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영의 북녘노동자 이야기] 제1회: 북측 노동자들을 이해하기 위한 첫 걸음-김일성과 조선로동당
기자명 최재영 목사 (NK VISION 2020 대표)
승인 2020.04.15 11:24

<노동과 세계>를 통해 민주노총 회원 여러분들과 2020년 4월~11월까지 8회에 걸쳐 북측 노동자들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어 무척 반갑습니다. 우선 1회는 북조선(북한)이라는 국가를 이끌고 있는 “조선로동당”에 대해 먼저 알아보려고 합니다. 마침 당 명칭에 “로동”이란 단어가 들어갔고 로고(마크)에도 노동자들을 상징하는 망치와 낫과 붓을 그려 넣었기 때문에 뭔가 노동자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처럼 북녘의 정치체제에 대해 간략하게나마 알게 되면 북측의 노동정책과 노동자들에 대한 이해가 쉽습니다. [필자 주]
1. 노동당 마크를 보면 노동자들이 보인다.
현재의 조선로동당 마크(로고)를 보면 노동계급, 농민, 지식인을 비롯한 근로대중이 단결되어 있다는 것을 상징하기 위해 망치와 낫과 붓을 자루 중간지점에서 서로 교차시켜 세워 놓았다. 당규에 망치는 “혁명의 로동 계급인 로동자를 의미하며, 낫은 농민을, 붓은 지식인(근로 인테리) 등을 뜻”한다고 명시되어있다. 이로서 당을 이끄는 중추세력과 당에 소속된 전체 성원들을 차지하는 직업군이 서로 균형과 조화를 이루며 당원을 구성하고 있음을 마크를 통해서 엿 볼 수가 있다. 또한 우리나라 전통사회에서 붓은 “인문(人文)”을 뜻한다. 가령 시골 동네 인근에 산봉우리가 있으면 예로부터 동네 어른들이 “문봉(文峰)”, “필봉(筆峰)” 혹은 “문필봉(文筆峰)”이라 명명하여 동네 아이들이 산봉우리를 바라보며 학문에 정진하면서 자신의 꿈을 키우도록 했다. 이처럼 북측의 조선로동당은 세계 역사에서도 보기 드믈게 인문학적인 가치를 지닌 공산주의 인민사회를 지향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정당이다.
더욱이 로동당의 한자 표기는 “勞動黨”이지만, 영문표기는 “Workers’ Party of Korea” 이다. 직역을 하면 “조선 로동자의 당” 즉 “노동자의 당”인 것이다. 그렇다면 집권당의 당명 자체가 “로동자의 당”이니 만큼 70년이 넘도록 일관되게 유지된 당의 이념은 과연 노동자들을 위하고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는지 궁금할 수 밖에 없다. 또한 국가를 이끌어가는 당의 노동정책은 어떠하며, 노동자들을 어떻게 대우하고 있는지 관심과 호기심이 안 갈 수가 없다.
조선로동당 창건 50주년 기념탑 전경. 조선로동당을 상징하는 낫과 망치, 붓을 든 손을 형상화하였는데 낫은 농민을, 망치는 노동자를, 붓은 지식인(근로 인테리)을 뜻한다. 평양 대동강구역 문수거리에 있는 이탑은 만수대창작사가 주도해 1994년 9월 30일에 착공~ 1995년 10월 9일에 준공했다. (사진제공 최재영 목사)2. 해방 닷새 만에 “8시간 로동제와 로동자의 생활보장”을 선포한 김일성
일제강점기에 15년간 풍찬노숙을 하며 조선의 독립을 위해 만주일대에서 항일 무장투쟁을 이끈 김일성과 부대원들(혁명1세대들)은 해방을 맞이하자 1945년 9월 19일 강원도 원산항으로 입항해 조선 땅에 환국한다. 이에 앞서 김일성은 해방(8.15)을 맞이한지 닷새가 되는 날(환국을 한 달 앞 둔 시점)인 1945년 8월 20일 혁명1세대 군사정치 간부들 앞에서의 연설을 통해 “그러면 현 단계에서 인민 주권이 실시하여야 할 행동강령은 무엇입니까?”라고 질문을 던진 후에 아래와 같이 13개 항목을 발표하였다.
강령들은 아직도 일제 치하 잔재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던 당시로서는 매우 혁명적인 내용들이었으며 해방된 조국에서 펼쳐나갈 사업들에 대한 구체적인 청사진들이었다. 이날 자신의 동료들 앞에서 친일청산은 물론 노동자들의 처우개선을 위한 획기적인 조치들을 아래와 같이 발표하였다.
1. 로동자, 농민, 진보적지식인, 량심적 민족자본가, 량심적 종교인 등 우리나라의 애국적 민주 력량을 총망라하여 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을 결성하고 그 기초우(위)에서 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수립 할 것이다.
2. 언론, 출판, 집회, 결사, 신앙의 자유를 보장하며 18세 이상의 남녀 공민들에게는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보장하여 줄 것이다.
3. 일본제국주의자들과 친일적 조선인 및 민족반역자들이 소유하고 있던 모든 공장, 기업소, 철도, 은행, 선박, 농장, 수리기관들과 일체 재산을 몰수하여 국유화 할 것이다.
4. 일본인과 친일적인 조선인 반동 지주들의 토지를 몰수하여 땅이 없거나 적은 농민들에게 무상으로 분배 할 것이다.
5. 일제의 잔재세력과 일제가 남긴 일체 잔재요소를 철저히 숙청 할 것이다.
6. 8시간 로동제와 로동자들의 생활을 보장할 만한 최저임금제를 실시하며 실업 로동자들에게 직업을 보장하여 줄 것이다.
7. 문화인들과 기술자들을 사회적으로 우대하고 그들의 생활조건을 개선 할 것이다.
8. 조선 인민의 유구하고 찬란한 민족문화를 부흥시키고 우리나라 말과 문자를 발전시키며 점차 의무교육제를 실시 할 것이다.
9. 인민들의 수입과 생활정도에 의거하는 루진 소득세제를 실시할 것이다.
10. 일제의 금융기관 및 일체 고리대금, 채권을 무효로 할 것이다.
11. 정치, 경제, 문화 각 방면에 걸쳐 남녀평등권을 실시하며 동일한 로동에 동일한 임금을 지불 할 것이다.
12. 인권유린과 일체 악형을 금지 할 것이다.
13. 해방된 조선민족과 독립된 우리나라와 평등적으로 대하는 민족 및 국가와 친선을 도모할 것이다.
이날 연설에서 제시된 내용들은 얼마 후 김일성이 이끈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를 통해 마침내 적용되고 실현되었다.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는 헌법이 제정되어 최고인민회의가 구성되거나 공화국 정부가 출범하기 직전이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북 최초의 중앙정권기관의 역할을 했던 기구였다.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는 위의 13개 조항들을 실현시키기 위해 1946년 2월 9일에 조직되어 이듬해인 1947년 2월 22일까지 1년간 맹활약을 펼쳤다. 토지개혁(1946년 3월 8일), 남녀평등권법령 발표(1946년 7월 30일), 모든 산업의 국가 소유화에 대한 법령 발표(1946년 8월 10일), 인민위원회 선거(1946년 11월 3일)등을 단행한 것이다.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는 인민대중들의 지원에 힘입어 토지개혁 단행과 노동자들에 대한 처우개선 그리고 모든 산업시설을 국유화하는 등의 개혁을 단행하면서 북측 사회를 안정화시켰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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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프로필]
최재영 목사는 소셜 무브먼트 그룹 NK VISION 2020 설립자이다. 산하에 손정도목사기념학술원(역사), 동북아종교위원회(종교), 남북동반성장위원회(경제), 오작교포럼(언론), 문화예술위원회(예술) 등 다섯 개 기관을 두고 있으며 이 분야들을 통해 남, 북, 해외동포 3자가 교류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평소 미국에서 남과 북을 셔틀왕래하며 집필과 강연활동을 통해 “북 바로 알리기”운동을 벌이고 있으며 동포들에게 민족화합과 자주통일을 위한 새로운 이슈와 비전을 제시하는 통일운동가이자 대북사역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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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영의 북녘노동자 이야기] 제2회 : 나는 로동자가 될 터이다
기자명 최재영 목사 (NK VISION 2020 대표) 승인 2020.05.20 14:33
<노동과 세계>를 통해 민주노총 회원 여러분들과 2020년 4월~11월까지 8회에 걸쳐 북측 노동자들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어 무척 반갑습니다. 1회는 북조선(북한)이라는 국가를 이끌고 있는 “조선로동당”에 대해 알아 보았습니다. 당 명칭에 “로동”이란 단어가 들어갔고 로고(마크)에도 노동자들을 상징하는 망치와 낫과 붓을 그려 넣었기 때문에 뭔가 노동자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처럼 북녘의 정치체제에 대해 간략하게나마 알게 되면 북측의 노동정책과 노동자들에 대한 이해가 쉽습니다. [필자 주]
노동자 출신의 탈북 여성 효주씨는 2014년 “나는 나는 될 터이다 로동자가 될 터이다”라는 제목으로 자신이 북에서 살았던 경험을 언론에 연재한 적이 있다. 북에서도 누구나 자신이 선망하는 직업이 있기 마련인데 그녀는 다기능 운전사가 되고 싶었다고 한다. 북에서도 운전사라는 직업이 아주 선망의 대상은 아니지만 그녀가 운전사가 되고 싶었던 이유 중에 하나는 집안에 운전사가 무려 4명이나 있어서 주변에서는 “운전사 가족”이라고 부를 정도로 가업처럼 이어져 왔고 안정적인 직업군에 속했기 때문이다.
효주씨가 어린 시절 꿈이 노동자가 되는 것이 소원일 정도로 북에서의 노동자들은 직업적인 면에서 확고하고 안정적인 것은 사실이다. 자본주의 남측사회에서는 많은 이들이 “회장님”, “사장님” 혹은 “이사장님”, “대표님”으로 불리는 것을 선망의 대상으로 삼는다. 천 만 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남측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길거리나 모임에서 상대를 향해 “노동자님”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거의 없으며 “노동자”라는 명칭 자체를 타인도 본인도 그다지 자랑스럽게 여기지 않는듯하다. 이는 노동을 천시하는 예로부터 내려온 정서와 사상이 아직도 뿌리 깊게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사회주의 북측은 노동자들에 대한 정책과 처우개선이 어떤 방식으로 작동 되길래 어린 소녀의 꿈이 노동자가 될 수 있는지 우선 제도와 법규 위주로 알아보도록 하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 헌법에는 “공화국의 주권은 로동자, 농민, 군인, 근로 인테리를 비롯한 근로인민에게 있다”를 필두로 “공화국은 로동 계급이 령도하는 로농동맹에 기초한 전체 인민의 정치사상적 통일에 의거 한다”는 등 노동 계급과 관련한 조항들이 자주 등장한다. 또한 노동자들과 관련된 여러 조항들이 헌법에 확고하게 명시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다음과 같은 제도적 장치들이 뒷받침하고 보장하고 있다.
헌법에 명시된 조항을 실무적으로 시행하는 중앙행정기관은 내각의 로동성이다. 로동성은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향상과 개선, 노동환경에 대한 지도감독은 물론 노동자들의 인권 후생을 책임진다. 또한 노동력 수급과 임금 등 노동관련 계획을 종합하여 내각의 국가계획위원회, 재정성, 수매량정성 등과 함께 공조하여 각 부문의 노동력 소요량을 심의 확정하여 각 도, 시, 군, 구역 인민위원회의 노동행정 부서에 시달하는 제도적 역할도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의 직업 안정을 관장하며 실업대책과 직업훈련, 노동조합 지도관리에 관한 사무를 총관장하고 각 도, 시, 군, 구역 인민위원회의 노동행정 부서 네트워크를 통해 노동정책과 행정을 시행하는 등 노동자들만을 위해 복무하는 기관이다.
그렇다면 북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노동력의 수요와 공급이 원활하게 유지 될 수 있을까? 내각의 로동성과 교육성 두 기관은 노동력 공급을 위해 항상 공조하고 있다. 우선 로동성은 매년 말이 되면 교육성에서 제출하는 다음 년도 고등중학교 졸업예정자 명단을 넘겨받아 그 중에서 대학교에 진학하지 않는 졸업자들을 노동력의 원천으로 삼기 위한 파악에 들어간다. 졸업자들 중에서도 노동력으로 공급할 수 있는 인원을 추산하여 선별 확정하고, 각 부문에서 필요한 인력 배치계획에 따라 종합신체검사(보건성 주관)를 통과한 인력들을 체계적인 방법으로 기술직, 기능공 등으로 결정한다. 이와 동시에 공장, 기업소, 연구소, 농장 등 전문 기술기능인력 요구에 따라 내각들이 주도하여 기술 기능 훈련소 인력배치와 교육훈련 지원을 한다. 대략 이런 방식으로 북측 노동력의 수요와 공급이 결정된다.
마지막으로 노동자들의 가장 큰 단체라고 볼 수 있는 조선직업총동맹(직맹)의 기능과 역할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현재 조합원 250만 명을 보유한 직맹은 김일성-김정일주의청년동맹, 조선사회주의녀성동맹, 조선농업근로자동맹과 함께 4대 근로 단체에 속하며 최고인민회의의 구성원이기도 하다. 직맹에는 노동당에 가입하지 못한 30세 이상의 노동자, 기술자, 사무원 등 거의 모든 직장인이 가입되어 있는데 이중에서 조선농업근로자동맹, 조선민주여성동맹, 사회주의로동청년동맹에 가입해서 활동하는 회원들을 제외가 된다. 직맹은 중앙당(조선로동당)의 지시와 감독을 받다. 직맹의 간부들은 당에서 지명하며 이후 절차를 거쳐 선출되며 직맹의 중앙기관과 산업별 직맹, 초급 단계의 직맹 지도부 등은 모두 열성당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직맹은 전체 노동자를 하나로 묶어 사회적, 경제적 지위 향상과 권익 옹호를 위해 힘쓰는 대중적 근로단체라고 보면 된다. 노동자들도 사회적인 위상과 역할이 있는데 이를 대변하거나 권리를 찾아주며 경제적인 복지 혜택 등 경제적인 지위향상도 직맹에서 보장해주는 기능이 있다. 직맹의 정체성을 살펴보면“노동당의 옹호자이며 당의 영도하에 모든 활동을 전개하며 노동계급의 통일과 단결을 강화하며 그들을 당 주위에 결속시켜 당이 제기한 혁명수행에 조직 동원된다”는 규칙이 있어 노동당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직맹은 당과 노동계급을 연결시키는 인전대(벨트)이며 동맹원들에 대한 사상교양단체의 역할도 감당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또한 직맹은 수령과 조선노동당의 방침과 노선을 노동 분야에서 관철하는 노동자단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그렇다고 노동당의 통제를 받기 때문에 보조단체나 어용단체라고 오해하기 쉽다. 노동당의 정식 명칭이“노동자의 당(Workers’ Party of Korea)”인 것처럼 당명에서도 볼 수 있듯이 자본가들이 이끌어가는 남측사회와는 달리 북측사회를 이끌어가는 주체는 노동자 계급이며 노동자를 대변하는 단체임을 알아야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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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영의 북녘노동자 이야기] 3회: 대리석보다 7배나 강한 타일을 만드는 천리마타일공장을 방문하다
기자명 최재영 목사 (NK VISION 2020 대표)
승인 2020.06.16 11:04

2012년 9월말 나를 포함한 미주 방북단 일행은 어느 날 저녁 환영만찬장에서 만난 어느 북측 관료가 심각한 표정으로 “여러분도 잘 알다시피 지금 조국(북조선)이 공장에서 좋은 물건을 많이 만들어도 어디다가 내다 팔 나라가 없습니다. 수출이 여기저기 다 막혀있습니다”라며 대북 경제제재라는 미명하에 자행되는 미국의 대북 적대시정책과 고립 압살정책의 결과를 우려스럽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또한 그 며칠 전에 만난 김철주사범대학 정치학 강좌장 정기풍 교수도 우리에게 “대동강 타일공장에서는 일반 대리석보다 강도가 7배나 되는 세계적인 제품을 만들었는데도 미국의 제재조치 때문에 외국 어디에도 내다 팔수가 없습니다” 라며 푸념했던 적이 있었다. 이때 우리 일행들은 미국과 유엔의 대북제재조치가 북에서는 생각 이상으로 피부에 와 닿는 심각한 현실이라는 걸 체감했다. 나와 일행들은 촬영 팀을 꾸려 그토록 대리석보다도 더 강하고 좋은 제품이라며 자랑하는 대동강타일공장을 방문했다. 그 후 대동강타일공장의 명칭은 2014년 8월 김정은 위원장에 의해 천리마타일공장으로 변경됐다. 천리마의 고향인 강선에 자리 잡은 공장이니 그 이름을 천리마타일공장으로 명명했다는 것이다. 필자는 2012년 9월과 2014년 9월 두 차례에 걸쳐 이 공장을 참관했다. 그런데 필자가 처음 방문했을 당시 이 공장의 운영주체가 노동당 행정부에 소속된 장수길이 책임을 맡아 운영했다는 말을 들었으나 2014년 8월 김정은 위원장이 현지지도하면서 이 공장을 조선인민군대에서 운영하도록 과업을 주었다고 한다. 우리 일행은 평양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남짓 거리에 위치한 남포시 천리마구역에 있는 타일공장을 찾았다. 필자가 두 번째 방문 할 때는 공장 참관을 마치고 평양으로 상경하는 길에 구경삼아 평양골프장을 잠시 들리기도 했다. 평양과 남포를 잇는 고속도로의 태성호수에 인접해 있어서 태성골프장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나중에 평양CC는 라고 부르기도 한다.
