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9-14

11 교육된 불자 조직화’ 정토회 이끌어 - 주간경향



[표지인물]‘교육된 불자 조직화’ 정토회 이끌어 - 주간경향
사회
2011.12.20ㅣ주간경향 955호
[표지인물]‘교육된 불자 조직화’ 정토회 이끌어
이학종미디어붓다 대표기자
ㆍ주목받는 뉴스메이커 법륜, 그는 누구인가

안철수 교수의 멘토로 알려지면서 정치적 영향력까지 갖추게 된 법륜 스님에 대한 궁금증이 높아가고 있다. 안철수 교수 외에도 국민적 영향력을 가진 것으로 평가되는 방송인 김제동, 배우 김여진, 시골의사 박경철, 방송작가 노희경씨 등 유명인사들과 교유하며 그들에게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그에게 관심이 쏠리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다.



지난 5월 ‘희망공감 청춘콘서트’에서 법륜 스님과 김제동씨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경향신문

높은 국민적 관심에 비례해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뉴스가 된다. 말 한 마디가 기사가 되고, 그 기사로 인해 그의 의도와 관계없이 정치적 발언이 된다. 발언의 진의와 상관없이 법륜 스님은 시나브로 정치의 한복판에 선 인물이 되어버렸다. 그러다보니 그에 대한 평가도 엇갈리기 시작했다. 새로운 정치지형을 염원하는 세력에게는 중요한 역할을 할 인물로 기대를 받는가 하면, 기득권 중심의 비토세력에게는 ‘21세기 신돈의 부활’이라는 비난을 듣는다.

고교 시절 경주불교학생회 회장 맡아
혜성처럼 등장한 법륜 스님은 도대체 어떤 인물인가.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가 울 듯이, 법륜 스님이라는 강력한 뉴스메이커가 등장하기까지에도 숱한 역경과 헌신, 실천적 보살행이 있었다. 법륜 스님에 대한 온전한 이해를 위해 그가 걸어온 수십년의 불교계에서의 행적을 살펴봐야 하는 이유다.

필자가 법륜 스님을 처음 만난 것은 1986년 비원포교원을 설립할 때였다. 당시 법륜 스님은 지금처럼 삭발염의를 한 스님이 아니었다. 당시 그는 최석호 법사라는 호칭으로 불렸다.

법륜 스님은 1960년대 중반 중학생 때 경주불교학생회에 가입하면서 불교와 인연을 맺었다. 1970년 고등학교 2학년 때 경주불교학생회 회장을 맡으면서 지금은 그의 은사(恩師·불가에서 아버지에 해당하는 스승)인 도문 스님을 만났다. 경주불교학생회는 당시 500∼600명이 넘는 회원을 확보할 정도로 활발한 활동을 펼쳤고, 경주불교학생회의 회장은 당연직 영남불교학생회 회장을 맡았다. 영남불교학생회는 경주를 비롯해 울산, 김천, 청도, 진주, 마산 등 경남지역은 물론 대구와 부산까지 아우르는 불교학생들의 모임이었다.



2002년 9월 10일 법륜 스님의 막사이사이상 수상 축하연. 왼쪽부터 박청수 원불교 교무, 고(故) 강원룡 목사, 법륜 스님, 서영훈 전 적십자사 총재, 김홍신 전 의원. /김정근 기자

법륜 스님은 고등학교 졸업 이후 서울로 올라와 활동하면서도 경주불교학생화와 깊은 유대를 이어갔다. 법륜 스님은 이처럼 학생시절부터 뛰어난 리더십을 가진 인물이었다. 서울에 올라온 법륜 스님은 고졸 학력인데도 불구하고 대입학원에서 수학과목 강사를 했다. 고졸 강사가 여러 명의 제자들을 서울대에 합격시키는 등 당시 이름을 날린 유명강사였다.

법륜 스님은 이후 대학생불교연합회의 지도법사를 맡아 대학생 불자들을 조직화하고 지도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그 와중에 신군부에 의해 10·27법난(1981년)이 일어났고, 당시 대학생불교연합회가 이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성명을 제기했다는 이유로 옥고를 치르고 고문을 당했다.

