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9-16

알라딘: 반일 종족주의 My Review



알라딘: 반일 종족주의 by 이영훈 / 김낙년 / 김용삼 / 주익종 / 정안기 / 이우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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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에 관한 최고의 책

한국인을 오래도록 지배해 온 내면의 정서, 반일감정의 실체를 파헤치는 책이다.

저자들은 한국인이 가진 이 공통된 감정을 민족주의가 아니라 종족주의라 표현했는데 충분히 납득할 만하다.

일본에 대해 선조들이 남긴 14세기 이후의 기록들을 보면 한결같이 일본을 부족사회에 있어서의 적 종족 (enemy tribe) 으로 상정하고 일본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우리의 마음과 뇌의 창 (window) 을 막아왔다.

지금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쇠말뚝사건, 역사교과서, 천황의 호칭, 전범기업 불매운동, 끊임없는 배상요구 등은 옛날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인들은 아직까지 심성속에서 굳어진 반일종족주의를 떨쳐내지 못하고 있고 어떤 면에서는 그 저열한 종족주의적 감정이 강화되고 있다. 당연히 일본과의 관계는 다시 중세, 고대로 돌어가고 있다.

책의 전반부는 각 주제들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그 진의를 알고 있는 주제들이다.

각종 소설, 영화에 나오는 일정기에 관한 악의적 왜곡들, 토지수탈설/식량수탈성의 허구, 모집/알선/징용의 진실, 청구권 협정의 본질, 백두산 신화의 내막, 고종을 근래들어 갑자기 개명군주로 탈바꿈시킨 정치/역사집단의 의도, 리앙쿠르 암초 문제 등이 그러한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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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후반부는 위안부문제를 다뤘다. 민감한 주제인 만큼 나도 모르게 앞서의 주제들을 읽을 때와는 다르게 긴장감을 안고 읽었는데 곧 그 긴장이 풀렸다.

위안부에 관한 설명이 이 책의 핵심이라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서 위안부문제 연구는 불균형적, 감정적이다. 불균형적이라 표현한 이유는, 예를 들어 도서관을 방문해보면 위안부의 실체에 다가가는 연구서적은 없거나 한권이 서고에서 썩고 있는 반면,
그 연구를 한 학자를 비난하는 책은 수십권 대출대에 꽂혀있기 때문이다. 발간되는 책의 수뿐만 아니라 연구의 수도 불균형적이다. 감정적이라 말한 이유는 이미 뻔히 밝혀진 통계적 오류나 조작 또는 만들어진 증거, 사회과학에 있어서 강건한 증거가 될 수 없는 증언들에 기초한 연구가 주를 이루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일간 큰 문제가 된 위안부문제에 관한 학문적 진전은 이제껏 없었다고 생각한다. 감정에 호소하고 거짓된 사진을 만들고 확산시키는 행동들에 휘둘렸을 뿐이라 생각한다.
물론 박유하 등의 일부 학자들이 위안부 모집이나 전선후방에서의 위안부실태 등에 관해서 단편적인 실증자료를 선보여 이에 관한 학문적 진전은 조금 있었다고 볼 수도 있다.

이 책에서 위안부 파트를 맡아 쓴 이영훈은 위안부의 역사성/동시대성에 주목한다. 조선조 무인양반들이 남긴 일기 (난중일기, 부북일기 등) 를 읽다보면 전투나, 훈련에 관한 내용보다는 오늘은 기생 누구와 잤다, 어제는 누구 목사가 계집종을 보내주어 누구랑 잤다는 기록이 압도적이다. 그러한 기록과 통계는 625전쟁때나 그 후 50, 60년대의 우리의 일상속에서도 고스란히 살아있다. 역사속 그리고 현시대속의 위안부에 대한 조명은 일본군 위안부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다.

그 다음 이영훈은 기생제에서 공창제로의 치환을 설명하고 일정기에서의 공창제 대중화를 설득력 있게 논증한다. 그 대중화된 공창제가 중일전쟁 이후에 위안부제로 전환되는데, 위안부제를 설명함에 있어서 위안부 경제생태계를 도입해 논증한 부분은 이 책의 하이라이트다. 공창제에서 위안부제로의 전환과 위안부제가 보장한 수급/공급 시장의 성립과 그 생태계는 위안부 문제를 이해하기 위한 핵심도구라 생각하고 허물어지기 어려운 논증이라 생각한다.

내가 아는한 이 책이 위안부를 총체적으로 분석한 최초의 책이고 최고의 책이다.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보석같은 이해를 얻기 위해서 그 긴 역사성에 주목하고 동시대성을 고발하면서 그 역사적 비정함/모순성에 대해 통합된 경제생태계로서의 통찰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저자가 경제원리로 역사를 바라보고 실증적으로 사고한 경제사학자이기 때문이리라.

저자의 학문적 업적에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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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규 2019-07-13 공감(121) 댓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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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를 외면하는 종북좌파 기레기들의 발악


이 책이 사회적으로 커다란 반향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은 여러 군데에서 나타나고 있다. 인터넷기사 등을 요약한 것이니 자세한 것은 인터넷을 검색해보시라.

먼저 죽창가를 선창하며 페북으로 온갖 저질스런 언동을 일삼아온 조국이 또 나섰다.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5일 극단적 반일·국민 편가르기 발언을 이어갔다. 그는 <반일 종족주의>에 대해 “구역질 나는 책”이라고 매도하면서도 팩트에 기반한 비판은 하지 못했다.

조국은 자신의 페북에 글을 올려 지극히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반일 종족주의> 일부 내용을 언급하며 "이런 주장을 공개적으로 제기하는 학자, 이에 동조하는 일부 정치인과 기자를 '부역·매국 친일파'라는 호칭 외 무엇이라고 불러야 하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종북좌파들이 제기하는 프레임을 보면 팩트로서 말문이 막히면 친일파 어쩌구 하며 그 사람을 인신공격하는게 주특기이다. 조국의 선동삐라에 의하면 내가 친일파요 부역자가 됐다.

자나깨나 국민편가르기 하면서 이게 내년 총선에 유리하다고 총선전략을 짜며 나라를 나락에 빠뜨리고 있는 그들은 매국군주 고종의 신하 을사오적에 비견된다고 할 것이다.

다음으로 저자 이영훈 교수 등에 대한 MBC 기자 등의 몰상식한 기습 강제취재사건 들이다.

이영훈 교수는 출근길에 집근처에 잠복해 있던 MBC 박 모 기자 및 PD와 맞닥뜨렸다. 이영훈 교수는 인터뷰를 거절했지만, MBC 취재팀은 이를 무시하고 계속 카메라로 촬영하면서 50m가량 이영훈 교수를 따라갔다.

MBC 기자가 “왜 정대협(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현 정의기억연대)에는 공개토론을 제기해놓고 MBC 인터뷰에는 응하지 않느냐”고 묻자 이영훈 교수는 “내가 정대협에 공개토론을 요청했다고 해서 MBC 인터뷰에 응할 의무는 없다”고 반박했다. 이영훈 교수는 “MBC는 공영방송”이라며 인터뷰를 강요하는 MBC 기자에게 “나는 MBC가 공영방송이라고 생각지 않는다"고 대꾸했다. 이영훈 교수는 MBC ‘스트레이트’에서는 일주일 전 나에 대한 왜곡보도를 했다"고 지적하고, "이렇게 기습 취재하고 촬영하는 건 내 인격권에 대한 침해”라며 인터뷰 중단을 요구했다.

하지만 MBC 기자는 “과거 위안부 생존자들에게 사과했다가 입장을 번복, ‘위안부 희생자들이 자발적으로 매춘했다’고 책에 표현한 이유가 뭔가”라는 등의 질문을 계속 던지며 인터뷰를 강요했다. 이 교수는 "내 책에 다 나와 있다. 책은 읽어보고 그런 소리를 하느냐"며 인터뷰 거부 의사를 거듭 밝혔다. 그래도 MBC기자가 계속 질문을 던지며 마이크를 들이대자 참다 못한 이영훈 교수는 자신의 얼굴을 향한 마이크를 내리치고 기자의 뺨을 때렸다.

MBC 기자가 “지금 내게 폭력을 행사했다. 경찰에 고소하겠다”고 하자 이영훈 교수도 “이런 식의 취재 자체가 폭력이라면서 내 행동은 정당방위라고 반박했다. 이영훈 교수는 “책을 읽고 문제가 있으면 정식으로 인터뷰를 요청하거나, 공개 토론회에 초청해 진행할 일이지 갑자기 찾아와 사람의 일상을 침범하고 초상을 침해하면서 무슨 요구를 하느냐”고 따졌다.

이영훈 교수는 경찰서에 같이 가자고 요구하는 MBC 기자에게 “당신들이 다 촬영했으니 알아서 하라. 아파트 주변에 숨어 있다가 불쑥 인터뷰를 강요하는 것도 법을 위반한 행위다”라고 말했다.