천리마타일공장에서 생산된 제품으로 건설된 미래과학자거리 빌딩가.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1. “타일제품은 사람의 겉옷과 솟옷과 같습네다”
남측이나 해외 언론을 통해 자주 보게 되는 평양시내 고층아파트와 빌딩들의 내벽과 외벽에 사용된 다양한 타일들과 자재들은 모두 천리마타일공장(대동강타일공장)의 제품들이라고 보면 된다. 2009년에 준공됐다는 이 타일공장은 준공 당시 책임일군이 “2012년이면 평양의 면모가 크게 바꿔 질 것입니다”라고 조선중앙텔레비전에 나와 인터뷰한 장면을 고려호텔에서 시청한 생각이 얼핏 기억났다. 그런데 그의 말이 실제로 현실화된 것이다. 창전거리, 여명거리 고층 살림집 건설을 비롯해 최근 미래과학자거리와 고층아파트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건축에 크게 기여한 것이다. 우리일행의 공장 방문을 환영하고 영접한 사람은 리홍기 사장과 윤갑병 부기사장이었다. 부기사장보다 나이가 어려보이는 사장은 만나자마자 “가까운 장래에 우리 온 나라가 20세기의 낡은 옷을 벗어던지고 새 옷을 차려 입을 것입니다”라며 큰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 의미는 수도 평양 외에도 전국적으로 모든 중소 도시와 마을들의 면모를 모두 획기적으로 일신하는 건설이 곧 추진된다는 말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나라의 거리와 건물들마다에 저희 대동강타일을 붙인다는 것은 우리 인민들이 입는 옷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속옷도 겉옷도 모두 우리의 것이니 진짜배기 멋쟁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처럼 만나자마자 자주적이고 창의적인 책임일꾼들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흐뭇했다.
천리마타일공장에서 자동으로 생산된 제품이 컨베어벨트를 통해 이동하고 있다.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2. “대동강타일은 이딸리야 제품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습니다”
이어서 일행은 공장 내 대형 브리핑 룸에 도착해 부기사장과 부소장으로부터 현장 상황 설명을 50분 동안 소상하게 청취했다. 설명을 시작하던 부소장도 미국의 제재조치에 대한 언급을 하면서 “우리 조선의 마감건재 공업이 눈부신 도약을 이룩하여 대리석처럼 견고한 타일을 생산했으나 미제의 조선경제압살정책으로 인하여 수출이 막혀 있는 상태입니다” 며 운을 뗐다. 아마도 나와 일행들이 모두 미국에서 방문한 동포들이다보니 더 강조하고 있는 듯 했다. 이어서 이번엔 부기사장이 자신은 지금까지 세계 여러 나라의 마감건재공장을 모두 둘러보았으나 여기처럼 종합적인 생산기지는 이제껏 그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고 했다. 나는 “그럼 원료는 어디에서 수입합니까?”라고 물었더니 “아 저희는 외국에서 수입하지 않습니다. 원료들은 모두 함경남도 길주군 룡담리, 고령석은 량강도 은흥군 령하구, 규석은 평안북도 녕변군 옥향리에서 직접 생산합니다. 투희석이라고 부르는 재료를 직접 실고 와서 무연탄으로 가스화 공정방식으로 연료를 만듭니다”
한편 이곳 타일공장이 건설되기까지 국가의 막대한 투자가 있었으며 지금까지의 사업성과는 돈으로 된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과 기술자들의 자체의 힘으로 된 것이며 그 결과 원료와 연료의 국산화를 성공했다는 것이다. “각 나라의 설비는 돌과 흙을 그 나라에서 정한 배합 비율에 맞게 쓰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는데 그 속에는 우리 조선에는 없고 외국에서 수입해야 할 원료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공장은 순수하게 우리나라의 돌과 흙으로 만드는데 마침내 성공한 것입니다.” 해마다 수백만 평방미터 분량의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각종 타일과 다양한 기왓장을 생산한다는 이 공장에서는 얼마 전까지 평양 민속공원 건축을 위해 120만 장의 도자기 기와를 두 달 만에 생산했고 올해 안으로 평양에 10만 세대 아파트 건설에 소요되는 타일 마감재도 공급하기 위해 생산을 멈추지 않고 있다고도 했다.
기와 외에도 외벽타일, 내벽타일, 바닥타일, 대리석타일, 장식 및 띠 타일, 도자기 기와 등을 대량생산하고 있었으며 공장부지 면적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매우 웅장하고 광활했다. 특히 우리 일행이 당도하기 얼마 전부터 대형유리 복합타일, 미정석, 대형 인조 대리석타일 등을 생산하는 종합연마 흐름선 등의 설비를 끝내고 공장은 이미 풀가동 중에 있다고 했다. 또한 앞으로 3년 동안 일반 살림집과 공공건물, 극장, 호텔 등 호화시설에 이르기까지 모든 건축물의 설계에 따라 필요한 마감건재를 모두 만들어낼 수 있는 종합적인 생산기지로 더욱 바뀌게 된다고 했다. 우리일행은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 종합전산실로 행했다.
천리마타일공장 종합상황실 모니터에 비친 공장전경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천리마타일공장 종합상황실 전산요원들이 업무를 보는 모습을 지켜보는 필자.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3. 최첨단시스템 주조종실의 전산인력이 노동인력을 대신하다
공장안에는 종합상황실의 역할을 하고 있는 주조종실이 있었으며 그 안에는 20여명의 전산실 요원들이 푸른 제복을 입고 최첨단제어장치들을 컨트롤하기 위해 모니터를 보며 컴퓨터를 정신없이 작동하고 있었다. CNC(컴퓨터수치제어) 장치들이 설치되어 있었고 전체적으로 볼 때 모든 시스템이 자동화와 현대화를 마쳤다. 물론 이곳 뿐 아니라 다른 공장이나 기업소도 100% 현대화 자동화를 마쳤다. 옛날처럼 엄청난 설비시설이 갖춰 있어서 노동력이 투입되는 공장시설을 탈피한 것이다. 노동자들은 자동으로 움직이는 설비에 지장이 없도록 관리만 하고 있었다. 세밀한 공정이나 사람이 직접 손으로 하는 부분은 현장에서 직접 노동자가 관리하고 노동력을 사용하고 있지만 대부분은 전 구역이 자동화가 되어있었다. 우리 일행들은 유약원료 생산 공정과 타일 원료 가공 공장 구내만을 왕복하는 미니버스를 탑승하고 구내를 참관하기 시작했다. 컨베어 벨트에는 제품들이 계속 쏟아져 나오고 한편에서는 물건을 포장하고, 또 한편은 제품을 운반하는등 제 각각 맡은 임무에 집중하는 모습들이었다. 일행을 인도하기 위해 셔틀버스에 탑승한 부소장은 “현재 전 세계적으로 마감건재 분야에서 국제적으로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나라는 이딸이야(이탈이아)인데 이젠 우리 조선의 대동강타일상표(브랜드)가 그 수준을 넘어서 있단 말입니다. 망치로 두드려도 절대로 깨지지 않을 정도의 강도 높은 제품들이 우리 공장에서 생산되고 있는데 거의 모든 타일제품들이 대리석의 7배가 되는 강도를 지니고 있습니다”며 확신에 찬 설명을 이어갔다. 사실 건재수요의 확대는 경제부흥 지표 중에 하나다. 생산 확대에 앞서 건설이 있는 것이다. 공장, 기업소에서도 설비를 놓기 전에 건물을 세우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타일과 더불어 시멘트의 수요도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에 경제가 활성화된 증거이다. 부소장은 마지막으로 “인민이 남부럽지 않게 사는 사회주의 강성국가는 그 누가 저절로 안겨주지 않고 오로지 자체의 힘으로 건설해야 한다고 믿는 신념의 강자들이 우리나라의 건재부문을 맡고 있기 때문에 우리공화국은 앞으로 부강 발전할 일만 남았습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천리마타일공장에서 생산된 제품들의 포장이 완료된 모습.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천리마타일공장 타일제품 전시실.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4. 공장 내 유독성 냄새에 대한 노동환경이 개선되다
미니버스가 중요지점에서 잠간씩 멈춰 서서 해설을 맡은 부소장의 설명을 듣는 동안 나의 코에는 이상하게 유독성 냄새가 흘러 들어와서 잠시 호흡이 불편했다. 시야도 뿌옇고 역겨운 냄새가 은은히 진동하는데 그런 공장안에서 노동자들이 마스크도 쓰지 않고 분주히 일을 하고 있었다. 내 고향이 경기도 양평인데 7-80년대 양평에서 서울을 갈 때마다 서울 근교 덕소를 버스가 지날 때마다 원진레이온 공장에서 나오는 유독성 악취 때문에 나와 승객들은 무척이나 힘들었던 추억이 잠시 스쳤다. 놀란 나는 떠나기 전에 부소장에게 노동자의 노동여건과 환경의 차원에서 그 문제를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그의 답변은 “노동자들을 위한 마스크는 이미 충분히 준비되어 있으나 노동자들이 일하는데 불편하고 번거롭다며 쓰지 않고 일 한다”는 답변과 “그렇지 않아도 지금 환기시설 공사를 준비하고 있다”는 답변을 들었다. 많은 비용이 들겠지만 하루빨리 공장건물 전체에 유독가스 발생요인을 제거해야 하고 환기시스템 시설을 설치해야 하며 공기정화 시스템 공사를 해야만 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이 개선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며 그 공장을 떠났다. 다행스럽게도 그 후 2014년에 다시 방문해서 확인해보니 그 당시보다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쾌적한 실내 환경으로 변모해있었다.
천리마타일공장 브리핑 룸에서 설명하는 윤갑병 부기사장. (사진제공 : 최재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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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영의 북녘노동자 이야기] 4회: 초현대식 전산화를 갖춘 평양 껌공장과 노동자들
기자명 최재영 목사 (NK VISION 2020 대표)
승인 2020.07.15 15:58

평양시내는 물론 북녘의 농촌과 소도시, 그리고 각종 공장과 기업소, 국영농장과 협동농장 등을 참관 할 때마다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초현대식, 경량화, 전산화, 무인화 등을 추구하고 있는 공장들과 기업소들이 연이어 준공되어 운영되고 있는 것을 보니 새삼 북조선의 자력경제와 자력갱생에 대한 저력을 실감하기 때문이다. 오늘은 남측과 서방세계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평양 껌 공장’을 참관해 공장내부를 둘러보고 생산된 제품을 확인하고 노동자들과 잠시 대화를 나눈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특히 식품이나 다과류 공장들에서는 새로운 생산 공정을 마련하기 위한 건물이 계속 건설되고 있으며, 국가과학원, 김책공대 등은 이런 공장의 통합생산관리체계 구축을 지원하고 있었다. 원료투입에서 포장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인 공정의 자동화, 무인화, 무균화, 무진화 설비가 진행되는 것을 보면 경공업 발전을 위한 노력이 어느 정도 섬세하고 강력한 것인가에 대한 단면을 엿 볼 수 있었다.
현대식 전산화 설비에 의해 쏟아져 나오는 껌 제품들
평양껌공장은 2002년 경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경공업 부문의 한 일꾼을 불러서 평양에 껌을 전문으로 하는 현대적인 공장을 건설해서 인민들과 어린이들에게 껌을 공급해주라는 제안에 의해 건설됐다고 한다. 그리고 인민군대 건설대가 동원되어 1년 남짓한 짧은 기간에 소문 없이 준공이 되면서 온 나라에 껌 향기가 풍기게 된 것이다. 첫 제품이 나왔을 때 공장일꾼들과 노동자들은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꽃의 이름을 꼽아가며 상표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필자일행이 찾아간 평양껌공장은 평양시내 통일거리에 있는 3대헌장기념탑 인근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본관건물과 2-3개의 부속 건물로 이뤄진 깔끔한 흰색 공장건물이 눈앞에 나타났다. 공장에 도착해 종합상황실에서 전경도(현황판)를 보니 평양시 낙랑구역 통일거리에 위치한 이곳의 ‘총부지면적은 1만 1,900㎡ 이며, 연건평은 4,400여 ㎡의 규모’로 표기되어있었다.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공장 지배인 송혜정 동무가 상세하고 친절하게 답변해주며 설명을 이어갔다.
“저희 평양 껌 공장은 장군님의 뜨거운 은정과 각별한 관심 속에 1년 남짓한 기간에 우리 인민군대가 모두 일떠서 2003년 10월 23일에 준공하여 조업(가동)을 시작했으며 그 후 기본건물 외에 보조건물을 다시 1년 동안 일떠서서 건설하면서 지금의 모습으로 완공되었습니다. 그때 가장 처음 나온 상품이 바로‘은방울껌’이며 우리 장군님이 직접 지어주신 상표이름입니다.”
필자가 공장내부를 둘러보니 흰 가운을 입고 기계조작을 하고 있거나 컴퓨터 앞에서 전산을 다루는 노동자들의 대부분이 여성들이었고 남성들은 간혹 눈에 띌 정도였다. 정보산업시대의 요구에 맞게 모든 생산 공정은 육체적 노동이나 수작업이 아니라 모두 전산화, 자동화로 기계들이 움직였다. 마치 밀가루 반죽처럼 껌 원료를 혼합하는 것부터 시작해 압출성형, 냉각, 포장 단계에 이르기까지 완전히 현대화되었고 전산화되었다. 생산 공정 과정을 유심히 바라보니 일명‘처녀 기대공’(기계를 조작하는 미혼 여성 기술자) 몇 명이‘전자 현시판’(모니터) 앞에서 단추를 눌러가며 기계를 조종하고 있는 것이 전부였으며 그 외에 현장 노동자들은 머리와 몸에 위생가운과 모자를 걸친 채 분주히 움직이는 모습들도 보였다. 필자 일행이 반죽한 껌 재료 옆을 지나니 벌써 향긋한 껌 냄새가 진동했다.
일명‘처녀기대공’들이 기계를 조작하고 있는 모습. ⓒ 최재영
자료 혼합 공정에서 기계를 다루고 있는 여성노동자들. ⓒ 최재영
사다리를 타고 껌 포장 장치에 올라간 여성노동자. ⓒ 최재영
마지막 공정으로 완성된 껌이 포장되어 나오는 기계. ⓒ 최재영
여러 가지 다양하고 신기한 광경들이 펼쳐지며 완성된 껌들이 포장기로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니 그저 신기하고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었다. 그뿐 아니라 더 놀라운 광경은 껌 포장기에서 쏟아져 나오는 껌들의 량을 측정하는 계수기가 자동으로 제품 숫자를 체크하고 있었는데 그 계수기를 공장기술자들이 자체적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자세히 보니 맨 처음에 가동하는 출발지가 원료혼합기계였고 그 다음이 압출성형, 냉각, 포장 등의 공정이 마치 물 흐르듯 진행되었으며 아무 막힘이 없이 잠시 후 제품이 되어 쏟아져 나왔다. 생산량은 연간 1천 5백 톤이지만, 실제 수요에 따른 생산량은 5백 톤 정도라고 한다.
“껌 원료는 무엇으로 만듭니까?”
“아무리 여러 종류의 껌 제품을 만들어도 기본재료는 거의 동일합니다. 우선 식용성 고무와 사탕가루, 글리세린, 향료, 천연색소들을 기본적인 주원료로 하고 있으며 껌 종류에 따라 다시 박하향, 딸기향, 포도향, 참외향 등 다양한 종류의 향을 추가로 넣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가지 수에 따라 껌에 형태도 판껌, 각껌, 알껌 등으로 만들어집니다.”
알고 보니 껌의 종류는 크게 ‘무당껌(설탕이 안들어간 껌)’, ‘방울껌(풍선을 불 수 있는 껌)’, ‘기능성껌(졸름방지용, 입냄새제거용 등)’등으로 구분이 되며 그 속에 첨가하는 성분과 천연 향료에 따라 여러 가지 맛을 내는 껌들을 만드는 방식이었다. 그 결과 금연껌, 입냄새제거껌, 비타민강화껌, 졸음방지껌, 여성들의 미용에 도움을 주는 미용껌 등 수십 가지 종류의 껌들을 제품화하고 있었다.
“보시다시피 껌제품 포장지에 모두 첨가물이 표시되어 있습니다. 제가 들고 있는 딸기향 껌에는 주원료로 설탕, 물엿, 껌 기초제, 글리세린과 유화제와 딸기향이 사용됐다고 설명이 있지 않습니까? 껌의 보관 기일이 1년이고 보관조건은 어둡고 서늘한 곳에 하라고 되어 있으며, 껌을 씹은 후엔 종이에 싸서 휴지통에 버리라는 안내문도 명시되어 있으며 다른 껌들도 모두 주원료 등을 자세하게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필자가 포장지를 유심히 들려다보니 ‘국규’라고가 표시되어있었는데 설명을 듣고 보니 북측에서 생산하는 제품들의 국가규격은 의무적으로 ‘국규’로 표시하도록 되어있으며 1994년 이후부터는 새로 제정된 규정 때문에 국가규격 표시에는 ‘KPS’를 추가로 사용하도록 했다고 한다.
수십 가지 종류의 껌 제품들. ⓒ 최재영
“껌 종류가 얼마나 됩니까?”
“우리공장에서 생산된 은방울껌은 모두 10가지가 있습니다. 보시다시피 딸기향껌과 박하향껌, 복숭아향껌, 귤향껌, 포도향껌, 커피향껌, 강냉이맛껌, 사과향껌, 참외향 방울껌, 귤향 방울껌 등 무수히 많습니다. 그리고 다시 모양에서는 판대기와 같은 판 껌, 작은 건빵 같은 각 껌, 그리고 구슬 알 같은 알 껌 등이 있으며 기능성에서는 ‘졸음방지껌’ ‘입냄새제거껌’ ‘바나나향껌’ 등이 있고 향기도 ‘과일향’ ‘레몬향’ ‘박하향’ ‘딸기향’ ‘포도향’ 등 소비자의 다양한 입맛을 충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모두 은방울 상표를 달았으며 커피향껌을 비롯해서 대부분 껌들은 한 포장에‘10개입’이 들어가 있고 박하향껌과 복숭아향껌 처럼 작게 포장된 껌은 하나씩 포장되어 있었다.‘1개입’의 양은 큰 포장보다 많아서 성인들이 더 많이 찾고 있으며 향기가 좋고 부드러워서 어린이들과 청소년들도 특히 좋아한다고 한다.
