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학교아세아문제연구원 - 동북아리뷰 컨텐츠
[3집 2호] 동아시아의 사상적,문화적 정체성과 "균형잡기"의 주자학- 이정환
Date : 2011.09.30 (Fri) Hit : 2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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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의 정체성을 지리적 개념—유럽을 기준으로 유라시아 대륙의 극동에 위치한 몇몇의 인접 국가들—이상의 무엇인가로 정의하려 할 때, 한자문화권이라는 점과 함께 가장 빈번히 제시되는 것이 바로 유교(儒敎)일 것이다. 역으로, 유교에 대한 정의는 동아시아의 역사와 현재를 설명하는 “유용한” 도구로 기능하여 왔다. 막스 베버 이후로 근대론자들은 서구역사 발전과 대비하여 18세기까지 기술, 문명, 인구 등 다방면에서 세계 초일류 국가였던 중국이 왜 자생적인 근대로의 이행에 실패하였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그 이유를 서구 개인주의에 대비되는 중국의 집단주의적 문화 혹은 정신세계에서 찾았으며 유교전통을 그 근원을 지목하였다. 20세기 후반의 동아시아의 경제기적을 목도한 학자들은 거꾸로 이러한 집단주의적 문화를 그 원동력으로 상정하고, 다시 이를 유교전통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2,500년 이상의 역사를 갖고 있는 유교를 하나의 틀로 정형화하려는 시도는 언제나 그 역동성을 사상시킬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중국철학사가들은 유학의 발전을 크게 두 시기—원시유학(Confucianism)과 신유학(Neo-Confucianism)—으로 나누는데, 이 분기점을 이루는 것이 바로 주자학이다. 주자학은 중국 남송(南宋: 1127-1279) 시기 주희(朱熹:1130-1200)에 의해 성립된 학문과 그 실천체계이다. 주희는 흔히 북송오자(北宋五子)로 일컬어지는 주돈이(周敦頤, 1017-1073), 정호(程顥, 1032-1085)와 정이천(程頤,1033-1107) 형제, 장재(張載, 1020-1077), 소옹(邵雍, 1011-1077)에게서 시원한 새로운 흐름의 유학철학의 집대성자로 일컬어 지며, 넓은 의미에서 이러한 흐름을 성리학(性理學), 이학(理學), 정주학(程朱學), 도학(道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주자학을 성리학 일반의 연속성 상에서만 이해하려는 이러한 명명법은 주자학, 더 나아가서는 동아시아 유교문화에 대한 심각한 오해를 동반한다.
주자학을 이해하는데 있어 현재까지 학계 내에서 두 가지 상호 독립적인 접근법이 융화되지 못한 채 남아 있다. 그 하나는 이기론(理氣論)과 심성론(心性論)을 통해 미증유의 도덕형이상학 체계를 정립한 철학자로서의 주희에 초점을 두는 시각이다. 다른 하나는 관혼상제(冠婚喪祭)의 교범인 『가례』(家禮), 도덕 집단 공동체를 이루기 위한 향약(鄕約), 자치적인 구휼제도인 사창(社倉) 등의 실시와 전파를 통해 당대의 사회적∙문화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사회개혁가로서의 주희에 초점을 두는 시각이다. 이 두 시각이 쉽사리 화해되지 않는 이유는 전자가 맹자 이래 끊임없는 논쟁을 야기해 온 인간 본성에 대한 논의를 성선론(性善論)의 입장으로 일단락 지음으로써 개개인의 도덕적 자율성과 의무를 형이상학적으로 정초하였던 것인 반면, 후자는 도덕의 문화적∙사회적 실천을 객관화된 규범으로 통제함으로써 개개인을 집단규범으로 귀속시키려는 노력이기 때문이다. 이를