1991년 문경 대승사에서 출가
법륜 스님이 본격적으로 불교를 포교하는 법사(法師)로 활동한 것은 1985년께 관악구 신림동 소림사의 후원이 계기가 되었다. 전법 원력을 세운 법륜 스님은 1986년 창덕궁 인근에 비원포교원을 냈고, 2년 후인 1988년에 홍제역 부근에 정토포교원을 개설했다. 비용은 학원강사를 하며 모은 돈으로 충당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때(1988년 5월) 법륜 스님은 지금의 정토회가 펼치고 있는 정토운동의 근간이 되는 <월간 정토>지를 창간했다. 또한 명륜동에 불교사회교육연구소를 세워 초대 소장에 조계종 교육원장을 지낸 청화 스님을, 이사장에 조계종의 중진 진철 스님을 추대했다. 또한 진보적 성향의 불교교육기관인 한국불교사회교육원을 세워 이사장에 내소사 혜산 스님을, 원장에 학승 지명 스님을 모셨다.

이 당시 법륜 스님의 눈길을 끌 만한 활발한 불교운동에 많은 젊은 인재들이 모여들었는데, 통일전문가 조성렬 박사, 훗날 행정고시에 합격해 고급공무원이 된 배재민씨, 에코붓다 유정길 대표 등이 이 당시에 법륜 스님과 인연을 맺었던 인물들이다. 그러나 법륜 스님의 의욕 넘치는 활동은 당시 공안기관으로부터 탄압을 받는 등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아마도 이때 겪은 고초가 법륜 스님으로 하여금 활발한 사회활동, 실천적 불교활동의 신념을 더욱 불타오르게 한 요인인 것으로 보인다.

법륜 스님은 홍제동 정토포교원 시절(1991년), 문경 대승사에서 스승 도문 스님으로부터 머리를 깎고 승복을 입는 일대 변화를 보인다. 출가를 한 것이다. 촉망받는 재가법사로서 불교전법사의 한 획을 그어주기를 바랐던 필자는 삭발염의를 한 법륜 스님을 정토포교원으로 찾아가 아쉬움을 토로했다. 당시 법륜 스님은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는 필자에게 자신의 출가에 대해 은사 도문 스님과 오래 전에 약속한 것을 실행한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2007년 JTS 회원들이 수해 피해가 심한 북한주민들의 긴급지원을 위해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김문석 기자

법륜 스님은 90년대에 인도 성지순례를 하며 불가촉천민을 만나면서 JTS를 설립한다. 그의 실천적 불교활동이 외연을 넓히는 계기였다. 또한 민족에 대한 강한 신념을 가진 그는 옛 고구려 땅인 동북3성을 돌면서 김좌진 장군과 윤동주 시인 등의 유적을 찾아다녔다. 이때 동북3성을 순례하면서 탈북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런 관심은 자연스럽게 북한 돕기로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얻은 체험과 경험, 그리고 그의 실천적 불교사상은 오늘날 활발하게 활동하는 평화재단 설립의 기초가 되었다.

그의 실천적 불교활동은 수행 쪽으로는 1000일 기도,나눔의 장, 깨달음의 장으로 구체화되었고, 사회문제로는 생태(환경)운동으로 확산되었다.

조계종보다 앞서가는 단체로 부상
현재 법륜 스님이 이끌고 있는 정토회는 정예회원 약 3만명, 일반회원 약 10만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정예회원은 월 1만원 이상을 정기적으로 납부하는 회원으로 정토회의 월 회비는 10억원 정도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진다. 더욱 대단한 것은 탄탄한 조직력이다. ‘교육된 불자들의 조직화’라는 불교계에서는 꿈 같은 목표를 정토회는 현실화하는 데 성공했다.

이것은 법륜 스님의 타고난 부지런함과 성실함, 그리고 뛰어난 리더십과 같은 본인의 실력에도 기인하지만, 이남곡 선생 등 주변 사람들의 고견을 소화해 새로운 어젠다로 엮어내는 법륜 스님만의 탁월한 능력에 힘입은 바 크다. 예컨대 국민적 운동으로 확산된 ‘빈그릇 운동’도 새로운 것이 아니라 발우공양이라는 원래부터 불교에 다 있는 것을 일반 국민대중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각색해서 사회가 호응할 수 있게 한 대표적인 사례다.