이영훈 교수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몇 차례 거절하고 경고했음에도 계속 따라 붙으며 인터뷰를 강요한 것도 폭력이고 인격권 침해 아닌가.내 행동은 정당방위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반일 종족주의> 저자들에 대한 MBC의 기습 취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며칠 간 이영훈 교수, 김낙년 동국대 교수, 이우연 낙성대연구소 연구원 등이 펜앤마이크에서 방송을 마치고 나올 때에도 MBC기자들이 따라붙어 인터뷰를 요구했었다.

한편 지난 7월 30일에는 “서울의소리” ‘응징취재팀’을 자처하는 이들이 서울 봉천동 낙성대연구소에 가서 매국노운운하면서 <반일 종족주의>저자 중 한 명인 이우연 박사의 얼굴에 침을 뱉고 그 장면을 촬영해 인터넷 유튜브에 올리기도 했으며, 또한 공저자인 “김낙년 교수가 펜앤드마이크에 출연한 뒤 대담을 마치고 나오자 펜앤드마이크 사옥 앞에 잠복하고 있던 MBC 기자가 김낙년 교수에게 인터뷰를 강요하기도 했다.

MBC가 이우연박사를 강제인터뷰하는 장면 등은 유튜브방송 펜앤드마이크에 편집없이 올라와있으니 시청해보시라.

이영훈 교수는 MBC 측에 방영 등 금지 가처분신청을 하면서 “공영방송이 파파라치같이 명백한 불법행위 자행”했다고 비판하며 이승만학당, <반일 종족주의> 필자들에 대한 좌파의 지속적인 공갈협박은 사실(fact) 확산을 막기 위한 의도된 작전이라고 말했다.

과거와 달리 일방적인 선전선동 나팔에 현혹되는 개돼지같은 국민들은 확 줄었고 그런 국민들로부터 철저히 외면받아 간판뉴스 시청율이 1%대에 머물러 광고도 팔리지 않자 거액의 적자로 회사의 존립자체가 위협받는 MBC의 막장 드라마라고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여기 홍위병들의 별점테러이다. 이들은 책을 읽지 않았거나 아니면 글맹인지 읽어도 무슨 얘기인지 모르고 그냥 드루킹댓글 분탕질하듯 하는데 내가 유시민 등의 좌파 작가책에 비판댓글을 쓰기만 하면 즉각 삭제해버리던 알라딘서재관리자가 이런 허접한 댓글을 그냥 방치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묻고 싶다. 종북좌파와 그 홍위병들은 날조된 역사교과서와 전교노 잡부들에게 워낙 세뇌된 탓인지 팩트와 진실을 아는 것을 두려워하고 부정하기 바쁘고 나아가 팩트를 말하는 사람을 비아냥거리고 인신공격만을 가하는 것이다.

아무튼 정규재주필이 이 책의 출판기념회에서 이 책이 백만권정도 팔리면 대한민국이 달라질 것이라고 했는데 많이들 사서 읽어보시고 주위에도 선물하고 전국 공공도서관에도 희망도서로 신청해주기를 바란다.

거짓에 기반한 선동에 속아 우주에서 단 한번뿐인 당신의 인생이 그 불순한 누구의 하찮은 도구로 전락할 수는 없지 않은가?


들짐승 2019-08-06 공감(11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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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을 직시하고 겸허히 받아들이다


현 대한민국 상황은 여러모로 좋지않다.이 책은 이런 근본적인 것에 직면하게 만든다.불편한 사실을 직시하며 진실에 다가간다.대한민국의 교육 또한 한번쯤 되돌아보게한다.하지만 이 사실은 우리가 직시해야하는 진실이다.왜 대한민국은 불편한 진실을 언급하지 않는가에 대한 해답을 찾고 싶다면 한번 읽어보길 추천한다.
고슴도취 2019-08-05 공감(7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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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읽어봐야할 책


일본을 싫어하는 국민의 한 사람이지만 모든 역사를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일본이 잘못한 점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하지만 우리는 피해자이기 때문에 무조건 옳다라는 편협된 시각은 잘못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 정치권의 내로남불적 사고와 행동은 위험하다. 잘못을 깨닫고 성찰하는 국민들이 있어야 나라가 발전한다.
이소룡 2019-08-08 공감(6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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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는 혐한 서적이, 한국에서는 친일 서적이 베스트셀러가 된다.




저자 이영훈은 대표적 뉴라이트 지식인으로 자신이 연구한 '식민지 근대화론'을 책 소개처럼 학문적 접근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닌, 일본의 한반도 침략을 정당화하는 이론적 도구로 쓰고 있는 친일 지식인이다. 이 책을 사려는 독자 중에는 순전히 '식민지 근대화론'이라는 한국 근대사를 바라보는 새로운 학문적 관점을 기대하는 분들도 있을지 모르나, 여러분이 염두해야 할 점은 이 책의 목적이 그들이 겉으로 말하는 것과는 다르게 순전히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찬양과 더 나아가서는 그와 맥락을 같이 하는 이승만과 박정희의 통치를 정당화하려는 데에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저자 이영훈의 역사 인식에 동의하는 독자라면 이 책에 열광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독자라 할지라도 이 책을 구매하길 바란다. 일본이 왜곡된 역사 인식으로 한국을 경제적으로 공격하는 이 시국에서 최소한 어떤 이들이 진정한 토착 왜구이며, 그들이 어떤 논리와 이념으로 대한민국을 위협하는가에 대해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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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sdlsqhd 2019-07-24 공감(59) 댓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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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라딘에서 사서 읽은 책 중에서 최고의 걸작


문장 하나 하나에서 진리를 탐구하는.. 그리하여 영혼이 자유롭고 싶은 노 학자의 혼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비난을 감수하더라도 검증된 지료와 데이터를 근거로 거짓을 거짓이라고 말할수 있는 작가의 용기에 찬사를 보냅니다. 그것이 진정으로 대한민국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이겠지요. 구역질난다는 사람들, 한번 끝까지 읽어 보세요. 작가의 치열한 지적 노력의 결과물을 보고 느끼시는게 많을 겁니다. 저는 오히려 이 책에서 대한민국의 희망과 향기를 맛 보았습니다.
Yskim0715 2019-08-09 공감(4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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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내용을 역사책에 쓰는 나라, 불쌍한 국민들. 나는 이제 진실을 알아야겠다.


지금까지 거짓을 진실인 것처럼 쓴 한국사에 속아왔던 사실에 분노한다. 거짓된 역사를 기술하면서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그것이 도리어 애국심이라고 자위했을 역사학자들이 지금이라도 책임감을 가지고 솔직해져야 한다.부끄러운 역사도 사실대로 배우고 가르쳐서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어야 미래를 위해 책임감있는 자세이리라...이 책을 읽고나서 지금까지 내가 알아왔던 모든 것들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가치관의 혼란을 느낀다.현재 우리가 안고있는 모든 문제는 정작 우리의 진실하지 못함에서 발생했다는 생각마저도 든다.
Grapevine 2019-08-10 공감(4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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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한 종족주의를 일으키는 책

지금 쓴 것은 서평의 시작점에 불과하다. 바쁜 시대에 이렇게 서평을 위한 프롤로그를 쓴 적이 없다. 왜 이 글을 썼냐면 뉴라이트가 그동안 벌인 행적 가운데 이 책을 발간해서 그동안의 역사전쟁과 맞물리게 되는지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뉴라이트 안에서 젊은 일베들이 세운 단체 이름이 투르스포럼이다. 뉴라이트도 세대 교체 중이다. 이들이 벌이는 역사 전쟁은 세대를 바꾸면서 이어가고 있다. 이를 모르고 이 책만 접하면 이들의 선동에 납득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자기 외엔 진실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사이비 종교집단에서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뉴라이트의 주장에 대한 전제를 살펴보자.

[논리]

1. 일본 강제 합병은 강제적인 불법 통치가 아니라 합법적 통치다.

2. 일제 강점기가 합법적 통치기간이고 조선총독부는 합법적 통치 기관이다.

따라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비롯한 모든 항일운동 단체는 불법적 테러집단이다.

3. 매국친일파라고 알려진 사람들은 합법적 통치 기간동안 벌인 행위는 매국친일 행위가 아닌 합법적 통치 행위에 맞게 반응한 것이다.

4. 광복 이후 매국친일파는 반성이 필요없으며, 그들이 관여한 근대화 과정은 매우 칭찬할 만하다(그들 밑에서 개고생한 일반 국민과 엔지니어에 대한 공로는 싹다 잊고..)

[위 논리를 위해 벌인 일]

5. 이 모든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제일 중요한 것은 역사교과서 고치기다. 이점은 일본 아베가 벌인 행동과 동일한 일이다. 아베는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만 한국은 박근혜 때 역사 교과서 수정하려다가 실패했다.

