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3-02

"김대중 대통령 은혜 갚으시오" - 시사저널

"김대중 대통령 은혜 갚으시오" - 시사저널

"김대중 대통령 은혜 갚으시오"
 정희상 기자 (hschung@e-sisa.co.kr) 승인 2001.05.24

DJ 도운 재일 한통련 회원들, 입국 거부되자 '분노'


재일 동포 3백여 명이 김대중 대통령을 향해 은혜를 갚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1970년대 유신 독재 시절 김대통령이 납치와 투옥, 정치적 망명 등 험난한 가시밭길을 걸을 때 일본에서 돕고 지켜 주었던 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한민통)의 후신인 재일한국민주통일연합(한통련·의장 곽동의) 소속 회원들이다.



이들은 모두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아직까지 떳떳하고 자유롭게 한국을 방문하지 못한다. 설움을 참다 못한 이들 중 15명이 지난 3월4일 마침내 한국 사법부의 문을 두드렸다. 올해 초 회원들이 고향 방문을 위해 주일 한국영사관에 여권 발급을 신청했지만 '반국가 단체에 관련되어 있다'는 이유로 반성문과 준법서약서를 요구하며 여권을 발급하지 않자 한국 외교통상부를 상대로 '여권발급거부처분 취소 소송'을 서울 행정법원에 냈다.

1973년 반유신을 기치로 내걸고 결성된 한민통은 1980년대 말 한통련으로 개칭한 뒤 일본에서 조국의 민주화와 통일운동을 계속해 왔다. 이들이 김대중 대통령에 대해 착잡한 애증을 갖게 된 데는 사연이 있다. 김대통령이 1973년 한민통 결성을 위해 일본을 방문해 초대 의장 직을 맡자마자 납치되었기 때문이다. 김대통령은 1987년 한 월간지에 기고한 도쿄 납치 사건 회고록에서 한민통과의 관계를 이렇게 술회했다.

'한민통 도쿄 본부를 만들기 위해 나는 1973년 7월 일본을 방문했다. 일본에서 내가 만나고 협의한 사람들은 8대 국회의원을 지낸 김재화씨와 나의 오랜 친우인 김종충씨 그리고 배동명·조활준 씨 등이었다. 그들은 당시 고국의 정치 상황을 걱정하며 민주화와 평화 통일을 염원하던 사람들이었다. 다만 그들이 박정권의 유신 독재 체제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었기 때문에 민단 내에서는 비주류 위치에 있었으나 사상적으로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람들이었다…(중략) … 그들은 내 주장을 받아들였고, 이렇게 해서 일본에도 한민통이 결성되게 되었는데, 결성대회를 불과 며칠 앞두고 나는 납치당하고 말았다.'

한통련 "DJ 정권, 유신 때와 무엇이 다른가"



초대 의장 내정자인 김대중씨가 납치되자 회원 70여 명은 이때부터 일본 내에서 DJ 납치 규탄대회와 반유신 투쟁을 줄기차게 벌였다. 당연히 박정희 정권에게 한민통은 눈엣가시였다. 1978년 중앙정보부는 마침내 한민통을 반국가 단체로 옭아매는 공작을 했다. 이른바 김정사 간첩사건이다. 서울의 한 대학에 유학한 재일 동포 2세 김정사씨를 체포한 중앙정보부는 김씨로부터 한민통이 조총련과 교류한다는 진술을 받아낸 뒤, 조총련은 북한 지령을 받는 단체이므로 한민통도 반국가 단체라고 발표한 것이다. 당시 한민통에서 활동했던 김씨는 간첩죄로 15년형을 언도받은 뒤 어쩐 일인지 6개월 만에 석방되어 일본으로 갔다.

1980년 쿠데타로 등장한 전두환 정권은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을 날조한 뒤 그를 사형하려고 한민통을 끌어들였다. 5·18 광주항쟁을 배후 조종했다는 혐의(내란음모)의 법정 최고형이 15년밖에 안되었기 때문에 사형하려면 반국가단체 결성 혐의를 씌워야 했다. 실제로 김대중씨는 당시 한민통 결성 관련 죄목 때문에 사형 선고를 받았다.

 

바로 이런 인연 때문에 한민통 회원들은 DJ가 집권하면 자기들의 명예가 회복되고 자유롭게 고향을 방문하게 될 것으로 굳게 믿었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을 바라보는 한국 정부의 눈이 유신 정권 때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결국 이들은 지난해 국내 시민·인권 단체에 억울함을 호소했고, 이에 국내 법조계, 학계, 시민·사회 단체 인사들이 주축이 되어 지난해 가을 '재일 한통련 회원 명예 회복과 귀국 보장을 위한 대책위원회'(공동대표 강만길 고영구 김승훈 이창복 홍근수)를 결성하기에 이르렀다. 올해 들어서는 지난 4월22일 일본에서도 한통련 회원은 물론 민단 소속 재일 동포·일본인 학자·성직자·정치인 들이 주축이 되어 대책위원회를 꾸리고 5만명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아래 상자 기사 참조).

국내 대책위 조직위원장인 임종인 변호사는 "한통련에 대한 현정부의 대응이야말로 DJ 정권의 성격을 정확히 드러내주는 사례이다"라고 말했다. 지난 수십 년간 해외에서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 노력해온 세력은 DJ 집권을 민주화 완성으로 이해했다. 그런데 정작 현정권 들어 과거 김대중씨를 탄압하고 사건 조작에 앞장섰던 중앙정보부(현 국정원)가 해외 민주화 세력에게 미안해 하기는커녕 도리어 반성문을 쓰거나 조사를 받으라고 요구한다는 것이다.

국정원의 한 관계자는 "한통련이 1970년대에 민주화운동을 한 것은 맞지만 1980년대 후반 이후 북한을 방문하는 등 친북 활동을 주도해 국가 안보를 책임지는 입장에서 최소한 준법서약서를 쓰거나 또는 입국 후 조사를 받겠다는 약속을 해야 입국시킬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대책위는 북한 국적인 조총련 회원조차 조사 없이 입국시키면서 기본적으로 '우익' 출신인 한통련에 대해서만 해외 통일운동을 이유로 반국가 단체로 묶어 반성을 요구하는 것은 형평성이 어긋날 뿐 아니라 정부의 남북 화해 정책에도 반한다고 반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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