2010년 6월 조계사에서 수경 스님(왼쪽), 도법 스님(오른쪽)과 함께 웃고 있는 법륜 스님. /김정근 기자

또한 한 가지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법륜 스님과 함께 오늘의 정토회를 이뤄온 능력과 실력을 갖춘 활동가들의 역할이다. 숨은 활동가들의 지극한 정성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오늘의 정토회도, 법륜 스님도 없었을 것이라는 데 누구도 이의를 달지 못한다.

정토회는 어떤 면에서는 불교계의 최대 종단인 조계종보다도 앞서가는 단체로 급부상하고 있다. 그것은 우연이 아니라 정토회만의 뛰어난 교육시스템과 실천지침이 가져다준 당연한 결과다. 정토회는 불자들에게 수행하고, 봉사하고, 베풀고, 실천할 것을 요구한다. 불자들을 대접하지 않고 당당하게 불교를 실천하라고 가르친다. 이런 정토회의 신행문화는 큰 호응을 받으며 지방으로 확산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고 있다.

법륜 스님이 뉴스메이커로 급부상하자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법륜 스님에 대한 부정적 여론몰이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제대로 된 정치의 구현은 종교인으로서 마땅히 관심 가져야 할 사안 중의 하나가 아닐 수 없다. 정치는 공기와 같은 것이고, 공기가 탁해져 사람이 살 수 없다면 종교도 의미가 없는 것이므로 종교지도자가 정치적 행보를 하는 것을 무턱대고 비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것이 법륜 스님을 응원하는 불자들의 목소리다.

법륜 스님은 현재 한국에 없다. 독일의 정토회를 돌아보기 위해 잠시 한국을 떠났다. 예정된 일정이기는 하지만 보수언론의 정치적 매도로부터 잠시 벗어나고자 하는 뜻도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위축된 모습을 보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세상의 안락과 평화를 위해 이 나라에 민주정권이 탄생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 것이 법륜 스님에게 주어진 시대적 사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아마도 지금, 많은 사람들이 법륜 스님을 향해 해주고 싶은 말은 이런 것이 아닐까 한다. “스님, 쫄지마!”

법륜스님 주요경력
1969년 경주 분황사에서 불심 도문 스님께 입문(법명 法輪)
1988년 불교수행공동체 정토회 설립
1989년 정토수련원 설립 (경북 문경 소재)
1991년 불심 도문 스님으로부터 비구계, 전법계 수지(법호 지광)
1994년 (사)한국불교환경교육원 (현 (사)에코붓다) 설립
1993년 국제 기아·질병·문맹 퇴치 민간기구 Join Together Society 인도 켈커타 근교 보탈라 메디컬 캠프 지원으로 JTS사업 시작(현 (사)한국JTS) 설립, 인도JTS(1993년), 미국JTS(1997년), 아프가니스탄JTS(2002년), 필리핀JTS(2003년), 스리랑카JTS(2008년), 캄보디아JTS(2009년) 활동
1996년 우리민족서로돕기 불교운동본부(KBSM)
(현 (사)좋은벗들) 설립
2002년 정토회를 재단법인 등록
2004년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 정착과 통일정책 모색 민간연구재단 (재)평화재단 설립

수상
1998년 11월 12일 교보환경문화상 사회교육분야 본상 (한국불교환경교육원)
2000년 8월 9일 만해상 포교상 수상 (좋은벗들)
2002년 8월 31일 막사이사이상(평화와 국제이해부문) 수상
2006년 11월 22일 강원도 DMZ 평화 남북교류 협력상 수상
2007년 12월 13일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제5회 민족화해상 수상
2011년 3월 22일 청암봉사상 수상


이학종<미디어붓다 대표기자> urubella@naver.com



원문보기: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5&artid=201112141511411#csidxa861a35ed87b249a955fa47839c84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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