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01

손민석 이영훈 류의 뉴라이트 사관은 이미 그런 걸 하고 있다, 좌파는?

손민석

손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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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익은 위로는 근대국가와, 아래로는 인민 간의 사이에 존재하는 중간적 집단으로만 나타난다. 어느 사회든 마찬가지이다. 그러면 학술적으로 좌익이 설명하고 투쟁해야 하는 건 위로는 근대국가가 사회 전체를 조직하는데 사용하는 이데올로기로서의 내셔널리즘 - 근대화론적 사고방식과 투쟁해야 하는 것이고, 아래로는 인민의, 사회의 하수구라 할 수 있는 창녀, 이민자, 소수자 등과 같은 배제된 존재들을 끌어들여서 그들을 주체로 만드는 작업을 해야 한다. 창녀를 끌어안지 못하는 좌익이라는 건 말만 하는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 

반대로 위로는 근대화론을 대체할 발전단계론을 제시하면서 생산력을 어떻게 증대시킬 것인지, 인민들을 어떻게 보다 고도한 생산력을 지닌 사회로 이끌지 논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런 걸 좌파가 안 하면 우파가 하게 된다. 현대 좌파들은 근대화론을 탈근대주의로 비난만 하고, 창녀 문제는 민족주의적 동원의 소재로 삼아 위안부는 창녀가 아니라는 말만 하고 있다. 
그러니 이영훈 같은 이들이 너네는 한국군 위안부, 미군 위안부, 그리고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위안부들"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따지지 않는다며 조소하는 게 아닌가. 이러면 공백을 우익서사, 이데올로기가 채우게 된다.

이영훈 류의 뉴라이트 사관은 이미 그런 걸 하고 있다. "배제적"이라는 게 문제이지만 어쨌든 이영훈은 그의 한국경제사 연구에 기초해서 가부장제의 성립과 함께 여성의 성매매 산업으로의 유입을 가부장권에 기초한 가족구성원의 폭력적 장악에서 찾는다. 
전통 사회의 신분제적 여성착취는 가부장제의 창출이라는 사회의 근대적 재편을 매개로 자본주의 사회의 상품경제적 여성착취로 변모하게 된다. 

이영훈은 남성은 본래 자신의 씨를 퍼뜨리고자 하는 '본성'을 갖고 있고 성적으로 순결한 사회란 존재하지 않는다며 가부장제와 그 희생자로서의 성매매 종사자들의 존재를 자연화시킨다. 그런 '자연적'인 일로 이웃나라를 비난하고 그러는 건 한국인의 정신세계의 문제이다. 그리고 위로는 근대화론적 입장에서 한국인의 정신세계가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에 익숙하지 않은 종족주의적 세계관을 갖고 있어 자본주의 발전에 애로사항이 생긴다며 사회와 인간 전체를 자본주의에 적합하게 재편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자유인 어쩌고 하며 품위를 챙기려 하지만 결국 시장경제 속에 적응하는, 보다 정확하게는 순응하는 인간을 만들어내는 게 이들 서사의 목표이다.

그러면 좌파가 할 일은 위로는 근대화론에 대응하는 생산력 발전 프로그램을 만들고, 아래로는 창녀, 이민자 등과 같은 배제된 이들을 어떻게 주체화시킬 것인지를 논하며 우리가 생각하는 사회발전이 무엇인지, 우리는 어떤 계급, 보다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의 노동을 수행하는 자들을 뒷받침해줄 것인지 등을 논해야 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전근대 사회는 어떤 걸 핵심으로 발전해서 여기까지 왔고, 근대 사회는 공산주의로의 혹은 사회주의로의 역사적 도정에서 어느 위치에 놓여 있고 이런 걸 논하면서 서사를 만들어줘야 한다. 근대주의가 나쁘다고 하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 근대주의 비판은 일본제국의 황국사관, 김일성주의 등과 별반 다를 게 없는 정신사관이다. 생활수준의 향상을 말로 대체하려고 하면 어느 누가 동의하나 대체? 안티테제밖에 안된다.

이렇게 만든 설명에 기초해서 한국사의 발전에서 
민주당 류가 자본주의 맹아론 - 식민지수탈론(독립투쟁론) - 반독재민주화투쟁론(통일론)을 자신의 계보로 설정하는 것처럼, 
그리고 뉴라이트 류가 조선후기 정체성론 - 식민지근대화론(협력자론) - 건국과 부국론(근대화론)을 설정하듯이 
좌익, 특히 마르크스주의자들 또한 자본의 세계화라는 관점과 국제주의적 입장에 기초해 조선후기부터 현대까지의 역사적 흐름을 체계화해서 제시해야 한다.

