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7-05

알라딘: 한국건축 중국건축 일본건축 - 동아시아 속 우리 건축 이야기

알라딘: 한국건축 중국건축 일본건축 - 동아시아 속 우리 건축 이야기






[eBook] 한국건축 중국건축 일본건축 - 동아시아 속 우리 건축 이야기
김동욱 (지은이)김영사2015-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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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한국건축 중국건축 일본건축 - 동아시아 속 우리 건축 이야기
9,900원
제공 파일 : ePub(35.04 MB)
TTS 여부 : 지원

종이책 페이지수 360쪽

책소개
중국 상해 예원豫園의 정자, 일본 이즈모시의 이즈모타이샤出雲大社, 한국 서울의 문묘 대성전. 이 세 건축물은 서로 다른 듯 닮아 있다. 중국 예원의 정자가 꾸밈이 강하고 날아오를 듯 지붕이 휘어져 있다면 일본 이즈모타이샤의 지붕은 약간 밋밋한 곡선을 보여준다. 이에 반해 한국 문묘의 대성전은 기둥을 일직선상에 나란히 세우지 않고 가운데 쪽을 안쪽으로 살짝 휘어지게 만들면서 건물 전체가 곡선을 이룬다.

이 책은 동아시아 삼국의 건축을 섬세하게 비교하고 그 아름다움을 살펴보는 미학 에세이다. 우리나라의 전통 건축을 동아시아의 범주 안에서 가능한 객관적인 시각으로 들여다보려고 시도한 것이다. 특히 우리 건축의 형성에 큰 영향을 준 중국 건축과의 공통점과 차이를 찾아보고, 또한 우리와 비슷한 전개 과정을 밟아온 일본 건축과 비교해보면서 한국 건축의 핵심을 찾아보려는 시도다.

--------------

목차


머리글
프롤로그 · 상호 교류를 통해 이루어낸 동아시아 건축의 성취

1. 나무로 짓는 집의 이점
왜 돌이나 벽돌이 아니고 나무였나?
기둥과 보로 집 짓기
단층과 중층
높이에 대한 도전
조선시대 목구조 기술의 쇠퇴
소나무에 편중된 조선 후기 건축
톺아보기 1 · 동아시아의 특이한 건물들

2. 부드러운 곡선의 미학, 지붕
3차원 곡선의 지붕은 어디서 왔을까?
한중일의 기와
무거운 짐을 진 지붕
송·원 이후 중국 건축의 지붕 변화
12세기 이후 일본에서 지붕의 변모
고식을 간직한 조선시대의 지붕 구조
처마 곡선의 득과 실 더보기



책속에서



살림집에까지 처마 곡선을 살리려고 한 자세가 극단적으로 나타난 것이 서울 가회동 북촌마을의 집들이다. 북촌마을 주택은 대개 1930년대에 와서 서울의 주택이 부족해지자 큰 집터를 잘게 쪼개서 작은 집을 여럿 지어 팔 목적으로 지은 소위 집 장사 집이다. 처마는 집 규모에 비해 과다하게 곡선을 이루었고 거기다 함석 차양까지 덧달아서... 더보기



저자 및 역자소개
김동욱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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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와세다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경기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를 거쳐 2017년 현재 명예교수로 있으며 한국건축역사학회 회장,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 위원을 지냈다. 건축물의 외형보다는 당시 지식인들의 건축에 대한 생각, 건축을 짓는 데 참여한 장인들의 기술, 물질적인 여건 등을 통해 시대의 건축을 입체적으로 파악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한국건축 중국건축 일본건축-동아시아 속 우리 건축 이야기》(2015),《(개정) 한국건축의 역사》(2013), 《도산서당 선비들의 이상향을 짓다... 더보기


최근작 : <서울의 다섯 궁궐과 그 앞길>,<Hwaseong Fortress>,<한국건축 중국건축 일본건축> … 총 25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왜 세계에서 볼 수 없는 부드러운 3차원의 지붕 곡선이 동아시아에서 나타나는 것일까? 한옥의 자연스러운 처마 곡선은 단지 아름답기만 한 것일까? 한중일의 난방시설인 온돌과 캉과 고다츠는 어디가 어떻게 다를까? 공포?包의 원조인 중국 건축물이 보여주는 천변만화함은 어디서 연유한 것일까? 후시미성과 오사카성 등 일본 건축은 언제부터 극단적인 화려함을 뽐내게 되었을까? 마루에서 유식游息하던 선비와 고래 위를 거닐던 승려들은 대체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동아시아 삼국의 건축을 섬세하게 비교하고 그 아름다움을 다시 톺아본 미학 에세이!

동아시아의 독특한 건축유산에 대한 탐미적인 상상,
한중일의 건축을 세밀하게 비교하고 그 아름다움의 속살을 톺아보다

여기에 세 건축물이 있다. 하나는 중국 상해 예원豫園의 정자, 또 하나는 일본 이즈모시의 이즈모타이샤出雲大社, 마지막은 한국 서울의 문묘 대성전. 이 세 건축물은 서로 다른 듯 닮아 있다....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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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문가라도, 한국의 사찰건축이나 궁건축을 보며 시원한 눈맛을 경험하면 알만한 입문서 몇 권쯤 섭렵하는 열정을 보일 수는 있다. 하지만, 3국을 견주어 영향을 파악하고 차이를 이해하는 접근은 문외의 독자에겐 아무래도 쉽지 않다. 이걸 한권안에 다루어 주는 친절함.^^ 일독의 기쁨은 크다.
참한꽁딱심 2015-08-12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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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좋은데 한국책은 왜 죄다 자간도 너무넓고 여백이 많은지 모르겠다. 콤팩트하게 만들면 들고다니기도 좋을텐데 쓸데없이 여백많고 두꺼움.
anaki 2016-05-12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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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는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이 서양의 정신적?물질적 사고에 의해 익숙해져 있다. 그래서 동양의 옛 사람들이 가졌던 정신문화와 물질문화에 대한 교감이 어려운 것이 아닐까. 평소 궁금증을 갖고 있었던 동양의 목조건축문화와 삼국의 이동異同에 대해 답을 얻을 수 있었다.
soullaw 2015-11-28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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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려고 장바구니에 담아둔 책입니다. 우리건축과 다른나라의 건축 설명이 잘 나와있다고 하더라고요.
소나무 2015-11-23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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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이들이 같은 한중일의 건축물을 대동소이하다고 생각하는데, 그 차이점을 쉽고도 자세하게 설명해주었습니다.
Lesley 2015-11-26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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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면 감동도 없다




내가 제대로 알지 못하는 범주의 깊이 있는 서술을 볼 때마다 부럽다. 그러다가 내가 모르는 게 너무 많다는 자괴감이 들 때쯤 공연히 별점을 한 개 줄이고 싶은 못된 심술이 솟아나기도 한다. 저자의 폭넓은 견문과 학식을 접하면서 마치 테레비에 나오는 '참 쉽죠~'라는 유행어를 듣는 거 같기 때문에. 그만큼 쉽게 읽히는 개설서지만 이런 책은 결코 쉽게 쓸 수 있는 게 아니다. 하여 나는 겸손한 마음으로 별점을 꽉 채웠다.



공포와 화반의 역사적 변천과 한중일 교류 관계에 대해 개요를 파악할 수 있어서 좋았고, 석조물에서도 몇 가지는 기존에 듣지 못한 분석이 있었다. 불국사 석축에 관한 건축적 분석은 귀담아 들을 만했다. 내가 과문한 탓인지 우리 문화재에 관해 금시초문인 내용들이 많았다.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유물이나 유적을 깊이 있게 알게 되면 그 예술적 가치도 더 확실하게 느낄 수 있다. 그러니까 알면 알수록 더욱 찬탄을 하게 된다. 모르면 감동도 없는 법이다.



종묘 정전 월대 박석에 관한 막연한 찬탄이나 감상이 아닌 시각적, 기술적 분석은 냉철하면서도 감동을 주는, 건축사와 공장사(工匠史)를 전공한 저자가 아니라면 절대 들려주기 힘든 설명이었다.




(종묘 정전 박석의) 돌은 규산염광물로 이루어진다고 하며 화강암은 실리카, 즉 규소와 산소의 화합물인 이산화규소를 다량 함유하고 있는데 그 색상은 기본적으로 희다. 따라서 이런 흰빛을 띤 화강석 표면을 너무 곱게 다듬어서 바닥에 깔게 되면 빛이 반사되어 눈이 부시게 되고 또 빗물이라도 표면에 남아 있으면 미끄러질 우려도 있다. 요즘 우리 주변에 이런 불편한 돌 표면이 적지 않다.

조선시대 석공들은 이런 문제를 잘 알고 있었던 듯해서 박석 표면을 일부러 거칠게 두었다. 박석의 크기도 일정하게 하지 않고 모양새도 제각각이다. 얼핏 보면 부실 공사이거나 일을 대충하고 마무리를 치밀하게 완성하지 않은 듯 보이지만 그 결과를 두고 보면 어느 것이 더 옳았는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석공들의 가슴에 담긴 천연스러움이 느껴진다. 완벽한 마무리에 매달리지 않고 재료가 갖는 속성을 숙지하여 가장 사람들에게 편안한 아름다움을 제공해주려는 미학이 담겨 있다. 조선시대 분청사기에 대해 이와 비슷한 평가가 내려지고 그 예술성이 높이 평가되고 있는데, 종묘 정전 월대 박석도 그런 평가의 대열에 넣어도 무방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196)



책에는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정보들이 수두룩하였다. 이는 저자의 학문적 성과에서 오는 것이다. 다만 어떤 내용에서는 충분한 도판이 소개되지 않아 막연한 짐작만 하고 넘어간 경우가 있어서 그게 조금 아쉬웠다.