인(仁)을 예로 들어 설명하자면, 모든 개개인은 그 본성에 인한 속성을 갖고 있으며, 이에 대한 실천은 순수하게 도덕 주체로서의 개인의 실천의지에 달려 있다고 보는 것이 전자에 해당한다면, 그 인이라는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행위방식을 보편적인 규범으로 객관화한 것은 후자에 해당한다. 즉 주자학의 내부에는 도덕적 자율성과 집단규범에 대한 존중 혹은 복종의 정당화가 공존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주자학의 두가지 측면은 현재 우리가 유교문화 일반을 이해할 때 연상되는 두 가지 이미지와도 상관된다. 그 하나는 경전을 읽고 고답적인 논의를 주고받으며 개인의 도덕성에 한치의 양보도 하지 않으려는 꼬장꼬장한 선비의 이미지이고, 다른 하나는 의관정제하고 제사를 지내는 등 의례와 규범을 엄격하게지키려 하는 양반문화의 이미지가 그것이다. 지금까지 주자학에 대한 연구는 이 두가지 측면이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간과함으로써 균형잡힌 이해를 놓치고 있는 측면이 다분하다. 특히 이 두가지 측면이 유가문화 내부에서 공존할 수 있었던 것은 주희가 이루어낸 일종의 균형잡기의 결과라는 사실도 함께 간과되어 왔다.
성리학의 연속성 상에서 주자학을 이해하려는 접근법은 북송오자에 의해 정교화된 이(理), 기(氣), 심(心), 성(性), 태극(太極)과 같은 핵심적인 형이상학적 개념들을 주희가 수용∙재정립하였다는 측면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러한 성리학의 흐름에는 규범문화의 정착이라는 측면은 대부분 결여되어 있다. 물론 북송오자에게서도 예제나 정전법(井田法) 같이 규범문화 및 제도화의 노력이 나타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들이 생산해 내고 후대에 전수된 문화적∙사회적 규범은 미미할 따름이다. 달리 말하면 북송오자와 주자학을 연속성으로 묶어주는 연결고리는 도덕 형이상학과 이에 따른 수양론에 국한된다. 바로 이러한 점이 주자학의 두번째 측면, 즉 도덕실천의 보편성을 위한 규범문화의 제정을 요청하는 계기가 된다.
개개인에 내재되어 있는 도덕적 잠재력 혹은 성선론에 기반한 성리학 일반의 도덕형이상학은 주희 시기에 이르면 그 정점에 달하게 된다. 일종의 인과론적인 설명의 틀인 체용론(體用論)을 바탕으로 주희 이전의 성리학자들은 천부된 선한 본성을 일깨우고 그것을 유지하는 것이 인간이 보편적으로 도덕적이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이라고 보았다. 달리 말하면, 인간은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보편적으로 선한 본성을 갖고 있다는 강한 믿음은 그것이 체현될 조건을 충족할 경우라면 어떠한 외적 규범의 도움이나 강제 없이도 모든 인간이 보편적으로 선한 행위를 실천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결론을 도출하게끔 하였다. 주희 이전의 성리학자들은 어떻게 이 체현의 조건을 충족할 수 있는 것이냐라는 문제를 놓고 수양법의 매우 미묘한 차이를 밝히는데 매몰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은 외재화된 규범이 없이 이미 내재된 도덕성의 실현만으로도 보편적인 도덕실천이 가능하다고
하는 일종의 반법률주의적 태도를 암묵적으로 정당화하는데 이르게 된다. 이러한 극단적인 성선론의 경향은 외부자들로 하여금 순간적인 깨달음이 가능하다면 부처가 되기에 충분하다는 돈오(頓悟)설의 선불교를 연상하게끔 하였다. 즉 주희의 시기에 이르면 반불(反佛)이라는 모토로 발전해오던 성리학이 오히려 불교의 아류, 유가의 탈을 쓴 사이비 불교로 전락하는 결과를 초래하였으며, 이는 또한 유교의 발전이 규범문화로부터 한걸음 더 멀어지고 있었음을 방증한다.
