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7-03

손민석 - 이완범 선생도 그렇고 박명림 선생도 그렇고 브루스 커밍스의 내전설에 대한 반론으로 이런 논리의 국제전론을...

(9

) 손민석 - 이완범 선생도 그렇고 박명림 선생도 그렇고 브루스 커밍스의 내전설에 대한 반론으로 이런 논리의 국제전론을...







손민석
1 hr ·



이완범 선생도 그렇고 박명림 선생도 그렇고 브루스 커밍스의 내전설에 대한 반론으로 이런 논리의 국제전론을 주장하시는 분들이 많다. 사실 이렇게 되면 김영호 선생처럼 한국전쟁이 국제공산주의의 팽창적 음모에서 나온 기획이라며 공산주의 비판으로 나아갈 경우가 많고 실제로도 많은 경우가 그렇다. 물론 박명림 선생처럼 한반도에서의 균형과 평화에 대한 고민으로 나아갈 수도 있지만, 사실 인간이라는 게 그렇게 복잡하지가 않아서 대부분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기 바쁘고 그것은 대부분 정치적 상황과 연결되기 마련이다.

이완범 선생의 논리는 결국 한국전쟁이 내전처럼 보이지만, 그 배경에는 미소에 의한 분할 점령이라는 가장 근본적인 조건이 국제적으로 형성되었으며 스탈린의 승인이 결정적으로 1950년 6월 25일의 전쟁 발발을 결정지었고, 마지막으로 전쟁의 전개 과정에서 중국, 소련, 미국 등의 외부 세력이 개입해 국제전으로서의 성격이 강화되었기에 국제전적 성격이 강한 전쟁이라는 것이다. 물론 그는 동시에 내인으로서의 김일성의 강력한 개전 의지, 좌우 세력 간의 대립을 들고 있지만 어찌됐든 국제전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다.

어느정도는 동의가 되지만 전체적으로는 크게 동의되지 않는다. 한국과 같이 사회통합의 기제로 국가권력에 의한 중앙으로의 강력한 통합의지가 크게 작용하는 사회에서 한국전쟁이라는 대규모 전쟁의 발발에 있어 외부적 요인의 규정성을 보다 크게 평가할 수 있을 것인가. 되려 내부적 요소가 보다 주요하고 근본적인 것이 아닌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앞으로 있을지도 모를 통일에의 전망 또한 외부적 조건에서 찾아야 한다.

기본적으로 이완범 선생은 분단의 형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미소에 의한 분할 점령이라는 외부적 요소가 먼저 작용하고 내부에는 분열의 요소가 없었다고 본다. 이것을 도식으로 표현하자면 외(유) - 내(무)라고 할 수 있다. 편하게 하기 위해 유 - 무 라고 하자. 그는 1945년 8월만 하더라도 유 - 무의 관계였던 것이 1946년을 거치면서부터 내부에서도 좌우간의 대립의 요소가 나타나기 시작해 유 - 유로 바뀌기 시작하며 서로 상호작용을 하게 된다고 본다. 그것이 결정적으로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내부로부터 분단을 지탱할 요소가 확립됨으로써 이제는 외부적 요소보다 내부적 요소가 보다 크게 작용하고 있는 유 < 유의 관계가 되었다고 본다.

이완범 선생 또한 어쩌면 앞으로 분단관계의 해소의 동력을 내부적 요소에서 찾고 있을지 모른다. 그가 한국전쟁 이후 분단구조를 지탱하는 요소로 내부적 요인에 큰 비중을 두고 있는 건 그런 맥락에서라 생각한다.

내가 여기서 지적하고 싶은 점은 그가 1945년 당시 분단의 요소로 내부적 요인이 외부적 요인에 의해 완전히 제압당하거나 거의 없는 상태였다고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말로 그러한가. 위에서 말했듯이 한국사회는 조선왕조 치하에서부터 이미 사회통합의 기제로 국가주도의 통합이 주요하게 작용하였다. 핸더슨의 지적처럼 중앙을 향한 원자화된 개인들의 투쟁이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사회 전체를 끌어들이는 방식으로 한국사회는 주요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해왔다. 이 중추가 되는 국가가 사라졌을 때 한국사회에 남은 것은 무엇인가.

