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련희씨는 돌아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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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수 년 전 갑자기 탈북자들을 여럿 만날 일이 있었는데 그러자면 반드시라도 할 만큼 거쳐야 할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보안과 형사들이죠. 예전에는 ‘대공계’라고 불렀던 것 같은데 경찰 조직상
에는 그런 명칭이 없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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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년의 반공 드라마 <113수사본부>나 <추적>의 주인공들이었을 보안과는 2006년 즈음에는 상
당히 퇴락(?)한 부서였습니다. 나이 들고 정년 가까운 분들이 많았고 젊은 형사들 사이에서도 인
기가 없다더군요. 그도 그럴 것이 주 업무가 ‘간첩 잡는’ 일이라기보다는 ‘탈북자 치다꺼리’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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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나라 어느 정부든 망할 때까지 첩보 활동은 멈추지 않는 법이고, 북한 역시 굶어죽어도 간첩
은 심고 정보를 얻으려 들 겁니다. (남한도 당연히 그렇구요) 북한 입장에서 탈북자들은 남한의
지원을 받으면서 공작원을 정착시킬 수 있는 루트일 것이고 보안과 형사들이 이를 놓칠 수는 없겠죠. 그러다보니 이들은 탈북자들의 거의 유일한 대화 상대이자 술친구에 취업 후견인에 해결사가 되기도 했습니다. 형사 아저씨에게 직접 들은 얘기 중 하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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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한 여자 하나가 있었는데 생활력도 강하고 야무져서 남한에 들어와서 잘 살았지. 역시 탈북
한 남자랑 가정도 꾸렸고,,,,, 내가 예식장도 알아봐 주고 남편 취직 자리도 알아봐 주고. 그런데
어느 날 여자가 울면서 전화가 왔어. 집에 와 달래. 난리가 났다고. 남편‘들’이 왔다는 거야 뭔 얘
긴가 해서 가 봤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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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자 북한에서 유부녀였어. 그런데 탈북해서 중국에서 살다가 조선족이랑 동거를 했고 한국에 서 살고파서 다른 나라 대사관 통해 한국에 들어온 거야. 그래서 지금 남자랑 결혼도 했고. 아 그런데 북한의 남편도 탈북하고 한국에 오고 동거한 조선족도 한국에 들어온 거야. 남자 세 명이 어찌 어찌 짠 마주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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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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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이 살벌하게 벌어질 분위기라 내가 총까지 빼들고 말렸어. 나더러 심판(?)을 내려 달래. 내
가 판사도 아닌데. 그런데 판사 노릇을 했지. ‘여기는 대한민국이다. 대한민국은 법치국가다. 대
한민국 법으로 혼인신고 한 게 남편이다. 다른 사람들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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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들은 헌법상 ‘한반도와 부속 도서’를 영토로 한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동시에 현재 무장 대
치 중인 국가, 또는 미수복 지역의 주민들이기에 대한민국 국민이 되기 전에 거쳐야 할 절차가 많
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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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그들이 스스로 이 땅에 오고 싶은가, 누군가의 꾐에 빠지거나 납치돼서 본인의 의사와는반해 한국에 온 것이 아닌가를 확인해야겠죠. ‘잠깐 일하고 돈 벌어 다시 북한에 가려고’ 했든, ‘북한에서 못살겠어서 목숨 걸고 탈출’했든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일단 남한행 의사를 밝히고 입국한 이상 그는 대한민국 법의 통제를 받습니다. ‘대한민국 법으로 혼인신고 한 게 법적인 남편’이듯 말이죠.