[뉴라이트의 허점과 나의 비판]

6. 뉴라이트는 경제학자들이 현재가 아닌 과거를 대상으로 연구한 학자들이 주류이다. 그래서 이들은 숫자로 환원시켜서 설명한다. 어떤 내용을 전달할 때 언어, 숫자, 이미지 등이 사용되는데 숫자로만 설명하면 상황을 너무 단순화시키고 보는 여러 배경과 환경을 무시하는 한계를 보여준다. 이 책이 바로 그러한 숫자 환원주의로 쓰여진 책이다. 이들이 든 숫자 사례로 일제침략기가 미화되기엔 너무 빈약하다. (이들이 수치화해서 보여주는 데이타는 좋다. 하지만 해석이 편향되어서 왜 그렇게만 설명하는지 논리적으로 납득하기 힘들다.)

7. 어떤 의미에선 이 책이 나와서 잊혀진 역사의 경험이 다시 전승되기 시작한다. 나 또한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겪은 그 시대의 뼈아픈 경험을 이야기로 전해든 마지막 세대다. 역사 전공자가 아니지만 이 책이 보여준 허수아비 논증에 질린다. 차후에 세부적으로 논하겠다. 역사 전공자가 해야할 부분이지만 논리 검증이나 데이타 해석은 나 또한 가능하기에 시간을 들여서 논의할 예정이다.

8. 학자라는 사람들이 이렇게 책을 써서 기존 역사가 거짓말이라고 선동하면 학자 맞나?? 자연과학사를 보면 라부아지에가 말한 산소 반응이 현대 산소 반응과 다르다. 그러면 라부아지에가 거짓말했나? 학자들이 서로 논의하고 자료가 더 쌓이면서 변하는 것이다. 과학은 늘 변하고 업데이트한다. 역사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기존은 다 거짓말이고 자기 말만 다 맞단다..다른 자료 나오면 수정해야하는데?? 학자 정말 맞는지 궁금하다..학문 발전 과정도 모르고 과학철학도 모르는 문외한이나 속지!!

[아래 글은 책을 구매한 yes24에 쓴 서평]

최근에 친일을 주장하면서 아베에게 용서를 구해야한다는 부류와 SNS에서 대화를 했다. 일본이 정치문제를 경제로 제재한 것은 자유시장경제를 해친다고 하니까 그 사람이 저를 반일이라고 하면서 반일종족주의자라고 표현했다. 그말이 뭔가했는데 바로 이 책 제목을 보니 알겠되었죠. 그 토착왜구는 일본 아베에게 사과하고 위안부나 일제징용공 문제를 일본 요구대로 해야 한답니다. 그것에 반대하면 반일 종족주의자라고 합니다. 정말 어의상실이죠..

0. 솔직히 이책은 반과학적 사고를 깔고 있다. 최순실 대리청정을 비롯한 것을 숨기고 풍문을 예를 들어 거짓말이라고 전제하고 시작한다. 현대 과학과 공학기술로 최순실 테블릿 사건이 사실임을 입증했는데 아예 무시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풍문을 근거로 박근혜 탄핵이 거짓말에서 시작되었다고 본다.태극기 집회용 책이다. 헌법재판소 결정도 삭제하고 역사를 본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기록한다. 보기 싫은 것은 거짓말이고 보고자한 것이 사실이고..불리한 것은 감추고 유리한 것이 박근혜 탄핵 보도의 사실이란다.. 이것이 저자의 역사관이다.

1. 역사책에서 극복되었다는 식민사관이 새롭게 리뉴얼되어 돌아왔다. 일본회의 소속의 아베 정권이 지지하는 극우 역사인식대로 역사책을 잘 녹여낸 소설이죠.

2. 역사가가 1차 사료, 2차 사료를 통해 해석하고 편집해야 하기 때문에 역사가의 역사인식이 중요한 출발점이죠. 신식민사관을 제대로 알아야 잘못된 전제도 발견하고 잘못된 사료 기술 논리도 보게 됩니다.. 그런 생각이 아닌 분은 시간과 돈이 아깝죠..

3. 식민사관 학자들이 왜 일본 극우 사관에서 못벗어난지 보고 싶다면 보시고 잘 판단하길 바랍니다. 교묘하게 핵심 사료는 아예 빼고 가짜 사료로 허수아비 논증의 오류를 범해서 사람 헥갈리게 하니 관련 내용을 모르면 사실 판별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최순실관련 이야기나 이명박 관련 이야기를 보면 교묘하게 허수아비 논증을 합니다.

4. 비판적 사고 없이 책을 보면 식민사관이든 5급 국사 공부든지 암기과목이 됩니다. 늘 비판적으로 입증하면서 보는 시각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돈이 아깝다. 태극기 집회용 책을 왜 돈 주고 사냐?? 우리가 겪은 사건도 자신에게 유리하게 편집해서 호도하는데 역사 사료는 더 말할 필요 없다. 역사가가 필요 없다고 무시하면 희한한 결론에 다다른다. 또다르 사기 행각..역사가가 사기치면 역사가 소설이 된다.

아래 링크는 기사입니다. 참고하시길...

https://m.nocutnews.co.kr/news/5187153?source=http://m.faceb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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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och21c 2019-08-08 공감(36)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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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에 식민사관에 젖어있는 기득권의 주구들 작품

제목 그대로 친일에 식민사관에 젖어있는 기득권의 주구들 작품이다..
기회만 닿으면 나라 바치고 엎드려 나라를 버릴 놈들의 작품이다..
매국에 앞장서는 배웠다하는 놈들의 작품이다.

매국과 식민사학에 절어있는 배웠다는 자들의 작품이니 소장해야한다.. 그리고 이 자들 잊지말아야한다..
군함도와 강제징용, 위안부, 독립운동의 선열들 등등,
이 나라를 지키려 목숨을 기꺼이 던지신 선열들에게 엎드려 사죄하라..
사악한 매국노들의 작품이다..

주권을 내던지고 노예로 살기를 원하는 자들이 유수 대학의 명예교수라니..

대학도 이런 자들 되돌아봐야한다.

부끄러운 줄 모르는 후안무치한 자들..

드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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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인 2019-08-07 공감(35)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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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성찰하기


국가의 권력은 공의와 정의 그리고 대의를 추구하는 집단이 장악하지 않는다면 대중과 국민을 속이고 사익을 취하고 결국 그 국가는 망하게 된다. 처절하게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드는 책.무능력한 정부는 죄악이다.
적운산 2019-08-12 공감(27)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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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서 근대는 어떻게 시작되었나?

대학에서 교양과목으로 이주영 교수님의 서양사 강의를 들었는데 서양 근현대사의 전개를 개인의 자유에 기반한 개인주의의 승리의 과정으로 보는 사관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후 이영훈 교수님의 책에서 그러한 사관이 한국사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를 확인하고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민족주의나 유물론 사관에 매몰된 한국 사학계의 협소한 시각에서 벗어나, 한국 근대의 발현과 전개를 개인의 자유와 사적자치에 기반하여 설명하고 이를 실증적 연구로 뒷받침한 이영훈 교수님의 혜안과 학문적 정직성, 용기를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다만, 이 책에서 아쉬운 점은 이영훈 교수 연구의 기반이 되는 근대의 의미, 그리고 그것이 한국사에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빠진 것이 아쉽습니다. 개인의 자유와 사적자치를 근대의 출발점으로 보고 이런 근대적 가치가 한국사에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곁들여졌다면 왜 이영훈 교수가 이후의 연구들을 전개하게 됐는지 독자들의 이해를 더 도울 수 있었을 텐데 그 점이 아쉽습니다.

이 부분이 궁금하신 분은 이영훈 교수의 <대한민국 이야기>나 이주영 교수의 <역사 어떻게 볼 것인가>를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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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lgado01 2019-08-12 공감(26)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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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 상식은 지키자. 친일매국을 따로 논할 팔요가 없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2019년 8월 이제 무엇을 해야할지 명백해졌다. 친일청산 시작하자.
스케치북 2019-08-10 공감(2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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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수없이 의문을 가져왔던 민족주의 역사인식에 명쾌한 해답을 주는 책.

정말 식민지 조선인은 일본인에게 노예처럼 사육되고 때리면 맞고 뺏으면 뺏기는 그런 무기력한 민족이었는가.

대학시절 사학과 수업들을 들을 당시에도, 이영훈 교수는 이미 식민주의 사관의 대표자로 찍힌 사람이었고, 이 교수의 논문을 읽고 열심히 반박하는 리포트를 몇 번이나 적어내야 했던 기억을 가지고 있다. 의견에 조금이라도 찬동하는 내용을 적으면 어김없이 체크표시가 달리고 교수의 친절한 정정문이 달리던 생각도 난다. 하지만 이미 그 때도 이영훈 교수의 논문들에는 쉽게 반박하기 어려운 설득력이 있었고, 이에 대한 반박의 내용은 그저 반박을 위한 반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그 때도 했던 것 같다.

이후 오랫동안 한일관계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지 않고 살아왔지만, 근래 들어 점차 가중되는 일본에 대한 편집증적인 증오와 난무하는 선동적 행태들을 바라보면서, 여러 의문을 가지던 차에 이 책을 알게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초중등교육과 대학교육의 일부를 민족사관으로 습득한 사회적 경험, 일정을 겪었던 나의 할아버지들과 할머니들에게 들었던 증언이라는 개인적 경험, 그리고 이 책에 등장하는 논리의 근거 및 객관성과 정합성, 흐름 등을 총체적으로 따져보았을 때 나는 이영훈 교수의 주장에 손을 들어줄 수 밖에 없다.

