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宇衍 - #통계마당 #통계분석연구회 “강제노동=노예노동” 주장자들의 통계적 “사기”와 에무카에 탄광 {임금대장}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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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노동=노예노동” 주장자들의 통계적 “사기”와 에무카에 탄광 {임금대장}의 “대표성” 문제.
대다수 한국인들은 1939-1945년에 일본으로 동원된 조선인들이, 일본인들과 달리 “민족차별적”으로, 임금을 받지 못했거나 매우 적어서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고 생각한다. “민족적 임금차별”은 ‘강제노동=노예노동“을 주장하는 연구자들에게는 핵심적인 근거였다. 내가 제시한 에무카에 탄광의 {임금대장} 분석에 대해 표본의 “대표성” 문제, 즉 이 사례가 당시의 일반적인 상황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고 비판한 통계학전문가(?)들의 생각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러한 한국인들의 “상식”은 어디에서 생겼을까? 가까이는 한국`일본의 노무동원 연구자들의 주장이며, 더 거슬러 올라가면 박경식(1965년 {조선인강제연행의 기록})이 바로 그것이다. 박경식의 이 책은 “강제연행과 강제노동” 또는 “노예사냥과 노예노동”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는 “바이블”이나 다름없다.
박경식이 “민족적 임금차별”의 수량적 근거로 제시한 것은 무엇일까? 일반 국민이나 통계학전문가들은 당시에 조선인과 일본인의 임금에 대해 많은 조사가 이루어졌고 그 결과 많은 자료가 있을 것이며, 박경식도 그에 근거하여 주장한 것이리라고 막연히 상상할 것이다. 하지만 사실은 결코 그렇지 않다. 그러한 광역적 조사는 이루어져 본 적도 없고, 당연히 그러한 자료도 없다.
박경식은 일본 노동과학연구소라는 곳에서 1941년에 조사하여 1943년에 발간한 {조선인 노무자 근로상태에 관한 조사보고}에 있는 단 하나의 표(173-174쪽)속에 들어 있는 “D탄광” 1개의 사례를 인용하였을 뿐이다. 아래 있는 4개 사진은 해당 자료를 촬영한 것이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사진을 보면, 전체 조선인의 75%가 50엔 미만의 1개월 임금을 받고 있었던데 반해, 일본인은 그 82.3%가 50엔 이상의 임금을 받고 있다. 박경식은 이를 근거로 “민족적 임금차별”을 주장했다.
이후 한국과 일본의 “강제`노예”논자들은 모두 박경식을 답습하여 그 표를 자신들의 논저에서 어떠한 자료 검토나 합리적 추론도 더하지 않고 그대로 재인용하였다. 그러나 박경식의 해당 서술은 역사학 연구자로서 용서받을 수 없는 기만행위이며 통계의 왜곡이다. 우선, 첫 번째 그림 하단에는 A와 F 탄광의 조선인, 일본인 평균일급과 평균월급이 나와 있는데, 조선인은 일본인에 비해 각각 9.5%, 13.4% 낮을 뿐이다. 박경식은 이처럼 자신이 이용한 통계자료의 바로 아랫줄에 있는 수치들마저 무시하였고, 독자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훨씬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연구자라면 위와 같은 임금의 차이가 왜 생겼는지 의문을 가져야했다. 그저 "민족차별"만 주장하면 편하기는 하겠지만 말이다. 놀랍게도, 해당 자료의 바로 앞, 169-170쪽에는 민족별 근속기간의 분포표가 게재되어있다. 세 번째 사진에서 박경식이 인용한 D탄광을 보면, 조선인은 74.8%가 근속년수 1년 미만인데 반해, 일본인은 70.4%가 1년 이상의 근속기간을 갖고 있다.
탄광부들의 생산성은 숙련도에 달려있었고, 그것은 경험을 통해 형성되었다. 이는 당시에도 상식이었다. 동일한 임금체계를 적용해도 생산성이 낮은 사람들의 임금은 상대적으로 낮았다. 대부분 성과급이었기 때문이다. 앞서 올린 포스팅에서 조선인들의 기본급 평균은 일본인보다 낮았지만, 일본인보다 높은 기본급을 받는 조선인들도 많이 있었던 것은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요컨대, 박경식은 지적으로 태만했거나, 의도적으로 다른 연구자들과 한국`일본의 일반인들을 기만한 것이다(해당 자료는 그가 편집`출간한 {조선연구자료집}에도 수록되어있다). 자료를 볼 때, 내 느낌은 후자로 기운다. 박경식의 “바이블”이 출간된 지 무려 52년이 지났다. 그동안 어느 누구도 이러한 문제를 검토하지도, 교정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한국과 일본의 “강제`노예”론자들의 책임도 박경식의 잘못만큼이나 막중한 것이다. 내가 이러한 문제를 밝힌 논문을 이미 2년 전에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아무런 반론도, 오류의 인정도 없다. 이 또한 국민들과 관련 연구자에 대한 기만이 아니고 무엇인가?
이러한 상황에서 나는 조선인과 일본인의 개별 정보를 담은 {임금대장}을 최초로 발굴했고, 그를 이용하는 데 통계적 기법을 사용했으며, 그 결과를 발표하기에 앞서 기초통계량의 일부를 제시했다. 누차 설명했듯이, 이것은 여러 샘플들 중에서 하나를 선정한 것이 아니라, 1945년 이래 유일하게 발견된 자료다.
나는 지난 논문에서 제도적, 계획적이고 조직적인 “민족적 임금차별”의 증거를 찾아볼 수 없었다. 또 총력전이라는 전시상황에서 그러한 차별을 할 인센티브가 없었으며, 그것이 오히려 기업의 이윤극대화를 저해하는 상황이었다. 즉 에무카에 탄광의 {임금대장}으로부터 얻은 임금 관련 통계는 하등 이상할 것이 없다는 말이다.
아직도 “임금의 민족차별”을 상상`전제하고 있는 통계학전문가들은 이 자료가 표본의 “대표성”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여전히 뿌리치지 못할 것이다. 내게는 ‘통계학에는 민족이 없어도 통계학자에게는 민족이 있다’고 우기는 것처럼 들릴 뿐이다.
그동안 임금격차가 11.6%에 불과하다는 이유로 표본의 "대표성" 문제를 제기하면서 나를 비난하거나 비판해주신 일부 통계학 전문가님들의 답변이 기대된다.
#동반모 (동상을 반대하는 모임) #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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