“포도향껌은 청포도향이 진하게 풍겨 껌을 씹으면 포도밭에서 갓 딴 포도를 맛보는 느낌이 전해지기도 합니다. 강냉이 맛 껌은 포장을 뜯는 순간 옥수수를 삶는 냄새가 진하게 풍겨서 옥수수껌이라고 부릅니다.”
필자가 볼 때도 강냉이 맛 껌 포장지에 그려진 옥수수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찐 옥수수 느낌을 잘 살려주고 있었다. 특히 귤향 방울껌과 참외향껌은 다른 식료품가공 공장에서 위탁식으로 생산되는 구조라고 한다. 귤향 방울껌과 참외향껌 모두 이름처럼 각각 향을 포함하고 있어서 직접 껌을 씹어보니 입 안 가득 과일향이 풍겼는데 정말 실제 과일을 먹는 맛이었다.
“껌을 생산하면 어디로 공급이 됩니까?”
“많은 종류의 껌들은 곧바로 평양제1백화점, 광복지구상업중심, 평양역전백화점, 보통강백화점, 아동백화점 등으로 운반되어 판매됩니다. 색깔도 곱고 감칠맛, 눈 맛도 좋아서 나날이 그 수요가 높아지고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제가 듣기로는 국가기념일에 어린이들과 학생들에게 하사품으로 전해진다는 말도 들었습니다만.”
“맞습니다. 우리조선에서는 지난 시기 수령님과 장군님의 탄신일 뿐만 아니라 국제아동절이나 조선소년단창립절을 맞으면 전국의 어린이들이게 은방울껌을 선물로 줍니다. 혁명학원, 육아원, 애육원, 초등학원, 중등학원의 원아들, 평양시와 삼지연시의 탁아소, 유치원어린이들을 비롯한 전국의 유치원어린이들이 껌을 받아 안고 기뻐할 어린이들의 모습을 그려보며 우리 일꾼들은 힘든줄 모르고 생산전투를 힘있게 벌리고 있습니다.”
필자가 나중에 자료를 뒤져보니 전국의 모든 어린이들에게 교복과 학용품을 선물로 나눠주다가 72년 김일성주석의 60회 탄생일부터 껌과 과자가 추가됐으며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기에도 빠짐없이 딸기, 포도, 박하 등 세 가지 맛의 '판껌', '각껌', '알껌'등을 선물한 것으로 확인됐다.
기능성 껌 제품들 모습. 가장 일반적인 껌 형태인 판형껌이다. ⓒ 최재영
“평양껌공장이 없던 시절에는 어떻게 껌을 구했나요?”
“공장을 건설하던 초창기에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모든 설비와 원료를 독일에서 들여와서 공장을 세워서 껌을 생산했습니다.”
“이곳 평양껌공장이 생기기 전에는 어디서 껌을 구입하셨나요?”
“평양껌공장이 생기기 전에는 외국에서 들여온 수입껌 밖에 없었으며 가정집들에서 하는(가내 수공업)송진껌을 씹었습니다. 아우래도 외국에서 가져온 껌은 귀하다보니 송진껌도 많이 애용했던것입니다.”
송진껌은 송진을 따서 큰 솥에 끓인 다음에 찬물을 넣은 그릇에 헝겊을 얹고 끓는 송진을 부으면 찌꺼기를 걸러내고 송진이 물에서 식힌 것을 말한다.
“이 공장 말고 다른 껌공장이 또 있는지요?”
“여기서 가까운 평양 청춘거리에 위치한 금컵체육인 종합식료공장에서 방울껌들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나머지는 모두 여기서 생산합니다. 그곳에는 참외향과 귤향이 들어간 방울껌외에도 체육음료, 탄산음료, 떡, 빵, 당과류, 고기 가공품 등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별도의 공장이 아니고 같은 공장(계열사)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은방울 껌은 어린이들과 어른들 모두에게 선택 아닌 필수
모든 계층이 애용한다는 담배갑 형태의 은방울껌 제품 시리즈. ⓒ 최재영
갖가지 종류의 통에 든 은방울껌 제품 시리즈. ⓒ 최재영
“주로 어떤 껌이 잘 팔리나요?”
“은방울 껌입니다. 향기가 좋고 부드러워서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이 아주 좋아합니다. 은방울 껌은 다른 껌들과는 달리 입안을 깨끗하게 해주고 소화를 촉진해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우식증(치아 우식증은 어린이들의 구강질병) 예방에도 의학적으로 아주 좋다는 것이 입증 되었기 때문에 어린이들의 잇몸과 이뿌리를 튼튼하게 하고, 껌을 자주 씹으면 뇌 활동이 활발해지고 음식물 소화 흡수도 잘 됩니다.”
의학적으로도 입증된 말이다. 껌을 씹으면 침의 분비를 촉진시켜 청정작용을 하는데 그 이유는 침에는 균을 죽이는 면역 성분과 산으로 손상된 치아를 회복시키는 성분도 들어 있기 때문이란다. 자라나는 아이들이 뭔가를 오래 씹는 저작 운동을 하면 수 십 개의 근육이 섬세하게 연관되고 치열과 안면의 근육과 뼈, 뇌 등의 발육을 촉진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운전기사와 학생들이 졸릴 때 잠을 깨기 위한 졸음껌과 입냄새를 없애는 입냄새제거껌이 잘 팔리고 박하향 껌도 잘 팔리고 있습니다.”
“껌에 설탕이 들어있는 경우 충치가 생길 확율이 높은데…”
“그래서 우리 제품들은 무당껌(무설탕 껌)을 많이 만들고 있습니다. 장군님(김정일 국방위원장”께서 현지지도하실 때‘껌에는 사탕가루를 넣는 것보다 단맛 감(천연설탕)을 넣는 것이 좋으니 사탕가루를 쓰지 말고 무당껌을 만들어보라 하셔서 생산하게 된 것입니다.”
“노동자들의 휴가제도가 어떻게 됩니까”
한편 공장을 떠나기 전에 평양껌공장 지배인의 안내로 휴식시간에 휴게실에서 잠시 쉬고 있는 여성노동자들을 만나 휴가제도에 대해 몇 가지 물었다.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확인한 사실 중에 하나는 얼마 전에 “여성근로자 산전 산후 휴가 기간을 기존 150일에서 산전 60일과 산후 180일 등 240일로 확대하였다”는 것이다. 산모휴가제도가 남측이나 미국보다도 월등한 것을 듣고 깜짝놀랐다. 사회복지서비스 측면에서 여성복지 부분의 획기적 변화가 엿보였으며 공적연금이나 보험의 종류도 몇 년전 보다 더 다양했다.
노령연금·유가족연금·제대군인생활보상비외에 산재보험 성격의 사회보험들 종류는 폐질연휼금, 노동능력상실연금등이 있었으며 보조금제도는 일시적보조금, 해산보조금, 장례보조금,의료보조금이 있다고 한다. 연휼금제도 종류도 폐질연휼금, 유가족연휼금, 양로연휼금제도가 적용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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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영의 북녘노동자 이야기] 5회: 인민들이 즐겨 타는 승용차를 생산하는 평화자동차
기자명 최재영 목사 (NK VISION 2020 대표)
승인 2020.08.12 17:10

오늘은 남측과 서방세계에서도 이미 널리 알려진 남포특별시의 평화자동차 생산 공장을 참관한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북에는 합작회사로 운영하는 자동차 생산업체가 이곳 평화자동차를 포함해 모두 일곱 곳이 있으며 그 외에도 다양한 차량들을 자체 생산하는 자동차 공장들이 꽤 많이 있다. 필자는 평양에서 40km 거리에 있는 평화자동차 남포공장을 연속으로 두 차례 참관했으며 마지막으로 방문했던 시기가 2013년도였기 때문에 당시는 이미 통일교가 북측에 운영권과 지분을 모두 넘긴 직후였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소개한 내용들은 평화자동차의 운영권 전체가 북측 정부에 양도된 직후의 시기임을 밝힌다. 또한 이번 회에는 평화자동차 생산 공장 참관 외에도 평화자동차 전시장과 평화자동차 부품상점, 평화연료공급소(연유공급소) 이야기를 모두 다루도록 할 것이다. 그동안 평화자동차는 통일교(가정연합)가 70%의 지분을 소유했고 조선민흥총회사가 30%를 소유하는 구조였으며 이탈리아의 피아트(Fiat)에서 라이선스를 받은 소형차들과 중국의 제일기차제조창(第一汽车製造厰, First Automobile Warehouse, FAW)에서 라이선스를 받은 픽업 트럭과 SUV 등을 조립 생산해오다가 2013년 평화자동차의 지분을 중국에 매각하면서 이제 통일교와는 무관하게 되었으며 이후 평화자동차는 북측으로 완전히 양도되었다.
북에는 자동차생산 공장이 몇 개나 존재하나
평화자동차 공장참관을 이야기하기 전에 과연 북에는 자동차생산 공장이 몇 곳이나 있는지 잠시 알아보도록 하자. 현재 평화자동차 종합공장 외에도 승리자동차 종합공장, 금평자동차 종합공장, 삼흥자동차 종합공장, 조선평운중성자동차 종합공장, 청풍자동차 종합공장과 같이 북측이 중국과 연대하여 합작 설립한 합영회사들이 많이 있다. 그뿐만 아니라 자체적으로 다양한 차량들을 생산하는 평성자동차공장(3.16공장), 청진버스공장, 평양무궤도전차공장(구, 평양화물자동차수리공장), 3.30 함남연결차공장, 6.4차량공장 등이 활발하게 운영 중에 있다.
평화자동차 준공식 장면. 우측에서 일곱번째부터 좌측방향으로 박상권 사장, 김용순 비서, 박보희 회장 등이다. ⓒ 최재영
평화자동차 준공식장을 가득 메운 북측 직원과 근로자들의 모습. ⓒ 최재영
평화자동차 준공식 단상에는 이미 완성한 제1호 자동차가 전시되어 있고 악단까지 동원해 행사를 지원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 최재영
첫 번째로 평화자동차공장은 남측의 통일교재단의 평화그룹이 경영하다 중국을 통해 북측에 지분을 넘긴 회사로서 주로 중국 요녕성 선양 화신(華晨)그룹의 중화(中华)와 진베이(金杯)의 부품을 사용하고, 단동 황하(黄海)의 부품은 CKD(완전분해수입)하거나 SKD(반제품수입) 방식으로 평화브랜드의 승용차와 승합차를 생산해왔다.
두 번째로 평남 덕천에 있는 승리자동차종합공장(구, 덕천자동차공장)이 있다. 2013년 6월에 설립된 덕천(덕중)자동차합작회사는 중국의 투자를 통해 설립된 합작회사로서 연간 3만 대의 생산 능력을 갖추고 있다. ‘승리화물자동차’ 트럭을 10여 종을 연간 수 천대 생산하고 있다. 덕천회사는 승리자동차연합기업소에 연건평 3천여㎡의 화물자동차조립공장을 갖추고 성능 높은 화물자동차들을 생산하고 있는데 이 회사에서 생산되는 화물자동차는 2.5톤급 반짐화물차와 5톤, 8톤, 10톤, 25톤급 평차, 짐함차 등을 생산하고 있다. ‘승리호(화물차)’, ‘자주호’, ‘건설호’, ‘금수산호(이상 덤프트럭)’, ‘갱생호(지프차)’, ‘충성호(마이크로버스)’, ‘천리마호(버스)’, ‘군용트럭’과 ‘포차’도 생산한다.
세 번째, 금평(金平)자동차는 중국과의 합작 회사로, 연간 2만 대 이상의 생산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주 생산 차량은 화물용 차량(0.5~30t 트럭)으로, 중국의 진베이 자동차를 반제품 수입하여 조립 생산하고 있다. CKD하거나 SKD 방식으로 생산하고 있다.
네 번째로 삼흥자동차회사에서는 화물차 조립생산체계를 갖추고 다양한 형태의 화물자동차를 생산하고 있다. 평양시 낙랑구역 전진동에 소재한 삼흥회사에서 생산하고 있는 제품은 ‘천지’라는 상표로 1t 트럭, 1.5t 트럭, 2.5t 트럭과 20t 화물트럭을 생산하고 있다. 특수차인 삽차, 지게차, 유조차, 가스조차 등과 농기계까지 주문받아 판매하며 생산한 제품에 대한 부품은 항상 구비하고 있다.
다섯 번째로 조선평운중성합영회사는 승용차와 화물용 차량 합작공장이다. 이 회사는 중국 상무부와 북측 무역성의 공동 심사를 거쳐 2009년 9월 4일 중국 랴오닝성 단둥에 위치한 중국북조선무역성과 북측의 평양 수도여객운수지도총국 공동투자로 평양에 설립됐다. 이 회사의 총 투자액은 800만 유로로 중국이 54%, 북측이 46%를 투자했으며, 부지면적 36만㎡, 건축면적 118천㎡로 2011년 3월 ‘평양’, ‘천리마’, ‘금강산’ 등 3개 브랜드로 상표등록을 허가받았다. 2011년 9월부터 자동차 조립공장이 생산을 시작했는데 이곳에서는 각종 버스와 화물자동차가 조립 생산되고 있다. 이미 19∼50석의 ‘금강산’ 여객버스와 0.5∼15t 규모의 ‘천리마’ 화물차가 시험 조립돼 생산됐다. 공장에는 각종 차 조립에 필요한 현대적인 설비들로 조립생산 공정이 꾸려져 있으며 공장에서는 조립생산은 물론 차 수리 및 부속품 봉사도 병행하고 있다.
여섯 번째로 청풍자동차합영회사는 소형자동차가 주력 생산 품목이며 소형자동차 외에 소형 및 중형 버스, 화물 자동차 등의 차종도 반제품 상태로 수입해 조립 후 판매하고 있다. SKD방식으로 생산한다.
일곱 번째로 천리마자동차회사는 2015년 중국 자동차회사 중치그룹과 합작을 맺고 자동차 생산을 하고 있다.
이처럼 북에는 모두 일곱 곳의 자동차 생산공장이 가동 중이다. 그 밖에도 평남 평성에 소재한 평성자동차공장(3.16공장)에서는 ‘갱생69호’, ‘갱생69-나호’, ‘태백산호’, ‘장갑차’, ‘지프차’를 생산하고 있으며 청진버스공장에서는 ‘집산-86호’, ‘집산88호’(버스), ‘마이크로 버스’를 생산하고 있다. 또한 평양무궤도전차공장(구, 평양화물자동차수리공장)에서는 ‘천리마호(버스)’를 생산하고 있고 함흥에 있는 3.30 함남연결차공장에서는 대형트럭과 트레일러를 생산하고 있으며 강원도 원산의 6.4차량공장에서도 트레일러를 생산하고 있다.
평화자동차 공장의 역사
필자일행은 평양에서 자동차로 1시간 거리에 위치한 평화자동차공장에 당도했다. 남포항에서 2㎞ 거리에 떨어져 있는 남포특별시 ‘청년도로’ 바로 앞에 위치한 공장 정문 입구에 도착하니 공장 총 책임자인 양정만 지배인이 미리 나와 따듯하게 영접해 주었다. 그의 친절한 설명을 들으며 공장 내부시설을 모두 둘러볼 수 있었는데 그는 노무현대통령이 이곳을 방문할 때 공장 내부를 안내하며 직접 브리핑을 했던 분이다. 양 지배인의 배려로 공장 내부에 있는 그의 집무실을 방문해 사업현황에 대한 브리핑도 청취하며 여러 가지 궁금한 질의응답도 할 수 있었다. 공장 총 부지는 무려 33만 평이나 되며 부지 주변이 농지와 야산으로 조성돼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필요하면 부지 확장이 더 가능하다고 했다. 공장 건물은 크게 자동차 종합생산 건물동과 수리와 개조를 담당하는 건물 동으로 구분되어 있었으며 전체적으로 공장 시설들은 규모가 방대했고 북측의 기술자들과 노동자들은 매우 여유 있는 모습으로 각자의 맡겨진 업무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들이었다. 공장을 건설하던 초창기에는 7,000평이나 되는 공장 내부 설비 등을 갖추기 위해 통일교에서 710억 원 정도를 투입했으며 연간 1만 대의 조립 생산이 가능한 시설을 갖추게 됐다고 한다.
남포공장 내부 모습. 밴 차량이 조립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 최재영
남포공장 내부 현황판에는 2002-2010, 2011-2013까지 생산된 차량종류를 광고하고 있다. ⓒ 최재영
공장이 위치한 남포는 행정적으로는 평안남도 남포시 항구동에 위치해 있으나 남포시는 특별시로 개편되어 어느 도에도 속하지 않는다. 건립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직접 33만 평 대지를 지정해 주며 최종 승인해 주었다고 한다. 필자가 공장부지 전체를 두루 둘러보니 공장 정문과 경비실을 비롯해 자동차 생산라인 과정을 담당하는 ‘제1공장(자동차 조립 건물동)’과 함께 정비와 수리를 담당하는 ‘수리정비 공장동’ 외에 ‘변전급수건물’과 ‘연유공급장’이 자리 잡고 있었으며 울타리를 따라 ‘자동차연구실’, ‘제관장’, ‘도서실’, ‘보위대’, ‘식당건물’, ‘운수건물’ 등이 즐비하게 있었다. 평화자동차 본사는 남북 양쪽 모두 개설돼 있으며 남측에는 ‘서울 강남구 신사동’, 북측에는 ‘평양시 축전동’에 있다고 한다.
