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7-14

알라딘: 야마센 홀로 지키다

알라딘: 야마센 홀로 지키다







야마센 홀로 지키다
약자와 연대한 뜨거운 양심, 야마모토 센지
우지 야마센회, 황자혜 (엮은이) 건강미디어협동조합 2019-05-28

192쪽
148*210mm (A5)
--------------
책소개
야마모토 센지는 일본의 생물학자이자 정치인이다. '꽃을 심어 세상을 아름답게 하고 싶어' 택한 원예 견습, 캐나다에 건너가 접한 민주주의의 숨결, 귀국 후 생물학자로서 교토대학과 도시샤 대학에서 교편을 잡은 후 여성을 해방을 위한 피임법 계몽 운동을 펼친다.

당시 일본 정부는 값싼 노동력과 전쟁에 필요한 병사를 확보하기 위해, 국민에게 '낳자, 늘리자'라는 슬로건으로 출산을 장려한다. 그러나 '다자녀, 생활난, 결혼난' 등으로 고통받고 있던 궁핍한 이들을 대변하여 산아제한 운동을 펼쳐 나간다. ‘산아제한연구회’를 조직해 입회한 노동자와 농민들의 상담에 응하고, 성교육과 구체적인 피임 방법, 생활 방식에 대해서도 교육한다. 정부 시책에 정면으로 반대하는 야마센의 활동은 감시와 탄압의 대상이 된다.

---------


목차


추천사 야마센, 일본과 한국 민중 연대의 지표 _ 홍세화

한글판 추천사 진심으로 기쁘고 감사합니다 _ 우지 야마센회

서문 시대의 공기를 가르며 홀로 또 함께 걸어가는 모든 야마센을 위하여 _ 황자혜



1부 . 야마센 홀로 보루를 지키다

1. 야마모토 센지를 아십니까

2. 지금도 계속되는 추모제

3. 아버지 가메마츠와 어머니 다네의 만남

4. 꽃으로 세상을 아름답게

5. 캐나다에서 접한 민주주의의 숨결

6. 생물학자를 꿈꾸며 보낸 대학 시절

7. 민중을 위한 산아제한 운동

8. 노동자 교육 운동 추진

9. 대학 강사직에서 내몰림

10. 노동자 농민이 지지하는 국회의원

11. 목숨 걸고 치안유지법 반대

12. 하나야시키에 유골로 귀환

13. 야마센이 우리에게 남긴 것



2부 . 그러나 나는 외롭지 않다

1. 민중 후보 야마모토 센지의 정견_ 1928년 제1회 보통선거

2. 평화와 건강을 위한 한일 연대를 소망하며_ 민의련 회장 후지스에 마모루

3. 한국과 일본 민중이 미래에 계승할 것들_ 중의원 의원 고쿠타 게이지

4. 등 뒤 대중으로서 역사 교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_역사교육자협의회 가스야 마사카즈

5. 우리는 왜 야마센의 뜻을 계승하는가_ 도쿄 야마센회 회장 에이지마 타미오

6. 2019년 3월 야마센 추모제 관련 『교토신문』 특집 기획 기사

7. 야마센 연보

8. 참고문헌

9. 야마센 연고지



3부 . 등 뒤에서 대중이 지지하고 있으므로

1. 어떤 이의 죽음이 더 많은 죽임의 예고가 될 때_ 노순택

2. 훌륭한 교사로 모범을 보인 야마센_ 박중현

3. 약자와 연대하던 일본의 뜨거운 양심, 야마센 의원_ 이정미

4. 내 인생의 ‘야마 센’들_ 최규진

5. 야마센을 그리며_ 황대권
접기

-------------

책속에서
첫문장
야마모토 센지(애칭 야마센)는 아시아태평양전쟁 전천황이 입법, 사법, 행정, 그리고 군대의 지휘권까지 모든 권한을 쥐고 일본을 지배하던 시대에 전쟁반대와 주권재민을 주장하며 서민과 함께 싸웠습니다.




