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7-21

손민석 -아시아 사회를 분석할 국가론의 부재 - 사회민주주의적 자유가 무엇인지



손민석 - 말도 안되는 짓을 하고 있다.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한 개인이 현대사라는 장구한 범위의 통사를 기존의...







손민석
Yesterday at 02:11 ·



말도 안되는 짓을 하고 있다.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한 개인이 현대사라는 장구한 범위의 통사를 기존의 연구문헌을 검토함으로써 틀을 잡는다는 건 정말 말도 안되는 짓이다. 선진사회의 학술세계에서 이런 일을 쉽사리 하는 이가 몇이나 되나. 어떠한 대가도 쉽게 할 수 없는 일이다. 이런 건 무조건 집단 연구로 해야 하고, 기존에 이미 통사 서술체계가 학술세계 내에서 잡혀 있는 사회에서나 개인이 그것에 의거해 통사를 서술할 수 있다. 나 자신의 이해를 위해서 하고 있다고 하지만 말도 안되는 짓이다.

그렇지만 정말 보고 있으면 답답할 정도로 역사관에 혼란이 많다. 

기본적으로 좌익들은 사회구성체론과 생산양식 간의 차이조차도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 혼동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요즘에는 믿지도 않지만 애당초 자본주의 맹아론에 입각한 역사서술 자체가 사회구성체론에 비추어 볼 때 한참이나 뒤떨어지는 것이었다. 사회구성체는 하부구조에 파생되어 상부구조까지 그 틀을 갖추었을 때 비로소 하나의 이론이 될 수 있는 것인데, 자본주의 맹아론은 그 맹아가 상부구조인 국가와 어떠한 연관이 있는지 어떠한 설명도 해내고 있지 못하다.

맹아론에서 벗어난 대부분의 진보적인 역사학자들은 자본주의라는 하부구조를 도외시하고 국민국가를 과장하여 마치 근대사회가 근대국가에 의해 창출되고 운영되는 것처럼 연구를 하고 있다. 그들의 연구에는 인간의 실생활의 영역, 가장 자율적이고 또 자율적이어야만 하는 경제생활의 영역이 누락되어 있으며 그러한 인간의 기초적인 영역에 기반한 사회구성체 전체를 총체적으로 파악하려는 시도 자체 또한 누락되어 있다. 이들에게 근대란 그저 식민성을 갖고 있는 부정적인 것이지만 정작 그 식민지성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분석이나 이론화가 안되어 있다. 내가 과문해서 그런지 모르겠으나..

그런 맹아론을 비판하며 나타난 진보적인 성향의 미야지마 히로시와 보수적인 성향의 이영훈 등이 내세운 소농사회론도 비록 소농 - 전제국가라는 하부구조와 상부구조의 결합에 의거하고 있지만 엄밀하게 말해 사회구성체론에까지는 이르고 있지 못하다. 경제사 연구에서 국가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강조하는 이영훈조차도 전제국가의 이론화는 거의 성취해내고 있지 못하다.

이영훈의 연구는 북조선의 학자 김석형에 의해 전제국가에 의해 자연가족들이 호戶의 형태로 편제된다는 것이 1941년 주장된 이후, 그러한 경우에 그 자연가족들 간의 관계는 어떠한 것인지, 그 가족들 중 어떤 가족이 국가의 역을 부담하는가 하는 문제를 탐구해왔을 뿐이다. 그는 이 문제에서 주호 - 협호라는 이론을 내세우며 사실상 주호와 협호라는 가족들 간의 관계가 국가의 의해 부여된 역에 대항하는 일종의 사회의 자율적인 활동, 어떤 가족이 다른 가족에게 투탁하는 형태로 의존하거나 보호관계를 설정하는 그러한 활동이라고 주장했다.

나는 사실 이영훈의 이 입론에 크게 흥미를 느끼고 동의하는 바도 많지만, 이 지점에서 다시 말해서 사회의 자율적인 대응이라는 지점에서 크게 동의하지 않는다. 의문이 많다. 현재의 이영훈이 무어라 말하는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조선왕조의 역사적 발전의 단계가 초기 농노제 수준에 지나지 않으며,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에 여전히 아시아적 전제국가에 대한 자율성을 사회가 영위할 수 없었다고 본다. 내가 보기에는 군현의 관리들이 일방적으로 편제한 측면이 크다고 생각한다. 사회가 국가에 대해 자율성을 얻는 것은 아시아적 사회에서는 후기 농노제의 쇠퇴, 즉 초기 자본주의에 도달했을 때에나 가능하다. 첨언이지만 이런 강제적인 부여가 역설적이게도 소농의 자립화를 추동하였다고 생각한다. 착취가 역설적이게도 해방을 낳는 법이다.

아무튼 상황이 이렇다면 당연하게도 국가는 어떠한 원리에 입각하여, 어떠한 경제적 기반에 따라 그러한 행위를 했는지 깊이 연구해야 하는데 아직 그러한 연구들이 실증적으로 제대로 행해지지 못했고 이론화는 더더군다나 행해지지 않았다. 실상 한국의 역사학자들은 ‘가족’이라는 주제에 크게 관심이 없었으며 그것을 규정하는 국가에 대해서도 민중사적 관점에서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최근에 이르러서야 역사인구학과 재정사라는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지만 두 학문 모두 전제국가를 어떻게 이론화할 것인가에 대해 제대로 된 답변을 내주고 있지 못한 게 현실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국가론의 부재, 특히나 아시아 사회를 분석할 국가론의 부재는 사회구성체론의 차원에서 현실을 제대로 분석할 어떠한 방향성조차 제시해주지 못하게 만든다. 자본제 사회는 어떠한 사회인가? 자본제 사회란 무엇인가?