막스 베버가 지적했듯이 각자가 서로가 믿는 가치를 극단으로 추구하며 대립하는 ‘올림푸스 신들의 전쟁’과도 같은 치열한 정쟁이었다. 한국 독립운동사는 이념, 계파, 종교, 지역 등의 차이가 낳은 그러한 치열하고도 지리한 투쟁에 대한 기록으로 가득하다. 오늘날의 운동권들이 분열하고 대립하는 것과 유사하다. 이 ‘풍토병’과도 같은 분열을 종식시킬 수 있는 것은 강력한 권위주의와 폭력 외에는 달리 존재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한국사회에서는 이미 이완범 선생이 지적하고 있듯이 좌우가 통합을 이뤄 오스트리아처럼 외부적 요인을 무력화시킬 정도의 힘을 가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의 주장처럼 만약 한국의 좌우가 똘똘 뭉쳤다면 오스트리아처럼 통일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나 한국은 독일과 달리 주변부였기 때문에 그럴 가능성이 더 높다. 이완범 선생이 다른 연구에서 지적하고 있듯이 세계사적으로는 소련이 보다 적극적으로 냉전의 형성에 기여했을지 몰라도 적어도 한반도에서는 미국이 냉전의 형성을 주도하고 소련은 수세적일정도로 한반도에 대해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지 않던 상황인지라 더더욱 그랬을 것이다. 그렇다면 역시나 보다 근본적인 요소는 내부의 분열이 아닐까. 그 분열을 해소할 기제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데서 역시나 원인을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조선왕조라는 전제국가의 역사적 유산이 사회통합의 기제를 제대로 형성하지 못했고, 그것이 해방 이후의 분단을 거치면서 한국전쟁으로까지 이어졌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해 보인다. 내전 수준의 폭력이 아니고서는 이 갈등을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는 점이야말로 가장 큰 발발 원인이 아닐까. 김일성도 그렇지만 이승만 또한 처음부터 대화와 협력을 통해 해결할 생각이 없었다. 김일성도 중국혁명의 영향을 받아 국토완정이라는 이름의 전쟁을 원했고, 이승만 또한 국민당의 영향을 받아 북진이라는 이름의 전쟁을 원했다.

이런 상황에서 외부적 요인은 내가 보기에는 사실상 내부의 갈등을 보다 정당화해주고 물질적으로 지원해주는 부차적인 요소가 아니었나 싶다. 기본적으로 어떻게 민족 전체를 통합하고 포괄할 수 있는 국가를 건설할 것인가라는 문제 속에서 파생된 내전에 국제적인 요소가 끼어들면서 국제전으로 비화되었다고 본다. 즉 나는 한국전쟁을 국제전으로 전화된 내전이라 본다. 근대국가의 건설 과정은 어디서나 피와 폭력으로 가득차 있다. 한국은 냉전의 형성과정이라는 조건 속에서 보다 대규모의 폭력이 동원된 사례가 아닌가 싶다. 사실 주변부였기에 그렇게까지 대규모 폭력이 동원될 수 있었던거라 생각한다.

여기에는 경제적인 기원 또한 존재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일본제국주의의 전쟁이 남북 간의 경제적 통합성을 상당히 많이 저하시켰다고 생각한다. 이중경제론을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북조선 지역은 해방 이후의 역할에서 보이듯이 북조선 - 만주 - 북중국이라는 거대한 중공업•군수산업 벨트 속에 포섭되어 있었던데 반해 농업 중심의 남조선은 일본과 강하게 연계되어 있었다. 식민지 체제는 어찌됐든 식민지에게 제국의 경제적 제도 속에서 그 이해관계에 따라 재편될 것을 강요하는 시스템이다. 이 분열이 행정력의 분열로 이어지지 않게 하려고 식민지 통치기구는 강력하고 권위주의적인 통치를 행할 수밖에 없었다고 본다. 식민지 조선 사회에는 국민경제 차원에서 통합성 있는 분업체계가 형성되어 있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 분열은 고승희와 권내현의 연구를 참고하면 18, 19세기부터 생겨났던 것이 아닌가 싶다. 이영훈 등이 주장하는 19세기 위기론에서 말하는 것과 같이 전라도, 경상도, 경기도 등의 일대에서 일어났던 시장분열의 현상이 우대형 선생의 지적처럼 과장되고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라 볼 여지도 없지 않으나 어찌됐든 함경도, 평안도 등의 북조선 지역과 남조선 지역 간의 경제적 격차가 나타나고 있던 것은 분명해보인다. 이러한 분열의 계기가 식민지기를 거치며 강화되었고 그것이 해방 이후에 북조선과 한국의 대립의 경제적 기원이 아니었을까.

서로 다른 형태의 국민경제를 형성하는 기원이 조선왕조 후기부터 식민지기에 걸쳐 형성되었고 한국전쟁을 통해 확립되었다는 생각하는 입장에서 볼 때 내재적 원인을 지나치게 경시한다는 느낌이 많이 든다. 정치세력을 통합할 수 있는 사회적 기제의 부재, 그러한 부재를 해소하기 위한 폭력 동원, 그리고 마지막으로 경제적 분열의 기원 등을 고려해보면 아무래도 내재적 원인이 보다 주요하게 작용하지 않았을까. 결국 정치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정치문화적 요인이 존재했고 그것이 주요하게 작용했기에 외부요인이든 김일성의 의지든 무엇이든 작용할 수 있었던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이런 의미에서 한국전쟁이 내전이라 생각한다.




55

1 comment

LikeShow More ReactionsComment
Share

Comments


손민석

쓰다보니 너무 길어서 중간에 잘랐는데 아무튼 결론은 결국 경제적인 통합성을 확보하고 정치적인 통합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한국의 민주화가 북조선의 민주주의를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고 본다.

북조선이 급진적으로 해체되지 않는 이상에는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는 와중에 자연스럽게 하나의 연맹체를 이루든 해서 분단의 해체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고 본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

Note: Only a member of this blog may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