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6-26

"동학농민군이 집강소에서 폐정개혁안을 실천했다"는 교과서 서술은 잘못   조선pub(조선펍) > 시리즈

"동학농민군이 집강소에서 폐정개혁안을 실천했다"는 교과서 서술은 잘못   조선pub(조선펍) > 시리즈

[김병헌의 다시 짚어보는 우리 역사(27)] "동학농민군이 집강소에서 폐정개혁안을 실천했다"는 교과서 서술은 잘못

한국사 교과서, 이대로 가르쳐서는 안 된다.

글 | 김병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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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수록된 동학농민운동에 대한 서술 중 일부다. 1894년 2월 10일, 전라도 고부군수 조병갑의 학정(虐政)과 가렴주구(苛斂誅求)에 항거하며 농민들이 봉기한 이래 관군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농민군이 전주성을 점령한 다음의 상황이다. 농민군 진압에 나선 초토사 홍계훈은 농민 봉기의 발단이 된 탐관오리의 횡포를 법으로 다스릴 것이니 각자 고향으로 돌아가 본업에 종사할 것을 종용한다.
 
관군과의 전투에서 두 차례에 걸친 패전으로 전의를 상실한 농민군은 자신들의 요구를 받아들인다면 해산할 용의가 있음을 밝히고 폐정개혁안(弊政改革案)을 제시한다. 이에 초토사 홍계훈도 이들의 조건을 받아들임으로써 전주 화약(和約)이 체결되고 농민군들은 전주성을 점령한 지 10여일 만에 해산한다.
 
현행 8종 한국사 교과서에는 아래 표와 같이 농민군이 제시한 폐정개혁안 자료가 수록되어 있다.
 
1. 오지영동학사』 리베르스쿨미래엔금성출판사(본문에 요약)
① 동학교도는 정부와의 반감을 없애고 모든 행정에 협력한다.
② 탐관오리는 죄목을 조사하여 모두 엄벌에 처한다.
③ 횡포한 부호들을 엄벌에 처한다.
④ 불량한 유림과 양반을 징계한다.
⑤ 노비 문서를 불태워 없앤다.
⑥ 모든 천인들의 대우를 개선하고 백정이 쓰는 평량갓을 없앤다.
⑦ 젊어서 과부가 된 여성의 재가를 허용한다.
⑧ 규정 이외의 모든 잡다한 세금은 일체 거두지 않는다.
⑨ 관리 채용에는 문벌을 타파하고 인재를 등용한다.
⑩ 왜와 내통한 자는 엄벌에 처한다.
⑪ 공사채를 불문하고 농민이 이전에 진 빚은 모두 무효로 한다.
⑫ 토지는 균등히 나누어 경작하게 한다.
 
2. 정교대한계년사』 비상교육교학사
① 전운사를 혁파하고 이전과 같이 각 읍에서 조세를 상납하게 할 것.
② 균전관을 혁파할 것.
③ 탐관오리를 징계하고 쫓아낼 것.
④ 각 읍에 1천 냥 이상 조세금을 횡령하였으면 그 아전을 사형에 처하고
친족에게서 거두지 말 것.
⑤ 봄가을 두 번의 호역전은 이전과 같이 매 호 2냥씩으로 할 것.
⑥ 각종 항목의 결세액은 평균 분배하되 마구 걷지 말 것.
⑦ 포구에서 사사로이 미곡 무역하는 행위를 엄금할 것.
⑧ 각 읍 수령이 부임지에서 묘를 쓰고 전답을 사들이는 일을 금할 것.
⑨ 각국 상인은 항구에서만 매매하게 하되서울에 점포를 열거나 각지에서
⑩ 임의로 행상하지 못하게 할 것.
⑪ 보부상의 작폐가 많으니 혁파할 것.
⑫ 각 읍에서 아전을 임용할 때 뇌물을 받지 말고 쓸 만한 사람을 골라 임용할 것.
⑬ 간신이 권력을 농간하여 국사가 나날이 잘못되니 매관매직을 처벌할 것.
⑭ 대원군이 국정에 간여하면 백성들의 마음이 돌아올 수 있을 것.
 