탈북자 가운데 김련희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간경화를 앓으며 치료차 중국에 나갔던 그녀는 “한
국에 나가 잠깐 돈을 벌고 들어오면 치료받을 수 있다.”는 탈북 브로커에게 속아서 한국에 왔다고주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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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한국에 들어가는 일을 그리 쉽게 생각했다는 건 좀 이상하고 그녀가
한국행 의지를 밝힌 적이 없다면 애초에 한국 입국이 가능했을까 갸우뚱하게 되긴 하지만 입국 직후부터 단식 투쟁을 불사하며 북한 송환을 요구한 팩트를 놓고 보면 그녀에게 적극적인 탈북 및남한 정착 의지는 없었다고 보는 편이 맞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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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돌려 보내면 되는가.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탈북자들 가운데 북한으로 돌아가
고 싶다는 사람도 충분히 있을 수 있습니다. 남한에서 적응에 실패하거나 사기를 당하거나 한 사
람들은 치를 떨면서 사람 살 곳이 못된다며 ‘더디 가도 사람 생각하는’ 자신들의 조국에 돌아가고
싶어할 수도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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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사람들을 무작정 돌려 보낼 수는 없습니다. 그들은 이미 대한민국 국민으로 편입된 사
람이고, 대한민국 세금으로 지원을 받았으며, 국정원이 탈북자들의 증언을 면밀히 수집해서 크로
스체크와 검증을 통해 방대한 북한 정보를 형성하듯, 그들이 북으로 간다면 역시 그렇게 될 수 밖
에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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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 자체를 숨기는 이도 있고, 북한의 가족들에게는 중국에 살고 있는 것으로 돼 있는 탈북자들
도 꽤 될 뿐 아니라 별 것 아닌 정보라 해도 그들이 탈북 과정에서 만나고 도와 준 사람들, 탈북 방
법 등등을 까발리는 자체가 몇 명의 목숨을 위협할지도 모릅니다. 세상에 ‘별 것 아닌 정보’는 없
습니다. 그걸 어떻게 분석하고 활용하느냐의 문제일 뿐이지. 저는 김련희씨를 보내서는 안된다고
강하게 주장하는 탈북자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녀가 알고 있는 게 ‘별 것 아니라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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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저렇게 북한에 보내 달라고 애원하는 사람을 굳이 한국에 두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돌려 보내는 게 낫지 않겠는가 하는 휴머니즘은 충분히 이해가 되고 공감도 갑니다. 하지만 안타
까운 일은 김련희씨가 이슈가 되면 될수록, 김련희씨가 자기 딴에는 이슈가 될만한 행동을 하면
할수록 그 송환 가능성을 제로에 수렴한다는 현실입니다. ‘간첩으로 몰려 추방당하고 싶었고’, 또
거기에 더해서 그를 경찰에 스스로 신고해서 ‘나 이렇게 했소’라고 고백했다는 그녀의 말을 들으
며 저는 혀를 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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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남조선 특무’가 잡히면 무슨 꼴을 당하는지 뻔히 알만한 사람치고는 너무도 얼척이 없
기도 하지만, 오로지 고향에 가고자 하는 열망에서 그랬다 쳐도 그녀가 탈북자 정보를 수집한 것
은 엄연히 해서는 안되는 일이었고, 그 수집 리스트에 오른 탈북자들의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하는것이었습니다. 즉 그녀는 불법을 저지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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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간첩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합니다. 아울러 국가보안법을 하시라도 빨리 없애야 한다는 사람으로서 그녀를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하는 것에 반대합니다. 특히 7조. 북한에 가고 싶은 사람이북한을 좋게 이야기하는 것이 무슨 ‘고무 찬양’이 되겠습니까. 베트남 대사관에 찾아가 망명 신청을 한 게 뭔 ‘잠입 탈출’까지 해당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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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녀는 형법으로도 처벌 받을만한 정보 수집 행위를 했고 (정보의 경중 여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로 인해 요주의 인물이 됐습니다. 이렇게 되면 그녀의 북한행은 점점 더 멀어집니
다. 깃발부대 노추들의 주장대로 이 정부가 ‘주사파 정부’라고 해도 어찌 이리 요란한 ‘요주의인
물’을 북한으로 보낼 엄두를 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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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점에서 저는 남한의 ‘진보’를 참칭하지만 사실은 가장 봉건적인 집단, 자칭 통일운동세력의
어리석음을 탓할 수 밖에 없습니다. 탈북자들을 ‘조국의 배신자’로 일컫는 데 주저함이 없던 이들
에게 김련희는 훌륭한 반증 소재가 됐고 김련희를 ‘휴머니즘’ 이슈로 떠올리면서 자신들의 억지
를 시전할 기회로 삼아 결과적으로 김련희의 희망이 실현될 가능성을 부지러히 없애고 있기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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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지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한국의 ‘통일운동세력’들이 동진호 선원들을 비롯해서 북한에 납북되거나 체포되 억류돼 있는 한국인들에게는 단 한 번도 ‘휴머니즘’을 발휘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
다. 그래서 김련희에게 보내는 ‘휴머니즘’은 믿을 수 없을뿐더러 잔인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김련
희는 그들이 떠들수록 북한에 갈 수 없기 때문이지요.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김련희가 눈물을 흘
리고 울부짖고 좌충우돌하는 이벤트일 뿐입니다. “저렇게 가고 싶어하는데 못가게 막는 미제의
꼭두각시 정부”를 씹고 버리기 위한 껌종이일 뿐이라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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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탈북자들이 자유롭게 국경을 넘으면서 몇 번이고 북한을 방문하기도 하고 가족을 빼오기
도 하고 그러다가 북한 당국에 체포되기도 하고, 남한 TV에 잘만 나오던 탈북 여성이 별안간 북한TV의 영웅적 귀환자로 소개되는 모습도 봤습니다. 그러나 김련희씨는 그럴 기회를 박탈당했습니다. 그리고 그 박탈의 주체는 정부만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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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눈박이 통일운동 세력도 지금 그에 크게, 그리고 잔인하게 일조하고 있습니다. 진실로 휴머니
즘 차원에서, 그 인간적 고통을 외면하지 못해 그녀를 돕는 사람들과 송환을 촉구하는 분들께는
안쓰럽고 죄송하지만 제가 김련희씨 송환을 지지하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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