한국건축사 수업에서는 교재 다음으로 읽어야 할 필독도서급이고, 동양건축사 수업을 한다면 거의 교재급이라 할 수 있는 책이다. 권위자의 경험과 관점을 골고루 담아낸 역저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무덤덤하게 써 내려간 결정적 문장들을 밑줄을 좍좍 치며 읽지 않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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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궐 2015-08-04 공감(4) 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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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건축 중국건축 일본건축 - 동아시아 속 우리 건축 이야기










아는 만큼 보이게 마련인 것인지라 여전히 고건축은 어렵다. 시간을 내서 책을 읽어 보기도 하고, 오래된 건축물을 찾아 유심히 살펴 보려 애써보지만 하루 아침에 눈이 떠질 리 만무하다. 그래도 지금껏 몰랐던 것들을 하나씩 알아가는 재미 또한 쏠쏠한 것도 사실이다. 이런 재미를 무럭무럭 키워 줄 좋은 책이 한 권 있어 소개해 보려 한다.









<한국건축 중국건축 일본건축> 이란 책은 한국건축역사학회 회장과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 위원을 역임하고, 현재는 경기대학교 명예교수로 재직중인 김동욱 교수가 한, 중, 일 삼국의 건축을 세밀하게 비교하고 각각의 차이와 그 속에서 빚어지는 아름다움을 설명하고 있다. 동양 삼국의 고건축에 대한 관심과 일본 와세대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던 그의 경력이 고건축의 면면을 속속들이 통찰하는 데 있어 큰 도움이 되었음은 자명하다.









김동욱 교수는 건축물이 지어진 역사적 배경과 시대적 흐름에 관심을 가지고, 건물의 외형 보다는 당시 지식인들의 건축에 대한 생각, 건축물을 짓는 데 참여한 장인들의 기술, 물질적인 여건을 통해 시대의 건축을 입체적으로 파악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이를 통해 한중일 건축의 공통점과 차이에 대한 섬세한 비교를 통해 동아시의 문화의 상호 교류가 이루어낸 눈부신 성과를 재조명하고 서로 간 문화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서술은 객관적이다. 학창시절 한옥의 자연스러운 처마 곡선이 세계 제일의 아름다움이라 배웠던 나로서는 냉철하면서도 비판적이기까지 한 그의 시선이 다소 불편하기도 했다. 하지만 객관적 사실은 존중해야만 한다. 중국 대륙의 문화적 영향 속에서도 우리의 자연과 문화를 반영한 독특한 기법들을 발전시켜 왔던 고건축이 조선시대 들어 정체기를 거쳤다는 그의 설명은 엄연한 사실이었기에 우리는 기존에 가지고 있던 지식과 고정관념을 떨쳐낼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한국, 중국, 일본의 건축을 놓고 그 우열을 가릴 수는 없다. 김동욱 교수가 주장하고자 하는 핵심은 한중일 삼국이 상호 교류를 통해 아주 독특한 이 지역만의 건축학적 성취를 이루어 냈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초기에는 서로 간에 적극적인 교류를 통해 큰 성과를 거두었고, 시간이 지나며 자신의 개성을 찾기 위한 노력이 선택적인 외래문화 수용의 단계로 들어서게 된다. 이후 교류단절의 시기가 도래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를 통해 건축의 독자성이 성취되는 역사의 아이러니를 목격하게 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문화에 있어 그 낫고 못함을 가려서는 안된다는 것이 아닐까. 각자에 놓여진 여건을 고려하여, 그 특성에 적합한 방향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당연한 역사의 과정일 것이니 서로의 차이 또한 이런 측면에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할 것이다. 한중일 세 나라의 건축양식 역시 그러하다. 비슷해 보이면서도 자세히 보면 그 차이가 완연하게 드러날 수 밖에 없는 것이 당연하다.









아쉽지만 중국이나 일본의 오래된 건축들을 직접 보며 이해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기껏해야 북경에 있는 자금성을 주마간산 식으로 구경한 것이 전부였지만 잠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우리와 중국의 건축에는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에 소개되어 있는 많은 사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웅장하고 거칠 것이 없어 보이는 중국 건축이나, 규격을 중시해 치밀하면서도 화사한 면모를 지닌 일본 건축 또한 아름답다. 하지만 건물 자체가 주변 경관과 단절되지 않고 같은 풍경으로 어우러지는 우리의 건축이 나는 마음에 든다. 낙동강 너머 병풍처럼 드리워져 있는 바위절벽을 차경으로 삼아 고요히 강물을 바라보며 서 있는 병산서원 만대루의 아름다움은 언제나 황홀하다.









김동욱 교수가 자신있게 얘기한 것처럼 봉정사 만세루, 관룡사 원음각, 화암사 우화루 등이 가장 눈에 띄는 중심에 자리 잡으면서도 거칠고 투박한 개별 건물의 약점을 덮어 버리고 조선시대 사찰의 경관과 공간을 한층 극적인 수준으로 끌어 올리고 있는 수많은 누각들을 나 또한 한국 건축이 만들어 낸 최고의 걸작이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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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가람 2015-12-24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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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3] 세 쌍둥이 한중일 삼국 건축








동아시아 건축에 끼친 중국의 영향



저자는 머리글에서



“그 동안 우리는 지나치게 우리 자신의 장점을 내세우는 데만 몰두한 경향이 있다.



한국 건축에 대해서도 막연한 신화가 깔려 있는 듯하다. 한국 건축의 처마 곡선은 무조건 아름답다고 평가되고, 단청은 무언가 은은하면서 차분한 멋이 있으며, 창살 문양은 중용의 미를 살렸다는 식의 이야기가 공공연히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이런 주장은 지난 50여 년, 우리 문화의 자긍심을 일깨우는 방편으로 유용했지만 이제는 이런 자기도취적 평가에서 벗어난 우리 스스로 객관적으로 바라볼 때가 되었다1)”고 주장한다.



이것은 중국 건축이 한국 건축에 미친 영향과 그것이 중국 건축의 무비판적인 수용에 그친 것이 아니라 한국의 현실에 맞춰 변용하였음을 인정하자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고대 동아시아 문명의 특징은 활발한 문화 교류, 그 중에도 사람들이 직접 왕래하는 인적 교류를 통한 문화 교류에 있다2)”고 한다. 그리고 개방적인 당(唐)이 전성기를 누렸던 “7, 8세기는 그런 교류가 건축에 구체적으로 나타난 가장 두드러진 시기였다.3)



하지만 당(唐)이 몰락하면서 중국은 오대십국(五代十國)의 혼란기를 맞이했다. 그 영향으로 “이 시기 한반도나 일본열도는 중국과의 교류를 끊고 자국의 독자적인 문화 속성을 심화시켰다.



(한국) 건축의 경우에도 중국식의 대칭적인 배치 원칙을 따르지 않고 한반도의 지리적 조건을 살려 자연에 어울리는 건물의 배치나 형태를 취하려고 노력하였다. 이런 자세는 건축의 세부에까지 확대되어 고려의 건축은 중국과는 일정한 차이를 지닌, 개성이 뚜렷한 형태를 갖추었다.



일본 역시 고온다습하고 지진이 많은 자연 조건에 맞는 건축 특성을 꾸려나갔다. 지진에 대비하여 축부(軸部)를 보강하는 방안이 고안되고 무겁고 단단한 기와 대신에 히노키 껍질을 얇게 켜서 지붕을 덮는 방식이 나타났다. 아울러 사방에 튓마루를 돌려 수평선을 강조한 독특한 외관이 형성되었다.



(이처럼) 10세기 이후 동아시아 세 나라의 문화 교류는 고대와 같은 전폭적인 교류와 달리 선택적이고 간헐적인 양상을 보였다. 건축의 경우에도 토착적인 색깔을 유지하면서 부분적으로 새로운 요소를 수용하는 방식으로 나타났다.4)



여기까지가 중국 건축이 끼친 긍정적 영향이라면 명(明)나라의 해금(海禁) 정책으로 대표되는 쇄국(鎖國)의 흐름은 조선(朝鮮)의 지배 이데올로기로 등장한 성리학의 기술 천시 풍조와 맞물려 한국 건축의 발목에 쇠사슬을 얽어 맸다.



덕분에 한국 건축은 건축 기술의 창의성도, 정교함도, 기술적 완성도도 잃어버려야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건물 전체의 형태적 완결을 이루었다는 점이다. 즉, 오늘날 한국 전통 건축의 특징으로 꼽히는 “주변 자연환경과 조화를 이루고 유연성을 지닌 건물의 배치5)”가 이 때 완성된 것이다.





귤화위지(橘化爲枳)



춘추시대의 명재상 안영(晏嬰, ?~B.C.500)는



“귤이 회남(淮南)에서 나면 귤이 되지만 회북(淮北)에서 나면 탱자가 됩니다.[橘生淮南則爲橘 生于淮北爲枳]



잎은 서로 비슷하지만 그 열매의 맛은 다릅니다.[葉徒相似其實味不同]



그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물과 풍토가 다르기 때문입니다.[所以然者何水土異也]”라는 말을 남겼다.



동아시아 건축에 있어서 이 고사를 떠올리게 하는 대표적인 요소가 ‘구들’이다. 한반도의 구들이 일본 열도에 건너갔지만 오래 버티지 못했다.



첫 번째 이유는 672년에 벌어진 임신壬申의 난(亂)(672)이다. 한반도 이주 세력의 지지를 받으며 오츠[大津] 지역을 근거지로 새로운 정치를 펼치려던 오토모노 미코[大友皇子, 648~672]이 아스카[飛鳥]를 근거지로 삼은 구세력의 반란에 패배, 자결하였다. 이 때문에 오츠[大津] 지역에 뿌리내린 한반도 이주 세력은 정치적 힘을 잃어 버렸다.