주희가 가례와 같이 규범문화의 창달을 요청하게 된 현실적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철학적으로 주희는 개개인에게 천부된 선한 본성이 내재되어 있다는 사실을 형이상학적으로 정초함과 동시에, 이를 깨닫고 유지하는 것만으로는 도덕실천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것을 논증하였다. 이를 통해 주희는 한편으로 성리학의 핵심 개념인 성선론을 옹호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외적인 규범문화의 정당성을 정초하려고 하였다. 이를 위해 주희는 성선론을 단순한 선한 가치를 추구하려는 인간의 경향성일 뿐만 아니라, 우주의 현상이 질서있게 운행되는 것처럼 인간이 완전하게 본성의 선함을 구현한다면 그것은 곧 사회적 질서를 동반해야 한다는 명제를 제시하였다. 즉 여기서의 도덕 판단은 그 동기의 선함뿐 아니라 항상 보 편적이면서 집단의 질서를 구현해야 한다는 결과를 동시에 충족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주자학이 집단주의를 일방적으로 옹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희에게 있어서 각 집단의 목적과 가치는 각 개인에 내재한 보편성의 구현을 통해서만이 정당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개인과 집단이 가치판단이나 목적 설정에 있어서 서로 충돌하고 있다면, 그 상황 자체가 한쪽 혹은 양자가 보편적∙객관적 가치와 질서를 구현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증명하는 것이다. 따라서 집단 속의 개인은 집단이 설정한 외적 규범이나 목적과 불일치 할 경우, 자신의 판단이나 행위를 겸허하게 반성해야 할 의무를 지닌다. 왜냐하면 오직 완전자로서의 성인만이 내재적인 선함을 완전하게 구현할 수 있으므로, “보통 사람들”은 그 자신의 오류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러나 만약 자신의 행위방식과 목적이 선하며 옳다라고 믿는다면, 주자학은 그러한 개인에게 타인이나 집단의 요구에 순종해야 할 의무를 강요하지 않는다. 달리 말하면 개개인은 모두 현실적으로 도덕적 한계를 갖고 있음과 동시에 그 본성 자체는 개인과 집단의 행위 규범 및 목적의 유일한 정당성의 근거이다. 따라서 만약 타인이나 집단이 개인의 도덕적 자율성을 억압하려 한다면 모든 개인은 이에 대해 저항할 권리를 함께 갖는다. 주자학에 있어서 외적 권위에 대한 복종이나 타협은 도덕적 덕목으로 설정되지 않는다.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면, 명령의 주체는 다름 아니라 내 마음 속의 선한 본성이며, 이에 복종하는 것 또한 도덕실천의 주체로서의 내 마음이다. 그리고 복종의 관계는 타자나 집단과의 관계로 확장되지 않는다. 주자학에 있어서 순수하게 타율적인 행위는 어떠한 정당성의 근거도 갖지 못한다. 아마도 이러한 철학적 기반은 예를 들자면 조선 시대나
중국의 명대에 황제나 왕의 권위에 생명을 담보로 도전하는 유자들의 모습을 떠올린다면 좀 더 쉽게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주희에게 있어서 객관화된 규범문화의 가치 혹은 정당성은 어디에 근거하는가? 그리고 그것은 주자학 내에서 내재된 본성의 선함이라는 명제와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가? 주희는 이 문제를 본성의 지극히 선함은 경험의 세계를 뛰어넘는 형이상학적 사실로 상정하고, 아울러 그것을 실현해야 하는 당위를 현실의 인간이 타고나는 도덕 지식과 실천능력의 한계로 설명함으로써 해결하고자 한다. 완전자가 아니라면 인간은 경험적으로 선한 측면과 악한 측면을 동시에 갖고 있다. 따라서 경험적으로 인간 본성의 선함을 정당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중용』(中庸)에서 말하는 것처럼 인간의 본성이 “하늘이 명한것”이라면 인간의 본성도 하늘을 닮아 있어야 한다. 여기서 주희는 순수지선함과 함께 하늘의 운행은 궤도에서 벗어나지 않음이라는 의미에서의 질서를 하늘의 속성으로 간주하고, 아울러 이를 인간 본성의 속성으로 정의하였다.
