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06

2016 로위 연구원 한국계 여성학자 영입 - 송지영


로위 연구원 한국계 여성학자 영입


https://www.topdigital.com.au/node/1541
2016




싱가포르 대학 송지영 박사…이민정책 연구 전담

“호주 이민정책, 경제에 초점 맞출 것…난민 인도주의 원칙은 존중돼야”



호주의 대표적 국제전략문제 싱크탱크 로위 연구원(Lowy Institute for International Policy)에 한인 여성 학자가 영입됐다.

그 주인공은 이민과 난민정책, 인권 문제 전문가로 싱가포르 대학에서 강의를 해온 송지영 박사.
송 박사는 로위 연구원이 호주의 이민정책 재수립을 위한 정책 연구를 맡고 있다.

▶ 로위 연구소 최초의 한인 연구실장, 호주 이민정책 맡아 = 로위 연구소는 호주의 외교정책 싱크탱크(Think tank)로 국제안보와 경제, 멜라네시아, 동아시아의 다양한 국제문제를 분석하는 사설연구소다. 호주의 부호 프랭크 로위 및 기업, 정부기관의 재정지원을 받아 운영하며 현재 30여 명의 연구원이 있다. 송지영 박사(40)는 로위 연구소에서 정책 연구를 맡은 첫 번째 한인이다. 로위 연구소로 오게 된 배경에 대해 송 박사는 “싱가포르 경영대학에서 동아시아의 이민연구를 하던 중 호주 이민성의 초청으로 호주에 오게 됐다”며 “앞으로 18개월간 호주 이민정책 재수립을 위한 정책 연구를 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 이민과 난민정책, 인권분야의 전문가 = 송 박사가 로위 연구소 초청으로 호주에 오게 된 배경에는 그의 탁월한 학술연구 업적의 영향이 컸다. 특히 송 박사는 2014년 아세안협의회(ASEAN. Association of Southeast Asian Nations)에서 주최하는 회의에 기조연설자로 초청돼 특강을 하기도 했다.


송 박사는 이에 대해 “저에게는 영광스런 순간이었다. 연구와 관련된 책을 출간할 때 ‘과연 누가 이 책을 사서 볼 것인가?’ 하는 고민이 있었는데 그 동안 연구한 것을 인정받은 것 같아 정말 좋았다”고 말했다.



▶ 북한 꽃제비 다큐멘터리에 충격…북한 인권 위해 노력하자 결심 =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송 박사는 이민과 난민, 인권문제 전문가다. 언제부터 인권에 관심을 가지게 됐느냐는 질문에 “사실 대학 때 10개월 정도 혼자서 유럽여행을 했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만나는 사람마다 북한인지 남한인지를 물어보며 여러 가지 질문을 했는데 아는 것이 없어 창피했다”며 “왜 우리가 분단이 되고, 일제 식민지가 됐고, 이런 부분에 대해 학교에서 배운 것 이외에는 지식이 없었다. 그래서 한국에 돌아와서 3학년으로 복학해 정치학 수업을 청강했는데 너무 재밌었다. 그러던 중 1997년쯤 북한 꽃제비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봤는데 충격을 받아 북한을 더 알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국제법을 한 것도 북한 인권을 위해 무엇인가 해야겠다는 사명감에 시작하게 됐다”고 밝혔다.



▶ 홍콩, 영국, 스위스, 싱가포르 그리고 호주로 = 그 후 송박사는 대학시절 전공인 수학에서 국제법으로 전공을 바꿨다. 이어 홍콩에서 국제법을 전공하고,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정치학 박사, 옥스퍼드에서 박사후 과정(Post-Doc.)을 마치고, 스위스 UN인권고등판무관실에서 근무한 후 싱가포르 국립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학생들을 가르쳤다. 수학에서 국제법으로 전공을 바꾼 것에 대해 힘들지 않았냐는 질문에 송 박사는 “일단 수학이나 법은 기본적인 원리가 비슷하다. 그래서 힘들지 않았다”라며 “하지만 법에서 정치로 전공을 바꾸는 것은 정말 힘들었다. 특히 제 경우는 한국에서 대학까지 마쳤기 때문에, 예를 들어 영국의 16-17세기 정치에 대해 이름을 얘기하면 전혀 몰랐다. 특히 정치이론가, 사상가 등 정말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아 힘들었다”고 말했다.




▶ 호주 이민정책, 지금까지는 성공적…최근 국제인권법 위반 사례 나타나 = 이후 송 박사에게 지금 연구하고 있는 호주의 이민정책에 관해 물어봤다. 송 박사는 “호주는 지금까지는 잘해왔다. 국제적인 처지에서 보면 유연한 이민정책으로 이민자도 많이 받았고, 그 영향으로 경제도 성장했다”고 언급한 후 “예전에는 백인 위주의 이민정책을 펼쳤지만, 이후 다른 인종에게 이민 문호를 개방한 이후 통계적으로 보면 경제성장이 매우 컸다. 교통, 사회기초 시설, 교육 등 모든 분야에서 나아졌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최근의 이민정책을 보면 국제인권법 위반 사례도 많이 나타난다고 덧붙였다. 그는 “호주가 지난 몇 년 미얀마나 방글라데시에서 오는 보트 피플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을 펼쳤다. 토니 애벗 전 연방총리가 군대까지 동원해 난민을 막았다. 근데 그 부분에서 한 가지 실수한 것은 국제법이나 인도주의 정책 등에서 보면 일단 생명의 위험에 있는 사람들은 구해줘야 하는 것이 난민협약의 회원국의 의무인데 그것을 따르지 않고 곧바로 돌려보내는 정책을 유지했다. 이는 국제인권법에 어긋난다”고 설명했다.




