과 국력 낭비가 심하다. 역사에 남을만한 어록도 어느 정권보다 풍부한 편이다. “우리에게 민간인 사찰 DNA는 없다” “집 한 채만 남기고 다 파시라” “(5060) 험한 댓글만 달지 말고 (기회 많은) 아세안으로 가라” 등등. ‘비정규직 제로’ ‘최저임금 3년 내 1만원’ 같은 엄청난 약속은, 옳은 정책 방향이라 하더라도 현장과 경험을 중시하는 실사구시 위정자라면 겁나서 쉽사리 하지 못한다. “굶는 사람 한 사람만 있어도 내가 책임진다”던 룰라 전 대통령의 브라질은 오늘날 그의 호언과 딴판이다.


장자는 꿈과 생시를 넘나드는 몽환적 ‘나비의 꿈’을 이야기했지만, 뇌과학자 김대식 카이스트 교수는 믿음을 현실과 착각하는 이들에게 꿈과 현실을 대비해 경종을 울린다. “눈을 크게 뜨고 세상 바라보며 핸들을 교정하는 것이 현실이라면, 두 눈 감고 오로지 기억과 믿음을 기반으로 운전하는 것이 꿈이다.”

『실사구시 한국경제』에는 이런 고백도 있다. "과도하게 이념적 지향점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진정성을 의심한다. … 몇가지 관념적 이데올로기 구호가 사고의 폭을 제한함을 걱정하며, 구체성 없는 추상성의 무기력함도 뼈져리게 느꼈다.”

문희상 국회의장은 올 초 한 언론단체 초청 토론회에서 “문재인 집권 3년 차니만큼 실사구시 측면의 전문성과 실력을 갖춘 사람을 쓸 때”라고 말했다. 작년 말 문 대통령과의 청와대 오찬 때 “요즘도 혼밥 드시느냐”고 농반진반의 돌직구를 날린 그였다.

청컨대 식사 정치와 소통 증진을 주문한 데 이어 다음번 대통령 회동 때에는 실사구시적인 국정운영을 건의하면 어떨지, 그러면서 6년 전 보수 정권 때 이미 화제가 된 『실사구시 한국경제』 한 권 선사하면 어떨지.

홍승일 중앙일보디자인 대표



[출처: 중앙일보] [서소문 포럼] 진보 경제학자들의 실사구시 합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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