기존 사학은 일본이 우리를 침탈하지 않았다면 우리 스스로도 뭔가를 해낼 수 있었다는 가정법에 기초한 주장을 하면서 우리 민족을 일방적 피해의 민족, 일본에게 수탈당한 노예의 민족으로 묘사한다. 그러나 그들이 식민주의 사관이라고 비난하는 이 학자들은 정확한 사료의 채집과 분석을 통해 망국의 민중들이 강제로 일본의 식민체제에 편입되기는 하였으나 그래도 그들은 노예가 아닌 사람으로서의 삶들이 있었고, 제한된 상황에서도 먹고 살기 위해 나름의 선택을 통해 치열하게 하루하루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다만 고대적부터 이어진 한반도 특유의 샤머니즘이 엉터리 민족주의, 그리고 물질주의와 결합하여 만들어진 피해망상에 찌든 종족주의가 국민의 사고를 지배하게 된 것이 문제이므로 이를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느 쪽이 패배의 역사관일지는 이 책을 직접 읽어보고 판단해 보는 것이 어떨까.

우리 사회와 역사에 만연하고 있는 날조와 선동에 대한 통렬한 비판과 일침이야말로 이 책의 백미라 할 수 있다. 이념에 기초한 이분법적 매도, 당시 상황과는 유리된 현재의 눈으로 과거를 짜집기하는 편취 행위, 있지도 않은 사실을 만들어내어 이를 민족 전체의 피해망상으로 부풀리는 그야말로 저열한 종족적 행위를, 이 책은 명백한 사실을 바탕으로 철저하게 시대상황에 근거한 해석을 통해 깨부수고 있다. 특히나 조선의 기생제-일본의 공창제-일본군의 위안부-해방 후 기지촌의 위안부-현대의 우리안의 위안부로 이어가는 위안부에 대한 분석은 다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논리전개와 통찰력, 체계적인 근거 자료에 기반하고 있으므로 위안부 문제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반드시 읽어 보기를 추천한다.

이 책을 읽더라도 공감을 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여전히 민족변절자 토착왜구 사사카와 재단 운운하면서 매도해 댈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찬반의 여부와는 상관없이 평생에 걸쳐 주변 모두에게 비난받는 연구를 하면서도 사실에 기초한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역사의 틀을 마련했다는 업적은 존경받아야 마땅할 것이다. 국민들을 이념의 늪에 빠뜨리는 것이 아닌, 사실을 냉정하게 제시하고 국민들이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이러한 연구자들이 보다 많아지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선입관에 얽매여 이영훈 교수를 저주하고 비난하기보다는, 사실에 의한 반박과 토론으로 한국의 편협한 역사학이 좀 더 건강한 정반합을 이루어 내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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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anYard 2019-07-24 공감(15)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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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


체크
yeom0402 2019-08-17 공감(9)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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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된 역사


우리는 거짓된 역사를 배우고 실아온 것을 깨닫게 하는 내용. 참 우울하게 만들지만 늦었지만 앞으로는역사를 똑바로 깨달아야 하는 우리의 현실
jang7079 2019-08-17 공감(8)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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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일 종족주의를 읽고

1. 들어가며

역사는 고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결코 독립적이지 않다. 비록 한 국가의 역사라 하더라도 주변국들과 복잡하고 다층적인 관계 속에서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며 시간의 축을 따라 진행한다.

역사에서 서로 무관해 보이는 사건들이 사실은 상호 연결되어 있다. 마치 복잡계이론처럼, 주변의 다양한 요인에 작용 하고, 복합되어 차츰 큰 영향력을 갖게 되고, 연쇄 반응으로 역사가 형성된다.

서구문명을 받아들여 메이지유신을 이룬 일본은 조선을 둘러싼 1894년 청일전쟁과 1904년 러일전쟁에서 모두 승리했다.

1905년 7월 미국으로부터 조선 지배권을 인정받는 카스라,태프트 밀약, 그 해 8월 영일동맹에서 조선보호권을 인정, 9월 포츠머스 조약에 따라 조선에서 러시아를 완전 배제했다.

마침내 1905년 11월 12일 일본 이토 히로부미가 高宗과 마주했다. 이때 이미 조선 운명은 결정됐다. 11월 17일 이완용과 하야시 곤노스케가 ‘을사조약’에 서명 날인했다. ‘을사조약‘은 조선이 망했음을 문서로 확인하는 절차일 뿐이었다. 결코 5敵 때문에 조선이 망한 것이 아니다.

조선은 전제정치 1인 통치 독재국가다. 亡國 주범은 주권자 고종이다. 고종은 王朝을 李氏家門 家業으로 간주했다.

고종은 왕조를 일본에 팔아넘겼고 그 一族은 일본 皇室 王公族 신분으로 편입 호의호식하였다. 그렇지만 2000만 백성은 망국노亡國奴 신세였다.

조선 망국의 막다른 골목, 아관파천한 길을 서울시가 ‘고종의 길’이라며 고종을 치켜세웠다.

‘5敵’ ‘고종의 길‘은 거짓 역사 상징이다. 대한민국은 ‘거짓말의 나라’다. 우리는 ‘거짓말 공화국’에 살고 있고, 국가가 조직적으로 거짓말을 한다. 거짓말로 국가가 운영되고 있다.

歷史가 多數에 의해 또는 북한 추종자들에 의해 거짓 조작되거나 왜곡 되고 있다. 역사학의 거짓말은 그럴듯한 학술로 포장되어 확대 재생산 되고 있다.

2. 일제 토지 수탈

일제 때 조선 토지 40%가 강제 수탈됐다는 학설은 거짓말이다. 일제 토지조사사업 27년 후 해방됐다. 토지조사사업이 강제수탈 수단이었다면 해방 후 당연히 반환 요청이 있어야 했다. 우리 조상은 토지를 사람의 命脈 즉 목숨 줄(土地人之命脈也)이라고 했다. 그런데도 반환 요구가 없었다. 신고할 줄 몰라서 그랬다고 한다. 그러나 거짓말이다. 조선은 매 3년마다 호적신고를 했다.

소설가 조정래 <아리랑>에 일개 일본 경찰이 조선농민을 처형하며 잔인한 방법으로 토지 수탈 장면이 있다.

일제의 조선 합병은 개인 토지 수탈 목적이 아니라 조선을 부속 영토로 영구 지배 목적 병합이었다. 조선 전체를 일본으로 완전 동화 시키려는 거대 프로젝트였다. 전국 토지가 얼마인지, 토지 형질이 어떠한지, 누구 소유인지를 조사했다. 이것이 토지조사사업이다. 현재도 사용되고 있는 地番과 주소는 1910~ 1918년 토지조사사업에서 만들어 진 것이다.

3. 민족주의가 아닌 종족주의

민족이란 말의 사용은 20세기 初 최남선에 의해서다. 캐나다 앙드레 슈미드가 쓴 책<제국 그 사이 한국 1895~1919>에서 그는 한국 민족 의미는 친족 확장 형태라고 했다. 그는 한국 민족과 친족 연결고리는 땅과 관련된 풍수지리에 있다 했다.

일제가 한국인 억압과 차별에 대하여 최남선이 백성에게 공동체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민족’이란 개념을 전파했다. 백두산을 영산화하고 天池라 한 것도 국민 의식 고양에서였다. 천지는 큰 연못이란 의미의 태일택(太一澤)였다. 우리 ‘민족‘ 의미에는 배타적 토속 샤머니즘이 배어있다.

서양 민족주의는 중세 보편주의를 넘어 문화에 기초했다. 자유인, 자유로운 개인의 새로운 공동체 의식이 서구 민족주의다. 한국 민족주의는 그 자체가 하나의 인격을 갖는 집단이요 권력이다. 그래서 민족주의라고 할 수 없다. 우리만이 갖는 種族주의라고 보는 게 맞다. 한국의 민족은 자유로운 개인의 자유를 근간으로 하는 공동체와 거리가 멀다.

서강대 최진석 교수는 “나누어 구분하면 구분된 것이 이데올로기化 하고 集團化하여 권력이 된다. 구성원은 그 권력의 지배를 받게 되고 마침내 그 권력에 구속당하게 된다.”고 했다.

한국의 민족은 일반 民庶와 분리된, 그 위에 군림하는 독재주의나 전체주의 권력으로서의 민족이다. 그것이 북한 세습왕조 체제 김일성 민족이다.

지금 남한 민족주의는 북한 김일성 민족주의와 상당한 연관이 있다. 백주 서울 한복판에서 북한 세습왕조체제가 백두혈통이라고 공공연히 칭송하고 다닌다.

한국 민족주의는 種族주의 神學이 만들어낸 전체주의 권위이자 집단 광기의 폭력이다. 이 종족주의는 배타적이고 폐쇄적이며 적대적이다. 한국민족주의는 本質的으로 反日 種族주의다.