▶ 경제 위주의 이민정책 펼칠 것…호주 여·야 이민정책 이견 없어 = 송 박사에게 호주 이민정책 변화 가능성에 관해 물어봤다. 이에 송 박사는 “큰 변화는 없을 것이고, 경제 위주의 이민정책에 더 초점을 맞출 것으로 예상한다“고 설명하며 “영국의 경우 정당마다 이민정책이 큰 차이가 있다. 하지만 호주의 경우 녹색당을 제외하면 자유당이나 노동당 모두 큰 차이가 없다”고 밝혔다.



▶ 급진 무슬림 이민자들을 위한 정부 노력 필요 = 호주 같이 국가면적에 비해 인구가 적은 나라는 이민이 경제 활성화의 큰 역할을 차지한다. 하지만 유럽, 특히 프랑스나 벨기에 등의 사례를 볼 때 무슬림 이민자들을 많이 받아들였을 때 나타나는 사회문제가 크다고 지적하자 송 박사는 “이민정책이라는 것이 양면성이 있다. 이민의 문을 열면 사람뿐만이 아닌 각 나라의 문화나 사상, 종교 등을 같이 가지고 온다. 그러므로 기존에 있던 문화 및 가치와 충돌하는 것이 많다”고 설명하며 “예를 들어 사무엘 헌팅턴 같은 박사는 ‘문명의 충돌’이라는 책에서 필연적으로 기독교 문명과 이슬람 문명은 충돌할 수 밖에 없다고 주장한데 비해, 또 다른 한편에선 문화도 변하고, 이민자들이 들어오면 이에 따라 정책도 변하고 다양성이 늘어 경제성장에도 도움을 준다는 주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다문화 정책에서 크게 비교할 수 있는 것이 영국과 프랑스다. 프랑스의 경우 무슬림 이민자들이 프랑스에 정착할 경우 유럽의 가치에 따라 변해야 한다는 주장과 정책을 펼쳤다. 학교에서도 히잡, 무슬림 심볼, 장신구 등을 금지시켰다. 그러나 오히려 자기들 정체성을 지키려고 했던 프랑스의 경우 이민정책이 실패했고, 반대로 영국은 문화를 존중해주고 사회의 일부로 받아 들여 사회 구성원으로서 인정했다. 결과는 완전히 상반되게 나타났다. 영국이나 덴마크의 경우 이런 사회 부적응하는 급진 무슬림 이민자들을 교육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따로 준비돼 있다. 그 부분에 대한 노력이 호주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 세계 최악의 인권 국가 ‘북한’ = 주제를 바꿔 인권 문제 전문가인 송 박사에게 북한 인권 상황에 관해 물어봤다. 북한 인권을 다른 나라와 비교해 볼 때 어떠냐는 질문에 송 박사는 단호하게 “전 세계 최악”이라고 답했다. 그는 “아무리 인권이 나쁜 나라도 UN 관계자의 접근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서방세계에 인권이 최악이라고 알려진 남수단도 접근할 수 있지만 북한은 아예 접근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 탈북자 잘 활용해야 북한 체제 변화 가능 = 그렇다면 해외 동포들의 북한 인권에 대한 노력에 대한 송 박사의 의견은 어떨까? 송 박사는 “당연히 할 수 있는 일이라면 해야 한다. 하지만 해외에서 북한인권법 등을 만든다고 해서 북한 인권이 나아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본다”고 밝히며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하지만 결국은 돌고 돌아 포용정책으로 귀결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또 북한 체재 내부에 실질적인 변화를 주는 방법으로 탈북자를 이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북한의 평양 중산층을 공략해야 한다. 최근에 탈북자들을 보면 평양의 엘리트들이 많이 나온다. 이것은 내부에 분열이 있다는 증거다. 그리고 세습체제도 누가 봐도 김일성, 김정일까지는 이해하지만, 김정은은 정말 아니다”라며 “이전에 햇볕정책을 지지했던 저 같은 사람들도 김정은은 정말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미 북한은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포기한 지 오래됐다. 북한은 김일성 일가의 봉건체제다. 김정일만 해도 자기 핏줄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정권을 물려주려고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안다. 김정은 시대에는 상상할 수도 없다. 현재 북한을 탈출해 남한에 왔던 북한 엘리트들, 즉 북한과 연결고리가 있는 이런 탈북자들을 잘 육성한다면 김정은 체제의 급격한 변화를 일으키는 하나의 시나리오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2007년 전후 납북자 피해 보상법 건의로 공로패 받아 = 송 박사에게 인권과 관련된 일을 하며 가장 기뻤던 순간에 관해 물었다. 그는 “2003년 국가인권위원회 다닐 때 ‘납북자 피해 보상법’제정에 대해서 제 건의안이 인권위원회의 권고문으로 나왔다. 그때 납북자피해협의회 가족대표인 최성철 대표가 오셔서 공로패를 주시고, 가족들이 찾아오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하셨을 때 가장 기뻤다. 그때가 20대였는데 수고한 보람이 있었다”고 밝혔다.