원래 ‘평화자동차총회사’는 북 당국으로부터 공장 부지를 제공받은 1997년 2월 27일부터 본격적으로 준비하기 시작해 1998년 1월 7일 공식 설립됐으며 2년 만인 2000년 2월 3일 제1단계 착공식을 거행해 2002년 4월 6일, 공장 건설 공사를 모두 마치고 마침내 준공식을 거행했다고 한다. 준공식과 함께 본격적인 자동차 조립생산 가동에 돌입했는데 당시 남북경협 역사상 제조업 분야로는 최대 규모였으며 앞서 언급한 대로 평화자동차사가 70% 지분을 갖고 북측의 기계공업전문회사인 ‘조선련봉총회사’가 30% 지분을 갖는 남북 합영회사로 출범했다(2000년 1월 련봉과의 합작 투자가 발표되고 조선민흥총회사와 합작 시작). 필자는 남측 통일교와 합작을 했던 북측 파트너 회사에 대해 이것저것 질문하기 시작했다.
양정만 남포공장 총지배인과 함께 자동차 생산라인을 둘러보는 필자. ⓒ 최재영
당시 통일교를 담당한 북측 부서는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이하, 아태평화위)였으며 당시 김용순 위원장과 송호경 부위원장이 공장이 세워지며 자동차가 생산되는 과정까지 많은 역할과 도움을 주었으며 지금도 북측의 ‘해외동포원호위원회’에서 평화그룹(통일교)을 전담하는 부서가 별도로 마련돼 있을 정도로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고 한다. 필자는 북측 파트너였던 조선련봉총회사 리정철 총사장이나 량문범 부총사장과 신경림 총부사장 등이 평소 평화자동차의 운영에 직간접적으로 관여를 했는지가 몹시 궁금했다. 그러나 총사장은 잘 나타나지 않고 실제로 북측 회사를 대표하는 인물은 신경림 총부사장이라고 했다. 그는 고령이지만 엘리트 출신으로서 매우 개방적이면서도 사상이 투철하고 남측 관계자들과의 대인관계도 매우 좋은 인물이라고 했다. 또한 매우 현명하고 합리적인 경영인이라고 평가해 주었다.
여유 있고 단합된 모습의 평화자동차공장 노동자들
평화자동차 내부 시설 공사가 한창이던 2000년도에는 남측 기술자 10여 명 정도가 직접 이곳에 상주하며 기술지원을 했으며 그동안 이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숫자가 초창기에는 350명 정도였고 그 이후 자동차 생산이 한창일 때는 500명 정도가 출근해 일했다고 한다. 대부분 공장 기숙사에 거주하거나 혹은 남포나 평양에 살면서 매일 출퇴근하는 노동자들이었다고 한다. 내가 보고 느낀 것은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과 행정적인 일을 보는 노동자들 모두가 굉장히 순수하면서도 성실하다는 것이었다. 이들은 공장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청년돌격대 조직을 운영하고 있었다.
필자가 총지배인의 안내로 공장내부를 둘러보는 중에도 노동자들은 팀별로 작업을 하다가 말고 뭔가 막히는 것이 있다고 판단되면 수시로 모여 머리를 맞대고 의논하는 광경을 목격하였다. 서로 화기애애하고 단합되고 아껴주고 이끌어주는 모습들이 확연히 눈에 띄었다. 하루 노동 시간은 일괄적으로 모두 8시간이며 임금은 자체적인 인센티브(Incentive)가 있으며 대부분 자발적으로 일을 하거나 배우려는 모습들이었다. 당연히 남측이나 서방세계와는 다른 노동 시스템으로 인해 노사 간에는 아무런 불상사가 없고 노사분규도 없다고 한다. 한 가지 독특한 것은 남측에서 주도했던 회사이지만 이곳에 일하는 노동자들이 모두 북측 인민들이다 보니 매주 금요일에 되면 ‘총화시간’을 갖고 있었다. 이곳 평화자동차 공장의 경우 노동자로서의 자기반성과 발전적인 제안 그리고 공장을 잘 운영하기 위한 아이디어와 노동자들끼리의 화합 등 모두가 다 잘 살기 위한 목적으로 총화시간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남포공장 북측 근로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수시로 기술 회의를 하는 모습. ⓒ 최재영
공장 안의 거대한 벽면에 부착된 게시판에는 자동차생산 연혁이 그려져 있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공장 완공 후에는 이탈리아 피아트사 제품인 2500㏄급 대형차 ‘알파로미오’와 소형차 ‘시에나’를 조립해 생산한 것이 그 시작이었다. 그 후 평화자동차만의 고유 모델을 생산해 출시한 연혁을 차례대로 기록하고 있었다. 특히 준공식을 앞두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환갑인 2002년 2월 16일에 맞춰 제1호 완성차를 내놓는다는 계획이 마침내 성공해 준공식 행사 단상에는 제1호 완성차 모델을 올려놓고 행사를 치렀다고 한다. 또한 알파로미오와 시에나가 출시되기 전까지는 일본을 비롯한 제3국에서 중고차를 들여와 수리한 다음 자국민들에게 판매하는 사업을 했다고 한다. 자동차 운전석이 우측에 있는 일제차량을 좌측으로 옮기는 등 여러 가지 수리를 마친 후 고객들에게 판매했으며 일반 차량들을 정비해주는 사업을 병행하며 오늘날의 평화자동차로 성장시켰다고 한다.
초창기부터 ‘휘파람’, ‘휘파람2’, ‘뻐꾸기’, ‘뻐꾸기2’, ‘뻐꾸기3’,‘뻐꾸기4WD’, ‘준마’, ‘삼천리’ 등 8개 차종을 생산 및 판매했는데 특히 이탈리아 피아트사의 부품을 수입해 제작한 1600cc 승용차 ‘휘파람’은 지금도 평양 시내에 많이 돌아다니고 있었으며 중국 서광자동차 모델을 들여와 생산한 스포츠 유틸리티(SUV) 차량 ‘뻐꾸기’도 많이 생산했는지 평양 시내에 많이 운행되고 있었다. 그 후 북 고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삼천리’ 미니버스를 비롯해 지금은 트럭까지 생산하고 있었으며 필자가 방문하기 전 해(2012년)는 평화자동차의 총생산량이 1500대 정도였다고 한다. 박상권 평화자동차 사장은 북측에 지분을 양도한 이후 현재 명예회장으로 남아 있고 자동차 생산과 판매 등 모든 운영권과 지분을 북측이 넘겨주어 북측 회사가 자율적으로 운영하는 체제로 전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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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회 : 북조선 최대 종합화학공장, 남흥청년화학련합기업소
기자명 최재영 목사 (NK VISION 2020 대표)
승인 2020.10.13 18:21

이번 7-8회는 평안남도 안주시에 위치한 북조선 최대의 종합화학공장인 남흥청년화학련합기업소를 탐방한 이야기다. 이곳은 비료공장을 비롯해 다양한 석유화학 단지가 조성되어있으며 여러 공장과 모든 생산 시설물을 자세히 돌아보려면 아마 사흘정도가 소요되는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공장 단지 안에는 크게 생산기지와 후방기지로 나눌 수 있는데 여기서 후방사업이란 노동자들에 대한 복지후생과 관련된 사업체들을 통칭하는 말이다. 전반부(7회)는 공장 기업소 내부와 생산시설에 관한 이야기이고 후반부(8회)는 자력갱생의 모델로서 자리매김한 노동자들을 위한 후방사업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곳 후방기지에는 노동자들에게 보급하기 위해 운영 중인 각종 채소와 곡식을 재배하는 농장, 양어장, 방목지(목장)는 물론 닭, 오리, 돼지 등을 기르는 축산시설, 국수, 물엿, 기름, 탄산수, 콩기름, 간장, 된장등을 생산하는 식품공장, 생필품 공장 등은 물론이고 노동자들의 복지시설인 숙소를 비롯해 배구장 수영장등 체육관과 운동 경기장 등을 갖추고 있다.
전산화 무인화 자동화를 실천하는 전산실과 생산현장
필자 일행은 평안남도 안주시 남흥지구 청천강 기슭의 넓은 부지에 자리 잡은 북조선 굴지의 화학공업기지인 남흥청년화학련합기업소에 탐방하기 위해 도착했다. 국가기간사업이라 내부시설물중에는 비공개 지역도 있으나 많은 지역과 시설물들을 참관할 수 있었다. 박영근 부기사장의 안내를 받아 가장 먼저 전산실에 들어서니 20명이나 되는 인민복을 입은 젊은 엘레트 전산요원들이 열심히 컴퓨터를 통해 공장 설비 시스템들을 조작하고 있었는데 이는 전산화, 자동화, 무인화, 무균화를 실천하려는 의지로 보였다. 요원들 중에는 컴퓨터 옆에 놓여진 인터폰으로 현장과 수시로 통화하는 모습도 여기저기 보였으며 전산실 내부는 마치 음악스튜디오 녹음실 음향기기를 조작하는 듯한 기계들로 가득차 있었다.
주조종실이라고 할 수 있는 전산실 내부 모습. 20여명의 화학 전산 요원들이 근무하고 있다.
부기사장은 “우리 조선에서는 국내자원에 기초한 주체비료의 생산 공정은 무연탄을 고온으로 처리하여 얻어낸 가스로부터 수소를 꺼낸 다음 이를 질소와 반응시켜 암모니아를 제조하고 요소비료 등을 얻어내는 공정을 바로 이곳 전산실 일꾼들이 거뜬히 감당하고 있습니다” 라며 힘찬 목소리로 설명해주었다. 전산실 내부 중앙 정면에는 “비료는 곧 쌀입니다. 비료생산계획을 미달하는 것은 알곡생산계획을 미달하는 것이나 같습니다 -김정일-”이라고 적혀 있는 최고지도자의 어록이 가로로 걸려있었다. 그뿐 아니라 “백번확인, 한번조작”이라는 구호도 적혀있는데 이는 컴퓨터로 조작되는 시스템이다보니 단 한 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기 위해 스위치를 누르기 전에 다신 한번 생각하고 점검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되었다.
또한 전산실 한복판에는 “원소주기표” 현황판이 크게 쓰여져 있어서 화학공식을 모르는 요원들은 이런 일에 복무할 엄무도 낼수 없겠다 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윽고 공장내부로 이동해서 작업반장 동억철 동무로부터 “우리 조선에 무진장한 석탄을 주원료로하여 비료를 꽝꽝생산하는 공장입니다. 여기는 자립성과 주체성이 확고하게 선 기업소로 발돋음하였습니다” 라며 비료가 생산되는 장면을 보며 여러 가지 설명을 들으며 여기저기 둘러보았다. 공장 내외부벽면 여기저기에는 “농촌에 화학비료를 더많이 보내주자!”라는 구호가 빨강바탕에 흰글자로 붙어있었다. 남측비료가 플라스틱 비닐포대를 사용하는 반면 이곳 북측 비료포대는 ‘뇨소비료’라고 적힌 누런 비료포대였다. 폭포처럼 쏟아지는 비료들을 여성 노동자들이 부지런히 누런포대에 담고 있었다. 그다지 힘든 일은 아니지만 공장 내부의 기계를 조작하며 포대에 비료를 담고 있는 노동자들이 전부 여성들이라서 다시 한 번 크게 놀랐다. 아직은 비료를 포대에 기계가 자동으로 담는 설비는 되지 않은 듯했다.
이어서 창고에 옮겨지는 과정과 창고에 보관된 비료들을 각 지역의 농장 측에서 트럭으로 운반하는 장면들도 목격할 수 있었다. 엄청난 규모의 창고안에는 생산된 각종 화학비료들이 높이 쌓여있고 각 농장으로 전달되는 출하 허락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박영근 부기사장의 설명을 들어보니 농번기가 돌아오면 각지의 농업관계자 일꾼들이 연일 이곳 련합 기업소를 찾아 와서 지배인 집무실 앞에 장사진을 치고 있다고 한다. 각 농장들은 자신들에게 필요한 물량을 가져가기위해 물밀 듯 찾아오는 바람에 이곳은 정신없이 분주해진다고 했다. 특히 5대 협동농장으로 일컫는 미곡(황북 사리원), 신암(평북 룡천), 삼지강(황남 재령) 은흥(평북 태천), 동봉(함남 함주) 등지에서 이곳의 비료를 사용한다고 한다. 5대 협동농장에 포함되는 농장들은 정보당 쌀 생산량이 가장 많은 농장이어야하기 때문에 비료는 매우 필수적이다.
3대 련합기업소에 포함되는 남흥청년화학련합기업소
북에는 이곳 남흥청년화학련합기업소를 비롯해 순천화학련합기업소, 2.8비날론련합기업소 등 3대 련합기업소가 있다. 이 3대 화학공장 외에도 북에는 화학공업기업들이 무수히 많다. 특히 은덕화학공장, 명간화학공장, 신의주화학섬유공장, 청진화학섬유공장, 순천과인산비료공장, 안변과인산비료공장, 보통강유기질복합비료공장, 신의주화장품공장, 평양화장품공장등이 많은 생산량을 자랑하고 있다. 필자가 이곳 남흥청년화학련합기업소를 방문한 시기는 2013년과 2015년 두 차례이다. 첫 방문은 2013년 6월 당시 김정은 북방위 제1위원장이 남흥청년화학연합기업소를 방문한 이후였으며 확장공사를 마치고 대대적인 석유화학 제품 생산에 들어간 시기였다. 이날은 필자가 남측에서 청소년 시절에 포항제철을 탐방한 것과 같은 감흥이 되살아 날 정도로 그 규모가 매우 방대하여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부기사장 박영근 동무의 설명에 의하면 북에서 이 공장이 차지하는 위상과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한가하면 이곳이야말로 “사회주의 수호전의 제1병기창”이라는 명성을 얻을 정도라고 한다. 이를 뒷받침하듯 “농업전선은 사회주의경제건설에서 주타격방향이며, 남흥청년화학련합기업소는 사회주의농업전선에 탄약을 공급하는 병기창이다. 싸움에서 탄약이 중요한 것처럼 농업생산에서는 비료가 중요하다”는 구호가 로동신문에 기사화될 정도였다. 정면돌파전의 주타격 전방은 여전히 농업전선인데다가 북 정부 수립 초창기부터 “비료는 곧 쌀이고 쌀은 곧 사회주의”라는 구호에 부응하는 기업이 바로 이곳 남흥청년화학련합기업소이다. 이를 다시 한번 입증이나 하듯 그동안 내각총리를 3차례(17대, 22-23대)나 역임한 박봉주도 이곳 남흥화학련합기업소의 당 책임비서 출신이며 내각 부총리 겸 화학공업상인 리무영도 이곳 남흥화학 출신이라고 한다.
초창기 김일성 주석은 물론이고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매년 현지지도를 할 정도로 비중이 컸으며 운명하기 직전인 2011년 5월에도 현지시찰을 했다고 한다. 현재의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몇 차례나 이곳을 현지 지도하여 관계부분 일꾼들을 격려하고 지도하였다고 한다. 박봉주도 총리를 그만둔 이후에도 국무위원회 부위원장 자격으로 남흥청년화학연합기업소를 시찰할 정도로 당과 내각에서 가장 애착을 갖고 주목하는 기업소가 바로 이곳이라고 한다. 남흥청년화학연합기업소는 1975년 이래 나프타(석유화학 중간원료)를 수입해 연간 75만톤의 비료를 생산해 오다 석탄가스화공정 공법으로 바뀐 것은 원료자립 차원에서 계획되고 추진된 것이었으며 필자가 방문하기 전해인 2012년에 들어서 질소비료 100% 자급 계획이 실현될수 있었다고 한다. 그후 비료생산에 필요한 촉매제와 정결제도 자체생산하게 되어 주체적인 비료생산의 토대를 마련하게 된 것이니 가히 놀라운 성과물로 여겨졌다
지난 시기는 주로 외국에서 수입한 석유제품의 일종인 나프타를 원료로 하여 화학비료를 생산했는데 90년대에 닥친 여러가지 시련의 시기에는 원료확보에 여러 어려움들이 있다보니 비료생산도 차질을 빚게 되었다.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결국 착안한 것이 바로 북측 영토에는 무궁무진하게 생산되는 무연탄을 이용해 가스화하여 이를 원료로 이용하는 방법을 착안한 것이다. 북측은 이것을 비료생산을 안전하게 정상화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방도로 여기고 그 생산공정 건설을 추진해 오던 중 이 모든 것을 2010년에 거의 완성시킨 것이다.
남흥청년화학련합기업소의 발전 역사를 듣다
안주시에 소재한 이 기업소는 당시 김일성 수상의 지시에 의해 1960년대 말에 건설에 착수해 1973년에 확장되었다고 한다. 1973년 프랑스 Speichim사와 플랜트 도입계약을 체결함으로써 건설되기 시작해 1974년에는 중국과 공장구내까지의 송유관 설치공사를 시작해 완성하였고 1976년 4월에는 요소비료 생산공장(40만톤 규모)을 완공했고, 1979년 나프타 열분해공장(에틸렌 3만톤 규모), 고밀도 폴리에틸렌공장(LDPE 2.5만톤), 아크릴 로니트릴 합성공장(AN 1만톤), 아닐론 섬유공장(ASF 1만톤), 산화 에틸렌공장(EO 1만톤) 등이 완공되어 생산 조업에 들어가면서 본격적 석유화학공장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다고 한다.
지속적인 설비확장공사로 1986년 10월 펄프, 제지공장(4만t 규모)이 문을 열었으며 1988년 9월 탄산소다공장이, 1989년 2월 합성수지공장이 각각 착공되었고 8월에 1만 5천㎢ 부지위에 완공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옛 소련이 해체되고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면서 시설 개보수가 중단되었는데 1993년부터 18년간 가동이 중단됐었다. 2천년 대 초에 들어 경제난이 완화되면서 개보수 작업을 다시 시작해 2005년에는 10월 당창건 60돌을 목표로 탄산소다공장 능력 확장공사를 완료했다고 한다. 탄산소다는 유리와 비누, 수산화나트륨, 탄산수소나트륨 등의 원료로 사용된다고 한다.