인조반정(仁祖反正)으로 광해군(光海君) 지지세력이 몰락한 것을 떠올려보면 될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습기가 많고 상대적으로 따스한 기후 조건 탓이라 할 수 있다. 구들은 실내의 습기 제거에 도움이 되지만 불을 넣지 않는 여름철에는 구들 내부에 습기가 차서 벌레가 끓거나 구들 벽이 쉽게 무너지는 결함을 안고 있다. 더군다나 오츠[大津] 지역은 비와코[琵琶湖]라는 큰 호수를 끼고 있어서 다른 곳보다 습기가 많은데다가 겨울철 기온도 한반도처럼 한랭하지 않다.6)



결국 이러한 기후 조건과 정치적인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한반도 이주민에 의해 만들어지던 구들이 사라진 것이다.



비슷한 사례로는 의자가 있다. “본래 동아시아 지역 사람들은 좌식 생활을 기본으로 했다. 그러다가 한(漢)나라 말 서역에서 중국인들이 호상(胡床)이라고 부르는 (간이식) 의자가 도입된 후 중국인들은 의자를 적극 수용하여 당대(唐代) 이후에는 거의 의자와 침대를 기본으로 한 입식 생활 문화를 해나갔다. (한반도에도 전파되었으나) 의자는 제한적인 용도로 활용되었다. 임금이 앉는 어좌(御座)라든지 지방 동헌에 수령이 앉아서 죄인을 심문하는 곳에 등장한다. (이렇게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일상생활에서는 의자는 거의 이용되지 않은 것 또한 분명한다. 일본은 더욱 의자가 제한적으로 이용되어 천황이 의식을 거행할 때 의자를 이용한 사례를 확인하는 정도이다.7)





한중일 건축의 차이



동아시아 건축은 “언젠가는 자연으로 돌아가는 한시적이고 비영구적인8)” 목조건축이 특징적이다. 하지만 목조건축에는 크기의 한계가 존재한다. 따라서 규모를 큰 건축물을 짓기 위해서는 여러 개 건물이 모여서 하나의 건축물을 이룰 수 밖에 없다.



이에 따라 어떻게 건물을 배치하는가가 중요한데, 여기에는 한중일 건축의 특색이 드러나 있다.



중국 건축은 ‘중축대칭(中軸對稱) 방정엄정적(方正嚴正的) 군체조합(群體組合)’의 원칙을 기본으로 한다.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는 당대(唐代)의 도성이었던 장안성(長安城)이 있다. 주작대로를 중축(中軸)으로 하여 동서방향 14가로와 남북방향 11가로에 따라 건물들이 네모 반듯한 틀 안에 배치되어 있다. 엄격하면서도 압도적인 규모로 자연을 윽박지르려는 듯한 느낌을 준다.







당(唐) 장안성(長安城) 평면도





출처 : 윤장섭, <중국의 건축>(1999)





선종의 보급과 함께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이름난 산을 찾아 수행 도량을 꾸미는 일이 잦아졌다. 이 과정에서 산의 지리 조건에 맞는 집 짓는 방식이 자리 잡아갔다. 여기서는 굳이 중심축상에 건물을 배치할 필요도 없었고 또 그렇게 하기도 어려웠다. 자연히 건물 배치는 지세에 의존해서 불규칙하면서도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달라져갔다.9)



여기에 명(明)나라의 해금(海禁) 정책에서 비롯된 쇄국(鎖國)은 한국 건축을 열악한 환경에 놓이게 했다. 따라서 “(조선시대 건축 장인들의 손에 의해) 만들어지는 건물들은 세부 가공이 덜 치밀한 경우도 있고 비례가 완벽히 맞아떨어지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그러나 조선의 장인들은 이런 세부의 불완전함에 마음을 빼앗기거나 필요 이상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이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전체 건물 배치가 만들어내는 유기적 관계와 그 배치가 만들어내는 외부 공간의 살아 숨쉬는 역동성10)”이었다. 자연과의 조화라는 한국 전통 건축의 특색은 여기서 나왔다고 생각한다.



일본 열도에서는 “혈연적으로 대를 이은 장인들은 집안의 독특한 기술을 전승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생산성은 높아졌지만) 장인의 안목이 지나치게 세부에 집착하면서 전체적인 형태의 조화를 잃는 손실도 따랐다. 그것은 전체 건물 배치의 유연성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았다.11)



그 자체로는 반듯반듯하고 오밀조밀하지만 자연을 인공적으로 모방했다는 느낌을 주는 일본 건축의 특징은 이처럼 하나의 건물 내부의 완벽성에 집착하면서 건물 상호간의 배치 관계와 같은 외부 공간 구성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했기 때문에 나온 것이 아닐까 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그렇기에 자신이 아는 것만으로 한국 건축을 바라보면, 한국 건축의 독창성과 아름다움을 찬양하는데 매몰될 수 있다. 나아가 문화 국수주의에 빠질 수도 있다.



따라서 ‘다름’이 ‘틀림’으로 인식되기 전에, 저자의 바램처럼 한국 건축을 애정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1) 김동욱, <한국건축 중국건축 일본건축>, (김영사, 2015), p. 5


2) 김동욱, 앞의 책, p. 16


3) 김동욱, 앞의 책, p. 17


4) 김동욱, 앞의 책, pp. 17~20


5) 김동욱, 앞의 책, p. 24


6) 김동욱, 앞의 책, p. 212


7) 김동욱, 앞의 책, pp. 216~217


8) 김동욱, 앞의 책, p. 30


9) 김동욱, 앞의 책, p. 322


10) 김동욱, 앞의 책, p. 333


11) 김동욱, 앞의 책, p.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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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EMMA 2016-02-29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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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기와가 만들어지기까지-김동욱의 '한국건축 중국건축 일본건축'을 읽고












하나의 기와가 만들어지기까지

-김동욱의 '한국건축 중국건축 일본건축'을 읽고-













바다는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한국과 중국, 일본을 불문하고 모든 나라가 원조에 목을 맨다. 어떤 자랑거리가 나오면 그 자랑거리의 원조에 대한 논쟁이 펼쳐진다. 영향을 받았다는 것, 어떤 것과 유사하다는 것 자체에 기분이 상해 갈등까지 빚기 일쑤다. 다뉴브 강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다뉴브 강줄기를 끼고 사는 나라의 국민들이 모두 입을 모아 분쟁을 벌였지만 결국 다뉴브 강이 흘러가고 흘러나오는 건 흑해였다. 늪지와 폐선이 떠다니는 흑해.

지금은 사소하고 당연하게 여겨지는 사물들의 시작은 사소하고 당연한 게 아니었다. 사물들을 발명하고 새롭게 화반을 만들고 지붕을 솟아오르게 만든 사람들은 반신반의하는 이들에 맞서 그 유용성을 입증했다. 사물들은 인간보다 더 오래 살아남는다. 오래 살아남아서 그들이 왜 태어났고 태어나서 무엇을 했는지 계속 증명한다. 하지만 남는 건 사물 뿐이며, 발명가는 없다. 이미 죽었다.

그렇다면 왜 인간은 시작에 대한 열망을 갖는가? 시작은 어떤 우월감을 부여하는가? 회의주의적이고 종말론적인 결말이 당연한데도, 왜 시작을 알고자 하는가? 이는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왔던 사물에 대해 의문을 품고 그 사물을 더 자세하게 바라보게 하는 마법의 작동 방식이다. 우리는 바다를 그냥 바라볼 수 있다. 그 순간 바다는 물이 가득 찬 거대한 그릇 이외에는 아무 것도 아니다. 하지만 바다가 어디에서 왔는지 의문을 갖는 순간부터 바다는 그릇에 담긴 물 이상의 것이 된다. 우리는 역으로 바다에서, 물건에서 우리의 짧은 생을 본다. 그 짧은 생은 고요한 수면에 이는 아름다운 파동을 그려낸다. 아주 잠깐이지만, 그래서 그 무엇보다 아름다운 파동을.

중국의 경우 집 또한 결국 오래 가지 않는다는 생각 하에 ‘즐겁고 안락한 장소’를 만들고자 했다. 그들에게 중점이 되는 건 인간이었다. 일본은 가파르고 험한 자연에 맞서 ‘세밀하고 안전한 내부’를 만들고자 했다. 그들에게는 이상이 중요했다. 한국은 주변의 자연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주변의 아름다운 산세에 떨어진 검은 묵이 되지 않는 것을 추구했다. 우리에게는 자연이 중요했던 것이다. 각자에게 중요한 건 다르고, 때문에 설령 누군가가 원조라 할지라도 그 원조의 의미가 그대로 승계되었다고 보기에는 어렵다. 모두들 손을 부여잡고 아름다운 모양을 만들고 있는 것이며, 물방울의 파동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든 비가 내리는 순간 수많은 파동들이 수면 위에 아름답게 깨져나가게 되는 것이다.





모코시와 부계, 그리고 온돌



건축물들은 각 나라가 추구하는 정신 외에도 그 나라의 사회구조를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다. 과거 중국과 한반도, 일본에서는 높은 기둥을 이용해 커다랗고 멋진 건물을 만들었다. 그 건물은 겉보기에는 2층처럼 보였지만, 실제로 들어가 보면 천장이 까마득하게 솟아 있었다. 2층으로 가는 계단은 없었다. 텅빈 2층인 셈이다. 특히 일본의 모코시와 중국의 부계는 끝으로 갈수록 점점 좁아지면서 고깔 모양이 된다.

일본과 중국의 경우 천황과 황제라는 존재가 모든 국민들의 위에 있었다. 그들은 반신과 같은 존재로 추앙받았다. 중국의 경우 위촉오의 갈등 등 여러 차례 황제가 바뀌었다고는 하나, 이들의 이야기는 하나의 전설이 되어 멋진 색으로 채색되곤 했다. 일본의 경우 천황은 신이 내려준 인간이며 이들의 권력 다툼은 거의 승계 식으로 끝나곤 했다. 까마득한 지붕 끝은 점점 갈수록 하나의 점이 되고, 모든 이들의 위에 선 ‘누군가’를 암시하게 한다.