▶ 부모 이외의 롤 모델(Role model) 을 찾아라 = 세계 여러 나라에서 공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자라나는 호주 한인 청소년들에게 조언을 부탁하자 송 박사는 한인으로서의 본인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하라고 말했다. 그는 “부모로부터 독립심을 기르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도전하되 아니면 빨리 포기해라. 소수민족, 여성, 장애인, 노동자 출신과 같은 자아발전의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오히려 호주사회에서는 장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리고 부모 이외의 롤 모델을 찾아라”고 조언하며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여러 나라에서 공부하는 것보다는 일정 기간은 한 국가에서 공부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 가르치는 일 좋아…학생들과 만나고 싶어 = 마지막으로 송 박사에게 향후 계획에 관해 물어봤다. 이에 송 박사는 “앞으로 2년간은 정책 연구에 치중해야 할 것 같고, 나중에는 학술연구를 더 하고 싶다. 이민성 프로젝트가 2년 후에 끝나기 때문에 그 후 결정해야 할 것 같다. 사실 지금 싱가포르 경영대학에도 겸임교수로 있기 때문에 다시 싱가포르로 돌아갈 수도 있다”고 밝혔다. 또 “개인적으로는 연구도 좋지만, 현장연구와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이 너무 좋다. 이 부분에 더 힘을 쏟고 싶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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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로위연구소 첫 한국인 연구원 송지영



입력 : 2016.04.04 16: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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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정책연구실장 맡아 이민정책 재수립 연구 진두지휘
"경제에 초점 맞추면서 난민 존중하는 정책 제시할 것"

"2년 동안 호주의 이민정책을 재수립하는 연구에 착수합니다. 경제에 초점을 맞추면서 난민을 존중하는 이민정책을 제시할 생각입니다."

호주의 대표적인 국제전략 싱크탱크로 알려진 로위국제정책연구소. 이곳에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스카우트된 송지영(여·40) 박사가 내놓은 호주 미래 이민 정책의 청사진이다.

대부호인 프랭크 로위(Frank Lowy)와 기업, 정부 기관 등의 재정 지원을 받아 운영되는 이 연구소는 외교·국제안보·경제·멜라네시아·동아시아 등 다양한 분야의 문제를 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정부·국제기구·언론·시민사회에 정책을 제안하는 곳이다.
싱가포르국립대 경영대 교수인 송 박사는 호주 이민성 초청으로 18개월 동안 이 연구소에서 이민정책연구실장을 맡아 이민정책 연구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한다. 그는 5년 동안 이 대학에서 아시아 이주 및 인권을 연구하고 가르쳤다.

서울에서 송종섭·김남숙 씨 사이의 장녀로 태어난 그는 숙명여대에서 수학을 전공했다. 홍콩대에서 국제인권법 석사학위,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국가인권위원회와 국회에서 근무하다가 옥스퍼드대 이민연구소에서 박사후 과정을 밟았다. 스위스 제네바 유엔인권고등판무관실 컨설턴트로 일하던 중 2010년 싱가포르국립대에 스카우트됐다. 2003년 국가인권위원회가 '납북자 피해보상법'을 제정할 때 그가 제시한 건의안이 인권위의 권고문으로 나오기도 했다.

다음은 송 교수와 전화 및 이메일로 주고받은 일문일답.

-- 어떤 계기로 로위국제정책연구소의 제안을 받게 됐나.

▲ 지난 2014년 출간한 '동아시아 비정규 이주 및 인간안보'라는 책이 알려지면서 이주 관련 기관이 여는 각종 행사에 참석해 주제발표 또는 기조연설을 했다. 국제이주기구(IOM)를 비롯해 호주·인도네시아 정부가 공동 지원해 운영하는 비정규 이민 관련 국제협력 포럼인 '발리 프로세스 및 아세안' 등이 주최한 국제회의와 워크숍 등에 참석했다. 정부 관계자들이 책을 읽었던 것 같고, 여러 활동을 눈여겨본 것 같다.

-- 연구소에서는 어떤 일을 하나.

▲ 올해에는 호주의 이주정책 가운데 난민과 아시아 이주민에 관한 지난 20∼30년간의 동향 및 문제점을 분석한다. 그 결과를 이민성에 권고할 계획이다. 내년에는 경제 및 가족 이주 연구를 한다. 이주민은 본인과 가족의 인간안보를 위해 끊임없이 더 안전한 곳으로 이주하는 속성이 있다. 전쟁·폭력·기아·빈곤·자연재해를 피해 직업의 기회·복지·교육·자연환경이 더 나은 곳으로 삶의 터를 옮겨간다. 인간안보와 이주 간 상관관계를 연구할 것이다.