추천글
황대권: 한국엔 국가보안법에 의해 희생당한 정치인은 많지만 그에 정면으로 맞서다가 죽은 이는 아직 없다. 그런 용기 있는 정치인이 없기에 이 악법이 아직도 서슬 푸르게 살아 있다. 야마센이 그립다. 그는 반인륜적인 법과 정치 세력에 정면으로 맞서 ‘아니오!’라고 한 유일한 국회의원이었다.
경향신문: 경향신문 2019년 6월 14일자 '새책'
더보기



저자 소개

엮은이: 우지 야마센회
신간 알림 신청
최근작 : <야마센 홀로 지키다> … 총 1종 (모두보기)
1983년 야마모토 센지의 업적을 널리 알리기 위해 조직. 교토 우지에서 추모제, 영화 상영회, 강연회 등을 개최하고 정기적으로 기관지를 발행하며 야마센 관련 자료 수집, 보존, 출판 활동을 계속 진행



엮은이: 황자혜
신간 알림 신청
최근작 : <야마센 홀로 지키다> … 총 1종 (모두보기)
대원외고, 한국외대 졸업 후 계간 『리뷰』 편집기자와 시민단체 미디어 운동 간사를 거쳐, 2000년부터 도쿄 주재 전 『한겨레21』 도쿄 전문위원, 한국영화진흥위원회 일본 주재원 20년간 미디어 현지 코디, 다양한 분야의 코디네이터와 통역을 담당해온 전방위 현장 통역사



--------------------


출판사 제공 책소개

“우리가 야마모토 센지 사후 90년이 되어서야 만나는
3.1 운동 100주년 기념에 가장 어울리는 책 ! ”

“따뜻한 인간미와 생물학자로서의 양심
약자의 편에서 싸우는 불굴의 의지로 대중 지지를 한 몸에 받은 사람
일본 제국의회 치안유지법 개악에 반대한 유일한 국회의원 야마센이
1929년 3월 우익 청년 흉도에 쓰러지기까지
야마센의 모든 것을 가장 알기 쉽게 읽을 수 있는 책”

“한국의 지성 홍세화를 비롯해 2014년 올해의 사진작가 노순택,
정당인 이정미, 생명평화 운동가 <야생초편지>의 황대권, 인의협 의사 최규진 교수,
교육 현장의 박중현 역사 교사 등에 이르는 각계 전문가의 추천문을 수록해
야마센과 그의 시대를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책!”

“민주주의와 인권, 생명과 평화에 대해 야마센과 상상력이라는 두 친구를 불러내어
이야기 나누듯 읽어 내려 갈 수 있는 책!”

“윤동주와 야마센을 함께 생각하며
한일 역사교사들이 청소년과 시민들에게 강추하는 책! ”

3.1운동 100주년. 일제 시대 조선 독립 운동 대탄압의 구실이 되었던 '치안유지법', 이 법의 개악을 반대했던 유일한 일본 국회의원, ‘야마센’.

야마모토 센지(山本宣治, 애칭 ‘야마센’, 1889∼1929)는 일본의 생물학자이자 정치인입니다. '꽃을 심어 세상을 아름답게 하고 싶어' 택한 원예 견습, 캐나다에 건너가 접한 민주주의의 숨결, 귀국 후 생물학자로서 교토대학과 도시샤 대학에서 교편을 잡은 후 여성을 해방을 위한 피임법 계몽 운동을 펼칩니다. 당시 일본 정부는 값싼 노동력과 전쟁에 필요한 병사를 확보하기 위해, 국민에게 '낳자, 늘리자'라는 슬로건으로 출산을 장려합니다. 그러나 '다자녀, 생활난, 결혼난' 등으로 고통받고 있던 궁핍한 이들을 대변하여 산아제한 운동을 펼쳐 나갑니다. ‘산아제한연구회’를 조직해 입회한 노동자와 농민들의 상담에 응하고, 성교육과 구체적인 피임 방법, 생활 방식에 대해서도 교육합니다. 정부 시책에 정면으로 반대하는 야마센의 활동은 감시와 탄압의 대상이 됩니다.

그러나 교토를 중심으로 한 농민 운동을 통해 농민 노동자의 지지에 힘입어 1928년에는 국회의원으로 뽑히기에 이릅니다. 1928년 제국의회에 치안유지법 개정안 상정. 우리나라 국가보안법의 원조 격인 치안유지법은 '국체(천황제) 변혁'을 목적으로 하는 일체의 활동을 금지합니다. 일본 국내에서는 반정부, 반천황 운동의 탄압, 식민지 조선에서는 독립운동을 탄압하는 장치였습니다. 개정안은 그 위반자에 대해 사형까지 언도할 수 있도록 하고 있었습니다.

