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7-24

[중앙시평] 이(理)의 한국, 법(法)의 일본 - 중앙일보

[중앙시평] 

이(理)의 한국, 법(法)의 일본 - 중앙일보




이(理)의 한국, 법(法)의 일본
[중앙일보] 입력 2019.07.24

법도 이치에 맞아야 한다는 한국
법을 이치보다 우위에 두는 일본
문화 이해 결핍이 한일갈등 씨앗
단결보다 문화맹 극복이 더 중요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국화와 칼’로 대표되는 루스 베네딕트의 연구는 2차 세계대전 말과 직후, 미국의 대(對)일본 정책 결정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인명 피해를 줄이며 전쟁을 종식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일본 천황의 항복을 받는 것임을 알게 하였고, 민주주의를 도입하되 천황 제도는 보존하는 방향으로 정책 가닥을 잡는 데 기여했다. 미국의 뉴욕 타임스는 한 나라의 재건에 기여한 전문가라며 그를 칭송했다. 태평양을 사이에 둔 원거리의 두 나라도 상대국 문화를 이해함으로써 바람직한 미래를 열 수 있었다.

파탄 상태인 한일 관계는 무척 대조적이다. 원인에 대해 다양한 견해가 피력되었지만 그 뿌리는 서로의 문화에 대한 몰이해로 보인다. 문화 차이를 고려하지 못한 채 자신의 관점으로만 상대를 판단하니 이해는커녕 화만 나는 것이다. 여기에다 국민감정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권력자의 교활함은 기름에 불을 붙이는 역할을 했다.

한·일의 문화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무엇보다 한국은 이(理)의 나라고 일본은 법(法)의 나라다. 조선은 성리학을 받아들이면서 삼강오륜과 종묘사직이라는 이치를 기본으로 백성의 정신세계를 구축했다. 조선인에게 이치는 법 위에 있고 심지어 왕권보다 높았다. 이조시대 당파싸움이 심했던 것도 모든 것을 ‘이’라는 본질에 비추어 보려는 플라톤적 습성에 기인한 것이다. 실용보다 이념을 중시하며 매사에 따지기 좋아하는 한국인의 특질도 이로부터 유래됐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일본은 무력을 기초로 사회의 질서를 세웠다. 무력 앞에서 백성은 따지기보다 주어진 질서에 순응하는 것이 오래 사는 비결이다. 일본 막부의 기본법인 무가제법도(武家諸法度)에 따르면 “법으로써 이치를 깨뜨릴 수 있지만 이치로써 법을 깨뜨리진 못한다”면서 권력자가 만든 법이 이치보다 우위에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즉 일본은 법으로 정했으면 싫든 좋든 그것이 끝이 돼야 하는 사회다. 한·일의 문화 차이는 ‘사농공상(士農工商)’이란 신분 체계에서 ‘사(士)’의 의미가 다른 데서도 엿볼 수 있다. 조선에서 ‘사(士)’는 선비를 가리킨 반면 일본은 사무라이(武士)를 말한다. 조선은 이치를 따지는 것을 가장 중시했지만 일본에선 법령 수호가 제일 중요했던 것이다.

일제 강점기 조선인의 강제징용 문제는 ‘이’와 ‘법’의 충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한국인은 이치에 맞지 않으면 국가 간 합의도 재고될 수 있다고 믿는다. 인권을 강조하는 법의 흐름에 따라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도 재검토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반면 일본인에게 있어 협정은 법과 동일한 것이며 이로써 문제가 종결됐다는 입장이다.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를 일본인 다수가 지지하는 것도 그들의 문화 코드로는 최종 권위인 법마저 재해석하려는 한국을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속죄 받을 수 있는 신(神)이 없다는 것도 일본 문화의 특성이다. 일본에서 개인의 본분은 국가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서 부여받은 ‘야쿠(役)’를 충실히 이행하는 것이다. 이 역할에 실패할 때 일본인은 수치심을 느끼고 피해자에게 사과한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 때 위안부에게 저지른 악행은 일본 사회가 떠안기엔 너무 큰 거악(巨惡)이다. 다수의 일본인은 사실이 아니라든가 또는 정부가 내린 결정일 뿐 자신과는 관계없다며 피해 나간다. 이 만행을 인정하면 속죄가 필요한데 대부분의 일본인은 죄를 용서하는 절대자를 알지 못한다. 이 문화 때문에 독일과 달리 일본은 2차 세계대전 시기 만행을 깊이 사죄할 수 없었을 것이다.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는 데 얼마나 도움 되겠냐는 반문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밝은 미래를 위해선 더 이상 불을 발등에 떨어뜨리지 않아야 한다. 돌이켜 보자. 2012년 이명박 대통령의 일본 천황 비난은 천황의 상징성을 무시한 ‘문화맹(文化盲)’같은 발언이었다. 그때부터 한일관계는 추락하기 시작했다. 경제대통령이라던 그는 일본에서의 한류 열풍과 한국 비즈니스를 몰락시켜 수많은 일자리를 먼지로 만들었다.


문재인 정부도 무엇이 다른지 의문이다. 문화가 충돌하면 대화와 외교로 풀어야 한다. 그러나 작년 10월 강제동원 피해자의 개인 청구권을 인정하는 확정 판결 이후 정부는 일본의 대화 요청을 한사코 거부했다. 그런데 일본이 경제보복을 하니 갑자기 양국 협의를 제안한다. 이 비일관성을 일본 시민은 무시와 무례로 간주할 것이다. 문화맹인 정부는 아무 얻은 것 없이 한국을 오만하고 무례한 나라로 만들었다.

아베 정부는 외교 문제에 경제보복을 가함으로써 반듯한 질서라는 일본다움을 스스로 포기했다. 그러나 국민적 단결로 이에 전면 대응하자는 주장은 한국의 품격을 팽개치고 일본 극우파같이 되자는 파괴적 선동이다. 오히려 반대로 더욱 치열한 내부 비판과 성찰이 있어야 한다. 한국도, 일본도 이를 통해 ‘문화맹’같은 정치와 정책의 재발을 막아야 한다. 그래야 과거가 미래를 약탈하고 죽은 것이 산 자를 포식하는 지금 같은 불행이 반복되지 않을 수 있다.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출처: 중앙일보] [중앙시평] 이(理)의 한국, 법(法)의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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