한국의 경우 이러한 구조가 눈에 띄지 않는다고 쓴 이 책에서, 묘하게 드러나는 차이를 본다. 그 차이는 바로 ‘온돌’이다. 다른 나라들과 다르게 한국의 ‘온돌’은 천민부터 양반에 이르기까지 모든 이들이 썼다. 물론 한국의 임금 또한 하늘이 내린 존재라고 하지만, 점의 결과에 휘둘리거나 어떤 갈등에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면 마치 그리스의 석상과 같은 무자비한 신이 로마에서 인간적인 신으로 변한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어쩌면 세 나라의 건축적 공통점을 발견할수록, 그 차이는 오히려 더 드러나는 것이 아닐까. 사람들은 차이를 더 찾아내려고 하지만 그 끝에서 발견하는 건 지울 수 없는 유사한 토대다.





공포들



공포의 경우 일종의 기둥받침이라고 볼 수 있다. 기둥받침은 모양부터 색까지 다양하다. 중요한 건 지붕과 기둥 뿐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점차 건축이 하나의 예술 작품이 되면서 창틀까지도 중요한 구성 요건이 되었다. 미니멀리즘 등 서양 건축에서는 유용성에 입각한 건물들, 컨테이너 박스 같은 건물들이 대두되면서 그 밋밋함으로 인해 건축의 정도에 대해 갑론을박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건물들이 결국 하나의 그림이고 작품이라고 한다면, 그 작품을 옳고 그름으로 따질 수 있겠는가?

일본의 경우 지진에 대비해 돌이나 나무로 만든 무거운 기와를 사용할 수 없었다. 그들은 가장 가벼운 히노키 소나무를 이용해 지붕을 만들었다. 한반도와 중국에서는 나무로 건물을 만들었다. 서양처럼 튼튼하게 돌로 만들지 않았냐고 묻는 질문은 참 우스운 것이다. 왜냐하면 한반도나 중국, 일본에도 석탑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목조 건축을 선호한 것은 점점 뒤틀리고 부서져 가는 나무 기둥의 속에서 아름다운 나이테 무늬를 봤기 때문이다. 나무는 영원한 소재가 아니며, 그건 손이 닿을수록 점점 나이가 든다. 인간보다 조금 더 느리거나 같게 나이가 들고 닳아가면서 색이 변한다. 고색창연하다는 말은 바로 이럴 때 쓰는 것이다. 가령 서정주의 ‘먹오디빛 툇마루’와 같이, 돌마루라면 그런 먹오딧빛을 지닐 수 있을 것인가?

아주 소소한 선택에도 시간이 깃들여 있고, 공포와 두공, 구미모노를 짜올리는 주두와 첨차, 소로는 시간을 버텨내기 위해 서로를 맡잡고 깍지를 껸 손이다. 우리를 지탱해오고, 하늘을 떠받쳐 온 그 손들. 우리는 다시 한번 더 그 손들을 바라봐야 할 것이다.



외할머니네 집 뒤안에는 장판지 두 장만큼한 먹오딧빛 툇마루가 깔려 있습니다. 이 툇마루는 외할머니의 손때와 그네 딸들의 손때로 날이날마다 칠해져 온 곳이라 하니 내 어머니의 처녀 때의 손때도 꽤나 많이 묻어 있을 것입니다마는, 그러나 그것은 하도 많이 문질러서 인제는 이미 때가 아니라, 한 개의 (거울)로 번질번질 닦이어져 어린 내 얼굴을 들이비칩니다.

그때, 나는 어머니한테 꾸지람을 되게 들어 따로 어디 갈 곳이 없이 된 날은, 이 외할머니네 때거울 툇마루를 찾아와, 외할머니가 장독대 옆 뽕나무에서 따다 주는 오디 열매를 약으로 먹어 숨을 바로 합니다. 외할머니의 얼굴과 내 얼굴이 나란히 비치어 있는 이 툇마루까지는 어머니도 그네 꾸지람을 가지고 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서정주, ‘외할머니의 뒤안 툇마루’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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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지 2015-08-07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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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한중일 건축 문화 비교




기대보다 훨씬 재밌다.

저자의 다른 책 서평들도 좋은 편이라 같이 읽어 볼 생각이다.

우리 문화가 최고라는 민족주의적 시각에 함몰되지 않고 균형있게 한중일 건축 문화를 비교한 점이 인상적이다.

특히 자연이나 인문환경과 관련하여 왜 특색있는 건축문화로 발전했는지를 설명해 주어 이해가 쉬웠다.

편집이나 도판도 깔끔하고 무엇보다 저자의 글솜씨가 매끄러워 읽기가 참 편했다.

건축에 대한 기본 지식이 전무하다 보니 솔직히 세부 사랑을 다 이해하지는 못했다.

그저 건축과 관련된 역사적, 인문학적 배경을 이해하는 것에 만족하려고 한다.

이제 겨우 이해한 것이 공포와 처마, 용마루 정도다.

용마루와 관련하여 신기했던 것이, 보통 교태전은 왕을 낳는 신성한 곳이라 기를 누르지 않기 위해 용마루가 없다고 알고 있었는데 오해라고 한다.

임진왜란 이전 자료를 보면 용마루가 있었을 가능성이 많고 반드시 침전에만 용마루가 없는 것도 아니라고 한다.

임진왜란 이후 중국으로부터 용마루 없는 무량전이 들어왔을 것으로 본다.

역시 유통되는 속설을 무조건 믿어서는 안 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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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ne 2015-09-05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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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 비슷하면서도 다른 건축물들




생각 하나



어떤 외국인이 한강에 줄지어 있는 아파트를 보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왜 저렇게 멋없이 짓나요? 혹시 저것들은 전쟁 시에 차폐물로 사용하기 위해서 짓는 것인가요?"



믿거나 말거나이지만 한강변을 달리면서 이 말을 떠올려 본다. 너무나 비슷하게, 아니 똑같이 지어진 아파트들을 바라보면서 한국의 건축문화가 무엇인가 생각을 해본다.



생각 둘



제대를 하고 잠실에서 5년을 살았다. 도로는 넓게 뚫려 있고, 고층 빌딩들이 줄지어 서 있다. 역시 강남이구나라는 생각을 해봤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왠지 모를 불편함을 느낀다. 강북에 있는 고궁들, 한옥들이 그립다. 과거 수업을 째고 많이 돌아다녔던 경복궁도 절실하게 그리워진다.



생각 셋



어느 분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이다.



도대체 외국 사람들이 한국에 왜 관광을 오는지 모르겠다. 일본처럼 화려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중국처럼 거대하지도 않고, 유럽처럼 전원적이지도 않는데 무엇을 보러 오는지...



한국의 건축문화에 대해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들이다. 여기에 근거하여 한국에는 건축 문화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데 말이다. 정말 한국에는 건축 문화가 없는 것일까? 강북에 위치한 고궁을 둘러보면 각 궁마다 풍기는 느낌이 약간씩 다르다. 창경궁과 창덕궁이 조용한 전원의 풍경이라면 경복궁은 한껏 단장한 여인의 모습이랄까?



책을 보고 있던 어느날 8살 난 딸과 7살 난 아들이 나에게 물어본다. 아빠 어느 것이 중국 건축물이고, 어느 것이 한국 건축물이며, 어느 것이 일본 것이예요? 일본 것이야 금방 알아챘지만 중국 것과 한국 것은 약간 헷갈렸다. 같은 동아시아의 건축물들이라도 일본 것은 왜 금방 눈에 띄고, 중국 것과 한국 것은 헷갈리는 것일까? 건물 전체가 아니라 지붕만 보고 답한 것이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나는 다른 곳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이 책의 저자가 한 말과 일맥 상통하는 것인데, 일본은 중국과 한국의 영향을 받았지만 섬나라라는 특성 때문에 고유한 모습으로 발전했을 것이고, 한국과 중국은 일본보다는 교류가 더 많기 때문이다.



이를 토대로 어떤 사람들은 한국의 건축물은 중국의 건축을 모방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싶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이를 건축문화가 얼마나 왕성하게 교류했는지를 보여주는 예라고 생각한다. 그렇다. 건축도 문화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 주고 받는다. 다만 중화 사상 때문인지 몰라도 한국의 건축 문화는 중국의 건축 문화를 많이 답습하는 차원에서 머무르고 있을 뿐이다. 저자는 한국 건축물의 배치를 보면 중국과 많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평지에 건축하는 중국으로서는 단을 높이는 것은 가급적이면 자제하지만 국토의 70%가 산으로 이루어진 한국에서는 일부러 단을 높여서라도 건물의 배치를 달리한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 말이 맞는 것 같다. 어렸을 적 한옥들이 대체로 높낮이가 달랐던 기억이 난다. 대청 마루가 있던 그곳은 다른 건물에 비해서 약간 높았고, 소를 키우던 외양간은 다른 건물에 비해서 약간 낮았다. 물론 그 옆에 비슷한 높이의 행랑채가 있었고.



중국과 한국, 일본의 건축 문화에 대해서는 이 책을 자세하게 보면 알 것이고, 다만 안타까운 것은, 그리고 한국의 건축 문화가 크게 발전하지 못했던 것은 장인들을 제대로 대우하지 않았던 한국의 꽉막힌 유교 정신 때문이 아닐까? 실용적인 학문들을 무시하고 자구와 이론에만 매달려 씨름했던 한심함들이 오늘날 이런 식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고 요즘처럼 너무 실용에 매달리는 것도 문제는 있다. 가장 실용적인 배치는, 건물을 쓰기에 가장 좋은 구조는 사각형 구조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 속에서는 예술의 경지에 이른 건축물들이 등장하기를 어려울 것이다. 오늘날 한국에 건축문화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이 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집은 사람이 사는 곳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생각들이 사라져가고 투자로 생각하는 요즘 시대에 철학적이고, 예술적인 건출물, 건축 문화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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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5-08-11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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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보적이면서 독자적인 동북아 3국의 건축 이야기 『한국건축, 중국건축, 일본건축』











상보적이면서 독자적인 동북아 3국의 건축 이야기

『한국건축, 중국건축, 일본건축』, 김동욱 지음, 2015. 5. 김영사.