3. 전봉준 사형 판결문 천재교육동아출판(5개 선별), 지학사(6개 선별)
① 전운소를 혁파할 것
② 세금을 징수할 토지를 확대하지 않을 것
③ 보부상들이 일으키는 폐단을 금지할 것
④ 전 감사가 이미 거두어 간 환곡을 다시 내라고 하지 말 것
⑤ 대동미를 낼 기간에는 각 포구에서 미곡의 밀매를 금지할 것
⑥ 동포전은 매호마다 봄가을에 두 냥씩으로 정할 것
⑦ 탐관오리는 파면하여 쫓아낼 것
⑧ 임금을 둘러싸고 매관매직하여 국권을 농간하는 자를 축출할 것
⑨ 지방관이 자신의 관할 지역에서 장례를 치르지 말고 논도 거래하지 말 것
⑩ 전세는 전례에 따를 것
⑪ 집집마다 부과하는 노역을 줄여줄 것
⑫ 포구 어염세를 폐지할 것
⑬ 보세는 걷지 말고 궁방전은 없앨 것
⑭ 지방관들이 백성의 땅에 표시를 하고 함부로 매장하지 말 것
 
 
이름은 동일한 폐정개혁안이나 출전이 서로 다른 세 종류의 개혁안이 8종 교과서에 나누어 수록되어 있다. 출전이 같은 개혁안이라 하더라도 전체를 수록한 교과서가 있는가 하면 일부만 선별 수록한 경우도 있다. 또, 탐관오리 처벌처럼 공통적인 내용이 있는가 하면 과부의 개가 허용이나 흥선대원군의 정치 참여를 촉구하는 등의 특이한 내용도 있다.
 
오지영의 『동학사』 자료에는 신분 제도와 관련된 내용이 다수인 반면 나머지 두 종류의 개혁안에는 부당한 징세 개혁 등 생계와 직접 연관된 경제적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같은 또래의 아이들이 이름은 같으나 서로 다른 내용의 폐정개혁안을 배우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과연 역사인식의 다양성일까?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전주 화약 이후 동학농민군들이 휩쓸고 간 전라도 일대에는 치안과 행정이 거의 마비 상태에 있어 이를 정상으로 회복하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이었다. 이에 전라도 관찰사 김학진이 동도대장 전봉준을 불러 타개책을 강구한 결과 각 고을에 집강소(執綱所)를 설치하여 치안과 행정을 담당할 수 있도록 하였다. 아래는 이렇게 설치된 집강소에 대한 설명이다.  
 
집강소가 전라도 각 고을에 설치될 때, 고을에 따라서는 수령이 반발해 설치를 허용하지 않은 경우도 있었는데, 나주·남원·운봉의 경우가 특히 그러하였다. 대도소에서는 이와 같은 고을에 대해 처음에는 격문을 보내 설득하다, 뒤에는 최경선·김개남·김봉득 등에게 동학농민군을 이끌고 각기 나주·남원·운봉으로 가서 수령을 무력으로 위협, 계획을 강행하도록 하였다. -중략- 남원에서는 김개남이 이끄는 3,000명의 동학농민군이 남원성을 공격, 함락시키고 부사 김용헌을 잡아 목을 매달았다. 운봉도 김봉득의 계략으로 쉽게 함락시킴으로써 각각 집강소를 설치하게 되었다. 집강소에서는 치안과 행정을 담당하였고, 동학농민군은 이곳을 통해 폐정개혁을 추진하였다. <집강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이 글에서 보는 바와 같이 집강소 설치 과정에서는 상당한 반발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집강소의 설치는 민간인이 직접 행정과 치안을 담당하겠다는 것으로 이는 곧 공권력에 대한 침해 행위이자 공권력의 무력화(無力化)를 의미하는 것이기에 수령을 비롯한 지방 관원들이 반발한 것은 당연하다. 무엇보다 우여곡절 끝에 설치된 집강소의 역할에 대한 서술이 의아스럽다. 집강소에서 치안과 행정을 담당하였다는 부분은 무리가 없는 서술이나 이어지는 문장에서 ‘동학농민군이 이곳을 통해 폐정개혁을 추진하였다.’고 한 서술은 납득하기 어렵다. 농민군들이 봉기하여 관군과 싸우면서 자신들이 줄기차게 요구하고 마침내 전주화약으로 받아낸 약속이 바로 폐정을 개혁하겠다는 것인데, 여기서는 농민군들이 직접 추진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서술 기조는 현행 교과서에서도 마찬가지다. 
 