4. 위안부

1991년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발생하였다. 그 후 지금까지 이 문제로 한국과 일본과의 관계가 악화 길을 걷고 있다.

조정래 소설 <아리랑>, 어느 면장이 한 농민을 불러 놓고 "어쩔 수 없이 자네 딸을 위안부로 징발하네"라고 통보한다. 일본을 强暴한 종족으로, 한국인은 저항할 줄도 모르는 무한히 나약하고 비열한 존재로 묘사했다.

1996년 위안부 문옥주 씨가 사망했다. 일부에서 그녀를 민족 성녀로 추모한다. 그러나 그녀는 단지 자신과 주변에 충실한 여성이었을 뿐이다. ‘성녀’는 또 하나의 거짓 포장이다.

그녀가 죽기 전 동료위안부였던 모리카와 미치코에게 "나는 그냥 열심히 위안부 생활을 했어, (중략) 나는 군인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이 싫지 않았어, 야마다 이치로는 좋은 사람이었어, 그만이 아니야 좋은 사람이 많이 있었어," 라고 했다.

그녀는 일본을 저주하지 않았다. 반일 운동가들의 적대감정과는 거리가 먼 정신세계였다.

해방 전 식민지 조선에선 여성 인신매매가 횡행했다. 가난으로 자기 딸을 팔아먹거나 남편이 자기 처를 팔기도 했다. 이건 범죄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자발적으로 위안부가 됐다는 것은 아니다. 前借金을 받은 부모 친척 결정에 따라 숙명처럼 모집업자를 따라가거나 오갈 데 없어서 업자를 따라간 경우가 대부분이다.

싱가포르 위안소 관리인였던 박치근 일기에 따르면 위안부는 성 노예라기보다는 성 노동자가 맞다.

2차 세계대전 독일이 패했을 때 수십만 명 독일 여성이 소련군에게 강간당했다. 그러나 독일은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 전범국가라는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노무현 정권 때 위원장 이해찬 위원 문재인 등 위안부 문제 민간공동의원회가 발족했다. 이 위원회가 1965년 한일협정 때 위안부 문제는 일괄 타결됐다고 결론지었다.

5. 마치며

거짓말공화국으로는 미래가 없다. 거짓말로 부풀리고 포장된 집단주의 민중민주주의 사회민주주의 전제정치가 자유 대한민국을 더 이상 흔들어서는 안 된다.

"‘자유 이념’을 맞아들인 구한말 개화 세력은 이후 친일파로 변신하였다. 해방 후 그들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새로운 제국주의 미국에 빌붙었다. 그래서 세워진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지금도 ‘자유‘ 운운하는 자들은 천박한 개인주의자로서 親日, 親美 세력 후예이다." 이것이 많은 한국인의 자유주의자에 대한 이해이다.

109년 前 나라를 망쳐본 민족이다. 아직도 나라가 망한 원인을 알지 못하기에 한 번 더 망하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다.

정확히 말해 조선은 개인의 자유가 없었기에 망했다. 이해관계가 각기 다른 개인을 국가라는 질서체로 통합하고 나아가 번영과 평화를 이끄는 것이 바로 자유민주주의 자유시장경제다. 이를 추구하였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다.

2019년 8월 25일

리더스 포럼

회장 박윤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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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nny 2019-08-25 공감(7)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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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마주하여 새로운 용기를 주는 책


여러 분야에서 이렇게 진실된 분들이 많이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교수님과 연구진분들께 감사드려요!!
첫걸음 2019-08-22 공감(7)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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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반일 종족주의


이 책의 느낌은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학교폭력 가해자의 구차한 변명이다.즉, 이 책에는 피해자에 대한 반대만 있고 그에 대한 반박이나 반증이 없다.˝~이 아니다˝, ˝~이 당토않다.˝ ˝~은 거짓이다.˝라는 걸 말하지만 실상 ˝그래서 니 입장은 뭔데?˝ 란 질문엔 답을 내놓지 않는 책.이 책은 대한민국에 대한 모든 것이 거짓이라 말하지만 잘 읽어보면 이 책이 거짓임을 알 수 있다. 0점을 줄 수 없는게 다만 아쉬울 뿐이다.
아나하라트 2019-09-02 공감(7)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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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지도서 될까봐 북컬랙터의 입장으로 수집 ㅎ
김성호 2019-08-21 공감(7)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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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하게 읽어볼만합니다


좌우를떠나읽어보길 추천합니다
jbbravo 2019-08-13 공감(4)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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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종족주의인가?

학교 다닐때 나 보다 강한 친구가 있는데 나를 괴롭히는 아주 나쁜 녀석이었다.

싸움도 잘했으며 부자면서 공부도 남 달랐다. 정말 그 녀석을 이기고 싶었으나 항 상 그 녀석의 주먹은 나 보다 강했다.

내가 이 녀석을 이기는 방법은 두 가지라고 판단되었다. 주변 학우들을 부추겨 그 녀석을 소위 말하는 왕따를 유도하는 방법이 그 첫번째다.

이 방법은 내가 학급에서의 어느정도의 인지도와 지지자들이 대부분이어야 가능한 일인데 다른 친구들은 전혀 호응해주지 않고 나와 친한 몇 안되는 친구들만 어쩔 수 없이 동참해줬는데 유유상종이라고 그 동참한 자들도 나 만큼 약했다.

결국 이 방법은 통하지 않고 주변 학우들에게 내 이미지만 나빠져버렸다.

두 번째 방법은 시간은 아주 오래걸리는 일이 되겠지만 열심히 공부하고 체력도 기르고 주변과 인맥을 돈독히 하는 등, 내 스스로의 발전에 힘을 기울여 내가 강해지는 방법이었다.

내가 강해지고 어른이 되어보니 그렇게 괴롭히던 녀석에게 복수따위를 하지 않아도 그 녀석이 도움을 청할때 통쾌함도 맛볼 수 있었고 내가 필요할때 활용할 수 있는 아군이 되었다.

어른이 되어보면 물리적인 공격보다 훨씬 더 멋진방법이라고 누구라도 판단할 것이고 칭찬도 해줄 것이다.

일본이 나쁘지 않다는게 아니라 내가 배우고 익힌 역사가 모두 잘못되었다는게 아니라 종족주의를 깨고 나와 날개를 펴고 세상으로 날아오르자는 내용이 아닐까 한다.

이영훈 교수께서 이 책에서 말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결국 이 한 줄 요약이 아닐까??

물론, 상당히 힘든 노력을 해야 가능한 일이지만 결코 불가능 한 건 아니다.

결국, 우리는 서로 맡은 바 책임을 다 하며 최선을 다 해 개개인이 강해진다면 내 민족 내 나라가 강해지는 것임을 우리 모두가 믿고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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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tz7311 2019-09-10 공감(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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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객관성으로 증명되어야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하게 읽는다면 역사적 경제적인 부분에서 객관성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한 저자의 노력이 돋보이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도 한국적인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의를 비교적 냉철하게 살펴본다는 점에 있어서 학문적으로 가치가 충분한 시도라고 여겨집니다.

학자라면 이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고, 요즘같이 학문적 성과를 양으로 승부하는 세태에 수십년에 걸친 연구결과를 책으로 펴낼 수 있는 학자가 있다는 점도 다행입니다.




무엇보다도 역사를 객관적으로 시간을 두고 관찰하는 것이 제대로 된 시각을 확보할 수 있는 필수적인 것이라고 글로는 표현되지 않았지만 읽는 이에게 교훈하는 점도 높이 살만합니다.

많은 작가들이 쏟아내는 이것저것 편집된 지식이 아니라

학자로서 연구된 일관성있는 논리가 끝까지 전개되는 논점부분에 충분히 공감이 가고

아울러 많은 이들이 느끼고 행동할 수 있는 근거로 충분히 인사이트가 있는 책이라고 여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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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태 2019-09-07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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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진실과 불편한 허구 사이

논란의 책을 읽었다. 책을 읽기 전에는 이 책이 왜 논란이 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완독한 지금 시점에서는 생각이 바뀌었다. 대표저자 이영훈 교수의 과거 저작들에 비해 과히 대담하고 도전적인 서술이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 이후 일본의 무역보복이 개시되고 한일군사정보협정(지소미아)이 종료되는 등 최악의 한일 관계를 겪고 있는 작금의 시점에서 한 번쯤 읽어볼 만한 책이라 생각한다. 나는 이 책이 주장하는 모든 내용을 긍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반론이 적지 않은 입장이다. 특히 마지막 위안부 관련 장은 상당히 대담하고 거칠어서 평소 비이성적 반일 정서를 비판해온 나조차도 굉장한 긴장감과 반발심으로 읽어내려갔다.

