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7-20

이부영 “일본, 남북관계 비약적 발전에 아찔했을 것” - 경향신문



[원희복의 인물탐구]이부영 “일본, 남북관계 비약적 발전에 아찔했을 것” - 경향신문




[원희복의 인물탐구]이부영 “일본, 남북관계 비약적 발전에 아찔했을 것”원희복 선임기자 wonhb@kyunghyang.com

입력 : 2019.07.20


이부영 운영위원장이 자신의 사무실에서 최근 한·일관계를 설명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동아시아평화회의 운영위원장 이부영
“아베의 궁극적 목표는 한반도 지배·영향력 지속”




한·일관계는 보통 ‘가깝고도 먼 나라’로 표현된다. 풀어쓰면 ‘이해하기 쉽고도 어려운 나라’다. 아베의 무역보복에 우리는 갖가지 분석과 대응을 논하지만 ‘장님 코끼리 만지기’ 식이다. 여기에 정략적 요소가 가세하면서 혼란을 부채질하고 있다. 야당을 비롯한 보수세력은 일본산 불매운동을 ‘철 없음’으로 치부하고, 정부·여당을 국제감각이 없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에 여당을 비롯한 진보세력은 ‘토착 왜구’ 청산을 외치며 민족주의적 자주권을 주장하고 있다. 일본에 대한 국론분열 모습은 마치 1910년 일본의 한반도 침략, 그리고 1945년 해방 전후,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때의 상황과 비슷하다.


이런 가운데 시민단체 동아시아평화회의가 7월 12일 ‘일본은 평화헌법 9조를 수호하고, 한국에 대한 무역보복 조치를 철회해야 한다’는 논평을 발표했다. 동아시아평화회의는 이홍구 전 국무총리를 좌장으로 고건·정운찬 전 총리, 김원기·임채정 전 국회의장, 이용훈 전 대법원장, 한승헌 전 감사원장, 이종찬 전 국정원장, 권영길 전 민주노동당 대표, 신경림 시인,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등 정계·학계·문화예술계의 합리적 보수와 진보 원로 80명이 참여하고 있다.



“무역보복 조치 철회” 논평 발표
이 모임의 이부영 운영위원장(77)은 3선 국회의원 출신으로 주로 외무통일위에서 활동했고, 몽양 여운형기념사업회 이사장으로 한·일 역사문제를 다뤘다. 또 해직기자 출신의 현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으로 언론개혁을 두루 경험했다. 최근 한·일관계에 대한 종합적 관점의 얘기를 들을 기회라는 생각에 12일 광화문 사무실에서 만났다.



-지금 한·일관계 문제는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인가.


“가까이는 강제징용에 대한 우리 대법원 판결과 지난 6월 정부가 화해치유재단을 해산한 것에서 비롯됐다. 2015년 아베와 박근혜가 10억 엔으로 위안부 문제가 불가역적으로 해결됐다는 협정을 맺었다. 이것이 국민을 분노케 해 촛불혁명의 원인 중 하나가 됐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 화해치유재단을 해산한 것에 아베는 몹시 기분이 나빴을 것이다. 긴 연원을 찾자면 잘못된 1965년 한·일협정이다. 이때 무상 3억 달러, 유상 2억 달러로 정부 간 청구권은 해소됐지만 개인 청구권은 논란이 있는 상태로 남겼다. 그 대가로 박정희는 일본 재벌로부터 엄청난 비자금을 받았다. 1966년 미국 중앙정보국(CIA) 특별보고서에 박정희는 일본 6대 재벌로부터 6600만 달러를 받아 중앙정보부 조직, 공화당 창당자금, 1963년 대선자금으로 썼다고 돼 있다. 미국 CIA가 이런 특별보고서를 썼다는 것은 미국이 한·일협정을 양허했다는 것이다.”


-2015년 박근혜 정부의 위안부 문제 타결 역시 미국의 강력한 중재에 의한 것이었다.


한·일협정에 대한 보답으로 우리는 미국이 고전하는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이것은 미국의 동아시아 대공(對共)전선 전략의 일환이다. 지금 한·미·일 3각관계에 손상을 입힐 이 무역전쟁을 일본이 미국과 상의하지 않았을 리 없을 것이다. 아마 7월 21일 일본 참의원 선거가 끝나면 미국이 거중조정에 나설 것이다.”


-아베의 시도는 참의원 선거 이후 결국 평화헌법 포기까지 이어진다는 전망이 많다. 그래서 아베가 궁극적으로 노리는 바는 뭔가.


