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05

이병철-여성운동의 큰어머니, 이효재선생 영면 하시다/

이병철
-여성운동의 큰어머니, 이효재선생 영면 하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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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철

1oteSpooncshored ·

-여성운동의 큰어머니, 이효재선생 영면 하시다/

선생님의 영면소식을 어제저녁에 정원님을 통해 알았다. 신문에 부고와 관련기사가 실렸다는 것이다.
그 소식을 접한 순간에 드는 것은 가까이 계셨는데도 최근 들어 선생님을 찾아뵙지도, 안부 전화를 드리지도 못했다는 죄송스러운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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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과의 인연은 87년, 이른바 유월항쟁을 통해 대통령직선제라는 개헌을 쟁취한 때였다. 직선제 개헌을 계기로 이제 이 땅에 오랜 군부독재 종식과 민주정부의 수립이 실현된다는 기대와 승리의 기쁨에 들 떠 있을 때, 집권욕에 사로잡힌 양김의 분렬로 민주정부의 수립이 다시 위태로운 상황에 처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일한 길은 어떤 형태로든 민주화 진영의 후보를 단일화시키는 것 뿐이었다. 이것만이 적전분렬을 막아내어 오랜 군부독재를 종식시키고 열망하던 민주주의 정부를 수립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민주쟁취국민운동본부의 조직국장을 맡고 있었던 나는 직선제 개헌을 쟁취한 뒤에 곧장 민주진영의 후보단일화운동에 뛰어들었다.
이 때, 단일화운동의 주요 어른들로 참여하셨던 분들이 이제는 이미 모두 고인이 되신 수주 박형규목사님, 요산 김정한선생님, 홍남순변호사님 등과 함께 여성계를 대표해서 이효재선생님도 계셨다. 

(이 때, 사실상 단일화운동을 반대하며 4자 필승론을 내세워 남북분단에 이어 동서분단을 고착시킨 세력들이 있다. 그들로 인해 군부독재종식과 민주정부 수립이라는 민주화의 열망은 또다시 좌절되고 배신되었다. 이들에게 있어서 민주화운동이란 자신들의 정치권력 실현의 수단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지금도 그 집단들이 민주화 세력이라는 허울을 쓰고 이 나라의 권력을 장악하고 있음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우리 정치사에 있어 87체제의 극복과 청산이란 내겐 제왕적 대통령제의 종식과 함께 이들 정치세력의 청산과 동이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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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인연을 계기로 녹색대학을 만들 때도 추진위원으로 박형규목사님과 이효재선생를 모셨고 대학을 설립한 뒤에도 총장이신 장회익교수님과 함께 이효재교수님도 참여하셨다.
그래서 진해에 계실 때부터 종종 찾아뵙기도 하고 소식을 주고 받으며 지냈다. 제주에 가서 계실 때도 두어 차례 방문하기도 하고 해마다 연하장을 보내어 안부를 여쭈었다. 그러다가 최근에 와서는 연하장만 보내고 직접 찾아뵙지는 못했다. 

선생님은 노년에 들어 청력이 더욱 급격히 떨어져서 왠만한 말씀은 잘 알아듣지 못해 힘들어 하셨기에 가서 뵙고 말씀을 나눈다는 것이 내게도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이 또한 구차한 변명임을 안다.
한국여성운동의 대모라 불리는 선생님과 한국여성운동에 대한 이야기는 내가 하지 않는 게 도리라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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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한마디 보탠다면 이 땅의 여성학, 여성운동은 선생님을 떠나서는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선생님은 학자로서뿐만 아니라 여성운동과 민주화운동에도 앞장서서 참여하고 이끌어 오셨다. 80년 광주학살에 대한 시국선언으로 해직되셨던 것도 그 한 예이다.
선생님은 맑고 순수하시고 단아하셨다. 큰 키의 그런 모습이 마치 단정학(丹頂鶴)과 같은 느낌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불의와는 타협하지 않는 강직함과 여장부 같은 풍모도 지녔던 분으로 내게는 기억되어 있다. 

오늘 약속되어 있던 회의를 마치고 오후에야 빈소에 가서 선생님의 영전에 참배하고 왔다.
영정 사진 속의 선생님 미소가 맑고 편안하다.
여성장으로 장례가 치루어져 한때 나와도 함께 일하기도 했던 이미경, 김상희의원 등 선생님의 후배, 제자들이 상주 역할을 하고 있었다. 오랫만에 만나 서로의 안부를 확인한다.
한 시대의 어른들, 선배들께서 이제 모두그렇게 떠나셨다. 그릭고 남은 자들은 비루한 세월을 살고 있다.
선생님의 영원한 평화와 안식을 기원한다.
향년 96세, 선생님은 평생을 홀로 사셨다. 구절초 한다발을 선생님께 바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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