그러나 개개인마다의 특성, 욕구, 습관 등은 인간 본성이 자연발생적으로 발현되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에 사실로서의 인간 본성과 현상으로서의 인간의 특성 사이에는 괴리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일반적인 인간들은 스스로 도덕적 완전성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구현하는 데에는 한계를 갖기 마련이다. 이 한계는 두 가지 유형으로 드러나는데, 그 첫 번째는 무엇이 옳은지를 모르는 앎의 문제이고, 두 번째는 옳은 것을 실천하려는 의지의 문제로서, 이를 흔히 지행(知行)의 문제라고 일컫는다. 주자학이 이전의 성리학이나 이후의 양명학과 가장 두드러지게 대별되는 지점이 바로 이 지행의 한계를 극복하는 방법의 제시에 드러나 있다.
주희는 성선론자답게 인간 본성 안에 이 지행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원동력이 잠재되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가 동시에 사회적 규범이나 경전과 같은 외적 권위를 긍정하는 근거는 바로 이 두가지 접근이 추구하는 목적이 궁극적으로 인간에게 내재한 선하고 질서있는 본성을 구현한다(즉,『대학』(大學)에서 말하는 “명명덕”明明德)라는 단일한 목적으로 수렴되기 때문이다. 즉 외적인 규범이 진정으로 인간 본성을 객관화한 것이라면, 그리고 인간 본성 안에 인간 사회의 질서가 이미 내재되어 있다면, 개인이 이러한 외적 규범을 따르는 것은 곧 자기 본성을 따르는 것과 다르지 않다. 주희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바로 이러한 모방적인 행위를 반복하는 것이 내면의 선한 본성을 자각하고 실천할 수 있는 지름길임을 역설한다.
이 지점에서 주의해야 할 점은 외적 규범이 인간 본성을 온전하게 객관화해야 한다는 조건이다. 주자학에 따르면 객관적 규범의 창조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공동의 작업일 수도 있으며, 반대로 누구도 그 절대적 가치나 정당성을 주장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바로 이 모순된 듯한 결론으로부터 주희는 개인의 도덕적 자율성과 외적 규범의 정당성 간의 균형을 마련할 근거를 마련한다. 종국에 주자학에 있어서 외적 규범이 개인에게 일종의 권위를 갖는다는 것은 오로지 실천주체인 개인들이 그것의 정당성을 스스로 인정할 경우에 한정된다. 여기에는 외적 권위에 대해 개인의 도덕적 자율성을 보장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된다. 아울러 개개인은 자신의 도덕적 한계를 사실로 받아들이고 정당하게 제시된 외적 규범을 겸허하게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바로 여기서 찾아지는 개인의 도덕적 자율성과 객관화된 규범의 요청 간의 균형은 바로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유교문화에 대한 상호 상반된 듯한 이미지—의례와 같이 집단 규범에 순종적인 면모와 외적 권위에 저항하는 도덕적 자율성을 강조하는 측면—가 공존할 수 있는 사상적 근거를 마련해 주었다. 그리고 명대 왕양명이 이 양자간의 관계에서 무게의 중심을 도덕적 자율성으로 이동시켰을 때, 유교는 그 집단 규범적 성격을 상당부분 상실하였다. 다시 명말청초의 유자들이 양명학을 선불교 혹은 반법률주의로 비판하였을 때는 다시 무게의 중심이 집단적 규범의 강조로 치우치기도 하였다. 이러한 균형에 대한 요청은 개인주의 -집단주의나 주관주의-객관주의의 도식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이 오히려 동아시아 유교문화의 정체성과 그 변화를 설명하는데 있어 좀더 효과적인 하나의 키워드를 제공해 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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