제목부터 도발적이다. 많은 책을 읽어왔지만 '종족주의(種族主義)'라는 용어는 처음 접한다. 이영훈 교수는 종족주의를 명확히 정의한다. '자유로운 개인'이란 범주가 존재하지 않는 집단, 즉 집단에 몰아(沒我)로 포섭되며 집단의 이익과 목표와 지도자를 몰개성으로 수용하는 집단이 바로 '종족'이며, 이러한 집단을 기초 단위로 한 정치가 곧 '종족주의'라는 것이다. 이를 가능케 한 동력은 한국의 오랜 역사 가운데 내재된 '샤머니즘'이며 '거짓말', '물질주의', '육체주의'가 그 현실을 이루는 축이라고 비판한다. 즉 종족주의란 한국적 민족주의의 독특성을 부정적으로 비꼰 개념인데 한민족 그 자체가 하나의 집단이고 권위이고 신분으로 발흥해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종족주의적 민족성이 비이성적인 반일감정과 뒤섞여 '반일 종족주의(反日 種族主義)'를 만들어왔다는 게 이 교수의 진단이다.

『반일 종족주의』는 대표저자 이영훈 교수를 위시하여 총 6인의 공저자가 집필했다. 각 공저자들은 각기 다른 주제로 일제 시대에 대해 우리가 갖고 있던 기존의 통념을 뒤집는다. 엄밀히 말해서 뒤집는다기보다 역사를 사실 있는 그대로 추적하자는 취지에서 여러 실증적 자료를 제시하며 객관적 인식을 촉구한다. 책에 나온 대부분의 내용들은 과거 수차례 학계에서 토론된 것들이다. 예컨대 '쌀 수탈론'과 '쇠말뚝 신화' 등은 이미 학문적으로 사실관계가 정리된 것들이다. 잘못된 팩트를 바로잡기 위해 이 교수를 위시하여 소위 뉴라이트로 불리는 공저자들이 그간 얼마나 땀 흘리고 노력해왔는지 나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번 책은 완성도가 많이 떨어진다. 너무 많은 주제를 다루려 한 것 같다. 평소 주장해온 일제 시대의 여러 담론들을 다루고 있지만 기존 범위를 더 넓게 확대하여 역사적으로 가장 민감한 이슈라 할 수 있는 '독도'와 '위안부' 문제까지 건드리고 있다.

평소 나는 이영훈 교수의 책을 즐겁게 탐독해왔다. 그가 다른 공저자와 함께 쓴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은 기존의 『해방전후사의 인식』의 잘못된 시각을 바로잡는데 많은 기여를 했다. 이후 쓴 『수량경제사로 다시 본 조선후기』는 어느 학자도 엄두 내지 못할 실증적 연구를 꾀하였고, 두 권으로 출간된 『한국 경제사』는 기존의 서양식 도식을 벗어던지고 사실의 귀납적 결과로서의 한국사의 전 흐름을 추적했다. 또한 『대한민국 이야기』와 『대한민국역사』는 한국의 근현대사를 훑어보는데 훌륭한 저작들이다. 특히 『대한민국역사』는 내가 읽어본 근현대사 책 중 가장 정확하고 대중적이라 할 정도로 탁월하다. 그래서 주변의 젊은이들에게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오해와 편견 없이 탐색하기 위해 꼭 필요한 책이라고 소개하며 추천하고 있다.

이런 내 평가와는 별도로 이영훈 교수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입체적이다. 이 교수는 그간 많은 사람들로부터 욕을 먹어 왔다. 그의 책과 논문을 한 권도 읽지 않은 채 무조건 '친일파'로 비난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그가 욕먹는 이유는 간명하다. 통계와 사료를 통해 역사를 실증적으로 연구한다는 그의 실증사관이 한국인이 보편적으로 갖고 있는 민족 정서와 괴리가 있다는 비판 때문이다. 사실 이 교수가 실증사학자로서 조선 후기부터 일제시대까지 여러 고문서와 통계자료를 통해 추적한 학자적 연구활동은 과히 찬연하기 그지없다. 그 유명한 허수열 교수와의 '벽골제 논쟁', 박현모 교수와의 '세종 토론'을 흥미롭게 바라본 내 입장에서 최소한 객관적인 자료와 실증적 연구에 있어 국내에 이 교수와 맞설 자가 누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렇기 때문에 민족주의 사학자들조차도 이 교수가 수년에 걸쳐 발굴하고 연구한 '조선총독부 1차 자료'에 대해서는 인정하고 인용하고 있는 게 아닌가. 그 점에서 나는 이 교수의 학자적 실력과 양심을 높이 평가하고 존중한다.

하지만 이번 책은 굉장히 멀리 나갔다. 기존 논조에 비해 훨씬 더 과격하고 공격적이고 도전적이다. 물론 이 교수 혼자 집필한 책이 아니기 때문에 논설의 맥락과 구심력이 책 전체의 통일성 면에서 흐트러진 측면이 있다. 각 공저자들이 제시한 통계와 자료에 대해 내가 반박할 입장(수준)은 아니다. 중요한 건 서술의 관점과 논리의 전개 방식이다. 책의 일부 대목에서는 사실 확인과 논리 전개가 상당히 거친 부분이 발견되는데 그중 하나는 「독도, 반일 종족주의의 최고의 상징」라는 제13장이다. 이 교수가 직접 쓴 이 글은 사실상 무주지(無主地)였던 독도를 1905년 일본이 먼저 영토로 편입했고, 한국은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뒤인 1952년 1월 평화선 발표로 독도를 영토에 편입했다고 기술한다. 이 교수는 '우산도(于山島)' 사료나 안용복의 '울릉도 쟁계(爭界)'와 관련된 사항은 모두 기각하는데 그 논리의 수준이 평소 이 교수답지 않다. 무엇보다 독도가 한국 영토였다는 가장 명징한 증거로 꼽히는 1877년 '태정관문서(太政官文書)'와 같은 일본 측 사료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실증과 사료를 중시하는 실증주의자로서 가장 핵심적인 반대 증거를 누락한다는 건 불성실 혹은 고의적이라 의심받기에 충분하다.

가장 큰 문제는 위안부에 관한 서술이다.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서는 「종족주의의 아성, 위안부」라는 제목으로 3부 전체를, 전체 책 분량의 1/3을 할애하는데 전개하는 논지와 서술의 방식, 제시된 논거와 결론 도출이 상당히 부적절하고 매끄럽지 않다. 이 교수는 일제의 위안소 운영은 조선의 기생제와 1870년대 일본이 시행한 공창제를 토대로 생겨난 것이라 주장한다. 이어지는 주익종 교수의 글과 함께 정리해보면 위안부는 자율형 혹은 기업형 매춘의 속성을 가졌다는 것이다. 즉 일제의 강제 만행으로써 '성노예(sex slave)'로 끌려간 일은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해방 이후에도 미군 위안부가 존재했고 6·25 전쟁 시 한국군 위안부도 존재했던 것인데 1937~1945년 역사만 달랑 떼어내 일본군의 전쟁범죄라고 몰아붙이는 건 적절치 않다는 주장이다. 또한 20세기 말의 기준을 20세기 전반에 투사해서는 곤란하다고 주장한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패전한 뒤 점령국 소련군에 의해 최소 50만 명에서 최대 100만 명의 독일 여성이 강간당했다는 것을 예로 들며 일본군 위안소 문제를 등가시키는 주 교수의 논지에는 기가 찰 정도다.

이 교수와 주 교수는 일본군 위안부가
'군(軍)에 의해서 운영된 공창제의 부분집합'이라고 주장한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수많은 통계와 자료를 인용한다. 그러나 자료 인용의 폭이 좁고 근거가 일면적이다. 관련 장을 두세 번 정독해봐도 김학순 할머니를 위시하여 기존 위안부 피해자들의 생생한 증언을 전복할 만한 귀납적 설득력이 포착되지 않는다. 이 교수가 제시한 사료를 부정한다는 게 아니다. 연구자가 필요한 사료만 선택했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는 것이다. 위안부 중에서도 여러 층위가 있다는 가능성은 왜 단언적으로 배제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즉 자발적으로 갔던 분도 있고, 혹은 속아서, 돈 벌게 해주겠다, 공부 시켜주겠다, 그래서 속아서 가신 분도 있고, 강제로 끌려간 분도 있을 텐데, 이 여러 층위의 양립 가능성을 재단한 채 "위안부는 그들의 선택과 의지에 따른 것이다"라고 무 자르듯이 단언할 수 있는가 말이다. 이런 대담한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서는 다수가 고개를 주억거릴 수 있을 만큼의 보편성을 띤 논증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자료가 부족하고 논증이 불성실하다. 일부의 부분 오류가 있는 것을 끌어와 전체 오류로 연결 짓는 논리 전개 방식이 평소 이 교수답지 않아 아쉽다.