“일본은 아베의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 등 만주국 인맥을 통해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중반까지 한국의 군과 관료조직을 꿰고 영향력을 행사했다. 아베가 궁극적으로 노리는 것은 한반도의 지배·영향력을 지속하자는 것이다. 군국주의 시각에 갇혀 있는 인물이 바로 아베다.”


이번 사태를 보는 이부영 운영위원장의 관점은 매우 복합적이다. 공간(국제적)과 시간(역사적)의 맥락을 짚고 있다. 이 문제는 공간적으로 미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전체의 문제이고, 시간적으로 해방 이후 4·19혁명, 1987년 6월항쟁과 최근 촛불정부까지 이어진다. 이 맥락에서 주목할 것은 한국 민주화와 일본의 국가 이익이다. 일본은 한국의 권위주의 정권과 협조하며 한국의 산업화를 관리했다.


그러나 한국이 민주화되면서 일본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특히 과거사 문제가 그렇다. 한국의 민주화가 시작되는 1990년에는 아키히토 일왕의 ‘통석의 염’이라는 사과를 받아냈다. 1991년 첫 위안부 문제 제기에 이어 93년 종군위안부 강제구인에 일본 정부가 관여했다는 고노 관방장관 담화, 그리고 95년 무라야마 총리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과 등이 이어졌다. 일본은 자존심이 상하고 동북아에서 국가 이익도 훼손된다고 봤다.



배경에는 미국의 ‘의도’도 작용
다시 한국에 비민주적 박근혜 정권이 들어서자 일본의 의도는 관철됐다. 2015년 한·일 정보보호협정 합의나, 위안부 문제에 대한 불가역적인 합의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촛불정부는 이를 다시 부정했다. 특히 남북관계 정상화는 일본의 국가 이익과 대단히 충돌하는 것이었다. 이 운영위원장은 “일본은 남북관계가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것에 아찔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큰 구도의 배경에는 미국의 ‘의도’도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 이 위원장의 분석이다.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이 미국으로 달려간 것과 21일 일본 참의원 선거가 끝나면 미국이 거중조정에 나설 것이라는 그의 해석도 이런 맥락이다. 그렇다면 북한의 비핵화 문제와 북·미관계도 중요한 요소다.


-결국 동아시아에 개입된 여러 국가의 이해관계를 알고 대처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지역 현안은 한반도 문제로 비핵화와 북한의 체제안정이다. ‘전면’ 비핵화를 주장하던 미국은 최근 ‘점진’ 입장으로 선회하는 분위기이고, 북한의 체제안정 얘기도 나온다.


“북한의 체제안정 가운데 비핵화를 이뤄내는 것이 일본의 망상(대륙진출)을 분쇄하는 것이다. 우리는 북한이 NPT(핵확산금지조약) 체제로 복귀하는 것을 유엔 안보리에서 미·중·소가 논의해 달라고 요구했다. NPT 체제 복귀는 북한의 정밀한 비핵화와 체제안정 보장이 맞물리는 것이다. 영변 핵시설을 폐기하고 핵동결을 선언하면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을 재개하고 북·미 간 임시연락사무소 설치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


-1910년대 해외에 유학한 이른바 지식인이라는 이완용·윤치호 등이 ‘민족주의는 편협하고 국제정세를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비난했다. 해방 직후에도 배웠다는 사람들이 그랬고, 요즘도 지식인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일본과 미국을 따라야 한다’고 100년 전과 똑같은 주장을 한다. 이런 위기국면에서 지식인의 역할은 뭔가.


“<매천야록>에 조선이 망하는 과정에서 집권층과 지식인의 태도가 다 나온다. 해방 후에도 ‘우리가 살려면 남북이 뭉쳐 통일정부를 만들어야 한다’는 몽양(여운형)의 논리를 ‘어린애같이 국제정세를 모른다’며 미·소의 세계 지배 논리를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민중은 몽양과 우사(김규식)를 지지했다.”


-이럴 때일수록 언론이 중요하다. 일본도 언론이 우익의 득세를 조장했지만, 한국 언론도 공론을 모으기보다 개인이나 회사의 이득, 여기에 정파적 이해관계까지 얽혀 있다.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으로 요즘 언론을 어떻게 평가하나.


“군사독재를 극복하고 제일 나아질 수 있는 분야가 언론이라고 봤지만 자본에 종속됐다. 세계적으로 경제위기를 거치며 양극화가 심화됐고, 세계화로 인한 난민의 문제가 민족주의적 성향을 조장했다. 여기에 SNS와 유튜브와 같은 미디어 기술이 결합돼 증오와 혐오를 증폭시키고 있다. 나는 언론을 비관적으로 보지 않는다. 가짜는 진실 속에서 드러나게 돼 있다.”


