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1-16

[일간개벽 2019.11.12] 오래된 하늘을 품어 새로운 하늘을 잇다 - 하야티 김지현...



Sunghwan Jo - [일간개벽 2019.11.12] 오래된 하늘을 품어 새로운 하늘을 잇다 - 하야티 김지현...
Sungkyun Journal of East Asian Stud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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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November at 06:55 ·



[일간개벽 2019.11.12] 오래된 하늘을 품어 새로운 하늘을 잇다
- 하야티 김지현

1.동학으로 여는 동아시아 신문명운동
- ‘동아시아 생명문화다양성’ 연구소장 후지이 요시이로 초청 강연 좌담회
모든 것은 후지이 요시이로가 로샤에게 보낸 편지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동아시아에 동학적인 운동을 일으켜, 동아시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동아시아의 평화와 우호를 실현하고 싶습니다.”

후지이 요시이로는 동아시아 생명문화다양성 연구소의 소장이자 일본 이토시마의 시의원입니다. ‘후지몽’이라는 닉네임을 쓰고 있다고 했습니다. 후지몽은 내년에 중국 쿤밍에서 열리는 생물다양성협약에 동아시아가 어떤 목소리를 어떤 방식으로 낼 것인지 함께 고민해볼 것을 제안했습니다.

로샤와 벽청들이 기쁜 마음으로 화답했습니다. 우리 방식대로 우리 목소리 내기, 는 벽청들이 제일 잘 할 수 있는 일이니까요. 이름하여, ‘프로젝트 쿤밍’에 우리는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요? 각 국가가 아니라 온 지구가 함께 지키는 지구법을 만들어볼까, 학살당하고 멸종당한 생물들을 위로하는 진혼제를 열까, 터전과 건강을 잃은 생물들이 인간들을 고소하는 모의재판을 열어볼까. 조금 신이 납니다. 새로운 미래가 우리의 머릿속에 그려지고 있습니다.

2. 한글과 동학
- 개벽학당과 날개 안상수와의 만남

디자이너이자 예술가인 안상수 선생님을 모셔 한글과 동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선생님은 닉네임을 ‘날개’라고 소개하며 세종을 존경하는 것 그 이상으로 생각하는 디자이너라 하셨습니다. 훈민정음의 가장 처음에 ‘우리는 중국과 다르다’고 말한 것은 문화적인 독립선언문과 같으며, 백성을 불쌍히 여겨 문자를 만든 왕은 세종이 유일하다고 말했습니다. 한글은 지금 있는 글자 중에 가장 어린 글자로, 한글 이후에 더 이상 새로운 것은 없다며 한글이 인류가 마지막으로 글자를 디자인한 프로젝트일 것이라 말했습니다. 새별과 함께 읽은 《훈민정음해례본》이 떠올라 강의 내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무엇보다 선생님이 얼마나 한글을 사랑하는지가 느껴져서 전율이 일었습니다.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PaTI)의 교장이기도 한 선생님은 올해부터 동학을 파티 디자인 교육에 반영한다며, 우리도 개벽파라 선언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최시형이 쓴 시 한 구절을 나눴습니다.
“내 한 몸이 꽃이면 온 세상이 봄이리.”
마음속에 간직하고픈 문장이었습니다.

3. 여기, 잇다
- 동아시아 청년들의 동학 이야기길

동아시아 개벽파 청년들이 한데 모였습니다. 일본에서 온 후지몽과 그의 친구들, 대만 난좡공작소, 부산 온배움터, 원주 무위당학교, 원광대학교 대학원, 그리고 개벽학당 청년들이 여주에서 만났습니다. ‘오래된 하늘을 품어 새로운 하늘을 잇다’라는 슬로건을 가지고 동학 이야기길, 그 첫 번째 여정을 시작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여주에 가기로 결정한 것은 세종과 해월 최시형의 묘가 있기 때문입니다. 새별은 한반도에 여태껏 두 번의 개벽이 있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한글과 훈민정음이 만들어진 것이 첫 번째, 그리고 동학이 생겨난 것이 두 번째입니다. 한글을 창제한 세종의 묘와 동학을 이끈 최시형의 묘가 모두 여주에 있는 것이 필연처럼 느껴졌습니다.

동학의 두 번째 교주이자, 동학 경전 《동경대전》과 《용담유사》를 만든 해월 최시형 선생님의 별명은 ‘최보따리’였다고 합니다. 수십 년간 쫓기는 생활을 하면서 보따리 생활을 했기 때문입니다. 여주에는 해월이 체포되기 얼마 전에 피신해있었다고 전해지는 곳이 있습니다. 제대로 된 기록도, 안내도, 표지판도 없었지만 동화작가 장주식 선생님의 안내를 받아 찾아가볼 수 있었습니다.

해월이 있었던 자리에 동청(동아시아 청년)들이 제각기 서 봅니다. 바스락 바스락 낙엽을 밟아보고, 노래를 부르고, 해월이 손 담갔을 폭포물에 손도 담가보고,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지는 곳에 서서 이곳이 해월이 기도했던 곳일까 추측해보기도 합니다. 한 쪽에선 열심히 땅을 파고 있습니다. 구덩이를 만든 후 ‘해월 최시형 피신지’라고 쓴 표지판을 세웁니다. 쓰러지지 않도록 돌로 단단히 지지대를 세웁니다. 이제 우리 이후에 이곳을 찾는 사람들도 알게 되겠지요. 100여년도 전에 여기 머물렀던 해월을.

해월의 묘가 있는 원적산에 오르니 노릇노릇 단풍 든 여주의 산 능선들이 한눈에 보였습니다. 동청들은 묘 앞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가을 나들이 나온 듯 한참 동안 단풍과 하늘을 바라봤습니다. 누군가 기타를 들고 노래를 시작했습니다. 해월을 향해 훌라도 한판 췄습니다. 함께 해월의 시 한구절도 읊었습니다. 꽃과 나뭇잎으로 만다라를 만들고, 그 주위를 손을 잡고 둘러쌌습니다. 동청들이 이어져 또 하나의 만다라가 생겼습니다. 둥글게 둥글게 서서 하늘의 기운과 땅의 기운, 그리고 서로의 기운을 나누었습니다. 묘에 꽃을 바치고 내려오는 길, 이상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해월과 동청들이 손잡고 한바탕 춤을 추고 온 것만 같았습니다.

2박 3일을 함께 보낸 동청들이 헤어짐의 인사를 나눴습니다.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개벽을 하다가, 때가 되면 다시 만나 영감과 기운을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하겠습니다.
“이어진 진심은 무너지지 않아, 그 때의 그들처럼.”
-여기, 잇다 주제곡 <났네 났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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