-- 호주의 이민정책을 평가한다면.

▲ 지금까지는 잘해왔다. 유연한 이민정책을 수립해 이민자를 많이 받았고, 그 영향으로 경제도 성장했다. 그러나 최근의 이민정책을 보면 국제인권법을 위반하는 등 '자국 위주'로 바뀌었다. 지난 몇 년간 호주는 미얀마나 방글라데시에서 오는 '보트 피플'을 대대적으로 단속했다. 강경 보수파인 토니 애벗 전 총리는 군대까지 동원해 난민을 막았다. 이 과정에서 국제법을 위반했다. 인도주의 정책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들다.

-- 어떤 방향으로 호주 이민정책을 재수립하려 하는가.

▲ 녹색당을 제외하고는 자유당이나 노동당의 이민정책이 큰 차이가 없다. 큰 틀은 유지하면서 경제와 난민 문제에 초점을 맞추는 이민정책을 세울 계획이다. 영국과 덴마크 사례를 염두에 두고 있다. 이민정책은 양면성이 있다. 문호를 개방하면 사람뿐만 아니라 문화, 사상, 종교 등이 함께 밀려온다. 당연히 기존에 있던 문화와 가치가 충돌한다. 프랑스는 무슬림 이민자들을 정착시킬 때 유럽의 가치에 따라 변해야 한다는 주장과 정책을 펼쳤다. 학교에서 히잡, 무슬림 심볼이나 장신구 등을 금지했다. 그러면서 자기들 정체성을 지키려고 했다. 그래서 실패했다. 반면 영국은 문화를 존중해주고 사회 일부로 받아들였다. 영국과 덴마크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급진 무슬림들을 교육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따로 마련했다. 이런 부분에 호주도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호주 내 한인 커뮤니티를 평가한다면.

▲ 호주 내 한인은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이후 이주한 초기 이주 노동자, 1980년대 한국의 경제발전 및 국제화 이후 이주한 경제·교육이민자 등으로 구성됐다. 최근 20년간은 워킹홀리데이나 유학생 신분으로 왔다가 기술이민으로 전환하는 20∼30대 젊은 층, 특정한 기술을 가지고 가족과 함께 영구이주하는 사람들이 주류다. 2000년대 후반에 잠시 한국의 탈북자들이 영국, 캐나다, 호주 등으로 여행을 갔다가 난민 신청을 하는 사례가 많았지만 이제 그 숫자는 줄어들었다. 호주 한인커뮤니티는 다른 수많은 소수민과 함께 한국만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호주 사회로 잘 적응해 가고 있다.

-- 북한 인권 문제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이유는.

▲ 박사 논문이 '북한 인권 담화 분석'이다. 한국 사람으로 우리의 절반인 북한에 관심을 품고 궁금해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대학 때 10개월 정도 혼자 유럽을 여행했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만나는 사람마다 북한인지 남한인지를 물어보며 여러 가지 질문을 했는데 아는 것이 없어 창피했다. 여행에서 돌아와 3학년에 복학해 정치학 수업을 들었다. 그러던 중 1997년쯤 북한 꽃제비의 실상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봤는데 충격을 받아 북한을 더 알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수학을 전공하다 국제법으로 바꾼 것도 북한 인권을 위해 무엇인가 해야겠다는 사명감 때문이다.

--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해 재외동포가 할 일이 있을까.

▲ 당연히 할 수 있는 일이라면 해야 한다. 하지만 해외에서 북한인권법 등을 만든다고 해서 북한 인권이 나아지지는 않으리라고 본다. 북한 체재 내부에 실질적인 변화를 주려면 탈북자를 이용해야 한다. 최근 탈북자들을 보면 평양의 엘리트가 많다. 이것은 내부에 분열이 있다는 증거다.
북한과의 연결고리를 갖고 있는 탈북자들을 잘 육성한다면 김정은 체제의 급격한 변화를 일으키는 하나의 시나리오가 될 수 있다고 본다.

-- 연구소 근무 후 계획은.

▲ 싱가포르국립대로 돌아가 이주와 인간안보의 관계를 진화적 관점에서 보는 연구를 하면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다. 우리가 사는 동아시아에 흥미로운 이주의 역사,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사례가 많다. 현장에서 이주민을 만나고, 이들과 수십 년씩 관계를 유지하면서 세대 간 진화 과정을 연구하고 기록하는 작업을 하고 싶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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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호주 로위연구소 첫 한국인 연구원 송지영

송고시간 | 2016-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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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정책연구실장 맡아 이민정책 재수립 연구 진두지휘
"경제에 초점 맞추면서 난민 존중하는 정책 제시할 것"

(서울=연합뉴스) 왕길환 기자 = "2년 동안 호주의 이민정책을 재수립하는 연구에 착수합니다. 경제에 초점을 맞추면서 난민을 존중하는 이민정책을 제시할 생각입니다."