'대세는 어쩔 수 없다.'는 분위기가 퍼져갈 무렵에도 야마센만은 홀로 끝까지 반대 의견을 굽히지 않습니다. "야마센 한 사람만이 고독하게 싸웁니다. 그러나 나는 외롭지 않습니다. 내 뒤에는 대중의 지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1929년 3월 5일, 개정안에 대한 국회 발언을 신청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며, 그날 밤 극우 단체가 보낸 자객에게 무참히 살해당합니다.접기

===========









황대권
16 hrs ·



야마센을 아시나요?

야마센이란 애칭으로 불리는 야마모토 센지. 삼일운동 탄압의 근거가 되었던 ‘치안유지법’을 반대하다가 우익테러에 의해 죽은 일본 유일의 국회의원.
일본에 사는 친척 여동생이 책을 하나 번역했다며 추천사를 써달라고 하여 읽어보고는 그만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일본에 이런 정치인이 있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조금 길지만 책에 실린 추천사를 그대로 올린다.

---------------------------------

야마센을 그리며

“검푸른 바닷가에 비가 내리면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물이오.
그 깊은 바다 속에 고요히 잠기면 무엇이 산 것이고 무엇이 죽었소.
눈앞에 떠오른 친구의 모습 흩날리는 꽃잎위에 어른거리고
저 멀리 들리는 친구의 음성 달리는 기차바퀴가 대답하려나.
눈앞에 보이는 수많은 모습들 그 모두 진정이라 우겨 말하면
어느 누구하나 홀로 일어나 아니라고 말할 사람 누가 있겠소.
눈앞에 떠오른 친구의 모습 흩날리는 꽃잎위에 어른거리고
저 멀리 들리는 친구의 음성 달리는 기차바퀴가 대답하려나.”

야마센에 대한 글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바로 김민기의 ‘친구’라는 노래를 흥얼거렸다. 젊은 시절 사고로 잃은 친구를 그리며 지은 노래라 하지만 가사 하나 하나에서 야마센의 불꽃 같은 삶이 떠올랐다. 혼돈 속에 빠져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을 유보한 채 권력이 휘두르는 대로 사는 대중들의 무기력한 모습을 보고 분연히 일어선 야마센. 말로 먹고 사는 수백 명의 국회의원들이 모두 입을 다물고 있는 가운데 홀로 일어나 ‘악법 철폐’를 외치다 무뢰한의 칼에 심장이 관통되어 장렬히 산화한 야마센.

아마도 당대의 보수논객들은 그를 ‘소영웅주의자’ 또는 ‘극좌모험주의자’로 폄하하고 조롱했을 것이다. 조선을 병합하고 내친 김에 중국마저 손아귀에 넣으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는 판에 ‘미치광이 빨갱이’가 난데없이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신성한’ 국회에서 군국주의 파쇼정책을 비판하고 있으니 매국노 반역자가 따로 없었을 것이다. 욱일승천하는 일본국을 위해 그는 죽어 마땅한 인물이었을 것이다.

국회의원 야마센이 목숨을 걸고 반대한 악법이 무엇인가? ‘치안유지법’이다. 일제는 1910년대에 세계 곳곳에서 자유민주주의 운동과 사회주의 혁명이 빈발하자 천황중심의 군국주의 체제를 강화하기 위해 치안유지법을 만든다. 원래 이 법은 공산주의자를 처벌하기 위해 입안되었으나 나중엔 국체(천황제)를 비판하는 모든 사람들을 처벌하는데 악용되었다. 패전 후 미군에 의해 폐지되기 전까지 겨우(?) 20년간 운용된 이 법에 의해 피해를 입은 사람이 일본 내지에서만 75000명에 이른다고 한다.

