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02

위안부 김학순 증언록 -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 증언집1]



(4) 반일민족주의를 반대하는 모임

Byungheon Kim
Visual storyteller · 3 hrs


위안부 김학순 증언록 -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 증언집1]

내가 열네 살 되던 해 어머니는 재혼을 하셨다. 새아버지는 나보다 나이가 많은 아들 하나와 딸 하나를 데리고 왔다. 오빠는 스무 살쯤 되었고 언니는 열여섯 살이었는데 그 언니는 함께 한 지 얼마 안 되어 시집을 갔다. 새아버지하고는 같이 있고 싶지 않았지만 그 오빠하고 잘 놀았다.

기생집 수양딸로 보내져


어머니와 나 둘이서만 살다가 아버지라는 사람하고 함께 사니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아버지란 소리도 안 나오고 그 앞에 잘 나가지도 않았다. 어머니에게도 정이 떨어져 반항을 하곤 하니깐 어머니하고도 사이가 갈라졌다.

어머니는 나를 기생을 기르는 집[**주1]에 수양딸로 보냈다. 그때 내 나이가 열다섯 살이었다. 어머니와 함께 그 집에 가서 노래를 불러보고 합격했다. 그리고는 어머니가 수양아버지에게 40원[**주2]을 받고 멸 년 계약으로 나를 그 집에서 살게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도 집에 있는 것이 거북살스럽고 싫어서 그편이 오히려 속시원하다고 생각했었다.

내가 수양딸로 간 집은 평양부 경제리 133번지였다. 그 집에는 나보다 먼저 온 양딸이 한 명 더 있었다. 나는 그 집에서 금화라고 불렸다. 그 언니하고 나는 평양 기생권번에 같이 다녔다. 그 권번은 2층집이었는데 대문에 큰 간판도 있고 생도도 300명이나 있었다. 나는 2년 정도 권번에 다니면서 춤, 판소리, 시조 등을 열심히 배웠다.

권번에서 졸업증을 받게 되면 정식 기생이 되어 영업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나이가 열아홉 살[**주3]이 되어야 관에서 기생 허가를 내주었다. 졸업하던 해 내 나이가 열일곱 살이라 졸업을 하고도 영업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양아버지는 나를 데리고 여기저기 쫓아다니며 허가를 받아보려고 애를 많이 썼다. 내가 나이보다 몸이 성숙하여 양아버지는 나이를 늘려 이야기했지만 관에서는 실제 나이가 열일곱 살이라 안 된다고 했다.

국내에서 우리를 데리고 영업할 수 없었던 양아버지는 중국에 가면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 집에서 함께 기생수업을 받았던 언니와 나는 양아버지를 따라 중국으로 가게 되었다. 그때가 1941년, 내가 열일곱 살 나던 해였다. 양아버지는 중국으로 떠나기 전에 어머니에게 연락을 하여 중국으로 가는 것을 허락받았다. 떠나는 날 어머니는 노란 스웨터를 사가지고 평양역까지 나와서 배웅해 주었다.

**주1 : 양아버지 집

**주2 : 40원은 당시 쌀값으로 대략 10말 가격

**주3 : 당시 조선에서 기생 영업할 수 있는 나이는 17세, 19세라고 한 것은 뭔가 착오인 듯.

*** 수양녀로 들여서 팔아넘기는 것은 당시 인신매매의 전형적인 수법




13이재기, Faith Lee and 11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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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Sungdoo Lee 이는 한가지만 빼고 사실이다.
일제 총독부 헌병과 고등계 형사가 양아버지를 겁박하여 할수없이 양아버지가 자행한 짓 이란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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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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