호주의 대표적인 국제전략 싱크탱크로 알려진 로위국제정책연구소. 이곳에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스카우트된 송지영(여·40) 박사가 내놓은 호주 미래 이민 정책의 청사진이다.

대부호인 프랭크 로위(Frank Lowy)와 기업, 정부 기관 등의 재정 지원을 받아 운영되는 이 연구소는 외교·국제안보·경제·멜라네시아·동아시아 등 다양한 분야의 문제를 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정부·국제기구·언론·시민사회에 정책을 제안하는 곳이다.

싱가포르경영대 정치학 교수인 송 박사는 호주 이민성 초청으로 18개월 동안 이 연구소에서 이민정책연구실장을 맡아 이민정책 연구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한다. 그는 5년 동안 이 대학에서 아시아 이주 및 인권을 연구하고 가르쳤다.


서울에서 송종섭·김남숙 씨 사이의 장녀로 태어난 그는 숙명여대에서 수학을 전공했다. 홍콩대에서 국제인권법 석사학위,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국가인권위원회와 국회에서 근무하다가 옥스퍼드대 이민연구소에서 박사후 과정을 밟았다. 스위스 제네바 유엔인권고등판무관실 컨설턴트로 일하던 중 2010년 싱가포르국립대에 스카우트됐다. 2003년 국가인권위원회가 '납북자 피해보상법'을 제정할 때 그가 제시한 건의안이 인권위의 권고문으로 나오기도 했다.

다음은 송 교수와 전화 및 이메일로 주고받은 일문일답.

-- 어떤 계기로 로위국제정책연구소의 제안을 받게 됐나.

▲ 지난 2014년 출간한 '동아시아 비정규 이주 및 인간안보'라는 책이 알려지면서 이주 관련 기관이 여는 각종 행사에 참석해 주제발표 또는 기조연설을 했다. 국제이주기구(IOM)를 비롯해 호주·인도네시아 정부가 공동 지원해 운영하는 비정규 이민 관련 국제협력 포럼인 '발리 프로세스' 및 아세안 등이 주최한 국제회의와 워크숍 등에 참석했다. 정부 관계자들이 책을 읽었던 것 같고, 여러 활동을 눈여겨본 것 같다.

-- 연구소에서는 어떤 일을 하나.

▲ 올해에는 호주의 이주정책 가운데 난민과 아시아 이주민에 관한 지난 20∼30년간의 동향 및 문제점을 분석한다. 그 결과를 이민성에 권고할 계획이다. 내년에는 경제 및 가족 이주 연구를 한다. 이주민은 본인과 가족의 인간안보를 위해 끊임없이 더 안전한 곳으로 이주하는 속성이 있다. 전쟁·폭력·기아·빈곤·자연재해를 피해 직업의 기회·복지·교육·자연환경이 더 나은 곳으로 삶의 터를 옮겨간다. 인간안보와 이주 간 상관관계를 연구할 것이다.

-- 호주의 이민정책을 평가한다면.

▲ 지금까지는 잘해왔다. 유연한 이민정책을 수립해 이민자를 많이 받았고, 그 영향으로 경제도 성장했다. 그러나 최근의 이민정책을 보면 국제인권법을 위반하는 등 '자국 위주'로 바뀌었다. 지난 몇 년간 호주는 미얀마나 방글라데시에서 오는 '보트 피플'을 대대적으로 단속했다. 강경 보수파인 토니 애벗 전 총리는 군대까지 동원해 난민을 막았다. 이 과정에서 국제법을 위반했다. 인도주의 정책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들다.

-- 어떤 방향으로 호주 이민정책을 재수립하려 하는가.

▲ 녹색당을 제외하고는 자유당이나 노동당의 이민정책이 큰 차이가 없다. 큰 틀은 유지하면서 경제와 난민 문제에 초점을 맞추는 이민정책을 세울 계획이다. 영국과 덴마크 사례를 염두에 두고 있다. 이민정책은 양면성이 있다. 문호를 개방하면 사람뿐만 아니라 문화, 사상, 종교 등이 함께 밀려온다. 당연히 기존에 있던 문화와 가치가 충돌한다. 프랑스는 무슬림 이민자들을 정착시킬 때 유럽의 가치에 따라 변해야 한다는 주장과 정책을 펼쳤다. 학교에서 히잡, 무슬림 심볼이나 장신구 등을 금지했다. 그러면서 자기들 정체성을 지키려고 했다. 그래서 실패했다. 반면 영국은 문화를 존중해주고 사회 일부로 받아들였다. 영국과 덴마크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급진 무슬림들을 교육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따로 마련했다. 이런 부분에 호주도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호주 내 한인 커뮤니티를 평가한다면.