겉으로는 일본을 증오하는 척했지만 친일파를 요직에 앉혀 정치를 한 이승만 초대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일제의 치안유지법을 본 따 ‘국가보안법’을 제정한다. 문제는 그 법을 집행하는 법관과 경찰, 군인들이 거의 모두 일제 강점기에 치안유지법으로 동포들을 탄압했던 주체였던 것이다. 처음에 이들은 일본으로부터 배운 것을 답습하다가 나중엔 더욱 악랄하고 교묘하게 발전시킨다. 이승만이 학생들의 데모로 임기도 못 채우고 나라 밖으로 쫓겨나자 그 뒤를 이은 이가 일본 육군 장교출신인 박정희이다. 그야말로 ‘제국시대 일본인보다 더 일본인 같은’ 사람이 대한민국의 통치자가 된 것이다. 반공을 국시로 내건 박정희는 자신의 통치 이념에 조금이라도 이의를 제기하는 자는 무조건 ‘빨갱이’라는 굴레를 뒤집어씌우고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했다. 어처구니없게도 동서냉전이 끝난 지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국가보안법은 건재하다. 국가보안법 옹호자들은 북한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강변하지만 사실은 이 땅의 기득권자들에게 국가보안법은 신념이자 철학이 되어버렸다. 국가보안법이 없으면 당장이라도 대한민국이 공산화되거나 무질서한 혼돈이 온다고 굳게 믿고 있다. 이쯤 되면 ‘예수천국 불신지옥’ 수준의 광신도 집단이나 다름이 없다. 미국의 한 종교조사기관이 북한의 주체사상을 종교로 분류했듯이 남한의 반공주의도 종교로 분류함이 마땅하다.

유사 이래 자연재해 말고 가장 많은 인명살상을 가져온 것이 종교분쟁이었던 것처럼 두 종교는 실로 어마어마한 인명살상 및 인권침해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 법무부 자료에 의하면 1968년부터 1990년까지 불과 20여년 사이에 국가보안법 및 유사법률에 의한 사형집행 건수만 254건 이며, 전 기간에 걸쳐 이 법을 적용하는 과정에서 죽거나 다친 사람은 수십만, 아니 피해자의 가족과 지인들까지 포함하면 수백만 명에 이른다. ‘다쳤다’는 것은 신체적 손상뿐 아니라 심리적 트라우마 또는 가정의 붕괴, 인간성의 파괴 등을 다 아우르는 말이다. 나는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 대통령 시기에 국가보안법상 간첩으로 조작되어 무기징역을 살고 나온 바 있다. 이 일로 인해 이제 막 시작된 가정이 무참히 파괴되었고, 가족들은 간첩의 배우자 또는 자식으로 숨어사는 존재가 되었으며 당사자인 나는 평생을 고문의 트라우마를 안고 ‘빨갱이 간첩’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채 살아야 하는 운명에 처해졌다.

참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은 검거에서 출소에 이르기까지 거의 매순간 일제의 ‘잔재’ 또는 ‘지속’을 느껴야만 했다는 것이다. 수사와 재판과정의 모든 용어와 관행이 일제 강점기의 그것과 동일했다. 책과 영화에서 보았던 그대로였다. 처음에 징역을 살았던 ‘서대문형무소’는 독립운동가들이 투옥되어 옥살이를 하던 곳이고, 일제 때의 조선신궁 바로 옆에 자리한 KCIA 남산본부에서는 60일 동안이나 고문을 받았다. 이러한 불법 구금과 고문의 관행 역시 일제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야마센을 읽고 감동하는 이유는 온 사회가 미쳐 돌아가는 시기에 뻔히 죽을 줄 알면서 그 악법에 정면으로 맞섰기 때문이다. 한국엔 국가보안법에 의해 희생당한 정치인은 많지만 그에 정면으로 맞서다가 죽은 이는 아직 없다. 그런 용기 있는 정치인이 없기 때문에 이 악법이 아직도 서슬 푸르게 살아 있는 것이다.

야마센이 그립다. 그가 공산주의자인지 아니면 그 어떤 주의자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는 반인륜적인 법과 정치세력에 정면으로 맞서 ‘아니오!’라고 말한 유일한 국회의원이었다. 저 멀리 어디선가 흩날리는 꽃잎 사이로 그의 음성이 들리는 듯 하다. 달리는 기차바퀴 소리와 함께.

(바우 황대권 2019년 5월 12일, 94년 전 일제가 치안유지법을 시행한 날에)

------------




No comments:

Post a Comment

Note: Only a member of this blog may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