교학사
집강소의 기본적인 성격은 치안을 담당하는 것으로전라도의 고을 관아에 설치되었다여기에 집강소를 담당하는 대도소를 전주와 남원에 설치하였고대도소 밑에는 도소를 두어 폐정개혁 활동을 실시하였다.(185)
금성출판사
집강소에서 실천하려 한 폐정개혁안은 동학 교조와 정부는 원한을 씻고 행정에 협력할 것탐관오리는 엄하게 징계할 것노비 문서는 불태워버릴 것무명잡세는 모두 폐지할 것왜와 내통하는 자는 엄하게 징계할 것 등의 내용을 담고 있었다.(243)
동아출판
동학 농민군은 전라도 일대에 독자적인 자치 기구인 집강소를 설치하고 각 지역에 임명된 집강을 중심으로 개혁에 나섰다.(170)
리베르스쿨
농민군은 전라도 일대에 자치 개혁 기구인 집강소를 설치하고 행정과 치안을 담당하면서 폐정개혁안을 시행하였다.(220)
미래엔
그 후 농민군은 전라도 각 지역에 자치적 민정 기구인 집강소를 설치해 행정과 치안을 담당하면서자신들이 내세운 폐정개혁안을 실천해 나갔다. (196)
비상교육
이후 농민군은 전라도 53개 군현에 집강소를 설치하여 지역의 치안을 유지하고 부패한 행정을 개혁해 나갔다.(214)
지학사
정부도 농민군의 신변 보장을 약속하고 개혁안을 일부 수용하였다농민군은 전주 화약을 맺은 후 새로 부임한 전라 감사와 타협하여 전라도 각 지역에 집강소를 설치하고 행정과 치안을 담당하면서 개혁을 추진해 갔다.(226)
천재교육
이후 농민군은 전라도 각지에 농민 자치 조직인 집강소를 설치하고폐정 혁안을 실천에 옮겨 탐관오리의 처벌조세 개혁신분 차별 철폐 등을 위해 노력하였다.(198)
 
폐정(弊政)은 ‘폐단이 많은 정치’, ‘잘못된 정치’라는 뜻으로 그 주체는 정부와 정부를 대신한 지방관이다. 폐정개혁은 ‘잘못된 정치를 바로 잡는다.’는 뜻으로 그 주체도 물론 정부와 지방관이다. 지방관의 학정(虐政)과 가렴주구(苛斂誅求)를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봉기한 농민군들이 이러한 폐단을 바로잡아달라고 요구한 것이 폐정개혁안이고, 농민군의 요구대로 이를 개혁하겠다고 약속한 것이 바로 전주 화약(和約)이다.
 
농민군들이 제시한 폐정개혁안의 내용은 탐관오리의 처벌과 부당한 징세의 철폐 등이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양반토호들의 탐학 배격, 토지 균분 경작, 노비문서 소각, 농민 채무 탕감, 매관매직자 축출, 보부상 혁파 등 반봉건적 폐단의 철폐와 일본 세력 배격 등의 요구가 담겨 있다. 이러한 것들은 정부에서만 할 수 있는 일이기에 농민군들은 목숨을 걸고 전쟁을 하면서 줄기차게 요구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뜬금없이 농민군이 집강소를 통해서 폐정개혁을 추진하였다고 한다. 농민군이 직접 개혁할 수 있는 폐정이라면 애초에 정부를 대신한 지방관 홍계훈에게 요구할 일도 없고, 또 홍계훈은 이들의 요구를 들어주겠노라고 약속할 일도 없다.
 