위안부와 관련해 몇 마디 더 하겠다. 평소 이영훈 교수는 '자유로운 개인'의 존재를 중요시했다. 그는 역사를 이끄는 동력을 자율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개인의 '자유'와 '이기심'으로 분석했다. 응당 맞는 말이다. 바로 그것이 230년 전 애덤 스미스가 발견한 공(功)이자 공산주의를 누르고 자본주의(자유시장체제)가 승리한 당연한 귀결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이 교수에게 묻겠다. 일제 시대에 자유를 말살당한 채 일본군의 성노예로 끌려갔다며 '
내가 증거'라고 외치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생생한 증언에 대해서는 왜 높은 실증적 가치를 두지 않는가. "기억이 희미해졌거나 새로운 기억이 가공됐다"라고 말하는 건 상처에 대한 인간의 기억력을 너무 낮게 평가하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이 받은 상처를 절대로 잊지 못하게 프로그래밍되어 있는 존재다. 일본군으로부터 자신의 성(性)을 유린당했다고 일관되고 애절하게 고백해온 수많은 원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은 이 교수가 평소 강조해온 '자유로운 개인'이 지금 이제서야 쏟아내는 절규의 목소리다. 그 숭고한 증언이 책 속에 소개된 몇몇 사료에 비해 무가치한 것인지 정말 진지하게 질문하고 싶다.

과거에는 느끼지 못했지만 이번 책을 통해 이영훈 교수가
인간과 역사 사이의 관계를 지나치게 평면적이고 단선적으로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의 주체는 인간이다. 인간의 실존이 결여되고 무시된 채 일정량의 실증만으로 역사를 천착해서는 곤란하다. 숫자와 기록의 양이 반드시 사실을 확정하는 건 아니다. 더욱이 연구자의 연역론을 성립시키기 위해 취사선택된 사료라면 더욱 위험하다. 역사학자라면 역사의 중심에 서 있는 인간에 대한 겸허한 이해와 성찰을 전제로 사실관계를 연구해야지 경제와 경제관계라는 수리적 공식만으로 한 시대를 재단해서는 곤란하다. 이 같은 시도는 그가 그토록 증오해 마지않은 칼 마르크스와 같은 사회과학자나 하는 행위이다. 역사에서 실증은 중요하지만 절대적이지는 않다. 실증만 강조하다 보면 오히려 그것이 진실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될 수 있다. 목적에 따라 일부만 남은 사료를 사용한 오류, 잔존하는 사료의 무리한 일반화, 사료의 잘못된 해석, 다른 사료의 이해 부족 등의 역사 실증주의가 갖는 오류 가능성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던 역사가들의 고민이었다.

총평하자면 나는 이 책에 대해 두 가지 상반된 견해를 갖고 있다. 책을 쓴 취지와 일부 주제에 대해서는 어렵지 않게 긍정할 수 있다. 작금의 한국인은 극단적 형태의 분노심으로 일본에 대한 객관적인 탐구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일본을 지나치게 우습게 보고 깔보는 경향이 한국인의 태도에 마치 전염병처럼 옮아 있다. '반일'이 마치 민족적 도덕성의 우월함을 나타내는 징표가 될 정도다. 영원한 아·적군이 없는 국제사회의 복잡한 힘의 전장에서 무엇이 국익과 민족을 위하는 길인지 냉정히 살필 수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지나친 반일주의에 함몰된 작금의 '관제(官製) 민족주의'의 낙후성을 신랄히 고발하는 이영훈 교수의 경고를 나는 오롯이 주목한다. 또한 일제 식민시대를 민족적, 정서적, 감정적 덩어리로 애매하게 보지 말고 통계와 자료를 통해 그 이면을 탐색해보자는 것에도 동의한다. 자신의 학자적 양심을 지키기 위해 평생 온갖 욕을 먹으면서도 굴하지 않고 묵묵하게 쌓아올린 그의 투혼과 신념을 높이 평가한다. 그래서 이 책의 일부분을 긍정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 책은 지나치게 많이 나갔다. '사료의 편파 선택'과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가 자주 눈에 띈다. 평소의 이 교수라면 하지 않았을 논리의 과잉과 반증 가능성에 대한 불성실한 태도는 이 책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너무 많은 내용을 대중적인 관점에서 쉽게 쓰려다 보니 애매하고 산만한 책이 되었다. 또한 지극히 예민한 주제를 공저자 여럿이 다루다 보니 논리와 표현의 통일성이 결락되어 편집과 구조 면에서 지저분한 책이 되었다. "독도가 한국 영토라는 주장은 비과학적이고 비역사적이다"라는 주장이 불과 10장 남짓한 분량으로 도출될 수 있는 주제인가. 주장에 관한 충분한 증거를 합리적이고 성실하게 제시해야 독자에게 설득력을 얻는 법인데 제한된 지면에 논거 몇 개 툭 던지고 성급하게 일반화하는 바람에 힘을 잃었다. 또한 외부 곳곳에 존재하는 여러 반론들을 일체 외면(무시)했다는 점에서 비겁한 면도 있다. 충정은 이해하나 내용은 역부족이다. 학자로서 확신이 있다면 전술한 바 있는 몇몇 예민한 주제와 관련하여 별도의 개정증보판을 출간해주기를 제안 드린다.

서평 말미의 이러한 혹평은 나의 순수한 애정에 다름 아니다. 나는 이영훈 교수가 한국에서 가장 연구를 많이 한 최고의 경제사학자라는데 이의를 달지 않는다. 조선시대와 근현대사 연구에 있어 그가 쌓아올린 실증사학의 성과는 너무나 찬란한 것이어서 일정 부분의 경외심까지 있을 정도다. 다만 책 리뷰어로서 책에 대한 평가는 냉정해야 한다고 믿는다. 한 권의 책으로서 『반일 종족주의』는 많이 부족하다. 총론은 일부분 성공했을지 몰라도 각론에서는 상당히 실패했다. 다른 공저자는 차치하더라도 이영훈 교수만큼은 많이 아쉽다. 그의 내공과 지력을 평소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아쉬움이 더 크다 하겠다. 차후 공개석상의 토론회나 후속 저작을 통해 이 책의 빈약한 논증을 보완·수정해준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이다.

책의 평가와는 별도로 서평의 첫 문단에 기술한 바와 같이
『반일 종족주의』는 한 번쯤 읽어볼 필요가 있다. 이유야 어떻든 10만 부가 넘게 팔렸다. 모든 베스트셀러는 그 시대의 관심과 정서를 반영한다. 동시대적 고민은 설사 그것이 오류를 포함한다 하더라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무엇을 얻을 수 있고 무엇이 문제인지 스스로 아는 노력은 꼭 필요하다. 한국사에 관한 기본적인 맥락만 잡고 있다면 여기저기에 경도되지 않은 채 자기 주관대로 읽어볼 수 있을 것이다. 비판도 읽고 나서 하기 바란다. 유독 힘든 서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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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 2019-09-02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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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맥락, 개념 <반일 종족주의>


1.
 
<반일 종족주의>에서 군데군데 녹아있는 묘사처럼, 조선시대에 여성인권, 특히 시골처녀들의 인권이 극악이었던 것은 사실이었을 것이다. 유교 근본주의에 희생된 여성들이 시골농촌이라는 폐쇄적 우물에 갇혀 온갖 잡일을 도맡아했던 것은 아마도 안타깝고 부끄러운 사실이었을 것이다.
 
당대 여성들에게는 혼인 선택권도 없었고, 가정폭력도 심했을 것이고, 항상 가난했기에, 입이라도 덜자는 가족의 결단에 제일 먼저 집에서 방출되어 돈벌이의 역마살에 떠돌아야 했던 처지였을 것이다. 이렇듯 위안부-정신대 문제에는 민족 요소만큼 젠더 문제가 상당부분 들어가있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날의 지방의 여학생들이 서울로 떠나고 싶듯이, 해외를 선망하듯이, 당시의 조선 처녀들도 시골과 집구석이라는 지옥을 떠나고 싶어했을 것이다. 시대가 하수상하여, 그것을 교묘하고 악랄하게 이용해먹고, 남의 비극을 팔아 장사하던 브로커들이 있었을 것이고 배움이 모자라거나 세상을 잘 알지못한 어린 처녀들, 혹은 아버지나 집안의 성급한 결정따위로 인해 발을 떠난 처녀들의 숱한 동기들이 있을 것이다. 여기까지는 충분히 납득할 수가 있다. 그러나 문제는 다음이다.
 
  
2.
 
그렇게 가난과 가정폭력을 피해 열악한 환경을 탈출한 처녀들은 한마디로 취업사기를 당했다. 오늘날에도 가출한 여중생이 성매매로 이어져 인격을 파괴당하듯이, 취업사기의 끝은 인신매매였으며, 본질적으로 전쟁과 식민지라는 거대폭력에 저항할 수 없는 성적인 착취였다. 미국의 노예 12년 처럼 밧줄에 채찍을 가해야만 꼭 노예인것인가. 노예와 노동자의 차이를 모르거나, 그런 구분따위가 필요없다고 생각하지 않는 이상 가능한 발상인가 싶다.
 
작은 비극을 피하려다 더 큰 재앙을 만난 이들의 서사가 어떻게 '자발적' , '설렘', '로망', '고수익 직장' 따위로 포장되고 단정 될 수 있는 이야기들이란 말인가. 비극 앞에 나타난 또 다른 비극은. 비극의 허위를 증명하는 사료가 아니라, '비극의 중첩'을 나타내는 또 다른 증거일 뿐이다. 일반적인 수난을 교묘하게 덧칠해서, 작달만한 능동성을 부각해 시대적 참상을 희석시키고자 하는 이영훈 류의 헛소리에는 평소 사람을 어떤 시각으로 보는지가 녹아있어 정말 역겨울 따름이다.
 