 내가 볼 때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좌익이 어떤 계급을 지지할 것인가, 단순히 노동자 계급을 지지한다가 아니라 어떤 이유에서 엔지니어라든지 이런 특정한 유형의 노동자 집단을 사회변혁의 주체로 삼고 조직해야 하는지를 말해줘야 한다. 자본의 세계화, 노동의 세계화라는 자본주의적 세계시장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이런 식으로 사회주의로의 변혁을 생각하고 역사적 서사가 이렇게 흘러왔다고 말해주면서 여성문제, 가족문제, 생산력 증대 등을 논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 비로소 비판이 닿는다. 논쟁이 된다. 쟤네는 나쁜놈이다가 아니라 
  • 쟤네는 자본가의 입장에서 사회경영을 생각하기에 인민을 자본주의에 적합한 노동력으로 재편시키려 한다가 된다. 
  • 우리는 노동력의 입장에서 이런 프로그램과 서사를 갖고 이런 걸 할 생각이다. 
  • 자본가 이렇게 육성할 것이고, 
  • 이 산업을 키우면서 사회를 재편하고 나아가 전세계, 자본주의적 세계시장 내에서의 한국의 위치를 이렇게 바꾸면서 국제주의적으로 사회를 이끌 생각이다. 
  • 사회의 배제된 이들을 이렇게 끌어들일 생각이다. 
  • 오늘날의 "위안부"들을 우리는 이렇게 끌어안을 생각이다. 

나는 좌익들이 진짜 제대로 된 이데올로그로 작정하고 좀 행동했으면 좋겠다. 가장 낮은 곳과 가장 높은 곳으로 가야 한다. 고전 좀 열심히 읽고 밑으로, 위로 가자 좀 제발! 신자유주의니 금융화니 어쩌니 같은 소리 좀 그만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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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comments

이호중
이호중 민석님이 생각하시는 주체는 엔지니어로 봐도 될까요?

Jinu Konda 창녀를 끌어안지 못하는 좌익은 말만하는 존재. 크게 공감해요.

강태영
강태영 창녀가 아니라는 수세적, 수동적 대응이 아닌 그래 창녀인데 뭐 어쩌라고 그들도 엄연한 주권자인 인민 아니냐는 공세적, 능동적 대응으로, 나아가 그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하는 것 그리고 파괴에 머물 비판을 넘어 대안의 건설이 좌파의 임무라고 독해했는데 제대로 읽은 건지 모르겠네요...


손민석
Favourites · 3h · 
<반일종족주의>에 관한 비판서들을 읽는데 정말 한국 학계의 질적 수준이 이정도밖에 안되는건지 아쉬움이 많다. 다들 정념만 가득해서.. 볼만한 책이 없다. 선학들께 죄송한 말씀이지만 비판이 핵심에 닿고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비판은 상대의 가슴팍에 꽂아넣는 검이다. 세계관 자체를 잘근잘근 씹어야 하는데 뉴라이트의 세계관이 무엇인지 자체를 다루지 않고 자꾸 무슨 일본 우익, 수정주의 어쩌고저쩌고.. 비판이 닿을 리가 없다. 저놈들이 나쁜놈들이라고 우리편끼리 자위하는건데 진동하는 밤꽃냄새가 제3자한테는 추잡하게 느껴질 뿐이다. 한국의 진보적 민족주의 세력은 박현채처럼 근대화론 자체와 투쟁하기를 멈췄다. 근대화론 자체를 비판하지 못하는 비판서는 반일종족주의를 넘어설 수가 없다.