공장내부의 시스템 설비를 조작하고 있는 모습
이로서 남흥청년화학연합기업소는 요소비료, 나프타 열분해, 고압폴리에틸렌, 아닐론 등 생산시설을 갖추고 비료, 탄산소다 등 다양한 화학제품을 생산하고 있으며, 그 공로로 국기훈장 제1급이 수여됐다고 한다. 대표적인 석유화학공장인 이곳 연합기업소의 탄산소는 파이프, 필름, 가방 등 플라스틱 제품의 주 원료가 되는데 이처럼 폴리에틸렌, 폴리프로필렌, 유리, 종이, 물감 등에 이용되는 탄산소를 대량 생산하게 된 것이다, 이곳에서 생산된 제품은 플라스틱 가방공장 등 각 연관생산업체로 다시 보내져 가공되어 제품으로 만들어져 상품화된다고 한다. 그 외에 요소비료, 아크릴섬유 등을 생산해서 북 내부에 공급하거나 해외에 수출하고 있는데 수출은 한때 남흥무역회사가 대행했다고 한다.
특히 주력 품목인 폴리에틸렌(LDPE)과 화학비료의 원료가 되는 나프타는 평안북도 피현군의 봉화학공장과 함경북도 선봉군의 승리화학연합기업소로부터 공급을 받아오다가 이 공장의 석탄가스화공정은 2006년 1월 사업이 최초 결정됐으며, 인민생활과 직결되는 국가의 1차중점대상으로 지정돼 2008년 5월부터 공사가 본격 시작됐다고 한다. 이곳 남흥에서는 무연탄을 원료로, 흥남에서는 갈탄을 원료로 한 질소비료 생산공정을 갖추게 된 것인데 이는 모두 인근에 풍부한 석탄을 활용하려는 프로젝트였던 것이다. 2006년 말부터 무연탄 가스화공장 신설공사에 들어가서 무연탄 가스화 처리 공정을 기반으로 한 화학비료가 2010년부터 생산됐고, 2011년에는 제2의 무연탄 가스화 처리 공정이 완공됐다고 한다. 필자가 방문할 때 공장내부를 둘러보니 엄청난 량의 비료들이 폭포처럼 쏟아져내리고 있는 것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무연탄 가스화공장의 경우 2006년 초 단지 북쪽에 4만 4천 평방미터 넓이의 시설이 들어선 뒤 2010년에는 22만 5천 평방미터로 무려 5배 이상 규모가 확장되는 등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이곳에는 단지 내 시설들을 잇는 철로와 무연탄 저장시설이 포함돼 있고 요소비료 공장도 증축된 면적이다. 이어서 2010년과 2011년에는 화학원료인 탄산수소나트륨 생산 공장의 개축공사가 완공되었고 2013년도에는 8천 평방미터가 넘는 저장고 시설이 완공됐는데 필자가 방문한 시기는 이곳이 완공된 직후였다. 그리고 2012년에는 제2희천발전소 완공으로 전력사정이 해결돼 전체 생산량도 증가했으며 남흥 석유화학 단지도 확장되었다고 한다. 남흥청년화학연합기업소의 확장 공사가 늘 현재진행형일 정도로 언제나 확장되고 있으며, 이는 석유화학 부문을 현대화하겠다는 지도부의 의지를 반영한 것이다. 무연탄 가스화공장 건설과 요소비료 공장 개보수는 식량문제 해결과 직결된다. 화학비료 생산량이 늘면 농업 부문의 생산성도 향상되기 때문이다
일반기업과 련합기업소의 차이점을 묻다
필자는 이곳 공장의 명칭이 ‘련합기업소’라는 것에 대해 구체적인 이해가 필요했다. 또한 2010년 4월 29일부터 본격적인 생산 활동을 개시한 석탄가스화공정에서 생산된 비료를 일반 비료라고 하지 않고 ‘주체비료’라고 부르고 있었는데 그것에 대해서도 궁금했다. 알고 보니 주체비료란 석탄을 원료로 한 비료에 대한 북측의 특별한 호칭이었다. 그렇다면 북에서는 여러 형태의 공장과 기업소가 있으며 이와 별도로 련합기업소가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련합기업소이고 어떤 특징이 있는지 알아보았다. 통상적으로 공장, 기업소라는 것은 대규모 생산단위라고 할 수 있으며 계획경제노선을 철저히 실시하는 북조선에서의 공장이나 기업소는 당과 국가의 통제 하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중앙기관인 국가계획위원회가 기업소나 공장에 생산계획을 하달하고, 지방기관인 도경제지도위원회가 일상적으로 기업의 계획 집행 상황을 파악하고 지도하는 시스템이라고 보면 된다. 기업의 제일 위에는 지배인과 기사장이 있고 그 아래 전문부서들이 배치되는 것 뿐 아니라 모든 노동자들의 조직이 노동자 위주로 군더더기 없이 잘 갖춰져 있다.
연구원들에 의해 비료생산에 필요한 촉매제와 정결제도 자체생산하게 되어 주체적인 비료생산의 토대를 마련했다.
그런데 이중에서도 련합기업소라는 형태의 기업들이 존재한다. 알고보니 기업들의 연합체가 처음 결성된 것은 이미 1970년대이며 1980년대에 들어서는 거의 모든 생산부분과 경제부문에서 이런 연합기업이 결성되어 운영되었다고 한다. 쉽게 설명하자면 서로 같은 업종끼리 혹은 연관이 있는 복수의 기업소들이 모인 대규모 기업소라고 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또한 생산기술적 연계를 기본으로 해서 조직된 대규모 연합체라고 보면 된다.
기자명 최재영 목사 (NK VISION 2020 대표) 승인 2020.05.20 14:33
<노동과 세계>를 통해 민주노총 회원 여러분들과 2020년 4월~11월까지 8회에 걸쳐 북측 노동자들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어 무척 반갑습니다. 1회는 북조선(북한)이라는 국가를 이끌고 있는 “조선로동당”에 대해 알아 보았습니다. 당 명칭에 “로동”이란 단어가 들어갔고 로고(마크)에도 노동자들을 상징하는 망치와 낫과 붓을 그려 넣었기 때문에 뭔가 노동자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처럼 북녘의 정치체제에 대해 간략하게나마 알게 되면 북측의 노동정책과 노동자들에 대한 이해가 쉽습니다. [필자 주]
노동자 출신의 탈북 여성 효주씨는 2014년 “나는 나는 될 터이다 로동자가 될 터이다”라는 제목으로 자신이 북에서 살았던 경험을 언론에 연재한 적이 있다. 북에서도 누구나 자신이 선망하는 직업이 있기 마련인데 그녀는 다기능 운전사가 되고 싶었다고 한다. 북에서도 운전사라는 직업이 아주 선망의 대상은 아니지만 그녀가 운전사가 되고 싶었던 이유 중에 하나는 집안에 운전사가 무려 4명이나 있어서 주변에서는 “운전사 가족”이라고 부를 정도로 가업처럼 이어져 왔고 안정적인 직업군에 속했기 때문이다.
효주씨가 어린 시절 꿈이 노동자가 되는 것이 소원일 정도로 북에서의 노동자들은 직업적인 면에서 확고하고 안정적인 것은 사실이다. 자본주의 남측사회에서는 많은 이들이 “회장님”, “사장님” 혹은 “이사장님”, “대표님”으로 불리는 것을 선망의 대상으로 삼는다. 천 만 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남측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길거리나 모임에서 상대를 향해 “노동자님”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거의 없으며 “노동자”라는 명칭 자체를 타인도 본인도 그다지 자랑스럽게 여기지 않는듯하다. 이는 노동을 천시하는 예로부터 내려온 정서와 사상이 아직도 뿌리 깊게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사회주의 북측은 노동자들에 대한 정책과 처우개선이 어떤 방식으로 작동 되길래 어린 소녀의 꿈이 노동자가 될 수 있는지 우선 제도와 법규 위주로 알아보도록 하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 헌법에는 “공화국의 주권은 로동자, 농민, 군인, 근로 인테리를 비롯한 근로인민에게 있다”를 필두로 “공화국은 로동 계급이 령도하는 로농동맹에 기초한 전체 인민의 정치사상적 통일에 의거 한다”는 등 노동 계급과 관련한 조항들이 자주 등장한다. 또한 노동자들과 관련된 여러 조항들이 헌법에 확고하게 명시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다음과 같은 제도적 장치들이 뒷받침하고 보장하고 있다.
헌법에 명시된 조항을 실무적으로 시행하는 중앙행정기관은 내각의 로동성이다. 로동성은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향상과 개선, 노동환경에 대한 지도감독은 물론 노동자들의 인권 후생을 책임진다. 또한 노동력 수급과 임금 등 노동관련 계획을 종합하여 내각의 국가계획위원회, 재정성, 수매량정성 등과 함께 공조하여 각 부문의 노동력 소요량을 심의 확정하여 각 도, 시, 군, 구역 인민위원회의 노동행정 부서에 시달하는 제도적 역할도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의 직업 안정을 관장하며 실업대책과 직업훈련, 노동조합 지도관리에 관한 사무를 총관장하고 각 도, 시, 군, 구역 인민위원회의 노동행정 부서 네트워크를 통해 노동정책과 행정을 시행하는 등 노동자들만을 위해 복무하는 기관이다.
그렇다면 북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노동력의 수요와 공급이 원활하게 유지 될 수 있을까? 내각의 로동성과 교육성 두 기관은 노동력 공급을 위해 항상 공조하고 있다. 우선 로동성은 매년 말이 되면 교육성에서 제출하는 다음 년도 고등중학교 졸업예정자 명단을 넘겨받아 그 중에서 대학교에 진학하지 않는 졸업자들을 노동력의 원천으로 삼기 위한 파악에 들어간다. 졸업자들 중에서도 노동력으로 공급할 수 있는 인원을 추산하여 선별 확정하고, 각 부문에서 필요한 인력 배치계획에 따라 종합신체검사(보건성 주관)를 통과한 인력들을 체계적인 방법으로 기술직, 기능공 등으로 결정한다. 이와 동시에 공장, 기업소, 연구소, 농장 등 전문 기술기능인력 요구에 따라 내각들이 주도하여 기술 기능 훈련소 인력배치와 교육훈련 지원을 한다. 대략 이런 방식으로 북측 노동력의 수요와 공급이 결정된다.
마지막으로 노동자들의 가장 큰 단체라고 볼 수 있는 조선직업총동맹(직맹)의 기능과 역할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현재 조합원 250만 명을 보유한 직맹은 김일성-김정일주의청년동맹, 조선사회주의녀성동맹, 조선농업근로자동맹과 함께 4대 근로 단체에 속하며 최고인민회의의 구성원이기도 하다. 직맹에는 노동당에 가입하지 못한 30세 이상의 노동자, 기술자, 사무원 등 거의 모든 직장인이 가입되어 있는데 이중에서 조선농업근로자동맹, 조선민주여성동맹, 사회주의로동청년동맹에 가입해서 활동하는 회원들을 제외가 된다. 직맹은 중앙당(조선로동당)의 지시와 감독을 받다. 직맹의 간부들은 당에서 지명하며 이후 절차를 거쳐 선출되며 직맹의 중앙기관과 산업별 직맹, 초급 단계의 직맹 지도부 등은 모두 열성당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직맹은 전체 노동자를 하나로 묶어 사회적, 경제적 지위 향상과 권익 옹호를 위해 힘쓰는 대중적 근로단체라고 보면 된다. 노동자들도 사회적인 위상과 역할이 있는데 이를 대변하거나 권리를 찾아주며 경제적인 복지 혜택 등 경제적인 지위향상도 직맹에서 보장해주는 기능이 있다. 직맹의 정체성을 살펴보면“노동당의 옹호자이며 당의 영도하에 모든 활동을 전개하며 노동계급의 통일과 단결을 강화하며 그들을 당 주위에 결속시켜 당이 제기한 혁명수행에 조직 동원된다”는 규칙이 있어 노동당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직맹은 당과 노동계급을 연결시키는 인전대(벨트)이며 동맹원들에 대한 사상교양단체의 역할도 감당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또한 직맹은 수령과 조선노동당의 방침과 노선을 노동 분야에서 관철하는 노동자단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그렇다고 노동당의 통제를 받기 때문에 보조단체나 어용단체라고 오해하기 쉽다. 노동당의 정식 명칭이“노동자의 당(Workers’ Party of Korea)”인 것처럼 당명에서도 볼 수 있듯이 자본가들이 이끌어가는 남측사회와는 달리 북측사회를 이끌어가는 주체는 노동자 계급이며 노동자를 대변하는 단체임을 알아야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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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영의 북녘노동자 이야기] 3회: 대리석보다 7배나 강한 타일을 만드는 천리마타일공장을 방문하다
기자명 최재영 목사 (NK VISION 2020 대표)
승인 2020.06.16 11:04
2012년 9월말 나를 포함한 미주 방북단 일행은 어느 날 저녁 환영만찬장에서 만난 어느 북측 관료가 심각한 표정으로 “여러분도 잘 알다시피 지금 조국(북조선)이 공장에서 좋은 물건을 많이 만들어도 어디다가 내다 팔 나라가 없습니다. 수출이 여기저기 다 막혀있습니다”라며 대북 경제제재라는 미명하에 자행되는 미국의 대북 적대시정책과 고립 압살정책의 결과를 우려스럽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또한 그 며칠 전에 만난 김철주사범대학 정치학 강좌장 정기풍 교수도 우리에게 “대동강 타일공장에서는 일반 대리석보다 강도가 7배나 되는 세계적인 제품을 만들었는데도 미국의 제재조치 때문에 외국 어디에도 내다 팔수가 없습니다” 라며 푸념했던 적이 있었다. 이때 우리 일행들은 미국과 유엔의 대북제재조치가 북에서는 생각 이상으로 피부에 와 닿는 심각한 현실이라는 걸 체감했다. 나와 일행들은 촬영 팀을 꾸려 그토록 대리석보다도 더 강하고 좋은 제품이라며 자랑하는 대동강타일공장을 방문했다. 그 후 대동강타일공장의 명칭은 2014년 8월 김정은 위원장에 의해 천리마타일공장으로 변경됐다. 천리마의 고향인 강선에 자리 잡은 공장이니 그 이름을 천리마타일공장으로 명명했다는 것이다. 필자는 2012년 9월과 2014년 9월 두 차례에 걸쳐 이 공장을 참관했다. 그런데 필자가 처음 방문했을 당시 이 공장의 운영주체가 노동당 행정부에 소속된 장수길이 책임을 맡아 운영했다는 말을 들었으나 2014년 8월 김정은 위원장이 현지지도하면서 이 공장을 조선인민군대에서 운영하도록 과업을 주었다고 한다. 우리 일행은 평양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남짓 거리에 위치한 남포시 천리마구역에 있는 타일공장을 찾았다. 필자가 두 번째 방문 할 때는 공장 참관을 마치고 평양으로 상경하는 길에 구경삼아 평양골프장을 잠시 들리기도 했다. 평양과 남포를 잇는 고속도로의 태성호수에 인접해 있어서 태성골프장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나중에 평양CC는 라고 부르기도 한다.
1. “타일제품은 사람의 겉옷과 솟옷과 같습네다”
남측이나 해외 언론을 통해 자주 보게 되는 평양시내 고층아파트와 빌딩들의 내벽과 외벽에 사용된 다양한 타일들과 자재들은 모두 천리마타일공장(대동강타일공장)의 제품들이라고 보면 된다. 2009년에 준공됐다는 이 타일공장은 준공 당시 책임일군이 “2012년이면 평양의 면모가 크게 바꿔 질 것입니다”라고 조선중앙텔레비전에 나와 인터뷰한 장면을 고려호텔에서 시청한 생각이 얼핏 기억났다. 그런데 그의 말이 실제로 현실화된 것이다. 창전거리, 여명거리 고층 살림집 건설을 비롯해 최근 미래과학자거리와 고층아파트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건축에 크게 기여한 것이다. 우리일행의 공장 방문을 환영하고 영접한 사람은 리홍기 사장과 윤갑병 부기사장이었다. 부기사장보다 나이가 어려보이는 사장은 만나자마자 “가까운 장래에 우리 온 나라가 20세기의 낡은 옷을 벗어던지고 새 옷을 차려 입을 것입니다”라며 큰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 의미는 수도 평양 외에도 전국적으로 모든 중소 도시와 마을들의 면모를 모두 획기적으로 일신하는 건설이 곧 추진된다는 말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나라의 거리와 건물들마다에 저희 대동강타일을 붙인다는 것은 우리 인민들이 입는 옷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속옷도 겉옷도 모두 우리의 것이니 진짜배기 멋쟁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처럼 만나자마자 자주적이고 창의적인 책임일꾼들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흐뭇했다.
2. “대동강타일은 이딸리야 제품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습니다”
이어서 일행은 공장 내 대형 브리핑 룸에 도착해 부기사장과 부소장으로부터 현장 상황 설명을 50분 동안 소상하게 청취했다. 설명을 시작하던 부소장도 미국의 제재조치에 대한 언급을 하면서 “우리 조선의 마감건재 공업이 눈부신 도약을 이룩하여 대리석처럼 견고한 타일을 생산했으나 미제의 조선경제압살정책으로 인하여 수출이 막혀 있는 상태입니다” 며 운을 뗐다. 아마도 나와 일행들이 모두 미국에서 방문한 동포들이다보니 더 강조하고 있는 듯 했다. 이어서 이번엔 부기사장이 자신은 지금까지 세계 여러 나라의 마감건재공장을 모두 둘러보았으나 여기처럼 종합적인 생산기지는 이제껏 그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고 했다. 나는 “그럼 원료는 어디에서 수입합니까?”라고 물었더니 “아 저희는 외국에서 수입하지 않습니다. 원료들은 모두 함경남도 길주군 룡담리, 고령석은 량강도 은흥군 령하구, 규석은 평안북도 녕변군 옥향리에서 직접 생산합니다. 투희석이라고 부르는 재료를 직접 실고 와서 무연탄으로 가스화 공정방식으로 연료를 만듭니다”
한편 이곳 타일공장이 건설되기까지 국가의 막대한 투자가 있었으며 지금까지의 사업성과는 돈으로 된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과 기술자들의 자체의 힘으로 된 것이며 그 결과 원료와 연료의 국산화를 성공했다는 것이다. “각 나라의 설비는 돌과 흙을 그 나라에서 정한 배합 비율에 맞게 쓰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는데 그 속에는 우리 조선에는 없고 외국에서 수입해야 할 원료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공장은 순수하게 우리나라의 돌과 흙으로 만드는데 마침내 성공한 것입니다.” 해마다 수백만 평방미터 분량의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각종 타일과 다양한 기왓장을 생산한다는 이 공장에서는 얼마 전까지 평양 민속공원 건축을 위해 120만 장의 도자기 기와를 두 달 만에 생산했고 올해 안으로 평양에 10만 세대 아파트 건설에 소요되는 타일 마감재도 공급하기 위해 생산을 멈추지 않고 있다고도 했다.