▲ 호주 내 한인은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이후 이주한 초기 이주 노동자, 1980년대 한국의 경제발전 및 국제화 이후 이주한 경제·교육이민자 등으로 구성됐다. 최근 20년간은 워킹홀리데이나 유학생 신분으로 왔다가 기술이민으로 전환하는 20∼30대 젊은 층, 특정한 기술을 가지고 가족과 함께 영구이주하는 사람들이 주류다. 2000년대 후반에 잠시 한국의 탈북자들이 영국, 캐나다, 호주 등으로 여행을 갔다가 난민 신청을 하는 사례가 많았지만 이제 그 숫자는 줄어들었다. 호주 한인커뮤니티는 다른 수많은 소수민과 함께 한국만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호주 사회로 잘 적응해 가고 있다.

-- 북한 인권 문제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이유는.

▲ 박사 논문이 '북한 인권 담화 분석'이다. 한국 사람으로 우리의 절반인 북한에 관심을 품고 궁금해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대학 때 10개월 정도 혼자 유럽을 여행했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만나는 사람마다 북한인지 남한인지를 물어보며 여러 가지 질문을 했는데 아는 것이 없어 창피했다. 여행에서 돌아와 3학년에 복학해 정치학 수업을 들었다. 그러던 중 1997년쯤 북한 꽃제비의 실상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봤는데 충격을 받아 북한을 더 알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수학을 전공하다 국제법으로 바꾼 것도 북한 인권을 위해 무엇인가 해야겠다는 사명감 때문이다.

--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해 재외동포가 할 일이 있을까.

▲ 당연히 할 수 있는 일이라면 해야 한다. 하지만 해외에서 북한인권법 등을 만든다고 해서 북한 인권이 나아지지는 않으리라고 본다. 북한 체재 내부에 실질적인 변화를 주려면 탈북자를 이용해야 한다. 최근 탈북자들을 보면 평양의 엘리트가 많다. 이것은 내부에 분열이 있다는 증거다. 북한과의 연결고리를 갖고 있는 탈북자들을 잘 육성한다면 김정은 체제의 급격한 변화를 일으키는 하나의 시나리오가 될 수 있다고 본다.

-- 연구소 근무 후 계획은.

▲ 대학으로 돌아가 이주와 인간안보의 관계를 진화적 관점에서 보는 연구를 하면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다. 우리가 사는 동아시아에 흥미로운 이주의 역사,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사례가 많다. 현장에서 이주민을 만나고, 이들과 수십 년씩 관계를 유지하면서 세대 간 진화 과정을 연구하고 기록하는 작업을 하고 싶다.



ghw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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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탈북자들의 증언이 무너지는 이유
Ha-young Choi, 2015년 10월 05일
https://kr.nknews.org/%EC%9D%BC%EB%B6%80-%ED%83%88%EB%B6%81%EC%9E%90%EB%93%A4%EC%9D%98-%EC%A6%9D%EC%96%B8%EC%9D%B4-%EB%AC%B4%EB%84%88%EC%A7%80%EB%8A%94-%EC%9D%B4%EC%9C%A0/







탈북자 인터뷰를 통한 학술·정책 연구가 가지는 윤리적 문제점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는 2004년 발표한 보고서에서 북한 지도자 김정은을 반인도주의 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기소하고 이 사건을 국제형사재판소에 회부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북한은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의 입국을 거부해왔다. 대신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는 이 보고서 발간을 위해 잘 알려진 탈북자 신동혁을 포함하여 한국, 일본, 영국, 미국에 거주하는 240명의 북한이탈주민과 비밀 인터뷰를 진행했다.

2015년 1월, 북한 정부는 신동혁의 이야기가 거짓이라고 주장하며, 신 씨의 아버지를 촬영한 비디오를 내보냈다. 의혹이 제기되자 신 씨는 자신이 쓴 책에 있는 이야기의 일부분, 14번 수용소에 관련된 장과 그가 고문당했다고 주장한 나이가 사실이 아님을 고백했다.

북한 주민들의 이야기가 나중에 가서야 신뢰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밝혀진 경우는 여럿 있었다. 이순옥은 2004년 미국 하원에서 정치범 수용소에서 이루어지는 고문과 기독교인들에게 철물을 부어 화형하는 것에 대해 증언했다. 이후 이 씨는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된 적이 없는 경미한 경제사범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비슷한 사례로, 권혁은 미국 의회에 자신이 베이징에 있는 북한 대사관에서 정보를 담당하는 관리로 일했다며 정치범 수용소에서 생체실험을 하고 있다고 증언했다. 이는 2004년 미국 의회에서 북한인권결의안이 통과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하지만 연합뉴스가 권 씨는 단 한 번도 그러한 정보에 접근했던 적이 없었다는, 그의 신변에 관한 의문을 제기했다. 이후 권 씨는 대중의 관심에서 잊혀졌다.

북한 정권이 심각한 인도적 범죄를 저질러왔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탈북자들의 증언을 신뢰할만한 증거로 삼는 데에는 근본적인 회의가 존재한다. 미국의 북한인권결의안과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는 북한에서 살던 사람들의 구술 증언에 상당 부분 의존한다. 북한학 연구자들과 정책 분석 역시 탈북자들의 증언을 정보로 사용한다. 로스엔젤레스타임즈의 전 서울 특파원 바바라 데믹이 저술한 세계적 베스트셀러 ‘Nothing to Envy (세상에 부럼 없어라)’는 탈북자들의 증언에 전적으로 의존한 비학술저작의 대표적인 사례다.


