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5-16

보훈섬김이 성폭력 피해 언제까지..수년째 의지 없는 보훈처

보훈섬김이 성폭력 피해 언제까지..수년째 의지 없는 보훈처


보훈섬김이 성폭력 피해 언제까지..수년째 의지 없는 보훈처
최현만 기자 입력 2021. 05. 16. 07:05 댓글 6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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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방 및 지원책 미비..그사이 피해자들 트라우마
노조측 "위험 요인 있으면 2인1조 적극 배정해야"


© News1 DB

(서울=뉴스1) 최현만 기자 = 국가유공자들의 가정에 방문해 가사 지원 등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보훈섬김이' 이광숙씨(가명·54·여)는 지난 2018년에 일어났던 일로 인해 여전히 악몽 같은 시간 속에 살고 있다.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당시 일어났던 일은 기억에 생생하다.

성인 채널을 틀어놓고 같이 보자며 가슴을 툭툭 건드린 사람은 물론 또 다른 서비스 대상자는 속옷만 입은 채 특정 부위를 만져달라고 했다. 이씨는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불안 증세를 겪었고 약을 먹지 않으면 일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같은 성폭력 피해는 이씨만의 일이 아니다. 16일 국가보훈처노동조합에 따르면, 노조가 지난 4월 보훈섬김이 573명에게 '2020년에 재가복지서비스대상자로부터 성추행 및 성희롱을 당한 경험이 있는지'를 물은 결과 '있다'고 답한 응답자가 11.9%나 됐다. 매년 보훈섬김이 10명 중 1명 이상은 성추행 및 성희롱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이씨와 같은 피해를 호소하는 보훈섬김이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미 2015년 보훈섬김이의 인권침해 사례가 문제시 돼 사회적 공분이 일었고 매년 국회 국정감사 때마다 의원들의 대책과 재방 방지책 마련에 대한 주문이 이어졌다. 그럼에도 매년 이 같은 사건이 반복되는 이유는 보훈처의 안일한 인식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피해를 입은 보훈섬김이에 대한 지원도 턱없이 부족하다는 의견도 있다. 실제 올해 국가보훈처 지원으로 심리 상담을 받은 보훈섬김이는 2명에 불과하다.

© News1 DB

◇피해 심각해 병원 치료받기도…"13년 전 성폭력 아직도 트라우마"

"물김치를 배달하고 문을 나서려는데 갑자기 몸을 껴안고 놔주지 않았다" "얘기를 들어보라면서 남여공용화장실에서 여자가 쓴 휴지를 주워서 냄새를 맡으면 너무 좋다고 말하더라" "다방을 차리면 장사가 잘 될 거라며 가슴을 막 만졌다"

실제 성폭력 피해를 당한 보훈섬김이들의 진술이다. 이 중 보훈섬김이 윤지미씨(가명·여)는 취재에 응하는 도중 약 13년 전 성폭력 피해를 당했다는 사실을 고백하며 눈물을 쏟아냈다.

그는 일을 마친 후 신발을 신기 위해 상체를 구부리는 순간 뒤에서 서비스 대상자가 가슴을 붙잡았다고 말했다. 윤씨는 그 자리에서 큰 모멸감과 분노를 느껴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윤씨는 "너무 고통스러운 기억"이라며 "그 이후 어르신의 작은 제스처에도 깜짝깜짝 놀라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저 정말 착하게 살아왔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이에 보훈처는 성폭력 피해 방지를 위해 여러 제도를 두고 있다는 입장이다. 먼저 서비스 대상자에게 성희롱 예방 안내문을 배부하고 수시로 서비스 모니터링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사안이 중대하면 서비스를 종결하고 사안이 경미하다면 서비스를 재개하더라도 대상자를 특별 관리하고 있다는 게 보훈처의 설명이다. 필요하다면 외부 상담기관과 연계해 피해자 심리 상담도 지원한다. 하지만 보훈처 노조는 이런 제도들이 보여주기 식에 불과하고 실질적인 효과가 미미하다고 강조했다.

실제로는 성폭력 피해를 경험하더라도 수치심과 보훈처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어 피해 사례를 보고하지 못한 경우도 허다하고 지원도 제 때 이뤄지지 않는다는 게 노조의 설명이다. 실제로 한 보훈섬김이는 지난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지속적인 성희롱 피해로 인한 우울증이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됐다.

서울 용산구 서울지방보훈청 앞에서 1인 시위를 진행하는 한진미 국가보훈처 노조위원장의 모습.(국가보훈처 노조 제공) 2021.5.13© 뉴스1

◇올해 심리상담 고작 2명…"성범죄 위험 있으면 2인 1조 투입돼야"

서울 용산구 서울지방보훈청에서 1인 시위를 하는 한진미 국가보훈처 노조위원장은 "2018년 4월에 보훈섬김이 631명이 보훈처에 탄원서를 제출한 것을 시작으로 성범죄로부터 보호해달라고 지난 3년 동안 지속적으로 요구했지만 이후 바뀐 건 없었다"고 강조했다.

보훈처는 피해를 당한 이들이 상담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해바라기센터 등 상담 기관과 연계해준다고 했지만 실제 상담이 이뤄진 사례는 드물었다. 보훈처로부터 지난 12일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보훈처가 심리 상담을 연계해준 보훈섬김이는 2명에 불과했고 이조차도 상담은 총 5회만 이뤄졌다.

한 위원장은 "보훈처에서 심리치료를 받을 수 있다고 적극적으로 안내하지 않는 데다 지방에서 일하는 보훈섬김이들은 성폭력 상담소까지 왕래하기도 어렵다"며 "더구나 법적으로 성범죄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호소하면 근무에서 배제하고 유급휴가를 주도록 하고 있지만, 지방청에서는 병가나 연차휴가를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성범죄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보훈처가 보훈섬김이들을 2인 1조로 투입하는 방안을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노조 측이 보훈섬김이 48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성범죄 피해를 줄이기 위해 가장 적합한 방안으로 '보훈섬김이가 성범죄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있어 2인 1조 배정을 요구할 경우 즉시 배정'이 33.4%로 가장 높은 응답을 보였다.

이와 관련해 보훈처 관계자는 "(성폭력 문제가 발생해 서비스 대상자가 특별관리 대상이 됐을 경우) 현재도 2인 1조로 보훈섬김이를 배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노조 측은 그런 사례를 들어보지 못했다는 반응이다.

한 위원장은 "실제 성폭력을 예방하기 위해 보훈섬김이들을 2인 1조로 투입했다는 사례를 들어본 적이 없다"며 "사례가 있다고 하더라도 2인 1조 투입 매뉴얼이나 지침도 없다"고 강조했다.

성범죄 예방 제도나 지침이 미비하다 보니 결국 서비스를 받는 국가유공자들도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씨는 "보훈처에서는 사건이 발생할 경우 서비스를 종결해버리는데 이럴 때면 저희도 마음이 아프다"며 "유공자를 대상으로 한 선행 교육과 보훈섬김이를 2인 1조로 배정해 운영하는 것이 모두에게 이로울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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