기와 외에도 외벽타일, 내벽타일, 바닥타일, 대리석타일, 장식 및 띠 타일, 도자기 기와 등을 대량생산하고 있었으며 공장부지 면적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매우 웅장하고 광활했다. 특히 우리 일행이 당도하기 얼마 전부터 대형유리 복합타일, 미정석, 대형 인조 대리석타일 등을 생산하는 종합연마 흐름선 등의 설비를 끝내고 공장은 이미 풀가동 중에 있다고 했다. 또한 앞으로 3년 동안 일반 살림집과 공공건물, 극장, 호텔 등 호화시설에 이르기까지 모든 건축물의 설계에 따라 필요한 마감건재를 모두 만들어낼 수 있는 종합적인 생산기지로 더욱 바뀌게 된다고 했다. 우리일행은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 종합전산실로 행했다.
3. 최첨단시스템 주조종실의 전산인력이 노동인력을 대신하다
공장안에는 종합상황실의 역할을 하고 있는 주조종실이 있었으며 그 안에는 20여명의 전산실 요원들이 푸른 제복을 입고 최첨단제어장치들을 컨트롤하기 위해 모니터를 보며 컴퓨터를 정신없이 작동하고 있었다. CNC(컴퓨터수치제어) 장치들이 설치되어 있었고 전체적으로 볼 때 모든 시스템이 자동화와 현대화를 마쳤다. 물론 이곳 뿐 아니라 다른 공장이나 기업소도 100% 현대화 자동화를 마쳤다. 옛날처럼 엄청난 설비시설이 갖춰 있어서 노동력이 투입되는 공장시설을 탈피한 것이다. 노동자들은 자동으로 움직이는 설비에 지장이 없도록 관리만 하고 있었다. 세밀한 공정이나 사람이 직접 손으로 하는 부분은 현장에서 직접 노동자가 관리하고 노동력을 사용하고 있지만 대부분은 전 구역이 자동화가 되어있었다. 우리 일행들은 유약원료 생산 공정과 타일 원료 가공 공장 구내만을 왕복하는 미니버스를 탑승하고 구내를 참관하기 시작했다. 컨베어 벨트에는 제품들이 계속 쏟아져 나오고 한편에서는 물건을 포장하고, 또 한편은 제품을 운반하는등 제 각각 맡은 임무에 집중하는 모습들이었다. 일행을 인도하기 위해 셔틀버스에 탑승한 부소장은 “현재 전 세계적으로 마감건재 분야에서 국제적으로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나라는 이딸이야(이탈이아)인데 이젠 우리 조선의 대동강타일상표(브랜드)가 그 수준을 넘어서 있단 말입니다. 망치로 두드려도 절대로 깨지지 않을 정도의 강도 높은 제품들이 우리 공장에서 생산되고 있는데 거의 모든 타일제품들이 대리석의 7배가 되는 강도를 지니고 있습니다”며 확신에 찬 설명을 이어갔다. 사실 건재수요의 확대는 경제부흥 지표 중에 하나다. 생산 확대에 앞서 건설이 있는 것이다. 공장, 기업소에서도 설비를 놓기 전에 건물을 세우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타일과 더불어 시멘트의 수요도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에 경제가 활성화된 증거이다. 부소장은 마지막으로 “인민이 남부럽지 않게 사는 사회주의 강성국가는 그 누가 저절로 안겨주지 않고 오로지 자체의 힘으로 건설해야 한다고 믿는 신념의 강자들이 우리나라의 건재부문을 맡고 있기 때문에 우리공화국은 앞으로 부강 발전할 일만 남았습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4. 공장 내 유독성 냄새에 대한 노동환경이 개선되다
미니버스가 중요지점에서 잠간씩 멈춰 서서 해설을 맡은 부소장의 설명을 듣는 동안 나의 코에는 이상하게 유독성 냄새가 흘러 들어와서 잠시 호흡이 불편했다. 시야도 뿌옇고 역겨운 냄새가 은은히 진동하는데 그런 공장안에서 노동자들이 마스크도 쓰지 않고 분주히 일을 하고 있었다. 내 고향이 경기도 양평인데 7-80년대 양평에서 서울을 갈 때마다 서울 근교 덕소를 버스가 지날 때마다 원진레이온 공장에서 나오는 유독성 악취 때문에 나와 승객들은 무척이나 힘들었던 추억이 잠시 스쳤다. 놀란 나는 떠나기 전에 부소장에게 노동자의 노동여건과 환경의 차원에서 그 문제를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그의 답변은 “노동자들을 위한 마스크는 이미 충분히 준비되어 있으나 노동자들이 일하는데 불편하고 번거롭다며 쓰지 않고 일 한다”는 답변과 “그렇지 않아도 지금 환기시설 공사를 준비하고 있다”는 답변을 들었다. 많은 비용이 들겠지만 하루빨리 공장건물 전체에 유독가스 발생요인을 제거해야 하고 환기시스템 시설을 설치해야 하며 공기정화 시스템 공사를 해야만 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이 개선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며 그 공장을 떠났다. 다행스럽게도 그 후 2014년에 다시 방문해서 확인해보니 그 당시보다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쾌적한 실내 환경으로 변모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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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영의 북녘노동자 이야기] 4회: 초현대식 전산화를 갖춘 평양 껌공장과 노동자들
기자명 최재영 목사 (NK VISION 2020 대표)
승인 2020.07.15 15:58
평양시내는 물론 북녘의 농촌과 소도시, 그리고 각종 공장과 기업소, 국영농장과 협동농장 등을 참관 할 때마다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초현대식, 경량화, 전산화, 무인화 등을 추구하고 있는 공장들과 기업소들이 연이어 준공되어 운영되고 있는 것을 보니 새삼 북조선의 자력경제와 자력갱생에 대한 저력을 실감하기 때문이다. 오늘은 남측과 서방세계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평양 껌 공장’을 참관해 공장내부를 둘러보고 생산된 제품을 확인하고 노동자들과 잠시 대화를 나눈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특히 식품이나 다과류 공장들에서는 새로운 생산 공정을 마련하기 위한 건물이 계속 건설되고 있으며, 국가과학원, 김책공대 등은 이런 공장의 통합생산관리체계 구축을 지원하고 있었다. 원료투입에서 포장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인 공정의 자동화, 무인화, 무균화, 무진화 설비가 진행되는 것을 보면 경공업 발전을 위한 노력이 어느 정도 섬세하고 강력한 것인가에 대한 단면을 엿 볼 수 있었다.
현대식 전산화 설비에 의해 쏟아져 나오는 껌 제품들
평양껌공장은 2002년 경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경공업 부문의 한 일꾼을 불러서 평양에 껌을 전문으로 하는 현대적인 공장을 건설해서 인민들과 어린이들에게 껌을 공급해주라는 제안에 의해 건설됐다고 한다. 그리고 인민군대 건설대가 동원되어 1년 남짓한 짧은 기간에 소문 없이 준공이 되면서 온 나라에 껌 향기가 풍기게 된 것이다. 첫 제품이 나왔을 때 공장일꾼들과 노동자들은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꽃의 이름을 꼽아가며 상표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필자일행이 찾아간 평양껌공장은 평양시내 통일거리에 있는 3대헌장기념탑 인근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본관건물과 2-3개의 부속 건물로 이뤄진 깔끔한 흰색 공장건물이 눈앞에 나타났다. 공장에 도착해 종합상황실에서 전경도(현황판)를 보니 평양시 낙랑구역 통일거리에 위치한 이곳의 ‘총부지면적은 1만 1,900㎡ 이며, 연건평은 4,400여 ㎡의 규모’로 표기되어있었다.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공장 지배인 송혜정 동무가 상세하고 친절하게 답변해주며 설명을 이어갔다.
“저희 평양 껌 공장은 장군님의 뜨거운 은정과 각별한 관심 속에 1년 남짓한 기간에 우리 인민군대가 모두 일떠서 2003년 10월 23일에 준공하여 조업(가동)을 시작했으며 그 후 기본건물 외에 보조건물을 다시 1년 동안 일떠서서 건설하면서 지금의 모습으로 완공되었습니다. 그때 가장 처음 나온 상품이 바로‘은방울껌’이며 우리 장군님이 직접 지어주신 상표이름입니다.”
필자가 공장내부를 둘러보니 흰 가운을 입고 기계조작을 하고 있거나 컴퓨터 앞에서 전산을 다루는 노동자들의 대부분이 여성들이었고 남성들은 간혹 눈에 띌 정도였다. 정보산업시대의 요구에 맞게 모든 생산 공정은 육체적 노동이나 수작업이 아니라 모두 전산화, 자동화로 기계들이 움직였다. 마치 밀가루 반죽처럼 껌 원료를 혼합하는 것부터 시작해 압출성형, 냉각, 포장 단계에 이르기까지 완전히 현대화되었고 전산화되었다. 생산 공정 과정을 유심히 바라보니 일명‘처녀 기대공’(기계를 조작하는 미혼 여성 기술자) 몇 명이‘전자 현시판’(모니터) 앞에서 단추를 눌러가며 기계를 조종하고 있는 것이 전부였으며 그 외에 현장 노동자들은 머리와 몸에 위생가운과 모자를 걸친 채 분주히 움직이는 모습들도 보였다. 필자 일행이 반죽한 껌 재료 옆을 지나니 벌써 향긋한 껌 냄새가 진동했다.
여러 가지 다양하고 신기한 광경들이 펼쳐지며 완성된 껌들이 포장기로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니 그저 신기하고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었다. 그뿐 아니라 더 놀라운 광경은 껌 포장기에서 쏟아져 나오는 껌들의 량을 측정하는 계수기가 자동으로 제품 숫자를 체크하고 있었는데 그 계수기를 공장기술자들이 자체적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자세히 보니 맨 처음에 가동하는 출발지가 원료혼합기계였고 그 다음이 압출성형, 냉각, 포장 등의 공정이 마치 물 흐르듯 진행되었으며 아무 막힘이 없이 잠시 후 제품이 되어 쏟아져 나왔다. 생산량은 연간 1천 5백 톤이지만, 실제 수요에 따른 생산량은 5백 톤 정도라고 한다.
“껌 원료는 무엇으로 만듭니까?”
“아무리 여러 종류의 껌 제품을 만들어도 기본재료는 거의 동일합니다. 우선 식용성 고무와 사탕가루, 글리세린, 향료, 천연색소들을 기본적인 주원료로 하고 있으며 껌 종류에 따라 다시 박하향, 딸기향, 포도향, 참외향 등 다양한 종류의 향을 추가로 넣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가지 수에 따라 껌에 형태도 판껌, 각껌, 알껌 등으로 만들어집니다.”
알고 보니 껌의 종류는 크게 ‘무당껌(설탕이 안들어간 껌)’, ‘방울껌(풍선을 불 수 있는 껌)’, ‘기능성껌(졸름방지용, 입냄새제거용 등)’등으로 구분이 되며 그 속에 첨가하는 성분과 천연 향료에 따라 여러 가지 맛을 내는 껌들을 만드는 방식이었다. 그 결과 금연껌, 입냄새제거껌, 비타민강화껌, 졸음방지껌, 여성들의 미용에 도움을 주는 미용껌 등 수십 가지 종류의 껌들을 제품화하고 있었다.
“보시다시피 껌제품 포장지에 모두 첨가물이 표시되어 있습니다. 제가 들고 있는 딸기향 껌에는 주원료로 설탕, 물엿, 껌 기초제, 글리세린과 유화제와 딸기향이 사용됐다고 설명이 있지 않습니까? 껌의 보관 기일이 1년이고 보관조건은 어둡고 서늘한 곳에 하라고 되어 있으며, 껌을 씹은 후엔 종이에 싸서 휴지통에 버리라는 안내문도 명시되어 있으며 다른 껌들도 모두 주원료 등을 자세하게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필자가 포장지를 유심히 들려다보니 ‘국규’라고가 표시되어있었는데 설명을 듣고 보니 북측에서 생산하는 제품들의 국가규격은 의무적으로 ‘국규’로 표시하도록 되어있으며 1994년 이후부터는 새로 제정된 규정 때문에 국가규격 표시에는 ‘KPS’를 추가로 사용하도록 했다고 한다.
“껌 종류가 얼마나 됩니까?”
“우리공장에서 생산된 은방울껌은 모두 10가지가 있습니다. 보시다시피 딸기향껌과 박하향껌, 복숭아향껌, 귤향껌, 포도향껌, 커피향껌, 강냉이맛껌, 사과향껌, 참외향 방울껌, 귤향 방울껌 등 무수히 많습니다. 그리고 다시 모양에서는 판대기와 같은 판 껌, 작은 건빵 같은 각 껌, 그리고 구슬 알 같은 알 껌 등이 있으며 기능성에서는 ‘졸음방지껌’ ‘입냄새제거껌’ ‘바나나향껌’ 등이 있고 향기도 ‘과일향’ ‘레몬향’ ‘박하향’ ‘딸기향’ ‘포도향’ 등 소비자의 다양한 입맛을 충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모두 은방울 상표를 달았으며 커피향껌을 비롯해서 대부분 껌들은 한 포장에‘10개입’이 들어가 있고 박하향껌과 복숭아향껌 처럼 작게 포장된 껌은 하나씩 포장되어 있었다.‘1개입’의 양은 큰 포장보다 많아서 성인들이 더 많이 찾고 있으며 향기가 좋고 부드러워서 어린이들과 청소년들도 특히 좋아한다고 한다.
“포도향껌은 청포도향이 진하게 풍겨 껌을 씹으면 포도밭에서 갓 딴 포도를 맛보는 느낌이 전해지기도 합니다. 강냉이 맛 껌은 포장을 뜯는 순간 옥수수를 삶는 냄새가 진하게 풍겨서 옥수수껌이라고 부릅니다.”
필자가 볼 때도 강냉이 맛 껌 포장지에 그려진 옥수수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찐 옥수수 느낌을 잘 살려주고 있었다. 특히 귤향 방울껌과 참외향껌은 다른 식료품가공 공장에서 위탁식으로 생산되는 구조라고 한다. 귤향 방울껌과 참외향껌 모두 이름처럼 각각 향을 포함하고 있어서 직접 껌을 씹어보니 입 안 가득 과일향이 풍겼는데 정말 실제 과일을 먹는 맛이었다.
“껌을 생산하면 어디로 공급이 됩니까?”
“많은 종류의 껌들은 곧바로 평양제1백화점, 광복지구상업중심, 평양역전백화점, 보통강백화점, 아동백화점 등으로 운반되어 판매됩니다. 색깔도 곱고 감칠맛, 눈 맛도 좋아서 나날이 그 수요가 높아지고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제가 듣기로는 국가기념일에 어린이들과 학생들에게 하사품으로 전해진다는 말도 들었습니다만.”
“맞습니다. 우리조선에서는 지난 시기 수령님과 장군님의 탄신일 뿐만 아니라 국제아동절이나 조선소년단창립절을 맞으면 전국의 어린이들이게 은방울껌을 선물로 줍니다. 혁명학원, 육아원, 애육원, 초등학원, 중등학원의 원아들, 평양시와 삼지연시의 탁아소, 유치원어린이들을 비롯한 전국의 유치원어린이들이 껌을 받아 안고 기뻐할 어린이들의 모습을 그려보며 우리 일꾼들은 힘든줄 모르고 생산전투를 힘있게 벌리고 있습니다.”
필자가 나중에 자료를 뒤져보니 전국의 모든 어린이들에게 교복과 학용품을 선물로 나눠주다가 72년 김일성주석의 60회 탄생일부터 껌과 과자가 추가됐으며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기에도 빠짐없이 딸기, 포도, 박하 등 세 가지 맛의 '판껌', '각껌', '알껌'등을 선물한 것으로 확인됐다.
“평양껌공장이 없던 시절에는 어떻게 껌을 구했나요?”
“공장을 건설하던 초창기에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모든 설비와 원료를 독일에서 들여와서 공장을 세워서 껌을 생산했습니다.”
“이곳 평양껌공장이 생기기 전에는 어디서 껌을 구입하셨나요?”
“평양껌공장이 생기기 전에는 외국에서 들여온 수입껌 밖에 없었으며 가정집들에서 하는(가내 수공업)송진껌을 씹었습니다. 아우래도 외국에서 가져온 껌은 귀하다보니 송진껌도 많이 애용했던것입니다.”
송진껌은 송진을 따서 큰 솥에 끓인 다음에 찬물을 넣은 그릇에 헝겊을 얹고 끓는 송진을 부으면 찌꺼기를 걸러내고 송진이 물에서 식힌 것을 말한다.
“이 공장 말고 다른 껌공장이 또 있는지요?”
“여기서 가까운 평양 청춘거리에 위치한 금컵체육인 종합식료공장에서 방울껌들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나머지는 모두 여기서 생산합니다. 그곳에는 참외향과 귤향이 들어간 방울껌외에도 체육음료, 탄산음료, 떡, 빵, 당과류, 고기 가공품 등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별도의 공장이 아니고 같은 공장(계열사)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은방울 껌은 어린이들과 어른들 모두에게 선택 아닌 필수
“주로 어떤 껌이 잘 팔리나요?”
