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03

독일통일과 두 목사 / 김누리

독일통일과 두 목사 / 김누리

등록 :2014-07-20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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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누리 중앙대 교수·독문학
김누리 중앙대 교수·독문학
독일통일의 일등공신 하면 으레 서독의 ‘동방정책’을 떠올리는 이가 많다. 하긴 동방정책이 독일통일에 커다란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독일통일의 주역은 어디까지나 동독 시민들이었다. 스탈린주의적인 호네커 정권을 무너뜨린 것도 그들이요, 베를린장벽을 허문 것도 그들이다. 독일통일은 무엇보다도 동독 시민들이 1989년 가을 목숨을 걸고 이루어낸 ‘동독혁명’의 결과였다.
그러나 ‘동독혁명’은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낯선 개념이다. 서독의 언론과 지배층이 그것을 인정하길 꺼렸기 때문이다. 그들은 동독인들이 당당한 주체로서 통일독일의 일원이 되는 것을 원치 않았고, 동독의 정체성이 부활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베를린장벽 붕괴 25돌이 되는 오늘날 동독혁명의 역사적 의미는 새롭게 조명돼야 한다. 특히 1989년 10월9일에 벌어진 라이프치히 ‘월요시위’는 독일 역사상 유례가 없는 거사였음을 기억해야 한다. 죽음을 각오하고 몰려든 7만명의 시민들이 비폭력의 상징인 촛불 하나에 의지해 40년간 지배해온 스탈린주의 체제를 종식시킨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이는 혁명의 역사가 부재한 독일에서 최초로 성공한 혁명이었다.
동독혁명은 또한 ‘개신교 혁명’이었다. 교회가 혁명의 진앙이었고, 목사들이 혁명의 중심이었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외치는 시민들이 교회로 모여들었고, 목사들이 이러한 움직임을 조직했다. 특히 동독혁명의 기폭제이자 절정이었던 라이프치히 월요시위의 한가운데에는 니콜라이 교회의 ‘전설적인’ 목사, 크리스티안 퓌러가 있었다.
2007년 니콜라이 교회 사목실에서 퓌러 목사와 나눈 대화를 잊을 수 없다. 그는 “독일통일의 본질은 세계관의 독재에서 자본의 독재로의 이행”이라고 진단하면서, 자본의 독재에 맞서는 것이 여생의 과제라고 했다. 동독 공산당을 무너뜨린 노목사가 이제 자본과 힘겹게 대결하고 있었다. “기독교인인 당신이 어떻게 사회주의를 신봉할 수 있습니까?” 반공국가에서 온 필자의 우문에 그는 웃으며 답했다. “저는 기독교인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자인 것이 아니라,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사회주의자인 것입니다. 예수야말로 최초의 사회주의자지요.”
퓌러 목사가 동독의 권위주의적 사회주의에 맞서 진정한 사회주의를 추구한 ‘기독교 사회주의자’를 대표한다면, ‘기독교 보수주의자’를 대표하는 목사는 요아힘 가우크다. 그는 1989년 동독의 변혁기에 ‘노이에스 포룸’, ‘연합 90’ 등의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다가 동독의 과거청산을 총괄하는 일명 ‘가우크 관청’의 책임자가 된 인물이다. 가우크 목사는 필자와 한 대담에서 자신은 “현실주의자”로서 “이상주의자”인 퓌러 목사와는 생각이 다르다며, 퓌러의 자본주의 비판을 체제 이행기에 나타나는 ‘정체성의 혼돈’이라고 폄하했다. 가우크는 현재 독일의 대통령이다.
지난 6월30일 크리스티안 퓌러 목사는 향년 72세로 세상을 떠났다. 독일의 언론은 그의 서거 소식을 비중 있게 다루었다. 특히 제1국영방송(ARD)은 메인뉴스에서 퓌러 목사를 “평화기도회의 창시자”이자 “동독혁명의 영웅”이라고 칭송했다. 공교롭게도 바로 며칠 전 같은 뉴스에서는 가우크 대통령이 국제분쟁 해결을 위한 군사력 사용의 확대를 주장했다.
고슴도치 머리에, 소매 없는 청재킷과 청바지 - 거리의 여느 노동자, 여느 속인과도 구별되지 않는 퓌러 목사의 허름한 모습이 영상에 스친다. 가장 범속한 외양 뒤에 가장 거룩한 정신을 간직했던 동독혁명의 전설, 우리 시대의 성자, 내 마음속의 예수 - 크리스티안 퓌러 목사의 영전에 삼가 깊은 애도를 표한다.
김누리 중앙대 교수·독문학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47651.html#csidx8ff384e698e759a9e3e2d4a92e2e27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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