한번쯤 내 손으로 집을 짓고 싶은 생각을 한다. “울도 담도 쌓지 않은 그림 같은 집”. 내가 막연하게 꿈꾸는 소망이다. 미학적인 건축물을 보면 시선을 거두기가 어렵다. 언젠가 짓게 될 내 집에 대한 로망도 있고, 살림집을 닮은 카페에 가면, 스케치북에 엉성한 도면을 그려보기도 한다. 정(井) 자형으로 지어진 집의 마당에서 사계절을 느낄 수 있다면, 우울증이 깊어지지 않을 것도 같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고층아파트의 17층이다. 창 밖 세상과 분리된 느낌 탓인지, 여러 이유가 더 있기도 하지만, 이곳에서는 삶을 관망하듯 살게 된다. 김훈 선생께서 『자전거 여행』에서 “그 민짜 평면은 인간의 꿈이나 생활의 두께와 깊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한 생애의 수고를 다 바치지 않으면 이런 공간에서조차 살 수가 없다.” 하셨듯이, 공간은 생활 방식을 일정 정도 강제한다. 뿐만 아니라 평생의 수고를 집 한 채에 쏟아 붓는 강도 센 노동을 요구한다.



올 여름이 시작될 즈음, 지인께서 ‘내 손으로 내 집 짓기’ 60차시 연수를 함께하자 하셨다. 산책 길 마주치는 주택이 예사롭지 않던 차에 마음이 동했지만, 개인 사정상 함께하지는 못했다. 안부 차 연수 잘 받으시고 계신지 여쭈었더니, 연수를 받으면 받을수록 집 짓는 일을 포기하게 된다고 하신다. 집짓기가 낭만적인 일은 아닐 것이다. 오랜 시간 고민을 키우지 않는다면 십에 팔 할은 불만으로 남을지도 모른다.



저자는 한국 건축에 대한 신화를 극복하고자 이 책을 지필 하였음을 서두에 밝히고 있다. 세 국가의 건축을 비교함으로써 좀 더 객관적으로 한국 건축을 바라보려는 의도를 충분히 알 수 있다. 자문화 중심주의와 사대주의를 벗어나 자국의 문화를 바라보는 것에서 출발한다. 자랑할 가치가 있는 한국 건축의 장점, 그 이면에 가려져 있는 한계를 메타적으로 바라보기 위해서는 비교론적 관점을 유지하는 것은 당연하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제외하면 모두 8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 나무로 짓는 집의 이점

2. 부드러운 곡선의 미학, 지붕

3. 천변만화하는 목조건축의 백미, 공포와 화반

4. 고인돌에서 천상의 세계까지, 석조물

5. 구들과 확산과 좌식 생활

6. 바람이 불어오는 문, 창호

7. 휘황찬란한 아름다움, 채색과 조각의 세계

8. 엄정성과 역동성 사이, 공간 배치와 누각



건물의 재료, 지붕, 난방, 문, 누각, 공간 배치와 색채까지 다양한 분야에 대하여 세심하게 다루고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책에서 언급된 건축에 대한 전문 지식을 통해서 건축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다. 전통 건축에 대한 무지를 통감하며 책을 읽었다. 석조 건물이 표현하지 못하는 나무의 부드럽고 섬세한 속성, 집의 대들보를 올리는 의식인 상량식, 넓은 공간을 만들지 못하지만, 기둥과 보에 의존한 동아시아 건축, 조망권을 확보한 중국 탑과 달리 상징으로 존재한 한국과 일본 탑, 3차원 곡선 지붕, 부드러운 처마를 고집하느라 변화에 뒤처진 조선, 임금 침전 위의 용마루 없는 지붕 등 건축의 변화 과정을 세세하게 다룬다.



세 나라의 건축이 시대에 따라 변화되어 가는 과정을 살펴보면, 한국의 건축은 단독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상호교류를 통해 이루어낸 동아시아 건축의 성취”다. 모든 문화가 그러하듯 건축도 돌고 돌아서 한국 환경에 맞게 발전하였다. 의자는 불교와 간다라 지역 문화를 혼합한 인도 불교가 중국에 들어오면 시작된 생활 문화다. 3세기경 의자에 앉은 부처 모습이 전파되면서 의자는 고구려, 백제, 신라를 거쳐 일본까지 전해졌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고사성어처럼, 전파된 문화는 토속 문화와 접촉하면서 취사선택되고, 자신만의 개성을 드러낸다. 중국문화를 그대로 반복하지 않고, 한반도의 지리적 조건을 살리는 배치와 형태를 고집했다. 일본 역시 “편백나무 일종인 히노키”를 가지고 지붕을 덮었다.



저자는 한국 건축은 명의 건국과 함께 시작된 3국의 쇄국 정책이 19세기 까지 이어지면서 답습만 하게 되었다고 본다. 외부 자극 없이, 유교의 기술 천시 문화는 창의성을 사라지게 했다. 근검절약을 강조하는 유교 이념은 왕실 외의 화려한 건축을 기피했고, 정교함과 기술적 완성도는 떨어졌다. 그럼에도 조선 건축의 미덕은 건물을 독자적으로 짓지 않고, 주변 환경과의 조화를 추구했다는 점이다. 건축은 외부 공간으로 확장되었다.



우리 건물에서 가장 중요한 장인의 노력이 깃 든 ‘누각’



특히 누각에 대한 설명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컵의 용도는 컵에 달려 있지 않다. 무엇으로 사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침실, 식당, 거실, 화장실이 분리된 서양 건축과 달리, 우리는 한 공간을 변형시켜 가며 침실로, 식당으로, 거실로, (때로는 화장실로까지) 사용한다. “소리를 통하여 듣는 것은 소리 없음에서 듣는 것만 같지 못하며, 형체를 통하여 즐기는 것은 형체 없음에서 즐기는 것만 같지 못하다(서경덕, 줄 없는 거문고에 새긴 글 中). 누각은 용법이 한정된 건축물이 아니었다.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무한의 용도를 만들어냈다. 마당이라고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축제의 장소이고, 모임의 장소이고, 사색의 장소이고, 자연과 조우로 이끄는 공간이다. 계절이 스치고 지나가며 방랑객의 발길을 이끌었을 것이다.



왜소해진 조선 건축에서 가장 의미심장한 곳이 누각이다. 자연과의 조화를 이루는 공간으로 마을의 가장 전망 좋은 곳에 누각이 자리 잡았다. 창덕궁의 주합루, 부석사의 안양루, 창녕 관룡사의 원음각 등은 우리의 심신을 맑게 하는 절경을 자랑한다. 규격화되고 정확하게 계산된 아폴론의 시선으로 잡히지 않는 공간, 누각에서는 넘치는 생명력을 품고 있는 디오니소스가 느껴진다. 천명의 사람에게 천 가지 모습을 보여준다.



온돌은 우리나라를 거쳐 일본으로 넘어갔으나, 온화한 기후 조건 때문에 곧 사라졌다. 습기를 잡는 것만으로 온돌을 구들을 유지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내 개인적인 견해로는 지진이 많은 일본에서는 돌을 얹는 견고한 건축은 어려웠을 법도 하다. 한국에서는 12세기가 되면 전면 온돌로 발전한다. 아궁이까지 온돌은 한국 일반 주택의 중요한 특징이 되었다. 온돌은 좌식 생활 중심의 생활 패턴을 만든다. 의자와 침대가 사라지고 좌선을 하게 된다. 겨울밤 한 장의 이불에 발을 넣고 앉아서 이야기꽃을 피우는 한국만의 문화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온돌 덕분이었다. 온돌에는 상하 신분 구분이 없는 한국의 보편 문화로 자리 잡았다.



한국 건축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은 문살과 창호다. 전북 부안 개암사를 특별히 사랑하는 것은 주변의 산세와 가까운 바다도 좋지만, 창살 때문이었다. 얼마 전 가보았더니 십년 전의 아름다운 길과 문창이 모두 바뀌어 있었다. 새로운 것이 마냥 좋은 것은 아니다. 과거의 그곳 문창살은 어떤 예술 작품보다 아름답고 소박했다. 절을 미학적으로 장식하는 방점이었다. 그 아름다운 문살을 덮고 있는 창호는 바깥 세계와 적절한 경계를 이루었다. 부담스럽지 않은 빛과 소리를 흡수했다. 건축학적 관점에서 보면 덜 실용적일지 몰라도, 나 어릴 적 가을이면 겨울을 위해 두텁게 붙이는 창호에 마른 꽃잎 끼워 넣던 운치가 생각난다.



건설신화를 써내려갔던 개발 부흥의 시대가 종착역에 다다른 지금, 우리는 다시 (폐쇄적인 유교 문화 속에서 건축이 쇠퇴했던) 조선 건축에서 영감을 얻어야 할지도 모른다. 저성장(또는 마이너스 성장) 시대에는 욕망의 사이즈를 줄이고, 공간의 경계를 없애 함께 살아가는 방법만큼 경제적인 것도 없다. 집도, 건물도 소유가 아니라, 공유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건축가 ‘정기용’ 선생님의 집에 대한 사유가 내 집에도 담기면 좋겠다. 공공건축물은 아닐지라도, 주변과 조화를 이루며 눈에 띄지 않고 모나지 않기를 바란다.



이 책에 남긴 아쉬움 하나.