“은방울 껌입니다. 향기가 좋고 부드러워서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이 아주 좋아합니다. 은방울 껌은 다른 껌들과는 달리 입안을 깨끗하게 해주고 소화를 촉진해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우식증(치아 우식증은 어린이들의 구강질병) 예방에도 의학적으로 아주 좋다는 것이 입증 되었기 때문에 어린이들의 잇몸과 이뿌리를 튼튼하게 하고, 껌을 자주 씹으면 뇌 활동이 활발해지고 음식물 소화 흡수도 잘 됩니다.”
의학적으로도 입증된 말이다. 껌을 씹으면 침의 분비를 촉진시켜 청정작용을 하는데 그 이유는 침에는 균을 죽이는 면역 성분과 산으로 손상된 치아를 회복시키는 성분도 들어 있기 때문이란다. 자라나는 아이들이 뭔가를 오래 씹는 저작 운동을 하면 수 십 개의 근육이 섬세하게 연관되고 치열과 안면의 근육과 뼈, 뇌 등의 발육을 촉진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운전기사와 학생들이 졸릴 때 잠을 깨기 위한 졸음껌과 입냄새를 없애는 입냄새제거껌이 잘 팔리고 박하향 껌도 잘 팔리고 있습니다.”
“껌에 설탕이 들어있는 경우 충치가 생길 확율이 높은데…”
“그래서 우리 제품들은 무당껌(무설탕 껌)을 많이 만들고 있습니다. 장군님(김정일 국방위원장”께서 현지지도하실 때‘껌에는 사탕가루를 넣는 것보다 단맛 감(천연설탕)을 넣는 것이 좋으니 사탕가루를 쓰지 말고 무당껌을 만들어보라 하셔서 생산하게 된 것입니다.”
“노동자들의 휴가제도가 어떻게 됩니까”
한편 공장을 떠나기 전에 평양껌공장 지배인의 안내로 휴식시간에 휴게실에서 잠시 쉬고 있는 여성노동자들을 만나 휴가제도에 대해 몇 가지 물었다.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확인한 사실 중에 하나는 얼마 전에 “여성근로자 산전 산후 휴가 기간을 기존 150일에서 산전 60일과 산후 180일 등 240일로 확대하였다”는 것이다. 산모휴가제도가 남측이나 미국보다도 월등한 것을 듣고 깜짝놀랐다. 사회복지서비스 측면에서 여성복지 부분의 획기적 변화가 엿보였으며 공적연금이나 보험의 종류도 몇 년전 보다 더 다양했다.
노령연금·유가족연금·제대군인생활보상비외에 산재보험 성격의 사회보험들 종류는 폐질연휼금, 노동능력상실연금등이 있었으며 보조금제도는 일시적보조금, 해산보조금, 장례보조금,의료보조금이 있다고 한다. 연휼금제도 종류도 폐질연휼금, 유가족연휼금, 양로연휼금제도가 적용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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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영의 북녘노동자 이야기] 5회: 인민들이 즐겨 타는 승용차를 생산하는 평화자동차
기자명 최재영 목사 (NK VISION 2020 대표)
승인 2020.08.12 17:10
오늘은 남측과 서방세계에서도 이미 널리 알려진 남포특별시의 평화자동차 생산 공장을 참관한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북에는 합작회사로 운영하는 자동차 생산업체가 이곳 평화자동차를 포함해 모두 일곱 곳이 있으며 그 외에도 다양한 차량들을 자체 생산하는 자동차 공장들이 꽤 많이 있다. 필자는 평양에서 40km 거리에 있는 평화자동차 남포공장을 연속으로 두 차례 참관했으며 마지막으로 방문했던 시기가 2013년도였기 때문에 당시는 이미 통일교가 북측에 운영권과 지분을 모두 넘긴 직후였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소개한 내용들은 평화자동차의 운영권 전체가 북측 정부에 양도된 직후의 시기임을 밝힌다. 또한 이번 회에는 평화자동차 생산 공장 참관 외에도 평화자동차 전시장과 평화자동차 부품상점, 평화연료공급소(연유공급소) 이야기를 모두 다루도록 할 것이다. 그동안 평화자동차는 통일교(가정연합)가 70%의 지분을 소유했고 조선민흥총회사가 30%를 소유하는 구조였으며 이탈리아의 피아트(Fiat)에서 라이선스를 받은 소형차들과 중국의 제일기차제조창(第一汽车製造厰, First Automobile Warehouse, FAW)에서 라이선스를 받은 픽업 트럭과 SUV 등을 조립 생산해오다가 2013년 평화자동차의 지분을 중국에 매각하면서 이제 통일교와는 무관하게 되었으며 이후 평화자동차는 북측으로 완전히 양도되었다.
북에는 자동차생산 공장이 몇 개나 존재하나
평화자동차 공장참관을 이야기하기 전에 과연 북에는 자동차생산 공장이 몇 곳이나 있는지 잠시 알아보도록 하자. 현재 평화자동차 종합공장 외에도 승리자동차 종합공장, 금평자동차 종합공장, 삼흥자동차 종합공장, 조선평운중성자동차 종합공장, 청풍자동차 종합공장과 같이 북측이 중국과 연대하여 합작 설립한 합영회사들이 많이 있다. 그뿐만 아니라 자체적으로 다양한 차량들을 생산하는 평성자동차공장(3.16공장), 청진버스공장, 평양무궤도전차공장(구, 평양화물자동차수리공장), 3.30 함남연결차공장, 6.4차량공장 등이 활발하게 운영 중에 있다.
첫 번째로 평화자동차공장은 남측의 통일교재단의 평화그룹이 경영하다 중국을 통해 북측에 지분을 넘긴 회사로서 주로 중국 요녕성 선양 화신(華晨)그룹의 중화(中华)와 진베이(金杯)의 부품을 사용하고, 단동 황하(黄海)의 부품은 CKD(완전분해수입)하거나 SKD(반제품수입) 방식으로 평화브랜드의 승용차와 승합차를 생산해왔다.
두 번째로 평남 덕천에 있는 승리자동차종합공장(구, 덕천자동차공장)이 있다. 2013년 6월에 설립된 덕천(덕중)자동차합작회사는 중국의 투자를 통해 설립된 합작회사로서 연간 3만 대의 생산 능력을 갖추고 있다. ‘승리화물자동차’ 트럭을 10여 종을 연간 수 천대 생산하고 있다. 덕천회사는 승리자동차연합기업소에 연건평 3천여㎡의 화물자동차조립공장을 갖추고 성능 높은 화물자동차들을 생산하고 있는데 이 회사에서 생산되는 화물자동차는 2.5톤급 반짐화물차와 5톤, 8톤, 10톤, 25톤급 평차, 짐함차 등을 생산하고 있다. ‘승리호(화물차)’, ‘자주호’, ‘건설호’, ‘금수산호(이상 덤프트럭)’, ‘갱생호(지프차)’, ‘충성호(마이크로버스)’, ‘천리마호(버스)’, ‘군용트럭’과 ‘포차’도 생산한다.
세 번째, 금평(金平)자동차는 중국과의 합작 회사로, 연간 2만 대 이상의 생산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주 생산 차량은 화물용 차량(0.5~30t 트럭)으로, 중국의 진베이 자동차를 반제품 수입하여 조립 생산하고 있다. CKD하거나 SKD 방식으로 생산하고 있다.
네 번째로 삼흥자동차회사에서는 화물차 조립생산체계를 갖추고 다양한 형태의 화물자동차를 생산하고 있다. 평양시 낙랑구역 전진동에 소재한 삼흥회사에서 생산하고 있는 제품은 ‘천지’라는 상표로 1t 트럭, 1.5t 트럭, 2.5t 트럭과 20t 화물트럭을 생산하고 있다. 특수차인 삽차, 지게차, 유조차, 가스조차 등과 농기계까지 주문받아 판매하며 생산한 제품에 대한 부품은 항상 구비하고 있다.
다섯 번째로 조선평운중성합영회사는 승용차와 화물용 차량 합작공장이다. 이 회사는 중국 상무부와 북측 무역성의 공동 심사를 거쳐 2009년 9월 4일 중국 랴오닝성 단둥에 위치한 중국북조선무역성과 북측의 평양 수도여객운수지도총국 공동투자로 평양에 설립됐다. 이 회사의 총 투자액은 800만 유로로 중국이 54%, 북측이 46%를 투자했으며, 부지면적 36만㎡, 건축면적 118천㎡로 2011년 3월 ‘평양’, ‘천리마’, ‘금강산’ 등 3개 브랜드로 상표등록을 허가받았다. 2011년 9월부터 자동차 조립공장이 생산을 시작했는데 이곳에서는 각종 버스와 화물자동차가 조립 생산되고 있다. 이미 19∼50석의 ‘금강산’ 여객버스와 0.5∼15t 규모의 ‘천리마’ 화물차가 시험 조립돼 생산됐다. 공장에는 각종 차 조립에 필요한 현대적인 설비들로 조립생산 공정이 꾸려져 있으며 공장에서는 조립생산은 물론 차 수리 및 부속품 봉사도 병행하고 있다.
여섯 번째로 청풍자동차합영회사는 소형자동차가 주력 생산 품목이며 소형자동차 외에 소형 및 중형 버스, 화물 자동차 등의 차종도 반제품 상태로 수입해 조립 후 판매하고 있다. SKD방식으로 생산한다.
일곱 번째로 천리마자동차회사는 2015년 중국 자동차회사 중치그룹과 합작을 맺고 자동차 생산을 하고 있다.
이처럼 북에는 모두 일곱 곳의 자동차 생산공장이 가동 중이다. 그 밖에도 평남 평성에 소재한 평성자동차공장(3.16공장)에서는 ‘갱생69호’, ‘갱생69-나호’, ‘태백산호’, ‘장갑차’, ‘지프차’를 생산하고 있으며 청진버스공장에서는 ‘집산-86호’, ‘집산88호’(버스), ‘마이크로 버스’를 생산하고 있다. 또한 평양무궤도전차공장(구, 평양화물자동차수리공장)에서는 ‘천리마호(버스)’를 생산하고 있고 함흥에 있는 3.30 함남연결차공장에서는 대형트럭과 트레일러를 생산하고 있으며 강원도 원산의 6.4차량공장에서도 트레일러를 생산하고 있다.
평화자동차 공장의 역사
필자일행은 평양에서 자동차로 1시간 거리에 위치한 평화자동차공장에 당도했다. 남포항에서 2㎞ 거리에 떨어져 있는 남포특별시 ‘청년도로’ 바로 앞에 위치한 공장 정문 입구에 도착하니 공장 총 책임자인 양정만 지배인이 미리 나와 따듯하게 영접해 주었다. 그의 친절한 설명을 들으며 공장 내부시설을 모두 둘러볼 수 있었는데 그는 노무현대통령이 이곳을 방문할 때 공장 내부를 안내하며 직접 브리핑을 했던 분이다. 양 지배인의 배려로 공장 내부에 있는 그의 집무실을 방문해 사업현황에 대한 브리핑도 청취하며 여러 가지 궁금한 질의응답도 할 수 있었다. 공장 총 부지는 무려 33만 평이나 되며 부지 주변이 농지와 야산으로 조성돼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필요하면 부지 확장이 더 가능하다고 했다. 공장 건물은 크게 자동차 종합생산 건물동과 수리와 개조를 담당하는 건물 동으로 구분되어 있었으며 전체적으로 공장 시설들은 규모가 방대했고 북측의 기술자들과 노동자들은 매우 여유 있는 모습으로 각자의 맡겨진 업무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들이었다. 공장을 건설하던 초창기에는 7,000평이나 되는 공장 내부 설비 등을 갖추기 위해 통일교에서 710억 원 정도를 투입했으며 연간 1만 대의 조립 생산이 가능한 시설을 갖추게 됐다고 한다.
공장이 위치한 남포는 행정적으로는 평안남도 남포시 항구동에 위치해 있으나 남포시는 특별시로 개편되어 어느 도에도 속하지 않는다. 건립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직접 33만 평 대지를 지정해 주며 최종 승인해 주었다고 한다. 필자가 공장부지 전체를 두루 둘러보니 공장 정문과 경비실을 비롯해 자동차 생산라인 과정을 담당하는 ‘제1공장(자동차 조립 건물동)’과 함께 정비와 수리를 담당하는 ‘수리정비 공장동’ 외에 ‘변전급수건물’과 ‘연유공급장’이 자리 잡고 있었으며 울타리를 따라 ‘자동차연구실’, ‘제관장’, ‘도서실’, ‘보위대’, ‘식당건물’, ‘운수건물’ 등이 즐비하게 있었다. 평화자동차 본사는 남북 양쪽 모두 개설돼 있으며 남측에는 ‘서울 강남구 신사동’, 북측에는 ‘평양시 축전동’에 있다고 한다.
원래 ‘평화자동차총회사’는 북 당국으로부터 공장 부지를 제공받은 1997년 2월 27일부터 본격적으로 준비하기 시작해 1998년 1월 7일 공식 설립됐으며 2년 만인 2000년 2월 3일 제1단계 착공식을 거행해 2002년 4월 6일, 공장 건설 공사를 모두 마치고 마침내 준공식을 거행했다고 한다. 준공식과 함께 본격적인 자동차 조립생산 가동에 돌입했는데 당시 남북경협 역사상 제조업 분야로는 최대 규모였으며 앞서 언급한 대로 평화자동차사가 70% 지분을 갖고 북측의 기계공업전문회사인 ‘조선련봉총회사’가 30% 지분을 갖는 남북 합영회사로 출범했다(2000년 1월 련봉과의 합작 투자가 발표되고 조선민흥총회사와 합작 시작). 필자는 남측 통일교와 합작을 했던 북측 파트너 회사에 대해 이것저것 질문하기 시작했다.
당시 통일교를 담당한 북측 부서는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이하, 아태평화위)였으며 당시 김용순 위원장과 송호경 부위원장이 공장이 세워지며 자동차가 생산되는 과정까지 많은 역할과 도움을 주었으며 지금도 북측의 ‘해외동포원호위원회’에서 평화그룹(통일교)을 전담하는 부서가 별도로 마련돼 있을 정도로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고 한다. 필자는 북측 파트너였던 조선련봉총회사 리정철 총사장이나 량문범 부총사장과 신경림 총부사장 등이 평소 평화자동차의 운영에 직간접적으로 관여를 했는지가 몹시 궁금했다. 그러나 총사장은 잘 나타나지 않고 실제로 북측 회사를 대표하는 인물은 신경림 총부사장이라고 했다. 그는 고령이지만 엘리트 출신으로서 매우 개방적이면서도 사상이 투철하고 남측 관계자들과의 대인관계도 매우 좋은 인물이라고 했다. 또한 매우 현명하고 합리적인 경영인이라고 평가해 주었다.
여유 있고 단합된 모습의 평화자동차공장 노동자들
평화자동차 내부 시설 공사가 한창이던 2000년도에는 남측 기술자 10여 명 정도가 직접 이곳에 상주하며 기술지원을 했으며 그동안 이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숫자가 초창기에는 350명 정도였고 그 이후 자동차 생산이 한창일 때는 500명 정도가 출근해 일했다고 한다. 대부분 공장 기숙사에 거주하거나 혹은 남포나 평양에 살면서 매일 출퇴근하는 노동자들이었다고 한다. 내가 보고 느낀 것은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과 행정적인 일을 보는 노동자들 모두가 굉장히 순수하면서도 성실하다는 것이었다. 이들은 공장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청년돌격대 조직을 운영하고 있었다.
필자가 총지배인의 안내로 공장내부를 둘러보는 중에도 노동자들은 팀별로 작업을 하다가 말고 뭔가 막히는 것이 있다고 판단되면 수시로 모여 머리를 맞대고 의논하는 광경을 목격하였다. 서로 화기애애하고 단합되고 아껴주고 이끌어주는 모습들이 확연히 눈에 띄었다. 하루 노동 시간은 일괄적으로 모두 8시간이며 임금은 자체적인 인센티브(Incentive)가 있으며 대부분 자발적으로 일을 하거나 배우려는 모습들이었다. 당연히 남측이나 서방세계와는 다른 노동 시스템으로 인해 노사 간에는 아무런 불상사가 없고 노사분규도 없다고 한다. 한 가지 독특한 것은 남측에서 주도했던 회사이지만 이곳에 일하는 노동자들이 모두 북측 인민들이다 보니 매주 금요일에 되면 ‘총화시간’을 갖고 있었다. 이곳 평화자동차 공장의 경우 노동자로서의 자기반성과 발전적인 제안 그리고 공장을 잘 운영하기 위한 아이디어와 노동자들끼리의 화합 등 모두가 다 잘 살기 위한 목적으로 총화시간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공장 안의 거대한 벽면에 부착된 게시판에는 자동차생산 연혁이 그려져 있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공장 완공 후에는 이탈리아 피아트사 제품인 2500㏄급 대형차 ‘알파로미오’와 소형차 ‘시에나’를 조립해 생산한 것이 그 시작이었다. 그 후 평화자동차만의 고유 모델을 생산해 출시한 연혁을 차례대로 기록하고 있었다. 특히 준공식을 앞두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환갑인 2002년 2월 16일에 맞춰 제1호 완성차를 내놓는다는 계획이 마침내 성공해 준공식 행사 단상에는 제1호 완성차 모델을 올려놓고 행사를 치렀다고 한다. 또한 알파로미오와 시에나가 출시되기 전까지는 일본을 비롯한 제3국에서 중고차를 들여와 수리한 다음 자국민들에게 판매하는 사업을 했다고 한다. 자동차 운전석이 우측에 있는 일제차량을 좌측으로 옮기는 등 여러 가지 수리를 마친 후 고객들에게 판매했으며 일반 차량들을 정비해주는 사업을 병행하며 오늘날의 평화자동차로 성장시켰다고 한다.