3.
 
이 책에선 요시다 세이지의 거짓말을 아주 중요한 사실로 다룬다[pp.347-351]. 그것은 팩트가 맞다. 그러나 이 책은 한 사람의 과장된 거짓말이 어떻게 시대의 왜곡으로 이어지게 되는지에는 납득할 설명을 고의적으로 누락하고 있다.
 
사람들이 떠올리는 노예 이미지는 노예사냥식 강제연행의 참거짓이 아니라, 성착취라는 본질적 요소 그자체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이후의 서술은 독자로 하여금 아래와 같은 생각으로 이끌도록 몰아간다. 아 물론, 자칭 보수 유튜버들과 논객, 지식인들의 의견을 종합하여 내가 추정한 내용임을 알린다.
 
'요시다 세이지의 거짓이 부각되어, 피해사실이 신격화 되었는데 그 타이밍이 묘하다. 위안부 할머니들을 잠자코 있다가 90년대 갑자기 등장했다. 그래서 그 갑작스런 등장이 혹여나 정치적 선동목적의 기획이 아닐까 의심스러운 여지가 다분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위안부 할머니들은 역사문제에 비타협적인 자세를 견지함으로서 상당한 정치적 영향력을 확보했다'고 말이다.
 
여기에도 큰 맥락이 누락되어 있다. 한국이 식민지 배상문제를 폭력적으로 마무리지은 한일 협정이 박정희 정권 때였고, 그 연장선인 전두환 - 노태우 군부정권이 92년까지 이어졌으며, 성노예였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것이 사회통념상 어려운 시대였으며, 그 사이 민주화가 있었고, 역사 바로 세우기 운동이 90년대 김영삼 정권에서 일어났으며, 위안부할머니들 분들이 인생을 정리할 노인이 되어 비로소 발언할 환경이 조성되었다는 생각은 전혀하지 못한다.
 
그 대신에 그녀들이 타협없는 강경한 근본주의로 인지되도록, 그래서 현실의 정치에 압력을 행사하여, 마치 한일관계를 좌지우지하는 막후 실력자인양 자연히 몰아가고 있다고 보인다.
 
위안부 정신대 할머니들이 근본주의였다면, 정말 폭탄이라도 들고 대사관으로 달려가 '지하드'를 벌였을 것이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타협하지 않았다는 것도 거짓이다. 신문기사 조금만 검색해봐도 나온다. 할머니들이 권력을 쥐었다면, 역사문제가 이랬겠나? 자기 주장과 조금이라도 다르면, 평화적인 시위조차 강성으로 몰고, 항의조차 근본주의로 몰아가는 평소의 인식이 반영 된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4.
 
정리하자면, 이쪽 계열의 학자들은 항상, ① 사소한 거짓을 발견하고 ② 그 사소한 거짓을 부각해 전체적인 맥락을 도외시하며 ③ 사회과학적 개념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④ 사실은 우리가 거짓 신화 속에 살아왔다 선동한다. 한마디로 침소봉대가 아니라 침대봉소인 것이다.
  
나도 극일은 경계한다. 한일관계의 전환을 일으킨 김대중 대통령의 결단을 정말 높이 평가하고, 이전에도 현정부가 지나치게 대일외교를 직선적으로 하는 것은 아닌가 우려한다는 시각을 내비친 적이 있다.
   
그러나 이건 해도해도 너무한다. 아무리 학문의 자유에 성역이 없다지만, 그 과정이 매끄럽지 못해 상처를 입혔다면, 해명보다 사과가 먼저였을 것이다. 자유에 성역이없다면 책임에도 성역이 없어야 한다. 이것은 아주 일반적이고 기본적인 상식이다.
  
일제시대를 미화하는 것과 건조하게 그대로 인식하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건조한 인식에는 문학적 표현이나, 흥분-욕설, 비유따위가 필요하지도 않다. 학문적인 자세도 아니다.
  
피해사실의 신격화를 경계한다면서 막상 피해자의 마음을 전혀 고려치 않고 있다. 도덕적 단죄에 저항한다면서, 먼저 도덕적인 공격을 가했다. 정당방위란 무엇인가. 학술적인 이야기라 해놓고 곳곳에 문학적 표현들이 눈에 보인다. 사회과학에서 '문학적'이라는 말이 얼마나 큰 모욕인지 아는 사람들이 저런다.
   
박해에서 신앙이 깊어지고, 깊은 신앙이 순교로 이어지려는 모양이다 보니 아예 평정심을 잃어버린 것 같다. 이영훈의 전작 <대한민국의 역사>는 그래도 나름대로 참고할 부분이있는 학문적 최소요건을 갖춘 책이었다. 그러나 이 책은 흑화의 끝. 졸작이라 평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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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메이커 2019-08-19 공감 (55)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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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베스트셀러다. 얼핏 듣기로 10만부가 넘게 팔...


화제의 베스트셀러다. 얼핏 듣기로 10만부가 넘게 팔렸다고 하는데 가격은 2만원이니 20억의 매출을 올린셈이다. 요즘 같은 출판업 불경기상황에서 대단한 선전을 펼쳤는데, 그 대열에 동참할까 말까 많이 망설였다. 도대체 어떤책인지 궁금해서 읽고 싶은데 구입하기는 싫었다. 구입하지 않고 읽는 방법은 두가지 인데 먼저 도서관에서 대출은 어려울것 같고, 다음으로 서점에서 그냥 읽는 수 밖에 없는 노릇이라 이것 저것 복잡해서 걍 구입했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책장을 넘기자마자 뒷목을 잡기 시작해 엄청난 인내심으로 다른 책에 비해 몇 배의 시간을 들여 완독했다. 정말 나의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짝짝짝!!!!


읽고 나서 이 책에 관한 서평을 찾아보니, 의외의 결과를 볼 수 있었다. 잘 몰랐던 사실을 이영훈 교장선생님을 통해 알게 됐다며 적극적으로 동조하는듯한 글들과 객관적으로 볼만하다는 의견들이 많았다. 정말 의외의 결과였다. 하나의 사안을 바라보는 자세가 사람마다 다르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되새기며, 정말 이 책을 읽는 모든 사람들이 책의 논조에 동조하는가에 대한 강한 의문감을 품었다.


일단 저자는 이영훈과 그를 따르는 몇몇의 사람들이 글을 썼는데, 그들은 자기들이 학자라면서 객과적인 사료를 바탕으로 글을 썼다고 당당하게 밝힌다. 위안부 할머니나 징용 노동자들의 증언은 자료로써 가치가 없다고 말하며 나아가자기들의 양심적인 자세를 강변하는데 과연 그럴까?


나치에 의해 저질러진 홀로코스트는 철저하게 증언을 바탕으로 역사가 재현됐다. 객관적으로 입증할 사료가 없기 때문에 증언을 바탕으로 독일과 그를 따르는 세력들의 만행이 드러난건데, 그 사실도 사실이 아닐까?


마침 이에 관한 영화를 본적이 있다. [나는 부정한다]라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인데, 데이빗 어빙이라는 홀로코스트 부정론자가 레이첼 와이즈가 분하는 역사학자 데보라 립스타트에게 사실을 증빙하라고 도발한다. 어빙은 데보라를 명예훼손죄로 고소하고 법정에서 공방을 가르는데, 그 어빙이라는 인간이 말하는 논조가 이 책의 저자들이 말하는것과 일치한다.


과연 법정은 어떤 판결을 내렸을까? 그 영화를 보시기 바란다. 도대체 왜 이런 글들을 썼을까 곰곰히 생각해봤는데 학자적인 양심이라기 보다 글을 통해 이익을 얻고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대중을 선동하는 일종의 우경화 프로파간다의 일부분이 아닐까 싶다. 기승전 빨갱이라고 결국 이들은 현 정권을 부정하고 좌파를 혐오하며 공산화에 대한 우려감을 불러일으켜 태극기 부대들에게 어필하고 있다.


태극기 부대도 이들의 말에 동조할것인가 궁금하지만, 소위 말하는 보수 내지 우파적인 인물들이 이제는 친일문제까지 건드리고 있으니 참 안타까운 사실이다. 프랑스처럼 나찌 부역자들을 일거에 처치하지 못한 역사의 잔존물들로 여겨진다.


더욱 웃긴 사실은 이들이 숭배해 마지 않는 국부 이승만은 그래도 일본인들에게 우호적인 자세를 보이지 않았다는 역사적 증거들이다. 이승만 학당 교장님이 이런 글을 쓰다니 또 하나의 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 아무튼 간신히 읽어내기는 했지만 정신적으로 피폐해지는 느낌이다. 정말 언제까지 빨갱이 타령을 할것인가? 이제는 친일까지 나아가는 그들의 확장성이 놀라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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