평생 우리 건축을 연구한 저자의 해박한 지식과 우리 건축을 바로 보기 위한 노력에 존경을 표한다. 단 한. 중. 일. 건축의 비교를 통해서 상보적이고 독자적인 각 국가의 건축을 알 수 있었으나, 건축물과 연결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너무 없다. 각 나라마다 처한 역사적 상황과 지리적 여건에 따라서 많은 것이 달라졌다면, 그 과정 속에서 살아가는 다수의 삶은 어떠했는지를 역동적으로 엮어졌으면 좋았을 것이다. 삶이 배제된 건축 이야기가 건조하게 다가온다. 건축에 얽힌 사람들의 이야기가 희미하다. 또한 건축을 매개한 저자의 역사관, 동북아의 지정학적 관계, 또는 현재와 과거를 연결 지어 보려는 노력이 더해졌으면 좋았을 것이다. 과하게 객관적인 사실에 치중하다 보니, 건축을 바라보는 저자의 사유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건축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되, 그 건축에 대한 가치는 저자의 세계관에서 나올 것이다. 거시와 미시를 함께 엮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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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숲 2015-08-10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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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돌의 추억




초반 몇 페이지를 읽자마자 전문적 지식 없이도 쉬 읽을 수 있도록 쓰인 글이라는 걸 알 수가 있다. 특히 방바닥을 따뜻하게 하는 난방법을 읽을 땐 옛 기억이 새록새록 나기도 했다(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롭게 읽은 부분이다). 일본에서 살 적 멍청하게도 오른손을 다쳐 꿰맨 적이 있었는데, 소독과 붕대 교체를 위해 병원엘 가는 길이었다. 택시로 이동했던 첫날과 달리 지리를 몰라 헤매다가 점잖아 뵈는 노신사에게 대뜸 길을 물었고, 그는 흔쾌히 가는 길이라며 나와 함께 자박자박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자 밑도 끝도 없이 온돌 얘기를 꺼냈다. 초로의 신사는 일전에 다녀 온 한국 여행길을 떠올리면서 참 부럽다는 말을 내처 이었고 모퉁이 몇 개를 돌아 우리는 병원 앞에서 헤어졌다(일본에는 고타쓰라는 재미있는 물건이 있질 않느냐고 말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저 옛날 일어난 반란에 대비를 하지 못한 한반도 이주 세력의 패배와 습기 많은 기후를 떠올려보건대 일본에 구들이란 딱히 필요가 없을 것 같기도 하지만, 불을 넣지 않는 여름철 구들 내부에 습기가 차 벌레가 끓거나 벽이 쉽게 무너지는 결함이 있단다. 여름이면 자연스레 습기가 많아지는 게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으나 내가 잠시나마 겪었던 일본 날씨란 단순한 습기 이상의 것을 보여준다(!). 아침에 일어나면 온몸이 끈적끈적하고, 저녁 잠자리에 들기 직전이 아니면 샤워는 꿈도 못 꾸었다. 귀가해 씻는다 해도 그때부터 침대로 기어들어갈 때까지 다시 땀범벅으로 몸이 젖어버리기 때문. 재미있는 것은 온돌에 필수적으로 있어야 할 땔감의 공급이 당시 서민 계층에서도 활발히 이루어졌느냐 하는 거다. 온돌이 상류층에서 서민 계층까지 두루 보편적으로 이용되었다는 점은 한국 건축이 갖는 문화적 특질의 중요한 요소인데, 보통 상류 계층과 하류 계층은 문화적으로 이질적인 요소를 다분히 내포하고 있는 까닭이다(p.233). (책에선 연료의 공급에 관한 수수께끼는 완전히 풀지 못하고 있다. 다만 상류층과 서민의 살림집 규모나 격차는 차치하고라도 기본적 실내 바닥 구조에서 공통된 요소를 갖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상류와 하류 계층의 문화적 동질성이 계층 간 이질성을 지닌 타 문화권의 건축과 구분 지을 수 있는 특질이라는 것이다. 또한 온돌이란 장치가 난방이라는 측면에서 효과적인 수단임은 분명하나 연료 소모에 있어 산림 고갈의 위협이 될 수도 있다는 것 역시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렇듯 한 나라 안에서도 건축의 구조가 다 다른데 산 넘고 물을 건너면 또 얼마나 다른 양상을 보일까. 지붕에 사용하는 구조물만 보더라도 반원형에서 원형으로 정착되어간 기와, 용마루 양 끝을 장식하는 장식물 치미(鴟尾, 바다에 살며 비를 다스리는 '치'라는 동물의 꼬리를 형상화했단다), 널빤지 위에 흙 대신 회를 얇게 깐 뒤 빈약하게 보이는 외관을 위해 화려한 채색 기와를 덮는 지붕 변화(중국), 또 잦은 비로 지붕의 기울기를 상대적으로 높이거나 암키와와 수키와를 하나로 만들어 무게를 줄인 간이식 기와의 등장(일본)까지, 한중일 삼국의 건축은 그야말로 서로의 기술과 양식의 소통과 함께 저마다의 특질을 살려 같고 또 다르게 걸어왔음에 다름 아니다(간간이 나타나는 쇄국정책으로 각국 문화의 단절이 초래된 점을 떠올려보라). 산이 많거나 적고, 기온이 높거나 낮고, 지질학적으로 안정되거나 불안정한 측면 등이 아니더라도 한데 모인 세 나라의 건축 차이는 (때로는) 미시적이고 소소한 방식의 놀라움을 가져온다. 이제는 주변 환경과 다른 사물들과의 조화까지 고려해 올라가는 건축물의 양태로 보건대 몇십 년 뒤, 몇백 년 뒤의 한중일 건축이 과연 어떤 이야기를 지니게 될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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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잇 2015-07-24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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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한국건축 중국건축 일본건축 _ 한중일 건축 이야기




요즘 들어 가까운 일본이나 중국으로 해외여행을 다녀오는 사람들이 많다. 중국과 일본을 가면 자연스레 두 나라의 건축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분명 한옥과 비슷한 듯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 구체적으로 그 차이가 어디에 있는 건지 그 답을 알지 못한 채 다시 우리나라로 돌아오곤 했다.
우리에게 건축이란 무엇일까. 건축을 생각하면, 건물이 떠오른다. 그리고 저마다 자신에게 익숙한 건물들이 머리에 스칠 것이다. 그런데 그 건축물들 가운데 가장 잘 모르는 것이 있다면, 바로 우리나라 건축물이 아닐까. 우리나라 전통 건축물에 대해 잘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고궁, 사찰을 종종 다니며 종종 해설을 들었지만 좀처럼 우리나라 건축물에 대해 설명할 자신이 없다. 나만 이렇게 생각하는 건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 한옥은 어떤 것일까? 우리나라 한옥은 동아시아 다른 국가들과 어떻게 다를까?



내가 『한국건축 중국건축 일본건축』을 읽은 이유는 호기심 때문이었다. 한옥 건축만의 특징을 알고 싶었다. 건축 분야에 대한 관심은 원래 많은 편이었고, 타전공 수업인 '서양건축사'와 '실내건축디자인사'등을 듣기도 했었다. 하지만 우리나라 건축 혹은 동양 건축을 제대로 다룬 수업은 듣지 못했다. 우리나라 건물은 어떤 과정을 통해서 만들어져 왔는지 그 맥락이 궁금했다. 단순히 하나의 건축물에 대한 해설이 아니라, "한옥의 흐름"을 이해하고 싶었다. 이따금 해외 여행을 갈 때면, 이 호기심은 높아졌다가, 귀국과 함께 사그라들었다.








꽤 오랫동안 묵어 있던 호기심에 불을 붙인 건, <알쓸신잡2>였다.

















<알쓸신잡 2>의 유현준 교수는 첫 여행지 안동에서 우리나라 한옥 건축의 지붕에 대해 설명한 부분을 인상 깊게 보았다. 한옥 지붕의 부드러운 곡선이 알고 보면 우리나라 기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설명과 함께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아름다움'이 우리의 생활과 닿아 있다는 이야기를 확인하며, 우리나라 건축의 맥락을 확인하고 싶었다. 이렇게 우리나라 한옥에 담긴 이야기를 잘 정리된 책을 찾다가 알게 된 책이 바로 『한국건축 중국건축 일본건축』이었다.




『한국건축 중국건축 일본건축』은 우리나라, 중국, 일본의 건축 특징을 정리한 책이다. 보통 건축에 대해 다룬 책은 건축물 하나하나에 집중한다. 혹은 건축물이 밀집되어 있는 공간에 주목한다. 『한국건축 중국건축 일본건축』은 기존의 건축 관련 책과 사뭇 달랐다. 건축물이란 콘텐츠보다 건축물들이 계속 바뀌어온 컨텍스트에 집중한 책이기 때문이다. 책 제목이 『한국건축 중국건축 일본건축』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만약 왕궁, 사찰, 고택에 집중했다면 '건축'이 아니라, '건축물'이라고 했을 것이다. 건축이란 두산백과(네이버 검색)에 따르면 "사람이나 물품 ·기계설비 등을 수용하기 위한 구축물의 총칭으로, 용도라는 목적성에 적합하여야 하며, 적절한 재료를 가장 합리적인 형식을 취하여 안전하게 이룩되어야 하는데, 그 요소는, 예술적 감흥을 목표로 하는 공간형태, 진실하고도 견실한 구조기술, 편리성과 유용성으로서의 기능이다."라고 한다. 건축물은 건축의 일부이며 건축을 이루는 것들은 우리의 생각보다 더욱 포괄적이라는 걸 확인할 수 있다. 『한국건축 중국건축 일본건축』은 단순히 한국 건축, 중국 건축, 일본 건축을 나열하여 비교하는 책이 아니라 국가마다 비슷한 듯 다른 건축물이 만들어졌던 이유에 주목한다. 그리고 그 이유를 건축 자재, 기후, 역사적 배경, 각국의 특징을 함께 정리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우리나라, 중국, 일본 건축물을 비교한 책을 기대한 사람이라면 실망할 수 있다. 하지만 건축에 대한 책을 조금 들여다본 사람은 건축의 컨텍스트를 다룬 책만이 풀어낼 이야기가 얼마나 흥미로울지 알 것이다.