초창기부터 ‘휘파람’, ‘휘파람2’, ‘뻐꾸기’, ‘뻐꾸기2’, ‘뻐꾸기3’,‘뻐꾸기4WD’, ‘준마’, ‘삼천리’ 등 8개 차종을 생산 및 판매했는데 특히 이탈리아 피아트사의 부품을 수입해 제작한 1600cc 승용차 ‘휘파람’은 지금도 평양 시내에 많이 돌아다니고 있었으며 중국 서광자동차 모델을 들여와 생산한 스포츠 유틸리티(SUV) 차량 ‘뻐꾸기’도 많이 생산했는지 평양 시내에 많이 운행되고 있었다. 그 후 북 고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삼천리’ 미니버스를 비롯해 지금은 트럭까지 생산하고 있었으며 필자가 방문하기 전 해(2012년)는 평화자동차의 총생산량이 1500대 정도였다고 한다. 박상권 평화자동차 사장은 북측에 지분을 양도한 이후 현재 명예회장으로 남아 있고 자동차 생산과 판매 등 모든 운영권과 지분을 북측이 넘겨주어 북측 회사가 자율적으로 운영하는 체제로 전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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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회 : 북조선 최대 종합화학공장, 남흥청년화학련합기업소
기자명 최재영 목사 (NK VISION 2020 대표)
승인 2020.10.13 18:21
이번 7-8회는 평안남도 안주시에 위치한 북조선 최대의 종합화학공장인 남흥청년화학련합기업소를 탐방한 이야기다. 이곳은 비료공장을 비롯해 다양한 석유화학 단지가 조성되어있으며 여러 공장과 모든 생산 시설물을 자세히 돌아보려면 아마 사흘정도가 소요되는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공장 단지 안에는 크게 생산기지와 후방기지로 나눌 수 있는데 여기서 후방사업이란 노동자들에 대한 복지후생과 관련된 사업체들을 통칭하는 말이다. 전반부(7회)는 공장 기업소 내부와 생산시설에 관한 이야기이고 후반부(8회)는 자력갱생의 모델로서 자리매김한 노동자들을 위한 후방사업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곳 후방기지에는 노동자들에게 보급하기 위해 운영 중인 각종 채소와 곡식을 재배하는 농장, 양어장, 방목지(목장)는 물론 닭, 오리, 돼지 등을 기르는 축산시설, 국수, 물엿, 기름, 탄산수, 콩기름, 간장, 된장등을 생산하는 식품공장, 생필품 공장 등은 물론이고 노동자들의 복지시설인 숙소를 비롯해 배구장 수영장등 체육관과 운동 경기장 등을 갖추고 있다.
전산화 무인화 자동화를 실천하는 전산실과 생산현장
필자 일행은 평안남도 안주시 남흥지구 청천강 기슭의 넓은 부지에 자리 잡은 북조선 굴지의 화학공업기지인 남흥청년화학련합기업소에 탐방하기 위해 도착했다. 국가기간사업이라 내부시설물중에는 비공개 지역도 있으나 많은 지역과 시설물들을 참관할 수 있었다. 박영근 부기사장의 안내를 받아 가장 먼저 전산실에 들어서니 20명이나 되는 인민복을 입은 젊은 엘레트 전산요원들이 열심히 컴퓨터를 통해 공장 설비 시스템들을 조작하고 있었는데 이는 전산화, 자동화, 무인화, 무균화를 실천하려는 의지로 보였다. 요원들 중에는 컴퓨터 옆에 놓여진 인터폰으로 현장과 수시로 통화하는 모습도 여기저기 보였으며 전산실 내부는 마치 음악스튜디오 녹음실 음향기기를 조작하는 듯한 기계들로 가득차 있었다.
부기사장은 “우리 조선에서는 국내자원에 기초한 주체비료의 생산 공정은 무연탄을 고온으로 처리하여 얻어낸 가스로부터 수소를 꺼낸 다음 이를 질소와 반응시켜 암모니아를 제조하고 요소비료 등을 얻어내는 공정을 바로 이곳 전산실 일꾼들이 거뜬히 감당하고 있습니다” 라며 힘찬 목소리로 설명해주었다. 전산실 내부 중앙 정면에는 “비료는 곧 쌀입니다. 비료생산계획을 미달하는 것은 알곡생산계획을 미달하는 것이나 같습니다 -김정일-”이라고 적혀 있는 최고지도자의 어록이 가로로 걸려있었다. 그뿐 아니라 “백번확인, 한번조작”이라는 구호도 적혀있는데 이는 컴퓨터로 조작되는 시스템이다보니 단 한 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기 위해 스위치를 누르기 전에 다신 한번 생각하고 점검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되었다.
또한 전산실 한복판에는 “원소주기표” 현황판이 크게 쓰여져 있어서 화학공식을 모르는 요원들은 이런 일에 복무할 엄무도 낼수 없겠다 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윽고 공장내부로 이동해서 작업반장 동억철 동무로부터 “우리 조선에 무진장한 석탄을 주원료로하여 비료를 꽝꽝생산하는 공장입니다. 여기는 자립성과 주체성이 확고하게 선 기업소로 발돋음하였습니다” 라며 비료가 생산되는 장면을 보며 여러 가지 설명을 들으며 여기저기 둘러보았다. 공장 내외부벽면 여기저기에는 “농촌에 화학비료를 더많이 보내주자!”라는 구호가 빨강바탕에 흰글자로 붙어있었다. 남측비료가 플라스틱 비닐포대를 사용하는 반면 이곳 북측 비료포대는 ‘뇨소비료’라고 적힌 누런 비료포대였다. 폭포처럼 쏟아지는 비료들을 여성 노동자들이 부지런히 누런포대에 담고 있었다. 그다지 힘든 일은 아니지만 공장 내부의 기계를 조작하며 포대에 비료를 담고 있는 노동자들이 전부 여성들이라서 다시 한 번 크게 놀랐다. 아직은 비료를 포대에 기계가 자동으로 담는 설비는 되지 않은 듯했다.
이어서 창고에 옮겨지는 과정과 창고에 보관된 비료들을 각 지역의 농장 측에서 트럭으로 운반하는 장면들도 목격할 수 있었다. 엄청난 규모의 창고안에는 생산된 각종 화학비료들이 높이 쌓여있고 각 농장으로 전달되는 출하 허락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박영근 부기사장의 설명을 들어보니 농번기가 돌아오면 각지의 농업관계자 일꾼들이 연일 이곳 련합 기업소를 찾아 와서 지배인 집무실 앞에 장사진을 치고 있다고 한다. 각 농장들은 자신들에게 필요한 물량을 가져가기위해 물밀 듯 찾아오는 바람에 이곳은 정신없이 분주해진다고 했다. 특히 5대 협동농장으로 일컫는 미곡(황북 사리원), 신암(평북 룡천), 삼지강(황남 재령) 은흥(평북 태천), 동봉(함남 함주) 등지에서 이곳의 비료를 사용한다고 한다. 5대 협동농장에 포함되는 농장들은 정보당 쌀 생산량이 가장 많은 농장이어야하기 때문에 비료는 매우 필수적이다.
3대 련합기업소에 포함되는 남흥청년화학련합기업소
북에는 이곳 남흥청년화학련합기업소를 비롯해 순천화학련합기업소, 2.8비날론련합기업소 등 3대 련합기업소가 있다. 이 3대 화학공장 외에도 북에는 화학공업기업들이 무수히 많다. 특히 은덕화학공장, 명간화학공장, 신의주화학섬유공장, 청진화학섬유공장, 순천과인산비료공장, 안변과인산비료공장, 보통강유기질복합비료공장, 신의주화장품공장, 평양화장품공장등이 많은 생산량을 자랑하고 있다. 필자가 이곳 남흥청년화학련합기업소를 방문한 시기는 2013년과 2015년 두 차례이다. 첫 방문은 2013년 6월 당시 김정은 북방위 제1위원장이 남흥청년화학연합기업소를 방문한 이후였으며 확장공사를 마치고 대대적인 석유화학 제품 생산에 들어간 시기였다. 이날은 필자가 남측에서 청소년 시절에 포항제철을 탐방한 것과 같은 감흥이 되살아 날 정도로 그 규모가 매우 방대하여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부기사장 박영근 동무의 설명에 의하면 북에서 이 공장이 차지하는 위상과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한가하면 이곳이야말로 “사회주의 수호전의 제1병기창”이라는 명성을 얻을 정도라고 한다. 이를 뒷받침하듯 “농업전선은 사회주의경제건설에서 주타격방향이며, 남흥청년화학련합기업소는 사회주의농업전선에 탄약을 공급하는 병기창이다. 싸움에서 탄약이 중요한 것처럼 농업생산에서는 비료가 중요하다”는 구호가 로동신문에 기사화될 정도였다. 정면돌파전의 주타격 전방은 여전히 농업전선인데다가 북 정부 수립 초창기부터 “비료는 곧 쌀이고 쌀은 곧 사회주의”라는 구호에 부응하는 기업이 바로 이곳 남흥청년화학련합기업소이다. 이를 다시 한번 입증이나 하듯 그동안 내각총리를 3차례(17대, 22-23대)나 역임한 박봉주도 이곳 남흥화학련합기업소의 당 책임비서 출신이며 내각 부총리 겸 화학공업상인 리무영도 이곳 남흥화학 출신이라고 한다.
초창기 김일성 주석은 물론이고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매년 현지지도를 할 정도로 비중이 컸으며 운명하기 직전인 2011년 5월에도 현지시찰을 했다고 한다. 현재의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몇 차례나 이곳을 현지 지도하여 관계부분 일꾼들을 격려하고 지도하였다고 한다. 박봉주도 총리를 그만둔 이후에도 국무위원회 부위원장 자격으로 남흥청년화학연합기업소를 시찰할 정도로 당과 내각에서 가장 애착을 갖고 주목하는 기업소가 바로 이곳이라고 한다. 남흥청년화학연합기업소는 1975년 이래 나프타(석유화학 중간원료)를 수입해 연간 75만톤의 비료를 생산해 오다 석탄가스화공정 공법으로 바뀐 것은 원료자립 차원에서 계획되고 추진된 것이었으며 필자가 방문하기 전해인 2012년에 들어서 질소비료 100% 자급 계획이 실현될수 있었다고 한다. 그후 비료생산에 필요한 촉매제와 정결제도 자체생산하게 되어 주체적인 비료생산의 토대를 마련하게 된 것이니 가히 놀라운 성과물로 여겨졌다
지난 시기는 주로 외국에서 수입한 석유제품의 일종인 나프타를 원료로 하여 화학비료를 생산했는데 90년대에 닥친 여러가지 시련의 시기에는 원료확보에 여러 어려움들이 있다보니 비료생산도 차질을 빚게 되었다.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결국 착안한 것이 바로 북측 영토에는 무궁무진하게 생산되는 무연탄을 이용해 가스화하여 이를 원료로 이용하는 방법을 착안한 것이다. 북측은 이것을 비료생산을 안전하게 정상화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방도로 여기고 그 생산공정 건설을 추진해 오던 중 이 모든 것을 2010년에 거의 완성시킨 것이다.
남흥청년화학련합기업소의 발전 역사를 듣다
안주시에 소재한 이 기업소는 당시 김일성 수상의 지시에 의해 1960년대 말에 건설에 착수해 1973년에 확장되었다고 한다. 1973년 프랑스 Speichim사와 플랜트 도입계약을 체결함으로써 건설되기 시작해 1974년에는 중국과 공장구내까지의 송유관 설치공사를 시작해 완성하였고 1976년 4월에는 요소비료 생산공장(40만톤 규모)을 완공했고, 1979년 나프타 열분해공장(에틸렌 3만톤 규모), 고밀도 폴리에틸렌공장(LDPE 2.5만톤), 아크릴 로니트릴 합성공장(AN 1만톤), 아닐론 섬유공장(ASF 1만톤), 산화 에틸렌공장(EO 1만톤) 등이 완공되어 생산 조업에 들어가면서 본격적 석유화학공장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다고 한다.
지속적인 설비확장공사로 1986년 10월 펄프, 제지공장(4만t 규모)이 문을 열었으며 1988년 9월 탄산소다공장이, 1989년 2월 합성수지공장이 각각 착공되었고 8월에 1만 5천㎢ 부지위에 완공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옛 소련이 해체되고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면서 시설 개보수가 중단되었는데 1993년부터 18년간 가동이 중단됐었다. 2천년 대 초에 들어 경제난이 완화되면서 개보수 작업을 다시 시작해 2005년에는 10월 당창건 60돌을 목표로 탄산소다공장 능력 확장공사를 완료했다고 한다. 탄산소다는 유리와 비누, 수산화나트륨, 탄산수소나트륨 등의 원료로 사용된다고 한다.
이로서 남흥청년화학연합기업소는 요소비료, 나프타 열분해, 고압폴리에틸렌, 아닐론 등 생산시설을 갖추고 비료, 탄산소다 등 다양한 화학제품을 생산하고 있으며, 그 공로로 국기훈장 제1급이 수여됐다고 한다. 대표적인 석유화학공장인 이곳 연합기업소의 탄산소는 파이프, 필름, 가방 등 플라스틱 제품의 주 원료가 되는데 이처럼 폴리에틸렌, 폴리프로필렌, 유리, 종이, 물감 등에 이용되는 탄산소를 대량 생산하게 된 것이다, 이곳에서 생산된 제품은 플라스틱 가방공장 등 각 연관생산업체로 다시 보내져 가공되어 제품으로 만들어져 상품화된다고 한다. 그 외에 요소비료, 아크릴섬유 등을 생산해서 북 내부에 공급하거나 해외에 수출하고 있는데 수출은 한때 남흥무역회사가 대행했다고 한다.
특히 주력 품목인 폴리에틸렌(LDPE)과 화학비료의 원료가 되는 나프타는 평안북도 피현군의 봉화학공장과 함경북도 선봉군의 승리화학연합기업소로부터 공급을 받아오다가 이 공장의 석탄가스화공정은 2006년 1월 사업이 최초 결정됐으며, 인민생활과 직결되는 국가의 1차중점대상으로 지정돼 2008년 5월부터 공사가 본격 시작됐다고 한다. 이곳 남흥에서는 무연탄을 원료로, 흥남에서는 갈탄을 원료로 한 질소비료 생산공정을 갖추게 된 것인데 이는 모두 인근에 풍부한 석탄을 활용하려는 프로젝트였던 것이다. 2006년 말부터 무연탄 가스화공장 신설공사에 들어가서 무연탄 가스화 처리 공정을 기반으로 한 화학비료가 2010년부터 생산됐고, 2011년에는 제2의 무연탄 가스화 처리 공정이 완공됐다고 한다. 필자가 방문할 때 공장내부를 둘러보니 엄청난 량의 비료들이 폭포처럼 쏟아져내리고 있는 것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무연탄 가스화공장의 경우 2006년 초 단지 북쪽에 4만 4천 평방미터 넓이의 시설이 들어선 뒤 2010년에는 22만 5천 평방미터로 무려 5배 이상 규모가 확장되는 등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이곳에는 단지 내 시설들을 잇는 철로와 무연탄 저장시설이 포함돼 있고 요소비료 공장도 증축된 면적이다. 이어서 2010년과 2011년에는 화학원료인 탄산수소나트륨 생산 공장의 개축공사가 완공되었고 2013년도에는 8천 평방미터가 넘는 저장고 시설이 완공됐는데 필자가 방문한 시기는 이곳이 완공된 직후였다. 그리고 2012년에는 제2희천발전소 완공으로 전력사정이 해결돼 전체 생산량도 증가했으며 남흥 석유화학 단지도 확장되었다고 한다. 남흥청년화학연합기업소의 확장 공사가 늘 현재진행형일 정도로 언제나 확장되고 있으며, 이는 석유화학 부문을 현대화하겠다는 지도부의 의지를 반영한 것이다. 무연탄 가스화공장 건설과 요소비료 공장 개보수는 식량문제 해결과 직결된다. 화학비료 생산량이 늘면 농업 부문의 생산성도 향상되기 때문이다
일반기업과 련합기업소의 차이점을 묻다
필자는 이곳 공장의 명칭이 ‘련합기업소’라는 것에 대해 구체적인 이해가 필요했다. 또한 2010년 4월 29일부터 본격적인 생산 활동을 개시한 석탄가스화공정에서 생산된 비료를 일반 비료라고 하지 않고 ‘주체비료’라고 부르고 있었는데 그것에 대해서도 궁금했다. 알고 보니 주체비료란 석탄을 원료로 한 비료에 대한 북측의 특별한 호칭이었다. 그렇다면 북에서는 여러 형태의 공장과 기업소가 있으며 이와 별도로 련합기업소가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련합기업소이고 어떤 특징이 있는지 알아보았다. 통상적으로 공장, 기업소라는 것은 대규모 생산단위라고 할 수 있으며 계획경제노선을 철저히 실시하는 북조선에서의 공장이나 기업소는 당과 국가의 통제 하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중앙기관인 국가계획위원회가 기업소나 공장에 생산계획을 하달하고, 지방기관인 도경제지도위원회가 일상적으로 기업의 계획 집행 상황을 파악하고 지도하는 시스템이라고 보면 된다. 기업의 제일 위에는 지배인과 기사장이 있고 그 아래 전문부서들이 배치되는 것 뿐 아니라 모든 노동자들의 조직이 노동자 위주로 군더더기 없이 잘 갖춰져 있다.
그런데 이중에서도 련합기업소라는 형태의 기업들이 존재한다. 알고보니 기업들의 연합체가 처음 결성된 것은 이미 1970년대이며 1980년대에 들어서는 거의 모든 생산부분과 경제부문에서 이런 연합기업이 결성되어 운영되었다고 한다. 쉽게 설명하자면 서로 같은 업종끼리 혹은 연관이 있는 복수의 기업소들이 모인 대규모 기업소라고 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또한 생산기술적 연계를 기본으로 해서 조직된 대규모 연합체라고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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