북한인권문제에 접근하는 연구방법론에 대해 논의할 점이 있으며, 연구자들은 심각한 윤리적 딜레마를 상대해야

필자 역시 1999년부터 북한과 인권 문제를 연구하면서 북한이탈주민들을 인터뷰해 왔다. 필자의 경험은 북한인권문제에 접근하는 연구방법론에 대해 논의할 점이 있으며, 연구자들은 심각한 윤리적 딜레마를 상대해야는 점을 시사한다.
미심쩍은 신뢰성

일차적인 문제는 북한이탈주민을 인터뷰하는데 돈을 지불하는 것이 이 분야에서 관행으로 굳어진 데서 기인한다. 필자가 한국과 중국에서 북한이탈주민 인터뷰를 시작한 1990년대 후반, 원래의 취지는 인터뷰 대상자에게 식대와 교통비 명목으로 3만원 정도를 지급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작년 5월 필자는 연구 프로젝트를 위해 탈북자들과 인터뷰를 하며 시간 당 약 20만 원의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통일부 공무원은 북한이탈주민을 인터뷰 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가진 정보의 질에 따라 시간 당 5만 원에서 50만 원의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터뷰에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인터뷰 대상자의 발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이러한 관행은 연구 윤리 측면에서 심각한 질문을 제기한다. 진실을 알아내는 과정에서 연구자가 확보한 근거의 금전적인 가치는 얼마인가? 인터뷰에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인터뷰 대상자의 발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비용을 지불함으로써 연구자와 증언자의 관계는 어떻게 변화하는가? 인터뷰 대상자들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가 희귀할수록 비용은 올라간다. 인터뷰에 참여하는 탈북자들은 언론이나 서구 국가들의 의회, 유엔에서의 공개를 목적으로 상당한 비용이 지급되면 ‘더 잘 팔리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경향이 있다. 탈북자들의 증언은 증명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이순옥이 기독교인들을 화형에 처한다고 했던 것이나 김혜숙이 아이를 죽여 장터에 내다 판다고 했던 것처럼 아예 꾸며진 이야기인 경우도 있다.

또 다른 문제는 일대일 인터뷰가 과장되거나 부정확한 정보를 생산해내는 경우가 잦다는 것이다. 비록 복수의 정보를 교차점검 하여 잘못된 정보를 바로잡는 방법이 있지만 이 작업은 몹시나 시간이 걸리며 출처가 한 명인 정보의 경우 증명하기 어렵다.


비극적이고, 극적이고, 생생하며 감정에 호소하는 내용들이 증가

2010년을 기점으로 탈북자의 수가 2만 명에 이르면서 앞서 언급한, 직접 목격한 적이 없이 들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구술 증언의 문제점은 완화되었다. 자신이 겪은 일을 증언하는 것이 표준이 되었지만 동시에 나이가 어린 희생자들이 연루된 더욱 비극적이고, 극적이고, 생생하며 감정에 호소하는 내용들이 증가했다.

할아버지가 요덕수용소에서 10년을 보낸 정치범인 강철환과, 개천에 위치한 14번 수용소에서 정치범의 아들로 태어났다고 주장하는 신동혁 모두 지독한 수용소 경험을 공유했다. ‘The Aquariums of Pyongyang (평양의 어항)’의 공동저자 강철환은 ‘14호 수용소로부터의 탈출: 북한에서 자유세계로 탈출한 한 탈북인의 놀라운 여정’의 실제 주인공인 신동혁 이전에 등장한 소수의 정치범 중 한 명이었다. 둘 모두 전 미국대통령 조지 부시를 만났다. 강 씨는 보수언론인 조선일보의 기자가 되었고, 몇몇 인권단체를 설립하였다. 신 씨의 이야기는 국제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다큐멘터리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탈북 활동가 신동혁 | 사진 출처: US Mission Geneva

북한이 이들이 말하는 증거를 무시하는 것은 놀라울 것이 없지만 북한 정부만 신 씨의 주장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삼촌이 14번 수용소장으로 있던 탈북자 강명도를 포함한 많은 유명 탈북자들은 신 씨의 이야기가 거짓이라고 주장했다. 2015년 신 씨는 그의 책에 등장하는 일부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라고 고백하였고, 이는 그의 증언의 신뢰도에 의문을 남겼다.
내재적인 어려움

더욱 큰 복잡성은 북한을 탈출한 사람들이 다른 사람 행세를 하거나 신분을 세탁하며 이름을 바꾸는 일이 흔하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일곱 개의 이름을 가진 소녀: 어느 탈북자의 이야기’의 저자 이현서는 중국과 한국에서 다른 이름을 사용하거나, 살아남기 위해 중국인인 척 했던 경험을 말했다. 신뢰할만한 연구자가 탈북자들과 인터뷰를 할 때 이처럼 계속 신원을 바꾸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어디까지 믿어야 할 지 또는 그 증언들을 어떻게 활용할지는 그 연구자가 북한 사회에 대해 얼마나 잘 아는지에 달려있다.