손민석
Favourites · 16h · 
어느 누구도 일본 군국주의에 책임을 질 수 없고 지지 않았기에 "희생양"이 없다는 라이샤워의 통찰에서 일본의 전후 역사학의 실패를 읽어내지 못한다면 그 실패를 계속해서 반복할 수밖에 없다. 나는 일본 역사학이 전후 역사학의 실패를 '근대주의'로 인식하고 마치 근대성의 문제인 것처럼 논하는 걸 보고 여기 좌파는 가망이 없다고 판단을 내렸다. 일본은 계속 무너질 수밖에 없다. 그나마 아베 같은 무언가를 해볼 수 있고 해보려 하는 지도자가 나타나서 보통국가화도 하고 그랬으면 좀 나았을지도 모르겠지만 그것도 실패로 끝난 마당에 스가가 무언가 새롭게 할 수 있을지 나는 회의적이다. 다케우치 요시미의 말처럼 나는 "무능한 사회주의자보다는 유능한 파시스트를 유산으로 갖고 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약한 아군보다는 강한 적에게 의지"하게 된다. 차라리 일본 우익이 제대로 했더라면 좋았을텐데.. 일본의 전후 역사학이나 지금의 포스트모더니즘 류의 역사학, 진보 역사학은 절대 성공할 수가 없다. 책임 문제를 일본 인민 "전체"의 것으로 확장시켜버리면서 사실상 무의미하게 만들었는데 누가 그 말을 따르겠나. 내가 보기에 일본 좌익은 무능해서 책임문제를 논할 수도, 건드릴 수도 없다. 아무리 봐도 내 짧은 생각에는 일본 좌파들의 저 꼬일대로 꼬인 정신세계를 풀어줄 수 있는 건 우리 한국인들밖에 없는데 문제는 그걸 이영훈 등의 뉴라이트 식의 세계관을 가진 이들이 하려고 하면 안된다. 책임 문제를 정면으로 들이받지를 못하고 묻어버리는거다. 한국인이 그짓거리 하고 있으니.. 나는 이영훈이 지금 역사에 죄 많이 짓고 있다고 본다. 철부지 장난질에 한국만 사회적 비용을 치르면 되는데 이웃나라에까지 폐를 끼치고 있으니.. 한국인의 죄가 깊다 깊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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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의현
서의현 그 근본에 덴노제가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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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jin P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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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석
Favourites · 16h · 
전후시기를 공부할 때마다 느끼지만 정말 힘없는 나라, 힘없는 민족의 비애라는 건 말로 다하기 어려워 보인다. 서글프다 서글퍼. 고작 30대의 라이샤워가 일본사 전공자로서 전후 미국의 일본지배 과정에 참여해서 천황을 "괴뢰(그대로의 표현)"로 사용해서 일본을 지배해야 한다고 말하는 부분에서 솔직히 서글퍼서 좀 울컥했다. 전전의 공산주의자들이 목숨걸고 천황제와 투쟁을 했는데 고작 30대 역사학자 따위가 일본인들은 주체성이 없다며 괴뢰를 내세워 지배하자고 하고 그게 받아들여지는 과정을 보고 있자니.. 그 수많은 희생들이 안타까워 서글퍼진다.

동시에 라이샤워는 날카롭게 일본인들의 한계를 지적한다. 독일이나 이탈리아 같은 다른 추축국에는 히틀러, 무솔리니를 포함한 나치즘 - 파시즘이라는 희생양이 있으니 독일민족, 이탈리아 민족이 "경쾌"하게 나치와 파시스트들을 "희생양"으로 치워버리고 미국의 지배 하에 들어갈 수 있는데 일본에는 '책임'을 질 집단이 없다. 누구를 희생양으로 만들어 미국의 품으로 들어오게 할 것인가? 일본의 군국주의는 책임이 부재한 폭주였기에 책임질 이가 없다. 심지어 천황조차도 책임으로부터 방기되어 있다. 이런 일본을 지배하기 위해서는 "괴뢰"가 필요한데 우리 미국인들이 누구를 괴뢰로 삼을지 걱정할 것도 없이 일본인들 스스로가 괴뢰의 지배 속에서 움직여왔다. 천황이라는 괴뢰를 내세워 지배하면 된다. 이게 30대 라이샤워의 통찰이었다. '전쟁책임'에 관한 놀라울 정도의 날카로운 통찰이었다. 아무도 책임질 이가 없기에 라이샤워는 천황제를 상징천황제로, 그 자신의 표현으로는 "괴뢰 천황"으로 만들어 일본을 지배하면 된다고 생각했고 미군정은 그걸 받아들인다. "괴뢰 천황제"가 사회를 지배하면서 일본은 70년간 봉인되었다. 이게 미국인들의 무서움이기도 하지만 참 서글프다.

이 라시야워의 제자가 바로 그 유명한 "존 다우어"이다. 지금 일본의 정신세계를 지배한다고 하는 '무조건 항복 모델'의 주창자가 존 다우어이고, 그 스승이 바로 그 모델을 만들어낸 라이샤워라는 건 여러모로 참 재밌는 지점이다. 야메미야 쇼이치 같은 학자는 존 다우어의 사관에 반대해 점령이 없었더라도 전후의 개혁을 일본 사회가 성취했을 것이라 주장한다. 전전부터 이어진 일본인들의 주체적인 여러 운동들을 기리려는 그 뜻은 알겠으나 미국에 의한 패전이라는 조건 없이 군부가 개혁에 순순히 따랐을 것이라 보기는 어렵다. 아무튼 전후의 개혁뿐만 아니라 역사관으로도 미국은 일본을 확고하게 장악하고 있는 것 같아 서글프기도 하고 재밌기도 하고 그렇다. 일본의 전후 역사학이 이 라이샤워의 근대화론을 논파하지 못한 게 일본 좌익 실패의 근원이라 본다.

우리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이 미국인들의 세계관인 근대화론을 논파하지 못한다면 그 너머를 상상할 수가 없다.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는 틀로 일본, 한국 등을 주조해낸 미국은 세계관 차원에서도 이들 국가를 여전히 얽어매고 있다. 어떻게 그 근원에서부터 이데올로기를 논파해내고 아시아의 주체성을 세울 것인가. 내 안의 NL이 꿈틀꿈틀 거린다.. 아! 이 양키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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