『한국건축 중국건축 일본건축』은 건축을 다룬 책이며 동시에 동아시아 역사를 다룬 책이라 할 수 있다. 만약 동아시아 역사를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읽는다면 조금 더 쉽게 책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동아시아 사를 잘 모른다해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책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기초적인 역사 지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동아시아 건축의 시작은 대부분 "중국"에서 시작되었다. 중국에서 만들어진 축조 기술이 한반도를 거쳐 섬 나라 일본에 전해지는 과정을 밟는다. 그리고 각 지역에 적합한 방식으로 건축물을 만들어나가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유현준 교수가 방송을 통해 설명한 지붕의 곡선미라고 할 수 있다.




건축의 경우에도 중국식의 대칭적인 배치 원칙을 따르지 않고 한반도의 지리적 조건을 살려 자연에 어울리는 건물의 배치나 형태를 취하려고 노력하였다. 이런 자세는 건축의 세부에 까지 확대되어 고려의 건축은 중국과는 일정한 차이를 지닌, 개성이 뚜렷한 형태를 갖추었다.







이처럼 중국의 건축 방법을 들여왔지만, 이를 완벽하게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것으로 변형하는 과정에서 각 국가는 개성있는 건축물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이 과정이 가능했던 이유에 대해 저자는 "고대 동아시아 문명의 특징은 활발한 문화 교류, 그중에도 사람들이 직접 왕래하는 인적 교류를 통한 문화 교류"를 꼽았다. 한국과 중국, 일본은 10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활발한 교역을 하였다. 문화 교류를 통해 우수한 기술이 전해지고, 발전하였다. 여기서 중국의 왕조가 어떤 입장을 취했느냐에 따라 한반도의 건축 문화는 영향을 크게 받았다. 명나라와 청나라가 다른 나라와 문화교류에 소극적인 입장을 취하자, 조선 역시 다른 나라와의 문화 교류에 대해 폐쇄적인 입장을 취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유교의 문화적 영향력 하에 있었기 때문에 화려하거나 웅장한 건축 기술이 발전하지 못했다. 조선 시대에서 실용적 기술들이 높이 평가를 받지 못했는데, 건축도 다르지 않았다. 그 결과 조선시대 건축은 이전 시대에 이루어온 건축 축조 기술을 보다 아름답고 완결성 있는 단계로 격상하였으나 500년간 이 단계에 멈추었다는 점은 아쉬운 점이다.












동아시아에 목조 건축이 발전한 이유



서양 건축물은 돌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대부분 성은 거대한 암석을 쪼개어 쌓아 올린 투박한 형상을 가지고 있거나, 정교하게 조각한 석조 건축물들이 눈에 띈다. 나는 서양의 목조 건축물이 좀처럼 생각나지 않는다. 반면에 동양 건축물은 석조 건축물도 있지만, 나무가 핵심 소재인 목조 건축물이 많다. 왜 동양 건축물은 목조로 만들어진 것이 많을까? 왜 돌로만 만든 건축물은 많지 않을까?







저자는 비교적 짧은 건축 시간, 부드러운 나무의 속성이 보다 다양한 건축물을 만들 수 있게 한 점, 신전과 같은 건물을 필요로 하지 않은 문화적 속성 등을 꼽았으며, 동양 건축의 시작을 열었던 중국인들의 건축에 대한 세계관이 깊이 반영된 결과였다. "1,000년 지속하는 집을 지을 수 있다. 그러나 100년 후에 누가 살게 될지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조화를 이룬 한정된 집에, 이를 감싸는 즐겁고 안락한 장소를 만들면 충분하다."라는 글에서 알 수 있듯이, 동양에서 보편적인 건축 개념은 오늘날 건축 개념과 달랐다. (이 부분을 읽으며, 그래서 우리나라는 30년만에, 50년만에 재건축을 하는 아파트를 원하는 것인가라는 생각을 아주 잠깐 했다.)




동양에선 대부분 단층 건물을 지었지만, 현대적 건축 재료인 철근과 콘크리트가 나오기 전까지 돌보다는 나무가 고층의 건물을 짓기에 부족함이 없었으며, 거대한 규모의 건축물도 충분이 만들 수 있었음을 한중일 건축물을 통해 짚어준다. 아쉽게 그 터만 남아 있지만, 황룡사 9층 목탑의 위용은 경주 타워로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동양은 목조 건축을 이용해 시대의 필요성에 맞게, 시대의 미적 기준에 맞게 다양한 형태의 건축을 시도했다. 아쉬운 점은 1,000년을 지속하는 돌을 이용한 서양의 건축물과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은 동양의 수많은 목조건축물을 충분히 확인할 수 없다는 점이 아쉽다.







목조 건축이 주를 이루었던 동양 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건 지붕이었다. 서양 건축물만의 독특한 입면만큼이나, 동양 건축에서 지붕의 곡선은 굉장히 상징적이다. 한중일 지붕은 비슷해보이는 것 같지만 조금씩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다. 그중에 일본의 지붕 구조가 독특하다. 일본은 온난한 기후와 잦은 지진으로 인해 중국과 우리나라와 다른 지붕 구조를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건축은 횡방향에서 기둥을 붙잡아주는 대신에 상부의 무거운 지붕이 내려 누르는 힘을 가지고 기둥의 안정화를 꾀했다. 따라서 지붕을 가볍게 하면 오히려 위에서 눌러주는 힘이 적어져서 구조적으로 불안정해질 우려를 느꼈을 수도 있다." 중국과 우리나라는 지붕에 많은 양의 흙을 올리고, 암기와와 수기와를 이용하는 반면에 일본은 이 두 가지 기와를 합쳐 지붕에 자신만의 기와를 얹었다. 처음에는 일본 건축의 주요 특징으로 시작되었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기둥을 일직선상에 나란히 세우지 않고 가운데 쪽을 안쪽으로 살짝 휘어지게 하는 것은 철근 콘크리트로 집을 짓는 현대건축에서는 상식적으로 도저히 생각하기 어려운 것이지만, 과거의 목조건축 세계에서는 오히려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 원인은 안쪽으로 휘어진 지붕 처마의 곡선과 건물의 벽면이 서로 자연스러운 조화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한 데 있다. 그만큼 과거의 건물에서 지붕의 곡선은 평면 자체를 변화시킬 정도로 큰 비중을 차지했다.







특히 동아시아 3국 중에 우리나라 건축물에서 지붕에 부여하는 의미 정도가 남달랐다. 그리고 가장 아름다운 지붕의 곡선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아름다운 지붕 곡선을 가지게 된 과정은 마냥 아름답지 않다. 우리나라의 지붕이 아름다운 이유는 고려시대부터 조선에 이르기까지 같은 형태의 지붕을 고집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우리나라 건축은 고려시대나 조선 말이나 지붕 구조에서 혁신적인 변화는 나타나지 않았다고 해도 좋을 듯하다."라고 말한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다른 형태를 시도하거나 혁신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조선시대의 문화 자체가 다양한 건축 기법을 시도할 만큼 대규모 건축물을 짓는 일이 적었고, 그런 일을 시도하는 것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반면에 같은 시기의 일본은 전국시대가 막을 내리고 막부 시대가 들어섬에 따라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공고화하기 위해 화려한 성을 축조하였고, 이 시기에 일본 건축은 꽃을 피웠다. 오사카성의 화려함에서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한국 건축의 처마 곡선은 확실히 이웃한 나라들의 처마보다 멋이 있다." 우리나라 건축물이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중국 지붕이나, 일본 지붕에는 없는 단아하고 기품 있는 멋이 살아있다.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 아름다움을 높이 평가할 줄 알았다. 저자는 그 정도가 지나쳤다고 했지만, 그 지나침 덕분에 아름다운 처마 곡선을 볼 수 있으니 마냥 나쁘게 볼 수는 없다. "우리나라에서 처마 곡선에 큰 의미를 부여해왔다는 사실은 일반 살림집까지 지붕 처마에 곡선을 살렸다는 점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궁궐이나 종교 시설이라면 모를까 살림집 지붕까지 곡선을 살린다는 것은 정체성으로 보아서 좀 지나쳤다고 생각된다." 실제로 창덕궁의 아름다운 처마 곡선과 같은 결을 가진 건축물을 북촌에서 확인할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북촌의 건축물들은 1900년대 초반에 지어졌는데도 창덕궁처럼 아름다운 처마 곡선을 가지고 있다. 덕분에 우리나라 건축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미에 대한 기준은 유현준 교수가 방송에서 말했듯이 과학적인 영향을 받아 형성되었을 수 있지만, 그 아름다움의 기준을 당대 사회에서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후 세대가 어떻게 이해했는지에 따라 건축 문화가 형성될 수 있다. "치마 곡선은 각 지역의 풍토나 강우량 같은 자연 요소에도 영향을 받지만 건물의 용도나 건축주의 사회적 신분에 따라서도 많은 차이를 나타낸다."라는 저자의 말을 보면, 건축은 과학적 요소와 함께 사회적 요소 그리고 인문학적 요소가 결합된 융합 학문이란 생각이 강하게 든다.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지붕을 약 500년의 시간을 들여 완성할 필요가 있었는지, 그 가치에 대한 평가는 사람마다 다르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저자는 마냥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않는다. "세상일은 역시 얻은 것이 있으면 잃는 것이 있는 법이어서 이런 멋진 처마를 유지하는 데 적지 않은 수고가 따랐다."라는 저자의 말처럼 우리는 아름다운 지붕을 얻는 대신 더 많은 것을 500년간 잃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건축에 있어서 뜻 깊은 족적을 남긴 왕이라고 하면, 임진왜란 이후 궁을 다시금 지었던 광해군이나, 수원화성을 축조한 정조외에 잘 떠오르지 않는다. "건축이란 것이 시대 흐름에 발맞추어 끊임없이 변화해나가는 것인데 그 부분에서 뒤처진 것"은 아쉽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 석조 건축물 살펴보기



동양 건축의 대표적인 특징은 목조 건축이지만, 석조 건축 역시 함께 발달했다. 사람이 주거하는 공간을 만든 건 아니지만, 생활 공간 곳곳에 석조 건축물을 세웠다. 그 중에서 화강암을 이용한 건축물이 많이 있다. 하지만 화강암으로 만들었지만, 돌의 투박함을 그대로 표현하기 보다 석조 건축물에서 찾을 수 있을 정도의 섬세하게 조각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석조 건축 흔적은 우리의 선조들이 나무를 다루는 능력 만큼, 돌을 다루는 능력도 대단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서양에서 자주 사용했던 대리석과 달리, 단단한 화강암은 다루기 힘들었는데도 말이다. 하지만, 화강암은 어디까지나 부재료로 머물렀고, 주재료는 나무였다.
화강암을 이용한 건축물 가운데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박석'이었다.