연구자의 국적과 성별, 나이는 인터뷰하는 탈북자의 태도에 영향을 미친다

이와 함께 연구자의 국적과 성별, 나이는 인터뷰하는 탈북자의 태도에 영향을 미친다. 예컨대, 한국어를 할 줄 모르는 나이 많은 백인 남성 연구자와 한국 국적의 젊은 여성 연구자가 듣는 이야기는 다를 것이다. 영어 통역을 거친 인터뷰와 달리, 한국어 구사 능력은 증언에 드러나는 미묘한 어감 차이와 민감한 정보를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와 미국 의회의 청문회는 통역자에게 의존하고 있으며, 이는 많은 세부 정보가 유실되거나, 잘못 전달됨을 의미한다. 또한 문제는 단순히 통번역 과정에서 일부 정보가 사라진다는 사실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한국어의 언어적 특성상 젊은 연구자와 나이 많은 탈북자 사이에 위계가 형성될 수도 있다. 젊은 연구자들은 나이 많은 탈북자에게 존댓말을 써야 하는 반면, 반대의 경우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탈북자들을 인터뷰할 때, 연구자의 성별 역시 또 다른 변수이다. 연구자의 신체적 특징, 성격, 혼인 유무, 교육 수준, 가정 배경에 대한 언급은 매우 흔하지만, 통역자를 동반한 백인 남성 연구자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지는 않을 것이다. 연구자들은 자신의 국적과 언어, 성별, 인종, 나이가 탈북자와의 관계에서 변수가 될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비극적이고 충격적인 이야기들의 경쟁, 이것이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방식

탈북자들은 인터뷰를 하는 사람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잘 알고 있다.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나 미국 의회, 서구 언론을 불문하고 질문은 한결같다. “왜 북한을 떠났나? 그곳에서의 삶은 얼마나 끔찍했나?” 그들의 이야기가 끔찍하면 끔찍할수록 더 많은 관심을 받는다. 국제적인 행사에 초청받는 일이 늘어날수록 수입이 늘어난다. 비극적이고 충격적인 이야기들의 경쟁, 이것이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방식이다. 이는 한국에서 폐지를 줍거나 화장실을 청소하며 돈을 버는 일보다 나은 삶이다.
묻히는 진실

16년 동안 탈북자에 대해 연구하며, 필자는 모순적인 이야기와 고의적인 생략, 거짓말을 수 없이 많이 경험했다. 또한 사기와 불법행위에 연루된 일들을 목격하기도 했다. 한 번은 연구를 더 이상 진행할 수 없을 정도로 신뢰를 잃은 적도 있다. 이러한 사건들은 믿을 만한 이야기를 걸러내 윤리적인 방식으로 전달하고 분석하는 필자의 학술적인 역량에는 긍정적 영향을 미치기도 했지만 필자가 진지하게 천착해온,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 방식에 대한 개인적 신뢰에는 심대한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책과 미디어를 통해 얻은 유명세가 탈북 활동가들을 옥죄기도 한다

거짓 증언은 북한인권 문제를 다뤄온 활동가와 연구자들에게 치명적이다. 많은 탈북자들은 이러한 현상의 근원을 탈북 활동가에 대한 시장압력이라고 밝혔다. 22호 수용소의 간수로 일했던 안명철은 대중들이 충격적인 이야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탈북 활동가들은 단순히 그에 맞춰 반응할 뿐이라고 말했다. 15호 수용소에 수감되어 있었던 정광일은 책과 미디어를 통해 얻은 유명세가 탈북 활동가들을 옥죄기도 한다고 말했다.

영국에서 ‘재영한민족협회(Korean Nationality Residents Association)’를 설립한 최승철 대표는 “많은 북한 사람들은 북한의 인권침해 실태에 대한 큰 그림이 사실에 부합하는 한, 작은 오류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는다. 우리 북한 사람들은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알지만, 동시에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나 미국의 북한인권결의안과 같은 커다란 정치적 움직임을 망치고 싶지 않다”고 강조했다.

여전히 분명하지 않은 것은 정보기관으로서 국가정보원의 역할이다. 국정원이 어느 정도로 탈북자들의 활동에 개입하는지 파악하기는 어렵다. 국정원의 개입이나 탈북자들의 거짓, 과장은 북한의 인권실태에 대한 자료 조사 보고서나 논문의 질적 하락을 불러와 북한인권 연구나 궁극적으로는 그 개선에도 악영향을 미칠 위험이 크다.

이 글을 쓴 송지영은 싱가포르 경영대학교의 교수이자 Human Rights Discourse in North Korea의 저자입니다. 최하영이 번역했으며 메인 사진은 Rohan Radheya가 찍은 것입니다. 원문은 여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 글은 Asia & the Pacific Policy Society’s Policy Forum과 송지영의 개인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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