『동학사』의 폐정개혁안 12개 조를 수록하고 ‘농민군이 폐정개혁안을 실천에 옮겼다.’고 서술한 천재교육에 이러한 서술은 잘못이라는 취지로 이의를 제기했다. 아래는 필자의 지적에 대한 천재교육의 답변이다.
 
‘농민군은 정부(관군)에 폐정개혁을 요구하였고, 이를 들어주는 조건으로 해산하였다. 하지만 정부에 개혁안을 요구한 것과는 별개로 농민군 역시 폐정을 개혁하기 위한 노력을 한 것으로 파악된다. 농민군이 폐정개혁안의 모든 사항을 전적으로 실천에 옮겼다고 한다면 틀린 서술이 되겠지만, 노력을 하였다는 서술 자체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보인다.’
 
필자는 ‘농민군이 폐정개혁안을 직접 실천하였다’는 서술은 잘못이라는 취지로 이의를 제기했는데, 답변은 정작 ‘노력하였다’고 서술하였기 때문에 문제 되지 않는다고 한다. 동문서답이다. 동학 농민 봉기 그 자체가 이미 폐정개혁을 위한 노력인데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 수 없다. 집강소에서 치안과 행정을 담당할 수는 있을지언정 정부가 해야 할 일인 폐정개혁을 직접 추진할 수는 없다. 이에 따른다면 한국사능력검정시험(고급 26회)의 아래 문제에 대한 정답을 ④번이라 한 것도 잘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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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덧붙여 현행 8종 한국사 교과서를 보노라면 동학 농민 봉기와 관련한 서술이 예상 외로 많은 지면을 차지하고 있다는데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필자가 파악한 바로는 단일 주제로 가장 많은 지면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바로 동학 농민 운동이다. 아래 표와 같이 6.25 전쟁과 임진왜란의 서술 면과 비교해보더라도 그 양이 얼마나 많은지 짐작할 수 있다.
 
 
동학 농민 운동
6.25 전쟁
임진왜란
교학사
6
6
1
금성출판사
7
6
2
동아출판
6
6
1
리베르스쿨
6
6
3
미래엔
4
3
2
비상교육
5
4
3
지학사
4
5
2
천재교육
4
3
3
 
6.25 전쟁은 동족상잔의 비극이자 지금까지 우리에게 분단의 상처를 안겨 준 뼈아픈 역사이며, 7년 동안이나 이어지면서 우리 땅을 초토화시키고, 죄 없는 백성을 유린한 전쟁이 바로 임진왜란이다. 반면 동학 농민운동은 전라도 일부 지역에서 일어난 농민 봉기로, 기간으로 보나 규모로 보나 위의 두 전쟁에 비길 바가 아니다. 그런데도 할애된 서술 면은 가장 많다.
 
과연 이 사건이 우리 아이들에게 이처럼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가르쳐야 할 만큼 대단한 역사적 의의가 있는 사건인지는 생각해 볼 일이다. 더불어 잡기 수준의 문건을 마치 당시에 배포한 사발통문(沙鉢通文)이었던 것처럼 소개하고, 정부에서나 할 수 있는 일을 농민군이 직접 추진했다고 하는 등의 서술은 분명 시정되어야 한다.
 
고등학교 교과서는 교사의 지도에 따라 고등학생 수준의 학생들이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내용이어야 한다. 그런데, 전공자조차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면 이는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일선 교사들은 아이들에게 농민군들이 폐정개혁을 어떻게 추진했다고 설명할지 정말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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