이 운영위원장은 1942년 서울 종로구 내수동에서 태어났다. 현재 자신의 사무실이 있는 바로 그곳이다. 그는 서울 용산중·고를 나와 1961년 서울대 정치학과에 입학, 64년 한·일 국교정상화 반대시위에 가담한 ‘6·3세대’로 꼽힌다. 1968년 <동아일보> 기자로 입사해 1974년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를 만들어 자유언론실천선언문을 발표했다. 그는 이 사건으로 해직되고 긴급조치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9년을 선고받으면서 본격적인 재야인사가 됐다.



이부영 운영위원장이 자신의 사무실에서 최근 한·일관계를 설명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정치권 입문 이후에도 ‘영원한 재야’
1984년 민중민주운동협의회 공동대표, 1985년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상임위원장을 지냈다. 1986년 5·3 인천사태 주도 혐의로, 1988년에는 광주학살진상규명 투쟁위원회를 조직해, 1989년에는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상임의장으로 문익환 목사 방북 건으로 구속되는 등 투옥의 연속이었다. 이 운영위원장은 교도소에서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의 진실이 축소·은폐·조작됐다는 사실을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에 전달, 1987년 6월항쟁을 일으킨 주인공이다.


그러나 김대중·김영삼 양김씨 분열로 노태우 군정이 연장된 데에 그는 일종의 ‘한’이 맺혀 있다. 1988년 그는 분신학생 장례식에서 양김씨가 선거운동하는 것을 보고 분노해 “양김 선생, 두 사람이 합의하지 않아 이 학생이 죽은 것 아닌가, 어떻게 이 자리에 올 수 있느냐”고 비난했다. 그는 이 소리를 들으며 증오의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던 양김씨의 시선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당시 양김씨 눈에만 들면 국회의원되기 쉬웠지만 이들의 눈밖에 나면 정치권에 발붙이기 어려웠다.


그래서 그는 정치권에 입문해서도 양김에 저항한 ‘영원한 재야’였다. 그는 1990년 이기택·노무현 등과 함께 꼬마민주당으로 정계에 입문해 14대 총선 서울 강동구 갑에서 당선됐다. 그는 1995년 노무현을 비롯한 동료들이 김대중(DJ)의 새정치국민회의에 합류할 때 이회창의 한나라당을 선택했다. 그만큼 그는 양김씨에 대한 거부감이 컸다. 그는 “양김씨는 재야를 이용하려고만 했지 존중하지 않았다”면서 “두 사람은 민주화운동을 했지만 민주주의자는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그는 14·15·16대 3선의 국회의원 활동을 주로 외무통일위원회에서 했다. 보수적인 한나라당이었지만 의정활동은 진보적이었다. 1994년 김일성이 사망하자 국회 대정부 질의에서 조문단을 보낼 의사가 없느냐고 질의했다. 당론과 달리 김대중 대통령의 6·15 남북공동선언을 지지했다. 결국 그는 2003년 이우재·김부겸·김영춘 등과 함께 한나라당을 탈당해 열린우리당에 참여했다.


그가 정치생활에서 ‘회한’으로 꼽는 것은 2005년 151석을 가진 여당 열린우리당 의장으로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지 못한 것이다. 당시 국가보안법 폐지가 당론이었다. 그는 당론인 국보법 폐지를 위해 최소한 찬양·고무 등 독소조항은 없애자는 야당의 합의까지 받았다. 그러나 당내 보수의원의 반발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오히려 종북몰이에 몰린 그는 사임했다.


이후 당 고문으로 ‘한·일협정 재협상국민행동’ 상임대표, 2014년 일본 평화헌법 9조를 지키자는 일본 모임과 연대활동에 치중했다. 2015년 해방 70주년을 맞아 일본에서 벌어진 평화헌법에 노벨평화상을 주자는 운동의 한국연대 단체로 동아시아평화회의를 만들었다. 2015년 2월 완전히 정계를 떠난 그는 동아시아평화회의 운영위원장과 몽양여운형기념사업회 이사장을 하다 올해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에 선임됐다. 그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바라건대 7월 21일 일본 평화헌법을 지킬 결과가 나오기 바란다. 그러나 원내 개헌의석을 얻더라도 일본 국민투표에서 50% 개헌선을 넘지 못할 것이다. 일본 국민은 아직도 군국주의 하에서 국민이 당한 피해 특히 원폭피해의식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조건 반일이 아닌, 일본과 함께 동아시아 평화로 가자는 것이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07201021011&code=100100&utm_source=facebook&utm_medium=social_share#csidxb18ac1b1863b042b717e833833fb50f

No comments:

Post a Comment

Note: Only a member of this blog may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