좌익 지식인들은 자본제 “사회”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을 혼동하여 자본=노동관계가 성립하면 자본제 사회가 아닌가 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신자유주의론 또한 국가론을 내세우지만 그 국가는 결국 하부구조인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 종속된 것이기에 사회구성체론이라 하기 어렵다. 독자적인 국가론이 여기에서는 배제되어 있는 것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를 보다 면밀하게 연구하여 틀을 만들었어야 했는데 1989년 이후 자칭 사회주의자라는 이들은 자신들의 오류를 낳은 근원이 무엇인지 연구하지 않았다. 나같으면 되려 더 열심히 마르크스와 레닌의 저작을 읽었을 것이다. 아무튼 그 결과는 무엇인가.

기껏해봐야 사회민주주의를 운운하며 평등을 내세우는 것밖에 없다. 예컨대 한홍구와 주대환은 제헌헌법이 평등을 강조한다며 한국의 뿌리로 평가해야 한다는 주장을 한다. 나도 이런 주장에 혹한 적이 있지만, 사실 그 뒤의 50년대를 공부해보면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애당초 제헌헌법의 입안자들 자체가 제헌헌법의 ‘과도기성’을 인정하고 있었으며, 결정적으로 미국은 이 제헌헌법이 초기부터 민족사회주의 성격이 강하다 생각하여 개정할 것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었다. 그러한 미국의 요구에 따라 이승만이 개헌을 통해 시장경제 체제를 건설했을 때 비로소 헌법의 과도기적 성격은 탈각되고 한국적 헌법체제가 성립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이 와중에도 이승만은 참으로 꼼꼼하게 자신의 권력 강화를 미국으로부터 얻어냈다. 앞으로 이씨 성을 지닌 사람은 헌법으로라도 대통령이 못되게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둘다 어쩌면 그렇게 사익추구만 하고 꼼꼼하신지..

다시 말해서 건국헌법은 “건국과정” 속에서 과도기적 성격을 갖는 것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한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미국의 개입에 의해 민족사회주의적인, 계획경제적인 성향으로부터 탈각하여 시장경제의 성격을 지니게 되었을 때부터 시작한다. 건국 활동에서 두드러진 활동을 했던 이승만은 그렇게 건국 활동이 마무리되자 얼마지 않아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하고 박정희가 그 체제를 크게 발전시킨다.

그런데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주대환과 한홍구 류의 건국헌법 옹호는 정당화될 수 있겠나. 
그것이 한국의 사회구성체, 자본주의적 사회구성체로의 이행에서 과도기적 의미밖에 지니지 못한다는 사실 앞에 대체 무슨 할 말이 있다는 건가. 이런 부분들을 이제는 버려야 한다. 평등은 추구할만한 가치가 될 수 없다. 헤겔이 200년도 더 전에 <법철학>에서 말했듯이 근대사회는 자유에 기반해서만, 오로지 자유만이 추구할만한 가치로 존재할 수 있는 사회이다. 헤겔이 말했듯이 자유는 “신적神的 개념”이다.

결국 그러면 사회민주주의적 자유가 무엇인지, 마르크스주의를 추구하면 마르크스적 자유가 무엇인지를 심도 깊게 논의하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러한 자유 개념에 입각해 역사관을 구성할 필요가 있다. 나는 사회민주주의적 자유란 결국 마르크스로 회귀한다고 보기에 마르크스를 깊이, 정말 깊이 연구해야 한다고 본다. 자유의 사상가로서의 마르크스를 내세우지 못한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 내가 공부한 바로는 마르크스에게 자유는 결국 자신의 실생활을 자신의 의지에 따라 얼마나 조직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내가 내 삶의 조건들을 재생산하는 과정에 얼마나 의식적으로 개입하고 경영할 수 있는가가 마르크스가 생각했던 자유인 것이다.

마르크스는 이런 자유론에 입각해 자본주의 사회를 맹렬하게 비판하였다. 그를 계승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어떤 사회에 살고 있는지, 그것이 전근대의 한국의 역사적 특질과 어떻게 결합되었는지를 말해야 한다. 사회구성체 차원에서 설명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게 안되는 걸 너무 많이 본다. 어처구니 없는 관점들이 너무 많다. 나는 앞으로의 10~20년이 한국사회에 굉장히 중요한 기점이라고 본다. 마음이 급하다. 그래서 해서는 안될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다들 비웃고 무시하겠지만 어쩌겠나 내가 이리 생겨먹은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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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밤에 공부하다가 답답해서 이렇게 혼자 주절주절 글을 쓴다. 한일관계도 파탄나고.. 정치도 앞이 안 보이고.. 보면 지식인들도 답이 없는 것 같고.. 진보좌파도 별로 되도 않는 소리들 하고 있고.. 정치를 한다는 사람들이나 보좌관이나 정당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만나서 참 열심히 대화를 해봐도 뭐가 나오지가 않는다. 식견이 있는 이들도 미안한 말이지만 별로 없다. 정치적 이해관계만 넘친다. 어디서 답을 찾을 것인가.. 야밤에 존나 답답해서 한 마디 하려고 한 게 엄청 길어졌다..

결론은.. 나는 잘못이 없다.. 내가 이 말도 안되는 작업을 하는 건 다 사회탓이야 흑흑.. 말도 안되는 짓을 하고 있다 지금 정말. 말도 안돼. 정말. 나까짓게 뭐라고 이걸 하는거야 진짜. 왜 이런 걸 하라고 시키는거야 대체. 미친 인간들 주변인간들이 다 미쳐서 얘기를 들으면 말려야 하는데 더 하라고만 한다. 미친 인간들. 인간이 밉다. ..자야지.. 새벽에 산가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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