박석은 궁궐 마당을 덮는 일종의 보도 블록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돌을 다루는 능력으로 볼 때, 반듯반듯하게 동일한 모양으로 맨질맨질한 형태로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종묘의 박석을 보면 굉장히 투박한 모습을 하고 있다. 그 이유에 대해 저자는 '화강암'이 가진 속성을 들어 설명했다. 화강암은 성분상 빛을 반사하는 속성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동일한 형태로, 맨질맨질하게 다듬으면 지나치게 눈 부실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다소 투박한 형태로 만들었다. 하지만 궁에 가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이 투박한 돌판에서도 굉장히 눈부시다. 지금이야 기술이 좋아져서 화강암이라고 할지라도, 사람들이 눈부심을 강하게 체감하지 않도록 다듬는 기술이 발전했다. 가령 표면을 거칠게 하거나, 오히려 돌의 태도를 낮게 설정하는 방법을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과거에는 그럴 수 없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경복궁과 창덕궁을 비롯한 궁의 정전이나, 종묘에서 볼 수 있는 박석이 더 아름답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단지 눈에 보이는 건축물로 돌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과시했던 건 아니다. 이미 오랜시간부터 한반도의 돌 사랑은 남달랐다. 그 기원을 고인돌에서부터 찾는 저자의 혜안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해외에 나가면 그 고마움을 한 가득 느끼는 '온돌'을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백제를 통해 온돌 문화가 일본에 전해졌지만 발전하지 않았던 이유는 전해진 지역의 기후와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홋카이도 지역에 전해졌다면 어땠을지 궁금해진다. "전통적으로 온돌방의 실내는 바닥이고 벽이고 천장이고 전체를 종이로 싸바르는 것이 원칙이었다. 바닥은 두터운 장판지를 깔고 벽과 헌장은 흰 도배지를 바르는데 창문틀이나 기둥도 모두 종이로 감싸서 실내에서는 종이 외에는 다른 것이 전혀 보이지 않도록 했다. 반면에 마루 쪽은 원재료를 그대로 노출시키는 것이 원칙이었다." 그리고 구들과 온돌방의 실내를 감싸는 형태와 대청마루를 그대로 노출시키는 원칙을 고수한 이유가 궁금해졌다. 그리고 온돌이 보편화됨에 따라 부엌의 위치, 문의 높이가 달라진 점도 흥미로웠다. 저자는 뛰어난 온돌 문화도 좋지만, 이로 인해 "실내 전면에 온돌이 보급되면서 방바닥에 앉아서 생활하는 소위 좌식 생활이 정착되었다. 즉, 실내에 의자나 침대가 들어설 여지가 사라진 것이다. 이것도 전면온돌 도입이 가져다준 커다란 변화 "가 생긴 점도 함께 알려준다. 우리나라 건축의 우수성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문화의 융성이 불러온 또 다른 면을 함께 비교한 점이 흥미로웠다.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멋이 담긴 가구들도 있지만, 우리나라는 가구가 발전한 편은 아니었고 그 이유 중에 하나가 온돌로 보편화된 좌식 생활에 있다는 점도 함께 배울 수 있었다.












중국과 일본과 비교하며 찾은 우리나라 건축美



비교는 문화를 깊이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다. 중국 건축과 일본 건축과 공통점과 차이점을 함께 다루어 우리 나라의 문화만의 특성을 살린 저자의 통찰은 결국 우리나라 건축의 아름다움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 물론 우리나라 건축의 아름다움만 배운 건 아니었다. 우리나라가 지금의 문화를 일구며 놓친 점이 무엇인지 확인하며 동양 건축안에 우리나라 건축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 건축의 공포는 반드시 이런 원칙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하면서도 불규칙한 세부들이 조합을 이루는 경우가 흔하다. 또 동일한 형태의 공포를 다른 건물에서 반복하는 경우도 거의 볼 수 없다. 화반의 경우에는 기능이나 형태가 단순하기 때문에 오히려 그 변형이나 개성을 드러낸 창작이 훨씬 자유로운 속성을 지니고 있다." 중국과 일본에선 두공이라고 부르는 공포와 화반은 지붕의 곡선미와 다른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동양 건축의 대표 요소다. 단지 국가마다 다른 양상을 보일 뿐만 아니라 건물마다, 이 건물을 만든이의 개성을 담아낸 흔적이다. 내가 우리나라에서 알고 있는 건물 설계자는 경주 불국사를 세운 김대성이나 도산 서원을 기획안 이황이 전부다. 건축가들의 역량을 충분히 인정하지 않았던 문화로 인해 수많은 건축가들은 건물주 뒤에 자신의 이름을 감추었다. 앞으로 화반을 보며 이름을 남기지 않았지만 아름다운 건물로 우리에게 이야기를 건네는 과거 건축가들의 마음을 헤아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16세기 인문학자 화담 서경석이 쓴 글 중에 <줄 없는 거문고에 새긴 글>이 있다. 글의 요체는 "소리를 통하여 듣는 것은 소리 없음에서 듣는 것만 같지 못하며, 형체를 통하여 즐기는 것은 형체없음에서 즐기는 것만 같지 못하다"에 있다. 줄을 튕겨 듣는 거문고 소리보다 줄 없는 거문고에서 오히려 그 미묘함을 체득하고 형체를 보는 것보다 형체가 없는 것을 즐기므로 오묘함을 얻는 다는 말이다. 같은 맥락에서 눈에 보이는 목적이나 용도에 한정한 건물이 아니고 용도가 정해지지 않으면서 그 용도를 무한히 만들어내는 데 누각의 존재 이유가 있는 듯하다."







『한국건축 중국건축 일본건축』은 이따금씩 놀러가는 궁궐을 더 자랑스럽게 아름답게 감상할 수 있는 지적 토대를 만드는 시간이었다. 다시 한번 고궁투어를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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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RY 2018-05-23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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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한국건축 중국건축 일본건축


요즘 우리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이 많아 졌지요?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고 나니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는 의미지요.
더불어 우리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무척 높아지고 있습니다.
매우 고무적인 트렌드입니다. 나도 사실 이러한 분위기 때문이었는지 전통건축에 대한 공부를 몇년째 혼자 하고 있습니다.
이제 어느 절이나 고택에 가게되면 건물 배치나 건축부재, 기법 등에 대해 제법 아는체 하는 정도가 되었습니다.
한동안 주변 사람들에게 우리 전통건축의 우수성에 대해 나름의 객관적인 논리를 들이대며 은근히 지식자랑한 적도 많았습니다.
헌데, 근자에 와서 우리 문화나 전통 건축에 대한 말을 조금 조심하게 되었습니다.
과연 ˝우리 것이 최고인가˝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지요. 자칫 ˝문화국수주의˝에 젖지나 않았는지 되돌아 보는 여유가 생겼나 봅니다.
유명한 문화인류학자 말이 기억납니다.
˝문화란 차이는 있을지언정 우열은 없다˝
내것이 가치가 있는 만큼 남의 것도 가치가 있다는 뜻이겠지요.
그만큼 특정 문화의 형성배경에는 저마다의 사연과 곡절이 있기 때문에 어느 것이 좋고 나쁜지를 판단할 대상이 아니라는 의미가 아닐까요?

또 문화란 독자적으로 불쑥 나타난 것이 아니라 이웃한 민족이나 국가와 끝없는 교류와 토착화 과정을 통해 지금의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었을 테지요.

전통건축에 관한 서적들을 보면 대부분 억지춘향식의 과학적 근거를 들이대며 우리 건축의 우수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지금 내용이 맞다 틀리다를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이제 우리 건축이 왜, 어떤 사연으로 지금의 모습을 보이는지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해 볼때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평생을 한국 전통건축의 역사연구에 천착하신 교수님의 책을 소개합니다.
시대별 구분이나 비교보다는 당시의 역사적, 인문적 배경이나 교류와 정착의 결과로써 우리 건축을 바라보시는 분입니다.

이번 책도 그 산물중의 하나로 우리 건축에 대한 무조건적 찬양을 벗어나 담담한 마음으로 써내려간 책입니다.
우리 건축의 모습을 중국과 일본과의 교류와 토착화 과정을 통해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문용어가 많이 나와 기초 지식이 없으면 내용이 조금 무거울 수 있습니다.

사족하나 붙입니다. 아무래도 우리 건축공부를 평생하신 분이다 보니 ˝팔이 안으로 굽는˝ 책 전체의 분위기는 어쩔 수 없었나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접근방식이나 사고의 과정은 배워두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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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tysoon 2015-12-28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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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희 일비


참신한 책. 한중일 삼국의 전톨건축을 같이 바라본 책은 이 것이 처음이 아닐까 한다. 개인적인 아쉬움이라면 겨냥한 독자층을 일반인으로 잡은 듯하여 좀 더 심도있는 펀치력(일본식 표현)이 아쉬운 것이다. 욕심임을 인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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